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작가 르 클레지오의 신작 『브르타뉴의 노래. 아이와 전쟁』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역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답게, 프랑스 소설답게 약간의 집중력이 필요하고 숨 고르기를 하며 읽어야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영화가 가진 깊은 맛을 책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르 클레지오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분이지요. 한국은 그가 아시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방문한 나라라고 합니다. 그는 20021년 프랑스 대사관과 대산 문화재단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 후 그는 한국문화에 매료되어 셀 수도 없을 만큼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한국을 좋아한 그는 우리 한국어의 우수성을 극찬했고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해 한글을 읽을 줄 안다고 합니다. 노벨문학상을 받던 2008년 그해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였습니다. 한국에 2년간 머물면서 한국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하려 애쓴 흔적이 한국을 배경으로 한 두 권의 소설에 남아있습니다. 바로 제주를 배경으로 제주 해녀들에게 바치는 소설인 『폭풍우』는 제주에 대한 찬가입니다. 2017년에 발표한 『빛나 : 서울 하늘 아래』는 서울을 매우 흥미로운 도시로 묘사하며 전통과 현대의 공존,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정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빛나 : 서울 하늘 아래』는 한국을 배경으로 해서인지 르 클레지오의 다른 소설보다는 쉬이 읽히는 작품입니다. 그가 좋아하고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한국어는 ‘정’과 鄕愁(향수)입니다. 이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훌륭한 작가가 우리 한국에서 2년간 머물며 우리 문화를 이해하고 좋아했다니 저도 그가 좋아집니다. 르 클레지오는 그의 명성과 다르게 삶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평탄하지 않았음이 그의 명성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1940년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1940년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6개월이 된 시점에, 전쟁과 아버지의 부재중에 태어납니다. 소설 곳곳에는 전쟁의 아픔이 있습니다. 클레지오는 말합니다. “전쟁 중에 태어난 아이는 결코 아이가 될 수 없다.” 그는 생애 첫 다섯 해를 전쟁 중에 살았습니다. “전쟁은 아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건이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기억하는 첫 기억도 폭력입니다. 할머니 집에 머물 때 그 집 정원에 폭탄이 떨어진 거지요. 그 폭탄은 할머니, 어머니, 형, 그리고 클레지오의 인생을 바꿔놓습니다. 『아이와 전쟁』 그는 실제로 겪었던 전쟁의 소소한 일상을 담담하게 묘사합니다. 산골 마을로의 도피, 독일군이 바퀴를 빼버린 낡은 자동차, 이탈리아 항독 운동가였던 동네 형 빨간 머리 마리오의 죽음, 할머니 다리의 상처 위에 붙은 파리등 어른들의 말을 통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공포, 목적도 이유도 없이 터져 나왔던 분노도 이야기합니다. 전쟁 중 태어난 작가에게 전쟁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트라우마였습니다. 클레지오는 고백합니다. “인생 초기 몇 년 동안 배가 고팠고 두려움과 공허함을 느꼈던 경험은 나를 단련시키지 못했다. 그 시절의 경험은 오히려 나를 난폭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것은 전쟁 중 태어난 모든 아이들의 운명일 것이다. 범죄와 죽음과 약탈의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규칙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온화함도 나눔도 없다는 것을, 황량한 거리든 폭탄이 터진 건물 파사드 뒤든 폭탄이 설치된 공터 안이든 바깥 세계 어딘가에는 힘세고 위험한 다른 종의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난폭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영양실조와 면역력의 저하 때문이었을까? 전쟁 이후, 나는 여러 차례에 걸쳐 많이 아팠다. 기침을 참을 수 없어 토할 때까지 기침을 계속했다. ..........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아팠던 기억이 난다. 너무 아파서 빛을 피해 테이블 밑으로 숨어야 할 정도였다. 그 난폭함을 나는 아직도 느낀다. 원한의 감정, 사람들이 나를 속이고 모두가 거짓인 세상에서 살았다는 막연한 느낌을 나는 잊지 않았다.................. 전쟁 중의 감금에서 풀려났을 때, 다시 창문을 열 수 있었을 때,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차올라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이든 물건이든 심지어 가구까지 7층 창문 밖으로 집어던졌던 기억이 난다. 목구멍이 찢어지도록 소리치며 울었던 기억도 난다. 그것은 기분이 나빠서 내는 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분노였다. 대상도 이유도 없는, 분노 그 자체였다.” 클레지오의 고백대로 전쟁은 아이들의 삶을 이렇게 황폐하게 만듭니다. 『브르타뉴의 노래』 여든 살이 되어 클레지오는 조상의 고향이자 가족의 뿌리인 브르타뉴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70여 년 전의 기억 속에서 정확한 장소와 인물들을 끄집어내어 몽상적인 노래를 만들어 <브르타뉴의 노래를 만들어 냈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은 여름방학이면 부모님과 함께 찾았던 고향 브르타뉴라는 공간과 그 문화에 대한 찬가입니다. 그는 변해버린 생트마린, 르 두르 부인과 두 소녀, 코스케성 에서의 축제,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날의 추수, 어느 날 밤 바닷가에서 들리는 브르타뉴의 전통악기 비니우 소리, 감자잎벌레 도리포로스에 대한 연구, 썰물 때 다리로 그의 종아리를 감싸며 인사하러 오는 문어, 황야와 파도,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토로슈곶, 브르타뉴의 종교의식, 천년 넘은 팡마르카슈의 돌멩이 등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점점 사라져 가는 것들, 특히 브르타뉴를 특별한 대상으로 하여 쇠퇴하거나 퇴행하는 것들, 이를테면 세상의 “변화의 징후”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것들에 대한 절실한 안타까움을 드러냅니다. 그는 자신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브르타뉴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 개성의 독특한 실존적 특징을 강조하는가 하면, 브르타뉴어로도 프랑스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파도와 숲과 벌판에서 감지되던 자연의 냄새와 그 색채의 생생한 기억 속으로 깊이 빠져듭니다. 클레지오는 시간 혹은 역사는 흔적을 남기고, 그 중에는 잊히지 말아야 할 것과 잊혀야 할 것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읽으시면서 지금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것들, 지켜야 하는 것들, 그리고 잊어버리면 좋을 것들을 각자의 삶과 우리 역사에서 잘 찾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브래타뉴의노래아이와전쟁 #브래타뉴의노래 #아이와전쟁 #르클레지오 #장마리귀스타브르클레지오 #노벨문학상수상작가 #이화여대초빙교수 #이화여대석좌교수 #빛나:서울하늘아래 #폭풍우 #책세상세계문학 #송기정 #르클레지오의신간 |
