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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와 함께 하는 실존적인 삶
"조르바와 함께 하는 실존적인 삶" 내용보기
「…힌두교도들은 <사부>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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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도들은 <사부>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작가 자신이고 윗 글을 보면 조르바라는 사람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 수 있다.   주인공은 고등 교육을 받고 보수적인 사고 방식이 깃든 점잖은 사람으로, 크레타 섬에 사놓은 갈탄광을 운영하러 가던 배 안에서 키가 크고 눈빛이 강한, 60대 중반의 조르바를 만나 사업의 파트너가 되고, 같이 생활을 하게 된다. 그 후 사업이 망하기까지 몇 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조르바에게 깊은 감명을 받는 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르바라는 사람은 이렇다.   「새끼손가락 하나가 왜 없느냐고요? 질그릇을 만들자면 물레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왼손 새끼손가락이 자꾸 걸리적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도끼로 내려쳐 잘라 버렸어요.」   「결혼 말인가요? 공식적으로는 한 번 했지요. 비공식적으로는 천 번, 아니, 3천 번쯤 될거요. 정확하게 몇 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수탉이 장부 가지고 다니는 거 봤어요?」   「확대경으로 보면 물속에 벌레가 우굴우굴한대요. 자, 갈증을 참을 거요, 아니면 확대경을 확 부숴 버리고 물을 마시겠소?」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 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랴,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책을 통해 지식을 쌓고 세상을 알아가던 주인공과는 달리 무식쟁이 노동자인 조르바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그 모든걸 몸소 살아낸다. 주인공이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을 살과 피로 싸우고 입 맞추며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다.   주인공은 지식과 보수적 사고 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오렌지나무집 과부는 오래도록 내려온 인습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부불리나는 과거의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의 추억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슬플 때, 기쁠 때, 절망할 때 춤을 출 수 있는 조르바는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뭐든 몸으로 직접 해내는 조르바 앞에서 그 동안 머리로, 생각으로만 살아왔던 주인공은 깊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훗날 생의 막바지에서 이렇게 회고했다고 한다. "세상의 광채는 호메로스에게, 구원은 부처에게, 철학은 베르그송에고 배웠고 삶에 대한 사랑은 조르바에게 배웠다."     '장미의 이름'처럼 빈 공간 하나 없는 작은 글씨 인데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덕분에 처음엔 읽는데 애를 먹었지만 400페이지 즈음부터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며 단숨에 읽어 버렸다.   주인공이 광산을 잃고 자유를 맛보는 장면에선 나 또한 뜻모를 해방감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순간 느낀 자유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상은 우리가 다른 것들을 하지 못하게 하는,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이 곳에 있게만 만드는 장애물과도 같은 것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작은 것 하나에 모든걸 내던지藪? 계산하고 따져보고 의식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뭘하든 선뜻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나를 조르바가 본다면 얼마나 한심스럽고 답답해할까?   다들 이 유쾌하고 직설적이고 원초적인 조르바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실존적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걸 직접 보여주는 명작, 정말 강추하는 책이다.    
t*********a 2006.02.16. 신고 공감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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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르바는 어디에 있을까?
"나의 조르바는 어디에 있을까?" 내용보기
인생성공 단십백이란 말이 있다. 한 명의 위대한 스승과 열명이 친한 친구와 백 권의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 만큼 자신의 주위에 머무르면서 그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매체들을 얘기한 것이리라. 카잔차키스는 "영원의 자서전"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삶을 풍부하게 해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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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성공 단십백이란 말이 있다. 한 명의 위대한 스승과 열명이 친한 친구와 백 권의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 만큼 자신의 주위에 머무르면서 그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매체들을 얘기한 것이리라. 카잔차키스는 "영원의 자서전"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삶을 풍부하게 해준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 내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이 누구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꼽을 것이다.