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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잇다’ 는 최초의 근대 여성 작가 김명순이 데뷔한 지 한 세기가 지난 지금,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문학의 근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시리즈입니다. 이책에 대하여 중에서... 이책은 191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1934년 <개벽>사에서 기자로 근무할 당시 쓴 단편 <불야여인-가등>으로 등단한뒤 열네편의 소설과 두 편의 콩트, 사십여편의 수필과 평론 등 많은 작품을 남긴 이선희작가와 201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고 <영의 기원>, <K의 장례>등의 작품을 낸 2017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천희란 작가의 글을 담고있다. 그중에서 이선희작가의 소설로는 ‘계산서’와 ‘여인 명령’ 그리고 천희란작가의 소설로 ‘백룸’와 에세이 ‘우리는 이 다음의 지옥도 찾아내고 말 테니까’ 가 수록되어 있다. 각막과 수정체로 된 우리의 두 개의 눈이란 얼마나 무디고 둔한 무기인지 내 눈은 기어이 그 넥타이 매는 손이 가지고 있을 듯한 비밀을 찾을 길이 없었다. 나는 괴로웠다. 거의 한세기 전에 씌어진 이야기인데 그리 낯설거나 어색하거나 이상하지도 않다. 사고로 유산되어 아이를 잃고 한쪽 다리마저 잃어 방안에 갇히게 되고 어으날 밤 새 넥타이를 매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불안해 하는 여성의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이 너무도 흥미진진하다. “우리 밖에 좀 나갔다 올까? 나 찻집에 가본 지도 참 오래네.” 이것은 정말 내가 나가자는 것이 아니고 하도 심심하니까 그저 해보는 소리였다. 그런데 남편은 이것을 예상 이외로 너무 진실하게 대답을 해버렸다. 그리고 대단히 서글픈 웃음을 보여주었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나가오? 그리고 나간댔자 괜히 몸만 괴로웠지 소용 있소?” 말이야 옳은 말이니 내가 그 말을 탄하는게 아니라, 그 말을 할 때 남편의 입가로 실뱀같이 지나간 그 웃음이었다. 드라마를 보듯 생생하게 그려지는 인물들의 표정과 심리변화를 연상시키는 작가의 표현기법이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독자들로 하여금 다가올 미래를 연상시키는 복선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한번 읽기 시작한 순간 멈출수가 없었다. 나는 내 남편도 나와 같이 다리 하나가 병신 되기를 바랐다. 남편의 다리 하나-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다리 하나쯤으로는 엄청나게 부족하다. 내가 받아야 할 것은 그의 목숨 그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을 받아야 겨우 수지가 맞을 것같다. 이것은 내 계산서뿐만 아니라 모든 아내 된 자의 계산서일 것이다. 아픈 자신을 뒤로하고 친절하고 상냥하던 남편의 새 넥타이를 매는 모습을 보며 불안해하다가 애가 타오르다가 결국은 남편을 향한 분노로 목숨까지 받아낼 생각으로 치닫는 여인의 모습이 가엽다기보다는 무섭기까지했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세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모두 여성으로써 당시 시대가 바라는 가부장 중심적인 사회에 순응하는 보편적인 여성상의 모습에서 벗어나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나아가려 하지만 결국 불행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삶속에서 자꾸만 자신을 얽매는 현실을 비판하는것으로 보인다. 이선희작가의 두번째 소설 <여인 명령>은 숙채와 유원의 두 남녀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이야기인듯 하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숙채의 기구한 인생사를 엿볼수 있는 이야기이다. 처음 등장할때의 여주인공은 나름 지식인으로써의 면모를 보이지만 결혼을 약속한 남자와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고 예상치 못한 흐름으로 하염없이 흘러가는 숙채의 발길이 자꾸만 읽는 내내 나를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기만 했다. 한치의 의심도 없이 해피엔딩을 당연시 여기던 나의 바램은 이루어졌을까? 전차의 몸뚱이가 움질움질 기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빨리 달아난다. 드디어 그들이 당황해할 사이도 없이 그들의 맞닿았던 시선이 어둠속에서 탁- 끊어지고 말았다. 상황을 묘사하는 작가의 표현 문구들이 놀라움을 자아낸다. 눈감으면 작가가 그리는 모든 장면들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진다. 어쩐일로 이런 판국을 당하매 남편에게 빌붙어지는지 숙채 자신도 몰랐으나 대개의 여자들은 그러한것이다. 