??르 클레지오 작가의 자전적 소설 ??만연체 글이 아니어서 쉽게 술술 읽히는 매력 ??세계대전을 그렸으나 지금 현재의 전쟁 중인 나라들의 모습도 함께 그려지는 이야기 ?? 특히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더 좋음 ??전쟁이라는 키워드가 가지는 무거움과 아픔을 지나치게 무겁지 않게 전달하는 책 ?? 한국을 좋아한다는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짐. (54) "물론 세상은 변했다. 풍속도 복장도 달라졌고, 고유의 언어도 다소 잊혔다. 하지만 어느 날 저녁, 누군가 그곳 황야에서,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때, 개 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집과 멀린 떨어진 곳에서 그 악기를 연주한다면, 사라졌다고 믿었던 모든 것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 아마도 르 클레지오는 <브르타뉴의 노래> 글을 쓰면서 백파이프 연주를 계속해서 듣지 않았을까 책을 읽는 내내 아련한 느낌의 고향 가곡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르 클레지오의 이야기 [브르타뉴의 노래]에는 어떤 갈등 요소도 특별한 등장인물이 없다. 주인공은 오직 '브르타뉴' 지역 뿐이다. 저자인 르 클레지오가 어린시절 만났던 '브르타뉴'에 대한 추억들 그리고 지금의 시점에서 만난 '브르타뉴'의 변화된 모습들. 이에 대한 짧은 단상들이 이야기를 이루고 있다. (57) "어른이 되어 다시 브르타뉴에 갔을 때, 나는 도리포로스를 찾아 보았지만 도리포로스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 그러고 보니 결국 창을 가진 자는 인간이었다! (...) 이 작은 존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삶의 주기가 사라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분명 감자의 수확량은 늘었다. 하지만 브르타뉴의 땅에는 무엇인가가 결핍되어 있었다." (80) 해안가 마을에서는 야생초를 경작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 사회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곳은 토끼와 노루와 여우를 위한 세상이지 인류를 위한 세상이 아니었다. 아니면 지금은 사라져버린 다른 종의 인류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야기 속에는 인간들의 무지함 혹은 편의성을 위해 희생된 다양한 생물종들의 소멸의 모습이 그려진다. 다양성의 부재, 다양성의 소멸이라는 어찌보면 무거운 주제가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리고 있다. 과거에는 '다양성'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인간'만이 살아남기 위해 나머지들을 무참하게 멸종시켜버린 것일까? (59) "브르타뉴, 특히 어머니가 가장 좋아했던 퐁라베 지방, (....) 그곳은 전쟁과 파괴의 고장이다." (73)"브르타뉴에 있을 때면 나는 전쟁이 끝나고 5년이 지난 후 그곳이 어땠었나에 대한 기억을 되찾고자 토르슈곶을 방문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요즘 아이들도 토르슈에 오지만, 그 아이들은 다른 것을 본다." 또한, 작품에는 '세계대전'이라는 어둡고 무거운 시기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무거운 서사가 계속되기 보다는 '브르타뉴'의 입장에서,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황을 적당한 무게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묘사들이 그려내는 삶의 모습은 긴 시간의 흐름 속에 찰나처럼 지나가는 우리네 인생에 대한 모습들이다. (77)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던 시기였지만, 우리는 그런 것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랬기에 우리는 유년기 시절에 우리가 경험했던 것들이 영원히 지속되리라 믿었을 수도 있다." (83) 내가 아는 세상 이전에 다른 세상이 있었음을, 나는 그저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에 불과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저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로서 내가 바라보는 '브르타뉴'는 존재 자체는 변하지 않은 채 잠시 외향이 변해가고 있는 모습이다. 별것 아닐 수 있는 문장이지만 문장 속에서 어딘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이 단지 '브르타뉴' 여서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장소들에도 이러한 "쓸쓸함"이 머물 수 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일 것이다. (89) 브레즈 아타오('브르타뉴여 영원히') (...) 마치 브르타뉴 사람이면 프랑스인은 될 수 없다는 듯이, 마치 그 두 개는 서로 완전히 반대어라는 듯이 말이다. 혹은 그 모든 것은 그저 지난 시대 이야기일뿐이며, 지금은 막연하고 아무 쓸모도 없는 향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98) 사실 브르타뉴에는 타인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아마도 이주와 족외혼이 그들의 유전자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은 프랑스 지방 중 드물게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지지한 지역이다. 이 책 [브르타뉴의 노래]를 읽기 전까지는 프랑스의 '브르타뉴' 지역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지역이 특별히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것은 유럽은 각 지역마다의 특색이 어딘가 살아있구나 하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생생함을 그려내면 오히려 '지역색'을 드러낸다고 하여 부정적 평가를 받기 쉬울 텐데 말이다. 사실 특별한 지역색을 가지고 있는 편은 아니기 때문인지, 이러한 '지역색'이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하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국가'라는 이름 하에 정말 중요한 각 지역마다의 특색을 상실해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독 이 생각이 강하게 든 것은 아마도 최근 '서울 편입'과 관련된 들썩들썩한 경기도 일부 도시들의 이야기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06) 나는 바로 그런 이들에게 이 소소한 이야기를 바치고 싶다. 이것은 고백이나 추억 앨범이 아니다. 그저 단조로우면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브르타뉴의 노래다. 지금도 폭풍우 속에서 '노래하는 바위'가 부르는 노래, 그 오래된 지난날 밤 축제의 열기 속에서 우리 조상들이 브르타뉴의 전통악기 비니우와 봉바르드의 날카로운 음악을 배경으로 발을 구르며 반복하여 전하던, 바람이 실어간 노래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각자의 특색에 따라 '각자의 노래'를 찾아가고 계승해나가는 것은 아닐까? 굳이 '서울'로 대동단결하는 모습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생각도 든다. 책속의 두번째 수록 작품인 [아이와 전쟁]. 작가 자신이 겪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지금 이 시점에 더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매일 빼놓지 않고 들리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소식 때문이다. 