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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음악사에서 가장 독특한 아이러니를 지닌 인물이다. 대중에게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의 강렬한 낭만성으로 영원한 사랑을 받지만, 당대 비평가들에게는 "시대착오적인 감상주의자" 혹은 "20세기에 길을 잃은 19세기의 유령"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리베카 미첼의 평전 『라흐마니노프』는 바로 이 지점, 즉 대중적 성공과 비평적 경멸 사이의 간극을 파고들며 그를 재평가한다. 시대착오가 아닌, 상실에 대한 현대적 대응
미첼은 라흐마니노프를 단순히 변화를 거부한 보수주의자로 규정하는 기존의 시각을 단호히 거부한다. 대신 그의 음악이 지닌 '향수'와 '멜랑콜리'가 단순한 과거의 답습이 아니라, 혁명과 망명으로 인해 파편화된 현대적 삶에 대한 치열한 예술적 대응이었음을 역설한다. 저자는 라흐마니노프가 활동했던 러시아의 문화적 토양을 세밀하게 분석하며, 그의 음악 속에 각인된 종소리와 전례가들이 단순한 인용이 아니라, 잃어버린 세계를 음향적으로 재건하려는 의도적인 '기억의 건축'이었음을 밝혀낸다. 즉, 그의 음악은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상실이라는 현대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는 가장 현대적인 시도였다는 것이다. 비르투오소의 황금 감옥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1917년 망명 이후 미국에서의 삶을 조명하는 방식에 있다. 미첼은 라흐마니노프가 겪었던 '창작의 고갈'을 단순히 영감의 부재로 보지 않고, 자본주의 시장 논리 속에서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가장의 무게와 연결한다. 그는 작곡가로 남고 싶었으나, 세상은 그에게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로서의 기계적 완벽함을 요구했다. 미첼은 빡빡한 연주 일정과 녹음 스케줄 속에 갇혀, 더 이상 작곡을 할 수 없다고 한탄했던 그의 내면을 건조하지만 연민 어린 시선으로 포착한다. 이는 화려한 명성 뒤에 가려진, 이방인으로서의 고단한 삶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결론
리베카 미첼의 『라흐마니노프』는 감상적인 천재의 신화를 걷어내고, 급변하는 세계사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 고투했던 한 지식인의 초상을 그려낸다. 이 책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지닌 호소력이 촌스러운 감상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보편적 고통을 위로하는 힘에서 비롯됨을 논리적으로 입증한다. 라흐마니노프를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그의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이론적 확신을, 그를 의심했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수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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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이름이 낯선 사람도 그의 음악은 분명 어디에선가 들어보았을 것이다.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그 선율 덕분에 (위대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자신의 책 《사색과 기억》에서 선율이야말로 하늘의 선물이요 천재의 소산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의 작품들은 클래식 음악 가운데 유달리 대중음악과 영화에 자주 사용되어 널리 사랑받았다. 〈피아노 협주곡 2번〉의 2악장을 기반으로 삼은 에릭 카먼의 ‘올 바이 마이 셀프’(1975)는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까지 올랐고 이후 셀린 디옹 등 숱한 가수들이 다시 불렀다(‘개그 콘서트’에서 개그맨 박성호가 능청스럽게 부르던 ‘오빠 만세’, 바로 그 곡이다). 영화 〈7년만의 외출〉(1955), 〈사랑의 은하수Somewhere in time〉(1980) 등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샤인〉(1996)의 〈피아노 협주곡 3번〉 장면에서도 그의 음악은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18세의 나이로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의 〈피아노 협주곡 3번〉 결선 연주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유튜브에서 전설적 연주자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연주 영상의 인기를 누르고 그의 연주가 조회수 1위에 오른 것도 한동안 화젯거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