남편이 이미 십여년전에 결혼하여 이미 부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순간 분노가 일어나 이혼수속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본처에게 쫓겨나 물러날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함께 일어 남편이 갑작스레 소중한것을 알게된다는 숙채의 마음이 아이러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수긍이 될수밖에 없었다. 이 글이 씌여진 시대적상황이 그러할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이 그때와 별다른게 있을까? 과연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어여쁘고 얌전하고 교육받은 지성인으로써의 여주인공이 파란만장한 인생 풍파를 겪으면서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를 살펴볼수있는 매력적인 글이다. 지금 이선희의 소설을 다시 읽은 내게 그녀가 어떤 작가인지를 묻는다면, 이전에 그녀의 문학을 평가하던 언어들을 모두 잊었다고 말할 것이다. 내게 이선희는 ‘지속된 한계’ 를 벗어던지기 위해 새로운 지옥을 찾아 나선 여성이었다고 답할 것이다. 소설을 쓰는 내내, 그저 그 지옥을 함께 걷고자 했다. 천희란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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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이선희 작가의 소설 <계산서>와 <여성 명령>은 나에게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1930년대, 여성의 삶을 이렇게 섬세하고 세련되면서도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낼 수 있다니, 무엇보다 어려운 옛말조차 흐름을 전혀 방해하지 않으며 전개 또한 무척 흥미로워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와 더불어 삶에 대한 첨예한 문제의식을 정교한 언어로 표현해온 천희란 작가의 <백룸>은 일상적 규범성이라는 틀과 억압에서 어디 있을지 모를 출구를 향해 나아가는 '나'를 그린다.
누런 벽으로 둘러싸인 방, 윙윙거리는 형광등, 어디 있는지 모를 출구를 향해 계속해서 방을 건너간다. 그저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간이 무한히 펼쳐지는 공간, 자신의 위치나 시간의 흐름도 파악할 수 없다. 한참을 헤매다 발견한 창밖으로도 끝도 없이 펼쳐진 반대편의 창들만 보일 뿐이다.
작은 아이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방을 통과하는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고 도대체 저걸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겨우 출구를 찾았다며 문을 열지만 결국 그곳은 새로운 레벨의 백룸이었고, 그것이 또 무한 반복된다. 옆에서 보는 거 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답답한데, 저게 그렇게 재미있을까?
그런데 게임 <백룸>을 소재로 한 소설을 만났을 때, 책의 해설처럼 게임의 공간과 규칙은 우리가 초월적으로 우리 삶을 목격할 수 있는 하나의 장면으로 제출된다. 무한히 반복되는 미궁과도 같은 현실 이야기가 곧 우리 삶의 화두와 닮아 있는 것이다. 알고 있지만 보이지 않고, 믿어야만 나아갈 수 있기에 무한히 이어지는 방을 계속해서 건너간다. 그곳에 어떤 위협이 존재할지 몰라도 살기 위해서라도 출구를 찾아야 한다. 가차 없이 죽음을 당할지라도, 다시 일어나 방을 건너고 죽고 살아나고 다시 걷는 거처럼. 하지만 현실이 게임과 다른 건 우린 언제든 주어진 규칙 자체를 파괴하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삶을 운용하는 건 바로 '나'인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세계의 전부가 아님을 알며, 이 시공간 안에 얼마간의 규칙이 있으며 그것을 따라야 함을 안다. 또한 이 공간 안에서 얼마간 방향감각을 잃음으로써 이 안의 규칙을 균질하게 적용할 수 없음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바깥에도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그러나 더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고 믿어야만 지금 눈앞에 '보임으로써 믿어지는 것' 너머로 나아갈 수 있다. _p.4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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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 친구가 직접 이혼 소식을 알려왔다. 적당한 반응을 못 하고 머뭇거리는 사이에, 이혼 이유도 말해줬다. 아주 행복한 감옥이었다고. 행복해도 감옥은 감옥이었단 뜻이라고 이해했다.
제목이 무서워서였을까. 구매해두고 기어이 해를 넘기고서야 뭔가를 쓸 결심이 생겼다. 매 해 읽고 기록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책 탑이 올라가는 것이 심적 부담이 되기도 하고,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해서, 새해 핑계로 해치울 결심.
현실이 더 구체적인 위협이라면, 문학은 농도가 높아서 더 위협적인 현실 같을 때가 있다. 백룸은 내게 감금, 폭력, 살해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다. 지키고 선 입구 이외에 출구가 없다면 탈출은 불가능하다.
