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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티비 방송을 보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겠다며 친딸을 협박하는 엄마에 대한 사연이 나왔다. 어린 시절부터 딸이 보는 앞에서 극단적 시도를 했고, 폭력과 폭언을 했으며, 알코올 중독과 약물 오남용을 일삼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엄마와 이혼한 아빠도, 엄마의 가족인 이모나 외할머니들도 모두 손놓고 있는 상황에 이십대 초반의 딸 혼자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하고 있었다. 딸이 엄마로부터 오는 연락을 끊지 못하고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직 고등학생인 남동생에게 엄마가 해코지할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는 딸의 입장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이긴 했지만, 엄마에게 어떤 사정이 있었든 간에 어른으로서 무책임했고, 자식에게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과 말들이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이 사연을 보면서 데버라 리비의 소설 속 주인공 소피아와 그녀의 어머니 로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학위 취득을 코앞에 두고 있었음에도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헌신했지만 상황은 무엇 하나 나아지는 게 없었고, 자신의 일상들을 모두 희생했으나 누구 하나 만족스럽게 웃을 수 없는 나날들이라니... 이렇게 모순으로 점철된 관계가 또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다리 마비 증상은 사실 걸을 수 있지만 심리적인 이유로 걷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의심하게 만들고, 유명 클리닉에 가보지만 의사의 진단 방식과 처방은 이해할 수 없고, 급기야 로즈는 고통을 호소하며 다리를 잘라버리겠다고 억지를 부리는데... 소피아는 자신을 붙드는 그 관계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족 관계란 것이 쉽게 끊어낼 수도, 모른 척 할수도 없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마냥 사랑할 수도, 훌훌 털어낼 수도 없는 관계, 누구나 한번쯤 겪어 봤거나 들어봤을 법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공감도 되고, 이해도 되는 그런 작품이었다.
데버라 리비의 자전적 에세이 <알고 싶지 않은 것들>과 <살림 비용>을 아주 인상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유년 시절부터 ‘알고 싶지 않은 것들’과 고군분투했던 여성이자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그리고 사회가 여성, 특히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망상과 가해 온 억압들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과 사유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난 것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데버라 리비의 장편 소설이다. 2016년 맨부커상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던 이 작품은 몇 년째 종잡을 수 없는 통증을 호소하며 제대로 걷지 못하는 어머니와 그를 간호하기 위해 일상을 포기한 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병원을 전전하며 여러 검사를 했음에도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하고 있지만 어머니는 늘 고통을 호소하고, 학업을 중단하고 곁에서 머물고 있는 딸은 평생 어머니 시중을 드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게다가 그런 딸에게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고, 통통하고 게으른 데다 고령의 자신에게 얹혀살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어머니라니. 모녀간의 묵은 갈등과 억압된 열망, 상처와 애증은 결국 파국으로 향하게 된다. 어머니가 탄 휠체어를 도로 한가운데로 밀고 가서는, 그곳에 남겨놓고 떠나버린 것이다. 멀리 대형 트럭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와서는 어머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힘들어 하는 그녀에게 의사가 말한다. "그게 모든 슬픈 어머니의 자식들이 두려워하는 일이죠. 자식들은 매일 자문합니다. 왜 어머니는 살아 있는데 죽어 있는가?"라고. 슬픔과 비탄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렬하고, 날카로우며, 위트와 뭉클함도 잊지 않는 이 아름다운 작품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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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깃발이 펄럭일 때는 바다 수영을 하지 않는 게 최선입니다.' 스페인 한 해변에서 메두사라 불리는 해파리에게 다리를 쏘인 소피아는 자신의 삶이 메두사의 저주를 받아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이름: 소피아 파파스테르기아디스 나이:25세 국적: 영국 직업:
소피아는 원인 모를 다리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엄마 로즈를 고메즈라는 남자가 운영하는 스페인의 한 요양 병원에 입원 절차를 밟기 위해 보호자 서약서에 양식을 기입하던 중 <직업>란에 어떤 직업도 기입하지 못하고 있다.