책 속의 내용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폭격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고 죽어가고 있는 아이들 (116) 나는 캐나다 폭탄으로 터져버린 고막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타격을 받았거늘, 하물며 그토록 무겁고 강력한 폭탄에 대해, 콘크리트도 뚫을 수 있고 지하 3층에 있는 적까지도 타격하도록 만들어진 폭탄에 대해 요즘 아이들은 어떤 기억을 가질까? 아이들은 어떻게 전쟁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가? 부상당하지 않더라도, 한 번이 아니라 열 번, 스무 번의 폭발음을 들어 익숙해질지라도, 사람들이 "전쟁이다"라고 말할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라도 말이다. 어떻게 그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르 클레지오의 말처럼 전쟁으로 인한 부상이나 죽음보다도 전쟁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살아야만 하는 아이들.. 운좋게도 나는 전쟁을 잠시 중단한 나라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직접적으로 겪지 않았다. 전쟁을 준비하는 일을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전쟁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와 .. 태어나보니 전쟁 중이었던 아이.. 둘 중 누가 더 전쟁을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전쟁에 대해 무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작금의 사태때문에 더욱 마음이 무거워지고, 가슴 한편이 아파지는 이야기 [아이와 전쟁]이었다.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 지원 도서임 |
『브르타뉴의 노래·아이와 전쟁』 J. M. G. 르 클레지오 (지음) | 송기정 (옮김) | 책세상 (펴냄)
연일 뉴스는 전쟁 소식이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아직도 진행 중인 또 다른 전쟁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잊힌 듯하다. 수많은 팔레스타인들이 가자 지구 내에서 죽어가고 있다. 하마스는 깊이 30미터되는 시설 아래서 그들만의 게릴라전을 하고 있어서 과연 이스라엘의 폭격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지 물음표가 생긴다. 분명 그들이 말하는 적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몸을 숨기고 있는데, 가자 지구에서 드러낸 여성과 아이들은 찢기고, 터지고, 죽어간다. 그들의 참상은 어디에도 보도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통신부터 끊었기 때문이다. 한 어머니는 폭탄 맞아서 찢긴 자식의 신체를 긁어모아서 비닐봉지에 넣어서 다니고, 여성들은 저마다 자식들의 손목에 지워지지 않을 문신을 남긴다. 행여 시체라도 찾기 위해서 말이다. 책 [아이와 전쟁]은 이와 같은 전쟁의 이야기다. 저자는 말한다. 전쟁을 겪은 아이들은 결코 아이가 될 수 없다고 말이다. 어쩌다 살아남은 이들은 공허함으로 가슴이 뻥 뚫린 채로 그저 숨만 쉴 뿐이다. 전쟁을 수없이 겪고서도 아직도 그 고리를 끊을 수 없는 인간이라니... 그리고 가장 고통받는 것은 죄 없는 아이들이란 것을 그토록 잘 아는 인간들이면서....
[브르타뉴의 노래] 역시 사라짐의 이야기이다. 말의 소멸과 자연의 소멸, 어린 시절에 보석같이 알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도둑맞은 저자의 기분이 느껴지는 글들이다. 브르타뉴의 노래는 여전히 계속되지만 이제 그 실상은 찾아볼 수 없고, 전쟁 후의 아이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이 두 글들은 다르지만 서로 닮은 잃어버림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지원도서 |
『브르타뉴의 노래.아이와 전쟁』 르 클레지오(저자) 책세상(출판) 책세상 세계문학 일곱 번째 이야기 『브르타뉴의 노래. 아이와 전쟁』은 르 클레지오의 작품입니다. 브르타뉴라는 도시 이름을 처음 들어보기도 했고 클레지오 작품 역시 처음이었기에 그의 에세이적인 자전적 글들에 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1940년 4월 니스에서 태어난 그는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프랑스에서 살았고 아프리카에서 유년기 일부를 보내며 조상의 고향 브르타뉴에서 여름방학을 보냈으며 멕시코와 파나마에서 새로운 삶을 보냈을 만큼 그에게 고향은 참 많은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와 모리셔스 이중국적자인 그는 왜 브르타뉴라는 도시를 글의 중심 소재로 썼을까요? 여든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조상들의 고향인 이곳에 돌아와 그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추억 속의 장소들과 인물들을 하나하나 꺼내며 여름방학을 보낸 학창 시절 브르타뉴의 문화는 그에게 어쩌면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의미가 담긴 곳이었는지도 모를 만큼 작가는 한문장 한문장 기억 속에서 추억들을 소환해냅니다. 브르타뉴의 생트마린에서 여름을 보내며 황야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었고 황야라는 뜻의 랑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땅을 완전히 덮어버리는 회녹색의 가시 양 골담초가 융단처럼 한없이 펼쳐진 넓은 들판을 의미할 만큼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고 브르타뉴를 묘사한 그만의 언어는 도시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드러나 있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프랑스어 문장들과 브르타뉴의 언어로 표현해낸 그 도시가 그려질 만큼 경이로웠습니다. 또한 아이로 전쟁의 삶이 어땠는지도 그 삶은 결코 어른으로서도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그것은 두 번째 이야기 아이와 전쟁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시대의 전쟁이 떠오를 만큼 전쟁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압감은 상당했습니다. 유년기 시절 2차 세계대전이 1939년 9월 일어나고 그가 5살 되던 1945년 9월 종식하기까지 몸소 겪었던 전쟁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어린 나이에 일어난 전쟁 얼마나 끔찍했을까요? 전쟁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했던 어른들의 몸 부과 고통스러웠던 날들은 아마도 평생 안고 가야 할 마음 아픈 기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 첫 기사를 보았습니다. 전쟁이 일어나 곳에 기자로 간 그는 자신의 딸과 아내의 죽음 앞에 무너지고 말았죠... 그의 마음을 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클레지오는 전쟁 속에서 태어난 아들의 유년기는 평화시기 아이들의 유년기와 다르다고 말합니다. 전쟁 중에 태어난 자신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아이와 전쟁을 읽으며 그가 느껴졌을 공허함과 공포 두려움이 생생합니다. 그들을 저버린 프랑스로부터 멀리 떠나 펼쳐질 새로운 삶... 아이들에게는 전쟁으로 인해 모두가 낯설어진 아프리카 환경에 적응해 나갈 수밖에 없던 현실 앞에 그들은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노년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르 클레지오 작가의 전쟁으로 인해 가슴 아픈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 그의 작품을 통해 삶의 감사함을 느끼며 브르타뉴라는 도시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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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의 노래·아이와 전쟁