꼭 문으로 나가야된다는 선입견을 버리면 벽을 부수고 나갈 수도 있다. 그럴 힘이나 도구가 있는 지가 문제지만. 소설 속 작가들 사이의 세월의 간극만큼이 갇혀 산 혹은 벽을 두들긴 증거품 같기도 해서 서늘하고 두렵기도 했다.
새해라는 이유만으로 힘을 내어 희망과 미래를 일단 바라보고 싶은데, 차곡차곡 만들어간 모든 것을 외면하고는 한 발도 나아갈 수 없다는 엄중한 경고처럼, 마주보고 똑바로 보라는 듯 장면들이 펼쳐진다.
국가적 식민지는 형식적으로 끝났을지 모르나, 여성이 살고 있는 식민지는 끝나지 않았다. 끝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잠시잠간의 해방의 기운 이후에는 더 극심한 백래시가 몰아닥칠 가능성도 높다. 퇴행하지 않으면 다행이라 여기는 시절이 반복될 지도 모른다.
이런 은밀하고 깊은 절망감에 비춰봐서일까. 식민지 조선을 살았던 여성의 심리가, 묘사가, 글이 더 눈부시게 놀랍게 빛난다. 게으른 좌절 대신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자신의 글로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만드는 작업이 담대하다. 멈추지 않는 모든 노력은 용기다.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제정신으로 견디기 어려운 굳건한 지옥, 가짜라도 행복한 지옥의 안온함과 갖가지 새로운 위험이 도사리는 현실 밖에 선택권이 없다고 느낄 때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지금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시한폭탄을 품은 것 같은 세계를 가까스로 통과해 걷는 중이다. 이대로 가면 길을 잃지 않고 그들에게 닿을 테지만, 그걸로 충분할까.”
하긴 가정 내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다치고 죽는지 통계를 보면, 그 구분이 무의미하기도 하다. 가족이 안전하다고도 말할 수 없고, 낯선 자가 더 위험한 세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숫자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피해의식과 보상심리 운운하는 것은 뻔뻔한 어불성설이다. 조용히 죽어가면 좋을 자들, 편할 자들이 누구인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무 날이나 기사를 검색하면 어디선가 여성이 살해당했다.
밝고 맑게 살아보려 했는데, 현실도 문학도 봐주지 않는다. 악착같이 내가 누군지 기억하면서 제정신으로 백룸의 출구를 찾거나 없으면 만들어가는 수밖에. 더 교묘하게 고안된 착취와 폭력의 시절에, 누구의 생존도 타인의 선의나 호의에 좌우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백룸은 일종의 미궁이다. 현실의 이면이라고도 할 수 있고, 숨겨진 장소라고도 할 수 있다. (...) 백룸에서는 그저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간이 무한히 펼쳐진다. (...) 어두침침하고 축축한 복도를 따라가는 내내 자신의 위치나 시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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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한줄평 : 혼돈 속의 삶을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 <소설, 잇다> 시리즈는 강경애, 나혜석과 같은 근대 여성작가들의 주요 작품을 오늘날의 현대 작가를 통해 새롭게 바라보는 시리즈이다. 그 시리즈 중 하나인 <백룸>은 이선희와 천희란의 글쓰기를 통해 여성들의 혼란스러운 삶을 그려내고 있다. #이선희 이선희의 작품 <계산서>와 <여인 명령>은 가정이라는 체계 속 가부장제에 얽매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여인 명령>은 주인공 숙채를 내세워 당대 여성들 중 지식인 여성의 삶을 그려낸다. 여성전문을 다니던 지식인 숙채는 가정을 벗어나 홀로섬과 동시에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그런 숙채가결혼과 출산을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것은 비단 한 사람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천희란 이러한 여성의 혼란스러움은 천희란의 <백룸>에서도 계속된다. 페미니스트, 레즈비언, 미투 등의 키워드로 설명되는 한 변호사와, 그런 변호사와 연애하는 스트리머의 이야기는 현대적인 요소들로 가득하지만 그 중심 서사가 여성이 겪는 혼란이라는 점에서 이선희의 작품들과 이어진다. 지더라도 누군가는 싸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변호사에게 쏟아지는 악의적인 말들과, 그녀의 신상까지 파헤치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커밍아웃한 스트리머의 명단을 만들고 이를 통해 누가 변호사의 여자친구인지 알아내려는 사람들의 폭력성은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두 작품 속 여성들은 모두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 펼쳐질 뿐이다. 게다가 끝이 보인 지점에서 또 다른 혼란의 현실이 계속되는 마치 “백룸”과 같다.