따스한 남쪽 해안가에 자리 잡은 휴양지의 리조트를 빌린 소피아와 그녀의 엄마 로즈는 다른 투숙객들처럼 돈 걱정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이 보이지만 이들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런던의 작은 집을 은행에 저당 잡혀서 그 돈으로 스페인으로 건너 온 소피아는 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 했지만 어디에서도 마땅한 직업을 얻지 못한 채 무료 인터넷 망을 이용할 수 있는 웨스트 런던의 한 카페에 시급 종업원으로 매일 출근하고 있다. 그렇게 모든 재산을 탈탈 털어 스페인의 한 휴양지로 온 소피아는 다리 통증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엄마 로즈의 휠체어를 끌며 이렇게 중얼 거린다.
나는 더 큰 삶을 원한다. 나는 실패자다. 내 꿈은 끝났다.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해서 장학금을 받고 석사과정에 진학 했지만 엄마의 발병으로 박사과정으로 진학하지 못한 채 카페로 출근해서 매일 쿠키과 케익을 만들고 있는 소피아에게 클리닉 직원은 서약 양식을 채우라고 재촉한다.
'직업칸을 채우지 않았네요.'
서약 양식을 채워야만 클리닉 치료를 받을 수 있기에 결국 소피아는 펜을 쥐고 이런 문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영아 연구하기 -동물 연구하기 -원시인 연구하기 - 정신분석 받기 -개종했다가 극복하기 -한 가지 정신병 증세를 겪고 극복하기
소피아는 개종이라는 단어에 밑줄을 두번 그어 버린다. 그녀의 아버지는 예순 아홉 살 나이에 자신의 딸 보다 겨우 네 살 많은 여자와 결혼해 아기를 낳고 고향 그리스 땅으로 건너가 집안에서 상속 받은 선박 사업체에서 나오는 돈으로 호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14살 이후로 아버지를 만난 적 없는 소피아는 자신을 부양하느라 빚더미에 앉아 있는 엄마의 빚도 갚아야 하고 얼마의 비용이 들어 갈지 모르는 치료비까지 모두 떠 안아버렸다. 카페 일로 소피아가 받는 임금은 세 시간당 18.30 파운드로 은행에서 온갖 굴욕스러운 말을 듣고 작은 방 한 칸 짜리 딸려 있는 집으로 겨우 대출을 받았다.
저기 소피아가 엄마 로즈를 휠체어 태우고 지나가고 있다. 시멘트 공장 맞은편, 황량한 해변에 자리 잡은 고메스 클리닉 두 모녀는 이곳에서 치료를 마치고 영국 런던으로 돌아 간다 해도 머물 곳이 없다.
이름: 나이: 국적: 직업:
스물 다섯 살의 소피아는 이런 기본적인 양식에 자신의 이력을 자랑스럽게 기입하지 못하면서도 최우등 성적의 인류학을 공부한 지식으로 주변의 인물들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소피아가 탐구하기 시작한 인물들은 우선, 해변에서 메두사라는 해파리에 쏘였을 때 가장 먼저 달려온 다이빙 학교에 있는 간의 의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후안과 의 여자친구 잉그리트 바우만 그리고 미스터리한 치료사이자 돌팔이스러운 의사 고메스 박사에 대한 모든 행동과 말투를 인류학적 지식으로 분석하기 시작한다. 독일 바이에른 대학에서 기하학을 전공한 잉그리트의 늘씬한 체형에 사로잡힌 소피아는 그녀가 사소한 행동조차도 지나치지 않고 입맞춤이나 눈물을 글썽여 보이는 감수성에 놀라면서 빠져든다. 이를 눈치 챈 잉그리드가 거리를 두자 소피아는 해파리에 쏘인 부위를 치료해 준 잉그리드의 남자 친구 후안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후안이 메두사에 쏘인 모든 곳에, 부은 자리와 물집에 키스 했다. 내 몸에 그런 부위가 더는 남지 않은 게 아쉽다고 느껴질 때까지 . 나는 욕망에 쏘였다. 그는 나의 연인이고, 나는 그의 정복자였다.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 집안의 가장이였던 엄마 로즈는 무료급식 대상자였던 딸을 부양하느라 어느 순간부터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었지만 이혼한 전 남편을 딸 앞에서 비난하거나 헐뜯지 않는다. 소피아는 자신의 엄마 로즈의 휠체어를 밀면서 한 편으로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채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한 인간, 잉그리트에게 관심을 보이며 인류학적 지식으로 그녀의 모든 것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한다.
