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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두 없이도, 살아지기 때문에 살아야 하는 것도 삶이니... 줌파 라히리, 로마 이야기
"몰두 없이도, 살아지기 때문에 살아야 하는 것도 삶이니... 줌파 라히리, 로마 이야기" 내용보기
최근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몰두할만한 것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몰두할만한 것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몰두할 힘이 사라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집 《로마 이야기》에 실린 단편 <P의 파티>를 읽다가 한 친구가 생각나서 오늘 오전 만났을 때 책을 선물하였다. 실은 책을 모두 읽지 않았을 때였고 오늘 모두 읽었다. 마지막 소설인 <단테 알리기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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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몰두할만한 것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몰두할만한 것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몰두할 힘이 사라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집 《로마 이야기》에 실린 단편 <P의 파티>를 읽다가 한 친구가 생각나서 오늘 오전 만났을 때 책을 선물하였다. 실은 책을 모두 읽지 않았을 때였고 오늘 모두 읽었다. 마지막 소설인 <단테 알리기에리>가 가장 좋았다. 

 

  「경계」
  “이따금 그녀는 고개를 들고 주변 풍경을 살핀다. 그녀는 저 멀리 초원, 원덕, 숲에 펼쳐진 다양한 빛깔의 녹음을 응시한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 노란 건초, 빛바랜 난간과 땅의 경계를 표시하는 낮은 돌담. 내가 매일 보는 모든 것을 그녀가 본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그것들 말고 무엇을 더 보는지 궁금하다.” (p.20) 이 나라 바깥에서 로마 외곽까지 와 휴양지의 숙소를 관리하는 부모를 둔 나는 그곳에서 휴가를 보내는 이 나라 사람들을 살핀다. (소설집에 실린 대부분의 소설들은 이렇게, 작가인 줌파 라히리가 그런 것처럼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온 자들을 혹은 그들의 시선을 혹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다니고 있다.) 그러나 나의 응시와 그들의 응시는 수시로 교환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 소녀들의 어머기나 두고 간 수첩에는 작고 흐릿한 필체의 쇼핑 목록, 그리고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이 적혀 있다.” (p.30) 

 

  「재회」
  아버지를 잃은 ‘밝은 색 머리, 큰 녹색 눈’을 가진 상복 차림의 친구와 ‘머리색이 짙고 피부색도 어두운’ 대학 교수 친구가 만난다. 그 재회에 불청객처럼 끼어드는 뿌리 깊은 천연의 편견을 보여주고 있다.

 

  「P의 파티」
  아내와 나는 매년 (초등학교 이래로) 아내의 친구인 P가 여는 파티에 참석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피티장에서 잠깐 만난 L에게 의외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L의 아이는 P의 아이와 동급생이고, L은 남편을 따라 외국에서 로마로 들어와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L과 내 사이에 아무런 진전이 없는 사이에 아내와 L이 먼저 친구가 된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바랐던 걸까? L과의 진짜 러브 스토리? 약속을 잡고 호텔 침대에서 몇 시간 함께하는 것?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함께 춤을 춘 뒤에도 나는 그녀의 몸과 손을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테라스에서 나눴던 대화, 그녀가 혼란에 빠져 아들을 걱정하며 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때에 집착했다. 그 순간이 나에게는 에로틱한 행위보다 좀 더 위반적인 일처럼 보였다. 우리가 무엇을 공유했을까?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유익하고 친밀한 교환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아내를 공유했다.” (p.82) 삶이 가지는 우연성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의 행방이 언제든 묘연해 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심지어 어떤 무안한 순간을 통과한 뒤에도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심지어 잘...