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만으로 낙인이 찍히는 세상 속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위치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속의 혼돈을 그려낸 것이다.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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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신 #잇다시리즈 #백룸 #이선희와천희란 #소설잇다 잇다시리즈는 처음 읽어본다. 무엇을 잇는다는 의미라고 짐작은 했는데, 동떨어진 시대에 글을 썼던 작가들의 글을 이어놓은 책인 건 이번에 알게 되었다. ??작가 ‘이선희‘ (1911년 출생) 내겐 생소한 작가였으나 그 당시 그녀는 엘리트 출신의 기자겸 여류작가로 활약했다. 이 책에 실린 두 개의 소설중 하나인 ‘여인 명령’ 또한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소설 중 하나이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똑같이 어둠이 왔다. 그 어둠은 도적과 같이 왔다. 이러한 것은 눈으로 보아서 아는 것이 아니라 눈치로 올개미질해서 잡는 것이다. 그와 나는 이 도적과 같이 임한 어둠을 가운데 두고, 오랫동안 술래잡기를 했다. 진실로 우리의 애정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단히 싱거운 수작 같으나 이것을 몸소 찍어 맛을 본 남자나 여자에게 있어서는 실로 깜짝 놀라고야 말 진리가 될 것이다.” (소설 ‘계산서’중) 이선희의 소설 속 여주인공들의 삶은 대체로 혹독하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거나, 신체 불구가 되거나 세간의 질타를 받는 입장에 처하기 일쑤다. ‘계산서’ 속 여주인공도 임신한 아이가 잘못되어 한쪽 다리를 절단하면서 남편과의 불화가 시작된다. 위에 공유한 문장은 그 부부간의 보이지 않은 실금을 감정을 실어 표현한 것이다. “나는 길바닥을 거의 톱질하듯 걷다가 가로수 등거리를 두 손으로 붙잡고 숨을 돌렸다. 일찍이 그처럼 유쾌히 헤엄치던 이 거리를 지금 나는 무디게 톱질하는 것이다.” 근대화가 시작되는 과도기를 살아간 이선희 작가의 삶 또한 평탄치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불평등하고 모순으로 가득찬 현실을 비판하며 이상적인 세계로의 탈출구를 탐색했다. ??100여년전에 쓰여진 소설인데 참 재미나게 읽었다. 당대 사회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했으며, 등장인물들의 심리 또한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중요인물들의 급작스런 죽음 또한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 ‘천희란’ (1984~) 나보다도 나이가 어린 요즘작가 ’천희란‘의 작품 ’백룸‘은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하는 공포게임을 소재로 이야기를 끌어낸다. 무한히 반복되는 듯한 방들이 있는 집안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돌아다니다가 (출구를 찾다가) 느닷없이 죽게되는 공포게임. 사실 나는 처음에 이런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무슨 재미로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 게임을 직접 하는 것이 아닌 게임 플레이어를 3자의 눈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아주 폐쇄적인 공간에서 두려움을 떨며 출구를 찾아다니는 심장 쫄리는 시간들을 공유한다. 사람들은 어쩌면 답답하고 힘든 자신들의 모습을 화면 너머 가상의 캐릭터에 투영하여 관찰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하고 싶어도 떨쳐낼 수 없는 내 자신을 제2의 자아로 연민을 느끼며 그 환경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누군가 듣기를 바라는 혼잣말, 누가 들어도 상관없는 비밀, 누구도 반응하지 않는 절규, 세상을 바꾸는 분노, 도저히 바로잡히지 않는 부정의, 너무 많은 연대, 너무 많은 단절,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강박….그런데 누굴까. 그녀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천희란 ‘백룸’) 폐쇄적이면서도 무한 반복되는 백룸은 여전히 온갖 잘못된 관습과 선입견으로 여성들을 옥죄는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여성들은 진정 그 백룸을 완전히 탈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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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서재 [백룸 l 이선희와 천희란 l 작가정신]
시공간을 초월한 두 여성이 맞닿아진 공간 ‘소설 잇다 시리즈’ <백룸>.
이선희와 천희란. 두 작가의 나열된 이름이 아름답다. ‘희’가 동일하게 들어가서 그런 건가.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 같지만 그냥 어울리는 그런 느낌이다. 말로 형용할 수 없지만, 어울림은 부정할 수 없는 그런 것. 이들의 소설의 이어짐도 이름만큼이나 어울렸다.