나는 좋아한다. -그녀가 촘촘하게 수 놓인 벨트를 푸는 방식을 -그녀가 자신의 몸을 좋아하는 방식을 -붉은 흙먼지에 덮인 그녀의 맨발을
잉그리트와 연인이 된 소피아는 스스로도 자신의 성체성을 알지 못한 상태로 엄마를 클리닉 치료소에 맡겨둔 채 해변가에서 만나 새로 사귄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뜨거운 태양 열기, 모기, 메두사를 닮은 해파리... 엄마 로즈가 다리를 절룩거리는 모습을 지켜 보던 소피아는 자신이 엄마의 보호자이자 부양자라는 사실에 혼란스러워 하며 결국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아버지가 있는 그리스 아테네로 떠난다. 소피아는 공항에 마중 나온 아버지와 그의 새 아내 그리고 자신의 반쪽 피가 섞인 젖먹이 아기를 만난다. 소피아는 아테네에서 아버지의 멋진 집에 머무는 동안 어린 시절로 돌아가 밤마다 아버지가 자장가처럼 읊어 주었던 그리스 알파벳 놀이를 하다 너무나도 행복한 젖먹이 여동생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가족의 의무란 무엇인가?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부양하고 책임져야 하는 부모는 자식에게 얼마 만큼의 비용을 쏟아 부어야 할까? 변변치 못한 직업에 엄마의 치료비까지 대야 하고 은행에 채무 상태인 소피아는 아버지에게 손을 벌린다. 소피아 입에서 돈 이야기가 나오자 이제 부녀 사이는 채권자와 채무자 관계가 되었다. 만일 그녀의 아버지가 값을 지불하고 나면 그는 그동안 가족에 대한 채무 비용을 완전히 청산하게 될 것이다. 딸의 입에서 돈 이야기가 나오자 아버지는 매몰차게 돌아서고 아버지의 새 아내 알렉산드리아는 하루가 다르게 노화 상태에 접어든 남편의 상태를 소피아에게 토로 한다. 이런 비참한 상황 속에서 소피아가 새로 사귄 스페인 친구들은 엄마 로즈가 치료 받고 있는 고메즈 클리닉 운영자가 사기꾼이라며 어서 치료를 그만 두라는 문자를 보내 온다. 마침내 아테네의 아버지 집에 머무는 동안 소피아는 자신이 그동안 부모에게 사랑 받고 있다는 환각 상태였다는 사실을 젖먹이 여동생의 생글 거리는 미소를 보고 깨닫게 된다. 소피아의 아버지는 딸과 헤어지는 자리에서 은행에 간다는 걸 깜빡 했다면 지갑에서 10 유로 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고 그렇게 소피아는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테네 공항에서 전부 잃어버린다. 소피아의 엄마 로즈는 도서관 사서로 10억개가 넘는 단어를 색인 작업을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신발을 신지 못할 정도로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어머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엄마 로즈를 한적한 산책로까지 끌고 나온 소피아는 대형 트럭만 지나가는 도로 한 가운데 엄마를 버리고 가버린다.
나는 평생 어머니 시중을 드는 사람이었다. 나는 웨이트리스였다. 어머니 시중을 들고 어머니는 기다리는....
