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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잠시나마 벼슬자리에 연연했던 건 그 힘을 이용해서라도 백성을 보하고자 했음이었겠지요. 당신(허균)을
모함하고 싫어한 세상이 끝내 용이 되지 못한 채 이무기로 남았다는 것. 그러나 당신은 목이 베이고 토막
토막 동강난 육신을 지쳐 모아, 저승에서라도 용을 보려 했을 것입니다. 그 후덕한 용의 입김으로 세상을,
가여운 백성의 눈물을 거둬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부디 울지 마소서! 보이십니까. 저 용이 물고 온 여의주
가, 한철 반짝 피었다 지고 말 오얏꽃이 아닌 사철 푸르른 소나무를 읊조린 당신의 애민시愛民詩가.
보고 들은 대로 쓰다
왜란이 훑고 간 건 마을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집과 모든 것이었지요. 왜군을 피해 숨느라
아낙들은 속곳조차 챙기지 못하고 입에 풀칠할 일거리는 사라지고 관가에선 세금을 독촉하러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칩니다. 또 왜군을 피해 피란을 가던 중 남편과 시어머니는 죽임을 당하고, 울던 아이까지 왜
군에게 끌려가 죽고, 주검마저 짐승들에게 농락당해 수습해주지 못해 비통해하던 백성의 수를 헤아릴 수
조차 없었습니다. 당신은 비분강개悲憤慷慨했지요. 그런 현실에 끝없이 화가 났지요. 누구의, 도대체 누
구의 조선이랍니까. 분명 백성의 것이어야 했지요. 꼭 그래야했음에도 조선은 백성을 제외한 사대부의 이
기와 그치들이 조장한 전쟁이란 등껍질을 오랜 세월 져야만 했던 거죠. 이것이 바로 당신이 못 다 두고 간
한恨일 것입니다.
쓰라린 눈물 옷깃을 적시니
피란길에서 만삭이던 아내는 아이를 낳고 죽고 맙니다. 아이마저 아내 뒤를 따르지요. 성미가 조심스럽
고, 성실하고도 소박하여 꾸밈이 없었으며, 길쌈하기에 부지런하여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고, 말은 입에서
내지 못하는, 현명하고 어진 아내였지요. 잠시잠깐 좋은 세월, 좀더 안락하고 편한 생활 한번 누려보지도
못하고, 진탕 고생만 하다간 아내에게 세상은 참으로 가혹했습니다. 그렇게 20대 한창 나이에 당신은 둘
째 형 허봉과 누나 허난설헌에 이어 오랜 벗 이춘영, 기생 매창(허균의 글벗) 까지 잃는 비운의 시절을 그
저 애통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불교가 다가왔던 것이죠. 허나 당신을 위로한 불교를 믿었다는 이
유로 세상은 또다시 당신을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슬픔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은 당신을
더 강건하게 만들지요. 그런 것입니다. 봄이 아름다운 건 탄식의 겨울을 지나왔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어디에선가 당신의 이름을 기리며 참된 세상을 일으키고자 동분서주東奔西走하는, 또 다른 당신이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더 이상 아파하지 마소서! 쓰린 가슴 부여잡지도 마소서! 당신의 영혼이 기근饑饉
한 우리의 역사에 풍년 꽃비로 내려올지니.
죽은 아내에게 첩지를 올리며(p225)
부인의 성격은 공경스럽고
모든 일에 조심스러웠으며
그 덕은 그윽하고 깊었다.
일찍이 시어머니 모실 때도
그 마음 기쁘게 해 드리더니
죽어서도 어머니 따라
이 산에 와 묻히는구나.
황폐한 벌판에 안개는 자욱한데
달빛은 쓸쓸하고 서리도 차다.
의지할 데 없는 외로운 혼은
그림자도 외톨이라 더욱 슬프고
십팔 년이 지나서야
남편 귀히 되어 높은 벼슬에 오르니
임금님 은총으로 무덤 속 그대에게
숙부인 첩지 내려왔는데
미천할 때 가난을 함께 견디며
내가 큰 벼슬 얻기를 빌더니
막상 그리 되니 그댄 벌써 이 땅에 없고
뒤늦은 추봉追封의 은총이 부질없다.
어찌하면 이 영화를 함께할까
그리운 마음 끝이 없으니
넋이라도 내 마음 안다면
그대 또한 눈물을 끝없이 흘리리.
나라에서 내린 술 한 잔
그대 영전에 바치는데
슬픔이 몰려와
눈물이 그칠 줄을 모른다.
허균의 시는 새 시대를 꿈꾸는 혁명의 눈물이었습니다. 그것도 당대엔 상상할 수도 없는 아주 급진적 혁
명이었던 거죠. 이를테면 유교에 거칠게 반항하며 불교에 깊이 빠지는가 하면, 남녀의 정욕은 하늘이 내
린 것이고 윤리의 기준을 구분한 것은 성인의 가르침이므로, 성인을 어길지언정 하늘이 준 본성을 어길
수 없다(p271)며 엄격한 남녀칠세부동석을 답습해왔던 예교에 당당히 반기를 듭니다. 어떤 형식이로든
인간을 구속하고 강압해서는 안 된다는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지녔던 것이죠. 그런 면에서 허균은 3세기를
훌쩍 뛰어넘는 개방적이고도 자유 지향적 인간형이었다 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고리타분한 유교만을 고
집하던 당시 고위관리들에게 그는 사회를 혼란시키는 괘씸한 정치범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그
를 ‘시대가 낸 괴물’이라고 말했을까 싶네요. 하여 마땅히 제거대상 1순위일 수밖에 없었던 그는, 나이 쉰
살에 결국 ‘할 말이 있다’는 말을 남기며 능지처참을 당합니다.
