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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놀러갔다가 <모비딕>이라는 두꺼운 책을 보고 완전 놀란적이있다. 신기해서 몇번을 들쳐보곤했었다. 그래서 그 제목만 머릿속에 새기고 언젠간 꼭 읽으리라 결심했는데 이렇게 빨리 읽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서점에서 봤던 그 두꺼운 모비딕은 아니었지만, <완역본>이라고 찬란하게 새겨진 홍신 세계문학 시리즈이기에 기쁨이 컸다. <완역본>이라고 써있으면 한번은 더 손이간다는 사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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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
이책은 몇 년 전쯤 읽은 고전으로 시간이 많이 지나서 상세한 느낌을 적기에는 미비한 감이 있지만, 좋은 고전소설은 책을 읽고 느꼈던 감동이나 메시지는 깊이 남아있기에 당시 느낌을 생각하며 적어보았다.
개인적으로 유서 깊은 고전소설을 읽게 되면 시대가 흐른 만큼 시대상황이나 문체 등에서 그 간극을 느끼게 되기도 하는데, 미국작가 허먼 멜빌의 백경은 1851년 작품이지만 설명이나 문체면에서 크게 오래된 느낌은 덜 들었다. 또한 이스마엘의 시점으로 묘사되고 있는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들이 굉장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쓰여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등장 인물들의 인종, 종교, 취향부분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들을 보면 어느 한 부분으로 치우치거나 고정관념 등을 배제시키고 주관적이지 않고 평등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각 인물들과 상황들이 설명되어 있어서인지 고전소설이지만 시대에 따른 차이는 덜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포경 업이지만 작가자신이 실제 포경선 생활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어서 정말 생생한 바다 위의 포경선 생활과 고래잡이에 대한 기본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본론으로, 이책을 읽는 동안 강하게 그려지는 이미지.. 바로 모비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고 굳은 복수심을 불태우며 광활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고뇌에 찬 피퀘드호의 선장 에이허브의 모습이 연상된다.
책의 내용은 머리가 흰색인 거대한 고래 모비딕(백경)에게 한쪽 다리를 잃게 된 에이허브는 그 후 그의 모든 인생의 목표는 오로지 모비딕에 대한 복수로 점철되어 있고, 사활을 걸고 모비딕을 찾아내고 투쟁을 벌이게 된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읽고 난 후의 나의 느낌은 두 가지 관점으로 상징되어 기억되고 있다. 고래 모비딕으로 대변되는 어떤 거대한 절대적인 것에 맞서고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 에이허브의 도전과 대결.. 또 하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강력한 힘과 또다른 강한 힘과의 대결로 광할한 바다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모비딕과 피퀘드호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인 선장 에이허브와의 대결로 상징되는 듯한 그 과정과 결과를 읽으면서 어찌보면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세를 사는 우리들의 시대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같은 에이허브의 모습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선장 에이허브를 통해 인간의 불굴의 투지를 엿볼 수 있는데, 자신의 뜻한바 의지를 굽히지 않고 그것에 모든 것을 걸고 강인하게 도전하고 실행하는 모습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설령 그 목적하는 바가 누군가에게는 무모하고 결과가 허망한 일이 되더라도 끝까지 자신의 투지를 불태우며 실행해 옮기는 삶의 모습과 태도는 현세의 쉽게 좌절하고 목적의식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더욱 강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느낌이다.
그럼 에이허브가 간과한 점은 무엇일까..? 다른 한편으로 그의 행동은 복수심에 불타 오른 나머지 광기어린 집착이 강했다는 점인 듯 싶다. 즉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하여 포경선 피퀘드호에 함께 오른 많은 선원들의 안위를 무시하고 복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 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선장으로서 자신의 목적의식보다는 선원들의 무사귀환을 위한 의무와 책임을 우선시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피퀘드호에서 가장 높은 자리인 선장의 강한 힘을 역이용하여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듯한 중심을 잃은 광기어린 모습도 에이허브의 모습이며, 이 또한 인간의 또 하나의 단면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책을 읽으며 또 새삼 느낀 것은 이세상 모든 것은 한쪽으로 완벽하게 100%는 없는 듯하다. 순금도 99.9%에 0.1%의 불순물이 섞여있듯이.. 인간 에이허브의 삶의 모습도 그러하고.. 즉 책에 언급되었던 흰 색.. 이 흰 색도 겉으로 보기에는 순결하고 숭고하고 신성한 선의 이미지인 것만 같지만, 흰 고래(모비딕)처럼 공포와 경이의 상징 혹은 악의 의미도 내포되어있는 것처럼..
