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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유령 - 뇌 호흡을 위한 조감도
"기억의 유령 - 뇌 호흡을 위한 조감도" 내용보기
제발디언으로서 오래 기다려온 작품이다. 많지 않은 그의 작품 때문일 수도 있지만, 출간된 그의 작품을 모두 섭렵하고도 아쉬운 갈증으로 이따금씩 인터넷을 들락거리면서, 행여나 그의 다른 미발표 작품이나 그와 관련된 그 무엇일지라도 최근에 우연히 발견되어 그것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이 있으려나 하는 심정으로 검색을 해보곤 하던 어느 날, 아티초크라는 출판사에서 제발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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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디언으로서 오래 기다려온 작품이다. 많지 않은 그의 작품 때문일 수도 있지만, 출간된 그의 작품을 모두 섭렵하고도 아쉬운 갈증으로 이따금씩 인터넷을 들락거리면서, 행여나 그의 다른 미발표 작품이나 그와 관련된 그 무엇일지라도 최근에 우연히 발견되어 그것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이 있으려나 하는 심정으로 검색을 해보곤 하던 어느 날, 아티초크라는 출판사에서 제발트의 인터뷰집을 출간할 예정으로 번역 중에 있다는 정보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9월경에 출간된다는 정보였는데, 내가 그 정보를 얻은 날로부터 2개월 뒤였지만, 이윽고 출간되어 내가 손에 쥐게 되기까지의 그 기간은 마치 2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나는 제발트의 그 무엇에서 그토록 극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 앞서 출간된 그의 작품들 중 제일 먼저 아우스터리츠를 읽자마자 제발디언이 되고 만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가 쓴 작품들에서 그 무슨 심오한 사상이라도 발견했기 때문일까 

 

  <200157세였던 W.G 제발트의 사망 소식은 독자들에게 충격은 물론 묘한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 1996년 영어로 번역된 최초의 작품 이민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몇 년도 안 되어 그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작가가 되어 있었다.> (9)

 

  이 책 기억의 유령을 편집한 린 섀런 슈워츠시작하며장의 9쪽에서, 제발트의 사망 소식은 독자들에게 충격은 물론 묘한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고 말한다. ? 제발트가 무슨 거창한 작품을 썼기에 독자들이 충격을 받고 상실감을 느꼈다는 것일까? 그리고 왜 첫 번역 작품이 출간되고 몇 년도 안 되어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작가가 되어 있었다고 하는 것일까 

  편집자와 독자들 나름대로의 개인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고, 또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일 수도, 여러 가지 이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 이유들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제발트에 빠진 도착적 이끌림의 원인들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작품들, 보다 정확히는 그의 작품을 구축하고 있는 문장들이 주는 뇌 호흡과도 같은 효과 때문이다. 물론 뇌 호흡의 효과 중에는 사고력과 기억력 강화의 측면이 있기에, 사고력과 기억력을 강화시켜주기 때문이라고 덧붙일 수도 있다.

  중층적으로 이루어진 그의 긴 문장들은, 단전호흡이나 복식호흡 때 일반호흡의 서너 배에 달하는 길이의, 완만한 속도로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천천히 내어뿜는 호흡에 해당하고, 그 문장이 구축하고 있는 미학적 요소와 망각지에서 채굴해낸 기억의 요소와 깊은 정신성은 단전호흡이나 복식호흡 시 육체의 내부 깊숙이 외부의 공기가 들어올 때 실려 들어오는 산소에 해당하는데, 그것이 뇌의 심부로 들어와 전체로 퍼지면서 뇌혈관을 청소하고, 죽어가는 뇌세포를 자극하고, 뉴런을 생성하고, 심지어 죽은 뇌세포를 재생하고 하면서 둔감해진 뇌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짧은 단문형식으로 이루어져 금방 문장의 내용이 이해되는 까닭에 뇌의 대동맥만으로도 충분한, 말초신경 뇌세포가 자극받을 일이 전혀 없는 문장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효과다. 게다가 그의 문장은 우연의 일치가 자주 등장하는 구성적 취약성을 필연적 귀결로 이어주는 보완재로도 기능한다.

