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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잊지 말아요』를 읽고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건강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수많은 조건을 걸고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아무리 좋은 명예와 지위도,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진 사람도 건강이 뒷받침이 되지 못한다면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역시 나름대로 건강관리에 신경을 제대로 쓰고 관리를 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점이 너무 많다는 것이 어렵게 만든다. 특히 선천적으로 타고 났거나 아니면 후천적으로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는 각종 질병에 대해서도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수많은 종류의 질병이 존재하지만 역시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이 바로 치매 환자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환자도 힘이 들지만 그 환자 주변의 가족들과 친척, 친구들도 함께 힘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재 약 10 여년을 병실에 누워서 생활하는 큰 매형이 계신다. 큰 누님과 함께 세 명의 조카들의 간병 모습을 볼 때면 정말 안쓰럽지만 어떻게 해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런 질병인 것 같다. 이 책을 보면서, 바로 가까이에서 보고 있는 큰 매형을 통해서, 이런 부류의 환자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차분하게 하면서 그 투병과정과 함께 마지막 이별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보는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 인간의 목숨은 정해져 있다고는 하지만 얼마든지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바탕과 용기가 주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런 기회에 다시 한 번 자신과 자신의 가족 등에 대해서 건강을 점검해보는 시간을 통해서 건강한 몸을 갖기 위한 새로운 출발의 계기를 가졌으면 어떨까 하는 생가도 해보았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둘러싼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서 저자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자라오면서 어머니와 맺게 된 여러 관계, 가족들의 소중함,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보면서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하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잊을 수가 없다. 특히도 어떤 누구에게도 다가올 수 있는 것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려본다. 그 당시에는 정말 힘든 삶이었지만 일일이 챙겨드리지 못한 불효한 마음을 이제는 되갚을 수가 없다. 아마 저 세상에서 우리들이 더 열심히 생활할 수 있도록 열심히 기원하고 있는 부모님을 떠올려본다. 가족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말 아름다운 죽음의 결말로 이어지는 것이 우리 인간의 한 단면이라는 생각이다. 그 어떤 병이든지 역시 우리 인간들이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아들이 써내려간 1800일의 이별노트를 통해서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와 가족 간의 인간의 본연적인 모습을 볼 수가 있어 내 자신 또한 갑자기 성숙한 기분이 든다. 앞으로 남은 나의 생도 더 건강함을 유지하면서 베푸는 삶을 통해서 더욱 더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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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빅토르 위고(149쪽)
나는 감정에 북받쳐 엄마를 얼싸안았다. "엄마, 저는 엄마를 정말로 사랑해요!" "어째서?" 엄마는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내 엄마니까요." "그렇지." 그러고 나서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건 아주 멋진 일이구나."(284쪽)
예순아홉 살까지 외국인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치며, 수업을 할 때 일반적인 교본 대신 자신만의 특별한 교재를 사용하여 명성이 높았던 엄마. 영어와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고,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능력도 상당했으며, 폴란드어와 아랍어까지 구사하여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 언어 천재로 통했던 엄마. 명석하고 활기에 넘치며, 시사적인 논쟁과 유머를 즐기던 그런 엄마가 어느날부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아들이 좋아하는 밀크 라이스 푸딩은 정체불명의 소금범벅 죽이 되어버린다. '엄마는 실패한 밀크 라이스 푸딩을 화장실로 가져가 모두 쏟아버렸다. 화장실의 물 내려가는 소리도 엄마의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완전히 뒤덮지는 못했다.'(77쪽)
