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량청의 '한 사람의 마을'은 어딘지 익숙한 듯 하면서도 묘하게 낯선 풍경을 눈 앞에 선명하게 그려낸다. 온통 차분한 배경 속에 녹아들어 글도 그 자리에 멈춰선 것처럼 고요할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끝없는 변화를 목격하는 작가의 시선처럼 읽다 보면 배경이 그저 배경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풍경이 되어 흘러가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자연 속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얼마나 꾸밈없이 소박하면서도 품위 있게 펼쳐놓을 수 있는지가 이 수필집에서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우리 나라의 자연과는 확연히 다른 광대함과 건조함이 손에 잡힐 듯이 감각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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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마리 짐승이다. 누가 누구를 이끈다고 할 수 없다. 발자국과 발굽 자국이 늘 함께 걷는 듯 보여도 마지막에는 같이 가지 못한다. 나귀는 쉼 없이 일하는 내 삶을 날마다 목격하고, 나는 고생스러운 나귀의 나날을 날마다 목도한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방관하는 동시에 서로의 삶에 개입한다. ![]() 류량청의 글, 한 사람의 마을 참 좋은 책입니다. 그의 글을 더 만나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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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와의 공유경제, 다른 경험을 듣다
식량 자급자족이 초미의 관심사이고 다급한 국가 정책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북한군 장교가 이장을 잘 따르는 주민들을 보면서 그 비결을 묻습니다. 이장은 간단하게 답을 합니다. “잘 멕여야 돼” 그 짧은 대사가 선답으로 들렸습니다. 정곡을 찌르는 답에 귀가 뚫리고 세상이 보였습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정권의 정통성에 도전하는 국민들이 없게 하려면 굶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고 그래서 식량 자급을 위한 독려에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모자라는 쌀을 대신해 보리쌀 밀 같은 잡곡을 섞어 밥을 짓게 하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사하며 혼식을 강요했습니다. 쌀밥은 각기병을 일으킨다고 하면서 어린 학생들을 위협하기까지 했습니다. 밥그릇을 표준화해서 공기가 만들어진 것도 이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쌀로는 술을 빚는 것도 금지하여 밀가루로 막걸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쌀의 매점매석도 단속하고 쌀을 훔치는 것들은 사형을 면하기 어려웠습니다. 전국적으로 ‘쥐 잡기 운동’을 시작한 것도 사람이 먹을 쌀을 훔치는 쥐를 박멸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숫자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공익광고 형태로 만들어 쥐 한 마리가 일 년에 먹는 쌀의 양이 얼마이고 전국적으로 계산하면 엄청난 쌀이 없어진다며 모든 국민이 참여해 ‘쥐 잡는 날’에 동참하라고 독려를 했습니다. 아마 어딘가 찾으시면 그 영상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 류량청은 쥐구멍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3층으로 지어진 쥐의 굴을 설명하면서 부지런히 이삭을 나르는 쥐의 노동을 설명합니다. 언젠가 밀밭에서 한 마리 쥐는 하늘을 보고 누워 네 발로 이삭 두 개를 꼭 끌어안고, 다른 큰 쥐가 그 쥐의 꼬리를 물어 수레처럼 끌고 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등에 난 털이 벗겨져 피부가 벌갰습니다. 그전에 작가가 등에 털이 없는 죽은 쥐 몇 마리를 보고는 서로 뒤엉켜 싸우다 죽은 줄 안 것이 착오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동물의 왕국’입니다. 작가의 생각은 이어집니다.
이 땅은 누구의 땅이지? 바삐 일하는 쥐들을 보면서 자신 또한 바삐 일하는 커다란 쥐라는 생각에 이릅니다. 마을 사람들이 개간하기 전, 이 황무지에는 고두자와 황해쑥이 무성했고 곳곳에 쥐구멍이 있었다는 기억을 합니다. 개간을 하면서 쥐구멍을 모조리 땅에 묻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밀을 베러 왔을 때 들판 가득한 쥐구멍과 마을 사람들보다 앞서 바삐 밀 수확을 시작하는 쥐떼를 발견했습니다. 풀씨가 없어지자 쥐들이 밀알밖에 먹을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작가는 사람들이 곡식이라 부르는 딱딱한 밀알이 ‘쥐의 입맛에 맞을까. 그걸 먹고 뱃속이 편할까’ 걱정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면서 풍작의 기쁨은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만물의 것임을 느낍니다. 너도 쥐 나도 쥐인데 뭐 뉘 것이라 나눌 필요도 없다는 게지요.
