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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해 쓰는 작가 [외국소설-소망 없는 불행]
"자신에 대해 쓰는 작가 [외국소설-소망 없는 불행]" 내용보기
아직 이 작가의 글에 대해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 읽기는 읽었으나 술술 잘 읽히지는 않고, 그런데 쉽게 놓아버리게 내버려두지는 않고, 읽는 마음을 막 끌어당기는 것 같지는 않은데 슬쩍 붙잡고 있는 것 같고. 앞서 산문집을 읽은 느낌이 애매하게 좋아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노벨상도 받았다고 하니 제대로 볼까 하고 본 건데.  두 편이 실려 있다. '소망 없는 불행'은 엄마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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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 작가의 글에 대해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 읽기는 읽었으나 술술 잘 읽히지는 않고, 그런데 쉽게 놓아버리게 내버려두지는 않고, 읽는 마음을 막 끌어당기는 것 같지는 않은데 슬쩍 붙잡고 있는 것 같고. 앞서 산문집을 읽은 느낌이 애매하게 좋아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노벨상도 받았다고 하니 제대로 볼까 하고 본 건데.

 

두 편이 실려 있다. '소망 없는 불행'은 엄마에 대해서, '아이 이야기'는 아이에 대해서. 작가가 남자라는 편견을 버리려고 애를 썼으나 소용이 없었다. 읽는 내내 남자가, 남자로서, 남자이면서, 하는 조건을 잊을 수가 없었으니까. 아들이 보는 엄마, 아빠가 보는 딸, 여자인 나와는 같은 듯 달랐다. 그게 재미가 있었던가? 그건 또 아니었다. 재미라고 할 만한 성격은 아닌 다른 점이었으니. 그럼, 뭔가? 이걸 생각해 보는 재미가 특별했다고 해야겠다.

 

이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고 한다. 자신의 것만 쓴다고도 한다. 얼마만큼? 얼마나 사실과 가깝게? 아니면 얼마나 사실을 감추면서? 이 또한 어떤 작가에게는 숙명인 걸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하고 싶고 해야 하는 것으로? 그런데 이걸 마냥 담백하게 풀어 놓기에는 어쩐지 모자란 듯 여겨져서 쉽게 읽히지 않도록 까다로운 서술 방식을 택한 걸까? '나를 알고 싶은 사람은 이 계단만큼은 올라서야 내가 보일 것이오.' 하는 것처럼.

 

작가가 그려 놓은 그 시절 '엄마'의 생은 고달파 보였다.(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독일에서도 엄마들은 우리 사정이나 비슷했던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니, 엄마라기보다는 여자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글을 페미니즘과 연결지어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고. 독특하게 묘사하고 있기는 하다. 제 엄마의 이야기를 하면서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것도 대단해 보이고. 그게 또 작가의 장점이기도 개성이기도 하겠지만.

 

'아이'를 보는 눈은 '엄마'를 볼 때와 좀 다르다. 더 애틋하고 좀더 깊어 보인다. 아이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게 훨씬 정감 있게 느껴진다. 내 마음에 썩 들었던 부분이다. 아이를 이렇게 대하는 사람이라니, 기본적인 믿음이 들 정도로.(그랬는데 금방 간섭해 오는 외부 요건, 작가와 유고슬라비아와의 일화로) 아이를 이렇게 키우는 사람이 인종학살에 대해서는 그런 관점을 갖고 있다고? 아, 성가시다. 온전히 글을 글만으로 읽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자신에 대한 글만 쓰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 일에 대해 쓴 글이 있을까?  

 

모처럼 작가와 작품과 독자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구나. 작품은 어디까지 작품인가, 작가도 작품 안에 포함되는가, 독자로서는 작가와 작품을 어떻게 나누고 일치시키면서 보아야 하는가, 독자는 어떤 평가로 작가를 응원하거나 비판해야 하는가, 우리 삶을 더 가치 있고 풍요롭게 하는 데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 권 더 봐야겠다는 것. 