엄마가 자신의 인생에서 사라져버린다면 소피아는 더 이상 어느 누구의 시중을 들지 않아도 될까? 10유로 지폐 한 장으로 부녀간의 채무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 외동딸을 부양하느라 병들어 버린 어머니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위를 갖고도 시간 당 임금을 받으며 매일 쿠키를 굽고 케익을 자르다 빚더미에 올라 앉은 딸 소피아는 직업란에 이런 단어를 적어 넣는다. [웨이트리스]
인류학을 공부 한 우등생 주인공 소피아의 독백으로 가득 채워진 <핫 밀크>는 한 영장류의 성장 보고서이자 혼돈의 자아 정체성을 겪고 있는 고백서로 21세기 가족의 의무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작품으로 2016년 맨 부커상 파이널리스트에 올랐고 같은 해 미국 뉴욕타임스 북리뷰에서 선정한 가장 주목 받는 100권의 책에 올랐을 정도로 출간 즉시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영국 땅에서 두 모녀는 이민 보조금과 무료 급식비로 생계를 조달 할 정도였지만 그녀는 폭력으로 얼룩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공부에 매달려 전액 장학생으로 런던 다팅턴 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한다. 1989년 단편집으로 영국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난 데버라 리비는 단편, 장편, 라디오 극본, 연극 시나리오, 영화 각색을 넘나들며 거의 모든 작품들이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 무대에 올려지고 있고 단편과 희곡 작품들은 BBC라디오 드라마로 제작되고 있다. 2012년에 발표한 장편 <헤엄치는 집>과 단편집<블랙 보드카> 모두 맨부커상 파이널리스트와 프랭크 오코너 국제 단편 소설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써내는 작품 마다 주요 문학상에 올라가고 있다. 이 정도의 작가 위상에 오르기 까지 데버라 리비는 항상 채무 상태에 시달리며 가족을 부양하느라 단 하루도 쉼 없이 원고를 써나갔고 첫 번째 남편과 이혼 후 아이들을 양육하기 위해 자신의 희곡 작품을 들고 직접 연극 무대마다 찾아 갈 정도로 매일 눈만 뜨면 돈 걱정을 하고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 돌아갈 곳도 도망칠 곳도 없었기에 그녀는 오로지 글만 써야 했고 글로만 생계를 이어나가기 힘들어서 대학에 출강 하며 창작 생활을 이어갔다. 작품이 출간 될 때마다 평단과 독자들에게 찬사를 받으며 현재 영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작가가 되지만 2011년 <헤엄치는 집>이 맨 부커상에 오르기 전까지도 새 작품 출간 할 때마다 영국측 출판사로 부터 '이번 작품은 성공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미국 측 대형 출판사인 펭귄에서 그녀의 작품들을 출간 결정하고 마침내 맨부커상 후보작으로 선정되자 언제나 갑으로 군림했던 영국 측 출판사에서 허리를 굽히기 시작했다. 한 때는 영국 측 어떤 출판사도 편집자도 그녀의 원고를 읽자 마자 쓰레기 통으로 집어 던졌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녀가 새로운 작품을 써 주기 만을 고대 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채무 상태로 태어나는 여성은 집안에서부터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고 허비 되고 있습니다. 과연 누가 여성의 삶의 채권자 입니까?' -데버라 리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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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핫 밀크'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우유를 차갑게 먹는 탓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영어 단어여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한번쯤 들어는 봤어도 일상에 자주 쓰지 않는 어딘가 낯선 단어였다. 소설 속 소피아와 로즈의 관계가 딱 핫 밀크 같았다.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아예 낯선 모습은 아니었다. 모녀 관계의 비극을 보여주는 소피아와 로즈는 우리의 현실 속에도 있을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딘가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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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는 함께 절룩거린다. 스물다섯 살인 내가 어머니와 걸음을 맞추려 같이 절룩거리고 있다. 내 다리는 그녀의 다리다. 이게 우리가 찾아낸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명랑한 걸음이다. 걸음마를 막 시작한 어린아이와 어른이 함께 걷는 방법이고, 어른이 된 자식이 한쪽 팔을 부축받아야 하는 늙은 부모와 함께 걷는 방법이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물론 요즘은 친구 같은 모녀도 많고,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또 다른 가족 중에는 애증의 관계도 상당하다. 이 책 속 모녀 로즈와 소피아의 경우도 후자가 아닐까 싶다.