오늘,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통한의 문장은 이것입니다. 사뭇 장렬하기까지 한, 그러면서도 마치 자신
의 비통한 최후를 예언한 듯해 가슴 시리는. 그럼, 불평등하고 오점 투성인 시대에 굴복하지 않고 매사에
당당했던 그의 기개와 올곧은 대장부로서의 성정이 담긴 글을 옮겨봅니다. “대장부의 일이란 관 뚜껑을
덮고 나서야 끝나는 것입니다. 용을 고삐와 쇠사슬로 얽어매려 하지 마시오. 용의 성질이란 본디 길들이
기가 어려운 것입니다”(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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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은 이러 이러한 내용이다 정도에서 징비록을 읽기 전까지 경북 문경의 진남교반 위쪽의 고모산성이나 경북 안동에 하회마을에 있는, 유성룡이 징비록을 집필했다는 옥연정사는 그저 인연 따라 걷고 싶은 볼거리 였다. 처음으로 고모산성에 방문했을 때를 떠올렸다. 진남교반의 벚꽃에 취해 거닐다 고모산성에 올라가 시를 읊고 주변 절경을 바라보았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성을 재현했는데 이러 이러한 부분이 잘못되어 문화재청에 올렸다는 향토문화 연구사의 말도 관심도 없었고 신립 장군을 운운해도 나와 관심 없는 외적 세계와도 같은 말들이었다. 왜냐하면 필요 이상의 돈을 역사적 고증도 없이 버린다는 일부분의 인지가 이상하게 생각되어서다. 어쨌거나 그 당시에는 그랬다. 군사력 요충지로 승리를 이끌 수도 있었던 고모산성에서 신립 장군의 잘못된 판단이 참담한 7년의 임진왜란으로 가게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다는 생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리가 가진 무기가 어느 지형에서 유리한지를 안다는 게, 잘못된 선택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 말을 타고 있는 우리 장수의 화살을 예견했을 일본군의 조총은 고모산성을 지나며 텅 빈 성을 두려워했지만 이미 주저 없이 들어갈 수 있는 말하자면 힘들이지 않고 점령할 수 있었단다. 그곳을 방문했을 때 지나간 반성의 내용은 없었고 반복의 역사를 보게 하는 6.25 때 격전지로 알려져 있어 똑같은 역사다. 그렇게 지금도 그곳은 참담했을 것은 뒤로하고 등산객들의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주변 전망이 한 바퀴를 돌아도 너무 좋다. 하회마을을 둘러싸고 흐르는 물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듯 징비록을 읽으며 유성룡의 눈물과 통곡을 들은 사람도 없겠다. 그가 본 임금과 장수 그리고 민중은 지금도 반복되는 정치인과 국민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유성룡은 선조 임금의 옆에서 그림자처럼 국가의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권율과 이순신을 발탁했다는 것은 징비록을 보고야 알았다. 국가의 중책을 맡은 책임자들이 본인 우상화에 집착해 개인의 충성도에 따라 등용했다면 이순신 같은 명장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전쟁 중에도 중상모략을 일삼아 훌륭한 장수를 죽이게 하고 모사꾼에 내분으로 현명한 판단을 못하고, 도망 다닌 게 오히려 잘했다는 평가가 내려지는 임금은 선조뿐이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역사에 전쟁 중에도 내분에 더 매달렸던 것은 6.25 전후 현대사에도 그랬고 지금도 중대사가 있을 때 보면 마찬가지다. 큰일을 앞두고 사소한 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그 것을 반성하게 하는 게 정치인들뿐만이 아니란 생각이 김수영 시인의 물음이다."나는 왜 작고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가" 나도 가끔 큰일을 앞두고 옹졸하게 남을 비판하고 중심을 잡지 못한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인내를 필요로 하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위기에 결정적인 판단을 못하면 좌절한다. 하지만 경험으로 제대로 된 판단을 한다면 머리는 맑아지고 지혜로운 상황을 맞게 된다. 이 끝없는 순환이야말로 인간사에 존재하는 고통과 행복의 근원이란 생각이다. 이 책은 우리국민이 알아야할 내용을 담고 있다. 내 안에 반성문도 한 번쯤은 징비록을 잘 읽었다는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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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시집인 <할 말이 있다>을 통해 허균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되고 그 뿐만 아니라 그의 누이인 허난설과 형인 허봉을 포함해 그의 가족사에 대해 알고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사실 허난설에 대한 책이 나왔을 때 그녀의 삶에 대한 적지않은 애착심이 생겼다. 조선 시대을 대표하는 여성 문인이었던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던 부분은 신사임당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결혼 후에도 신사임당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자신의 재능을 이어나간 반면 허난설의 삶은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녀의 행복하지 못한 삶이었기에,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도 못하고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던 그녀의 삶이 애닮고 가슴저미어 온다.
