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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서사와 21c 오디세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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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열렸고(開天), 독서의 계절이다.모처럼 긴 연휴였다. 엿새 동안의 추석 연휴에 책 한권을 들고 씨름했다. 새로 나온 책, 심아진 작가의 『후예들』 (솔출판사) 장편소설을 읽느라, 두 자릿수 IQ를 지닌 나로서는 골이 흔들릴 정도였다.나는 심작가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늘 입버릇처럼 아끼고 애끼는 후배라고 광고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의 내면세계에 새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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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열렸고(開天), 독서의 계절이다.
모처럼 긴 연휴였다. 엿새 동안의 추석 연휴에 책 한권을 들고 씨름했다. 새로 나온 책, 심아진 작가의 『후예들』 (솔출판사) 장편소설을 읽느라, 두 자릿수 IQ를 지닌 나로서는 골이 흔들릴 정도였다.

나는 심작가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늘 입버릇처럼 아끼고 애끼는 후배라고 광고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의 내면세계에 새끼손톱 반쪽만큼도 접근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가 던져놓은 그물이 오대양 육대주에 뻗쳐있고 그의 손아귀에 쥔 벼리가 어떻게 한 쾌로 꿰어지는지, 그 기술을 이번 소설에서 살짝 엿봤다고, 해얄까? 아무튼, 말릴 수 없는 개성파 여자 셋 귀연과 효령 요세핀을 등장시켜, 청동기 시대에 뿌려진 서사를 21c 오디세이아와 버무려 시공간을 뛰어넘어 서울과 헝가리에서 ‘동시패션’으로 펼쳐진다.

심아진 소설에서는 현악기에서 내는 농현(弄絃) 같은 음색을 기대해선 안 된다(여릿하고 나긋한 문장은 아무 데나 쓰는 거 아님). 소설 첫 장면부터 말을 탄 후예들을 내세워 채찍(하마가죽에 뼛조각 쇳조각 쇠구슬을 매단)을 휘두르며, ‘경계도 없고 한계도 없고, 그래서 필시 후회도 미련도 남지 않을…’ 모질고 냉혹한 문장으로 몰아붙인다. 머무르지 않는 영웅 후예들이 우랄산맥을 넘어 이쪽과 저쪽으로 흩어진다. 동쪽으로 달린 말은 만주벌판을 지나 백두산을 넘어 한반도 아래쪽에 닿고 서쪽으로 달린 말은 볼가강과 키마강을 건너 카르파티아 분지에 이르게 한다.

심아진 작가 그의 삶은 실제로 유목민처럼 떠도는 삶이었다. 헝가리에서 아일랜드에서, 오랫동안 고독한 시간을 보낸 인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마징가Z 버금가는 강철 멘탈 소유자이기도 하다. 소설 속 ‘귀연’이란 인물이 오직 ‘나’만을 위한 삶을 부르짖으며 헝가리에서 딸 하나를 데리고 살며, 그림을 그리고 도슨트를 겸하며 살아가듯, 심작가 역시 부다페스트에 거주하며(2004~2009년) 도슨트 노릇을 했고 이 소설 또한 그때 구상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외국인 투어를 대상하는 도슨트들의 부실하기 짝이 없는 설명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다. 실력은 갖추지 못했으면서 호들갑만 쪄는 얍삽한 인간들의 행위를 못 봐주는 것이다. 예술사조를 촘촘히 꿰고 있는 도슨트 귀연에게 ‘젠체’하려던 영국에서 온 교수에게 한방 먹이는 장면도 통쾌하다.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했던 네덜란드 화가 빌렘 바이테베크에 대해서도 똑 부러지게 설명하지 않던가. 또한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 해석에서도 독보적인 시선으로 깊게 천착해 들어감을 보여준다.

내가 일찍이 보르헤스나 마르께스의 소설을 읽었고 훌리오 꼬르따사르 책엔 서평까지 썼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심아진의 『후예들』 장편을 들고 엿새 동안 낑낑거리며 헤맨 까닭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소설 첫 장부터 현실과 비현실 세계를 넘나들며 대화체와 지문의 부호 구분도 없이 혼어미와 혼아비를 들먹이며, 난삽하지 아니하며 때깔 선명한 문장으로 등짝을 후려쳐대는 느낌이니, 初場에 좀 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형체 없이 말하는 귀신이 젤 무섭다. 새 작품을 선보일 때마다 소설작법을 새롭게 시도하는 심아진의 머릿속엔 대체 무엇이 들어있을까, 몹시 궁금하다. 본인 역시도 작가의 말에서 읊었듯이, “첫 소설을 쓸 때부터 ‘소설은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지금도 여전하다”라고 말했다.

소설 결말에 가서야, 세 여자의 삶이 그토록 신산스럽고 강퍅했던 것은 핏줄로 얽히고설킨 ‘애증’의 관계 때문이란 것을. 조상 부모 그리고 핏줄을 나눈 형제 그들은 그토록 무서운 존재들이다. 촌수가 가까울수록 더 무섭다. 그들 때문에 살기도 하지만 그들 때문에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져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

인류는 로마 시대 세워진 식민의 흔적 열주를 2000년 동안 뽑아내지 못했다. 한데, 심아진 작가의 창작 지평엔 植民地 따윈 없다. 근현대 소설이 세워놓은 서슬 퍼런 구조물(stucture) 따위는 깡그리 뭉개 버리고, 말 궁둥이에 솥단지 하나 매달고 아홉 가닥 채찍을 휘두르며 달려 나간다. 금령총에서 출토된 '도기기마인물형명기'에서 소설 모티브가 기인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평설을 쓴 고종석 평론가께서도 “근대의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고, 복고주의도 날카롭게 벼리면, 탈-근대의 칼이다. 이 소설의 아름다움은 근대와 결별함으로써 얻게 되는 신화의 아름다움이다”라고 했다. 과연 뚝심있는 여장부 소설이다.

‘스포’ 하나 슬쩍 던져놓자면, 소설 어딘가에 딱 한점, 극도로 섬세하고 과감하며 디테일한 交接 장면 묘사가 금쪽처럼 박혀있는데, 부디 놓치지 마시길???.

사진: 금령총 출토. 국보 제91호 '陶器騎馬人物形明器'



y******7 2023.10.04. 신고 공감 4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