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 이 고백을 통해 그 역사적인 인물들과 조르바를 동일시하고 그가 카잔차키스의 정신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항구 도시 피라에우스의 선술집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난 주인공 카나바로는 그의 특이한 매력에 이끌려 그의 광산에서 일하여 줄 것을 부탁한다. 그렇게 그들의 동거는 시작되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특이한 괴팍성을 보여주었던 사람. 여러가지 사건들을 통해 그의 정신세계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전쟁을 통해 새끼 손가락을 잃었을 것이라 짐작하던 주인공이 조르바에게 어쩌다 그렇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새끼손가락 하나가 왜 없느냐고요? 질그릇을 만들자면 물레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왼손 새끼손가락이 자꾸 걸리적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도끼로 내려쳐 잘라 버렸어요." 또 한 번은 그랬다. 그의 바람기를 본 주인공이 결혼은 몇 번이나 했냐고 묻자 "결혼 말인가요? 공식적으로는 한 번 했지요. 비공식적으로는 천 번, 아니, 3천 번쯤 될 거요. 정확하게 몇 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수탉이 장부 가지고 다니는 거 봤어요?" 이렇듯 자신의 자유를 즐겼던 조르바.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수도승들이다. 하나님이 즐기면서 즐겁게 살라고 준 자유를 굳이 외면하며 풀 한 포기 나지 않고, 동물 한 마리 볼 수 없는 산 꼭대기에서 금식하고, 철야기도 드리며 고통스러워 하는데 이걸 즐기는 수도사를 보며 조르바는 이렇게 얘기한다. "악마나 물어가라지." 하나님이 준 자유를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할 자들이 고통받아가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 고통을 전해주고 있으니 그들보다 더 바보들이 어디있냐며 수도사들을 조롱하기도 한다. 케이블카를 설치하기 위해선 좋은 케이블을 사야 한다며 물건 사러 간 사람이 거기서 젊은 여자를 만나 흥청망청 쓰고 돌아왔지만서도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사람. 그가 바로 조르바였다. 카잔차키스는 그의 다른 책인 "영혼의 자서전"에 이렇게 기술해 놓았다. "힌두교들은 <사부>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그만큼 조르바가 작가에게 미친 영향력은 대단했다. 어디선가 조르바가 나타나 몇 권을 책을 보며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다 아는것처럼 거들먹 거리는 나를 보며 이렇게 얘기할 것만 같다. "두목, 당신은 그 많은 책 쌓아 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랴.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난 오늘도 책을 통해 지식을 쌓아가며 나 자신을 속박해간다.
l**********e 2006.04.21.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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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원치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나는 아무것도 원치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내용보기
지금은 문을 닫은 것으로 알고 있는 고려원의 카잔차키스 전집의 2권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났다. 역자는 이윤기씨로 열린책들 판과 동일하고 당연히 장정은 다르다. 열린책들 판은 동명의 영화로 유명한 앤소니 퀸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운 반면에 고려원 판은 검은 색 표지가 무척이나 인상적인 카잔차키스의 얼굴이 나와 있다. 아마 상당수의 사람들이 동명의 영화를 보고 이 책을
"나는 아무것도 원치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내용보기
지금은 문을 닫은 것으로 알고 있는 고려원의 카잔차키스 전집의 2권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났다. 역자는 이윤기씨로 열린책들 판과 동일하고 당연히 장정은 다르다. 열린책들 판은 동명의 영화로 유명한 앤소니 퀸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운 반면에 고려원 판은 검은 색 표지가 무척이나 인상적인 카잔차키스의 얼굴이 나와 있다. 아마 상당수의 사람들이 동명의 영화를 보고 이 책을 찾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나도 예전에 명화극장에서 몇번 방영했던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특히 맨 마지막 갈탄광 사업이 망해버린 뒤 조르바와 '나'가 해변에서 함께 춤을 추며 끝나던 엔딩 장면이 오랫도록 기억에 남았다. 라즈니쉬가 '조르바 붓다'라는 조어를 만들면서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가진 인간을 표상했던 것처럼, '조르바'는 바로 이 순간에 충실한 자유인을 나타낸다. 이 책을 처음 접했던 시절, 책 속의 화자인 '나'의 모습이 어찌나 나 자신의 모습과 닯아 있는지, 그래서 '나'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조르바처럼 살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다른 이들도 그러하겠지만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 유난히 읽고 싶어지는 책이 있다. 나에게 있어 [그리스인 조르바]는 책 속의 첫 장면에서와 같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이거나, 답답하고 우울한 날에 책장에서 끄집어 내게 되는 책이다. 비록 그의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진 못하지만, 책에 골똘히 눈을 기울이는 시간 만큼은 나는 다시 그의 곁에서 그의 얘기, 그의 웃음, 그의 눈물, 그의 노래, 그의 춤을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카잔차키스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는 말. "나는 아무것도 원치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얶매임 없는 자유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번쯤 함께 해야할 책이 아닌가 싶다.

