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모스 모어. 내가 그에게 관심과 호감을 갖게된건 튜더스(천년의 사랑)라는 드라마를 보면서였다.
사람들은 유토피아라는 말을 종종 쓰곤한다. 유토피아..어디에도 없는 그곳.. 각자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각자의 인생을 사는건지도 모르겠다.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있는데 1부는 라파엘이 피터와 모어에게 자신이 왕의 신하가 되지 않는 이유를 말하였고 2부에선 라파엘이 자신이 보고 온 유토피아에 대해 자세하게 토모스 모어에게 전달하는 대화식으로 진행된다.
라파엘이 본 유토피아 사람들은 금이나 은을 밝히는것을 수치로 여기고 정해진 시간에 노동을 하지만 자유시간도 즐길줄 알고(p86 유토피아에서는 하루 여섯 시간씩 일을 합니다. 오전에 세 시간을 일하고 점심을 먹고 나서 두시간 휴식을 취한 후, 오후에 세시간을 일하고 저녁을 먹습니다. 그들은 여덟 시에 잠자리에 들며 여덟 시간 잡니다. 그 나머지 시간은 게으름이나 방종에 허비하지 않고 건전하게 이용한다는 기호에 따라 자유롭게 보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육을 더 받는 데 이 여가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말만 들어도 행복하다는..)부자나 서민들이나 모두 화합하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안락사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 시대에도 안락사는 끊임없는 논쟁거리이다. 유토피아에서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추해질 경우 그 사람에게 명예로운 안락사를 권하기까지 하며 안락사를 유토피아 책을 읽으면서 읽을 때마다 새로울 거 같다는 생각을했다.
p18 아무리 좋은 양털 옷이라 하더라도, 그 양털 옷을 처음 입고 있던 것은 양인데, 좋은 양털 옷을 입었다고 해서 그 양보다 더 훌륭해 질 수는 없습니다.
p136 그러나 여러분이 추하거나 불구인 자를 보고 비웃으면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을 비웃기 시작할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피할 수 없었던 결점을 비난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함으로써, 여러분은 스스로 아주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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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학창시절에 대충 읽었던 정도였던 유토피아를 이번에 제대로 읽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많았고, 이해가 갔던 부분들도 많이 공감을 하지 못하면서 읽었었다. 그런데 이제 내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고,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 천천히 다시 유토피아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정말 좋겠다 싶은 나라 유토피아가 다가왔다. 누구나 욕심없이 사는 나라. 돈이 필요없는 나라. 죄를 짓지 않으면 너무도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면서도 지적으로 높은 단계에 올라있는 그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정말 유토피아는 존재할 수도, 이후에도 만들어 낼 수도 없는 나라일까.
*유토피아의 노동 조건: 유토피아에서는 하루에 여섯 시간씩 일을 합니다. 오전에 세 시간 일하고, 점심을 먹은 후 두 시간 휴식을 취한 후, 오후에 세 시간 일하고 저녁을 먹는다. 그것은 모든 유토피아 인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하루 여섯 시간의 노동만으로 모든 국민이 항상 풍족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겠지만, 그것은 너무도 당연히 풍족할 뿐 아니라 늘 남아돈다. 이유는 여자, 성직자, 부자등 다른 나라에서 일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의 노동으로 그들이 편안하게 살아가지만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다 일하기 때문에 여섯시간의 노동만으로 모든 사람들이 풍족하게 물질을 얻고, 삶이 풍족한 것이다. 노동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야 하고 노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부리는 사람, 높은 직책에 올라 그저 지시하기만 하는 사회를 꼬집는 듯한 이 말에 정말 많은 것이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국민 누구나 생산적으로 일하고, 차별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나눠할 때 소수의 노동자들이 더 많은 시간을 노동에 시달리지 않더라도 누구나 행복한 삶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유토피아의 결혼 풍속 : 여자는 18세, 남자는 22세에 결혼할 수 있으며 혼전 성관계가 밝혀진 사람은 가혹한 처벌을 받으며, 시장이 이 선고를 취소하지 않는 한, 영원히 결혼할 자격을 박탈 당합니다. 특히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이지만 결혼 풍속이 매우 엄격한 유토피아이다. 일부 일처제를 엄수하고, 간통의 경우 엄한 처벌을 받으며 재범의 경우에는 사형선고가 내려진다. 결혼을 할 상대자를 서로 알몸까지 관찰한 후 배우자를 선택하는 제도는 재미있기도 하면서, 대부분 이상한 절차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유토피아인에게 자신이 평생 함께 할 사람의 몸을 먼저 잘 살피는 일은 너무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당연한 일이다. 하찮은 말을 사면서도 이리저리 살피고 상처가 난 곳이나 잘못된 곳이 없는지를 살피는 것은 당연시하고, 인생을 함께 할 배우자의 알몸을 살피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전쟁, 이혼, 굶주림, 빈부의 격차......노동등 많은 문제점들은 그들의 사회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한 벌이 주어지지만 이미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그들에게는 그만큼 죄를 지을만한 일이 생길 이유도 없다. 