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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만 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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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를 꼽자면 낯선 세계로의 초대라 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소설 속에서는 가능하니까. 처음 접하는 작가의 소설에 대한 기대도 그러하다. 이 작가는 무엇을 들려줄까,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작가의 의도를 따라잡을 수 없지만 그래도 소설을 많이 읽다 보면 나름대로 그 끝을 예상할 수 있다고 여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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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를 꼽자면 낯선 세계로의 초대라 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소설 속에서는 가능하니까. 처음 접하는 작가의 소설에 대한 기대도 그러하다. 이 작가는 무엇을 들려줄까,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작가의 의도를 따라잡을 수 없지만 그래도 소설을 많이 읽다 보면 나름대로 그 끝을 예상할 수 있다고 여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도무지 모르겠다. 페터 슈탐의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은 혼란의 연속이다. 어쩌면 나에게만 그런 소설일지도. 소설이란 그런 것이기도 하니까.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나면 한 번 더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외모만 그런 게 아니라 하고 있는 일이라 취향, 삶의 태도까지 그렇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 속 화자 앞에 그런 사람이 나타났다. '도플갱어'라고 치부하기엔 부족한 또 다른 나를 만난 것이다. 20년 전의 젊은 나를 만나는 것, 가능할까. 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러나 독자는 화자 앞에 나타난 옛 연인 ‘막달레나’를 닮은 '레나'에게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자신과 막달레나의 만남, 그리고 그가 쓴 단 한 권의 책과 배우였던 막달레나의 이야기. 그것은 과거가 아니다. 레나에게는 현재의 일이다. 그러니까 레나도 현재 배우이고 남자친구는 작가이며 그의 이름은 크리스다. 물론 나는 크리스와 만난 적이 있다. 작가인 화자가 고향의 작은 서점에서 낭독회를 하고 돌아온 호텔에서 만난 직원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크리스란 청년은 분명 자신이었다.

 

 

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화자는 레나와 크리스의 사랑과 위기를 모두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과 막달레나에게 이미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레나의 입장은 어떨까? 늙은 중년의 남자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막달레나와 그의 첫 만남은 크리스가 자신과의 첫 만남과 닮았다. 그를 뿌리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자가 들려주는 이런 말 때문일까. 아니다, 그건 레나에게만 들려주는 게 아니라 독자를 향한 것이라 여겨진다. 

 

당신은 언제고 항상 원래의 길로 다시 되돌아오게 돼 있소. 당신의 행위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오. 어떤 작품이 여러 연출가에 의해 연출될 경우와 마찬가지요. 무대가 달라지고 심지어 대사가 바뀌거나 축소되어도 줄거리는 변함없이 진행된다는 것이오. (91~92쪽)

 

겨우 반나절, 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을 그려낸 이 소설에서 화자와 레나는 산책을 하고 대학 도서관에 들르고 가게에서 대화를 이어간다. 하지만 나는 마치 꿈을 꾼 것처럼 몽롱하다. 실재하는 게 누구인가 혼란스럽다. 화자와 막달레나인가, 레나와 크리스인가. 20년 전 화자는 막달레나를 떠났지만 현재는 그 반대다. 레나가 크리스를 떠났으니까.

 

젊은 파토스에 휩싸여 나는 그녀와 글쓰기 중 하나를, 사랑과 자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제 비로소 나는 사랑과 자유는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공존의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33쪽)

 

200쪽도 안 되는 소설은 내게 끝까지 마침표나 느낌표를 안겨주지 않았다. 무수한 물음표만 남겼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화자(크리스토퍼)를 만나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확신은 들지 않는다. 다시 화자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다고 해도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페터 슈탐의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은 절대 다정스럽지 않은 소설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모호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누군가 저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안겨준다. 나의 과거와 나의 미래를 다 꿰뚫고 있는 나의 또 다른 존재와의 만남이 만들어낼 이야기를.

 

r*********s 2023.10.0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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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 그럼에도 묻고 발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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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 페터 슈탐 (문학과지성사) 도서지원 | 해당 도서는 #문학과지성사 활동으로 증정받은 도서입니다. 우리의 현존재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운명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운명을 벗어날 수 있는가? 우리가 삶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달리 살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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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 페터 슈탐 (문학과지성사)

도서지원 | 해당 도서는 #문학과지성사 활동으로 증정받은 도서입니다.