[인상깊은구절]
이윽고 그는 춤에다 몸을 맡기고, 손뼉을 치는가 하면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발 끝으로 도는가 하면 무릎을 꿇었다 다리를 구부리고 다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 흡사 고무로 만든 사람 같았다. 그는 갑자기 자연의 법칙을 정복하고 날아가려는 듯이 공중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그를 보고 있노라면, 늙은 육신 속에 그 몸을 들어다 어둠 속에 유성처럼 던져 버리고 싶어 안달을 부리는 영혼이 하나 있는 것 같았다.오래는 공중에 머물 수 없어서 땅에 떨어질 때마다 그의 몸은 몹시 흔들렸다. 그러나 그의 몸은 사정없이 흔들리면서도 다시 더 높이 뛰어올랐다. 뛰어올랐지만 그의 불쌍한 육신은 쉴새없이 다시 땅에 떨어졌다.
YES마니아 : 로얄 s******i 2004.01.14.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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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 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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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르바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최근 23년 11개월 만에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화제가 되었다. 이전보다 무려 3개월이나 앞당긴 기록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건은 무리를 이루고 사는 인간관계에서 서로를 비교함으로 서로의 위치를 정하고 서열을 메기는 방법이다. 서로간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생존 이유를 찾고 경쟁 하는 인간 무리. 조르바는 피조물이 아닌 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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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르바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최근 23년 11개월 만에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화제가 되었다. 이전보다 무려 3개월이나 앞당긴 기록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건은 무리를 이루고 사는 인간관계에서 서로를 비교함으로 서로의 위치를 정하고 서열을 메기는 방법이다. 서로간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생존 이유를 찾고 경쟁 하는 인간 무리. 조르바는 피조물이 아닌 스스로 창조자이기를 바라는 인간이다. 그는 외부 대상과 자신의 관계를 스스로 설정하고, 그 설정을 근거로 행동한다. 그에게 기존의 사회 규범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거추장스러운 옷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그 옷에 자기를 맞추기 보다는 그 옷을 벗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에게 자유는 없다. ‘자유’ 역시 사회적인 형식이나 규범에 대응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조르바에게는 단지 조르바 자신만이 있을 뿐이다. 조르바의 ‘자유로움’은 <그리스 인 조르바>의 저자나 독자인 나의 시각일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 본다면 위에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한다. ‘나는 조르바가 될 수 있을까?’ 기독교 신화에 나오는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인간이 가지게 된 벌거벗음에 대한 수치심을 가리기 위한 옷가지들… 이러한 옷가지를 벗어 던짐은 수치심을 벗어 던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인 수치심.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서 오는 수치심. 금전적으로 못 가진 자의 수치심. 외모적인 초라함에서 오는 수치심 이러한 수치심과 상반되는 우월감, 그 우월감을 과시하고 싶은 모든 행위들… 이러한 수치심을 가리기 위해 화려한 옷가지를 걸치고, 액세서리를 치장하고 집을 나서 타인을 만난다. 누드집을 내는 사람들은 형식적인 옷가지를 벗었지만 이들은 사회의 기준에 맞춰 잘 만들어진 몸둥이를 가지고 있다. 다른 형식의 옷가지를 걸치고 있을 뿐이다. 사회는 새로운 색으로 끊임없이 덧칠해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조르바가 될 수 없다.’ 나에게는 가족이 있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 있다. 이러한 옷가지들을 벗어던질 용기가 나에게는 없다. 그래서 나는 다른 옷가지를 찾는다. 나를 가릴 옷가지를 찾는다. 그리고 그 옷가지를 가릴 옷가지를 찾는다. 이렇게 세련되게 덧입은 옷가지들 속에 ‘나’라는 존재는 사라진다. ‘나’는 사라지고 나를 치장한 옷가지만 남는다. 나는 사라지고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만이 남는다. ‘나는 나일 뿐이다.’ 나는 내가 입은 옷가지들은 벗을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옷가지들 역시 나이기 때문에 벗을 필요가 없다. 이렇게 나는 하나의 옷가지를 더 걸치고, 나의 수침심을 가린다. 그리고 나는 우월하다고 잘난 채를 하고 있다.