J.M.G 르 클레지오 저자는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조서’와 ‘황금물고기’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우리나라의 모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한국과 관련되어 제주도의 해녀를 주요 소재로한 ‘폭풍우’ 라는 책도 출간했습니다. 브르타뉴의 노래. 아이와 전쟁은 작가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두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두 이야기는 단순한 회고록이 아닙니다. 르 클레지오는 기억의 왜곡 가능성을 인정하고 이를 경계합니다. 책세상 세계문학 7권은 〈브르타뉴의 노래〉와 〈아이와 전쟁〉, 두 레시(recit)로 구성된 책입니다. 레시(recit)는 프랑스 문학에서 소설보다는 편하고 자유로운 이야기의 형식을 말합니다. 그래서 읽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갇혀 있던 우리에게는 매일매일 낮이 똑같았고 매일매일의 밤이 비슷했다. ---p148
‘브르타뉴의 노래’는 배경이 프랑스 북쪽에 위지한 브르타뉴라는 곳입니다. 태어나지도 않았고 오랜기간 살지 않았음에도 작가는 브르타뉴에서 가장 많은 감동과 추억이 담겨 있다고 고백합니다. 독자도 고향은 아니지만 꿈 많던 어린시절을 보낸 추억하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던 시기였지만 유년기 시절에는 우리가 경험했던 것들이 영원히 지속되리라 믿었을 겁니다. 하지만 어린시절이 사라지고 있으면서 다른 세상을 맞게 됩니다. 주인공은 병자의 쾌유를 위한 기도 등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브르타뉴는 프랑스 전역에서 종교는 합리성을 더욱 중시하며 당국의 지시를 받아 예배 행렬과 바다나 배에 성수를 뿌리는 축도도 금지합니다. 지금 우리는 유약을 발라 반짝거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르 클레지오는 말합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어지럽고 힘든 세상은 맞지만 전쟁의 겪지도 않은 지금을 사는 사람들은 자기 조상의 땅이자 유년 시절의 추억이 진하게 배어 있는 브르타뉴를 특별한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다만 글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쇠퇴하거나 퇴행하는 것들, 세상의 변화에 속수무책 노출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냥 맞춰서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들은 언제나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클레지오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독자로서 좋아합니다. 독자들에게도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뜻깊은 의미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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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G 르 클레지오 저자는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조서’와 ‘황금물고기’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우리나라의 모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한국과 관련되어 제주도의 해녀를 주요 소재로한 ‘폭풍우’ 라는 책도 출간했습니다. 브르타뉴의 노래. 아이와 전쟁은 작가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두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두 이야기는 단순한 회고록이 아닙니다. 르 클레지오는 기억의 왜곡 가능성을 인정하고 이를 경계합니다. 책세상 세계문학 7권은 〈브르타뉴의 노래〉와 〈아이와 전쟁〉, 두 레시(recit)로 구성된 책입니다. 레시(recit)는 프랑스 문학에서 소설보다는 편하고 자유로운 이야기의 형식을 말합니다. 그래서 읽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갇혀 있던 우리에게는 매일매일 낮이 똑같았고 매일매일의 밤이 비슷했다. ---p148
‘브르타뉴의 노래’는 배경이 프랑스 북쪽에 위지한 브르타뉴라는 곳입니다. 태어나지도 않았고 오랜기간 살지 않았음에도 작가는 브르타뉴에서 가장 많은 감동과 추억이 담겨 있다고 고백합니다. 독자도 고향은 아니지만 꿈 많던 어린시절을 보낸 추억하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던 시기였지만 유년기 시절에는 우리가 경험했던 것들이 영원히 지속되리라 믿었을 겁니다. 하지만 어린시절이 사라지고 있으면서 다른 세상을 맞게 됩니다. 주인공은 병자의 쾌유를 위한 기도 등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브르타뉴는 프랑스 전역에서 종교는 합리성을 더욱 중시하며 당국의 지시를 받아 예배 행렬과 바다나 배에 성수를 뿌리는 축도도 금지합니다. 지금 우리는 유약을 발라 반짝거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르 클레지오는 말합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어지럽고 힘든 세상은 맞지만 전쟁의 겪지도 않은 지금을 사는 사람들은 자기 조상의 땅이자 유년 시절의 추억이 진하게 배어 있는 브르타뉴를 특별한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다만 글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쇠퇴하거나 퇴행하는 것들, 세상의 변화에 속수무책 노출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냥 맞춰서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들은 언제나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클레지오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독자로서 좋아합니다. 독자들에게도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뜻깊은 의미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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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자전적 이야기 두 편이 실려있다. 그의 유년 시절을 있는 그대로 담았기에 에세이 혹은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겠고, 서술 형식은 소설처럼 쓰여져 있어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아이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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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의 노래·아이와 전쟁 J.M.G. 르 클레지오 / 송기정 옮김 / 책세상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발표 이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책이 다시금 관심이 많아졌다. 그중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다소 늦은 만남인 듯하지만 지금이라도 거장의 작품을 만나는 기회가 되었다.