어떤 절대적인 힘(그것이 자연의 모습이든)으로 대변되는 흰 고래 모비딕이 한편으론 악의 상징으로 파멸하고 싶은 대상이기도 되기도 하고, 인간의 강한 도전과 투지가 그 이면에 이성을 잃은 과도한 집착과 욕망이 지나쳐 처벌을 받듯 파국으로 치닫게 되듯이 모든 것이 선과 악의 양면성이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각자의 삶의 좌표는 어느쪽에 더 무게를 두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결국 그토록 바랬던 고래를 찾았고, 사력을 다해 치열하게 싸워 뜻은 이룬 듯 했지만.. 죽음(목숨)과 바꾼 승리.. 인간의 삶(인생)의 여정은 그런 모습인 걸까…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비극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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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시간 한 권의 책을 잡고 있었다. 평소 인문사회서적을 제외한 일반 소설류나 자기계발서, 경제경영서는 일단 오래 잡고 있지 않는다. 소설이야 그냥 술술 읽어나가면 되고 경영서적은 앞 뒤 문맥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웬만하면 맥을 끊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책, 분명 하루 이틀이면 다 읽어낼 소설책이었다. 비록 650여쪽에 가까운 묵직한 책일지언정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까지 이리도 긴 시간(약 2주)이 필요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있어 에이허브 선장의 거대한 결투 대상자인 흰 고래만큼이나 버겁고 두려운 존재였다. 고전이 왜 어려운가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준 또 하나의 작품이었지만 완독한 후에 오는 성취감은 책 10권을 읽은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쾌감을 준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학창시절부터 워낙 유명한 작품이었기에 대충의 줄거리는 알아도 그걸 설명하고 이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첨부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요즘 고전을 읽으면서 현대소설과 참 많이 다르다는 건 문장이 주는 긴 호흡여부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현대소설은 글이 쉽든 어렵든 문장 문장이 경쾌하고 스타카토처럼 딱딱 끊어지는 느낌인데 반해, 고전들은 한 문장을 읽더라도 길고 긴 호흡을 유지하면서 마침표까지 쫒아가느라 힘이 든다. 지금의 소설들이 인물의 감정이나 상태에 초점을 맞춘다면 옛 고전들은 등장인물의 세밀한 감정변화는 물론 외적인 모습과 배경까지 자신이 상상하는 것을 독자들의 머릿속에 그대로 옮겨놓고자 하는 노력(?)이 그대로 느껴진다고나 할까? 아무튼 달라도 너무 다른 느낌이다. 특히 이 소설 <백경>은 저자 자신이 포경선을 타고 험난한 고래잡이 경험이 있었던지라 그 묘사와 배경지식이 너무도 자세했는데 이는 주인공중 한 명인 ‘이스마엘’이라는 인물을 통해 작가가 그대로 작품 속에 녹아있는 것 같아 그 생생함과 현실성이 극명하게 표현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싶다. 그럼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저자가 말하려는 진짜 의도는 무엇이었나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잘 알려진 대로 선장 에이허브와 고래의 관계를 가지고 인간vs자연의 대결로 보아야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는 이를 종교적으로 해석할 수 도 있다고 보는데(성서에 등장하는 이름들과 같은 주인공들) 나는 기독교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므로 이건 논외로 하자. 그렇다고 인간대 자연으로 나누어 어떤 숙명적인 대결에 초점을 맞추기에는 이 책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한 마디로 사람대 사람, 사람대 자연, 또 자연 대 자연이라는 거대한 주제들이 맞물려 또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로 탄생되었다고 보여 지기 때문이다. 다양하게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 심연의 증오와 분노, 광기는 물론 인간애에 이르기까지 그 하나하나의 것들이 사람의 본성에 대한 탐험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미지의 것 혹은 정복해야 할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은 선장 에이허브의 이성을 잃은 광기라기보다는 인간을 위협하는 어떤 근원적인 악에 대한 처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비록 우리가 그 치열한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를 이룰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패배는 아니었음에 위안을 얻어야 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나에게 이 소설 <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의문이 더해지기만 하는 책이기에 다시 한 번 도전해야할 숙제를 남겨 놓았다. 역시 처음의 느낌이 맞았다. 바로 이 책이 나에게는 끝까지 치열하게 싸워보아야 할 고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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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이라는 흰 고래에게 한 쪽 발을 먹혀 고래 뼈로 의족을 달고 사는 선장 에이히브. 그의 삶은 오로지 모비 딕을 향한 복수로 가득 차있다. 모비 딕은 여러 차례 포경선에서 쏜 작살을 꽂은 채 살아가는 포악하고 성질 사나운 흰 고래이다.
