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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케인스가 쓴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에세이를 현대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책이다. 케인스가 당시도 아닌 손자 손녀 시대의 경제적 가능성을 이야기했다는 것은 퍽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 시대를 예측하기도 쉽지 않은데 먼 시대를 예측할 수록 틀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는 왜 그런 에세이를 썼을까? 아마 사랑이지 않았을까? 손자와 손녀들을 위한 관심이지 않았을까? 일단 중요한 점은 예측이 틀린 부분이 존재한다. 공통적으로 말하는 부분은 예측이 상당 부분 틀렸다는 것이다. 어쩌면 케인스는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인간의 욕심을 너무 간과한 것일지 모르겠다. 결국 케인스의 가능성을, 예측이 맞으려면 인간의 인식도 같이 성장해야할 것이다. 내가 아는 짧은 지식으로는 이미 세계 기아는 1908년에 해결되어야 했다. 아니 적어도 이론적 근거는 마련되었다. 보슈 - 하버법이라고 불리는 암모니아 합성법은 현대 농업과 식량 생산량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럼에도 아직도 우리는 세계 기아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물론 많이 해결하기는 했다.) 식량을 잘 순환되면 될 것 같은데 역시나 인간의 욕심인지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집값도 생각해 보자. 난 사실 경제학을 잘 모른다. 그래서 돈이 없나 보다. 그럼에도 하나 아는 것은 있다. 수요와 공급이다. 수요가 늘었는데 공급이 적으면 가격은 높아지고, 공급이 늘었는데 수요가 없으면 가격은 떨어진다. 근데 왜 집을 이렇게 지어도 집값은 그대로일까? 무언가 더 고려해야할 변수가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인간의 욕심이고, 그에 대한 해결책은 인식의 성장일지 모르겠다. 산업혁명 이전, 그리고 공동체가 살아있던 시절은 공동체가 억제제 역할을 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공동체는 무너졌고, 인간의 탐욕이 남았다. 그래서 많은 지성인들이 공동체의 회복을 이야기하지만 이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개인들이 인식의 성장을 이루고 그 성장한 인식들이 모여 공동체가 되어야 겨우 공동체가 회복될 것 같다. 케인스도 어쩌면 알았을 것이다. 자신의 예측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에세이를 쓴 것은 어쩌면 화두를 던지기 위해서, 그리고 자손들이 조금 더 나은 세상에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는 변화한다. 가능성이기에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 지금이 바뀌면 미래가 바뀌듯 조금 더 고민하고 더 나은 세상을 우리는 후손에게 물려줄 사명이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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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는 100년 뒤 손자 손녀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예측했다.
지금 보면, 소득 증가 이외의 부분은 빗나간 예측인데,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케인스의 예측처럼 기본적인 경제 문제가 해결되어 경제적 자유를 얻은 상황 속에서도, 개인은 노동을 줄이고 여가에 심취하는 것이 아니라 부유한 이웃과 자신의 소비 사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야근이나 부업에 뛰어드는 게 현실이라고 설파한다. 반박이 어려운 냉철한 지적이다!
100년 뒤 우리는 얼마를 벌고, 주당 몇 시간을 일하고, 최저시급은 얼마고, MZ 세대는 어떤 명품에 열광하고, 노후의 평균연령과 평균 소득은 얼마나 될 것이며, 연금은 몇 세부터 얼마나 받게 될 것인지, AI는 얼마나 많은 직업을 갈아치웠을지, 유가의 영향은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가솔린 차는 멸종했을 것인가 등등을 생각해 보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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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읽고있는 중인 도서라 완전하게 제가느끼는 후기는 아니임을 미리 말하고 독서후기를 남겨보려고합니다 다변하응 세상에 항상 의식적으로 깨어있아려고 하는 내 자신에게 배움을 주는 그런 도서라거 생각합니다 항상 뒤쳐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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