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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라는 소설이 있다. 그 소설에서 드래곤의 ‘라자’로 선택된 사람은 개인이 아닌 드래곤과 인간 사이의 중개인으로서 존재한다. 이 소설에서 임천자, 장미수, 신목화는 드래곤의 ‘라자’처럼 최초의 나무와 인간 사이의 중개인으로 선택되고, 중개인으로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 나무와 인간 사이의 중개라는 것이 참 요상하다. 중개인으로 선택된 사람은 다양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죽는 꿈을 꾸고, 그 중 정해진, 단 한 사람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 그 중 단 한 사람만을 살릴 수 있는 일. 그보다 더한 지옥이 있을까? [p. 72]
사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꿈이라고 해도 사람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것 때문에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을 것이다. 아니 매일 이런 꿈을 꿔야 한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건 ‘저주’다. 이걸 저주라고 할 수 없다면 무엇을 저주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사람, 최초에 씨앗에서 움튼 나무가 선택한 단 한 사람을 내가 행동함으로써 구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일이 단순히 저주에 머무르지 않게 만들고 있다. 물론 장미수가 바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단 하나라도 구할 수 있다면 이 모든 것은 충분히 감수할 만한 일이다. 세상엔 공짜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잠들자마자 죽음이 보였다. 곳곳이 불탔다. 연기가 자욱했다. 숨이 막혔다. 목화는 내내 어린아이만을 바라봤다. 가장 먼저 의식을 잃은 그 아이를 목화는 간절히 구하고 싶었다. 그러나 목화의 의지는 소용없었다. 나무의 선택만이 중요했다. [p. 140]
장미수는 첫 번째 임신을 하면서, 임신 기간 동안 이 업의 수행이 유예되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그녀는 동료들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계속 임신을 시도했다. 이런 것을 보면, 차라리 죽음으로써 이 고통을 벗어나려 시도하는 이도 있었을 텐데……. 의외로 고행(苦行)하는 수행자처럼 임천자, 장미수, 신목화는 대를 이어가며, 이 중개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보통사람이라면 몇 번을 미쳐버릴 상황에서, 어지간한 정신력으로는 불가능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무는 왜 단 한 사람만 구할 기회를 부여할까? 그리고 그 사람들이 선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드라마 <도깨비>의
‘신은 여전히 듣고 있지 않으니’, 투덜대기에 ‘기억을 지은 신의 뜻이 있겠지’, 넘겨짚기에 늘 듣고 있었다. 죽음을 탄원하기에 기회도 줬다. 헌데, 왜 아직 살아있는 것이지? 기억을 지운 적 없다. 스스로 기억을 지우는 선택을 했을 뿐. 그럼에도 신의 계획 같기도, 실수 같기도 한가? 신은 그저 질문하는 자일뿐. 운명은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답은, 그대들이 찾아라.
라는 유명한 대사처럼 진짜 신(神)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신들처럼 인간적이기보다는 방관하는 초월자(超越者)나 감정 없는 법칙(法則)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리고 나무를 신(神) 혹은 그에 가까운 존재로 간주하면 임천자, 장미수, 신목화가 겪은 현상들이 납득이 가긴 한다. 물론 납득이 간다고 해서 이를 당연하다는 듯이 수용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니 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사람을 구하는 일을 거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어진 업을 거부할 경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웬만한 남자보다 힘이 센 할머니 임천자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간호사인 어머니 장미수는 두통을 앓아야 했다. 무병(巫病)을 앓는 이가 내림굿을 통해 무당이 되듯, 할머니 임천자는 중개자의 역할에 순응한다. 그러다가 죽음이 가까워지자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나는 왜 죽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도 누군가의 ‘단 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을 떠올린다. 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살아났기에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맡았을지도 모른다고 여기게 된다. 반면 어머니 장미수에게 구할 수 없는 너무 많은 죽음에 비해 겨우 단 한 사람만 살릴 수 있는 능력은 ‘저주’로 다가왔다. 게다가 그 한 사람조차 자신이 선택할 수 없으니……. 그녀에게 이 업(業)은 정해진 죽음의 대상자 가운데 신의 변덕 혹은 옹졸한 차별에 의해 한 사람을 제외시키는 것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녀가 신(神)을 저주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신목화는 이 ‘업(業)’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목화는 액자 속의 글귀를 곱씹었다. 그분은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 언젠가 목화는 임천자의 혼잣말을 들었다. 신을 찾는 사람은 자기 속부터 들여다봐야 해. 거기 짐승이 있는지, 연꽃이 있는지. 언젠가 목화는 장미수의 혼잣말을 들었다. 기도로 구할 수 있는 건 감사하다는 말뿐이지. 나머지는 다 인간 몫이야. 목화는 종종 상상했다. 깊은 산속에서 홀로 태어나 홀로 살다가 홀로 죽은 사람을. 작은 행성의 드넓은 바다에서 홀로 탄생해 홀로 숨 쉬다 홀로 소멸한 생명을. 끝없는 사막에서 홀로 피어나 홀로 메말라 가는 식물을. 그들이 확실히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신은 그들에게 관심이 있는가? 우주에서 생명이란 너무나도 이상한 현상. 신은 생명에 관심이 없다. 살려달라는 기도를 신은 이해하지 못한다. [pp.141~142]
그녀는 자신이 살려준 사람이 다시 자살하는 것을 보고, 질문하며 확인하고 싶어졌다.