가끔 꿈꾸는 나라 유토피아를 우리가 조금씩 만들어 갈수는 없는 것일까. '토마스모어'는 유토피아를 통해 우리 인간들이 잘못 살아왔고, 지금도 여전히 잘못 살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유토피아라는 낙원의 삶의 방식들을 통해 꼬집고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유토피아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으며, 그 모든 사회적인 문제는 이기심과 문명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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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를 말 그대로 해석하자면, ‘어디에도 없는 곳’이란 뜻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유토피아가 어딘가에는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이 책은 16세기 토머스 모어가 살았던 유럽의 모순들을 날카롭게 비판하지만, 지금 현재 한국사회에 견주어 보아도 다를 바가 없다. 유토피아의 제도는 의외로 간단하다. 노동하는 자만이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원칙이 있기 때문에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다. 지배계층이나 피지배계층에 상관없이 일하는 자만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유토피아다. ‘자본’이 사라진 공간에서 모든 사람이 일한 만큼 평등하게 분배받고 불필요한 사치를 부리지 않고 소박한 행복을 통해 꿈을 실현하는 곳이 바로 이상의 세계다.
이 책의 1부는 토머스 모어가 불편해진 외교관계를 위해 네덜란드에 머무는 동안의 이야기다. 품성이 훌륭한 인격자인 ‘피터 자일즈’가 소개한 ‘라파엘’과 ‘토머스 모어’의 대화를 담고 있다. '라파엘‘은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학식을 쌓은 인물로 토머스 모어 자신을 투영시킨 인물이다. 이 세 사람의 대화가 마치 희곡처럼 전개되는데 당시 유럽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특히 모든 사회적 문제가 구조적인 모순에 있음을 꼬집는다. 소수의 탐욕자들, 즉 부자들로 설명되는 지배계층이 대부분의 시장을 지배해서 피지배계층이 빈곤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병적인 행위를 근절시켜야 범죄도 사라지고, 정의가 실현된다고 말한다. 이는 현대사회와 비교해 보아도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지적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에도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의해 빈부격차가 커지고, 이로 인해 생계형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사회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범죄 자체를 감싸고 돌 수는 없는 문제지만 분명히 빈부의 되물림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의 대안을 2부에서 설명한다. 2부에서는 유토피아라는 나라를 여행한 라파엘의 이야기를 통해 전개된다. 가상의 공간이지만 굉장히 구체적인 제도까지 다루고 있어서 마치 실제 여행담을 듣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나라의 구조, 노동의 조건, 공무원 제도, 여행과 무역, 금은 및 보관방법 등 아주 세밀하다. 인상적이었던 제도는 노동에 관한 부분이었다. 유토피아 인들은 하루에 여섯 시간씩 일을 한다. 오전에 세 시간, 오후에 세 시간 일을 하고 중간에 점심을 먹고 두 시간 휴식을 취한다. 그들은 여덟시에 잠자리에 들며 여덟 시간 잠을 잔다. 생각해보면 그리 많은 노동시간이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사유재산이 없고 모두 똑같이 일을 하고 분배하기 때문에 노동시간이 부족하지 않다. 쉽게 말해 노는 사람이 없이 모두 일을 나눠서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해보면 정말 합리적이면서 간단한 제도다. 모두가 일을 하고 모두가 그 이익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토피아 인들이 모두 정해진 획일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종교의 자유가 있고, ‘안락사’와 같은 제도를 인정하여 삶과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
유토피아 인들은 말한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몸을 써서 활용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금이나 보석같은 쓸모없는 물건보다 인간 자신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사이비 쾌락이 아니라 진정한 쾌락을 통해 인생의 즐거움을 찾고, 모두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향해 가야한다고 말한다. 토머스 모어의 이런 상상력이야 말로 세기를 넘어서도 회자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한 방법이 아닐까, 유토피아는 분명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상상하는 힘을 통해 실현되는 세상이다. 그 힘을 믿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야심과 정치적 분쟁 등 모든 사회악의 근원을 제거해버린, 좀 더 나은 유토피아가 되길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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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엔 천국이 있다면 지상엔 유토피아. 몇 백년 전 이 유토피아를 그린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이다. 그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공화국인 유토피아가 그 곳에서 여행자로 몇 년동안 머무른 라파엘의 회고로 자세히 그려진다.