25살의 인류학 전공자 소피아 파파스테르기아디스와 그녀의 어머니 로즈. 학업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석사학위까지 딴 소피아는 박사학위 문턱에서 학업을 포기한다. 어머니 로즈 때문이다. 엄마의 다리가 마비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그녀를 부축하고 도와야 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로즈에게 유일한 가족은 소피아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업을 마치지 못한 소피아는 결국 동네 커피하우스에서 알바를 하게 된다. 겨우 그 돈으로 생활을 해나가는 모녀는 결국 집을 담보로 큰돈을 마련하여 스페인으로 떠난다. 저명한 전문의인 고메스를 만나 로즈의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서다.
기대에 차 고메스를 만난 소피아 부녀는 어안이 벙벙하다. 로즈가 아픈 곳은 다리가 아니었나? 왜 고메스는 자꾸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이 사람은 정형외과가 아니라 정신과나 심리치료를 하는 의사였던 걸까? 예상치 못한 치료법이 진행된다. 우선 소피아가 먹던 약 중 3개를 버린다. 치료를 하자고 하고 식당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기도 한다. 유일한 보호자인 소피아에게 바다에 다녀오라고 하며 자리를 비켜주길 원한다. 해산물에 대해 알레르기 증상이 있다는 로즈 앞에서 문어를 시켜 먹기도 한다.
스페인의 바다를 찾은 소피아는 메두사라고 불리는 해파리에게 쏘인다. 치료를 위해 간이 의무실을 찾는다. 이름과 나이 직업과 국적을 쓰라고 준 종이에 직업을 무엇이라고 적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소피아에겐 아버지가 있다. 소피아가 5살 되던 해, 모녀를 떠난 아버지 크리스토스는 소피아 보다 몇 살 많은 여자와 재혼을 했다. 모녀를 떠날 때부터 아버지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소피아는 돌쟁이 동생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부유했다. 하지만 소피아와 로즈는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소피아는 아버지를 찾는다. 과연 아버지는 그녀에게 도움을 줄까?
끊임없이 딸에게 의존하려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답답하고 싫지만 차마 두고 떠나지 못해 어머니 주변을 맴도는 딸. 스페인에서 만나게 된 동성의 잉글리트 바우어(잉게). 그리고 잉게의 애인 매튜.
부모의 희생을 바탕으로 자라난 자녀는, 성인이 되고 다시 나이 든 부모는 부양을 해야 할 사람이 된다. 자신의 미래를 접어두고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버린 소피아. 엄마에 대한 애증에 대한 불편함과 갈급함을 또 다른 사람 잉게에게서 풀어내는 소피아의 모습을 보며 두 여인 사이에 껴 있는 소피아의 모습이 쉽지 않아 보였다. 엄마를 위한 삶, 엄마를 돕는 삶은 소피아에게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아직은 엄마의 입장보다는 딸의 입장에 가깝기에 로즈보다는 소피아에게 자꾸 눈이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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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맨부커상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영국 작가 데버라 리비의 장편소설 <핫 밀크>. 따스한 볕과 차가운 바람이 함께하는 이 가을에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하지만 잔잔한 무드를 떠올리며 펼친 소설은 뜨거운 음료를 후후 불지도 않고 한 모금 마셨다가 혀가 데인 듯 강렬하게 다가온다. 정세랑 작가의 추천으로 읽게 된 에세이 <살림 비용>을 통해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데버라 리비는 소설, 희곡, 시, 에세이 등 장르를 넘나드는 글을 쓰는 작가였다. 같은 작가가 쓴 다른 장르의 두 작품을 읽어보았지만 둘 다 차분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 충분하지도 적당하지도 않은 우리의 온도 마냥 사랑할 수도, 훌훌 털어낼 수도 없는 관계에 대하여 소피아의 어머니 로즈는 수 년째 원인을 알 수 없는 다리 마비 증상을 겪고 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법을 찾으려 애쓰지만 치료는커녕 병명조차 알 수 없었다. 이제 막 박사학위를 앞두고 논문을 준비하던 소피아는 학업을 중단하고 어머니를 간병하기로 한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성지순례하듯 스페인의 유명하다는 어느 클리닉으로 향하는 두 모녀. 