 

  「밝은 집」
  밝은 집, 이라는 제목은 투명하게 전달되는 차별과 편견을 가리키고 있다. 이 부부가 추구하고자 하였던 안락한 밝음은 형편없이 좌절되면서 어둡게 변한다. 남편은 남아 부랑자가 되고 아내와 아이들은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계단」
  “자신이 사는 건물 가까이의 모퉁이를 돌며 시나리오 작가는 평소처럼 시끌벅적한 원형극장 같은 계단을 기대한다. 대신 텅 비어 있는 계단이 보인다... 불 켜진 가로등의 하얀 점들이 마치 크고 넓은 M자를 그리며 계단 주위에 대칭형 별자리를 형성하고 있고 계단 꼭대기에 여섯 개의 보호용 돌기둥이 박혀 있는 게 보인다... 거의 대문에 다다른 마지막 순간, 그는 126개 계단 전체를 모두 오르기로 결심한다. 왜냐하면 오늘 밤 계단은 온전히 그만의 것이고,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아래 침대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노력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pp.169~170) 아마도 이 계단을 함께 이용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다섯 명의 인물인 외국인 가사도우미, 미망인, 수술을 받아야 하는 외국인 여성, 이민 2세대 여학생, 동성애자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려고 로마에 온 형제, 시나리오 작가가 등장한다.

 

  「택배 수취」
  나는 주인아주머니를 대신하여 택배를 수령하러 들르지만 기간이 경과하여 반송되었다는 이야기만 듣고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오토바이를 탄 소년 두 명에 의해 피습당하는 사건을 겪는다. 하지만 이방인으로 이곳에 들어온 나는 소년들을 신고하지 않는다. 그저 이 도시의 젊은이들이 누리는 행복을 질투할 뿐이다.

 

  「행렬」
  단순히 축제 행렬을 둘러싼 내외간의 알력처럼 보였지만 거기에는 자식을 잃은 슬픔을 극복해 보려는 헛된 노력이 깃들어 있다.

 

  「쪽지」
  쌍둥이 아들을 키웠고 이제는 양장점에서 일하는 여성이 아이들의 초등학교 선생님을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그녀를 통하여 아이들이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일자리를 얻게 된다. 성인이 되어 자신을 떠난 아이들을 회고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자신의 아이들의 까마득한 후배일 아이들이 보내는 협박 쪽지에 의해 산산히 부서진다.


  
  「단테 알리기에리」
  어린 시절 내 친구와 연애를 하였던 S는 내게 연애 편지를 보내 실은 자신이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너도 날 사랑하는 거 알아, 라는 마지막 덧붙임과 함께. 그리고 나는 S를 만나 아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나는 어린 시절 돌 아래 사는 생물체를 찾아 시냇물이 흐르는 집 뒤편 숲으로 갔을 때의 외로운 놀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돌들은 무거웠지만 나는 돌을 뒤집어 벌레와 곤충을 찾아냈다. 벌레와 곤충들은 햇살 아래서 몸부림치며 굼틀거렸다. 나는 그것들을 건드리지 않은 채 두려우면서도 매혹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어두운 갑옷을 입은 살아 있는 생물, 선사시대 곤충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연구했지만 어느 정도까지였다. 생물체를 살핀 후 덮개를 다시 닫아 그토록 열망했던 숨겨진 우주를 평화롭게 남겨뒀다. S는 이야기에 반응하지 않았고, 내게 다른 것을 묻지 않은 채 그저 듣기만 했다. 나 역시 줄곧 그 보이지 않는 생물 중 하나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과 그 연애편지로 그가 나를 덮고 있던 돌을 들어 올렸다는 사실은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물론 나는 지금 우리의 관계, 적어도 우리 관계의 잠재력이 덮개가 다시 덮이고 잊히기 전에 잠시 동안, 아주 잠시 동안만 노출됐던, 작지만 격정적인 곤충들의 삶과 같았다는 것을 안다.” (p.242) 소설은 단테의 《신곡》의 인용과 함께 평생에 걸쳐 진행되는 사랑과 삶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경험했거나 눈으로 봤거나 실수했거나 세심하게 탐구했던 이야기는 무겁다. 어떤 것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버리는 에너지를 능가한다. 깊은 기억은 시냇물에 비친 수없이 많은 뿌리, 끝없는 복제 같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는 모든 삶과 마찬가지로 특정 지점까지만 지속된다...” (p.272) 그리고 그 이야기가 언젠가 끝나리라는 것을 소설 속의 나도 그리고 우리도 모두 알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평생 다음과 같은 질문만 연거푸 한다. “살아남는 법을 배우려면 얼마나 오래 살아야 할까? 몇 번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p.279)

 

  삶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그러니 끝과 시작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몰두할만한 것이나 몰두할 힘을 찾는 것은 어쩌면 삶은 끝과 시작이 있는 하나의 직선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설을 모두 읽고 났더니 몰두, 라는 최근의 화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살기 위해서 사는 것만 삶인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살아지기 때문에 사는 것도 삶일 수 있다. 