 

YES마니아 : 로얄 j***6 2019.12.08. 신고 공감 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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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더 자세히 보라 - 페터 한트케 『소망 없는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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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는 데뷔 때부터 반서사적 글쓰기를 추구했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체험을 전달하기 위해 전통적 서술 방식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실제 인물의 삶이 문학적 허구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면 불가피하다. 두 주인공 어머니와 아이를 위해서도. 물론 이 작업은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서 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자살과 아이의 탄생은 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절박한 욕망과 말문이 완
"소망을 더 자세히 보라 - 페터 한트케 『소망 없는 불행』" 내용보기

 



페터 한트케는 데뷔 때부터 반서사적 글쓰기를 추구했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체험을 전달하기 위해 전통적 서술 방식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실제 인물의 삶이 문학적 허구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면 불가피하다. 두 주인공 어머니와 아이를 위해서도. 물론 이 작업은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서 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자살과 아이의 탄생은 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절박한 욕망과 말문이 완전히 막히는 것’이 만나는 문학 욕구를 불러 일으켰다.



 


 ▒ 소망 없는 불행  ▒

 


*

글을 쓸 때는 난 반드시 옛날에 대해, 적어도 쓰고 있는 시간 동안은 지나가버린 일에 대해 쓴다. 늘 그렇듯이 난 문학적으로 대상에 몰두하며 나 자신을 회상하고, 문장을 만드는 기계로 피상화시키고 객관화시킨다. 나는 내 어머니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종교적이니 심리학적이니 사회학적인 꿈 해석 운운하며 이 흥미로운 자살 사건을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도 있을 어떤 낯선 인터뷰 기자보다는, 내가 그녀에 대해서, 또 그녀가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내 개인적인 관심 때문이다. 가령 무언가 할 일이 있으면 나는 기운을 얻는다. 마지막 이유는, 방식은 좀 다르겠지만 마치 인터뷰 기자처럼 이 자살을 하나의 사건으로 재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모든 이유들은 아주 임의적인 것들이고, 역시 임의적일 뿐인 다른 이유들로 대치될 수도 있다. 어쨌든 완전히 말문이 막혀버렸던 짧은 순간들과 그런 순간들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고 옛날부터 내게는 이런 욕망들이 글을 쓰게 하는 동기였다.


**

이렇게 한 인물을 추상화하고 형식화하는 데 위험한 점은 물론 그 추상화 및 형식화 작업이 독립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작 이야기되고 있는 그 인물이 잊히고 꿈속의 이미지들처럼 구절들과 문장들이 연쇄 작용을 일으켜 한 개인의 삶이 동기 이상의 어떤 것도 되지 못하는 문학적 의식(儀式)이 된다.

이 두 가지 위험들은 ㅡ 즉 일어난 것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위험과 한 인물이 시적 문장들 속으로 고통 없이 용해되어 버리는 위험 ㅡ 나의 글 쓰는 작업을 더디게 한다. 왜냐하면 문장을 쓸 때마다 나는 평형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건 물론 어떤 문학적 창작에나 다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특히 그러한데 그 이유는 사실들이 너무도 압도적이어서 무언가 허구로 생각해 낼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처음에는 사실들을 출발점으로 삼았고, 그다음에 그 사실들을 서술하는 형식들을 모색했다. 그런데 서술 형식들을 찾는 동안 어느 틈에 내가 사실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사실이 아니라 이미 써오던 서술 형식들, 즉 인간의 사회적 경험 속에 들어 있는 언어군을 출발점으로 삼는 새로운 접근 방법을 택했다. 그러고서 나는 이 서술 형식들에 들어맞는 사건들을 나의 어머니의 삶에서 추려냈다. 왜냐하면 이미 통용되는 대중의 언어를 가지고서 그녀의 삶에서 일어난 모든 사소한 사건들 중에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몇 사실을 골라내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나는 문장마다 여자의 전기에 흔히 쓰이는 보편화된 형식들과 나의 어머니가 살았던 삶의 특수성을 비교했다. 결국 그 둘을 비교했을 때 일치되는 것과 상치되는 것으로부터 실질적으로 글 쓰는 작업이 따라나오게 된다.