z****r 2005.02.23.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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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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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덮고서 잠을 자려고 누웠다. 한참이 지나도록 잠이 오지 않았고, 어느 새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눈물이 흘렀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조르바의 죽음이 내게도 너무나도 슬펐던 것이었을까?   20세기 초, 이제 막 독립한 그리스, 주인공 ‘나’(저자와 동일인물)는 고향인 크레타 섬으로 향한다. 그 도중에 육십 정도의 나이를 먹은 ‘알렉시스 조르바’ 라는 독특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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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덮고서 잠을 자려고 누웠다. 한참이 지나도록 잠이 오지 않았고, 어느 새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눈물이 흘렀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조르바의 죽음이 내게도 너무나도 슬펐던 것이었을까?

 

20세기 초, 이제 막 독립한 그리스, 주인공 ‘나’(저자와 동일인물)는 고향인 크레타 섬으로 향한다. 그 도중에 육십 정도의 나이를 먹은 ‘알렉시스 조르바’ 라는 독특한 인물을 만나 함께 된다. 주인공 ‘나’는 혼란스럽던 20세기 초의 전형적인 유럽의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을 것이고, 많은 것에 대해 허무를 느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조르바는 완전 다르다. 난봉꾼에, 싸움꾼, 주정뱅이 등 탐욕스럽고, 괴짜스럽지만 초탈한 것 같은 모습은 누구보다 지혜로워 보이며, 따듯한 마음씨를 지니고 있다. 자신을 ‘젊은 사장’ 이라 부르는 이 조르바가 주인공은 싫지가 않다.

 

내 생각에 조르바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러 신들을 종합해 놓은 상징인 듯하다. 난봉꾼 같은 모습은 신들의 아버지 같기도 하고, 숱한 전쟁을 겪어 온 모습은 전쟁의 신 같기도 하며, 맡은 일에는 미친 듯이 몰입하는 모습은 대장장이 신 같기도 하며, 술과 음악의 신 같기도 하다. 하느님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주인공의 말에 조르바는 ‘악마 역시도’ 라고 대꾸한다. 난 이 대화 내용이 이 소설의 모든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은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동안 기독교의 세계였던 유럽에서 악마를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일신교의 세계에서는 불경스러운 일, 하지만 신들의 나라였던 그리스에서라면 가능하다. 다만 유일신 외에는 악마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개 너무 급하고 가볍게 읽은 것 같다. 주인공과 조르바 사이에 에피소드와 대화는 흥미로웠지만 그 안에 있는 의미들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고민해보지 않은 것이다.

 

s********g 2012.02.0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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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수단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인정하기
"자신을 수단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인정하기" 내용보기
삶과 죽음, 빛과 어둠, 논리와 감정. 서양문학은 이성과 논리를 대변하는 아폴론과 본능과 감정을 대표하는 디오니소스의 대립 구조를 다루는 글이 많습니다. 빛이 있으니 어둠이 있고, 삶은 죽음앞에서 생동하게 됩니다. 이러한 대립 구조는 읽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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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빛과 어둠, 논리와 감정. 서양문학은 이성과 논리를 대변하는 아폴론과 본능과 감정을 대표하는 디오니소스의 대립 구조를 다루는 글이 많습니다. 빛이 있으니 어둠이 있고, 삶은 죽음앞에서 생동하게 됩니다. 이러한 대립 구조는 읽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줍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화자 오그레는 조르바를 통해 본능적인 욕구에 충만한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합니다. 조르바는 오그레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지만,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죠. 오그레는 왜 조르바를 만나고 싶었을까요? 자신에게 부족한 기질을 보충하고 싶은 숨겨져 있는 본능적 욕구 아닐까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을 때 마다 책이 주는 의미가 매번 다르게 느껴집니다. 나름 디오니소스적인 삶을 살았을 때에는 ? 생각도 몸도 젊은 시절이었죠 ? 오그레와 조르바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은 오그레를 추구하면서도, 몸은 조르바를 추구하는 식이죠. 오그레와 조르바 그 누구에게도 동조할 수 없었던 나는 자신의 이유로 발현되는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읽는 내내 이 책을 읽지 않을 자유를 생각했습니다. 다시 찾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내 위치는 명확해졌습니다. 물론 화자 오그레쪽이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다른 정열에 사로 잡혀 나만의 자유를 잃어 버린 것일까요? 이상(理想)이나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내가 추구했던 무엇과 그 무엇을 얻기 위한 선택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무엇에 치중한 삶은 나의 무엇이 아닌, 무엇의 나로 내 자신을 종속시켰습니다. 신재호 선생님이 말씀하셨죠. 부처가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의 부처가 되지 못하고 부처의 한국이 된다고. 이놈의 노예 근성을 어찌 할까요? 인생의 판은 커졌지만 제가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은 좁아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나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를 생각합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우리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게 됩니다. 무엇에 빠져 허덕이고 있을 때, 하나의 무엇을 정복하고 다른 무엇으로 넘어갈 때, 그 무엇 위에서 자신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고 위안하면서도 불안할 때,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지구 건너편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시점입니다. 무의식에 숨겨 둔 자신의 반쪽에 대한 욕구를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그림자만 보고도 만족해 하는 삶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우리는 조르바를 만나게 됩니다. 그 순간을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하지만, 어느새 나는 다시 골방에 쳐 박혀 있습니다. 일상에 묻혀 자신의 욕구에는 회피로 일관합니다. 다시 삶의 진창에 빠져 허덕이다가 무의식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부르짖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오그레와 조르바처럼 다리에 줄을 묶고 긴 여행을 떠나면 좋을 텐데요. 날마다 조르바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텐데요.