이전까지는 오직 사람을 살리는 일에만 집중했다. 살아난 자가 얼마나 더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나무가 주는 생명에 시한이 있는가? 목화는 그 답을 알고 싶었다. 알아야 했다. [p. 165]
아무리 기록을 남겼다고 해도 그 수많은 죽음을, 아니 살아난 단 한 사람을 확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다행히 어머니 장미수는 종합병원에서 일했던 간호사였고 아버지 신복일도 그 종합병원 약제부에서 일했던 약사(?)였다.
병원으로 이송되거나 병원에서 살아난 사람이 많았다. 미수와 복일의 도움으로 목화는 그 중 몇 사람을 더 찾아갈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신을 믿어서 구원받았다고 길거리에서 증언했다. ~ 중략 ~ 어떤 사람은 주말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독거노인의 집을 청소하고 수리하는 일이었다. ~ 중략 ~ 바닷가 근처에 사는 단 한 명은 아침저녁으로 해변의 쓰레기를 주웠다. ~중략 ~ 누군가는 휴대폰으로 아내와 통화하며 큰 소리로 심한 욕을 했다. 오래 듣지 않아도 폭력적인 남편임을 알 수 있었다. [pp. 218~219
어쩌면 죽기 전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그렇다면 중개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해답은 마테를링크의 <파랑새>에서 나오는 어린 남매의 비둘기처럼 바로 옆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근심처럼 해답도 같이 붙어 있다는 게 포인트야. 각자 자기 근심에서 빠져나갈 길도 같이 품고 있는데 당장 너무 힘들고 아프니까 나갈 길은 못 보고 지옥만 보는 거지. ~ 중략 ~ 내 동생의 역할은 나갈 길 쪽으로 그 사람의 몸을 조금 돌려주는 거고. 그게 무슨 말이겠어. 내 동생이 그 사람을 구하는 게 아니고 자기가 자기를 구한다는 뜻이지. 누가 대신 살아주는 거 아니잖아. [p. 203]
이를 깨달은
목화는 타인의 삶과 죽음에 관한 판단을 멈추었다. 그리고 중개 중에 이전에는 하지 않는 것을 했다. 마음을 다해 명복과 축복을 전하는 일. 죽어가는 사람과 살아난 사람의 미래를 기원하는 일. 그것은 나무의 일이 아니었다. 사람으로서 목화가 하는 일이었다. 나무의 지시가 아니었다. 목화의 자발적인 마음이었다. [pp. 220~221]
다시 생각해보면, 그녀들이 중개자로서 일하는 꿈 속의 공간은 일종의 응급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응급실에서는 의사가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하는 위급환자라고 판단되면, 접수 순서에 상관없이 진료에 들어간다. 그렇게 보면, 최초의 나무가 판단한 단 한 사람을 중개자가 구할 수 있는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할머니 임천자의 추측대로 누군가의 ‘단 한 사람’으로 선택되어 살아난 자가 중개인으로 뽑힌다면, 얘기는 다르다. 누군가의 죽음을 대가로 내가 살아났다면, 그 삶과 죽음의 무게만큼 내가 대가를 치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저주라고 느낄 만큼 무거운 업(業)을 수행하는 것일지라도.