공유경제는 소유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낮추는 데에서 시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개간을 했다고 내 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땅을 뺐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땅에서 나온 것들을 공유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갔습니다.
쥐 잡는 날, 쥐만 잡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네 개들도 많이 죽었고, 배가 고파서 그런 것인지 마음이 아파서 그랬던지 사람들도 쥐약을 먹었습니다. 곡간에서 인심 생긴다는 속담은 딱히 맞는 표현은 아닌가 봅니다. 곡간을 채우려는 욕심을 합리화하는 말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가 사는 마을 사람들이 '그때 그 시절' 우리보다 잘 사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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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한 송이에 미소 짓다
작가는 들판 비탈에 누웠습니다. 들판의 풀들이 모조리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풀이 산들바람 속에서 허리가 끊어져라 웃고 있습니다.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풀도 있고, 입술을 반쯤 가리고 웃음을 참으려 안간힘을 쓰는 풀도 있습니다. 작가 곁에 꽃 두 송이가 있습니다. 한송이는 작가를 보면서 얇은 분홍빛 꽃잎을 펼치는데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다른 한 송이는 고개를 돌려 얼굴을 가렸지만 웃음을 감추진 못합니다. 작가도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합니다. 빙그레 미소 짓다가 하하하 웃음을 터뜨립니다. 황야에서 혼자 소리 내어 웃어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밀밭 남쪽에 있는 풀 속에서 자다가 웃었습니다. 작가는 한 조각 푸르른 풀밭이 너무 좋답니다. 더없이 짙푸른 빛깔이 누렇게 시든 주변 들판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지요. 아마 한 달 전쯤, 밀밭에 물 대는 사람이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 그냥 놔두고 자러 갔지 싶습니다. 그 바람에 물이 넘쳐 밭두렁을 넘어가 이 마른 도랑으로 흘러든 덕분입니다. 그러자 오랫동안 시들어 있던 들풀이 드디어 살길을 찾았고 작가는 푸르른 풀 속에 파묻혀 잠들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좋아하는 것과 함께 잠을 자고 꿈을 꾸면 충분하다고 자족합니다. 그러면서 너무 진지하게 살고 있는 자신을 깨닫습니다.
“딱딱하게 굳은 내 얼굴은 어느덧 살아간다는 일에 무감각해졌는지 꽃을 보고 미소 짓는 것도, 새순을 보며 설레고 기뻐하는 것도 다 잊었다. 어렵사리 피어난 꽃 한 송이, 모처럼 돋아난 잎새 하나가 황야에서 내 미소를 만나면, 이 작디작은 생명에게 그것은 환영과 격려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그 뒤로 작가는 황야의 일원이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 벌레 한 마리로 들어가는 길이 더 멀 수도 있다는 사실에 자신의 무지를 깨닫습니다. “내가 풀과 나무의 몸에서 얻은 것은 사람의 몇몇 이치일 뿐 초목의 이치라고는 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초목을 이해한 줄 알지만 실은 나 자신을 이해했을 뿐이다. 초목에 대해서는 통 모른다.”
생각이란 것이 풍부해지는 조건이 있습니다. 브레인스토밍을 하자고 회의실이나 교육장에서 노력을 해도 잘 안 되지만, 푸른 풀밭이 펼쳐진 둑길에 구름이 만든 그림자가 길게 끌고 저기 강에 뜬 배에서는 어부가 그물을 건지고, 둑 아래 물풀 우거진 자리에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이 보이면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생각에 잠깁니다. 생각이란 게 원래 시작하기가 어렵지 한번 시작하면 이어지는 것이 습성입니다. 간혹 부끄러운 생각에 혼자 겸연쩍어 풀밭에 드러누워 이리저리 몸을 뒤척입니다. 묶인 염소는 풀을 뜯다 말고 괴이한 행동을 하는 저를 빤히 쳐다봅니다. 주변 풍경에서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품이 커져 석양을 뒤로하고 집으로 오지만 다음 날이면 개뿔 다시 쳇바퀴 도는 일상에 제 한 몸 주체를 못 합니다. 작가는 자신이라도 이해했다지만, 저는 그 조차도 없습니다. 그래도 아파트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호사라서 지금도 짬이 나면 시골로 달려갑니다.