원장은 기대와 달리 주술사 같은 처방을 내려 모녀를 혼란스럽게 한다. 로즈는 소피아의 도움으로 일상을 유지하지만 가끔씩은 걷기도 했다. 하지만 또 어느 날엔 걷지 못하겠다고 변덕을 부리며 다리를 잘라 버리겠다고 악을 쓴다. 자기 파괴적인 말만 내뱉으며 괴로워하는 로즈와 그걸 지켜보며 더욱 고통받는 소피아. 소설은 모녀를 통해 희생과 헌신, 사랑과 증오 사이를 오가는 애증 어린 가족관계를 잘 보여준다. 신기하다고 여겼던 지점은 갈등이 정점에 이르면 보통은 폭발하듯 싸우기 마련인데 둘 사이에는 고성이 오가지 않는다.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치는 그들의 내면을 바라보며 지난 시간이 떠오르기도 했다. 피를 나눈 사이지만 마냥 사랑할 수도 마냥 미워할 수도 없는 존재가 가족이니까.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소피아는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는데 내내 잔잔하던 분위기에 급발진이 걸려 순간 마음이 콩닥거렸다. 굽이치는 물결처럼 인생의 여정도 관계의 온도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점차 앞으로 나아간다. 때론 '지긋지긋해' 하다가도 역시 '가족이 최고야' 싶은 변덕스러운 내 마음을 대변하듯 장편소설 <핫 밀크>의 소피아와 로즈를 통해 가족끼리의 적당한 온도는 어느 정도일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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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서재 [핫 밀크l 데버라 리비l 비채]
“물 좀 다오, 소피아”
<핫 밀크>는 그리스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로즈 사이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란 주인공 소피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소피아의 부모는 그녀를 결혼한 지 11년 만에 얻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신의 부름을 받고 어린 여자와 재혼하고 그리스로 돌아갔다. 소피아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엄마 로즈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걷지 못한다. 소피아는 엄마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엄마를 돌보는 일에 집중한다. 모녀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스페인 어느 병원으로 간다.
로즈에게 소피아는 딸이 아닌 또 하나의 몸 같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로즈는 소피아에게 자신처럼 생각하고, 움직이기를 바라는 것 같다. 소피아는 그런 엄마의 말을 잘 듣다 어느 순간 그녀의 노트북처럼 산산이 부서진다.
‘물’을 가져오라는 엄마의 말에 소피아는 생각한다. “또 내가 생각한 ’물‘이 아니겠지” 엄마와 소피아는 서로 다른 ’물’을 말한다. 인간의 필수 요소인 ’물‘에서부터 엄마와 소피아에게는 좁혀지지 않을 간격이 있다.
무언가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이 담겨있다. 무언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찾아가고 알아가고 깨닫는 여정은 피폐하다. 들추고 헤집어보며 찾는 것이 ‘나’라는 사실을 조금씩 인정해나간다.
저자 데버라 리비는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9년 후 영국으로 이주해 연극을 전공했다.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녹여져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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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소피아' 소피아는 어릴적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쭉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원인모를 다리마비증상으로 소피아는 학업을 멈추고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스페인의 병원을 찾아간다.
어머니인 로즈는 병명조차 모르는 이 고통에 다리를 잘라버리겠다며 억지를 부리고 그런 어머니의 비위를 맞추는 것에 소피아는 점점 지쳐가고 소피아와 어머니 사이의 갈등은 깊어져간다.
마냥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가족이라는 이름 가족 사이의 온도는 몇도가 적당한 것일까? 병명도 원인도 모를 다리 마비증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자신의 학업도 꿈도 접은 소피아.