인간의 모든 행동은 욕구를 충적시키는 과정입니다. 욕구의 충족 여부에 따라 우리의 감정이 결정되죠. 내가 불편한 감정이 생겼다는 것은 내 안의 어떤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을 포착하고 어떤 욕구 때문인지 자신을 살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단순한 메커니즘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으면 일상이 힘들어집니다. 욕구와 감정의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조르바를 바라보면 자신의 욕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인간 본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아이처럼 행동하는 조르바입니다. 하지만 화자 오그레의 욕구표출 방식은 어색하고 불안합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카잔차키스는 이 지점에서 자신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조르바는 오로지 자기 자신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춤을 추면서 상대와 소통하는 쾌감을 경험합니다. 경험은 누적되고 춤은 자신의 언어로 자리잡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춤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굳건히 합니다.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행동이 다릅니다. 욕구를 자연스럽게 표출할 수 있는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직결되어 있죠. 자신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소통하는 조르바는 그토록 인간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그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주위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은 자신을 욕구가 없는 사람으로 만들거나 주위를 모두 가짜 깃털로 꾸미는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몸이 아플 때를 생각해 보세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서 주변의 시선과 관계없이 안으로만 왜소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 신앙에 대한 믿음, 한번도 온전히 누군가를 믿은 적이 있었을까요? ‘세상 믿을 게 없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믿음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과는 아래로 떨어진다는 믿음, 하늘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거라는 믿음, 죽음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믿음, 나는 내일도 존재할 거라는 믿음, 온통 믿고 사는 것 뿐입니다. 인간이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걷고자 하는 욕구를 뇌와 신경 그리고 근육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만 걸을 수 있습니다.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넘어지고 일어서서 다시 걷는 과정을 수 없이 거쳤습니다. 걷는 행위에 대한 나의 확신이 쌓여서 지금은 무의식적으로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식 역시 감각에 대한 믿음에 기초합니다. 실제로는 이렇게 믿고 사는 것 투성이면서도 어딘가 아픈 사람인양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믿음은 풍선 같은 것이지요. 두터운 현실의 벽 앞에 잠시 믿음이라는 풍선이 쪼그라 들었을 뿐, 내가 쌓아온 역사마저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나를 헛된 사람으로 만들었던 내 안의 왜곡을 온전히 바라보고 싶습니다. 왜곡을 벗은 온전한 나를 마주보고 싶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마주보기에는 동행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자신을 비춰 볼 수 있는 조르바 같은 대상은 우리 주위에 가까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일상에서 여러 번 조르바를 만났을 겁니다. 골방에 내 자신을 가두고 회피로 일관했기에 알지 못했을 뿐입니다. 별이 빛나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어두운 밤을 인정해야 합니다. 별이라는 이상(理想), 빛이라는 무엇만 추구해서는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별에 함몰되고 빛에 눈이 멀어 버립니다. 이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인정해 주어야지요. 인정하고 지지하면 자신만의 결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그레는 헤어지면서 조르바에게 말합니다. “나는 책으로 책을 정복할 겁니다. 종이를 잔뜩 먹으면 언젠가 구역질이 날테지요.”

