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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휘는 오상원(吳尙源)과 함께 앙드레 말로, 생텍쥐페리의 행동주의적 휴머니즘의 영향을 받고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이다. 그러므로 그의 관심을 이끄는 것은 '평온한 현실과 무위에 가까운 선량한 서민성'이 아니라 '현실을 남의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기의 진실한 문제로 보고, 힘을 다하여 부딪혀가는 성실성과 정열'이다. 그래서 그는 역사의 급격한 변동기에 그것과 과감하게 부딪친 행동인을 즐겨 그린다. 그 행동인이 바로 <불꽃>의 고현이다. 고현의 할아버지는 우리의 지나온 역사에서 수없이 만날수 있었던 인물이다.
과거의 많은 한국인들은 엄청난 비극 앞에서도 그대로 주저앉아 기적만을 기다리거나 자기 한몸의 보전만을 찾는데 급급했다. 선우휘에게 있어서 할아버지와 같은 인물은 우리 역사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었다. 그래서 '있어야 될 사람'으로 고현의 아버지와 여교사 조선생이 설정되었고 '있어서는 안될 사람과 있어야 될 사람'사이에 고현이 서게 되었다. '있어서는 안될 사람'은 현실 도피적이고 수동적이며 비역사적인 인물인데 반하여, '있어야 될 사람'은 현실 참여적이고 능동적이며 역사적 인물이다.
고현은 할아버지형의 인간에서 아버지나 조선생형의 인간으로 변화된다.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현실과의 대결의식을 탈환했을 때, 거기에는 찬란한 불꽃이 있었다. 그 불꽃은 불타는 삶에의 의욕이었다. 그런데, 주인공 고현의 현실에 대한 도피의식에서 철저한 저항정신으로서의 변화는 동굴에서 이루어진다. 동굴은 현의 아버지가 죽은 곳이기도 하므로 죽음의 이미지와 현이 다시 태어나게 되는 재생, 부활의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동굴의 이미지가 죽음과 재생, 부활의 이미지를 지니는 것은 단군신화로부터 이어지는 우리 문학의 보편적 이미지라 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그러나 골짜기를 뒤덮고 있는 관목의 가지와 잎사귀에 가리어 험한 바위가 짐승처럼 엎드리고, 담그면 손목이 끊길 것 같은 차디찬 냇물이 그 밑을 흐르고 있었다. 이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서녘. 부엉산 산마루. 거기 동굴이 있었고 그 동굴을 등지고 고현(高賢)은 앉아 있었다. 기대고 있는 바위가 퍽 차가웠다. 해가 산마루 뒤로 기울기 시작하면서 골짜기의 이편에 지어졌던 그늘이 차차 저편 산허리로 물들어 갔다. 그곳 검푸르게 우거진 솔밭 가운데 현의 증조부의 산소가 보였고, 거기서 눈길을 북으로 돌리면 보이지 않은 오욕(汚辱)의 날[刀]이 영겁의 산줄기를 끊어 놓고 있었다. 아니 지금은 그 흔적뿐, 포성과 함께 피를 뿜고 남쪽으로 옮겨간 오욕의 날. 오욕, 인간이 땅과 인간에게 가한 오욕. 현은 손바닥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짐승처럼 사람의 눈을 피해 쫓겨다닌 기나긴 시간이 턱과 뒷덜미에 흐르고 있었다. 가마솥같이 거친 턱수염. 덜미를 뒤덮은 머리카락, 그리고 가슴에는 무수한 가시가 돋쳐 있었다.불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