여러 해 동안 의사들은 엄마가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더니, 갑자기 엄마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기에는 병이 너무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무슨 말이, 어떤 조언이 도움이 되는 것인지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한 상황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상상해본다. 어느 날, 나의 부모님에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마음으로 견딜 수 있을까? 다른 어떤 질병들보다 알츠하이머를 상상하는 일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무섭다. 생각할수록 너무나 잔인한 병이다. 병에 걸린 사람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깊은 슬픔을 받는 일이기 때문에. 특히 사랑하던 이의 기억이 바래져가는 것을 무력히 지켜봐야만 하는 가족의 고통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노인 요양병원에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가 치매에 걸린 노인분들을 만났을 때의 느낌을 기억한다. 처음에는 종종 방문하던 가족들의 방문이 뜸해지고 몇 년이 흐르면 아예 발길이 끊어져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자신 속에 있는 기억을 잃어가고, 차차 가족들의 기억으로부터도 잊혀지는, 그런 텅 빈 것 같은 삶을 그냥 이어가고 계시는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5년이라는 짧지 않은 투병 기간 동안 엄마의 곁에서 그 고통을 함께 하려 끊임없이 노력했던 지베킹 가족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기억을 잃어가고, 점차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사라져가는 엄마와 함께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엄마의 상태가 점차 악화되어 갈수록 여러가지 의사결정을 내리는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하고, 때론 서로 갈등하고 상처주기도 하고... 전쟁같은 상황이다. 고된 간병 생활에 아버지도 아들도 모두 지쳤다. 하지만 그들은 엄마의 곁을 지키는 것을, 가능한 무언가를 엄마와 함께 하는 것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 하나는, 삼키는 법을 잊어버려서 자꾸 흡인을 일으켜 위험에 빠지는 엄마에게 위관삽입수술을 하기로 했다가 그 결정을 취소하기로 한 것었다. 병원 의사들도 위관 삽입을 권했고, 만약 내가 아들이었다해도 엄마가 굶어죽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결정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아들이 포괄적으로 그 수술에 대한 자료를 찾고 공부를 하고 자문을 구하면서, 그 수술은 폐렴의 가능성을 높이며 수명을 오히려 단축시킬 수 있는 논란의 소지가 많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토록 괴로워하고 고민하다 간신히 내린 수술 결정을 다시 힘겹게 뒤엎는 과정을 읽으며, 치매 환자 가족들이 부딪치고 있을 막막한 현실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사랑하는 이의 '죽을 권리'에 대해, 혹은 그 이가 계속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족의 의무인가에 대해, 그들은 수백 번 수천 번을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할 것이다. 얼마나 막막하고 고통스러울까.
그러나 아들이 써내려간 1800여 일의 이 기록은, 슬픔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절망과 아픔 속에서도 수많은 순간들은 보석처럼 빛난다. 남편은 아픈 아내를 돌보며 정원을 가꾸고 언제나 꽃을 가져다준다. 한 시간 반 동안 엄마에게 겨우 먹인 한 스푼의 파이에도 온 가족은 말할 수 없이 기뻐한다. 아들은 엄마가 들려줬던 수많은 책과 이야기들, 엄마와 함께 했던 연극 연습을 떠올리며 위로받고 힘을 얻는다. 끈기있게 엄마를 찾으러 온 옛 친구는, 엄마의 애정 가득한 작별 의식에 감동한다. 모두가 함께 모인 저녁식사 자리, 가족은 레드와인을 면봉에 조금 묻혀 엄마의 혀에 가볍게 두드려준다. 젊었던 시절, 아내의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했던 남편은 숨을 깊이 내쉬고는 말한다. "사실 난 치매에 고마워하고 있어. 사랑을 새로 알게 되었고, 누군가가 그 자리에 있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깨닫게 되었으니까."(307쪽)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가하게 해 준 이야기. 그리고 '누군가가 그 자리에 있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를 늦기 전에 깨달으라고, 그리고 그 좋은 것에 감사하고 후회없이 사는 법을 알게 해 준 이야기. 오래 가슴 속에 남을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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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다비트 지베킹이 엄마가 치매를 겪기 시작한 때부터 투병의 기간을 거쳐 영면에 들기까지 5년간, 엄마와 가족의 마지막 시간을 담은 기록 나를 잊지말아요..
“그런데 넌 누구니?” “엄마, 아들이에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한창 일하며 부모님 집에 자주 들르지도 못하던 30대 중반에 엄마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눈감도 만들던 익숙한 맛의 엄마표 라자냐도 엉망이 된채 식탁에 나온다. 세계 유명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세상을 받기 시작한 그때에...
저자의 엄마처럼, 아니 그보다 더 빨리 치매라는 병에 걸린 우리 엄마, 한때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음식솜씨가 좋았던 울엄마- 단지 아빠의 상실감으로 인해 귀찮아져서 음식을 못하시는줄 알았는데... 점점 엄마는 요일을 잊어버리고 몇일후의 일을 그다음날인줄 알고 착각하고 잘 찾아오시던 저희 집을 몇 번이곤 헤메였다. 엄마가 치매인걸 안때가 참 무심하게도 내가 둘째 아이를 낳는날이였다. 하지만 그와중에도 다행인건 우리엄마가 우리의 기억은 놓지 않고있다는거...