  하지만 읽고 있노라면 내가 뇌 호흡을 하고 있는 듯한 그의 문장에서 느끼는 보다 큰 친화적 효과는 미적 감수성에 대한 확장력이다. 그러니까 제발트의 문장들이 둔화되어가는 내 미적 감각과 수용력을 유지시켜줄 뿐만 아니라, 보다 넓고 깊고 섬세하게 성장시켜주는 것이다. 내가 문학을 읽는 궁극적 이유가 아닐까 싶은데, 미적 감각은 사물의 물질적 측면은 물론이고, 정신적 심리적 측면까지 모두 아우르는 의미로, 당연히 우리 인간이 지닌 품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까지 포함한다. 그렇다는 것은 곧 문장을 통해 드러나는 제발트의 내면세계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것이고, 작품을 통해 유리관 속의 금붕어들을 들여다보듯 그의 세계와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그의 작품을 읽음으로써 내게 그와 같은 품성을 감각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질 수 있고, 그래서 책 속에서 그의 내면을 만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 책의 편집자와 독자들이 제발트에 빠진 이유들 가운데, 뇌 호흡이라고 명명하는 내 표현과는 다를지라도, 나와 같은 이유도 중첩되지 않을까 싶은데, 다음 내용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제발트는 오늘날 어떤 작가보다도 새롭게 글을 썼다. 굽이치며 최면을 거는 듯한 그의 문장들은 (고풍스러운 형식임에도) 뒤엉킨 불안뿐 아니라 무기력을 동반한 현대적 감성의 패러다임 그 자체다. 꿈을 묘사하는 듯이 두서없이, 그러나 엄밀한 문장으로 전개되는 서술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 충격을 상기시켜준다.> (9)

 

  앞서 언급했듯이, 짧은 단문으로 이루어진 문장은 기억작용이나 이것을 기억해야겠다는 의식도 필요 없다. 그냥 단숨에 이해되고,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곧장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면 되는, 뇌가 자극받을 일이 거의 없는 문장이다.

  하지만 제발트의 문장처럼 굽이치며 최면을 거는 듯한중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문장과 만나게 되면, 뇌는 갑자기 긴장하면서, 전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기억작용 메커니즘을 작동한다. 앞서 말했듯이 뇌세포가 활성화되는 것이다. 긴 호흡의 문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읽은 문장을 단기기억의 형태로 기억하면서 이어지는 문장들을 읽어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고도 제대로 전체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을 경우, 다시 앞으로 되돌아가 읽어야 한다. 이 과정 자체가 뇌세포가 정신을 번쩍 차리고 활성화되는 과정이다. 전체 내용이 아니라, 문장 그 자체의 내용에도 깊이 몰입하게 된다. 그런데 제발트의 문장이 함유하고 있는 자체 내용은 단순히 어떤 사실을 전달하는 기사체 내용이 아니라, 어떤 사물이나 내용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해주는 동시에 차별화된 묘사로 엮여 있어 미학적 재미까지 느끼게 해준다. 대부분의 독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떤 책을 읽을 때 내용의 새로움에서만 즐거움을 얻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내용은 진부하고 새로운 것이 없을지라도, 문장이 주는 미학적 요소에만 이끌려 책 전체를 읽는 경우도 있는데, 제발트의 작품들이 내게는 뇌 호흡의 효과를 주는 만큼,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내가 제발트에 이끌린 점을 들라면 이 책의 편집자, 린 섀런 슈워츠가, 내가 작가의 본령이라고 생각되는 점에 손을 들어주고 있듯이, 제발트가 지닌 약자에 대한 깊은 애정, 윤리적 도덕적 측면, 자연에 대한 사랑, 역사 기억의 중요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울하고, 터널 안 목소리처럼 울림이 있고, 재치 있는 이 목소리는 저자 내면의 삶이 발산하는 그 무엇이다. 망명과 쇠퇴에 관한 이 이야기들의 목소리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도 이상한 희열을 끄집어낸다.> (20)

  <제발트가 집착하는 것, 문학적 선조와 취향, 배경, 무거운 세계관의 근원, “부패의 흔적을 파고드는 그 고집스러운 면,> (24)