자유가 무엇인지 갈등하고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는 소피아를 보며 안쓰럽다는 생각과 동시에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소피아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하나뿐인 자신의 가족 어머니와의 갈등, 어디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느낀 자신의 정체성 혼란.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찾은 스페인에서의 모든 순간이 소피아에겐 혼돈 그자체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읽기 쉬웠던 소설은 아니었다. 그래서 읽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가족간의 온도는 몇도가 적당한지 물음에 대한 답을 내리진 못했지만 자유, 젠더, 가족에 대해 심오하고 깊은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특히나, 자유 그리고 젠더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한번쯤 고민해보기 좋은 주제였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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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모를 병으로 다리마비 증상을 겪는 어머니 ‘로즈’와 간호하기 위해 일상을 포기 한 딸‘소피아’의 이야기
우리는 우리의 시선이 강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보지 않는 척을 하는 거야.
이혼을 하며 상실감을 느끼고 혼자 딸을 키운 엄마, 30살 어린 여자와 재혼을 하여 새 가정을 꾸린, 그리고 나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하는 아빠. 그리고 학업을 포기하고 엄마의 간병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딸.
왜 로즈가 다리마비 증상을 겪는 건지, 왜 절단을 요구하며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인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읽는 내내 궁금했다.
나 역시 누군가의 딸이기도 하고 제일 가깝다고 여긴 등장인물이 소피아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소피아의 관점에서 이해하며 읽었다. 로즈가 진짜 원하는 답은 무엇인지 계속 생각했다. 나도 소피아였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고 똑같이 괴로워했으리. 엄청난 회피형인 나는 더욱 긴 시간동안 앓았겠지.
평론가들은 탁월한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책이라 극찬을 하였으나 난 내공이 부족한 탓에 단번에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다 읽고 나서 아아 메두사. 이럴 뿐
묶인 강아지를 걱정하고 풀어주던 소피아는 강아지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강아지와 같은 미래를 상상해봤다.
스페인 해변에서 벌어지는 잉그리트와의 이야기도 좋았는데 내용을 환시기킬뿐 아니라 소피아의 여러 모습을 살필 수 있어서 즐거웠다.
엄청난 갈등을 겪는 모녀지만 둘 사이는 미적지근하다. 소리 지르며 폭발하는 장면이 없다. 괴로워하며 묵묵히 서로의 곁을 지킬 뿐이다.
괴롭지만 서로를 놓을 수 없는 모녀. 사랑과 증오로 똘똘 뭉친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물을 떠주는 장면에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책을 다 읽고도 자리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었고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소피아 행복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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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하지도 적당하지도 않은 우리의 온도 마냥 사랑할 수도, 훌훌 털어낼 수도 없는 관계에 대하여"
소피아의 엄마 로즈는 몇 년째 원인을 알 수 없는 다리 마비 증상을 겪고 있다. 로즈의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소피아는 박사과정을 포기하고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두 사람은 스페인의 한 유명 클리닉으로 떠난다.
하지만 스페인에서의 주치의는 이해할 수 없는 진단과 처방으로 모녀를 혼란스럽게 하며, 로즈는 어제는 걸었다가, 오늘은 주저앉기를 반복하고 종잡을 수 없는 고통을 호소하며 다리를 잘라버리겠다는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고통의 나날 속에서 모녀의 묵은 감정이 불거지는 가운데 두 사람의 억압된 열망이 들끓기 시작한다.
소피아는 혹시라도 자신의 처지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며 큰 결심을 하고 서른 살이나 차이 나는 여자와 재혼하여 어린 딸을 키우며 사는 아버지를 찾아가지만, 아버지마저 그녀의 존재 의식을 부담스러워함을 느끼며 그들만의 안정적인 가족의 화목만을 목격한 채 돌아선다.
