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사무의 작품은.. 바로 오사무의 인생 그대로이다. 재밌다, 슬프다, 120% 공감한다. 아내와 동반자살을 기도하며 물속에 뛰어 들었지만.. 정작 자신은 살아나고 아내만이 죽었다. 블랙코메디 같은 사실이다. 몇번 더 자살을 기도했고, 끝내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 한없이 연약하고, 한없이 열등한 한 사나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재밌는건 책 뒤에 미시마 유키오라는 작가가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 써놓은 글이다. 일단 시골놈의 귀족행세가 싫고, 그놈의 상판이 싫다.. 그정도의 우울증은 정기적인 운동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라며 신랄하게 씹은 글이.. 오사무와 극명하게 대조되는것 같아서.. 아이러니하게 생각됐다. 미시마 유키오 역시 할복자살로 유명한 작가인데.. 외모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았고..헬쓰로 몸을 엄청 만든 작가다. 일본이라는 나라.. 제국주의 나라의 작가들이란 대체 어떤건가. 오사무 소설 중에서 <사양>도 인기 있다고 하지만.. 정서적으로 맞지 않아서 인지.. 그다지 재밌지는 않았고, 몇개의 단편들로 묶어서 단행본 식으로 나온 <만년>은 오사무의 처녀작이자, 수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
| 안락사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선택하는 자살을 썩 인정하지 않았다. 살다보면 좋은날도 있을 것이고, 그런 날이 유지되지는 않더라도 삶의 기쁨이란 존재하니까. 하지만 사양을 읽고 '그래. 자살하고픈 기분은 이런 것이구나.'싶었다. 어떤 사회 속에도 그 사회와 맞지 않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 싶다. 있다면 그것이 바로 종교에서 추구하는 천국, 극락이겠지? 사양 속 인물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작가는 사람과 부대끼는 곳보다는 산 속에서 홀로 유유자적이 어울릴만 하다. 하지만 타인의 사랑 없이 고독을 즐기며 사는 것이 이 작가에게 어울릴까? 싶기도 하다.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 그는 너무나 타인을 의식하는 사람이었다. 실상 자기 삶의 주인은 자기인데 말이다. 결국 타인에 대한 의식이 자기 비하로 나타나게 되고 삶이 고달파졌다. 주인공의 슬픔이 내게로 전해진다. 사양은 우리 나라의 근대소설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내 취향이 아니었다. 인간실격이 마음에 더 다가온다. 표지 색과 디자인이 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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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 '다자이 오사무'를 알게 되었을 때, 이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라는 생각으로 며칠을 보냈다. 가라앉고 가라앉아서 영원히 떠오를 것 같지 않은 그 사람의 영혼을 보는 듯 했기 때문이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허무함과 나른함은 <사양>의 주인공 나오지와 마찬가지로 짧은 삶을 살다간 오사무의 삶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이 작품은 나오지의 일기와, 유서 그리고 가즈코의 독백이 맞물려서 진행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형식의 글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오사무의 <사양>은 특별하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어쩌면 깊이 호소할 수 없을 지 모르지만 그의 글들은 언제나 젊은 날의 향수와 아련함을 불러 일으킨다. 살고싶지만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알 수 없는 현실..그리고 그 아픔속에 살아나가야 하는 사람들. 매일의 소소한 일들에 가슴아파하고 뒤돌아 보기가 겁이 나서 앞으로 나가는 것조차 주저 하는 사람들에게 한번쯤은 그 눈물을 대신해 줄 수 잇는 글이 아닌가 싶다. [인상깊은구절] 내가 조숙하 체해 보이면 사람들은 나를 조숙하다고 쑥덕거렸다. 내가 게으름쟁이 시늉을 해보이면 사람들은 나를 또 게으름뱅이라고 쑥덕거렸다. 내가 소설을 못쓰는 체하니까 사람들은 내가 아주 소설을 못쓴다고 쑥덕거렸고, 내가 거짓말장이 흉내를 내니까 사람들은 나를 거짓말장이라고 쑤군거렸다. 내가 부자행세를 하니까 사람들은 나를 그대로 부자라고 쑥덕거렸다. 내가 냉담을 가장해보이니까 사람들은 나를 냉담한 놈이라고 쑥덕거렸다. 그러나 내가 정말 괴로와 저절로 신음을 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다만 괴로운 체한다고 쑤군거렸다. - 다자이 오사무 <사양>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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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읽을때 작가의 삶을 지나치게 대입시켜보는 것이 가져오는 오류에 대해 들은지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난 또 이런 소설을 읽고 곤란해하고 있다. 저자의 약력같은것, 이 사람의 경우엔 약력이라고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모르고 읽는 편이 더 좋을지도.
그의 자화상은 순수하게 슬프다. 슬픈척이라든가, 온세상 고민 혼자 짊어진듯이라든가 하지 않고 순수하게 쓸쓸하고 끝없이 슬퍼보인다. 그의 말처럼 기괴하거나 이상하지 않다. 소설에 몰입해서 읽다가 "나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됩니다." 란 대목에서 정말 놀랬다. 실제의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듣기라도 한 것 처럼. 주인공의 삶은 너무도 길고 우울하고 힘들어서 나 또한 이제 주인공은 40대쯤 되었으려니 하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너무 정직하고 자신에게 충실해서 다른 사람의 적당히 이지러짐을 받아들이지 못한것일까. 내가 보기에 주인공은 광인은 아니건만(아니면 내가 광인인가) 책에선 광인으로 이미 묘사되고 정해져있다. 다자이 오사무는 스스로를 광인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주변엔 온통 이상한 여자들뿐이다. 그러나 픽션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인상깊은구절] 너는 너 개인의 무서움, 기이함, 악랄, 교활, 요사함을 알라! 여러 가지 말이 가슴 속에서 오고 갔지만 나는 그저 얼굴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식은땀, 식은땀....." 하며 웃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후로 나는, '세상이란 개인이 아닌가?' 라는 사상 비슷한 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란 것은 개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지금까지보다 조금은 더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즈코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좀 버릇이 없어졌고 겁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호리키의 말을 빌리자면 이상하게도 인색해졌습니다. 또 시게코의 말을 빌리자면, 그다지 시게코를 귀여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