<할 말이 있다>는 그의 동생인 허균이 지은 시집 중 일부분으로 그의 시를 통해 허균의 삶이 어떠했는 지 재조명하는 시간이 된다. 백성의 구제를 위해 적극적이었던 홍길동 이야기는 어린 나의 마음에 감동적이었고 호부호형에 대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홍길동전은 영웅 이야기보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로 인식되고 있다. 소설의 저자인 허균이 시, 수필, 비평등 다양한 분야에 두각을 나타냈다는 사실은 몰랐었다. 홍길동전이 워낙 유명했기에 허균의 시는 어떠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조선 중기 대표문인이었던 허균의 시는 물이 흐르듯, 이야기 하듯 거침이 없고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문학의 여러 분야 중 가장 어렵게 느껴지고 쓰기 힘든 분야가 시라고 생각하는데 허균은 시에 대해 느끼는 나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버리고 있다. 시는 딱딱하다, 은율과 은유법등 여러가지 시의 형식에 얽매인 시라기보다는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시라는 틀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펼쳐나가고 있다. 그의 시 한편 한편을 통해 그 당시 그의 느낌이 어떠했고 어떤 상황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물론 시에 대한 각각의 해설이 있어 허균의 일대기를 읽는 듯 허균에 깊이 빠져들게 만들지만 이 또한 시에 대한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허균의 시 중 '떡 노래'는 한 집안의 가장이고 남편이며 아버지인 허균의 모습과 그의 가정생활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는 시일 뿐만 아니라 허균의 삶 또한 그리 평탄한 삶이 아니었기에 훈훈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더 눈에 띄었는 지도 모른다. 윤오정이 허균의 어려운 형편을 헤아려 쌀을 보내 주면서 이 쌀로 떡을 해먹으면 정말 맛있다고 말해주는 이야기가 그대로 시가 된 듯하다. 떡을 만드는 과정이 사실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어 정말 그렇게 해 먹으면 허균이 느꼈던 떡맛이 그대로 느껴질까싶을 정도다. 조선 중기는 종이가 정말 귀했다고 한다. 종이가 귀했기에 책 또한 쉽게 구하기 힘들었는데 중국의 사신으로 자주 갔던 허균은 집안의 돈을 끌어모아다가 중국에서 많은 양의 책을 구해오기도 했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었다고 한다. '서음' 즉 책 중독자였던 허균이 당대 인정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데, 한국 문학사에서 여성의 문학을 정당하게 대우한 최초의 비평가였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정치에 희생된 백성을 옹호하는 혁명적인 글을 거침없이 썼기에 지배계급의 눈에 가시가 아니었을까.
역모죄로 몰려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허균은 진정한 백성을 위한 올바른 정치가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준 사람이었기에 그의 죽음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왜 백성을 위하고 왕 앞에 옳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가.
20대에 가족의 연이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 허균의 삶이 그의 남은 삶이 결코 평탄지 못하겠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보다 더 안타까운 것이 어린 허균을 보고 그의 큰매부가 한 말이 허균의 운명을 적중시켰다는 사실이다. "뒷날 문장을 잘하는 선비가 되기는 하겠지만, 허씨 집안을 뒤엎을 자도 반드시 이 아이일 것이다." 차라리 그의 예언이 틀렸으면 좋았으련만..그래도 허균은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사람으로 남아있을 것이다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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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도 샘깊은 오늘고전 시리즈의 《남한산성의 눈물》을 보았는데, 이 시리즈가 꽤 괜찮은 것 같다. 전체적으로 잘 짜여진 느낌이랄까, 어린이 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우리나라 고전을 쉽게 풀이한 책이다. 《할 말이 있다》는 허난설헌의 남동생으로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의 시집이다.
보통 고전, 하면 원문을 그대로 들고와서 간단한 해석 정도를 덧붙이는데, 이 책은 대상 연령층이 살짝 아래이다 보니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정도로 풀어서 썼다. 뭐, 간단한 예를 들자면, '봉이'라는 바람 신의 이름이 원문에서 그대로 쓰이는데, 책에서는 '바람 신'으로 변경해 놓았달까? 그리고 각 시에 따른 해설을 허균이 당시에 처한 상황을 설명하며 풀이하고 있다. 비슷한 상황에서 쓴 시의 경우에는 연이어 묶어서 보여주는 센스도 발휘하고 있고.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일러스트 부분인데, 《남한산성의 눈물》때도 독특한, 왠지 한국적인 일러스트가 너무(!!!) 좋았는데 이번에도 알록달록 예쁜 (하지만, 다소 추상적인) 일러스트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조금은 '이렇게까지 일러스트가 포함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 책 의 제목인 《할 말이 있다》는 능지처참을 당한 허균이 끌려가면서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라고 한다. 아... 당대의 위대한 문인들이 쓸쓸하게 뭍혀져 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게 자행되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권력 속에서 청초하고자 했던 사람도 때때로 회의를 느끼게 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도 했다가, 다시 용기도 냈다가. 그렇게 고뇌하는 모습이 잘 녹아있고 또 잘 보여주고 있는 예쁜 책이어서 참 좋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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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인간 허균의 속내로 다가가다 조선의 역사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사람을 찾으려 한다면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위로는 왕으로부터 일반 백성 그리고 노비에 이르기까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억울하다는 죽음은 대개 시간이 흘러 상황이 바뀌면 그 억울함이 풀리기도 한다. 억울함이란 때론 상황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임을 당하곤 난 후 아주 오랫동안 거론조차 금기시된 사람이 있다. 조광조나 허균이 그런 사람들에 포함된다.