혼자 껄껄 웃을 수 있는 곳, 혼자 꽃에게 풀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곳, 그래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는 그런 곳이 있습니다. 중국인들도 알면서 이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아득히 먼 곳의 일이 되어 이 작가의 산문에 빠진 게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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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 고향을 잃는 중인가 봅니다
류량청은 1962년 중국 신장 사완현에서 태어나 농사일로 잔뼈가 굵으며 자랐고 향토문학작가로 불리는 유명인이라고 합니다. 처음 책을 소개하는 내용을 접했을 때는 한 사람을 키우는 마을의 사람들을 얘기하는 책인 줄 알았습니다. 잘못 알았지만 ‘한 사람의 마을’이나 ‘한 사람을 키우는 마을’이나 둘러치고 메치면 형태를 틀어 숨겼던 말을 꺼낼 수도 있을 듯합니다. 가축을 키우며, 들을 일궈 농사를 짓는 마을 사람들과 섞이면서 일어나는 상념들은 나귀의 속에도 들락거리고, 토끼길을 쫓기도 합니다. 밀을 수확할 때는 밀과 대화하고 수확을 마무리할 때는 홀로 일하며 자신과 대화합니다. 마을 주위를 배회하던 사는 꼴이 변변치 못한 늑대와도 눈싸움을 하며 대화를 시도하기 조차합니다. 먹기라도 하면 밀 몇 단도 주고 싶어 합니다. 한 사람의 마을은 살아 숨쉽니다.
작가의 마을은 오지 마을인 듯합니다. 중국의 시골을 다녀온 경험이 없어서 그랬겠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주 산골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무주 한 사람의 마을’과 사는 방법은 비슷한 듯도 하지만 자본주의의 때가 묻은 산골 오지 무주의 마을과 신장의 마을은 많이 다릅니다. 삽을 들어 땅을 파고 나귀의 힘을 빌려 수레를 끌고 다니는 신장의 마을과 달리, 무주의 마을에서는 트랙터와 트럭 엔진의 소음이 농로를 따라 달립니다. 풀을 매는 신장과 달리 무주는 풀약을 칩니다. 농사를 짓고 수확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같지만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오히려 1960년 대 제 고향 가난한 마을과 더 비슷합니다.
아침이면 자루가 길고 작고 날렵한 날을 가진 가래삽을 쥐고는 뒷짐 쥔채 논물을 보러 가던 동네 노인네들의 모습은 신장의 삽을 든 사람들과 오버랩이 되었습니다. 워낙 경작하는 논, 밭의 규모가 작아 나귀가 끄는 수레가 필요 없기도 했지만, 좁은 논둑, 밭둑길에서는 수레가 나들 수가 없어 지게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초등학교를 파한 아들이 땔나무할 때 쓰라고 아들의 어깨품에 맞는 작은 지게를 아버지들이 만들어 주던 시절입니다. 아버지의 지게와 아들의 지게가 나란히 마당 구석에 정답게 기대 있곤 했습니다. 마을은 항상 주민 모두에게 노동을 요구했습니다.