이선희의 작품에는 자전적 이야기가 녹여져 있다. <계산서>, <여인명령> 두 작품에서 주인공 모두 처절했고 분투했다. 당시 여성을 그려놓은 모습에서 애잔하면서도 이상한 희열이 느껴졌다. 천희란은 <백룸>을 통해 현시대 주변부에 내몰린 소수자들의 문제를 서사로 전개한다.
<계산서>에서 다리를 잃은 주인공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는 장면이 있다. 아마 그녀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눈빛이지 않았을까. <백룸>에서 역시 현실과 외부를 잇는 틈에서 여기가 ‘안’인지 ‘밖’인지를 혼돈한다. 인간은 연결을 갈망하지만 단절하며, 말을 하지만 누구도 서로의 말을 듣지 않는다.
시간의 차이로 문제의 서사만 다를 뿐 이선희와 천희란의 소설 속 여성들에게는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찾으려고 한다.
+‘소설 잇다’기획 시리즈 기획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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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여러 가지 기구한 운명을 써서 재미있는 이야기책을 꾸며가지고 심심한 사람들의 소일거리를 삼는 일이 있으나 그러한 이야기와 같이 곡절 많은 세상사를 그대로 몸에 지니어 한 개의 산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p.165)
‘소설, 잇다’ 시리즈 세 번째 책. 근대 작가 이선희와 현대 작가 천희란의 작품에는 ‘불합리와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을 타개하고자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선희 작가는 현재를 먼저 보여주며 궁금하게 만든 후 과거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이좋은 부부에게 일어난 비극(「계산서」), 아이를 데리고 추억의 장소로 찾아가는 과부(「여인 명령」) 등 기구한 삶을 담고 있다. 과거의 즐거운 기억은 현실의 고통과 막막함을 더욱 부각한다. 좋았던 시절을 자주 회상하는 주인공이 안타까웠다.
장편 「여인 명령」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서 흥미롭다. 근대화된 식민지 조선이 배경인데 당당한 느낌의 주인공을 따라… 그 시대에 잠시 살다 온 기분이다.
천희란 작가의 에세이와 문학평론가의 해설은 이선희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계산서」와 비슷하다는 샬럿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도 읽어보고 싶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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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궁금했던 '소설, 잇다' 시리즈 중 세 번째 책을 읽어보게 됐다. '소설, 잇다' 시리즈는 근대 여성작가와 현대 여성작가를 함께 담은 책이다. 이선희 작가의 <계산서>는 짧지만 꽤 인상적인 단편이다. 출산 중 다리를 잃고, 남편의 애정이 식었다고 생각한 아내는 남편을 의심하게 되고, 값을 요구하는 '계산서'를 내밀 준비를 한다. <여인 명령> 역시 인상적인 장편이다. 연인 사이인 숙채와 유원은 결혼을 약속했지만 불가피한 상황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숙채는 쫓기듯 김 의사와 결혼하게 되며 여러 안타까운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두 작품 모두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와 족쇄처럼 작용하는 결혼, 이에 맞서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을 다루고 있다. 이 당시에 이런 진취적인 소설을 썼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계산서의 아내와 여인명령의 숙채가 처한 상황이 안타깝고 불안해서 읽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현대 여성작가 천희란의 <백룸>에서는 게임 스트리머로 활동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성소수자와 커밍아웃을 담고 있어 색다르게 읽혔다. 이선희 작가와 천희란 작가의 작품 모두 쉽게 읽히진 않았지만 내용이 꽤 파격적이고 긴장감넘쳐 지루함 없이 읽었다. 이 책은 작가 소개, 작가의 말, 해설까지 다 읽어야 제대로 읽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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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룸』
'소설 잇다' 시리즈 세 번째 도서 <백룸>은 활발히 작품 활동을 했으나 충분히 화자 되지 못한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읽을 수 있는 시리즈입니다. 이번 '소설 잇다' 세 번째 도<백룸>에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이선희 작가의 '계산서', '여인 명령'과 K의 장례로 이미 한차례 만난 적 있는 천희란 작가의 표제작 '백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뭔가 시대를 앞서간 듯한 파격적인 여성의 모습을 목격한 것 같은 신선함이 있었던 소설이었습니다.