  <제발트가 젊었을 때 일찍 떠나온 독일은 좋든 싫든 자기의 조국이지만 그곳을 싫어한다고 엘리너 웍텔과의 인터뷰에서 말한다. 인터뷰 어디에선가 전쟁에 대한 부모님의 침묵과 더 나아가 조국의 집단 기억 상실을 혐오한다는 말이 나온다. 대학교 재학 시절에 과거를 회피하는 교수들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의 좌절에 대한 언급도 나올 수밖에 없다(어떤 경우에는 노골적으로 그들을 나치가 아닌 체하는 노인들이라고 칭한다. 특히 자신의 작품성격에 따르는 도덕적 모호함과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또한 자연계 파괴와 품위 없는 기술의 침입에 대해, 그리고 기억하는 일의 압도적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25-26)

  <어쨌든 역사를 기억하는 일에 가장 중요한 관리인 역할을 하던 그는 역사의 참화와 희생자는 자신이 좋아하던 안개처럼 증발하지 않음을 확인하는 일에 헌신적이었다. 제발트는 진보랄지 개혁이랄지 하는 그 어떤 낙관적 관념이 없이, 그 확인 행위 자체를 보전하기 위해, 오래 지속될 언어로 상실된 것을 부활시키는 만족감을 위해 그 일을 했다.> (29)

 

  제발트는 손에 꼽을 정도의 작품만 남긴 채 너무 일찍 독자들을 떠났다. 다행히도 제발트의 작품들은 모두 생명성, 이식성, 분식성을 지니고 있어, 독자의 시선이 활자와 만나는 순간, 책의 육체 내부에서 반쪽으로 남아 있던 제발트의 정신은 수정체로 변하고 세포분열을 통해 독립생명체로 세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즉 그것은 감나무와 고욤나무의 접붙임 형식처럼, 감자 구근과 고구마 싹의 분식 방법처럼 독자의 체내로 이식되어, 새로운 목소리를 띠고, 이야기를 통해 또는 추천을 통해 새로운 독자에게로 생명을 이어간다. 들녘에 무성한 잡초만 끈질긴 생명성을 유지하면서 시대와 더불어 지속하는 것은 아니다. 깊은 산속에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산삼도 잡초의 유구한 역사처럼 여전히 그 희귀한 생명성을 유지해 오고 있다. 내게는 제발트의 작품들이 뇌 호흡의 효과를 주어 귀한 산삼의 약효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 관련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팀 파크스가 제발트에 관해 다룬 에세, ‘사냥꾼장에서는 제발트 작품의 우연적 성격과 유혹적인 힘에 관해 다루고 있다.

 

  <우연한 사건과 숭고한 생각 사이를 매우 효과적으로 중재하는 그의 격조 높은 묘사를 통해서 완전히 소화되고 파괴되어 다시 만들어진다.> (50)

  <제발트처럼 언어의 유혹적 힘을 의식하게 만드는 작가는 거의 없다.> (53)

  <제발트 문학이 지닌 유혹의 요소들은 어리석은 행동들이 부르는 친밀함과 달리 파괴적이지 않은 친밀함을 성취하고자 한다. 사냥꾼의 칼처럼 파괴적이고 직접적이고 우연한 만남과는 다른 무엇. 이야말로 진정 가장 분별 있는 광기.> (53)

 

  제발트가 애정을 보이는, 실패하고 소외된 자가 지닌 친밀성은 전체 인류의 대다수가 지닌 친밀성이기에, 결코 파괴적이지 않은 친밀성이다. 그 점 역시 그의 문장에 실려 나의 뇌로 들어와 뇌의 전체로 퍼져 신경안정제로 작용한다.

 

  ‘엘리너 웍텔이 인터뷰한 유령 사냥꾼장에서는 제발트를 중요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이민자들에 대한 집필 동기와 작중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웍텔 : 기억과 망명, 죽음에 관한 놀라운 책 이민자들은 한 세대에 바치는 애가입니다. W.G 제발트의 글은 서정적이고 그 분위기는 애수를 자아냅니다. 부재와 강제 이동, 상실과 자살, 독일인과 유대인에 관한 이야기들이 뇌리에 남고, 그것들은 절제되고 환기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이민자들은 소설이라고도 하고 서술의 사중주라고도 하고, 어느 하나로 분류할 수 없는 책이라고도 합니다. 제발트 씨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59)

 