작가는 엄마의 상태가 하루가 멀다하고 악화되는것을 보며 엄마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엄마를 집중적으로 돌보면서 일도 할수 있는...엄마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를 영화로 직접 만든다. 서로 사는게 바빠서 자주 만나지도 못하던 가족이 엄마로 인해 한마음이 되고, 아버지가 자신의 아내를 위해 정원을 가꾸고 묵묵히 곁을 지킨다.
한편으로는 돌아가신 친정아빠가 더그리워진다. 아마도 아빠가 아프지 않았다면, 엄마는 치매라는 몹쓸병에 걸리지 않았을테고 몹쓸병에 걸렸다고 해도 지금처럼 생활하시지 않아도 될것 같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생활을 할수 있었을지도...
나를 잊지말아요는 가족과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남은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준비해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게 하고 치매환자들의 어떠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 이책을 통해서 공감하고, 치매가족을 두고있다면 읽어보면 좋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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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로 이 책은 시작된다. 저자 다비트 지베킹씨가 실제 자신의 어머니를 기록한 책으로 어머니가 치매를 겪기 시작한 때부터 투병의 기간 5년간을 담은 기록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책과 함께 영화도 제작하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치매라는 병은 나에게 멀리 있는 병이라고만 생각해왔다. 치매의 발병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겠어. 라고 치부해왔었는데, 그것이 꽤나 심각한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내 일이 아니니 방관해왔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치매라는 질병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을만큼 많은 사람들이 걸리고 있고, 심각해 지고 있다. 나의 엄마도 이런 말씀을 하신적이 있으셨다. 치매에 걸리게 된다면.. 그게 가장 걱정이라고.
정치와 경제를 논하며 신랄한 독설을 내뱉고, 재치있고 박식한 여인이었던 한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과 가족들을 몰라보게 되었고,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되며, 음식물 섭취가 어렵게 되었다. 조금씩 조금씩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한 지베킹의 어머니는 결국 치매라는 병명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던 초기에는 가족들이 치매라고 생각했었지만 병원에서는 그녀에게 치매가 아니라고만 했고, 어머니가 심각해지고 나서야 치매라는 병명을 안겨주었다.
그녀가 조금씩 기억을 잃기 시작하고, 뭔가를 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가족들은 그녀의 가장 가까운곳에서 어머니를 보호하게 된다. 사실 책에서도 한명의 의사가 가족들에게 말하기도 했지만, 가정에서 한 사람이 이렇게 병에 걸리게 된 후 끝까지 돌보는 것이 참 어려운데, 지베킹과 그의 가족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으며, 작은 처치에도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것은 병원보다는 가족. 그리고 집을 우선시 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우리는 얼마나 병원. 의사에 의존하는지? 어머니의 마지막을 집에서 보내게 했을때 그 따뜻함이 나에게 까지 느껴져서 눈물나도록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어머니가 치매를 겪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기간동안 아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1800일간의 이별일기이지만, 감동적인것은 뒤로하고, 이 책은 치매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가족으로 두신 분들이 읽으면 참 많은 위로와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이었다. 그리고 치매에 대한 질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 플러스가 될 것 같다. 그래서 그분들께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이다. 아울러 이 작가분의 어머니를 찍었다는 그 영화도 기회가 된다면 찾아서 꼭 보고 싶다. 그녀의 마지막의 마르고 아픈 모습이지만 아름다웠다는 그 모습을 영상으로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기억의 가치가 전혀 달라져. 젊은 시절엔 끊임없이 미래에 대해서만 생각하는데, 언젠가 그 생각의 방향이 정반대로 향하게 되고, 뒤를 돌아보게 되는 거지. 사람이라면 꼭 그렇게 되어야 하고, 그렇지 못한다면 인생은 정말 무익해지는 거야!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노년에야 비로소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이가 많은 거지.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어. 그렇게 무로 사라지지만, 그들은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는 거야. (p.142)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신 혼자 있을 때도 근사하게 시간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른 이들이 떠나고 없을 때나, 우연히 혼자 있을 때 갖게 된 시간이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자신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아껴둔 시간이어야 합니다.