태어난 곳과 똑같은 곳에서 자살한 어머니. 가난한 시골 살림에서 여자아이로 태어난 어머니에게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가능성은 없었다. …(중략)… 그저 더위와 추위, 축축함과 건조함, 편안함과 불편함 사이의 변화만 있었을 뿐이었다.”

 


***

빨랫줄 위에 매달리는 물방울, 어둠 속에서 길을 가는 사람 앞으로 펄쩍 뛰어드는 두꺼비들, 모기들, 곤충들, 낮에도 날아다니는 나방들, 통나무 헛간의 널빤지들 속에 있는 벌레들과 지네들, 누구나 이런 것들에 길들여져야 했고 다른 도리가 없었다. 소망 없이 사는 게 어떤 식으로든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으며, 소망 없이 사는 걸 모두가 불행하게 생각했다. 다른 삶의 형태와 비교할 가능성은 없었다. 그렇다고 더 이상 욕망도 없었을까?

문제는 어머니가 갑자기 무언가에 대한 욕망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배우고 싶어 했다. 그건 그녀가 아이였을 때 무언가를 배우면서 자기 자신에 관해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건 사람들이 ‘난 나 자신을 느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건 최초로 가진 소망이었고, 그 소망을 끊임없이 말하다 보니 급기야는 고정 관념이 되어버렸다. 어머니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는 할아버지께 무엇인가 배우게 해달라고 ‘애걸복걸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할아버지껜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손짓 몇 번으로 거절당했고 그 이후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가출, 돈을 벌며 잠깐 누린 청춘의 맛, 전쟁, 유부남과의 첫사랑, 임신, 아이 때문에 한 다른 남자와의 결혼, 남편의 외도, 주정뱅이가 된 남편, 손찌검, 임신, 낙태, 누구에게도 흠 잡히지 않고 싶은 공허한 일상, 국경 탈출, 임신, 고향에서 똑같은 반복 …… “그녀는 성(性)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고, 일상의 사소함 속에 자신을 묻어버렸다.”

 


 

****

이 모든 것들은 다른 인간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타입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전쟁 전의 타입에서 전쟁 후의 타입으로, 시골 처녀에서 도시 여인으로 변화하는 과정이었다. 적절한 말로 표현하자면 크고, 날씬하고, 검은 머리를 한 도시 여자로 말이다.

그런 타입으로 묘사됨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의 내력에서 해방된 듯 느꼈다. 왜냐하면 이제 에로틱하게 바라보는 어떤 사람의 낯선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코 시민적으로 평온해질 가능성이 없었던 정서 생활은 겉으로는 여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모임의 시민적 체계를 서툴게 흉내 냄으로써 안정되어 갔다. 그 체계 속에선 ‘이러저러한 사람은 내 타입이지만 난 그의 타입이 아니야’, 혹은 ‘난 그의 타입이지만 그는 나의 타입이 아니야’, 혹은 ‘우린 서로 잘 맞아’라거나 ‘우린 서로 쳐다보는 것도 견딜 수 없어’라는 말들이나 상투적인 말들이 구속력 있는 규칙들로 간주되었기에 어떤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약간 주의를 기울이는 반응조차 모두 이 규칙들에서 벗어난 것이 되었다. 예를 들어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사실 그 사람은 내 타입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이런저런 유형(類型)에 따라 살면서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는 객관적 느낌을 가졌으며 자신의 출신이라든지, 비듬이 떨어져 괴롭다든지, 발에 땀이 난다든지 하는 개인적 특성이나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등 매일매일 반복되는 문제들 따위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다. 하나의 유형에 들어감으로써 개인은 부끄럽게 여겨졌던 외로움과 고독감으로부터 벗어났고 스스로를 망각했으며 비록 잠깐이긴 하지만 때로는 당당하고 떳떳한 존재가 되었다.