르 클레지오는 1940년 모리셔스 태생의 영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났다. 부모를 따라 니스, 나이지리아 등 다양한 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특히 브르타뉴는 1948년부터 1954년까지 매해 여름마다 보낸 곳으로 유년의 감동과 추억이 담긴 곳이다. 그리고 그 시대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겪고 전후 처리를 경험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의 어린 시절의 그의 인생이며 추억을 2020년에 출간된 단편집 『브르타뉴의 노래·아이와 전쟁』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브르타뉴의 노래」
브르타뉴는 프랑스 프랑스의 가장 큰 반도로 대서양을 향해 북서쪽으로 쭉 뻗어 나와있다. 과거 영국의 그레이튼 브리튼 섬에 살던 브르타뉴인들은 이주해 와서 자체적인 왕국을 세워 주변의 프랑스인과 구분되는 정체성을 가졌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브르타뉴는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게 하는 곳이다.
저자가 태어난 곳은 아니고 5,6년 여름의 몇 달만 보내는 곳이지만 브르타뉴와의 감동과 추억으로 연결된 곳이라고 말한다.
브르타뉴의 작은 마을 생트 마린은 기억 속 남아있는 생트 마린은 한적하고 고요하면서 여행객으로 부쩍이는 어촌마을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낯선 발음으로 억색하지만 다양한 비를 표현하는 말의 풍부함을 보여준다. 브르타뉴 어가 자연을 사랑하는 언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하지만 브르타뉴 안에게 잊혀가는 브르타뉴어라는 점은 아쉬움을 준다. 우리가 순수한 우리말보다 외래어와 혼합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겠지만 본연의 것을 버리고 현대적인 것에 매혹되어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게 느껴졌다.
언어를 버리고 현대적인 물질을 따르는 삶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정체성을 버리게 한다. 살기 위한 방법이지만 정체성을 버림으로 나의 뿌리를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돌아보게 했다.
하지만 브르타뉴 댄은 정체성을 지키려는 마음도 컸다. 과거 브르타뉴의 역사 중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900년이라는 세월 동안 독립국이자 주권국가였다(95쪽)는 사실은 자치국의 자유를 바라기도 것이라고 한다. 브르타뉴 찬가가 불리고, 브르타뉴 공국을 상징하는 구엔 아뒤 깃발이 여전히 펄럭이는 이유일 것이다.
「아이와 전쟁」
「아이와 전쟁」은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역사적 경험이다. 하지만 전쟁 속에서 태어난 아이는 그 상황이 그저 일상일 뿐이다. 어른들은 전쟁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에 전의 모습을 그리지만 아이들은 돌아간 과거가 없다. 그래서 폭력적인 전쟁이 폭력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더 아픈 현실은 전쟁 속 아이들은 잊힌 존재로 취급받는다. 죄 없는 아이들은 이유도 없는 허기를 느끼면 전쟁의 기간에 텅 비어버린 마음을 가지게 된다. 거기에 분노라는 감정이 채워져버린 아이들.
전쟁이란 누구에게나 최악의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더한 고통이 주어진다. 전쟁의 주체가 되어 싸우는 어른, 남자에 의해 전쟁의 영웅이든 포로 등으로 그들은 기억되지만 아이들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다.
언급되지 않은 여자와 아이들의 고통이 덜하지는 않는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자리에서 남겨진 가족을 챙기는 삶도 고통스러웠다. 전쟁터와 멀리 있다 해도 언제 어디서 전쟁의 폭력이 닥칠지 알 수 없었다. 늘 불안 속에서 숨죽여 살아야 했다. 저자는 여자로만 이루어진 가족에서 자궁 속에 있듯이 보호받았다고 한다. 전후를 비교할 수 없는 상황에 숨어 움츠려 사는 삶이 일상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전쟁의 공포는 폭력이라는 것을. 그래서 전쟁 기간 비어 버린 유년의 시기에 분노로 채워진 것이다.
저자는 이제 고령의 나이로 과거 유년의 시기를 떠올지만 현재에도 전쟁을 경험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유도 모르는 전쟁을 경험하는 아이들은 전쟁의 위험, 공포를 죄 없이 받고 있다. 그들의 경험은 평생 잊히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난폭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폭력을 경험하고 폭력을 배우게 된 것이다. 거기에 분노의 삶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파괴는 한 순이지만 회복은 더디다. 그 회복의 과정에 어려운 여정을 보낸 아이들, 그 보내야 할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더 이상 이런 고통의 유년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르 클레지오의 작품은 『브르타뉴의 노래·아이와 전쟁』로 처음 접했다. 책을 읽는 내내 섬세한 표현은 수채화 같은 전경이 그려졌다. 그림같이 표현된 문장은 하나의 풍경화가 되었으며, 과거의 추억을 재구성하는 서사는 그 속에 숨겨진 역사를 배우고, 당시를 경험한 이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타이틀로 시작했지만 책을 읽고 나니 작품을 더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작가를 알아가는 기쁨이 있는 책이었다.