  ‘캐럴 앙지에가 인터뷰한 제발트는 누구인가장에서는 <‘이민자들은 많은 보편적 문제들 즉 시간, 기억, 예술, 상실에 관한 책이다. (97)>라는 이민자들에 대한 약간의 부연설명에 뒤이어, 제발트 사상의 정체성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빈프리트 게오르크 막시밀리안은 이제 맥스다. 하지만 일단 대화를 시작하자 진보적이고 교권 개입을 반대하며 과거에 적대적인 입장에서 자신을 규정하던 1960년대 독일 지식인의 모습이 나온다. 그는 여전히 독일 남부 지방의 부드러운 억양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나는 그의 반파시즘적 입장과 특히 유대인의 비극에 일체감을 느끼는 것에 대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99)

 

  ‘마이클 실버블래트가 인터뷰한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한 시장에서는 제발트 작품의 성향과 현기증. 감정들>, <아우스터리츠에 대한 이야기와 제발트가 작품을 쓰는 서술전략 등이 나온다.

 

  <실버블래트 : 저는 현기증. 감정들을 읽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이젠 더 이상 쓸 수 없는 종류의 글을 접하게 되어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글의 무게와 우울뿐만 아니라 농담기와 관대함에도 무척 안도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글을 재창조하시게 되었습니까? 이 시대의 것이 아닌데요.> (122)

  <실버블래트 : 본문에서 늘 주위를 빙빙 도는 건 바로 그 침묵하는 존재인데요. 본문은 그걸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항상 그쪽을 가리킵니다. 그렇죠?> (124)

  <제발트 ; 다른 무엇보다 박해의 역사, 소수집단에 대한 비방, 한 민족에 대한 멸살을 시도했던 사건, 거의 성공했던 그 시도에 대한 글을 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 참상의 주요 광경들은 절대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상기시켜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그 참상의 시각적 형상들을 봐 왔는데, 그런 형상들은 우리가 광범위한 사고와 철학적 반성을 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형상들은 우리의 도덕적 판단을 마비시키기도 하거든요.> (124-125)

  <1950년대는 물론이고 1960년대와 1970년대에도 독일 산문 픽션의 대부분은 심각한 타협, 즉 도덕적 타협을 했고, 그렇기 때문에 미학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129)

 

  ‘마이클 호프먼이 제발트에 대해 쓴 에세이, ‘서늘한 사치장에서는 제발트 소설을 비판적 관점으로 서술한다.

 

  <더 묘한 것은 제발트의 작품은 시시하거나 장황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일반 소설의 즐거움을 주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머와 매력, 세련미, 공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놀랍다. 그런 요소들이 없는 책들이 영국에서 조금이라도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놀랍다. 또 다른 잣대를 들이대자면, 등장인물이나 사건으로 이야기를 꾸미지 않고 사색이나 독서에 관한 것만으로-더 분명히 말하자면 사색의 기억이나 독서의 기억만으로-쓴 책들이 인기를 끈다는 사실이 놀랍다. “좋은 읽을 거리또는 자기 전에 읽는 책을 추구하는 문화에서 책 속에 있어야 할 사건은 언제나 다른 곳에 있고 서술자와 주인공 또는 플롯 간의 관계가 언급도 탐색도 되지 않으며, 어쩌면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는데 왜 그런 책을 사람들이 일부러 읽으려 드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138)

 

  나는 마이클 호프먼이 궁금해 하는 이 영문 모를 이유가, 다른 독자들 역시 나처럼 알게 모르게 뇌 호흡과도 같은 효과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조지프 쿠오모가 인터뷰한 제발트와의 대화장에서는 제발트의 작품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자연을 따라. 기초시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자연계에 대한 제발트의 생각을 슬쩍 엿보면 다음과 같다.