모르겠다. 거듭 생각해봐도 운명은 여전히 알 수 없다. 어쩌면 인간은 죽을 때까지 신이 던진 ‘운명’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구하다 사라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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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쓴 작가 최진영은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합니다. 그 이후에도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한겨레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작가죠. 이 소설을 구상한건 3년 전, 완성하는데는 1년이 꼬박 걸리셨다고해요. 산책길에서 만난 나무가 모티브가 되어 이 소설을 쓰게 되셨다고 하는데요. 동네에서 흔하게 보는 가로수를 보고서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니 역시 작가는 다르구나 싶습니다.
작은 섬에는 작은 열매를 좋아하는 작은 새가 많았다. 8p
소설의 첫 문장입니다. 이 소설의 프롤로그에서는 작은 섬에 사는 나무이야기를 꺼냅니다. 300년에 300년이 지나도록 깊은 뿌리를 내리고 높이 자란 두 나무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지만 어느 날 인간은 그 중 한 나무를 베어갑니다. 큰 나무는 베어진 작은 나무를 위해 영양분을 나누고 100년에 100년이 지나 파괴된 나무는 부활합니다. 그러나 다시 사람들에 의해 두 나무는 파괴됩니다. 나무? 자연, 환경보호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걸까?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궁금해지는 순간. 인간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소설의 전반부에는 인물들의 소개로 시작해 금화가 실종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건 당일 금화와 쌍둥이 목화, 목수는 함께 산을 오릅니다. 금화가 앞서 걷던 중 나무가 쓰러지면서 금화를 덮치죠. 목화는 목수에게 언니를 지키라고 일르고 어른들을 찾아 내려갑니다. 목화가 어른들과 함께 나타났을 때. 목수는 또 다른 나무에 깔려 있었고, 금화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립니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금화가 사망했을 것이라고 단정하지만 목화와 목수만은 금화가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 소설은 실종된 금화와 남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구나 싶을 때쯤 이야기는 또 한번 반전을 가져옵니다.
바로 목화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 꾸게 된 꿈에서 사람들이 연이어 죽는 꿈을 꾸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이끌려 그 중 한 사람을 구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도 목화는 다양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죽는 꿈을 꾸고, 그 중 한 사람만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가서 받아. 의심하지 말고 구해. 네가 받으면 살아. 62p
그 능력은 목화만의 것은 아니었지요. 그녀의 엄마 장미수. 장미수의 엄마 임천자에게도 같은 능력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유전인 것이죠. 하지만 그 능력을 받아드리는 태도는 각자 달랐습니다. 할머니 임천자는 단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었고, 엄마 장미수는 패배감과 무력감에 신을 저주하죠. 목화는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해석할까요? 이것은 신이 주신 축복일까요, 재앙일까요?
이 소설은 죽음의 위기 앞에서 단 한사람만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목화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 신과 인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이야기는 프롤로그에서 소개한 나무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지요.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아서 그런지 굉장히 생소하기도 하고, 신비로운 느낌마저 드는 책이었어요. 어떤 신화나 샤머니즘 같은 이야기 같다가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만 하기에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이야기같기도 하고요. 밝고 경쾌하고 가벼운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마냥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도 아니에요. 같은 능력을 두고도 할머니는 기적이라고 했고, 엄마는 저주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할지도 독자의 선택에 달려있겠지요.
내 동생이 그 사람을 구하는 게 아니고 자기가 자기를 구한다는 뜻이지. 누가 대신 살아주는 거 아니잖아. 202p
읽고 나면 긴 여운이 남고, 생각이 많아지는 이야기.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 많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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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가장 신에게 질문을 많이 했던 때가 있었다. 바로 내가 늦은 나이에 쌍둥이를 임신했을 떄와 엄마의 파킨슨병 확진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나는 매번 신을 원망했다.
"왜 제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주셨나요?" "아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쌍둥이를 주시지 도움 받을 구석도 없는 제게 하나도 아닌 둘을 주셨나요?"
독실한 크리스천이셨던 엄마의 파킨슨병 소식을 들었을 때의 질문은 단 한 가지였다.