허균(許筠, 1569~1618)은 우리에게 홍길동전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동생으로도 허난설헌의 시집을 간행하게도 했다. 양천 허씨로 당대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관직에 나아가 벼슬을 하였으나 세 번의 파직과 광해군 때인 1618년 역모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처형을 당했다. 관직생활 중 중국에 원접사 종사관으로 다섯 번이나 다녀왔다. 그는 무엇보다 시문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으며 당시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자유스러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는 ‘교산시화’, ‘성소부부고’, ‘성수시화’, ‘학산초담’, ‘도문대작’, ‘한년참기’, ‘한정록’ 등이 있다.
사람을 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것도 자연인이 아닌 정치적 삶을 살다간 사람은 더욱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허균에 대한 시각은 대부분 정치인으로써 허균의 활동과 그의 문학에 집중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 ‘할 말이 있다’는 시인으로 그가 남긴 시를 통해 한 인간인 허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책의 제목은 그가 형장에 끌려갈 때 할 말이 있다고 외친 기록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결국 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저자는 허균이 남긴 시를 통해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찾아간다. 허균이 살았던 조선 중기의 시대상황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던 그의 자유분방함은 사대부들의 질시와 탄압에 의해 좌절을 겪게 된다. 또한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형의 보살핌 속에서 살다 형과 누나마저 떠나고 일본의 침략에 의한 전쟁과정에서 부인마저 잃게 되면서 심리적인 좌절을 겪게 된다. 이런 상황이 허균의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당시로써는 선진적인 사고와 개혁적 성향을 보여주며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펼치며 행동으로 옮겨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저자가 선택한 시를 다섯 분야로 나누고 각 시를 통해 시가 담고 있는 허균의 마을을 유추해 보는 형식을 취했다. 좌절된 자신의 삶의 모습이 반영되는 것들이 많으며 해학과 풍자적인 시와 당시 궁궐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시들도 있다. 사대부들의 시각에 의해 유교사상과 배치되는 모습을 보였던 허균이지만 그러한 사대부들의 시각에 대해서 변명하거나 피해가지 않고 정면 승부를 펼치는 모습이다. ‘너희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나는 내 삶을 살아갈 것이다.’ 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명문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서얼들과 어울리며 평등의 세상을 꿈꾼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시대적 규범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스러운 행동, 자신에게 닥친 시련에 정면 대결을 하는 모습, 일찍 천주학을 받아들이는 등 그의 삶은 이해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오늘날까지도 명쾌하게 설명되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 그 중심에 허균을 죽음으로 몰아간 역모 사건에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모함인지 적극적인 허균의 행동인지에 대해 설명되지 못하는 것이 그의 삶을 평가하는데 해결되어야 할 부분이다.
이 책은 그런 정치인으로써 허균의 삶보다는 시 속에 담겨 있는 인간적인 모습에 주목하여 ‘인간 허균’의 참 모습에 접근하려는 저자의 시각이 중심이기에 죽음의 현장에서 할 말이 있다고 외친 그의 말이 무엇인지 유추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인간 허균의 모습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그가 남긴 작품이기에 이 책을 통해 허균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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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다 만약 그 상호 소통이 없다면 미래 역시 없을 것이다 역사의 과거가 그냥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현실에 작용하는 것이기에 역사를 쓰고 읽는 효용성이 있다 그러므로 역사는 흘러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재정립되고 재고찰되는 귀감이 되는 것이다 이 징비록 역시 다시 돌아 보기 위한 계기를 위해 쓰여진 것이다
징비록은 참혹했던 임진왜란을 겪고 난 뒤 후세에 그 참상과 원인 그리고 교훈을 주기 위해 기술한 글이다 이 책이 왜 굳이 기술되어야 했을까 가장 좋은 것은 이런 책을 기술하는 것보다는 임진왜란을 막고 대비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책은 임진 왜란 전의 상황부터 기술해 나가기 시작한다 일본이 전국 시대의 혼란과 아수라를 뚫고 도요토미 휘하의 가공할 세력으로 결집해 조선을 침공할 수 있다는 풍문이 도는 임진왜란 전의 상황에서 조선은 거의 무방비한 안일에 빠져 있다 그런 한심함은 조정으로부터 지방의 백성들까지 만연되어 심지어 통신사로 파견된 사신들 마저도 일본의 침략 의도를 없다고 상소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한다 그 당시 나라를 잠식했던 당쟁의 여파로 서인과 동인의 대립이 국론의 분열이라는 참국을 이끌어 낸 것이다