우리의 현존재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운명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운명을 벗어날 수 있는가? 우리가 삶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달리 살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에 만족할 것인가?

 


 

경계는 허물어지고, 자기 실존을 향한 물음은 계속된다. 나는 실재함을 쫓고 상상에 쫓기고, 또다른 나를 쫓고 그에게 쫓긴다. 그 걸음 끝엔 무엇이 있는가.

[내 첫 소설과 마찬가지로 문학적 텍스트를 쓰기보다는 일어난 사건을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번엔 실패했다. 이야기가 자꾸 옆으로 새고 엉클어져서 엮어낼 수가 없었다. (p.32)]

우리는 크리스토프의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그와 구분되지 않는다. 책과 글자들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를 엮어낼 수 없다. 엮어지지 않는다. 나의 이야기인지, 쓰여진 각본의 일부인지, 잘못된 연출의 실패한 예행연습인지 알 수 없던 그와 함께 기억과 현실을 헤맨다. 초조함을 공유하고 함께 분노하고, 초연해진다.

[그냥 걷는 것, 계속해서 걷는 것, 정지하지 않고 정처 없이 걷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p. 131)]

운명을 알고 있다는 것은 기회일까 독일까. 내 과거의 행적을 쫓을 수 있다면 현재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과거를 안다는 것은 내가 그의 현재와 미래라는 것. 나는 추월당하지 않을, 전복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그것은 나인가, 혹은 내가 아닌가.

[그녀는 걷던 방향으로 계속 걷겠다고 했다. 자기는 한번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걸 정말 싫어한다고 했다. 나도 그렇소. 그냥 계속 걸읍시다. (P.164)]
[글을 쓸 땐 어떻게 만드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발견하느냐가 중요하지. 뭘 발견하느냐는 결코 미리 알 수가 없소. 그 책을 두번째 쓸 때 나는 첫번째 쓸 때와는 다른 것을 발견했소. 다른 가능성을 말이오. 그렇게 해서 이야기가 더 나아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소.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p.169)]

 

세상은 점점 더 안개 낀 듯 서로를 바라볼 수 없게 하지만 그럼에도 서로가 없으면 안 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자기 실존에 골몰하게 될 것이다. 결국 ‘내’가 모여 ‘우리’가 되므로.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란 걸 알고 있음에도 끝없이 묻고, 그렇게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며 살아내기. 뭘 발견하느냐는 결코 미리 알 수가 없으므로, 스스로 마주하기.

 

#페터슈탐 #세상의다정스러운무관심 #세상의다정스러운무관심_서평단 #문학과지성사

z****1 2023.10.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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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즐겁게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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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니 어떤 조급한 해방감이 들었다. 멋대로인 글을 감상이라고 적을 것만 같아서 걱정이 거세졌다. 세상 다정하고 반가운 제목의 이 책은 반백년쯤 살고 나서야 겨우 조금씩 보이는 삶의 진상을 일상의 기록처럼 보여주었다.   삶도 세상도 단정할 거라고 오래 믿었다. 몇 가지 수식이 품은 우주적 의미가 잘 해석되면 차근차근 올라가는 계단처럼 삶에 대한 설명도 가능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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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니 어떤 조급한 해방감이 들었다. 멋대로인 글을 감상이라고 적을 것만 같아서 걱정이 거세졌다. 세상 다정하고 반가운 제목의 이 책은 반백년쯤 살고 나서야 겨우 조금씩 보이는 삶의 진상을 일상의 기록처럼 보여주었다.

 

삶도 세상도 단정할 거라고 오래 믿었다. 몇 가지 수식이 품은 우주적 의미가 잘 해석되면 차근차근 올라가는 계단처럼 삶에 대한 설명도 가능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가장 낯설어진 건 인간 자체이다. 더 정확히는 뇌 기능에 좌절했다.

 

뇌과학 지식은 답답함과 갑갑함과 불가해함과 부조리... 모두를 흔한 가능성으로 포용하였고 그 당연한 수용에 나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알던 세상이 전혀 모르던 곳이 되고, 친밀한 존재들이 매순간 낯설어졌다.

 

나는 온통 혼란스러웠다. (...) 마침내 내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소. 참된 글을 쓰기로 말이오. (...) 지금 그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 내가 그랬던 것과 똑같이 시내를 헤매고 있을 거요.”