 

줌파 라히리 Jhumpa Lahiri / 이승수 역 / 로마 이야기 ((Racconti Romani) / 마음산책 / 287쪽 / 2023 (2022)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23.10.28. 신고 공감 23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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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은 만들어 가면 된다고 스스로 가장자리로 이동한 용감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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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가 쉽고 말하듯 들리는 표현 덕분에, 한편으로는 출장과 워크숍과 친구 초대로 방문한 이탈리아와 로마를 자주 떠올렸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는 일과 구경하는 일, 생활인과 방문객,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이들과 뿌리에서 멀어져 잠시 휴식하는 이들의 간극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는다.   “이곳은 공기조차도 다르다고 (...) 이렇게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져 함께하는 것이 참
"정체성은 만들어 가면 된다고 스스로 가장자리로 이동한 용감한 작가" 내용보기

 

어휘가 쉽고 말하듯 들리는 표현 덕분에, 한편으로는 출장과 워크숍과 친구 초대로 방문한 이탈리아와 로마를 자주 떠올렸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는 일과 구경하는 일, 생활인과 방문객,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이들과 뿌리에서 멀어져 잠시 휴식하는 이들의 간극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는다.

 

이곳은 공기조차도 다르다고 (...) 이렇게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져 함께하는 것이 참 좋다고 그들은 말한다.”

 

허름한 집에서 보내는 매일매일의 똑같은 날들에 대해 그들은 무엇을 알고 있을까? (...) 겨울 내내 이곳을 지배하는 무자비한 고요함을 과연 좋아할까?”

 

내 삶의 많은 행운은 눈치가 없어서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눈치가 없이도 살아올 수 있었다는 것이 특권일 수도 있다는 것을 40대에 겨우 배웠으니 그야말로 눈치가 없는 편이다.

 

그럼에도 20세기에 20대인 내가 모를 수 없었던, 유럽에서 경험한 경계성과 소외감은, ‘far-far-east’에서 왔냐고 묻던 질문(국적)오리엔탈 여성을 보는 시선(성별)어려 보인다는 쉬워 보이는 말(나이)로 지겹게 소환되었다.

 

배에 가벼운 펀치를 맞은 것 같은 불편함을 느끼며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21세기에도 국적, 성별, 나이는 무화되지 않았고, 디지털로 변환되는 증명서류들이 첨가되었다. 나는 문득 두렵다. 기껏 서류 몇 장이었을 뿐이지만 원본이 무의미해진 시대에 나의 원형originality은 이제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이었고 무엇인가.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이름, 국적, 성별, 나이로 구성된 정체성이 흐릿하다. 소설집을 읽었는데 이름을 아는 인물이 없다. 숫자로 명기된 나이도 없다. 짐작할 뿐 확인된 국적도 없다. 작가는 문학의 방식과 필력으로 만들어가면 된다고 주어진것들의 힘을 빼놓았다.

 

이렇게 간단한 문장으로 감탄하기란 너무 쉽지만, 작가의 시도는 거대하고 공고하게 구축된 시스템에 반하는 도전과 저항이다. 인류 문명의 역사에서 정상과 주류와 기득권의 카테고리를 차지했던 이들은 천지창조의 날들처럼 제언 명령을 역사 속에서 거듭했다.

 

우리와 다르다고 분류하니 구별과 차별이 쉬워지고, 다른 것을 틀리다고 재규정하니 폭력과 혐오 위에 성립된 위계가 뚜렷해지고, 틀린 것은 죄악이라 종교가 거드니 이웃이 아닌 자들을 벌주고 죽이자하고, 약해서 손쉬운 곳으로만 시선이 향하니 불경하게 향하던 질문과 저항이 해소되더라. 부작용의 책임을 돌릴 다르고 틀린존재들은 많고 많아서, 달디 단 열매를 가득 채워서 기생할 준비를 갖춘 우리만 잘 살기에 좋았더라.