하나님이 진짜 선택한 인간이 따로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삭만, 야곱만을 선택하셨을까? 쫓겨난 이스마일에게 함께 하신다는 말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 다음 인물로 선장 에이허브를 보면 그는 힘을 상징하며, 흰 고래에 대한 광기를 보인다. 자신에게 고통을 준 모비 딕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그를 파멸시키고자 한다. 에이허브가 없애고자 한 ‘흰 고래’ 그에게 흰색은 어떠한 의미로 존재했을까?
단순한 스토리 속에서 작가 멜 빌이 말하고자한 의도를 읽어보려 애썼던 독서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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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째 내리던 폭우는 그쳤다. 폭설, 폭우, 폭염. 이젠 ‘폭’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우리 집도 피해를 입어서 수리비로 얼마의 돈이 들어갈지 알 수 없는 상태다.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다. 다음 주 예보를 보니 맑은 날보다 비오는 날이 많던데 걱정이 된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읽고 멈추기를 반복하며 읽은 책은 『모비 딕』이란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는 유명한 고전 『백경』이다. H. 멜빌은 포경선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백경』은 그 경험이 녹아있는 소설이다. 선원 이스마일의 목소리로 백경(모비 딕)을 추적하는 피쿼드호 선원들과 일반적인 고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낸터킷항에서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을 거쳐 일본 열도 앞바다까지 고래를 추적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스마일은 추방자, 방랑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주머니는 텅 비고 육지 생활에 염증을 느낀 청년 이스마일은 선원이 되어 항해를 떠난다. 새로운 세계에서 만나는 신비한 괴물, 고래에 대한 호기심도 그가 바다로 나가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 어떤 사람을 안다는 건 아주 일부만 아는 것이다. 이스마일은 물보라 여인숙에서 야만인 퀴퀘그를 만난다. 작살잡이인 그는 소문과 달리, 겉모습과 달리 세심한 마음씨를 갖고 있었으며 예의도 발랐다. 종교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지만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백경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 선장은 복수심에 불타 있지만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 맹목적인 본능에 사로잡힌 짐승에 대한 복수는 벌 받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타벅은 고래잡이를 떠나지만 고래에 대한 두려움을 또한 갖고 있었다. 파이프에 의지해 태평스러움을 유지하는 이등 항해사 스터브, 무지몽매한 대담성을 갖고 있는 플라스크 등도 피쿼드호에 탑승한 인물들이다. 쏟아지는 뉴스들을 보면 피곤함이 몰려온다. 뉴스들을 외면하고 싶으나 그 또한 쉽지가 않다. 세상의 근심걱정에서 도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포경선을 타고 항해하는 동안에는 어떤 소식도 듣지 못하기에 흥분할 일도 없다고 한다. 살면서 느끼는 건 어떤 인생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너무 고요한 바다는 위험하다. 바다는, 바다의 생물들은 언제 심술을 부릴지 알 수 없다. 거친 풍랑이 치고 상어 떼가 달려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겐 항해는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마지막 몸부림이기에. 에이허브에게 백경은 삶의 모든 원망이었기에 반드시 잡아야했다.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폭우 관련 뉴스를 보면서 느끼는 건 인간은 자연 앞에 무력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이기심을 버리지 않는 한 더욱 더. 당시 고래 기름은 제일 좋은 기름이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고래는 삶의 희망이겠지만 에이허브 선장의 고래처럼 원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흰색의 이미지를 순수라고만 생각했다. 흰색은 붉은 피와 결부되어 강한 공포를 일으킨다는 글을 읽으니 희망에도 두려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조건 끝까지 가는 것보단 멈추고 돌아가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뮤지컬〈모디 빅〉이 공연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백경』은 어느 부분은 희곡으로 쓰인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었다. 포경 항해, 직업인으로의 포경인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였다. 폭우가 내리는 날이 아닌 햇빛 쨍쨍한 날 읽었으면 다르게 느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나에겐 좀 어려운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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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 무엇을 봐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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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학의 진수라고 불리는 백경을 이제야 읽게 됐습니다. 사실 모비딕이라는 이름으로 이 작품을 처음 전해들었을 땐 헐리우드 괴수물처럼 여겼었습니다. 거대 고래와 인간과의 대결정도. 하지만 책내용은 고래와의 대결보다도 인간내면의 갈등과 화해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고전소설이기도 하고 국내 소개된지 워낙 오래된 작품이라 문장이나 단어들이 낯설거나 딱딱하진 않을까 조금 걱정했는데 개정판으로 새롭게 번역을 한건지 요즘 소설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쉽게 쉽게 쓰여져 있어서 좋았습니다. 