뱃속의 아이를 잃고, 자신의 다리 하나를 절단한 채 방 안에 갇혀 지내게 된 여인은 남편의 늦은 시간, 새 넥타이를 매고 나가는 모습에 예전 같지 않음을 직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잃은 것에 비해 남편의 생명을 받아야 수지가 맞다 생각하는 <계산서>는 그녀의 심리를 잘 들여다볼 수 있었지만 수지 타산으로 남편의 생명을 원한다는 부분에선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여인 명령>의 주인공 숙채는 연인 사이였던 유원과 이루어지지 못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그녀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 시대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던 '남성'의 그늘 아래 있어야 행복하다 할 여성이지만 그런 틀에 박힌 가부장제의 틀을 깨기 위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의 이야기를 담은 것 같지만 레즈비언, 커밍아웃에 대한 이야기로 많은 이들의 곱지 않은 시선 아래, 옥죄어 오는 그들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출구를 찾고자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표제작인 천희란의 <백룸>까지 세 작품을 만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의 여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선희 작가의 작품 속 여성들은 시대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다 받아들이고 포기하던 안쓰러운 여성들의 모습이 아니어서 어쩌면 다행이다 싶었던 숙채였답니다. 던져진 이야기는 달랐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어쩜 이리도 닮아 있는지.. 왜 좀 더 진취적인 사회의 모습이 아닌지 새삼 놀라기도 했습니다.
미궁 속에 빠진 것 같은 현실일지라도 그 속에 안주하느냐, 그 틀을 깨고 나오려고 하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삶은 확연히 달라진다는걸, 어떻게든 문제는 해결될 거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는 작품들이었습니다. 혼란 속에 있다면 그 혼란에 휩쓸리기 보다 어떻게든 헤어 나오려는 노력이 필요한 순간순간이란 생각이 드네요.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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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활동했던 여류 작가 이선희, 현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 천희란. 다른 시대를 살았던, 두 작가의 만남을 통해 문학의 근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려보는 작가정신 출판사의 프로젝트로 탄생한 책 <백룸>이다.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책이라, 좀 더 집중해서 읽었다. 작가 이선희는 1911년에 태어나 고등교육까지 마치고 신문사 기자로 일하며 글을 썼던 엘리트 출신 작가다. 그러나 전처와의 자식이 있는 남편과 결혼을 하며, 결혼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시대가 더 엄격하고 가부장적이었던 사회다 보니, 그런 세간의 눈치를 보면서 또 계모의 역할까지 해야 하다 보니 나름의 스트레스가 컸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이선희 작가의 소설은 대부분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며, 그녀들의 삶은 녹록치 않다. 이 책에 담긴 <계산서>와 <여인 명령> 역시 상당히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계산서>는 굉장히 쇼킹(?)한 내용이다. 여주인공은 결혼 후 아이를 사산했고, 한 쪽 다리마저 잃었다. 그러면서 남편과의 사이에 불화가 생겼고,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 피해 의식에 휩싸이며, 더욱 스스로를 불행 끝까지 몰고가는 자기파괴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자신과 남편이 동등해지려면 남편 역시 한 쪽 다리를 잃거나, 아니면 목숨이라도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까지 한다. 그것이 바로 남편에게 받아야 할 자신의 계산서라고 얘기한다. 단순 피해의식이라고 하기에는 그 시대는 워낙 여자들의 인권이 보장 받지 못하고, 제 목소리를 내기 보다 참고 인내해야 했다 보니 교육을 많이 받고, 능력까지 있던 작가 입장에서는 굉장히 할 말이 많았을거라 본다. 그런 자신의 쌓인 감정을 이렇게 글로 풀어내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선희 작가의 두 편의 소설은 굉장히 호전적인 느낌도 들고, 슬프지만 담담하면서, 차분해 보이지만 공격적이다. 생소한 작가였는데, 읽으면서 굉장히 파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신선하고 좋았던 것 같다. 이선희 작가의 소설이 끝나면,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작가 천희란의 단편 <백룸>과 <에세이>가 이어진다.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본 삶과 죽음, 관계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쓰시는 분 같다. 그래서 두 작가의 글을 붙여서 읽으니 뭔가 감회가 새롭다.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던 두 작가지만 여주인공에 좀 더 집중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오는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에게는 조금 새로운 느낌의 책이었고, 무척 재밌거나 공감되거나 그런 류는 아니었다. 그런데 1930년대 이런 이야기를 쓰는 작가도 있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참 흥미로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