유토피아 1부에서는 헨리 8세의 신하가 되어 어떻게 포악한 왕을 섬길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이 나온다. 실제로 모어는 선량하고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왕이 내린 직분을 거부하지않고 (자신의 의지나 정치 철학에 맞지 않았음에도) 그 지위에서 일을 한 것은 적어도 왕의 나쁜 정책만은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결국 그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면서 정치생활을 했다고 한다.
유토피아 2부에서는 1부에서 만난 라파엘과의 대화로 유토피아를 그리는데 시민들의 생활부터 정치, 경제, 전쟁, 외국과의 교역, 종교 등이 자세히 나온다. 이 책이 씌여진 수 세기가 지난 지금. 유토피아는 존재할 수 없고, 사유재산이 없는 기반의 사회는 발전이 더디거나 후퇴한다는 사실이 자명해졌지만 토마스 모어가 그리는 유토피아는 대단히 안정적이고, 발전적이며, 종교적 자유까지 있는 사회이다. (이 종교적인 문제는 모어 자신의 입장에서 나왔다고 보기 무색하지만...)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 그것이 곧 공산주의는 아니겠지만 분명 그 사회는 어딘가 어색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그런 이상향의 사회를 꿈꾸는 것은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 공화국에서 조금은 찾아볼 수 있다. 과도한 욕심이 없기에 여가를 즐길 수도 없을 만큼 과도하게 일할 필요도 없고, 사회 대부분의 사람이 일을 하기 때문에 (요즘 사회에 만연한 폭넓은 실업자를 보면 생각을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적당량의 노동만으로 충분한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분명히 유토피아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사회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도저히 이루어 질 수 없는 국가라고... 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도 추문으로 얼룩져 그 명맥을 잃은 지 오래이고, 전 세계의 단 하나남은 북한도 안정적이지 못하다. 너무 사유스러운 삶에 찌들려서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것일까?
수 세기 전의 책이라고 생각하니 그의 유토피아에 대한 포부의 크기를 더욱 가늠하기가 힘들다. 그는 비록 형장에서 한 목숨을 다했지만 유토피아에서 나타난 건강한 국가의 각종 요인들을 꼼꼼히 살펴 오늘날의 우리 삶에 부분부분 적용할 여지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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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유토피아'는 16세기 유럽의 인문주의자였던 토마스모어가 유럽 사회에 변화의 물결이 일던 영국의산업혁명 초기를 시대적배경으로 하여 그가 오랫동안 꿈꿨던 이상적인 나라를 그린 정치적 공상소설이다. 유토피아(Utopia)는 간단히 요약해서 현실적으로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또는 이상향(理想鄕)을 가리키는 말로 나타낼 수 있다. 유토피아는 보통 일반인들에게 높다란 벽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어려운 용어도 아니며, 일상용어로 쓰일 만큼 잘 알려져 있는 단어이다. 유토피아는 원래 토마스 모어(T. More)가 그리스어의 '없는(ou-)', '장소(toppos)'라는 두 말을 결합하여 만든 용어인데, 동시에 이 말은 '좋은(eu-)', '장소'라는 뜻을 연상하게 하는 이중기능을 지니고 있다. 즉 이것은 인류 사회에 현 상태를 비판하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것을 중요하게 보는 긍정적인 유토피아관과 더불어 현실의 변혁을 불가능한 몽상 정도로 치부하고 비웃는 부정적인 반유토피아관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토피아 사상은 한 시대의 비판 정신인 동시에 그 시대의 문제점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고 싶은 개혁 정신으로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회상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은 이상을 꿈꾸며 산다. 저자가 꿈꾸는 '유토피아'란 윤리에 입각한 도덕철학으로 모어의 그리스도교 사상에 입각한 이기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이상적인것을 추구라는 측면에서는 시대적인 관점의 차이때문에 모호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토마스 모어는 인간의 본성을 선하게 본 것에 틀림없다. 선과 악의 기준이 선명하고, 가치관이 통합되어 있는 사회, 그리고 그에 대한 일탈이 철저히 금지되어 있는 사회는 유토피아가 고도로 통제되고 있는 사회임을 보여준다. 물론 라파엘의 진술에 의하면,유토피아에는 법률이 별로 많지 않다. 모든 결정은 시민들 스스로의 높은 도덕성에 의해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달리 말하면, 규제의 내면화와 자기검열이 철저히 이루어지는 사회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추측은 본질적으로 유토피아가 스스로 그러한 모습으로 발전해 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철저한 계획에 의해 건설된 도시라는 점에 기인한다.