(중략)

그녀는 언제나 계산을 틀리게 했다. 집에서는 소시민적인 해결책조차도 그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단칸방에다 날마다 하는 빵 걱정,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나는 제스처와 억지 표정, 그리고 의사소통이라곤 김빠진 성행위밖에 하지 않는 동거인과의 생활 여건들이 시민적이랄 수 있기 이전의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삶에서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밖에서는 승리자 타입, 안에서는 약한 반쪽, 영원한 패배자였다. 그건 삶이 아니었다!

(중략)

그녀는 존재했고 성장해 갔지만 아무것도 되지 못했던 것이다. 


 

*****

사사로운 걱정, 무언가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갈증, 무언가 하고 싶은 욕망, 단 한 번뿐이라는 느낌, 먼 곳에 대한 동경, 성적 충동 등등 머릿속의 생각들이 어느 것 할 것 없이 역할이 뒤바뀐 듯한 전도된 세계와 함께 이런 의식 속으로 녹아들어가 버렸다. 결국 누구에게도 자기 자신이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유 의지에 따라 사는 것, 가령 평일에 산보를 간다든지, 두 번째로 사랑에 빠진다든지, 여자가 혼자 술집에서 과일주를 마신다든지 하는 등의 일은 말할 것도 없이 괴물이나 하는 짓이었다. 사람들은 기껏해야 노래를 같이 하자거나 춤을 추자고 요청할 때나 ‘자유 의지로’ 할 뿐이었다. 자기 자신의 내력과 감정을 속이기 위해 사람들은 말[馬]과 같은 가축들에 관해 말할 때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서먹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숫기가 없어졌고 거의 말을 하지 않거나 약간 정신이 돌아버려 집 안 여기저기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므로 이미 언급된 의식(儀式)에는 위안의 기능이 있다. 이 위안은 어떤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속으로 소멸되는 것이었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개인으로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에, 어쨌든 전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했던 것이다.


“기분 좋은 가난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완성된 궁핍”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 어머니에게 다른 삶은 오지 않았다. ‘소유권이란 구체화된 자유’라는 말처럼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는 자유, 자유의지는 비참함을 알려주는 공소장 같다. 참아낼 수는 있지만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가난 속에서 취미도, 오락도, 활동적인 공공생활도 없이 닥쳐오는 삶을 받아들였던 어머니는 병이 들자 ‘난 이제 인간도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난 나 자신과 얘길 한다. 그건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지’라고 한 말은 한트케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과 똑같다. 사실 이건 우리 모두의 속내 아닌가. 유언장에서 자살 선택에 대해 ‘행복하다’고 남겼지만 그도 우리도 진심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자살을 선택하는 상황이 행복할 수 있을까.


그는 “가능한 한 적합한 문장들로 기억에 접근해 가려고 노력함으로써 공포의 상태에서 작은 쾌감을 얻어내고, 공포의 쾌감에서 회상의 쾌감을 완성해 내는 것”으로 이 소설을 완성했다. 작가라면 누구나 부모에 대해 이런 글을 써보고 싶을 것이다. 이 작품을 에세이로 보든 소설로 보든 한트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에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고 끝맺음이었다.

 




 ▒  아이 이야기 ▒


*

소망한다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또한 소망하는 것에 시한(時限)을 두어야 한다는 의식도 가능하리라. 근데 그런 의식은 그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던 예전과는 다르게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소망이 있었다. 아이, 운명의 여인,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직업. 이 세 가지가 그에게 다 왔지만 그것은 하나의 상으로 모이지 않았다. 작가도 되었고 아이도 생겼지만 아내와의 불화는 그 때문에 더욱 커졌다. 아내와 별거 후 아이와 살게 된 그는 틀에 짜인 습관들로 가득했던 어머니의 시간을 조금 이해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