 

성장기에 배웠던 거의 모든 지식정보는 쓸모가 없어졌고, 최근엔 뇌가 없어도 인간보다 복잡한 수준의 학습이 가능하다는 걸 상자해파리를 통해 밝혀졌다. 신경 세포 1000개만 있으면 생존과 학습이 가능하다. 인간의 비효율성이라니.

 

이야기가 제공하는 미스터리 속에서 내가 즐겁게 혼란스러울 때, 20년의 간극을 두고 동일한 삶을 걸어가는 두 인물(혹은 아닐 수도)은 그 길을 가르는 다른 선택을 한다.

 

동일한 존재가 동일한 시공간을 점유할 수 없다면 모든 경험은 다르다는 물리학을 전공한 독자로서, 이런 편차는 필연이고 오류가 아니지만, 두 존재가 아니라면, 이 결정은 어떻게 문해되어야 할까.

 

삶도 사람도 잘 모르겠다고 항복하고 나니, 세상이 더 미로 같다. 마침 미니멀리즘이 유행했고, 나는 물건 대신 관계를 벗겨내고 쳐냈다. 그 마지막에 진실의 고갱이 같은 것이 나타날 거라 기대했을 것이다.

 

조급한 해방감으로 시작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신경은 더 팽팽하게 긴장했다. 실존을 묻는 질문은 어렵지 않은 적이 없고, 타자성을 통해 자신을 알아보는 인간은 늘 사랑의 방식을 택함으로써 모든 것은 더 복잡해지고 만다.

 

마지막의 반전이 마치 삶의 가장 지독한 오류 같았다. 혹은 사랑의 본질이란 늘 그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기확신을 확신하는 시간과 혼란의 시간이 교차하는 한 시절일 지도. 때로는 더욱 허망한 망상일지도.

 

지난 주 본 화재(?) 영화 <A fire>는 이 책처럼 내겐 혼동이었다. 계획과 이성과 논리와 서사를 대신하는 내가 속하지 않은 세대와 문화와 삶이었다. 불이 다 삼키기 전에 불구경을 그만 둬야 한다는 조바심에 몸이 들썩거렸다.

 

기성세대의 진정성은 정확성이 빠진 헛소리들이었을까. 그래서 지금 여기에 도착한 것인가. 붉어진 화면 속의 하늘을 느긋하게 보면서 불타고 있는 현실의 집을 생각했다. 사랑하는 이들이 가득한 그 집을. 현재가 되어버린 모든 과거를, 곧 미래가 될 달라지지 못할 현재를.

 

 

 

 

k****k 2023.10.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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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 _ 페터 슈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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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시간을 보내고 출판한 첫 책이 성공을 거둔 크리스토프는 고향 마을의 작은 서점에서 낭독회를 갖는다. 예정과 다르게 하룻밤 묵어가기로 하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늦은 밤에 호텔의 초인종을 눌러 야간도어맨을 불러낸다. 그런데 문을 열어주는 젊은 청년은 다름 아닌 크리스토프, 그 자신이었다.        이 소설, 뭐라 한마디로 단정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소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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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시간을 보내고 출판한 첫 책이 성공을 거둔 크리스토프는 고향 마을의 작은 서점에서 낭독회를 갖는다. 예정과 다르게 하룻밤 묵어가기로 하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늦은 밤에 호텔의 초인종을 눌러 야간도어맨을 불러낸다. 그런데 문을 열어주는 젊은 청년은 다름 아닌 크리스토프, 그 자신이었다. 

 

 


 


이 소설, 뭐라 한마디로 단정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소설은 크리스토프 관점에서 20년 전 연인 막달레나와 함께 했던 삶과 현재 크리스토프와 레나의 대화를 통해 같은 궤적의 삶을 살아가는 두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운명을 추적한다.  


감성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시종일관 미스터리한 여정으로 독자는 그들을 좇아 진실이 무엇인지 추리한다. 20년의 간극을 두고 똑같은 삶의 과정을 밟아가는 크리스토프와 크리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두 사람은 다른 선택을 한다. 레나와 크리스토프는 이것을 작은 오류 혹은 편차라고 말하지만, 먼 미래를 내다본다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차이였다. 자기확신과 혼란 사이에서 갈등하는 크리스토프. 크리스는 정말 크리스토프의 도플갱어일까, 아니면 크리스토프 상상의 산물일까? 