p********k 2018.03.0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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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남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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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히 오랫동안 읽었다. 번역에 관하여는 잘 모른다. 외국어하고는 거리가 멀어 이윤기님만 믿고 읽었다.   이 남자...조르바. 너무 좋다. 지식은 없지만 잔머리 굴리지 않고 가슴으로 말하는 인간. 영혼은 자유롭고 무식하다고 함부로 지껄이지 않으되 벨 꼴리는데로 말하고 벨 꼴리는 데로 살되 결코 남을 아프게 하지 않은 정직하게 인간적인 인간.   집안에 전기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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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히 오랫동안 읽었다. 번역에 관하여는 잘 모른다.

외국어하고는 거리가 멀어 이윤기님만 믿고 읽었다.

 

이 남자...조르바.

너무 좋다. 지식은 없지만 잔머리 굴리지 않고 가슴으로 말하는 인간.

영혼은 자유롭고 무식하다고 함부로 지껄이지 않으되 벨 꼴리는데로 말하고

벨 꼴리는 데로 살되 결코 남을 아프게 하지 않은 정직하게 인간적인 인간.

 

집안에 전기가 나가면 이웃집 남자 한명쯤 사귀고 싶었는데

조르바가 내 이웃집 남자였으면 좋겠다.

 

조르바가 죽던날(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날)

나의 영원한 술 친구 남편과 술을 마셨다.

주정하듯 "내 애인이 죽어 버렸어"했더니

"누구?""조르바! 내 가슴이 아퍼. 그래서 술 생각이 났어"

하하하.....^^

 

 

q******0 2011.11.22. 신고 공감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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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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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   내가 정말 흠모하는 인물이다~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다 읽고나면 정말 조르바처럼 인생을 자기의 주관대로 거침없이 후회없이 살고싶은 충동이 마구 솟구칠 것이다. 또한 이 책의 배경이 되는 그리스로의 여행으로의 충동도 강하게 일으키는 책이다.   p/s:지은이 니코스 카잔챠키스의 실제 주변인물인 조르바의 실제이야기를 토대로 소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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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

 

내가 정말 흠모하는 인물이다~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다 읽고나면 정말 조르바처럼 인생을 자기의 주관대로 거침없이 후회없이 살고싶은 충동이 마구 솟구칠 것이다.

또한 이 책의 배경이 되는 그리스로의 여행으로의 충동도 강하게 일으키는 책이다.

 

p/s:지은이 니코스 카잔챠키스의 실제 주변인물인 조르바의 실제이야기를 토대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나의 완소 소설중에 하나!!

v******6 2008.06.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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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인간이란 바로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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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 노벨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올랐다고 하는데 무지한 나는 이름조차 처음들어 입으로 몇 번이나 반복해 겨우 입에 올릴 수 있게 되었는데, 책을 읽기 전에 표지 안쪽의 작가 소개를 읽고 책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어떤 책이기에 도스토예프스키와 비길만한 작가라는 찬사를 받을까.   조르바는 작가가 직접 만난 적이 있는 인물이라 한다. 작가가 자신의 삶에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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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 노벨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올랐다고 하는데 무지한 나는 이름조차 처음들어 입으로 몇 번이나 반복해 겨우 입에 올릴 수 있게 되었는데, 책을 읽기 전에 표지 안쪽의 작가 소개를 읽고 책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어떤 책이기에 도스토예프스키와 비길만한 작가라는 찬사를 받을까.

 

조르바는 작가가 직접 만난 적이 있는 인물이라 한다. 작가가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의 하나로 호메로스와 함께 꼽는 사람이라는데, 과연 그러했다. 인간이 그 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 만큼 살아있을 수 있을까. 조르바는 정말 살아있는 인간이었고, 생명력 그 자체라는 인상을 받았다. 어느 하나 거칠 것이 없고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 일분 일초도 그저 숨쉬는 법 없이 생생히 온 몸으로 살아 숨쉬는 사람. 세상의 모든 일들을 마치 처음 겪는 일인 것처럼 느끼고 받아들이는 사람. 모든 금욕을 거부하고 세상이 선사하는  기쁨-맛있는 음식, 술, 여자, 춤, 노동-을 누리고 사는 사람. 누구보다도 인간의 본능에, 본성에 충실하면서도 한 점 부끄러움 없고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비난할 수도 없게 하는 사람. 오히려 이제껏 당연하게만 여겨왔던 글쟁이의 관념을 부끄럽게 만들어버리는 인간.