아이의 생활 리듬에 따라 흐르는 일상을 잔인하고도 무의미한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더 강도 높게 체험했다. 물건들은 무기처럼 비스듬하게, 악의를 품고 비현실적으로 놓여 있었다. 물건들 사이에는 무기 창고 속에 무기가 쟁여져 있는 것처럼 공기 한 점의 여지도 없었다. 그리고 그 안에 묶여 있는 자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고 그 혼란 속에서 어디를 보나 적대적인 무질서만이 있었다. 훨씬 나중 에야 비로소 그는 아이가 어질러놓은 잡동사니를 참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것이 아무렇게나, 심지어는 형편없이 흩어져 있는 듯 보이더라도 무질서 속의 질서를 깨닫고선 그 속에서 아이와 똑같이 편안하게 느끼는 것을 배웠다. 단지 자유로운 순간과 꾸준히 지켜봐 주는 것만이 필요했다.

(중략)

집에 묶여 있으면서도 거의 안정을 찾지 못하던 남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마침내 색깔과 형태에 대한 모든 감각과 사물 간의 거리와 등급에 대한 감각도 잃어버렸고, 시야는 흐려지고 불유쾌한 여명 속에 있는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아이는 여러 물건과 섞여 있어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물건처럼 돌아다녔다. 그것은 비현실적이었다. 비현실이란 상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는 광기와 구별되지 않는 야만이었다. 활기를 잃은 남자는 더 이상 자신을 제어할 수 없었고 불안감이 그의 의지를 더욱 빼앗아갔다. 


대작을 쓰고 싶다는 열망과 아이 양육 사이에서 그는 시종일관 고민에 휩싸였다. 자신의 재능과 업적을 위해 아이를 버린 아내를 그는 비난하지 않았던가. 그에게 아이는 ‘삶이 어떠해야 한다는 진리의 척도’였다. 처음에 그는 아이의 감독자나 상급 명령자처럼 대했지만 아이를 통해 무조건적인 신뢰감을 배웠고, 그가 비난해왔던 위대한 말들도 아이와 함께 하며 이해하게 되었다. 나중에 아내, 아이와 함께 피크닉도 가지만 그들은 끝내 ‘가족’이 되지 못했다.

 

 

어머니도, 그도, 그의 아이도 자신만의 소망이 있었을 테지만 그것은 다른 무엇에 의해 비밀처럼 덮인다. 우리가 가진 소망 때문에 불행하게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소망은 닥쳐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삶이 삶을 키우듯 소망이 소망을 키운다. 소망 없는 것이 불행이 아니라 우리가 소망이 끝났다고 매듭짓는 순간이 불행 아닐지. 소망을 더 자세히 보아야 하리라. 그가 아이를 보았듯.

 

 

g******i 2019.10.30.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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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날들의 기록) 소망 없는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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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 51세에 자살한 어머니의 이야기. 강의의 질문은: 어머니는 왜 자살하고 말았을까' 강의의 마지막 결론은 '여자는 언어가 없는 존재다'(....)"/40쪽   <조용한 날들의 기록>을 어떤식으로 읽어야지,하는 생각은 없었다.그러나..그럼에도 자연스럽게 시선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 될때마다 반가웠다. 소개 된 책을 한 권씩 리스트에 담아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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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 51세에 자살한 어머니의 이야기. 강의의 질문은: 어머니는 왜 자살하고 말았을까' 강의의 마지막 결론은 '여자는 언어가 없는 존재다'(....)"/40쪽

 