왜 하필 우리엄마인가?
더구나 요양보호사로 일하시면서 이 무서운 병을 두려워하는 엄마에게 왜 하필 이 병이 찾아왔단 말인가. 이게 평생 하나님을 믿으면서 헌신한 엄마의 믿음에 대한 대가란 말인가? 텔레비젼에서 7,80대 노인 연예인들도 건강하게 활동하는 연예인들이 많은데 왜 엄마는 이제 50대에 이런 무서운 형벌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소설 『단 한 사람』 은 내가 힘들 때마다 신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했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고 질문하며 이유를 찾는 이야기. 물론 앞서 내가 말했듯 왜 내게 이런 아이들을 주셨느냐보다 더욱 심오하고 깊은 질문들이다.
소설 속에서 나오는 장미수와 신일복 부부에게서 태어난 다섯 남매가 나온다.
일화, 월화, 금화 그리고 남녀쌍둥이 목화와 목수.
불행은 예고가 없이 찾아오듯, 이 가정에도 갑작스런 불행이 이들을 방문한다. 셋째 금화가 목화와 목수를 데리고 산에 가던 중 금화가 나무에 깔려 쓰러진 것. 어린 목화는 목수에게 어른들을 데리고 올 테니 언니를 잘 지키고 있으라고 말한다. 허겁지겁 어른들을 모시고 왔지만 이게 웬일인가. 금화 언니는 사라지고 멀쩡했던 목수가 나무에 깔려 쓰려져있다.
금화는 어떻게 된 것인가. 금화는 사라진 것일까? 금화는 죽은 것일까?
현장에 같이 있었던 목수는 이 사건을 끝내 기억하지 못하고 목화는 언니를 지키지 못했다며 자책한다. 십년이 지나도록 알 수 없는 금화의 실종. 누군가의 실종은 항상 불완전한 가정에 머물게 한다.
엎친 데 덮친 격. 또 다른 운명이 찾아온다.
쌍둥이 목화에게 어느 날 꿈속에서 사람들이 죽는 꿈이 펼쳐진다.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단 한 사람을 구하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엉겹결에 단 한 사람을 구한다. 믿을 수 없는 현실 속에 목화는 단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이 할머니 임천자, 엄마 장미수 그리고 자기에게 걸쳐 이루어진 운명임을 알게 된다.
이 믿을 수 없는 운명 앞에 목화는 당연히 질문한다.
왜 단 한 사람을 구하는 운명이 자신에게 왔는가? 죽어가는 사람이 많은데 왜 단 한 사람만 살릴 수 있는가? 그 단 한 사람이 악인일 수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신은 있기는 한 것인가? 이 수많은 죽음과 생 속에서 죽음과 삶은 무엇이란 말인가?
매번 반복되는 수많은 죽음 속에서 삶은 한없이 작아보이고 부질없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질문을 하는 자가 답을 찾는다고 했던가.
똑같은 운명에 체념한 할머니, 저항했던 엄마와 달리 끝까지 목적을 찾는 목화는 정반대에서 길을 찾는다. 바로 자신이 살린 단 한 사람을 통해서. 자신은 왜 단 한 사람만 살릴 수 있냐 했지만 단 한 사람은 결코 작은 게 아니라는 걸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세상의 수많은 질문과 분노와 좌절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이야기한다.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
이해할 수 없는 불행 앞에 슬퍼하고 두려운 미래 앞에 두려워하기보다 내가 살아가는 '오늘'을 살아가는 것. '오늘'을 살아가는 일에는 끝내 인정하지 못한 사라진 금화 언니의 마지막을 인정하는 것과 단 한 사람을 살리는 자신의 운명을 수긍하며 받아들이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늘'을 한없이 사랑하고 '오늘' 자신이 살릴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구하면서 비로소 삶을 즐긴다. 생의 마지막은 언제 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까지 마음껏 그리워하고 슬퍼하며 기뻐하기로 한다. 그걸 누릴 수 있는 자는 오직 영원한 '오늘' '지금'을 사는 자들의 특권이기도 하다.