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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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엄마는 활기 넘쳤다. 제법 여러 개의 모임에도 참여했는데, 그 중에는 고상한 당신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모임도 있었다. 나이를 들고 흰 머리가 늘어만 가는 순간에도 엄마만큼은 영원히 곁에 머물 줄로만 믿었다. 그러나 모두가 피할 수 없는 게 죽음이었다. 몇몇 종교는 사후 세계를 이야기한다. 조금의 위안을 얻을 순 있겠지만 아무도 그 세계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기에 유한함으로부터 비롯된 불안감은 언제나 우릴 괴롭힌다. 내 자신이 소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는 사실 역시 괴롭다. 언젠가는 겪어야 한다지만 부디 지금은 아니길. 저자 역시도 그랬을 것이다. 대개의 부모가 그러하듯 저자의 부모도 그가 특별한 어른으로 성장하길 기도했을 것이다. 그래도 법관 아닌 영호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겠다는 결심을 드러냈을 때 부모는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특히 엄마는 그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고마움은 잠시, 스무 살이 넘었음에도 부모의 둥지에 머무는 것에 대해 아마도 그는 답답함을 느꼈지 싶다. 대학에 합격해 비로소 부모의 집을 떠나게 됐을 때의 해방감이란. 자녀가 떠난 후 부모가 겪는다는 빈 둥지 증후군을 고려하기에 그는 아직 어렸다. 그의 독립은 부모에게 있어 곧 내리막이었다. 자전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외할머니를 치매로 잃은 경험이 있다고는 하나 아무도 치매의 위험성을 고려하며 살진 않았다. 수술 직후 나타나기 시작한 건망증과 유사한 증세는 적어도 처음에는 미약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 정도가 되어가는 와중에도 치매로 확진을 받는 데엔 실패했다. 그것은 어쩌면 끝끝내 놓기 싫었던 자존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일상생활에서의 흐트러짐과 달리 의사 앞에선 당신은 꼿꼿함을 잃지 않았다. 치매를 진단하기 위한 모든 문항을 그녀는 너무도 쉽게 풀어내고는 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것이 끝난 후에 하는 후회는 소용없다. 치매는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원상태로 되돌릴 순 없다고도 알려져 있다. 끝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은 1800일이나 됐다. 일상은 일상이 아니었고, 현실로부터 달아나고픈 마음도 강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매순간 이어졌다. 차갑고도 낯선 병실에 엄마를 두지 않겠다는 다짐이 최악의 결과를 낳은 건 아닌지를 물었다. 연명 치료는 원치 않는다고 했지만 그게 정말 엄마가 바라던 바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일었다. 나 아닌 누군가가 중대한 결정을 대신 내려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달리기도 했다. 아직 주변에 치매나 기타 중병으로 고생하는 이가 없어서 끔찍함의 깊이를 헤아리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짐작은 가능했다. 초점 없는 두 눈을 바라보며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여야 하는 순간은 상상만으로도 괴로웠다. 나는 상상이었지만 저자에겐 현실이었다. 그는 제 직업에 기대어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무엇보다도 훌륭한 다큐멘터리에는 엄마의 마지막 순간이 고스란히 담겼다. 어디까지 촬영을 허해야 할지 고민이 컸을 것이다. 타인에게 내보인다는 전제만을 고려했더라면 망설임이 컸을 것이다. 기록은 그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머지않은 훗날 다시는 소중한 이를 안을 수 없게 됐을 때를 위한. 생각이 많아졌다. 기억을 잃는 아픔으로부터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지만 치매는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만일 우리에게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내 주변에 치매로 고통 받는 이가 있다면?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상대를 기억하고 싶은 욕심을 이해한다. 나 같아도 쉬이 상대에게 다가갈 수 없을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아량 역시 쉽진 않을 것이다. 왜 살아있는 모든 것은 늙고 병들고 죽어야만 하는지를 한탄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반대되는 내용도 보였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가족을 곧 구속으로 해석하는 분이셨다. 배려나 희생과는 멀었던 그 분께서 당신 배우자의 치매가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비로소 사랑한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는 그에게 “너무 늦었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변한 건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아들 역시 한 번도 의문을 품어본 적 없는 어머니의 젊은 시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짧았으나 나치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격동의 시간을 온몸으로 이겨낸 어머니. 인생의 모든 순간은 그렇게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그래서 인생은 위대한 것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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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런 류의 에세이는 읽고 싶지 않았다. 