인류학을 전공하고 미래에 대한 꿈이 있었던 소피아는 엄마의 '간헐적 다리통증'이라는 병을 돌보기 위해 무심하게 흘러가는 나날들 속에 삶에 대한 원동력도 잃고 자신의 존재를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면서 스페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에 무심한 듯 적응해 나가지만~~~
스물다섯 살인 딸 소피아는 의학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어머니를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찬 마음으로 대하지만 결코 피할 수는 없다. 어머니이기 때문에~~
어머니를 돌보는 마음이 걱정스러운데 더는 대처할, 감당할 자신이 없는 소피아, 그런 마음을 가진 소피아를 탓할 수 만은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소설은 가족 간의 갈등과 희생과 헌신, 사랑과 증오 사이를 오가며 모녀 관계를 이끌어 나간 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라며 생의 의지를 저버린 로즈 로즈의 다리 통증의 원인은 뭘까? 도 생각하게 되며 두 여인을 통해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이혼이라는 자신의 아픔을 간직한 엄마와 그런 엄마를 저버릴 수 없는 또 다른 여인, 딸의 돌봄에 대한 갈등이 와닿는다.
나 또한 엄마의 딸이며, 나의 딸의 엄마이므로 모녀 관계를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는 듯하였지만 돌봄 노동에 대한 현실을 탓하고 로즈의 입장과 소피아의 각각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며 최선의 방법은 과연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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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분에서 읽은 문장들도 출간본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사뭇 다르다. 텍스트 정보가 기시감이 충분하고 생생한 대화로 바뀌는 느낌이다. 작품 분위기를 대충 알 것 같다고 느꼈는데, 관계의 밀도도 더 지독하고 분리가 어렵게 보였다.
모녀 서사라는 건 왜 이런 방식이 많은지. 세부 내용은 모두 다르지만 예외 없이 모두 아프다. 분리와 거리감이 어려운 소재라서 나는 살아오면서 배운 갖가지 진정법이 필요하다. 지난 주말 가족 모임이 있었던 터라 더 그렇다.
“내가 살아온 스물다섯 해 중 스무 해는 어머니를 조사하고 관찰하는 나만의 연구 기간이었다. 아니, 아마 더 길 것이다. 네 살 때 어머니에게 두통이 뭐냐고 물었었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문이 쾅 닫히는 것 같은 거라고 말했다. 타인의 마음을 잘 읽는 사람으로 자란 나에게 그녀의 머리는 곧 내 머리였다. 언제나 아주 많은 문들이 쾅쾅 닫혔고, 나는 그 광경의 주요 목격자였다.”
딸이 스물다섯이라 몇 번인가 큰 숨을 몰아 내쉬었다. 바라던 친밀함도 우정도 애정도 형성이 어려웠지만, 스물다섯의 나는 내 어머니의 보호자가 아니었고, 나만 생각하고 살아도 되었고, 내 직업란에 적을 직업을 찾아도 되었으니까,
“스물다섯 살인 내가 어머니와 걸음을 맞추려 같이 절룩거리고 있다. 내 다리는 그녀의 다리다. 이게 우리가 찾아낸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명랑한 걸음이다. 걸음마를 막 시작한 어린아이와 어른이 함께 걷는 방법이고, 어른이 된 자식이 한쪽 팔을 부축 받아야 하는 늙은 부모와 함께 걷는 방법이다.”
최우등 졸업, 장학금, 석사과정은 무용해졌고, 어머니의 발병 이후 진학도 직장도 옵션이 아니었다. 전 재산을 털어 어머니 클리닉 치료를 받으러 온 상황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직업칸을 채워 넣어야 한다.
기존에 엄마가 진 빚과 앞으로의 치료비도 모두 자신의 부담이다. 치료가 끝나면 돌아갈 집도 없다. 아버지는 14살 이후로 만난 적이 없다. 그는 현재를, 하루를 버티는 방법으로 자신이 배운 인류학적 지식으로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한 분석을 시작한다.
그럼에도 혼란은 열기처럼 소피아를 뒤흔들고, 찾아간 아버지는 아내와 아기와 함께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가족이란, 사랑이란, 사랑 받고 있다는 확신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환각이고 무엇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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