자 이제 조선은 침략당한다 자고 있다가 칼 든 도적이 안방에 침입 하듯 부산으로부터 쳐들어온 일본은 파죽지세로 서울까지 진격한다 그동안 조정은 제대로 된 군사 차출조차 못한 채 거의 통과시켜 주듯 적군에게 유린당한다 참혹하다 우리 조상들의 무능과 한심이 이 정도였다 그후 계속되는 패전과 목숨 구하기에 급급해 도망치는 지방 관리와 장군들의 모습은 왜 나라가 그 지경까지 전락하게 되었는지 비분한 감을 불러 일으킨다 전선의 교착과 꼬임 그리고 앞날을 알 수 없는 어두운 전운 그러나 아직 하늘이 조선을 버리지 않았는지 이순신이라는 영웅이 나라를 지탱한다 그러나 조선은 그토록 썩었고 나라의 기능이 없는 극악무도한 정권이었다 조국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권좌가 더 두려운 선조와 신하에 의해 이순신은 누명을 쓰고 하옥되고 그로 인한 힘의 공백은 일본의 승기 만회를 불러 오게 된다 이토록 암울한 전쟁의 이야기는 다시 들어도 괴롭다 충신과 용장들을 계속 살해하는 용렬하고 잔혹한 군주와 그 밑에 사직과 강산이 위태로운 조선의 실정은 왜 이 나라가 일본에 강탈당해야 했는지 그 당면한 숙명성을 일깨우게 한다
비록 이순신이 다시 풀려나고 그로 인해 명나라의 협공으로 패퇴하는 일본에 마지막 총공세를 가해 전쟁이 대정리되는 국면을 맞았다고는 하나 이것은 무의미한 전쟁이고 슬픈 전쟁이었다 일본의 야욕을 채워 주는 것이외에는 아무런 명분도 없고 의미도 없으며 대의도 없었던 전쟁 하기사 전쟁이 어디 의미가 있고 아름다웠던 적이 있었던가 그렇다 하더라도 이율곡 같은 이의 간곡한 청을 물리치고 눈 앞의 나태한 평화에 빠져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잊은 지도층의 방만한 무능은 용서될 수 없는 잘못이다
그렇지만 더욱 뼈아픈 것은 그로부터 300여년이 지나 또 한 번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일본에게 아예 국권을 침탈 당해 식민지가 된 이 어리석음의 되풀이를 어찌 설명해야 할 것인가
과연 역사는 그 본보기로 후세를 위해 기능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징비록을 읽었을 터인데 어찌하야 일본에게 지배당하는 우를 다시 범했단 말인가 이런 가슴 아픈 성찰을 하도록 하는 역사의 돌발성과 비가해성을 어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일본이 다시 우경화되고 있다 징비록이 쓰여진 후로 40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징비록을 읽는 이유는 지난 날의 길을 다시 밟지 않으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역사를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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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적에 어떠한 과목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국사도 특히나 싫어했었다. 외울게 너무 많고 시대적으로 정리가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 영향 때문에 잔인하다는 이유로 전쟁영화나 전쟁소설도 보지 않고, 고리타분할 것 같아 역사소설도 거의 읽지 않는다. 종종 역사소설을 읽고 나면 배경 지식이 없다 보니 그 모든 것을 사실로 믿어버리는 아둔함을 발견하곤 한다. 그건 현재도 마찬가지인데 이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역사에 대한 나의 생각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임진왜란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띄엄띄엄 주워들은 사소한 지식들이 조금 정리가 되었고 스스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난중일기』를 찾아서 읽고 있으며『칼의 노래』를 재독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임진왜란에 대한 나의 지식과 인식은 어느 정도였을까? 1592년에 일어난 전쟁,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으로 적을 물리쳤단 사실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유언과 난중일기에 나오는 시 한 구절을 덤으로 알고 있을 뿐 더 이상 알려고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여수에 살다보니 늘 만나는 게 거북선과 연관된 지명들과 기념물이었다. 집 앞에는 거북이 모양의 호수가 있어 거북공원으로 불리고 조금만 걸어가면 거북선을 건조하고 수리했던 선소가 있다. 늘 마주치면서도 이순신 장군 때문에 유명하다며 늘 그 자리에 있는, 특별하지 않는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고 『난중일기』를 읽다 자주 등장하는 여수 곳곳의 지명이 뭔지 모를 뜨끈함으로 다가왔다. 여수에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이 책으로 인해 살아나고 있었다.
『징비록』은 '지난 일을 뉘우치고 앞으로의 교훈을 찾는 역사의 기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책 제목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데 조금만 읽어 나가다 보면 이 책을 기록한 당시의 재상이었던 유성룡의 애절한 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책 제목의 뜻을 지키려 했던 글쓴이의 탄식과 안타까움이 애달팠다.
세 권의 소제목을 보면 1권 ‘유성룡이 보고 겪은 참혹한 임진왜란’ 2권 ‘달아난 임금 남겨진 백성’ 3권 ‘그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한 임진왜란’이다. 1권에서 이 책의 제목이 사무치도록 다가왔던 이유는 충분히 준비하고 막을 수 있는 전쟁이었음에도 그 누구도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욕망으로 시작된 7년간의 전쟁에서 가장 참혹한 피해를 본 것은 조선이었다. 명나라가 구원병으로 와서 일본을 격퇴하고 조선 땅에서 몰아내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히데요시의 욕망이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나라를 방어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피폐해져가는 조선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고 잔인했다.