소설 『단 한 사람』 을 읽으며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떠올린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에는 참아라. 기쁜 날은 반드시 올 터이니
마음은 미래에 사니 현재는 항상 어두운 법 모든 것 한순간에 사라지나 지나간 것 모두 소중하리니
속이고 슬퍼하고 우울함 속에서 우리가 참아내고 살아가야 하는 건 결국 모두가 사라진다는 것. 우리가 미래만을 바라보니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어둡게 살아가는 것. 결국 푸시킨의 시와 최진영의 소설 소설의 『단 한 사람』 은 서로 닿아있다.
똑같은 운명 앞에 분노하고 저항한 삶을 살았던 엄마와 체념하듯 살았덨 할머니와 엄마는 현재를 살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을 받아들인 신목화는 '단 한 사람'을 인해서 감사하며 오늘을 기뻐하고 사랑하며 슬퍼한다.
소설을 읽어나가며 나는 생각해본다. 나는 내 삶의 가장 질문을 했던 그 순간들에 대해서 답을 찾았는가? 나는 알고 있다. 답은 없다. 답은 살아지면서 아는 것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오늘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니까.
며칠 전 쌍둥이 아이 하나가 우리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는 우리가 쌍둥이가 아니라 한 명만 있었으면 어땠을 것 같아?"
힘들었을 때 한참을 했던 질문과 상상들. 하지만 이제는 부질없는 질문인 걸 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오늘은 쌍둥이므로 그런 상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엄마의 병 또한 마찬가지다. 신이 왜 엄마에게 큰 병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달라졌을까. 그 질문 또한 의미가 없다.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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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에 심은 단풍나무가 죽었다. 비가 계속 내리고 난 후부터였다. 초록색이던 나뭇잎이 거뭇거뭇해졌다. 한 달째 내리는 비 때문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 여겼다. 갈색으로 물들어있는 나뭇잎이 내년 봄이 되면 나아질 거라는 마음을 품고 있다. 겨우내 땅속에서 잘 견뎌서 내년에는 초록색 잎을 틔우길 바라고 있다.
씨앗에서 움튼 어린 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키 큰 나무 그늘에서 자라 큰 나무가 되어 다른 어린 나무를 감쌌다. 어느 날 두 발로 걷는 인간들이 나타나 나무들을 베었다. 밑동만 남겨진 나무에도 새싹이 나와 자라기 시작했다. 줄기는 둘이나 뿌리가 하나로 얽힌 나무는 사람에게 파괴된 적이 있었다. 나무 또한 인간을 파괴한 적이 있다.
장미수는 신복일과 결속하여 다섯 사람을 낳았다. 일화, 월화 금화, 목화, 목수는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금화는 쌍둥이 목화, 목수와 함께 숲속으로 갔다. 금화의 머리 위에 커다란 나무가 입을 벌리듯 기울었다. 쌍둥이는 금화를 빼내려고 했으나 커다란 나무와 금화는 꿈쩍하지 않았다. 어른들을 찾아 나섰던 목화가 다시 돌아왔을 때 목수는 나무 밑에 깔려있었고 금화는 사라졌다. 목수는 그때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해 오래도록 괴로워했다.
열여섯 살이 된 목화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사람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놀란 목화에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을 구하라는 말이었다. 비슷한 꿈들이 이어지고 단 한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무가 지정한 단 한 사람을 구하지 않았을 때 목화는 아프기 시작했다. 신이 내린 벌이었다. 목화는 엄마 장미수와 달리 자기를 소환하는 신이 나무라는 걸 알았다. 목화와 엄마 장미수, 할머니 임천자까지 이어지는 숙명이었다.
할머니 임천자가 단 한 사람을 구해내는데 순응했다면, 장미수에게 신은 부당했으며 악의 없이 잔인한 존재였다. 서목화는 첫 소환부터 목소리와 동시에 나무를 느꼈다. 목화는 나무와 사람 사이의 ‘중개’로 여겼다. 임천자와 장미수, 서목화가 단 한 사람 만을 구할 때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사건을 떠올렸다. 세월호 사건과 이태원 사고였다. 그 사건에서도 주인공처럼 누군가 단 한 명을 구할 수도 있었을 거다. 모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안타까워했을 것이며, 나무의 명령을 거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야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어떤 사랑은 끝이 없어서 사랑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떤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끝이 없다. 어떤 사랑은 너무 가까이 있어 시작이 없다. (155페이지)
우리는 오늘을 산다. 내일을 위해 산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를 위해 사느냐고 묻는다면 모두 자기를 위해 산다고 할 것이다. 모든 순간, 우리의 삶에 신이 개입한다면 어떨까. 삶과 죽음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맬지도 모르겠다. 내가 구하고 싶은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어야 할 때, 만약 누군가를 해한 사람을 구해야 할 때 거역하고 싶지 않겠는가. 오히려 인간보다 더 영원한 삶을 누릴 생명체, 식물이 인간의 삶에 개입해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지구에 나타난 여러 현상과도 맞물린다.