감성적일것만 같은 내용이 담겨있는, 그런데 왠지 그 내용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저자와 저자의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그가 어떻게 어머니의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내 어머니의 죽음이 두려워 회피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요즘들어 자꾸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시면서 내가 없으면...으로 시작하여 생활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늘어놓으시는 어머니의 말씀에 귀기울이기보다는 오히려 어깃장을 부리며 들은척도 하지 않는 나의 모습은 그 모든 것을 부인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이 아니라 분명 언젠가는 내게 닥쳐 올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준비해야겠다는 의무감처럼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런데 이 책은 선물처럼 다가왔다. 괜히 감동을 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담담하게 다큐 3일을 바라보듯 어머니의 삶과 일상이 펼쳐지면서 병의 진행과정과 생활의 변화가 담겨있는 글을 읽고 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눈물을 흘리게 되어버렸다. 아마도 약간의 치매 증상을 보이다 병원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라서일수도 있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다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아버지 손을 놨는데 그 사이에 아버지가 가셨다면서 서럽게 울던 언니에게 조금이라도 맘 아프지 않게 가고 싶어서 그때 가셨을거라는 위로를 건네지 못해서일수도 있고, 머잖아 내가 없으면 국 끓일때는 어찌해야하고 저 안쪽 장농에는 뭐가 담겨있고..라는 말씀을 잔소리처럼 늘어놓는 어머니가 정말 머잖아 돌아가실 것만 같은 슬픔이 치올라와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이제 정말 오랜 시간이 남지 않은 우리의 인생에서 가족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의 소중함이라는 것이다.
치매 증상을 보이며 아들에게 '너는 누구니?'라고 묻는 어머니의 모습을 무섭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게 그저 그렇게 당연한 것처럼 표현하는 듯 보이는 글에 오히려 더 위안이 되고 가족의 추억과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지적이고 똑똑하던 어머니가 점차 자신의 기억을 잃어가면서 일상생활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온갖 메모를 적어놓고 상태가 좋아졌다가 나빠졌다를 반복하는데 그 모든 과정을 가족들은 함께 이겨내려고 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라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도 어머니의 의사를 존중해 연명치료와 수술에 대한 결정을 가족이 심사숙고하는 모습은 진정으로 '살아있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기억의 가치가 전혀 달라져. 젊은 시절엔 끊임없이 미래에 대해서만 생각하는데, 언젠가 그 생각의 방향이 정반대로 향하게 되고, 뒤를 돌아보게 되는거지. 사람이라면 꼭 그렇게 되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인생은 정말 무익해지는거야!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노년에야 비로소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이가 많은거지.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어. 그렇게 무無로 사라지지만, 그들은 기억속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는거야"(142)
얼마전 지인이 세상을 떠났다. 초등학생때 뇌종양 수술을 받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처럼 살아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데 야속하게도 이제 겨우 스물을 넘기고 다시 재발한 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모든 물리적인 치료를 중단하고 약물투여뿐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의료조치도 다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편안히 떠날 수 있도록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되었을 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손을 잡고 기도를 하며 마음을 전하고 있을 때 내내 감고 있던 눈을 떠 주었다. 그 눈망울이 얼마나 맑던지. 몇년 전 차마 항암치료 때문에 병색이 완연한 환자의 모습으로 대하는 것이 두려워 친구와의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던 기억에 그 모습은 더 기억에 남는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대한 경험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타인의 죽음에 직면하는 슬픔과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강한 유대감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그것은 공감하면서 위로하고 더 큰 위로를 받는 마음의 평온을 선물받는 것과 같다. 어머니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아들의 기나긴 시간에 대한 기록은 그래서 좋을수밖에 없다. 나는 여전히 어머니가 자꾸만 당신의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씀을 하실때마다 불안감에 휩싸여 밤잠을 설치고 있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시간동안 더 좋은 추억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어 다행임을 위안삼는다.