사실, 이 소설은 애틋한 사랑이야기이자 존재에 대한 텍스트다. 운명의 진실을 찾고자 레나와 대화하고, 과거를 회상하며, 20년 전을 되짚어 현재와의 차이를 추적하는 과정에 안에는 늘 막달레나가 있었다. 크리스토프가 알고 있는 막달레나와의 마지막, 하지만 현재 막달레나의 삶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 이 기가막힌 반전에서 화자 크리스토프도, 그를 좇던 독자도 존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기억의 오류인가, 아니면 그가 이때까지 사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일들은 그의 망상인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자신의 미래를 어느 누군가를 통해 엿본 적이 있었던가? 
소설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를 모순과 혼란의 구덩이에서 건져내지 않는다. 이러한 극적인 구성에도 정작 주인공 크리스토프는 담담하기만 하다. 마지막에 이르면 제목이 왜 '다정스러운 무관심'인지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 장章을 읽으면서 동시에 두 사람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나도 모르게 그들이 애잔해진다.


처음 읽은 작가였는데, 간결하지만 독자를 은근히 끌어들이는 문체다. 몇 작품 더 읽어봐야겠다.  

 

 

※ 출판사 지원도서

y******n 2023.09.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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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겁 많은 신이 성찰하는 모순적 세계.
"우리, 겁 많은 신이 성찰하는 모순적 세계." 내용보기
*문학과지성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무엇이 옳은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언제의, 누구의 이야기인가? 지난 삶에 겪었던 일인가? 알지도 만나지도 못한 사람을 향한 그리움인가? 작가는 작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독자에게 말을 건다. 내가 보는 것을 함께 보라고. 많은 경우 자신의 세계에 독자가 자리함을 전제하나... 그렇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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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무엇이 옳은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언제의, 누구의 이야기인가? 지난 삶에 겪었던 일인가? 알지도 만나지도 못한 사람을 향한 그리움인가?

작가는 작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독자에게 말을 건다. 내가 보는 것을 함께 보라고. 많은 경우 자신의 세계에 독자가 자리함을 전제하나... 그렇지 않은 경우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영문 모르고 내던져진 독자만 남아버리고 마는 것이다.

잘못 쓰여진 작품이라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실패했는가? 그렇지 않다. 한순간에 내쫓기듯 현실로 돌아온 독자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보았는가. 그럼으로서 도리어 이야기의 세계에 남아버린다.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 떠나온 곳을 헤매게 된다. 그리하여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 책을 읽을 어딘가의 독자가 아무런 기대나 예상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명쾌한 마침표를 마음에서 지워버리기를 권한다. 가진 적 없던 것을 빼앗기는 것만 같은 초조함, 듣는 이와 말하는 이가 뒤섞이는 혼란함, 경계-없음에서 출발하는 사색을 충분히 음미하며 읽을 때, 비로소 작가가 말하는 바를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정답을 맞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작중 ‘나’의 존재가 그러하듯이. 앞서나간 자는 추월의 위험에 놓이게 된다. 나의 길의 나-아닌 자의 길로 덮어씌워질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p.91 당신은 언제고 항상 원래의 길로 다시 되돌아오게 돼 있소. 당신의 행위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오. 어떤 작품이 여러 연출가에 의해 연출될 경우와 마찬가지요. 무대가 달라지고 심지어 대사가 바뀌거나 축소되어도 줄거리는 변함없이 진행된다는 것이오.


선형적 세계에서 먼저 지나온 길, 알고 있다는 것은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설명은 곧 나-아님을 나의 체계로 끌어들이는, 포섭의 과정이다. 결국 안다는 것은 일종의 권력이 된다. 방향을 지시하는 자는 곧 아는 자다. 설령 그것이 착각일지라도.

p.95 처음엔 미칠 것 같았소. 내가 말했다. 난 그 친구에게 화가 났소. 어쩌면 질투였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다음 순간 그 친구가 가엾게 느껴지기 시작했소. 왜냐하면 그 친구는 어쩔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오. 그 친구의 일생은 미리 예정되어 있었지. 나에 의해 선취되어 있었단 말이오.

p.117 크리스에 대한 내 분노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가 내 삶을 그대로 베껴 삶으로써 마치 내 인생을 도둑질 해 가고, 내 삶을, 내 자신을 말살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돌연 나는 그의 죽음만이 나를 구원하고 다시 올바른 삶을 찾을 수 있게 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세계가 선형이 아니라면, 또는 우리가 인생이라는 무대에 자리만 바꿔 오를 뿐 각본은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나와 타자와 타자로서의 내가, 이곳과 저곳이, 현실과 상상이 안개처럼 뒤엉킬 때, 모든 요소들이 서로에 닿지 않을 수가 없을 때, 그것은 분명 흔적을 남긴다.