 

그에게는 지켜야 할 것도 쟁취해야 할 것도 없었기에 오직 자신의 그 한몸뚱아리로 모든 것을 누리고 살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어찌보면 가장 쉬워보이고 한량같아 보이는 삶이지만, 아무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정말 한량같은 삶이어서가 아니라 지키고 싶은 것, 차지하고 싶은 것이 많은 인간의 욕심때문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을 비우고 나면 세상을 담을 수 있지만, 손에 있는 것을 놓아버리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애국, 성공, 종교 등등-은 사실 사람이 가치가 있다고 정한 것일 뿐 사실 정말 가치 있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매 순간을 살아 숨쉬는 것이 아닐까. 내 존재와 세상의 존재를 잊지 않는 것, 끊임없이 호흡을 주고받고 교감을 나누는 것. 밤하늘의 별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하루가 책 한권 읽는 하루보다 더 살아있는 하루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작가는 조르바와 함께 지내는 동안 샌님같은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책벌레로만 살아온 삶이 얼마나 죽은 삶인지를 깨닫는 그 과정이 즐겁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자기가 살아온 삶을 통째로 부정하고 자기가 갇혀있던 그 껍데기를 깨고 나가야 조르바와 같은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삶이라는 것을 그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결국 작가는 그 껍데기를 깨지 못했다. 조르바와 좀 더 오래 함께 지냈으면 가능했을까? 껍데기를 깨고 진정한 자유로움과 생명력이 넘치는 세상으로 나가기에는 두려움이 무엇보다 컷을 것이다. 나도 책을 읽는 내내 조르바 생명력과 그가 인생을 바라보는 통찰력에 감탄했으면서도 그저 책을 다 읽고는 조르바를 그 안에 가두고 책을 덮어버렸다. 내 안에 조르바를 데려오기는커녕 그저 조르바의 말 몇마디만 겨우 잡아 담아뒀을 뿐인데도 그 말들이 내 안 이 곳 저 곳을 부딪치며 날 건드리고 있다.

 

살아있음이 무엇인지,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진정으로 부끄럽지 않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생각만 해볼 것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겪어보고 세상으로부터 부단히 배워나갈 일이다.

h****h 2007.10.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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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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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의 언어를 아예 이해하지 못한 채 흉내만 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해는 하지만 연금술의 언어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 또한 알기에 마침내 좌절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지." "그럼 세 번째 부류는요?" "연금술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연금술의 비밀을 얻고,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자의 돌'을 발견해낸 사람들일세." 사람을 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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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의 언어를 아예 이해하지 못한 채 흉내만 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해는 하지만 연금술의 언어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 또한 알기에 마침내 좌절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지." "그럼 세 번째 부류는요?" "연금술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연금술의 비밀을 얻고,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자의 돌'을 발견해낸 사람들일세."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중에서=""> 사람을 흡수하는 책들이 있다. 어제 읽은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그랬고, 오늘의 '그리스인 조르바' 역시 이런 책이다. 일주일간 책 한 권이라도 읽자던 '부자유'스런 계획은 어김없이 무너졌다. 이것은 책의 유혹이며, 아직 그에 부자유스런 내 이성의 소치이다. 조르바. 그는 연금술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철학자의 돌'을 발견해낸 연금술사이다. 니체의 '초인사상', 베르그송의 '생의 약동'과 같은 '쓰레기' 용어들은 그에게 불이나 싸지를 쓸모없는 물건에 불과하지만 그는 몸으로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위대한 모순이다. 모든 것은 하나고 하나 조차도 빈 것이 되는 진리 그 자체. 그것은 글이라는 정체된 수단에 비해 너무나 간단하면서 어렵다. 그것은 있는 썩은 사념적 틀이 아닌 온 몸으로 그 자체를 즐기는 자에게만 그 빛을 보여준다. 조르바와 같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인상깊은구절]
자유로움을 운운하며 아직 책의 세계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책의 주인공을 보고 조르바는 이렇게 말한다. '...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 이 잡것이! 줄을 놓쳐 버리면 머리라는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거지. 그라나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노란 양국 맛이지. 멀건 양국 차 말이오. 럼주 같은 맛이 아니오.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y******9 2005.04.0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