"기억이란 인간에게서 몰아낼 수 없는 유일한 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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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알츠하이머병, 나이듦에 있어서 가장 피하고 싶은 병일 것이다. 얼마 전 뉴스 기사에서 본 바로는 미국 조지타운대 연구팀이 알츠하이머병을 간단한 혈액 검사로 조기 진단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발견했다고는 하지만 실용화되기 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가장 공포스러운 병이라고 할 수 있는 치매, 삶을 마무리하는 환자 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고통스러운 날들의 연속이 될 수 밖에 없는 병이 치매라고 할 수 있다. 점점 지워져 가는 기억, 사그라드는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 치는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는 이미 책으로 많이 출간되었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치매에 걸린 환자와 그 가족이야기인데, 앞서 읽었던 치매 환자에 관한 이야기와 여러 면에서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다른 이야기이기도 하다. 69살이 될 때까지 어학원에서 외국인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칠 정도로 지적이면서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엄마. 엄마는 20 년 전에 뇌출혈로 쓰러진 적이 있고, 그때에 기억상실증을 겪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곧 회복된다. 그리고 2006년 고관절 수술을 받은 후에 통과증후군으로 극심한 혼란 증세가 오면서 기억력이 약화된다. 그 시작은 아들의 친구와 다른 사람의 상황을 착각하는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엄마는 그 이전부터 늘 불안했다. 외할머니가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기에 엄마 자신도 알츠하이머에 걸릴까 두려움을 갖게 된다. 대학교수인 아버지의 은퇴식 후에 엄마의 기억력을 조금씩 사라져 가면서 엄마는 요리에 의욕이 없어진다. 그리고 엄마 주변의 여기 저기에는 엄마가 잊지 않으려고 써 놓은 메모들이 어지럽게 붙어있다. 그 메모는 자꾸 자꾸 그 숫자가 늘어난다. 어느날 집을 찾아간 아들 다비트 지베킹은 엄마가 만든 '밀크 라이스 푸딩'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건 '밀크 라이스 푸딩'이라고 할 수 없는 음식이었기에.... 그 때부터 '엄마표 맛있는 요리는 영원히 끝난다'. 치매가 걸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달려 오던 엄마는 그 이전부터 자신의 기억력이 사라져 가는 것이 불안하여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지만 그때마다 결과는 '특이사항은 없으며 다만 우울증이 있는 것이 정신적 혼란의 원인'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그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아무래도 이상하여 다시 명성의 알츠하이머 전문 의사를 찾아가게 되는데, 그때에도 '정보를 유지하는데 분명 문제는 있으나 경도인지 장애'라는 진단과 함께 " 지베킴씨, 치매에 대한 생각은 일단 떨쳐 버리세요! 일년 뒤에 다시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 " (p. 95) 물론, 엄마의 치매 진단이 늦게 나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치료가 늦어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아직까지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엄마는 엄마대로 치매의 불안감에 사로잡혀서 그 이전부터 메모를 하는 등의 많은 노력을 했다. 치매란 몇 년 동안에 걸쳐서 마치 저속촬영처럼 능력을 하나씩 상실해 가는 것이기에 '난파되어가는 배'와 같다고 표현할 수 있다.
치매의 의학적 진단을 보면, 기억력 약화와 함께 방향 감각에 이상이 나타나고 일상적인 수행능력에 제약이 생긴다. 엄마의 경우를 보아도 일시적인 의식 상실, 감소된 미각, 방향감각 상실, 단어 사용의 어려움 등을 겪게 된다.
이 책의 첫 chapter는 '그런데 너는 누구니?' 이다. 어느날 엄마가 이 책의 저자를 알아 보지 못하고 한 말이다. 청천벽력!! 만약 내가 엄마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내 머리속은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나를 잊지 말아요>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다비트 지베킴'이 엄마가 치매을 겪기 시작한 때부터 투병기간을 거쳐서 죽음에 이르기 까지 1800 일의 엄마와 아들,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실화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엄마가 치매를 앓고 있을 때 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장편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2012년 스위스 국제 영화제 비평가 대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의 어머니 그레텔>이라는 제목으로 제10회 EBS 국제 다큐 영화제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엄마의 사라져 가는 기억들, 그리고 치매가 상당부분 진행된 상태에서 발병되는 치명적인 합병증에 대응하는 태도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치매 뿐만 아니라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경우에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한 연명치료에 대한 가족의 견해도 실려 있다. 