책의 표면적 내용은 단순합니다.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주인공이 복수심에 불타 불구덩이 속에 뛰어드는 부나비처럼 끝까지 복수에 집착하다 어리석은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는 내용이 끝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들에게서 제 자신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그닥 중요하지 않는 부분에 집착한채 더 중요하고 의미이 있는 일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 내 자신의 삶들을 반성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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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바다를 배경으로 수중 생물 중에 가장 거대한 동물인 백경(모비딕)을 쫓아 이를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 작품은, 미국 소설가 허먼멜빌에 의해 19세기 중반에 발표되었지만 당시에는 소설의 형식과 내용이 낯설다는 이유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현대에 이르러서야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오늘날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함께 고전문학의 3대 비극 반열에 올라있으며, 미국의 대표적인 상징주의 문학으로 알려진 해양모험소설이기도하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소설의 주 내용을 이루고 있는 고래사냥은 10세기경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지만, 당시에 고래잡이가 횡행했던 것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재료로 쓰이게 되는 고래로부터 얻는 기름 때문이었으며, 지금처럼 과학기술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던 관계로 그 시대의 고래사냥은 선원들의 목숨을 걸어야 했을 만큼 상당히 위험한 작업이었다. 이 작품은 포경선을 타고 망망대해를 누비며 고래의 흔적을 쫓아 이를 포획하는 그 생생한 모험의 현장과, 육지를 벗어나 선박에서의 고독한 생활을 겪어야 하는 선원들의 애환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즐거움을 주기도 하는 반면에, 포경이라는 다소 낯선 소재에 맞춰 고래의 생태, 포경 기술, 그리고 장비 등 여러 전문적인 내용들까지 상세하게 다루어져 있어 독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부의 내용들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거대한 흰 고래에 맞서 목숨을 건 한판의 숭고한 대결 과정을 통해, 선과 악,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과 같은 철학적인 상상력을 일깨울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한번 읽어 보면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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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백경' 그 이름만으로도 거대한 책이다. 책이 주는 페이지 수의 부담감. 그러면서도 그 책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거대함. 그래서 항상 서점에 갈때마다 망설임을 만들어주는 책이다. 그래서 책이 아니라 영화로 접하게 되고, 그 영화에서 받는 거대한 감동에 다시 책을 읽고 싶은 망설임에 설레이게 만드는 책. 그게 바로 백경이다.
이번에 나온 이 책은 생각보다 콤팩트하다. 다른 책들에 비해 크기가 작다는 뜻은 아니다. 책의 표지에 분명히 '완역본'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지 않은가. 완역본이되 각 페이지의 두꼐가 얇다. 그리고 한 페이지당 들어 있는 글자의 크기가 조금 작다. 너무 작아 읽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되, 페이지 수를 부풀리려고 큼직큼직한 글자를 박아 넣은 책도 아니다. 이 책은 그런 배려들로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 편하고, 무게감도 없으면서, 가독성은 충분하게 만든, 백경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담은 이야기를 부담없이 읽을수 있도록한 책이다.
백경의 다른 번역본을 읽어본 적이 없으므로, 이 책의 번역의 수준을 평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당히 오래전에 쓰여진 명작들이 그러하듯, 고어체의 문장이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눈으로 각장면의 그림을 직접 보듯이 세세하게 묘사하는 풍경이나, 각각의 등장인물의 심리적 상태를 그리는 문장들이 읽기에 까다롭지는 않다. 오래전에 쓰여진 작품치고는 생각보다 현대적인 문장이고, 읽히는 속도감도 빠르다. 처음의 몇 페이지를 지난후에는 책에 푹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책의 기본적인 스토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이다. 강렬한 흑백영화로 이미 명화로 알려진 영화를 통해서도, 어린이들이 보는 그림책에서부터, 소년들이 읽는 동화책에까지 다이제스트로 만들어진 책들을 통해 이 책의 장대한 줄거리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문학작품이라는 것의 진정한 힘은 그 책의 문장들이 만들어가는 세세한 묘사들이 어떻게 그렇게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가를 음미하는 그 졸깃졸깃한 질감을 느끼는데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방대한 작품들의 요약본에 만족하지 않고, 완역본을 찾고, 좀 더 제대로 번역된 책을 찾아 읽은 책을 또 읽고 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들만이 원작만이 줄 수 있는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책을 즐겨 읽는다는 나 조차도 주변에 원작을 즐겨읽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쉽게 그런 도전에 나서지는 못했었다. 핑계거리야 항상 넘치지 않겠는가. 이미 내용을 아는 책이라고, 그렇게 방대한 내용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들고다니기 힘들어 자투리 시간에 읽기가 번거러워서...