정말로 유토피아 같은 세계가 존재한다면, 인간은 스스로 선행을 베풀고 타인과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꾸려나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인간은 고매한 정신의 영역을 분리하지 않더라도 하나의 개체에 불과하다.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삶, 무위의 삶이 가능한 유토피아는 인간이 하나의 ‘개체’이기를 초월한 선의 세계(이데아)에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할 세계로 세속적 유토피아가 아닌 토마스 모어의 별세계 유토피아에 담긴 ‘정신’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인 견해를 차치해 두고라도, 유토피아를 그 자체로 몽상이고 공상에 불과하다고 치부해버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자명하다. 완전한 사회의 즐겁고 교훈적인 내용들은 현시점에 내가 생각한 여러가지 부조리한 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시대를 앞선 통찰력에 대해 존경을 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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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에 남기는 말은 흔히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일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동양에서는 사약이나 자결을 앞둔 선비들의 절명시가 유난히 감동적이고, 서구에서는 단두대의 이슬로 화하기 전에 말한 최후 진언이 주목을 받는다. 조광조와 황현의 절명시가 그렇고, 소크라테스와 마리 앙뜨와네트의 마지막 말이 그러하다. 그런데 사형집행인에게 이런 말을 남긴 사람의 일생은 어떠했을까.「기운을 내게. 자네의 직책을 과감히 수행해야 하네. 내 목은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헨리8세와 대적한 토마스 모어의 '절명시'는 남을 배려하는 인간미와 자신의 죽음을 자조하는 유머가 빛을 발한다.
토마스 모어(1478-1535)는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와 더불어 르네상스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 그의 책 《유토피아》에 나타난 사상을 참조하면 얼핏 급진적인 이상주의자로 보인다.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집단공유제를 구현한 이상사회의 모습을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종교개혁에 반대한 구교의 수호자였고, 실제로 단두대에 오르게 된 이유도 보수적인 종교적 신념 때문이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토마스 모어는 교황의 권위를 무시하는 헨리 8세의 처사에 반대했기에 런던탑에 갇히고 결국 목숨까지 잃게된다.
《유토피아》는 총 2부로 구성된다. 제1부는 저자 모어가 견문이 풍부한 노령의 학자 라파엘 히드로다에우스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내용이다. 라파엘은 헤브루어로 '신이 고쳤다'는 뜻이고, 히드로다에우스는 그리스어로 '난센스의 조제사'라는 뜻이다. 피터 자일즈란 젊은 학자가 모어에게 라파엘을 소개하면서 그를 플라톤과 율리시즈에 비유한다. 그만큼 라파엘의 사상이 깊이 있고 견문이 풍부함을 강조한다. 책에 등장하는 모어 자신의 모습은 라파엘의 유토피아적 견해에 전부 동조하지는 않는, 애써 비판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라파엘은 전제군주제의 폐단과 귀족들의 사치와 부패, 그리고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부조리를 고발하는데, 무엇보다 사유재산제를 만악의 근원으로 규명한다.
「모어 선생, 솔직히 말씀드리면 사유재산이 허용되고 모든 것이 돈의 존재에 의해 평가되는 사회에서는 당신은 진정한 정의나 번영을 결코 실현시킬 수 없습니다. 가장 사악한 사람들이 최상의 생활을 누리는 것을 공정하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모든 재산이 극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나라를 번영하고 있다고 부를 용의가 없다면…….」(67쪽)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것이 공동 소유이므로 공동창고가 가득 차 있는 한, 결핍의 공포는 없습니다. 누구나 공정한 분배를 받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나 거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유재산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으나, 누구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부자인 것입니다.」(176쪽)
유토피아의 정치와 종교는 배타적 엘리트계급(고위공무원, 학자, 성직자)과 노예제도를 긍정한다는 점에서 완벽한 평등지향의 이상사회와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진다. 비록 윤리적 측면에서 건전한 쾌락주의와 평화주의를 지향하지만 말이다. 유토피아를 말그대로 유토피아로 만들어주는 제도는 경제와 교육분야가 아닐까 싶다. 자급자족적 농업경제이고, 집단공유제로 계급간의 빈부격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치나 과잉생산이 존재하지 않고 금은보화를 말그대로 돌처럼 여긴다. 완전고용제이며 하루 6시간의 노동에 종사하고 남은 시간은 독서 같은 자기계발에 투자한다. 한마디로 유토피아에는 '입시지옥'과 '취직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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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평등이란 존재할 수가 있을까? 사회주의는 협동적으로 자유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이며 사리사욕등으로 타인의 그런 사회주의의 대표격중에 하나가 토머스모어이다. 토머스모어는 1477년 영국 이 책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가 1516년에 발표한 공상소설로서 원제목은 <최선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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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금은보화를 넘치도록 소유하는 세상이 유토피아일 것이고 누군가는 자신이 최고의 권력자가 되는 세상이 유토피아일 것이다. 과거의 누군가에게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유토피아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조선인의 유토피아]를 읽었다. 옛사람들이 꿈꾸던 유토피아는 ‘땀 흘려 일하고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이었다.