죽음에 대한 애도이면서 신화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무와 인간에 얽혀진 이야기, 대를 이어오는 삶의 책임과 무게, 신이 준 역할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는 고대 신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현재의 삶을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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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이 만들어낸 최고의 소설 중 하나가 아닐까 생걱한다. 작가는 언제나 우리 삶에 바짝 붙어 있는 이야기들을 거리낌 없이 다루며 긁어내고 벗겨내고 위로했다. 단 한사람에서는 나무의 부름을 받는 중개인이라는 약간으 판타지와 신화적 요소를 섞어 새로우 세계를 보여쥬는듯 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삶과 사랑을 다룬 더욱 현실적인 책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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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고 단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꿈... 꿈이 아니고 현실이다. 기적인가? 저주인가? 첫장부터 눈물이 나왔다. 서로 의지하며 자라는 두 그루의 나무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현실을 꿈꾸며 단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모녀들이 어떤 사건을 겪을지 기대하며 아껴 읽는 중. 최진영 작가님의 책은 믿고 봅니다. 이 책 또한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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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목소리가 단 한사람만을 지명한다. 그 사람만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나라면 어땠을까.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계속 저항 했을까. 일단 부모를 원망 했을거고,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닳고 아마 되게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 했을 거 같다. k직장인의 성실함을 여실히 보여 줬을거다. 성실한 태도에 탄복한 어떤 목소리가 이제 두사람을 구할 수 있게 능력 업그레이드 해주겠다! 할수도 있다. 가볍게 생각하면 그렇고, 아마 내내 슬프겠지. 가만히 보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이 너무 화나고 슬프고 절망적일거 같다. 책에서는 네명의 사람 모두 똑같이 능력이 주어지지만 그걸 받아 들이는건 모두가 다르다.각자 그저 신이 주신 숙명, 무거운 짐, 벗어나고 싶은 저주 또는 슈퍼히어로가 되는것으로 받아 들인다. 같은 걸 받았지만 누구에겐 한사람 빼고 모두를 죽이는일이 되고 누구에겐 단 한사람을 살리는 일이 되는 거다. 현실에도 책 못지 않게 각자 가지고 태어난 무거운 뭔가가 있는거 같다. 두고 가버릴 수 없어 사는 내내 짊어지고 살아가야하는. 그것들은 각자 다른 형태인거 같아 보이지만 뿌리를 찾아 내려가면 겨우 열가지 내외의 큰카테고리로 추려 질지 모른다. 같은 것을 가졌어도 철수에게 별모양으로 보이고 영희에게는 달모양으로 보이는거다. 내게 주어진 그 무언가로 자기 연민에 빠져 불행해 지진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살지 말아야지. 어둠 보단 빛을 먼저 봐야지 생각했다. |
| 수많은 죽음 속 단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 기적 혹은 겨우 아니면 단 한 사람 그 자체. 임천자와 장미수, 신목화 세 인물은 중개라는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시선은 전혀 다르게 표현된다. 나는 신목화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기로 했다. 지금 옆에 있는 모든 이들 각자가 소중한 단 한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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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에 나무 이야기부터 소름 끼치게 좋았어요 낭만을 뛰어넘은, 죽음도 뛰어넘은 단둘의 결속 같은 것을 우주에서 가장 잘 쓰시는 분이 최진영 작가님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그리 덤덤한 문체로 이토록 사무치는 글들을 적어나가시는지요 국내에 예측 가능한 죽음도 읽혀서 애도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올해의 소설 중 하나가 되었어요 자주 곱씹고 꺼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