<조용한 날들의 기록>을 어떤식으로 읽어야지,하는 생각은 없었다.그러나..그럼에도 자연스럽게 시선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 될때마다 반가웠다. 소개 된 책을 한 권씩 리스트에 담아 놓았다가, 기회가 될 때마다 읽는 것으로, <조용한 날들의 기록>에 관한 기억을 간직해야지 하는 바람... 그러나 <소망 없는 불행>을 언급된 부분에서 냉큼, 읽고 싶어졌다. 노벨상을 받았으나, 내게 번번이 포기하게 만든 작가라서, 내심 오기도 발동했지만,<조용한 날들의 기록>에서 언급한 부분을 어떻게 나는 이해하게 될까 궁금했다."문학은 그녀에게 자신에 대해 생각하도록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58쪽 어머니의 자살이야기를 산문으로 남긴 글이라고 했다. 시작부터 눈치챌 수 있는 부분은 있었지만,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간 가장 구체적(?) 이유를 듣고 싶었다.(어쩔수 없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남기려 함을 고백하는 가운데, 허구와 사실에 관한 주제를  문학을 통해 예시로 설명하는 부분은 흥미로웠다.어머니가 살아온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들, 여성이 한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던 시대..그러나 스스로  여성도 사람이란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을 때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자괴감은..어머니를 짓누르는 무엇이었게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체험은,경험하지 않은 입장에서 함부로 말할수 없는 거니깐."체험에 대해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나는 다시금 지루해지고 갑자기 모든 것이 근거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그런데도 나는 때때로 이유도 없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의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일에 대해 무언가 언급하려 들면 화를 낸다(...)"/11쪽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최근에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보다 더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읽혀져도 될 만한 소설이라 생각했다. 작가는 어머니를 죽음으로 이끈 이유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싶었던 거라 이해했다. 최근 영화 '마더'를 주제로 한 방송을 보면서 왜 그녀의 이름은 오로지 '마더'로 밖에 불릴수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덕분에, 한트케의 소설 속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기분도 느껴졌다.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꿈이 좌절되었을 때...무얼 할 수 있을까? <소망 없는 불행> 덕분에 한트케의 소설은 모두 어렵다는 편견을 깰 수 있게 되었다. 가볍지 않은 주제임에도 길지 않은 분량이라 그런지 잘 읽혀져서 놀랄정도였다. 가끔 <이방인>의 뫼르소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머니의 자살에 대해 객관적 이유들을 조곤조곤 설명할수 없었던 뫼르소가 애처롭게 느껴져서... (그가 소환될 줄은 예상도 못했는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하기 보다 오로지 어머니의 시선으로 <소망 없는 불행>을 읽게 된다면 <조용한 날들의 기록>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에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 언어 없는 여자가 마지막으로 도착할 수 밖에 없는 곳은 어디일까"/41쪽 <조용한 날들의 기록> 

w*******i 2023.04.2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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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없는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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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트케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소망 없는 불행`과 `아이 이야기`가 그런 주제 의식에 부합하는 가장 전형적인 작품이다.    `소망 없는 불행`은 1971년 수면제를 다량으로 복용하고 자살한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 쓴 산문으로 어머니의 일생을 회상하면서 한 인간이 자아에 눈떠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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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트케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소망 없는 불행``아이 이야기`가 그런 주제 의식에 부합하는 가장 전형적인 작품이다.  

 `소망 없는 불행`1971년 수면제를 다량으로 복용하고 자살한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 쓴 산문으로 어머니의 일생을 회상하면서 한 인간이 자아에 눈떠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 불행했던 작가 자신의 이야기, 오스트리아의 역사 및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분모를 찾아볼 수 있는 여자의 일생까지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작가의 작업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잃고 감성적으로 몰입하려 하는 자신을 작가로서 엄격히 제어하며 글쓰기에 임하는 한트케의 작가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아이 이야기`는 작가가 연극 배우였던 첫번째 부인과 헤어진 후, 딸 아미나를 맡아 기른 경험을 토대로 하여 쓴 작품이다. 그는 파리와 독일의 여러 도시로 거주지를 옮겨다니며 남자로서 아이를 키우며 겪는 이야기들을 매우 담담하게 서술하였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러 의미에서 폐허로 가득 찬 자신의 어린 시절로 인해 가정 생활이라든가 가족 관계 등에 매우 부정적이었던 자신이 딸을 키우며 그것들의 소중함을 인식해 가고 마침내는 한 인간 속의 소우주까지도 발견하게 되는 과정이 이 작품에 담겨 있다. (옮긴이의 말에서)

k****6 2019.12.1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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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없는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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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 [소망 없는 불행]페터 한트케 책을 늘 읽어보고 싶었는데,민음사tv에서 소개한 내용을 보고 이 책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한동안 가족 이라는 키워드의 책을 자주 읽었더보니 사기가 더욱 좋았던 것 같다. 작가의 문체가 번역을 통해 잘 표현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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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 [소망 없는 불행]

페터 한트케 책을 늘 읽어보고 싶었는데,
민음사tv에서 소개한 내용을 보고 이 책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한동안 가족 이라는 키워드의 책을 자주 읽었더보니 사기가 더욱 좋았던 것 같다.