 

  <쿠오모 : 제발트 씨 작품들에는 자연을 따라. 기초 시부터 시작해 그 다음으로 죽 흐르는 주제가 있는 듯합니다. 다음과 같은 말을 하셨죠. ‘우리는 우리를 쫓아내고 있는 자연계, 아니 우리가 스스로를 쫓아내고 있는 자연계와 우리의 뇌세포가 만들어 낸 다른 세상의 경계선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바로 그 단층선이 분명 우리 각자의 신체 구조와 정서 구조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지각판들이 서로 마찰을 일으키는 곳에 고통의 근원이 있을 겁니다... 우리가 기억을 벗어날 길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157)

  <쿠오모 : 제발트 씨의 소설에서 제시되는 단층선은 자연과 문명의 갈등인 것 같습니다. 제발트 씨의 두려움은 자연이 파괴되리라는 건데요...> (160)

  <제발트 : 글쎄요, 어떤 의미에서 유기적 자연은 사라질 겁니다. 대규모로 사라지는 게 보이죠. 그걸 아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아요. 제 말은, 풀잎이 바스락거리는 게 아니라 삐걱거리는 걸 들을 수 있다는 겁니다.> (161)

 

  ‘루스 프랭클린이 인터뷰한 연기의 고리장에서도 제발트의 작품 전반에 대해 다루는데, 그의 작풍에 대한 언급이 주를 이룬다. 제발트의 작품을 떠받치는 문장에 대한 프랭크린의 감상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 가지에 골몰하는 문장 전개는 제발트의 특징이다. 전체가 더 이상 하중을 떠받치지 못할 듯할 때까지 문장들이, 특이하든 평범하든 하나씩 얹혀진다.> (189-190)

  <예술은 기억의 수호자이지만 기억의 파괴자이기도 하다. 이는 제발트의 작품에서 최종적이면서 가장 근본적인 줄다리기다. 그는 자신의 책에 기록하는 슬픔의 집합체에서 무늬를 찾으려 하는 가운데 바로 그 무늬 때문에 그 안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슬픔이 무색해지는 위험을 무릅쓴다. 그의 심미주의와 슬픔의 독특한 연금술은 제발트 자신도 모르게 그 자체의 비현실성을 부각한다. 제발트는 기억의 근원을 파고들면서 상징성이 크다고 생각되는 직조공들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작품들을 이루는 실을 푼다.> (198)

 

  아마도 이 부분 역시 뇌 호흡적인 측면을 다른 각도에서 기술하고 있다고 보아진다. 기억의 근원을 파고드는 굴삭기 역할을 중층적인 만연체 문장이 담당하고 있으니까. 한편, 이 서술은 픽션을 논픽션과의 경계선상에 올릴 의도로, 작품에 사진을 동원하고, 전지적 작가시점이 엿보지 못하도록 틈을 주지 않는 제발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심미주의와 슬픔의 콜라보 관계를 지닌 그의 문장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픽션의 영역에 포섭되고 마는 제발트 작품의 특성을 제대로 간파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찰스 시믹이 제발트에 대해 쓴 에세이, ‘모의된 침묵장에서는 앞 장의 루스 프랭클린의 관점에 더하여 제발트 작품의 특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W.C 제발트를 이민자들1996년 영어판으로 나왔을 때 처음 읽었는데 그렇게 마음을 사로잡는 책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이 책은 분류하기가 어렵다. 저자의 일인칭 서술은 회고록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가 하면, 소설 같기도 하고 이민자 네 명을 다루는 논픽션 같기도 하다. ... 서평가들은 애수 어린 분위기와 역사에 대한 이해력, 비상한 관찰력, 명료한 문장에 주목했다. 평론가들은 제발트의 독창성을 강조하면서도 카프카와 보르헤스, 프루스트, 나보코프, 칼비노, 프리모 레비, 토마스 베른하르트를 비롯한 몇몇 작가들이 그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평했다.> (229)

 

  여기에 언급된 작가들은 모두 문장의 대가들이다. 그렇다는 점에서 제발트가 이들과 비교되고, 영향을 받았으리라 믿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제발트의 매력의 비결은 지금은 거의 구식으로 생각되는 방식을 통해 스스로를 양심의 목소리로, 불의를 기억하는 사람으로, 더 이상 말이 없는 이들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봤다는 데 있다. 무슨 계획을 가지고 그런 것은 아니다. 그는 진지한 사람에게 이보다 더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는 듯이 글을 썼다.> (233)

 

