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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롭다 원래 이미 자유롭다 그게 해탈이다 나는 이 무시간성을 집단적 무의식의 체험이 갖는 고유의 성질이라고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자기 해방의 요가'에 전념하는 것은 의식으로부터 잊혀진 과거의 모든 경험을 되살리는 일이라고 한다. 이러한 복원의 주제는 많은 구원신화에서 나타나며,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자연발생적인 환상이나 꿈 속에 나타나는 고풍스런 수많은 자료들을 해석하는 무의식 심리학의 중요한 측면이기도 하다. ? 개인의 심리를 조직적으로 분석할 때 (하나의 치유 작용으로서) 조상 전래의 패턴들이 자연스럽게 일깨워지는 것은 복원의 결과이다. 우리가 예고적인 꿈을 비교적 자주 꾼다는 사실은 원본에서 '미래의 지식'이라 부른 것이 존재함을 입증해준다. ? 한마음 "자신의 시간"을 해석하기는 매우 어렵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에반스 웬츠 박사가 여기 설명한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무의식은 과거 ·현재 · 미래가 그 속에서 함께 뒤섞이는 한 그 '자신의 시간'을 지님이 분명하다. 논리적으로는 다음 날 밤에 꾸었어야 하는 꿈을 그 전날 밤에 꾸었던 던18)의 꿈과 같은 것들은 자주 있는 것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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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자기 해방] 개인적 자아에 대한 느낌이 느슨해질 때의 정신적 해방 효과에 대하여 나는 적어도 한 번 이상 말한 적이 있다. 또한 나는 인격의 변형을 야기하는 '초월적 기능'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무의식의 자발적 치유 작용이 중요함을 강조했으며, 나아가 이런 중요한 사실이 요가에서 무시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서양의 많은 요가 수행자들은 핵심이 내향화된 마음에 있음을 잊어버리고 외향적인 자세로 요가를 '하고'있는 것이다. 동양인들의 마음 속에는 '진실'이 원래부터 많은 부분들어 있어서 수행자는 그 진실을 특별한 노력없이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본문 중 p 59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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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도 우리의 환영이고, 모습도 색깔도, 우리의 마음까지도 실체 없는 환영의 세계이다. 『티벳 해탈의 서』가 우리에게 일깨우는 진리는 바로 그 환영의 세계를 속히 깨달으라는 것이다. 마음을 본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를 해방(해탈)하는 것'이라고. 무의식(마음)의 작용에 관심을 기울일수록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분리시키는 욕망의 세계로부터 우리가 벗어나며… 이것은 투쟁과 고난에 묶인 상태에서 참으로 벗어나 자신을 해방하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욕망에 대해서도 파드마삼바바가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는 사람들 역시 투명한 빛(마음)을 볼 수 없나니/고통으로 짓눌리고 그로 인해 어둠 속에 있노라"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