100년 동안 어지럽게 전쟁을 했던 전국시대를 겪은 일본군은 강력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아무런 제재도 없이 점령한 모습은 그야말로 한심스러운 당시의 조선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아무런 대비도 없었고 의로운 자들도 없었다. 군관들이 자기 자리에서 조금만 최선을 다해주었더라면 일본군의 진격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을거란 유성룡의 안타까움이 내 마음에서도 터져 나왔다. 그런 일본군이 조선을 만만치 않은 곳으로 보게 만든 것은 백성들이었다. 임금도 빈 약속을 한 채 서울을 떠났고, 나라의 녹을 먹는 자들은 싸우기는커녕 서로 도망치기 바빴다. 그런 혼란 속에서 백성들 스스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 바다에서 너무 잘 싸워주었기 때문에 일본군은 식량을 제때 조달받지 못하고 다른 부대와 쉽게 힘을 합치지 못해 지지부진한 상태 속에서 힘을 잃어갔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바다를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조선은 더 피폐해졌을 것이며 히데요시의 욕심처럼 명나라까지 치고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을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었던 유성룡은 전쟁의 모든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재상이었다는 점이 큰 역할을 했다. 그 혼란스럽고 복잡한 가운데도 이 모든 기록을 남겨 임진왜란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조선의 부끄러운 모습이라 스스로 기록하면서 참담하고 분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금할 길이 없었을 텐데 평정을 유지하려 애썼고 그래서 더 애잔하게 임진왜란의 참담함이 진하게 다가왔다.
이 책이 지닌 역사적인 가치와 기록의 낱낱한 점까지 파악할 혜안이 내게는 없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마음은 참으로 씁쓸하고 오묘했다. 이 아픈 역사를 지켜보는 것만도 이렇게 참담한데 그 모든 일을 겪은 당시의 사람들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지 상상조차 못하겠다. 명나라의 군대에 모든 식량을 대느라 정작 조선의 백성들은 굶다 인육까지 먹는 사태에 빠졌음에도 그들을 구제할 방법이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농사지을 환경이 주어져야 하는데 7년의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가고 피의 땅으로 조선을 뒤바꿔 버린 것이다. 그런 시대를 감당하고 겪고 이겨낸 이들이 현재 우리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뭉클해진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제목과 의의처럼 지난날을 돌아보지 못하고 약 300년 후의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의 비극이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든다. 3권의 부제목처럼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한 임진왜란. 그 전쟁의 파란만장함을 이렇게나마 제대로 알게 된 것이 다행인지 불편함인지 그 씁쓸한 여운으로 어지럽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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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유성룡이라함은 퇴계 이황 선생의 수제자로써 청렴과 학식으로 뭉쳐 자신의 모든 사고를 정의를 위해 쓸 줄 아는 선비 중의 선비이다. 그의 묘비는 안동에 있으며 그 곳 속 병산서원에 안락하게 위치해 있다. 나도 어려서부터 잔잔히 기억 속에 새겨진 이름 중에 유성룡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가 조선 16세기 초 조선 중기로 접어들 무렵 좌의정으로 있을 시, 임금은 선조였는데, 그때 최초의 일본과의 전쟁, 아니, 일본의 침략이 있었다. 임진년에 벌어진 것이라하여 임진왜란이라고 일컫는다. 임진왜란의 시작과 끝의 이야기를 담았고, 이어진 일본의 재 침략인 정유재란까지 끝이 없고 답이 없는 일본과의 전쟁사에 대한 기록을 담은 것이 바로 이 책,'정비록'인 것이다. 정비록이라 함은, 지난 일을 뉘우치고 앞으로의 교훈을 찾는 역사의 기록이라는 의미를 담은 책이다. 유성룡은 학식과 양심과 정의가 일치하는 몇 안 되는 조선의 신하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가 겪은 피비릿내 나고 굴욕적이며 피치못할 사건들에 대해 이 책 안에 적나라하게 담아 우리들에게 들려 주고 있는데, 이 책은 국보로 지정된 중요한 역사학 자료이기도 하다.
유성룡은 임진왜란이 일어날 당시 좌의정으로 있었지만, 그 후 영의정까지 직위가 상승한다. 그는 명나라와의 외교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이순신과 권율의 발탁뿐만 아니라, 고위 대산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목숨보다 중요시하며 잘 이끌어간 선조의 신하였다. 그의 이 기록은 세계사에도 남을 만한 중요한 사료가 되고 그 내용은 비록 대한민국의 치부를 드러낸 일이 될 지 몰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과거의 반성과 미래에 대한 약속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문서가 발간됐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대한민국은 그 때와 변함 없는 잘못을 서슴없이 반복하며 저지르고 있다. 예를 들어, 6.25전쟁 당시 이승만 정권의 파렴치한 만행, 정부가 잘 지키고 있을 테니 국민들은 염려 말고 지내라 는 등 자신이 안개 같은 무리 속에서 도망치려고 발버둥치는 모습, 바로 이승만 정권의 그때 그 모습이 바로 이 책, 징비록 속 선조의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 어느 나라 어느 국민들이건 간에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것은 정책을 이끌어 가는 관료들에 대한 불신이다. 공부만 죽어라 하며 오른 자리에서 그가 올바른 인성으로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어쩔 수 없는 결과에 따른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앞으로도 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성룡의 이 책, 정비록은 어쩔 수 없는 책이다. 비록 이 책은 국보로 지정이 되었지만, 이 상의 역할을 하려면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수세기의 역사가 흘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비간적인 생각이 앞선다.