 

간신히 삶을 꾸려보려는 작품 속의 불안한 존재들이, 나와 내 가족을 다르고 틀려서 싫은이방인으로 보고 가해하는 타인들과 혼재된 상태로,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혼돈의 공간과 상황은 외롭고 위험하고 괴롭다.

 

그것만이 아니야, 증오가 가득했어.”

 

이민자에게 무자비하게 자행되는 폭력, 충분하지 않은 처벌과 보상, 제거되지 않는 두려움과 위험. 타인들과 어울려 살아가길 원하지만, 영원한 이방인으로도 모자라서 적대시되는 존재. 경계인의 처지를 다시 새롭게 내 이해 속에 채워 넣는다.

 

우리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네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뜨거운 열기를 작가는 단문이 지닌 속도감과 집중력으로 숨을 멈추고 따라 읽게 만든다. 참았던 긴 숨을 몰아쉬면 한편이 끝나있고 내가 잘 몰랐던 외롭고 불안한 존재를 대면한 기억이 남는다. 특기 중 하나인 픽션을 논픽션으로 읽기 능력은 잊었던 상처가 쑤시듯 책을 경험하게 한다.

 

뱃속에 있는 음식이 버겁게 느껴진다. 그녀는 참을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혀 추하고 비통한 감정뿐 아니라 굴욕감까지 느낀다.”

 

마음산책에서 출간한 에세이만 읽다가 소설을 처음 만났다. 그래서 설렜는데 에세이처럼 친밀했다. 아무도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모두의 삶을 아주 가까이 보고, 등장인물 각자의 무늬가 직조된 줌파 라히리라는 한 장의 진심을 고백 받은 기분이다.

 

살아남는 법을 배우려면 얼마나 오래 살아야 할까?”

 

몇 번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태어나보니 주어진 것들 - 장점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 로는 정체성을 편안하게 채우고 아무 일 없이 살아갈 수 없었던 존재, 더 촘촘하게 주류로 변신을 시도할 수도 있었겠으나, 창작 언어를 달리함으로써 스스로 언어와 문학과 문화의 가장자리로 이동한 용감한 작가를 작품으로 더 많이 만나고 싶다.

 

 

 

 

k****k 2023.11.07.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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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몇 번이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몇 번이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까?" 내용보기
피렌체 아르노 강 남쪽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라서면 울긋 불긋한 빛깔의 테라코타 지붕마다 꽃들이 만발한 듯 시가지 전체가 한 눈에 들어 온다.   꽃 피는 곳 ‘플로렌티아(Florentia)’라고 불렸던 도시 피렌체     천재 건축가 브루넬레스키가 1436년에 완공한 피렌체의 심장 같은 거대한 돔 성당 두오모 성당의 정식 이름은 꽃의 성모 마리아로  산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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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아르노 강 남쪽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라서면 울긋 불긋한 빛깔의 테라코타 지붕마다 꽃들이 만발한 듯 시가지 전체가 한 눈에 들어 온다.

 

꽃 피는 곳 ‘플로렌티아(Florentia)’라고 불렸던 도시 피렌체

 

  천재 건축가 브루넬레스키가 1436년에 완공한 피렌체의 심장 같은 거대한 돔 성당 두오모 성당의 정식 이름은 꽃의 성모 마리아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아르노 강의 유서 깊은 다리 폰테 벡키오(Ponte Vecchio)를 지나가게 된다.

 

1274년 5월 1일 아버지를 따라 부유한 은행가 포르티나리의 저택에서 열리는 칼렌디마지오 축제에 갔다가 주인집의 여덟 살 난 딸 베아트리체를 보고는 그만 눈과 마음이 완전히 뒤집혀 버렸던 9살 소년 단테 알리기에리(Dante/Durante degli Alighieri, 1265 ~ 1321)

10년의 세월이 흘러 19세의 청년 단테는 폰테 벡키오 근처 강변로에서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소녀 베아트리체와 마주친다.

 

천공의 뭇별들이 깨어서 망을 보는 긴긴 시간의 가운데서,

세 번째 시간이 거의 지났을 무렵에.

사랑의 신이 무심결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모습을 하고 내게 나타났다.

그는 기쁨에 가득 찬 사람처럼 보였고 한 손에는 내 심장을 쥐고, 품에는 망사를 덮고 잠든 내 여인을 안고 있었다.