처음 알았지만 더욱 알고 싶은 매력을 가진 작가이다. 특히 한국을 배경으로 한 《빛나:서울 하늘 아래》로 한국 독자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는데 내가 알고 있는 한국에 대해 어떤 표현으로 이야기할지 궁금해진다. 다음은 그의 문체에 반해 또다시 그의 책을 찾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이 책에 담긴 두 이야기는 저자의 유년 시절을 담고 있는데 읽다 보면 어쩐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지금은 흔하게 볼 수 없는, 잊혔거나 없어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시금 되짚어보게 하는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강제적 혹은 시스템적으로 변화되었거나 혹은 산업화와 같은 문명의 이기에 따라 없어진 문화들이 떠오르며 더 그리움을 자아낸다.
두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양상의 극과 극의 느낌을 전하는데, 하나는 어린 시절 여름휴가차 잠시 머물렀던 브르타뉴 지방에서 보냈던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또 다른 이야기는 태어난 직후부터 약 5년간 겪었던 전쟁으로 인해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가장 끔찍했던 시절을 담고 있다.
이렇듯 완전히 극과 극의 이야기 속에는 상황과 완전히 반대되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동시에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어쩌면 여든 살이 된 작가가 70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썼기에 양립이 가능한 감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마 겪고 있던 당시에 썼다면 이와 같은 감정들을 엮지 못했을 수도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유년 시절을 되돌아보며 쓴 기억 속 파편들은 어느새 이야기가 되어 당시에 존재했던 인물과 장소들을 끄집어 내어 몽상적인 노래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또 전쟁 속 당연한 듯 자리한 일상들을 덤덤히 그려내기도 한다.
기억에 의존했기에 모든 것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얼기설기 엮인 기억의 조각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마치 소설처럼 감동과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저자는 문장 사이에 이 책이 고백도, 추억담도, 자서전도 아님을 강조하는데, 분명한 건 저자 자신이 겪은 유년기 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연대순으로 진행되지 않아 추측으로만 시대를 가늠할 뿐이지만, 실상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저자가 추억한 유년 시절의 화양연화와 끔찍했던 나날들을 되짚어 보며 나의 어린 시절 속 가장 행복했던 날과 가장 끔찍했던 날로 기억되는 때는 언제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브르타뉴의 노래>에서는 유년 시절 가장 많은 감동과 추억이 깃든 장소인 브르타뉴 지역에서 있었던 일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태어나지도 않았고, 오랜 시간 살지도 않았지만 어쩐지 꿈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그리움을 자아내는 그곳에 대한 추억을 풀어낸다.
<아이와 전쟁>에서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약 5년간 전쟁 속에 살아야 했던 저자의 끔찍했던 일상을 담고 있다. 전쟁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오로지 여성들 사이에서 자라야만 했던 저자의 당시 상황과 감정에 대해 담고 있다.
저자는 자전적 이야기이기에 변질된 기억일 수도 있다는 점을 수용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에세이 같은 소설의 느낌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이것을 문학의 분류 기준으로 보자면 레시(recit, 이야기)로 분류된다고 한다. 통상적인 이야기의 흐름 속에 자전적 이야기를 녹여 어떤 감동과 서사가 전개되는지 이제부터 소개해 보려 한다.
----- (...) 브르타뉴, 그곳은 친숙했다. 가족적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우리가, 그러니까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브르타뉴 사람이며, 기원을 찾을 수 있는 한 가장 먼 조상 때부터 대대로 그 지역과 보이지 않는 단단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9페이지 中
브르타뉴 지역에 대한 저자의 느낌을 알 수 있는 문장이다. 오랫동안 머물지는 않았지만, 친숙하고 가족 같은 느낌이 드는 곳, 그곳이 바로 브르타뉴였다.
(...) 그런데 이곳의 변한 모습은 왜 유난히 나를 슬프게 할까? 마음속에 무슨 이미지를 소중한 비밀처럼 간직하고 있기에, 우스꽝스러운 그 모습은 그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뒤흔들면서 마치 보물을 도둑맞은 느낌을 주는 것일까? 12페이지 中
브르타뉴를 떠올리며 서술된 장면들을 살펴보다 보면 옛 시골의 정취가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하나하나 세세하게 떠올리며 묘사한 사람, 장소, 풍경들은 읽다 보면 저절로 눈앞에 그려진다. 더불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현재의 모습과 비교되며 슬픔과 그리움을 자아낸다.
(...) 그들의 부모나 조부모처럼 그들은 전부 브르타뉴 말을 했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그 언어를 사용하는 습관을 잃어버렸다. 언어를 잊어버려서가 아니라, 그것은 어린 시절의 언어, 과거의 언어, 돈을 벌 필요도 공부를 잘할 필요도 없던 시절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 왜일까? 그들은 왜 저항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왜 브르타뉴어가 자신들을 열등한 계층으로 밀어 넣는다고 생각했을까? 왜 그 언어를 사용하면 가난이나 무지를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믿었을까? (...) 그때의 그 소년 소녀들은 학교에서 브르타뉴어를 사용하면 벌을 받았다. 심지어 쉬는 시간에도 그랬다. 그것이 국가적 차원의 교육 강령이었고, 자신은 브르타뉴 말을 하면서도 교사들은 그 강령을 준수했다. 프랑스어는 공화국의 언어였다.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 브르타뉴어를 사용하지 않게 된 진정한 원인은 브르타뉴 사람들 자신에게 있었다. (...) 그들은 현대적인 것에 대한 유혹을 출신에 대한 수치심으로 착각했고, 조상들의 관습과 풍속을 계속 유지하면 후진성을 면할 수 없을까 봐 겁이 났으며, 수 세기 동안 시골 사람들이 감내했던 지긋지긋한 가난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국가는 통일에 균열이 생길까 봐, 그 기조를 유지했다. 22~23페이지 中
이 문장들을 통해 저자가 특히 그 지역에서 사용하던 언어였던 브르타뉴어가 사라진 것에 대해 매우 슬퍼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름방학이면 마치 해방을 만끽하듯 사용하던 브르타뉴어가 마치 열등한 계층으로 밀어 넣는다는 생각 때문에, 가난과 무지의 언어처럼 여겨져 결국 그렇게 프랑스어에 밀려 사라졌다.