이 책은 보통의 소설보다 더 흥미롭고 재미가 넘친다. 이 책 속 내용들은 모두 실화이므로 리얼하고 급박하여 독자들 또한 책을 읽는 동안 내내 흔들리는 감정을 진정시키기 쉽지 않았다. 징비록 3권을 접하는 내내, 너무 굴욕적이고 비속적으로 말하자면 너무 개판이라 별 달리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의 평상 시 거만하고 추접한 자체가 위기 시에 변함 없이 나타난다. 그 때도 관료라 할 수 없고, 이 나라 백성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추하고 개떡 같은 행위를 일삼는데, 그것을 보고 반성을 삼아 앞으로는 올바른 역할을 기대했던 유성룡에게 미안한 마음을 내가 대신 느끼는 바이다.
임진왜란 직전, 명나라와 조선과 100년의 전쟁을 거쳐 통일 일본을 이룬 삼개국 사이에서 남의 뒷꽁무니를 물며 질질 거리고 오로지 당파싸움에 몰두하였던 조선이 단점만으로 똘똘 뭉쳐져 겪어야만 했던 일본과의 전쟁사 7년에 대해 이 책은 비탄의 혀를 날리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임금의 수 차례 도망과 지역마다의 멍청한 수장들이 저지르는 짓거리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데, 아무리 세월이 변한다 해도 그 수장들의 행태는 여전하여 국민의 일원으로써 그들에게 바라는 바는 한 가지도 없음이다. 그나마 양심이 살아 잇는 저자 유성룡에 의해 발탁된 이순신 장군과 권율장군의 활약상을 통해 기 죽었던 기세와 몸을 조금 바로 잡을 뿐이었다. 언제나 숨은 인재들은 널려 있으며 소리 없이 사라진다. 다만 그들은 기회를 맞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만 있을 뿐이다. 당시의 상황에서 이순신과 권율은 그 기회를 맞았을 뿐이고, 유성룡은 그 기회를 연결시켰을 뿐이고 그들은 인간적 정신적 우수함으로 인해서 나라를 구하게 되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를 존재하게 한 힘이고 역사에 대해 후세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핵심적인 힘인 것이다. 앞으로도 반복이 될 것이다. 시행착오와 시대의 위인 등장,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쓸 데 없는 시간적 낭비를 겪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내용 자체로도 손색없이 뛰어난 소설을 능가한다. 재미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리얼하여 한 번 1권을 잡으면 3권까지 다 읽어야만 할 정도로 긴장감 넘치며 흥미롭고 재미가 있다. 그것은 이 책을 독자들이 읽기 손쉽게 였은 시인 김기택으로 인해 더해졌으며, 그림 이부록에 의해 완성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 감사를 하며 이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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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에 대해서는 다들 한번 쯤 들어봤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여형사, 하지원 출연의 드라마 <다모>를 기억하는 이들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이번에 알마에서 나온 샘깊은 오늘의 고전 14. 다모와 검녀에는 다섯 이야기가 수록 되어있는데, 개인적으로 샘깊은 오늘의 고전 시리즈를 참 좋아한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다 읽을 정도로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일러스트를 포함해 해설이 따로 수록되어있어,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거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가 읽은 이 글들이 무엇을 의미하고, 또 어떤 측면에서 어떻게 볼 수 있다는 전문가의 해설은 항상 느끼지만, 책을 읽고 난 후 제대로 정리를 할수 있는 느낌이 든다.
우선 첫번째이야기는 <다모> 한성부의 다모 김조이가 등장한다. 흔히들 다모가 전문형사라는 착각을 할지도 모르는데, 원래 다모는 관노비로 그 가운데에서도 다과상이나 술상을 차리는 일은 맡은 사람이었다. 물론, 한성부의 관노와 심부름꾼들은 상관의 지휘 아래 범죄 수사에 동원되기도 했고, 그렇기에 김조이가 순조 임금때인 1832년 임진년에 내려진 금주령과 관련해 그들을 잡아들일 수 있었다.