  이미 앞서 밝혔듯이, 내가 제발디언이 된 것은 다른 요소는 차치하고 오로지 뇌 호흡을 하는 것과도 같이 느껴지는 그의 문장에 이끌렸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면서도, 사실은 찰스 시믹이 통찰한 바로 이 요소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범부인 나로선 도달할 수 없는, 양심의 목소리, 불의를 기억하는 사람, 죽은 이들과 진지한 사람을 대변하는 사람인 제발트의 인격에도 사로잡혔던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 중 단 하나의 진정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아우스터리츠2001년 안시아 벨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1939년 여름에 독일에서 어린이수송열차에 실려 나와 영국에 오게 된 한 어린이가 훗날 유대인 부모의 죽음과 자신의 출신지인 프라하에 대해 알아내려고 애쓰는 이야기다. 제발트는 이 책의 주인공이 실재했던 둘 또는 세 사람, 여기에 또 한 사람의 절반 정도를 더 합친 인물일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주의적인 묘사와 마술적 사실주의 소설에서 나올 법한 부분이 번갈아 나올 때는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는 해도 이 책에는 제발트 최고의 문장과 감동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234)

 

  내 관점에선 뇌 호흡을 하는 듯한 아우스터리츠독서에서 느낀 감정을 찰스 시믹은 제발트 최고의 문장과 감동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라고 표현했는데, 읽던 당시의 내 감동을 기억의 유령에서 다시 짚어주면서 되살려주고 있어 무척 반가웠다.

 

  ‘아서 루보가 제발트 심포지엄에서 옮긴 경계를 넘다장에서는 제발트 작품보다는 그를 직접 만나고 느낀 제발트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평이 주를 이룬다.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 영역은 용접 밀폐된 곳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저승으로 여행을 가는 곳 즉 회색 지대 같은 영역이 있는 겁니다. 불행한 사람들이 특히 그러듯이, 살아도 죽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죠.”> (253)

 

  제발트의 다른 책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내가 늘 생각해오던 점을 제발트 역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대목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을 때도 무척 반가웠다.

 

  <사람들은 제발트의 작품을 두고 푸르스티언이라고 말하곤 한다. 애수를 자아내는 분위기와 나선형 같은 구문 때문에 그런 분류는 예측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제발트와 프루스트는 독특한 구성 방식을 창출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발터 벤야민이 프루스트에 대해 모든 위대한 문학 작품은 그 자체가 한 장르를 주조하거나 용해한다.”라고 한 말은 제발트의 작품에 대한 평가로도 적절할 것이다.> (253)

 

  여기서도 제발트 문장에 대한 상찬이 이어지는데, 이 역시 나는 비록 표현은 다를지라도 아서 루보또한 작품을 읽고 나서 뇌 호흡을 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끝에 옮긴이의 말이 실려 있는데, 이를 계기로 번역배경을 찾아보니, 영어 전공자가 영어로 번역된 독어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임에도, 마치 독어 전공자가 독일어로 된 원문을 한국어로 옮긴 작품 아우스터리츠를 읽었을 때와 같은 의사감정이 느껴질 정도로, 어휘선택까지 공들여가며 참 잘 번역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기억의 유령은 앞서 한국에 번역 출간된 제발트의 전체 작품에 대한 안내서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이민자들>, <토성의 고리>, <아우스터리츠>, <공중전과 문학>, <전원에 머문 날들>, <현기증. 감정들>, <자연을 따라. 기초시>, <캄포산토등의 작품들이 뇌 호흡을 실행하고 있는 경우라면, 최근에 출간된 기억의 유령은 뇌 호흡에 관한 가이드북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제발트의 전체 작품에 대해 여행안내서 형식으로 조명한다.

  일반여행이 주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이듯, 독서행위도 새로운 정신세계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여행을 앞두고 있는 여행객이라면 대부분 미리 여행 가이드북을 사거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보를 얻는데, 심지어 가이드가 딸려있는 패키지 단체여행을 가는 여행자라고 해도, 여행 전에 이런 저런 방식으로 미리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사전정보를 얻은 만큼 여행이 보다 즐겁고 의미 있는 것이 되는 까닭이 아닌가 싶은데, 그렇듯 그곳으로 가는 미로가 아름다운 제발트라는 오지 정신여행지를 탐험하려고 하는 여행자들은 미리 제발트 작품들의 안내서 격인 기억의 유령을 통해 사전 정보를 얻는다면, 보다 즐겁고 유의미한 오지 정신여행이라는 뇌 호흡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a********4 2023.11.1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