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초월적 세계관에서 인간화의 길로...
"초월적 세계관에서 인간화의 길로..." 내용보기
사사키 시즈카의 ‘붓다와 아인슈타인’은 과학과 불교가 목적으로 하는 바와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과학과 불교의 알려지지 않은 관계를 명확히 밝혀 보려는 의도에 따라 저술된 책이다. 저자는 불교가 대단한 것은 신비주의를 배제해도 튼튼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 정의한다. 과학의 방향성과 세계관에 초점을 맞추는 저자는 현대물리학의 패러다임은
"초월적 세계관에서 인간화의 길로..." 내용보기

 

사사키 시즈카의 ‘붓다와 아인슈타인’은 과학과 불교가 목적으로 하는 바와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과학과 불교의 알려지지 않은 관계를 명확히 밝혀 보려는 의도에 따라 저술된 책이다. 저자는 불교가 대단한 것은 신비주의를 배제해도 튼튼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 정의한다. 과학의 방향성과 세계관에 초점을 맞추는 저자는 현대물리학의 패러다임은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이라고 말한다. 아직 두 이론이 통합되지 않았기에 두 이론의 병존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중요한 것은 현대물리학이 패러다임 시프트될 수 있다는 저자의 견해이다. 저자는 과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한 배경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지성을 초월한 신의 업적을 밝히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머릿 속의 직감과 현실에서 관찰된 정보가 서로 싸워 정보가 승리하는 현상을 패러다임 시프트라고 말한다. 그리고 신의 관점이 인간의 관점으로 이동하는 것을 과학의 인간화라고 부른다.



저자는 뉴턴 역학이든 상대성 이론이든 세계를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기술하는 이론은 항상 우리의 상식을 배반하면서 탄생한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의 변화에 대해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상대성 이론은 절대 시간, 절대 공간에서 모든 사건을 순차적으로 포착하는 것이 가능한 존재를 상정하여 그 관점에서 세계를 보는 뉴턴 역학과 달리 그런 존재를 부정하고 빛을 매개로 관찰하는 인간 생물의 존재라는 관점애서 동일한 세계를 기술하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상대성 이론은 아직 인간을 유일한 인식 주체로 본다는 점에서 신의 관점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양자론에 대해서는 모든 물체에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이 존재하지만 그 이중성의 변환의 논리는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세계의 불확정성이 어느 정도 분명해졌지만 그것을 관측하는 사람만은 확정된 자기 동일성을 유지한 절대 존재라는 생각이 여전히 남아 있는 신의 관점이라 말한다. 저자는 다세계 해석을 언급한다. 양자론을 그대로 확장해 가면 다세계 해석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진화론이 전개된 역사는 성서에 기반을 둔 기독교 세계와의 투쟁의 역사라고 말한다.



저자는 진화를 인정하는 사람도 인간만은 특별하다, 인간의 발생만은 다른 역사가 있음에 틀림 없다고 말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방향성 없이 완전히 랜덤하게 일어난 변이가 자연도태라는 선별을 통해 더 잘 적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프로세스가 쌓이는 것이 진화의 원동력이라 설명한다. 이 부분에서 덧불일 것이 있다. 그것은 다윈은 인간이라는 종이 특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저자는 신의 관점을 언급하는데 그것은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두뇌가 세계는 이렇게 되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어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기분이 좋다고 여기는 관점을 말한다.



