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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로서의 정체성을 찾고자 분투하는 파울라의 눈물겨운 얘기를 듣고 있자니 이원수의 동시 [해바라기]가 오버랩되었다.
울타리 밖에 선 해바라기는 갓 났을 때부터 버림받았다
꽃밭에 물 주는 누나도 이까짓 게 꽃이냐고 본체만체 뜰 쓸던 할아버지가 몇 번이나 빼 버리려다 두셨다는 해바라기 (중략) 너는 혼자 외롭게 자랐건만 커다란 아주 커다란 꽃이 폈구나 언니보다 더 큰 키 부채보다 큰 잎새 그 위에 쟁반 같은 황금 꽃은 화초밭이 왼통 시드는 날도 해님을 쳐다보고 웃고만 있네 파울라는 온통 척박한 환경에서 겨우겨우 싹을 틔운 여린 떡잎 같았다. 자신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은 물론 가족들도 하나 같이 루저(loser)일색이라고 이웃들이 손가락질을 해댔으니. 대책 없는 엄마는 딸이 보기에도 한심해서 제발 정상적인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염원할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양로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간호사의 하이힐을 훔쳐신고 탈출한 괴짜. 엄마의 남자친구 군나르는 대머리에 변비로 시달리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외톨이였다. 그러니 할아버지 눈에도 다들 비정상으로 보일 밖에. 우리 가족은 모두 바보거나 지루하거나 살짝 돈 사람이거나 재미없는 녀석이야.(46쪽) 그런 파울라가 엄마의 남자친구 군나르의 집으로 이사하는 통에 학교를 옮기게 되면서 상황은 더욱 꼬이게 된다. 전학 첫 날부터 파울라는 사악함을 뿜어내는 악동으로 자리매김한다. 선생님이 이름을 잘못 부르고 남자로 오해한 탓에 파울라는 엉겁결에 거친 남자아이로서의 성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파울라가 완전 천덕꾸러기로 낙인찍히기에 충분했다. 남자 복장을 한 채 태연하게 여자 탈의실에 들어갔다 여자애들을 기겁하게 만든 일 하며, 커닝 시도자로 몰리고 오리를 풀어놓아 교실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등 그의 악동 기질은 끝을 모를 정도로 발휘되었다. 급기야 담임 선생님이 파울라 엄마와 면담하기 위해 파울라 집을 방문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파울라가 입은 타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지만 엄마와 담임의 의사소통 착오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정신을 가다듬은 파울라는 카티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갔다가 결정적인 전기를 맞게 된다. 모험심과 한탕 심리가 발동하여 아이작과 한밤중 수영 내기를 제안했다가 둘 다 빠져죽기 일보직전까지 이르게 된다. 오기로 똘똘 뭉친 파울라가 집중에 또 집중을 한 끝에 아이작을 구하고 둘은 창고 안에서 밤을 같이 보내게 되면서 서로의 실체, 파울라의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파악하게 된다. 그 이후 파울라의 변신은 눈을 비비고 보아야 할 정도였다. 선망하던 아이작 앞에서 순한 양으로 돌변한 모습하고는. 앞으로 나는 훨씬 더 평화로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주의 깊게 바라볼 필요가 없는 용감하고 조용한 소녀로서, 이름은 파울라일 것이다. (210쪽) 파울라는 겹경사를 맞으며 해바라기로 환하게 피어난다. 미처 데려오지 못했던 킬로이가 제 발로 집에 찾아온 것이다. 마침내 나는 킬로이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에 코를 박고 잠이 들었다. 나는 잠에 빠져서도 할아버지의 노래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213쪽) 이렇게 꽃을 활짝 피울 수 있었던 연유는 어디 있을까? 파울라의 집요하고 낙천적인 성격도 한 몫 했겠지만 한없이 기다려주고 적절한 조언을 해주던 할아버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할아버지의 인내와 배려 속에 파울라는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며 찬란한 해바라기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