작가의 문체가 번역을 통해 잘 표현된 것 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y*********4 2026.02.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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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없는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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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놓은지는 오래인데 읽은건 얼마 전이에요 죽음에 대해서 담담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서술방식이 마음에 들었어요. 대게 죽음에 관한 책들은 우울해서 읽기 꺼려지는데 이 책은 그렇게까지 우울하지 않아서 두 번 읽어도 될 거같다는 생각이 든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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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놓은지는 오래인데 읽은건 얼마 전이에요 죽음에 대해서 담담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서술방식이 마음에 들었어요. 대게 죽음에 관한 책들은 우울해서 읽기 꺼려지는데 이 책은 그렇게까지 우울하지 않아서 두 번 읽어도 될 거같다는 생각이 든 책이었습니다 
t********9 2025.10.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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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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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출판사에서 출간 한 페터 한트케 작가님의 소망 없는 불행 - 세계문학전집 65 라는 작품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여서 슬픈 듯 하면서도 담담한 문체로 이야기를 하니까 오히려 슬픔이 배가 되고 여운이 더 크게 남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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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출판사에서 출간 한 페터 한트케 작가님의 소망 없는 불행 - 세계문학전집 65 라는 작품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여서 슬픈 듯 하면서도 담담한 문체로 이야기를 하니까 오히려 슬픔이 배가 되고 여운이 더 크게 남는 것 같습니다.
g*******1 2025.04.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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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덤해서 더 먹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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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래왔듯 어머니에 대한 애잔한 서사는 노래,시,광고,영화,소설등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그건 반칙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들에게 크던 작든 마음의 빚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도 그 룰을 꽤띃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어머니에.대한 이야기를 쓰되 최대한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건조하게 객관화시켜 한 인간으로 서술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완전히 숨겨질순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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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래왔듯 어머니에 대한 애잔한 서사는 노래,시,광고,영화,소설등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그건 반칙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들에게 크던 작든 마음의 빚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도 그 룰을 꽤띃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어머니에.대한 이야기를 쓰되 최대한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건조하게 객관화시켜 한 인간으로 서술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완전히 숨겨질순 없는 모양이다.

자식이니까..빚을 진 수혜자이므로...

덤덤하게 읽히지만 그래서 더 아련하다.

f******n 2023.01.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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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없는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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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없는 불행만큼 불행한 게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슬픔도 이렇게 표현하면 예술이 되는구나. 슬픔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 다른 책 읽을 때도 이미 느꼈지만 페터 한트케의 문장 구사력은 정말 대단하다. 소망 없는 불행 속으로 들어가 혼자만의 휴식을 취하는 주인공에게 어느샌가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긴 여행을 위한 짧은 편지도 빨리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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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없는 불행만큼 불행한 게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슬픔도 이렇게 표현하면 예술이 되는구나. 슬픔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 다른 책 읽을 때도 이미 느꼈지만 페터 한트케의 문장 구사력은 정말 대단하다. 소망 없는 불행 속으로 들어가 혼자만의 휴식을 취하는 주인공에게 어느샌가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긴 여행을 위한 짧은 편지도 빨리 읽어봐야지.