이제 부산의 제 고향은 아파트가 논밭을 깔고 앉았습니다. 무주 산골에서는 기계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고 농약도 칠 수 없습니다. 고향 마을 사람들의 삶은 풍족해진 듯합니다. 무주의 농부도 번듯한 트랙터나 하다못해 경운기는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풍요속의 빈곤은 경제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마음의 빈곤은 인간상실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 한구석이 빈 듯 허전한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있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면서 도시는 번잡해졌습니다. 번잡함과 편리함속에서 상실감을 얻는 것은 중국인들도 마찬가지 였을 법합니다. 중국인들이 왜 이 작가의 산문집에 엄청난 관심을 가졌는지 얼핏 짐작되기도 한다는 것은 저의 착각일까요?’’ 그의 생각을 따라 신장의 마을길을 걷기로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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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친 일
한때 경로사상이 유난히 강조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경로석은 지금도 있습니다. 50대 늙은이들은 간혹 그 자리에 앉기도 하지만, 젊은이들은 좀체 그 자리에 앉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한창 노인과 청년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는 젊은이들도 의도적으로 경로석에 앉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반발을 표시한 것이지요. 경로석보다는 임산부석을 만들라는 충고도 있었습니다.
경로석을 두고 노인들이 젊은이들을 버스나 지하철에서 훈계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경로석에 앉은 젊은이들을 나무란 것인데 그 정도가 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노인들이 권리로 인식하곤 자기의 권리가 침해당한 것에 대해 따지면서 젊은이들을 일반화해서 비난을 하는 것이 패턴이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에도 있는 말을 한 겁니다.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어” 배운 데가 없는 이유는 부모의 교육 부족이거나 젊은이가 우매한 때문이라고 비난을 했습니다. 도전에는 응전이 있다고 했지요.
왜 늙은이가 대접을 받아야 하느냐? 그들이 사회에 기여를 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들에게 배울 게 무엇 있느냐? 젊은이들의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유교 사회의 질서가 무너진 것이 언제 적인데, 지금도 이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함부로 지적질이냐는 비난이 쇄도했습니다. 이 사태를 진정시킨 것이 당시 노인회장이었다는 기억이 납니다.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젊은이의 존경과 대접을 요구할 수는 없다. 단지 늙었기 때문이 아니라, 늙은이의 지혜가 돋보여야 젊은이가 자연스레 존경과 대접을 한다. 그러니 노인이라고 함부로 큰소리치며 지적질하지 말라는 취지의 편지가 신문지에 공개되었습니다.
요즘 지하철의 무임승차 방법을 변경하자는 정책의견이 나오자 노인회장의 반발이 거셉니다. 어차피 운행하는 지하철인데 노인이 무임으로 탄다고 비용이 덜 드는 것이 아니다는 주장에 승객이 늘면 기차를 운행하는 전기의 사용량이 는다는 반대를 하고, 너희는 늙지 않을 줄 아느냐는 지적에는 그동안의 무임승차 이익은 전철을 이용하는 노인에 한정되었으니 이제 전국의 노인이 모두 혜택을 보는 것으로 하자면서 예산도 더 투입이 된다고 하자, 지방은 이미 버스요금을 공짜로 해주고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지방정부가 잘 살면 그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지방정부가 더 많다는 반대 의견이 다시 나옵니다.
류량청은 “바른 일을 성실히 한다고 꼭 일이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는 의견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남이 잘못할 권리를 박탈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나, 특히 한 마을 사람이 모조리 잘못에 빠져들 때는 한쪽에 앉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라고 충고합니다. 과거 마을 사람들이 젊었을 때, 촌장의 지시에 따라 100킬로미터의 수로를 건설하여 먼 호수의 물을 관개수를 쓰려고 했지만 호수는 수로가 완공되는 시점에 말라버린 사건을 말하면서 그는 이 결말을 이미 예측했지만 촌장이 아니라서 자기 의지대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었다는 변명을 합니다. 만약 그런 실수를 안 했다 해도 마을 사람들이 젊은 관계로 또 다른 실수를 했을 것이라고도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누구든 “잘못해도 되는 기회를 누가 놓치고 싶겠나” 말을 흐립니다. 류량청은 뒤끝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이 산문의 마지막에 쓴 글을 소개합니다.
“나처럼 똑똑한 사람이 나서서 이 마을을 이끌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늑장을 부리며 나서지 않았다. 몇몇 바보가 마을을 들볶는 모습을 뻔히 보면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똑똑한 자와 어리석은 자 모두 자기 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남에게 간섭할 필요가 뭐가 있겠나. 똑똑한 사람에게 지혜와 재주를 마음껏 발휘하게 해 준다면 바보에게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맘껏 펼칠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다.”