홍신문화사의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시리즈 10번째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다.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는 어떤 세상일까, 늘 궁금했으면서도 고전은 어렵다는 편견에 읽지 못하고 있었다. 책은 [유토피아]와 토머스 모어에 대한 소개가 나오고 [유토피아] 1부와 2부가 실려 있다. 1부는 모어와 피터가 라파엘에게 왕의 신하가 되지 않는 이유, 철학자의 역할에 대해 묻고 라파엘이 대답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들을 준비, 들은 바를 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왕이나 통치자를 만나는 일은 정말 슬픈 일이다. 사람들은 점점 입을 닫는다. 2부에선 라파엘은 모어에게 자신이 머물렀던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토피아는 사유재산이 없고 연장자를 존경하고 연장자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부자라는 이유로 머리 숙이지 않으며 내가 일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쉬게 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일을 해야 할 땐 중노동을 즐기지만 머리를 사용하는 일도 중요시한다. 공인된 안락사이긴 하지만 안락사를 명예로운 죽음으로 여기는 것은 파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길어서 보통 사람들이 한꺼번에 읽지 못하거나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는 법률로 인간을 속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은 정말 공감한다. 법의 테두리에서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어려운 법률을 볼 때마다 대체 누구를 위한 법률인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세계 곳곳에선 전쟁이 계속 되고 있다. 전쟁의 이유는 종교, 자원, 영토 등 다양하다. 유토피아인들은 침략자를 물리치거나 독재 정권으로부터 인민을 해방시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쟁을 하지 않았다. 전쟁의 이유는 이 두 가지 외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문제들은 결국 ‘나’가 우선이라는 이기적인 사고에서 발생한 문제일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유토피아]는 정치인이나 권력자들이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들은 너무도 바빠 이 책을 읽을 시간이 없겠지만. 모어도 인정했듯 라파엘이 만난 세상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곳’이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의 세상이 과거의 누군가가 그리던 유토피아였듯 유토피아는 우리의 노력으로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사람들이 계속에서 유토피아를 찾고 꿈을 꾸는 한 유토피아는 언젠가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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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항상 멋있다. 그래서 읽고 나면 뿌득함과 함께 인류의 문화유산에 접촉한 듯 한 마음이 생긴다. 유토피아는 유명한 고전이며, 그래서 꼭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그런 부푼 마음으로 읽었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 생각보다 책이 얇았던 점과 내용이 빈약하다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읽기 쉽게 쓴 것 같은 이 책은 독자를 의식해서인지 자신이 가진 사상을 쉽게 풀어쓰고 있다. 덕분에 모어의 사상을 많이 알 수는 있었으나, 그 이상의 고민을 던져주기는 조금 힘들지 않았나 싶다.
또한, 책 자체가 얇기 때문에 많은 내용을 실을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얇은 책에 넣어야 할 내용은 많았지만, 다 잘라내고... 그 것 마저도 이야기 형식으로 넣어야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유토피아에 대해서 꿈꿔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그 곳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모두들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땅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사유재산제도를 없앨 필요는 없다. 모두들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닐 필요도 없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들을 꿈꿀 수 있다면... 이 책은 그 것으로 소임을 다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다 읽을 즈음에는 자신도 비슷한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책은 청소년에게 추천하고 싶다. 항상 꿈꾸는 나이에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건축한다면 앞으로의 삶에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바를 조금은 더 명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사회의 제도에 만족하지 못 하는 부분을 고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그런 제도를 위하여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만약 자신이 유토피아에 있다면 어떤 느낌일지에 대해서... 자신이 현재 유토피아와 얼마나 동 떨어져 있으며, 그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 많은 생각들을 해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유토피아라는 책은 다 읽었다. 뭔가 유토피아 2라도 나와야 할 듯이 끝난 부분이 조금은 애석하다. 부족한 부분은 나의 상상력과 내가 꿈꾸는 그 세상으로 채워봐야 하겠다. 세상이 유토피아가 될 수는 없을지라도 나는 계속 그 꿈을 꾸며 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