물론 사람들은 80년대에 모든 해안가 마을에 닥쳤던 어업의 위기를 말하곤 한다. 그 당시 전문지식을 갖춘 고위 관료들이 탁상공론으로 만든 유럽 연합의 법규는 과거 삶의 방식에 타격을 주었고, 브르타뉴에 살던 어부들은 자신들 소유의 선박을 버리고 통조림 제조공장의 노동자가 되었으며, 그렇게 활기차던 항구는 창고가 되어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그 당시 어부들은 강력하게 저항했다. 29페이지 中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유년 시절을 추억하지만, 반대로 현재에는 그 아름다운 추억 속 그 무엇도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그래서 더 서글픔과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아주 짧은 시간 모든 것은 순식간에 과거 속으로 사라져 이제는 약간의 흔적들로 그저 '추억'할 뿐이다.
(...) 설탕도 버터도 없이 위에 부담을 주는 거친 밀가루로만 만든 크랑푸젱이라는 진짜 브르타뉴식 크레프였고, 사과주는 미지근했다. (...) 나는 그때 먹던 크레프의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 연기 가득한 농가의 희미한 빛 속에서 느끼던 뜨겁고 깊은 그 맛, 도자기에 담긴 사과주의 탄닌, 뭔가 모르게 감미로우면서도 거친 그 맛을 기억한다. 35~36페이지 中
당시 먹었던 추억에 대한 맛에 대한 서술 장면을 읽으며 나만의 추억 음식도 떠올려본다. 사실 제대로 된 재료가 없어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때 먹었던 맛, 분위기, 향 등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산물이다. 그래서 저자는 오랜 시간 그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
(...) 특히 자전거가 많았다. (...) 사람들은 전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걷기 힘든 노인도, 헝겊 모자를 쓰고 검은 옷을 입은 여자도. (...) 사람들은 자전거를 묶어두지 않았다. 종종 집의 대문도 잠그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주머니 속에 열쇠를 넣고 다녔던 기억이 없다. 40~41페이지 中
두 발을 대신해 줄 자전거가 많던 시절. 길거리에는 보행자들과 자전거로 넘쳐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전거를 묶어두거나 문을 잠그지 않고 다녔다. 우리의 80~90년대 시절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골목 어귀에서 한데 어울려 다니던 아이들, 활짝 열린 대문들 속 따뜻한 밥 냄새가 풍기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이다.
77페이지 中
종교에 있어서도 완전히 다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윤을 추구하는 현 교회와는 다르게 당시 브르타뉴의 교회는 사람을 보호해 주고 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던, 정감이 느껴지는 따뜻한 교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97~98페이지 中
브르타뉴 지역이 쇠퇴한 가장 큰 원인으로 경제를 꼽고 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프랑스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상황이라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선하게 그려지는 바다.
104페이지 中
어쩌면 영웅을 따르고, 땅과 바람과 물의 힘을 믿던, 순박하고 행복하게 살았던 당시의 일들을 다시금 떠올리고자 쓴 글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절대 만나볼 수 없기에 더 소중하고 감동으로 다가오는 유년 시절의 그날들.
학교의 교육이 아니라 구전으로 전해지는 생생한 문화는 어느 세대에서 끊기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조상의 유산이다.
106페이지 中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코끝에 스며든 잔잔한 향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그리움을 담아 남긴 화양연화의 한 페이지를 들여다본 느낌의 글이었다.
----- (...) 그저 감정과 느낌, 태어나서 최초의 기억이 남아 있는 다섯 살에서 여섯 살까지의 아이가 겪었던 불안정한 감정의 흐름만 있을 뿐이다. 111페이지 中
현재 세계 곳곳에서 터지고 있는 각종 전쟁과 테러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떠올라 더 먹먹했던 이야기였는데, 이것은 아이가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 잠재적으로 뿌리 깊이 남아있는 가장 끔찍한 기억일 것이다.
113~114페이지 中
태어나 약 5년간 겪었던 전쟁에 대한 기억이라 완전하진 않다. 하지만 당시에 겪었던 감정이나 기분은 분명하다. 평화의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과는 달리, 전쟁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이 모든 일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어떤 어른들도 제대로 된 진실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침묵 속에서 묵묵히 공포를 견딜 뿐이다. 어릴 때 들었던 동화 속 캐릭터나 이야기는 알지 못한다. 그런 감미로운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저 남아있는 강렬한 기억은 폭력에 대한 기억일 뿐이다.
임팩트 강한 이 기억은 아마 죽는 순간까지 평생을 따라다닐 것이다. 저자가 그러했듯, 현재 전쟁을 겪고 있는 모든 아이들이 그러할 것이다.
115페이지 中
폭탄이 터지는 순간의 선명한 기억이 몸에 각인된 듯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세상에 태어나 어떤 것도 선택한 적 없는 아이는 그저 그 모든 것을 겪을 뿐이다.
----- (...) 여자들 사이에서 전쟁을 겪는 것은 불안한 동시에 온화했다. 불안했던 이유는, 우리 할머니처럼 강인한 여성일지라도, 여자들은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이다. 124페이지 中
전쟁통 아버지 없이 여자들 사이에서 자란 아이는 양가감정 속에서 자란다. 불안한 동시에 온화함을 느낀다. 저자의 아버지는 아프리카에 발이 묶여 가족들과 합류할 수 없었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할머니와 어머니를 주축으로 숨어서 전쟁을 겪어낸다.