독일에서는 환자가 자발적으로 음식을 더 이상 섭취할 수 없게 되면 생명 연장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리고 내 가족인 경우에 우린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삶의 날들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내 가족을 놓을 수 없는 심정,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도 버릴 수 없는 가족들의 마음. "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고 싶어 - 가족의 죽음을 허락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 " (p.264) " 삶의 동반자는 죽음의 동반자, 혹은 죽음을 허락할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일까? " (p. 269) 사랑하는 가족과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게 될 경우에 이런 물음을 자신들에게 던져야 할 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그 어떤 병 보다도 힘든 투병생활을 하게 되는 치매 환자, 환자를 보살피고 돌보아야 하는 가족, 그리고 마지막 이별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차분하게 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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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이는 잊혀진 사람이라고 한다. 잊혀진 존재가 된다. 말 만으로도 무섭고 외로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가장 무서운 질병이 바로 '치매'다. 일상의 불편을 넘어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으로 여겨지니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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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내가 지켜본 가족의 죽음은 놀라울 만큼 고요했고 깔끔했다. 비통함이라고는 끼어들 여지도 없이 완벽해 보이는 평화 그 자체였다. 돌아가셨다, 라고 어른들은 그저 나에게 통보해 주었다. 주무신다, 라고 말하듯이 심상한 어투였다. 아이고 아이고 하던 곡소리도 그래서 연극적으로 느껴졌다. 눈물 없이 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으니까. 감정 표현에 서투른 폐쇄적인 집안 분위기는 나에게 감정을 내비치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암묵적으로 가르쳤다. 오래도록 순수한 감정의 교류가 없으면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조차 모르게 되는 때가 온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당시 나는 부끄러움과 유사한 감정을 느꼈다. 나의 불행을, 슬픔을, 고독을 저들의 죽음이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것만 같았다. 할머니가 누운 기다란 땅에 작은 산처럼 흙이 덮이고 어른들의 커다란 신발들이 꽝꽝 흙을 다졌다. 두 사람의 죽음보다도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조각난 이미지들이다. 땅을 파고 자신의 슬픔을 휙 내던지고 흙을 덮고 오랫동안 꾹꾹꾹 다지던 그때 그 어른들의 고독에서 나는 강한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내 옆의 사람을 발견하기 위해서 멀리 가야 할 때가 많다. (하이미토 폰 도데러 Heimito von Doderer,1896~1966)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의 투병부터 임종 과정을 담은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죽음을 떠올렸다. 단단해 보이던 작은 봉분들이 거짓말처럼 허물어지고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매장했던 감정들이 깨어났다. 당시엔 감히 입어보지 못했던 외투를 껴입는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목을 넣고 팔을 끼워 본다.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울음이 터져나왔다. 망각은 살아서 겪는 죽음이다. 기억은 '되살아나는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이 파괴되면, 그러니까 뇌기능이 소진되면 그 사람 전체가 소진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위쪽에 있는 무화과 나뭇가지에서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을 떼어내버렸다. (142쪽)
기억을 잃어가는 병, 치매를 앓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안다. 치매를 앓던 할머니는 집에서 한참 떨어진 다른 동네나 근처 숲길을 헤매고 다녔다. 마루에 앉은 할머니를 두고 나선 등굣길에서 방향을 바꿔 몇 번이나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난다. 숨을 고르고 대문을 열어젖히면 할머니의 텅 빈 얼굴이 거기 있었다. 할머니, 어디 가면 안 돼? 나 올 때까지 여기 있어야 해? 어린애 타이르듯 몇 번이나 당부하고 학교에 가던 기억. 병이 진행되면서 할머니는 심각한 어휘력 장애를 보였다. 우리들 이름은 물론 숟가락 젓가락 같은 단순한 단어들도 잊어버렸다. 뜻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말들을 떠듬떠듬 이어가는 할머니가 나는 무서워졌다. 내 이름도 존재도 잊어버린 할머니는 더 이상 내 할머니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넌 누구니?" "엄마 아들이에요." "내 아들이라고?" 엄마는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네, 당신이 제 엄마예요." "그러면 좋을 텐데." 엄마는 아쉬워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에요! 내가 엄마 자식이에요. 엄마가 날 낳았어요." "내가, 너를? 하지만 그러기엔 네가 너무 큰 것 같은데." "물론 처음에 태어났을 때는 아주 작았죠!" (15쪽) 어떤방식으로든 빠르게 죽어가는(잊어가는) 사람의 시간과 아직 건강한 사람들의 시간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전혀 다른 시간과 기억의 간극을 오가는 이들의 모습은 한 편의 부조리극을 연상시킨다. 한 가족에게 닥친 망각과 죽음은 어떤 면에선 축복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어머니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어머니의 (지난) 삶을 부각시키고 시간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하나의 배경이었던 어머니의 세세한 부분이 클로즈업된다. 