그러나 우연히 용기를 내어 주저 반, 호기심 반의 마음으로 읽은 이 책은 생각보다 술술 넘어가면서 원작 읽기의 즐거움을 나에게 일깨워 준 책이다. 충실한 번역. 두텁지 않은 책. 큰지 않은 사이즈. 가독성이 좋은 활자.... 이런 것들이 주는 영향 때문인 것일까... 아니면, 여태까지 원작에 도전해 보지 못한 나의 용기없음이 너무 지나친 것이어서 일까.... 생각보다 즐겁고, 기대보다 더 큰 감동을 받은 멋진 도전의 경험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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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 H. 멜빌 지음 정광섭 옮김 흥신 문화사 백경이라 오래되고 유명한 고전이라는 건 항상 알고 있지만 손에 잡은 것은 처음이었다. 두께의 압박이 장난이 아니다. 완역본 646페이지라 그래도 내가 이런 책을 다 읽은 구나하는 뿌뜻함과 기특함으로 읽기 시작했다. 백경이 흰 고래의 이름이라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 나는 백경이 고래잡는 배를 뜻하는 줄 알았다. 또 영화로는 모비딕이라고 제목이 나와있지 않는가. 읽기 전에는 남편하고 책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을 나눌 때 “고래 잡는 걸 백경이라고 하잖아 모비딕, 몰라?” 하면서 큰소리 쳤던 것이 생각나기도 하다. 웃기기도 하고 민망하다 이따 저녁에 남편에게 사실을 밝혀야겠다. 어디 가서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 무식한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남편을 무식한 사람으로 만들진 말아야지 않겠는가. 읽기 시작하면서 왠지 노인과 바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 느껴지기도 하고, 에이허브 선장의 모습은 보물섬의 실버선장을 연상시켰다. 외발이라는 것도 선장이라는 것도 배를 타는 것도 보물을 찾는 것과 백경을 찾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이스마일과 보물섬의 짐 호킨스의 닮은듯한 느낌이 있다. 이스마일의 추방자와 방랑자라는 뜻에서 천로역정이 생각나는 것은 또 뭘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한권에 참 여러 가지 책이 생각나게 하는 책이었다. 즐겁게 읽는 한편에 와! 남자의 소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지 여자인 내가 읽었을때는 좀 난해한 장면들이 나오기도 하다. 영화로는 안 졸리고 봤는데 사실 읽으면서 몇 번이고 졸았다. 쉬운듯 긴장감이 있다가 늦쳐줬다 하는 느낌이 압권이이었다. 특히 기억이 나는 건 이스마일과 퀴퀘그이 우정이 정말 특이하도 하고 부럽기도 한 그것이었다. 책의 앞부분에 고래가 나오는 문헌이 적혀 있어서 책의 긴장감을 극대화 시키는 거 같아서 좋았다. 내가 아는 책 제목도 나오고 말이다. 정영희님의 살아온기적 살아갈 기적이라는 책에 백경의 책에서 기억이 나는 장면이 ‘좋은 사람’이라는 구절이 나온다고 했다. 나도 이 구절을 찾기 위해서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찾아냈다. 누구에게 너는 참 좋은 사람이었어 라고 들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한 삶이 아닐까?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고래 포획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었다. ‘1986년 전 세계적으로 상업 포경이 금지 됐다고 한다. 고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 이후 그물에 우연히 걸린 고래를 처리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고래포획이 금지됐다.’ 그 이후 작년쯤에 포경 재개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다고 한다. 환경보호냐 수산자원 자주권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결론이 어찌 되었든 나는 반대다. 사실 세상에 먹고 싶은 것은 쌓였고 먹을 것도 많다. 고래 잡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잡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못 먹는 나라에 나누어 주기 위해서도 아니지 않는가. 고래의 그 특이한 것을 찾고 싶어서 그런다면 그 대체될만한 것을 찾으면 될거 같다. 기어코 고래를 잡아서 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