아이러니한 이 감정이 어쩌면 아이를 성장시키고 견디게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 실제로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분명 '죽음', '사망자' 같은 단어들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온화했다. 정말로 아주 온화했다. 124페이지 中
아이가 들어서는 안되는 '죽음'과, '사망자'라는 단어가 아주 흔하게 들렸지만, 아이는 이 순간마저도 온화했다고 말한다. 어쩌면 위험한 밖에 아닌 안전한 안에서 아이들을 품어준 엄마와 할머니가 있어서는 아니었을까?
(...) 나는 마치 고치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희미하게나마 따스하고 안락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 고치 안에서 우리는 안전하게 자랄 수 있었다. 밖의 공기는 음산하고 축축하고 추웠지만, 집안 분위기는 활력이 넘치고 따뜻했다. 125페이지 中
마치 고치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안락하고 따뜻한 공간처럼 느껴졌다는 문장에서 얼마나 여성들이 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는지 알 수 있다. 험악한 바깥 분위기와는 다른 안락한 내부의 분위기에 대해 서술한 문장은 아이가 당시 피부로 느낀,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문장이다.
허기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대부분 육체적 허기를 경험한 사람이다. 나는 나는 몸 안에서 느껴지는 정신적 허기를 경험했다. 1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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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허한 상태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속적인 결핍, 뻥 뚫린 구멍, 하나의 공간이다. 나는 이것이든 저것이든 무엇인가를 원했던 기억이 없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무엇이든 풍부하게 가져본 적이 없다. 그뿐이다. 137페이지 中
----- (...) 전쟁이 내 뱃속과 머릿속에 파놓은 텅 빈 공간, 그것은 나라는 존재의 일부다. 138~139페이지 中
전쟁통에 얻은 또 하나의 아픔은 바로 정신적 허기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얻게 된 산물은 그렇게 존재의 일부가 된다.
150페이지 中
----- 157페이지 中
전쟁도 마찬가지지만, 해방 역시 아이들에게는 무의미한 일일뿐이다. 아이에게는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전쟁이든 해방이든 아이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태어난 순간 겪은 전쟁 속 환경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죽음'은 매우 가까이에 있었다. 그 속에서 엄마와 할머니의 품속은 온화하고 따뜻했으며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아이들은 어떤 것도 선택하거나 사실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으며,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정신적 공허함을 쌓여갔고 그것은 곧 일상이 된다.
그렇게 궁핍과 불안 속에서 살던 중 마침내 해방을 맞이하게 된 이들 가족은 아버지와 다시 해후하게 되고 이전과는 다른 풍족한 삶을 살게 된다. 먹고 싶을 때 먹고, 바깥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숨을 필요도 없게 된다.
그리고 여름휴가마다 방문했던 짧지만 평화로웠던 브르타뉴 지방은 마음속 고향처럼 저자에게 가장 많은 감동과 추억이 서린 곳으로 자리 잡는다. 혼란하고 공허했던 내면을 가득 차게 해주었던 곳이 어쩌면 브르타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방문한 그리운 브르타뉴는 어느새 과거의 옛 모습은 사라지고 낯선 현재의 모습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쩐지 서글프게 다가온다. 유년 시절 가장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며 찬가를 부르짖는 저자의 노래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어쩌면 자신이 꿈꾸는 마음속 가장 이상적인 곳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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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남길 책은 J. M. G. 르 클레지오 저 / 송기정 역 [ 브르타뉴의 노래·아이와 전쟁 ] 이예요 목차를 살펴보면 브르타뉴의 노래 / 아이와 전쟁 / 작품 해설 / 작가 연보 독후감―최수철(소설가) 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작가는 전쟁을 겪으며 아버지와 어린 시절 생이별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가장의 역할을 맡은 어머니와 형제들을 돌봐준 조부모님들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 가며 어린 시절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책으로 담아냈어요 첫번째 브르타뉴의 노래에서는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지만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 시절의 모습 , 이제는 거의 잊혀져가는 프랑스 북서쪽 브르타뉴 지역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어요. 변해버린 생트마리, 르두르 부인과 두 소녀, 어느날 밤 바닷가에서 들리는 브루타뉴 전통아기 비니우 소리, 브르타뉴의 종교의식등이 어린 아이의 눈으로 지켜본 모습 그대로 담겨있어 오히려 너무 담담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실상은 어떠했을지 가늠하기도 힘든 것 같아요. 그렇지만 단편, 단편으로 보는 브르타뉴에 대한 묘사는 너무 섬세해서 정말 작가의 기억 속에 브르타뉴지역이 큰 무언가로 남아있는 곳이구나 하고 느껴졌어요. 또한 잊혀져가는 브르타뉴의 언어에 대한 애정도 페이지 곳곳에서 드러나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서...) 작가가 기억에서 끄집어낸 곳곳에서 장소가 가진 힘, 음악이 가진 힘이 느껴졌는데요 그런 표현을 글로 남긴다는 건 경험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두번째 이야기 아이와 전쟁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지속되던 시기에 태어나 태어나던 해부터 5살이 되던 해까지 작가가 겪어온 일들이 담겨있는데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전쟁에 대해 알지도 못한 채 그 시기를 오롯이 몸으로 느끼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평생 지지워지지 않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품고 살아가야 할 수 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어요 전쟁의 참혹함은 실로, 지금도 뉴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데요. 아주 오래전인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왜 그 고통을 어린 아이, 노인, 여성 등 약자들이 짊어져야 하는 건지... 답답해져 옵니다 전쟁이 남긴 씁쓸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오래전 나라를 빼앗겼던 우리나라의 과거가 오버랩되어서 더 비참한 기분이 들었어요 아마도 전쟁으로 어린 시절을 빼앗긴 기억은 다른 이와 공유할 무언가를 잃어버린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남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책을 읽으며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 멀리 떨어진 시간에서의 일이라고만 생각되지 않았던 것은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잊혀져가는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들이 겹쳐져서 이기도 했고,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남기는지,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받으며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해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많은 분들이 읽어보시고 또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