그녀를 깨운 후에 그는 곧장 그녀로 하여금

내 심장을 먹게 했다.

-단테의 '새로운 인생' 중에서

 

단테는 폰테 벡키오(Ponte Vecchio)다리에서 마주쳤던 그녀, 베아트리체를 본 그 날이 생애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 되고 베아트리체는 24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집안에서 일찌감치 점찍어둔 부유한 도나티 가문의 딸과 결혼한 단테의 마음속에는 항상 베아트리체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나를 거쳐 고통의 도시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길 잃은 무리 속에 들어가노라.

정의는 높으신 내 창조주를 움직여,

성스러운 힘과 최고의 지혜,

최초의 사랑이 나를 만드셨노라.

내 앞에 창조 된 것은 영원한 것들 뿐,

나는 영원히 지속되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의 '신곡' 지옥 중에서

 

1300년대 유럽의 경제 문화 중심지로 막 부상하고 있었던 피렌체는 교황 지지파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지지파로 분열되어 황제와 교황사이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정치는 극도로 혼돈기에 빠져 버려 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버린 단테는 1302년에 피렌체로부터 영구히 추방된다.


단테는 오랜 세월동안 곳곳을 떠돌아 다니며 자신의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를 추억하면서 방대한 서사시 <희곡(Commedia/후대인들이 신곡이라 부름)>을 완성한다.

단테는 당대 지식인들만 사용했던 라틴어가 아닌 고향 피렌체의 생생한 구어체로 완성했다.

그의 작품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땅 피렌체와 그 주변 토스카나 지방에서 널리 읽혀지다 서서히 이탈리아 반도의 표준어가 된다.

현재 이탈리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교에서 단테의 작품을 배우고 읽었을 정도로 성서만큼 널리 읽혀지고 있고 수 세기 동안 세계의 언어로 읽혀지고 있다.

 

여기 발신인의 이름과 주소 자리에 단테 알리기에리가는 대문자로 적혀진 편지 봉투를 받아든 사람이 있다.

 

[나는 편지를 잘 살펴보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방에 들어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봉투를 열었다.

편지에 적힌 모든 단어의 충격이 지금도 여전히 마음속에 떠오른다.]

-줌파 라히리의 <단테 알리기에리> 중에서

 

열 일곱 살 때까지 누구와도 키스해 본 적이 없는 이에게 도착한 편지 <단테 알리기에리>

열렬한 구애 끝에 마침내 s라는 남자와 사귀게 된 친구의 절친인 그녀는 친구가 S와 첫 키스를 했던 그 장소, 그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릴 정도로 친구의 그 남자에 관해 잘 알고 있다.

 

'내 친구는 S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닿는 것을 느꼈고, 그의 얼굴이 자신의 피부를 사포처럼 여기저기 문지르는 당혹스러운 충격을 느꼈다.'

 

친구의 사랑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 정도로 그녀는 자신에게도 그런 사랑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스무 살이 된 그녀는 죄책감이 뒤섞인 슬픔과 동경으로 가득 찬 러브레터를 읽고 있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봉투를 우체통에 넣기 위해 도대체 몇 시간을 걸어왔을지 궁금했다. 그는 내 방을 추측하기 위해 집 창문 아래에서 몇 분 동안 머물렀을까?'

 

그 남자, 단테 알리기에리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그녀의 친구

'네가 모든 걸 망쳐놨어.'

어느 토요일 아침 한산한 캠퍼스에서 그를 만난다.

'너도 날 사랑하는 걸 알아.'

마침내 그녀는 그 남자, 단테 알리기에리와 키스를 한다.

 

 

[도망가듯 빠르게 지나가는 모든 시간을 당신의 시간처럼, 마지막 시간처럼 어떻게 살 것인지. 당신의 시간을 온 마음을 다해 어떻게 살 것인지 보여주십시오.]

 

남편과 별거 한지 7년 동안 자신이 태어난 미국과 이탈리아 로마를 오고 가는 삶을 살고 있는 그녀는 이제는 끝나버린 엄마와 아내로 살았던 그곳, 시어머니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는 그 성당으로 향하고 있다.