답이 없는 질문처럼 시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읽고 혼란스러울 독자에게 다시금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세계는 객관적인가? 모든 것은 유일하고 인생은 연극일 따름인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삶을 살아낼 수 있는가? 홀로 숨지듯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에 만족해야 하는가?

그 모든 질문은 하나로 수렴된다. 우리, 겁 많고 초라한 신은 묻는다. 존재란 무엇인가.

p.80 나는 오후 내내 당신을 미행했소. 최소한 몇 시간만이라도 내가 다시 젊어져서 내 인생에 변화를 줄 수 있다면, 하는 환상 속에서 살고 싶었소.

p.96 선생님이 범한 오류를 수정하고, 우리의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싶은 유혹 말이에요. 아니면 단지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시험해보고 싶은 호기심이랄까요. 겁이 나오. 내가 말했다. 뭐가 튀어나올지 누가 알겠소?
s*****7 2023.09.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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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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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은 친절하지 않은 조금은 혼란스러운 문체들로 주인공이 과거의 자신과 혼란스러워하며 이야기가 흘러간다.  사랑하는 여성과 닮은 여성, 그리고 자신과 닮은 그의 애인. 이들을 만나면서 내가 누구인지조차도 헷갈리는 순간이 온다.  제목이 다정스러운 무관심, 이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함이 소설의 분위기를 설명한다. 제목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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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은 친절하지 않은 조금은 혼란스러운 문체들로 주인공이 과거의 자신과 혼란스러워하며 이야기가 흘러간다. 

사랑하는 여성과 닮은 여성, 그리고 자신과 닮은 그의 애인. 이들을 만나면서 내가 누구인지조차도 헷갈리는 순간이 온다. 

제목이 다정스러운 무관심, 이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함이 소설의 분위기를 설명한다. 제목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등장하는 주인공 뫼르소가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었다." 의 한 구절을 차용하듯이, 작가 자체가 카뮈의 작품이 떠오르게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혼란스러움이 찾아온다. 소설이 친절하게 기승전결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생각이 난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과거의 내가 나인가, 지금의 내가 나인가, 미래의 내가 나인가. 이런 재미있는 고민을 하게 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d*****n 2023.09.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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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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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이 길어질수록 대답도 길어질 확률이 올라간다. 옆길로 셀 확률도 덩달아 올라가지만, 아무튼 생각의 뿌리는 넓고 깊어진다. 짧은 대답보단 휠씬 가치 있는 어떤 것이다.표지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죽음이라는 종착점과 대전제를 두고 보았을 때 자기 인생의 미스터리와 물음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 허무주의에 빠진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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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이 길어질수록 대답도 길어질 확률이 올라간다. 옆길로 셀 확률도 덩달아 올라가지만, 아무튼 생각의 뿌리는 넓고 깊어진다. 짧은 대답보단 휠씬 가치 있는 어떤 것이다.

표지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죽음이라는 종착점과 대전제를 두고 보았을 때 자기 인생의 미스터리와 물음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 허무주의에 빠진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저 한 개인의 삶은 타인에 의해 보존된다. 그 실존주의적 강렬한 욕구는 이 소설의 소재이자 전부이다.

/이 소설의 내용을 함축한 문장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나의 경험에 맞춰 생각할 무언가를 열어준 문구들이라 그냥 넘어가도 된다.

???????
아마도 글쓰기가 더 이상 필요한 일이 아니라 의무로 생각돼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31p

우리는 사람을 아름다움 때문에 사랑하는 건 잘못된 것이 아닌지를 놓고 토론했다. -66p

생명이 없어 생식 불능이라는 점에서 모두가 똑같아 보이는 생활용품들이 운집한 곳을 걷는 기분이 어쩐지 좀 으스스했다. -70p
k*******1 2023.10.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