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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읽다가 구매했습니다. '에세이'에 관한 에세이 p22 에세이는 ‘시도’라고. 그래서 완벽함을 자처하지 않고 철저한 논의를 추구하지도 않는다고. p25 에세이는 질료의 정수, 질료의 핵심을 표현해 내고자 하고 그것을 위해 세련됨과 온전함에 도달하고자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체를 다루지 않기를, 불완전하다는 것 자체에 가치가 있기를 고집한다. p114 나는 에세이가 모종의 퇴적물이라는 발상이 마음에 든다. 에세이란 다양한 소재가 퇴적된 글, 또는 같거나 비슷한 소재를 다루는 다양한 방식이 퇴적된 글이라는 발상이 마음에 든다. 한 편의 에세이에 들어올 수 있는 단상들(또는 한 권의 에세이로 묶일 수 있는 글들?) 사이에는 반복이나 리듬이 있다. |
| 어쩌면 에세이, 산문이라는 글이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쓰기 힘든 글이 아닌가 싶다. 글쓰기 모두 쓰는 이로 하여금 투명하게 비쳐지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에세이는 특히 사유나 가치관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산문을 자주 찾진 않는다. 사람은 어떤 부분에서는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만 보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좋아하는 대상에게 보고 싶은 부분만 찾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혹은 실망하게 될까봐 미리 차단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탄하게 되는 글들도 분명 있기에 또다른 발견이 될 것이다. 브라이언 딜런의 글을 보면 읽고 싶어지는 마음이 든다. 주제도 흥미로웠고 에세이라는 형식을 파헤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에세이를 다룬 책을 통해 독서에 대한 열망에 생기다니,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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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딜런의 『에세이즘』 리뷰입니다. 작가는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는데 에세이에 대한 관점, 관념, 철학 등 에세이라는 형식을 장르적,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내용이라 흥미롭습니다. 사실 가볍게는 일기도 에세이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막상 에세이를 쓰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에세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어떨지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에세이라는 장르가 흥미로워지는 내용이었습니다. |
| 입문하는 가장 쉬운 방법과 방식은 수필인 것이다. 소설이든 시든 무엇이든지 글에 대한 발상과 구상에 많은 시간을 들여서 개성넘치지만 체계적이면서 읽히는 글을 쓰는 일이란 뭔가 글쓰기를 어렵게 만든다. 대충 할 일이 아니기에. 그러나 수필은 즉 에세이는 그 과정을 좀 생략 가능하다. 그 글에 대해 편하게 쓸 수 있는 글쓰기이다. 구어체로 글을 쓰고 글을 들려줄 수 있는 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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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우울증이 친밀한 사이라는 것, 글쓰기가 우울증의 원인이거나 치료법이거나 가장 통렬한 표현이라는 것은 물론 클리셰다. 우울증을 앓는 작가가 중년남이라면, 클리셰의 진부함은 더욱 심해진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이것이 그저 클리셰가 아니라 모종의 기원이라면? 우울증과 에세이가 서로를 파괴하는 동시에 구원하는 관계라는 클리셰가 먼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이런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이라면? 정말 그렇다면 조금 다른 질문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산문과 자기 연민이라는 메마른 협곡을 따라 나아가는 중이라면 그런 발걸음을 묘사하는 것이야말로 그 길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열쇠가 아닐까, 라는 질문이. 인간의 경험 세계라는 넓은 강과 다시 연결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이. 너무 큰 질문이라고, 너무 민망한 질문이라고까지 느껴질지 모르지만, 에세이가 못 다룰 만큼 큰 질문은 없다. 반대로 너무 작은 질문, 너무 사사로운 질문이라고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마찬가지다. 에세이가 못 다룰 만큼 작은 질문은 없다. (「‘위안에 관하여’」중에서)
이런 구절만으로도 충문하게 다가오는 책. 왠지 아껴서 읽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