다윈은 현재의 인간의 고상한 뇌 작용은 생존에 유리해서 발생한 것이 아닌 ‘뇌라는 기관의 우연의 부산물’로 보았다. 진화는 결코 좋은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운동이 아니라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것이라 말하는 저자는 인간은 나쁜 요소를 솎아 내고 남은 여러 잡다한 요소가 우연의 조합을 통해 형성된 생물일지도 모른다고 결론짓는다. 저자는 무리수의 발견은 과학의 인간화라고 정의한다. 저자는 유리수의 세계에 도입된 무리수가 수학의 인간화라고 한다면 더욱 넓게 보면 증명이라는 개념의 도입이 수학의 인간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증명이라는 방식은 신처럼 한 눈에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없는 인간이 단계적으로 이해를 진전시켜나가는 것으로 인간의 입장에서 이런 과정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기이한 것은 피타고라스 학파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증명이라는 방법으로 무리수가 도출됨으로써 자신들이 견지한 신의 관점을 죽였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무리수는 금기의 대상이었다. 무리수의 발견과 함께 저자가 수학사의 변혁의 사례로 꼽은 것은 실무한(實無限)의 등장이다. 저자는 수학에서도 물리학과 다를 바 없이 인간 존재에 기인하는 불가지성(不可知性)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과학의 인간화가 신의 관점이라는 수준에서 우리 인간 교유의 수준으로 내려오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 중심 기관은 뇌라고 말한다. 물론 외부 현상과 무관하게 뇌가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외부 정보는 확실한 실재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뇌가 인간의 독자적 해석 체계에 따라 형성된 것이 과학이론이라 설명한다. 저자는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화가 일어남으로써 신의 관점이 점차 사라지는 과학처럼 절대자 없이 법칙성만 존재하는 세계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해가는 불교 역시 인간화의 종교로 본다. 저자는 현대과학으로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부처님의 지혜로 한 순간에 파악하는 데 불교의 핵심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기독교 사관의 쇠퇴와 진화론의 등장으로 인해 아리아인의 존재가 세계사에 위치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아리아인이 인도로 가지고 온 독자적인 문화가 인도 불교가 탄생하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아리아인의 침입으로 바르나 제도(카스트 제도의 기원)가 발생했고 그 제도를 부정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불교라고 말한다. 바르나 제도에 의거한 바라문교는 사람의 가치는 태어나면서 결정된다는 원리를 지니고 있었다. 이에 당연히 반바라문 움직임이 있었다. 그들의 논리는 신에 의탁하는 인생과 결별하고 자신의 힘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는 과학의 인간화와 유사하다.



이렇듯 자신의 노력으로 최고의 행복을 얻고자 수행하는 모든 사람을 일컬어 슈라마나라 부른다. 슈라마나는 중국에서는 사문(沙門)이라 불린다. 석존(釋尊)은 고행승과 다른 길을 걸은 ‘명상의 노력’으로 수단을 삼은 사문이었다. 저자는 중요한 것은 석존의 실재 여부가 아니라 석존을 교조로 내세운 불교라는 종교가 고대 인도에서 실재했고 그 불교가 갖는 기본 자세를 현재 남아있는 자료인 불교 경전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석존이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한다. 본인의 말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자료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2500년 전 인도에서 고도의 명상으로 자신을 확립한 인간의 정신 상태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그러나 저자는 석존이 깨달은 것은 연기(緣起)의 이법(理法) 즉 인간은 인과법칙에 따라 존재한다는 진리라 생각된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초기불교이다. 그들은 1) 초월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현상 세계를 법칙성으로 설명했고, 2) 노력의 초점을 육체가 아닌 정신에 맞추었고, 3) 출가자로 이루어진 집단 생활 속에서 수행하고 일반사회에서 남은 것을 받아 생활했다.



초기 불교는 물질만을 고찰 대상으로 삼는 과학과 달리 정신 세계를 고찰하는 데 집중했다. 저자는 불교는 신비스러움이 아주 적은 종교이지만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신비스러움은 인정한다고 말한다. 물론 불교는 다신교 세계의 영향에 따라 초월자를 상정하는 종교가 되었다.(대승불교) 저자에 의하면 과학은 기독교 사회에서 신과 함께 태어나 자라왔지만 점차 기독교의 영향에서 벗어나 인간화함으로써 인간의 독자적 관점에 기초한 법칙 세계를 구축했다. 불교적 세계관에 점차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불교와 과학은 동일한 차원의 세계관에 서 있는 인간 활동이므로 양쪽을 함께 받아들여도 아무 모순이 없다고 말한다. 과학은 외부의 물질 세계를 법칙성으로 이해하려 하고 불교는 인간 정신을 법칙성으로 이해하려 한다. 욕망이 일어나지 않는 청정한 환경에서 최대한 시간을 명상에 쏟아붓는 상태에서 정신을 집중해 레벨업하는 뇌의 메커니즘이 이론적으로 해명된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가 아니라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인 정신 향상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저자는 그리 하여 불교는 종교의 세계를 떠나서 과학적 생활 시스템이 된다고 결론 짓는다.



저자는 과학과 불교가 최종적으로 일체화할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저자는 언젠가 뇌과학이 불교를 자신의 체계 속으로 받아들여줄 것을 바란다고 말한다. 불교와 과학의 접점을 해명하고 그들이 의거하는 법칙을 설명한 사사키 시즈카의 책은 매우 독특하다. 깊이와 넓이를 함께 갖춘 ‘붓다와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과 뇌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는 책이다. 양자역학 및 뇌과학과 함께 불교가 각기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지켜 볼 일이다.

m******1 2014.03.23.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