s*******4 2020.02.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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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없는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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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단칸방에다 날마다 하는 빵 걱정,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나는 제스처와 억지 표정, 그리고 의사 소통이라곤 김 빠진 성행위밖에 하지 않는 동거인과의 생활 여건들이 시민적이랄 수 있기 이전의 상태였기 때문이었다.꼭 필요한 것은 먹을거리였고, 유익한 것은 겨울의 땔감이었으며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은 사치품이었다.그러나 그녀는 그가 부재중일 때에만 그 외로움에 답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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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단칸방에다 날마다 하는 빵 걱정,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나는 제스처와 억지 표정, 그리고 의사 소통이라곤 김 빠진 성행위밖에 하지 않는 동거인과의 생활 여건들이 시민적이랄 수 있기 이전의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꼭 필요한 것은 먹을거리였고, 유익한 것은 겨울의 땔감이었으며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은 사치품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부재중일 때에만 그 외로움에 답할 수 있었다.


그녀는 <드디어 평화롭게 잠들게 되어 아주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썼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그녀의 진심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밖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다름 아닌 나에 대한 타격으로 느낀다.





11p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다. 언어로는 포착할 수 없는 감정들이 존재


12p 생각이 사라진 자리에는 고통이 남는다. 고통이란 순수한 집중. 어머니에 대한 애착. 그녀의 죽음을 이해함으로서 갈등과 고통을 해소하고자하는 작가의 절실한 노력


22p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두가 하나의 마음이라는 일체감이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주고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한다. 이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독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심리. 

삶의 의미, 자의식을(25p) 스스로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


26p 사랑에 빠지는데는 이유가 없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나의 감정이 중심이다


전쟁은 삶의 의미를 깨우쳐주기도 한다. 사랑, 희망을 갖게 하기도 한다. 마치, 고통의 절정의 순간에 엔돌핀이 나오는 것처럼..


29p 수치심은 기본적인 감정들을 앗아간다. 솔직한 감정표현의 억압이 주는 지독한 중압감


30p 오직 수치심만이 지배하는 삶은 얼마나 자기소외적인가


32p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에리히 프롬


33p 인색함은 삶이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때 극복하고자하는 필사적인 노력이자 지혜. 

그녀는 이미 굴욕감을 느끼고 있기에..

자신을 부정함으로서 자신의 삶을 부정함->인간만이 할 수 있는 자기 인식의 존엄함


34p 너무나도 순수하고 재능있고 매력있었던 여자가 어떻게 철저하게 무너지는가


37p 감정 자체를 지우고 하나의 유형에 속함으로서 평온함을 느끼며 자기 자신을 망각함


38p "그건 삶이 아니었다"


44p 그러나 결국 전쟁은 인간성을 앗아간다


46p 행복하길 원한 똑똑한 여자였기 때문에 불행도 철저하게 느꼈다


49p 살기 위해, 숨통이 트이기위해 매정해져야했던 것일까. 어머니의 이름은 너무나도 무겁고 어렵다


52p 가난이라는 것의 굴레에 스스로 갇혀버린나머지 가난해보이지 않게 보이는 것에 집착.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이다


59p 남편에 대한 연민과 어쩔 수 없는 혐오감.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

외로움을 은폐하고자하는 교묘한 노력. 그녀가 가장 두려워했던것은 외로움이다


63p 그녀는 강한 여자였고 그것이 그녀 스스로를 힘들게했을 것이다


65p 그녀 스스로에게 조금의 해방이라도 주어졌다면.. 스스로에게 조금 더 친절했다면.. 스스로를 조금만 더 보살폈더라면..


67p 병의 심리학. 어찌보면 축복이다. 모든 고통엔 끝이 있다는 것. 악의 값을 치뤄야만 한다.




     페터 한트케의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의 블로흐가 페터 한트케의 자전적 인물일수도 있음이 쉽게 추측 가능하다. '소망 없는 불행'에 그의 어머니가 언어에 강박증세를 보이는 모습을 보이는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페널티킥~'에서 블로흐가 보여주는 불안 증세들의 내역을 알 수있었던 책이었다. 어머니를 한 인간으로 이해하고자하는 작가의 절실한 노력이 다가온다. 그가 상처를 회복하고 성장하기를 바라며, 그는 능히 그럴 수 있을거라 믿는다.

g*********0 2018.04.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