금주령은 흉년이 들거나 나라에 난리가 있을때만 잠깐 내려졌다 풀리는 금령인데, 그만큼 몰래 술을 빚는 이들도 많았다. 하루는 남촌으로 금주령을 단속하러 갔는데 그 집 주인 할미를 만나게 되는데, 나이 많은 주인 어른이 있는데 고질병이 있어 술 없이는 음식을 넘기길 못 한다고 그래서 밀주를 빚을 수 밖에 없었다고 자신의 처지를 말하는데, 다모 김조이는 그 모습을 보고 그 할미를 잡아 갈수 없었고, 되려 자신이 콩죽을 사다 나이 많은 주인 어른께 드리라 말한다. 그러면서 밀주를 빚은 걸 아는 이가 있나 하니, 시동생에게 한번 주었단다. 다모가 일을 마치고 군졸들과 한성부로 들어가려는데 경복궁 근처 십자가를 지나다 한 젊은이를 발견했다. 포상금을 받기 위해 아전들에게 고발하는 이들이었는데, 행색을 보니 그 할미의 시동생 같았고 김조이는 그이 뺨을 휘갈리게 된다. 물론 그 일로 곤장까지 맞게 되지만, 한성부 주부로 부터 의로운 행동을 했다며 돈을 받게된다. 또 그걸 김조이는 할미에게 드린다. 여기까지가 다모의 이야기다. 한 여성의 몸으로, 어쩌면 자신이 다칠지도 모르는 일을 타인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는 김조이에게서는 단순히 법 집행관으로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모습,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뿐 아니라 시동생의 행동 속에서 물질적인 것에 의해 인륜을 저버리는 파렴치한 일을 할수도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목격하게 되고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번째 이야기 <검녀>는 전라도에 숨어 살던 선비 소응천에게 누가 찾아오게 된다. 남의 집 노비였다가 주인이 죽고 남장행세를 하다 세상을 떠돌던 여인이었는데 그녀는 주인집 아씨와 함께 태어나 자랐지만, 권세있는 집의 모략에 걸려 주인집은 몰락하게 되고, 열살 넘는 아씨와 남장을 하고 길을 떠나 검객을 만나 자유자재로 칼을 쓰는 법을 익히게 된다. 그러다 원수의 집에 가 검무를 추다 원수를 칼로 베어버린다. 아씨는 그뒤로 자결을 하게 되고, 혼자 남은 여인은 3년을 떠돌다 이름 높다는 선비 소응천을 찾아와 자신을 맞기기로 한것이 었다. 허나 3년을 같이 지낸 여인은 선비가 빼어난 선비가 아닌줄을 알고, 또 다시 남장을 한채 길을 떠난다.
여인의 몸으로 원수를 갚고, 자결을 한 아씨나, 남장을 하고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떠돌았던 여인, 그녀가 바로 검녀인 것이다. 조선의 여인이라고 집에서 조신히 바느질만 하고 있을 줄 착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자신의 적에게 단호히 맞서고, 자신의 의지를 말하고 행동 할수 있는 검녀, 참 멋있다
<억지 혼인을 물리친 길녀>는 이미 결혼을 한 길녀를 서방님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숙이 원산원님에게 시집을 보낼려고 했는데, 길녀가 지조를 지키기 위해서 혼인날 식칼을 휘둘러 혼인을 피한다는 내용이다. 해설에도 나오지만 실지로 고을의 수령을 위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여성의 정절로 지배층의 파렴치함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당당한 여성상을 또 한번 여기서 만날 수 있다.
<몰래한 재혼>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 몰래 여성이 재가를 한 내용이다. 예전에는 남편이 죽고 나면 정절을 지키기는 것을 당연히 강요받았고 아니면 자결을 해서라도 집안의 명예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이 팽배했었기에 여성들의 자유를 억압받았던 게 사실이다. 딸 아이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딸 아이의 행복을 지켜주려 했던 아비의 마음에 더 감동했는지도 모른다. 조선시대고, 현대고 아비의 마음은 자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 뿐인 듯 하다.
마지막 이야기 < 귀부인의 유언>은 임진왜란때 병사 모집으로 진주성 전투에서 죽은 임희진의 집안의 조상에 관한 이야기다. 한 선비가 서울로 과거를 보던 길에 장씨를 만나 반해, 과거 시험 후 혼인을 하게 되는데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수절을 지켜온 장씨부인이 죽으면서 재가를 할수도 있다고, 억지로 정절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을 남긴다는게 주요 이야기다. 몰래한 재혼과 상통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때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여성을 압박했지만, 자신의 의견을 말 할 수 있고, 강요받는다고 해서 꼭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이야기는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성리학 중심 사상 속에서 억압받았던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어떻게 삶을 살아갔는지를 이 책은 여실히 들려주고 있다. 우리 생각과는 사뭇달랐던 당당한 여인들의 모습 속에서 오늘 날 우리 여성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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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소설이 재미있는 줄은 대학 때 도서관에 꽂혀있던 책들을 보고 한번 느낀 적이 있었다. 다모 이야기가 있다는 말에 궁긍하기도 싶어 구매를 했는데 생각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한문소설 중에 아직 잘 번역되어 있지 않은 작품들이 매우 많다고 한다. 한 나라의 문학은 상상력의 보관창고다. 알마에서 번역되어 나오고 있는 샘깊은오늘고전 시리즈는 어쩌면 그 창고를 조금씩 열어, 새로운 세대를 위한 창고를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벌써 14번째 책이 나왔다고 하니 더 많은 책들이 어린 독자들에게 읽혀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책은 어린독자를 위한 책만도 아니다. 어쩌면 성인들이 읽어야 할 고전이라고 할까. 다모와 검녀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사회적 관습 때문에 숨통을 죄이는 가운데에도 자신의 개성과 의지를 발현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가장 인상깊었던 이야기는 검녀였다. 우여곡절 끝에 무공을 연마해 숨어 살면서 한 의인에게 수절하려 했지만 세상의 평판에 비해 보잘 것 없는 그를 버리고 떠나는 모습은 자못 경외감까지 들게 했다. 조선 여인들의 곧은 마음과 됨됨이가 마지막 검무가 펼쳐지는 이별 장면의 아름다움까지 겸비되면서 문학적인 성취를 한층 끌어올린다.
한문으로 된 고전소설을 이렇게 아름답게 옮기기도 참 쉽지 않을 듯싶다. 단어 하나하나 체에 거른 듯 골고루 문장을 떠받치고 있다. 좋은 글을 읽었을 때 받는 느낌을 오랜만에 다시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