여러분은 지혜롭고 재주가 있는 사람인가요? 아님 바보인가요? 저의 의견을 물으신다면 이런 농담을 하겠습니다. “지 눈깔 지 손으로 찔렀다. 아입니까” 아내를 선택한 남편이 한 농담입니다. 모두가 우리들이 선택한 결과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만든 정부고 우리가 만든 사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말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까요.
4월 10일을 기다립니다. 이날 출근 안 해도 되는 날이라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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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걸음걸이
제가 3년 전에 농장주와 같이 보살폈던 사과 과수원은 고작 300주의 과수만 있는 조그만 밭입니다. 주말이면 반드시 내려가서 나무를 만나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벽 동이 틀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밭에 있어야 했습니다. 매주 내려간다고 했던 계획도 틀어져 2주에 한 번 내려가는 것으로 바뀌다가 다른 일이 있으면 그 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주를 쉬면 그만큼 밭일은 늘어나 있습니다. 일 년의 경험으로 그쳤습니다. 도저히 짬을 낼 수 없으니 남의 밭만 망치는 꼴이었습니다. 농장주의 건강도 나빠져 이웃의 다른 분에게 밭을 넘겼습니다. 서툴렀지만 그래도 바삐 보내며 과수를 다루는 방법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불과 3년 전과 작년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냉해를 걱정하는 일이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농사짓던 때, 냉해를 입었다는 말은 어쩌다 들었지만 이제는 매년 걱정을 하여야 합니다. 무주구천동에서 내려오는 하천과 둑을 사이에 둔 과수원은 새벽안개가 자주 있는 지형입니다. 안개가 걷히기 전 기온이 내려가면서 냉해를 입는 경우 그 피해가 더욱 극심합니다. 꽃이 허드레지게 피었는데 갑자기 냉해를 입었으니 꽃은 죽고 열매를 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가을밭에는 발갛게 익어가는 사과가 거의 없었습니다. 작년 그리고 금년 과일값이 격렬하게 오른 이유 중 하나입니다. 꽃은 같은 시기 피니 냉해를 입으면 전멸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작가의 글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봄이 막 시작된 작가의 마을 황사량은 대부분 벌거벗은 땅입니다. 수많은 것이 아직 나오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드문드문 고개를 내민 풀이 있긴 하지만 절반은 여전히 씨앗 상태로 묻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황사량에 봄이 걸어오는 속도입니다. “그들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지 않는다. 이른 봄의 해가 아무리 뜨거워도 그들은 적당히 더디게 움직인다. 꽃샘추위가 꼭 있기 때문이다. 추위가 한바탕 밀려와 먼저 나온 파릇한 싹을 죽일 때, 아직 움트지 않은 풀씨와 아직 깨어나지 않은 벌레들이 살아남아 대지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는다.”
황사량의 풀과 꽃들은 꽃샘추위를 대비하는데 무주의 사과꽃은 왜 대비를 하지 못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사과꽃은 4~5월에 핍니다. 꽃샘추위를 검색하면 보통 4월 중순에서 5월 초순까지 나타난다고 합니다. 사과꽃은 왜 전멸을 할 정도로 개화시기가 비슷할까요? 오랫동안 심긴 밭에서 살아온 사과꽃 중에는 게으르거나, 지나치게 조심을 하는 꽃이 없었을까요? 혹 사람의 손길이 지나쳐 퇴비가 충분하여 영양상태가 좋은 나무가 너무 호기롭게 꽃을 피운 걸까요? 날씨까지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사과꽃을 독촉한 건 아닌지 그래서 호된 꾸지람을 듣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에 간섭을 하기 좋아합니다. 계획성을 강조하고 예측을 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제 무주에서 목화씨를 얻었습니다. 무덤에 두고 간 꽃다발에 아마도 목화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무덤가에 두 그루가 자랐는데 형님이 수확을 했습니다. 목화송이에서 뺀 씨앗이 많습니다. 이번 봄에 목화를 심을 때 이들이 같은 시기 싹을 틔우는지 유심히 볼 생각입니다. 그러려면 여기저기 심어야 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