갑자기 모든 것들이 다른 관점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고해성사하듯 회개하고 아들은 난생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어머니, 사랑해요. 어머니는 경악하며 묻는다. 당신들은 누구세요? 다음날 아침, 공원으로 산책을 갔을 때 엄마는 개구리가 우는 소리를 "옳아, 옳아"라고 해석했다. 호수에 떠다니는 오리들이 꽥꽥거리자 "모두 괜찮아"라고 통역해주기도 했다. 작은 나뭇잎이 길을 가로질러 바람에 흩날릴 때는 동작을 멈추고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오, 불쌍해라......" 우리는 그곳에서 떨어진 낙엽을 몇 개 주워모아 장식품처럼 엄마의 주머니에 끼워놓았다. 그러자 엄마는 비교적 푸른빛이 도는 낙엽을 보고는 낄낄 웃으며 말했다. "오, 새파랗게 어린 것이로군. 늙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아직 모를 거야." (147쪽) 뿌리가 뒤흔들린 식물이 노랗게 노랗게 시들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가족의 마음이 전해진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고 미움과 사랑이 공존하는 시간. 잃어버린 어머니의 기억과 시간은 이제 가족의 몫이 된다. 한 사람의 기억과 시간이 무질서하게, 난폭하게, 수줍게, 낯설게, 미친듯이 범람하고 뒤섞이고 부풀어오르고 빵 빵 터지기 시작한다. 기억을 소진한 어머니는 비가역적으로, 빠르게 죽음의 길로 나아간다.
갑작스럽게 닥친 상실의 예감, 이별 앞에서 다비트 가족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과 현실적인 고민들을 이 책은 충실하게 담고 있다. 서로 소원했던 가족들이 기억의 파편을 주워들고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어색하게 포옹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사랑이나 이별은 언제나 뜻밖에 찾아온다. 우리는 언제나 너무 이르거나 늦다. 그런데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바로 이때가 가장 적절한 때는 아닌가. 다비트 가족의 사랑과 이별을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라는 것. 안녕, 인사하고 보내줄 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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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중에서도 물론 막막한 치료비 때문에 힘든 것도 있지만,그 중에서도 치매는 특히 더 심하다. 치료비 뿐 아니라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치매 때문에 자신의 일에 지장을 받는 경우가 특히 많은 것이다. 여러 매체를 통해 치매로 고통받는 가족들의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환자 뿐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얼마나 큰 고통을 받는지는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가 있다. 더군다나 무척이나 건강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치매에 걸린다는 걸 생각한다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물론 우리나라의 일이 아니기에 처음에는 얼마나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읽기 전에 의심의 여지가 있었지만,5년 동안의 기록을 보면 딱딱하지 않게 소설의 구성으로 만들었고 여기에 우리가 그동안 봐왔던 치매의 기본적인 것부터 치매와 관련된 여러가지 문제들을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관련이 없는 우리들에게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여기에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었던 저자 다비트 지베킹의 실화와 기록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읽혔던 부분은 치매 환자의 생명 연장에 대한 부분이었다. 독일에서는 환자가 자발적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면 생명 연장을 하지 않는 게 법적으로 허용된다고 하는데,이것을 하게 된 이유도 가장 기본적인 인간 생활 중 하나인 음식 섭취를 잊어버리는 걸 막기 위한 수술로 인한 것에서 그 수술로 인한 위험과 치매로 인한 위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과정이 안타까우면서도 아이러니했다. 그리고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하는 많은 고민을 해보게 했던 부분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이 다른 영화감독보다도 때로 오래 걸리는 작업을 할 때가 많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중에 이 경험을 직접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었고 작년에 EBS를 통해 방송되었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보고 싶다. 위 내용으로만 본다면 슬플 것만 같지만,사실 이 책에는 그렇게 슬픈 내용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대체로 담담하게 쓴 것 같다. 책 안에서 대체로 큰 갈등도 많이 나오지 않는다. 치매로 고통받는 다른 가족들과는 조금은 다르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책 안에서 치매로 인해 고마움을 깨닫게 되었다는 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면 과연 이 가족이 정말로 치매로 고생하고 있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나도 오래 전에 심한 병에 걸려서 가족이 고생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그때를 생각해보면 정말로 이 책에서의 가족처럼 얼마나 살아있다는 게 고마운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2014/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