 

시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도착한 그녀는 장례식 복장으로 갈아 입고 이제는 끝나버린 엄마와 아내로 살았던 그곳에서 오랜 세월 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옷장 문을 열고 장례식 복장으로 갈아 입는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사랑을 거절한 그녀는 졸업 후 이탈리아 로마로 건너가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을 줄줄 입으로 읊어대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지듯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그녀는 열정적으로 새로운 땅에서 새 삶의 터전을 다져나가면서 손 때가 묻어버린 것들을 버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친구에게 받은 선물을 그리고 그 다음엔 자잘한 집안의 물건들을 버리고 구두를 버리고 옷가지를 버리고 시들어 죽어버린 화초까지 몽땅 버린다.

 

'어느 날 나보다 더 젊은 남자 때문에 나를 버릴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당신을 사랑한 유일한 남자라는 법은 없잖아.'

 

단테 알리기에리의 편지를 받아 본 그녀의 지난 사랑의 상처, 친구를 배신하고 부모님의 뜻을 배신하고 그리고 단테 알리기에리의 사랑도 져버린 그녀는 이제 이탈리아어로 단테의 글을 읽고 자신의 행복의 길을 찾아 나선다.

 

 

'저쪽을 잘 보아라. 

그 돌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알아내라.'

-단테의 <연옥편> 중에서

 

어느 날 해변에서 만난 낯선 남자에게 단테 이야기를 하는 그녀는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공허한 빈 자리에서 그 낯선 남자와 동침한다.

 

' 산책을 끝내고 우리는 앉아서 키스를 했다.'

 

그리고 마흔 살에 다다른 그녀는 예순 살에 가까운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 로마 외곽의 한 대학에 다니면서 단테의 <신곡>을 읽기 시작한다.

 

'이제 주님 그들은 평안을 찾았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고 남아 있는 평안,

그 무엇도 방해 할 수 없는 평온, 흔들리지 않는 평온을 찾았습니다.'

 

학위를 따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삶을 살아가는 그녀는 홀로 된 아버지가 있는 미국과 이탈리아를 오고 가며 가끔씩 남편과 만나 식사를 하고 친구들과 바에서 수다를 떨며 방랑하는 자신의 영혼의 흔들림을 응시하고 있다.

 

'단테의 시대에 한 번 이상의 삶을 살 거라는 , 혹은 단 한번도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을 거라는 형벌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을까?'

 

줌파 라히리는 자신의 두 번째 장편 <저지대>를 완성하고 홀연 로마로 떠나 그곳에서 이탈리아어를 배우며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고 있다.

서른 두 살의 나이에 단편집으로 풀리처 상을 수상한 줌파 라히리는 그동안 그녀가 쓴 거의 모든 단편과 장편들은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학 창작 문예과 교재로도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동시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이고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는 세계적인 작가다.

 

 

[나는 이 여정이 좋았다. 내 삶의 나머지를 등 뒤에 남겨둔 채 집을 나섰다. 작품 집필은 생각하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아는 언어들을 잊었다. 매번 작은 도주를 하는 것 같았다. 오직 이탈리아어 하나만 중요한 곳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현실이 펼쳐지는 나의 피난처였다.]

                                                                                            -줌파 라히리

 

새롭게 배운 언어, 새로운 사랑을 하듯 새 언어의 단어와 낱말을 익히고 문법의 뼈대를 세워서 글을 쓰기 시작한 줌파 라히리는 인생의 길을 바꾸기 위해 기쁨을 느끼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한다.

 

[나는 두 얼굴을 가진 내 삶의 학문적 해안을 일종의 연옥이라고 부르고 싶다. 로마는 여전히 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흔들린다. 부서지고, 잘못 되고, 상처 받고, 버려지고, 죽은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나는 연결된 실을 자를 수가 없다.]

                                                                                             -줌파 라히리

 

줌파가 이탈리아어로 쓴 단편들과 에세이들은 여전히 미국 대형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고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고 있지만 평단과 독자들의 평가와 시선은 이전에 영어로 썼을 때와 다르다.

2022년에 완성한 단편집 <로마 이야기>에 수록된 작품 순서는 시기별로 단어와 문장 그리고 서사 구조의 견고함이 엉성하다가 다시 꽉찬 묘사와 서사로 이어지다 툭 끊어져 버린다.

마지막에 수록된 <단테 알리기에리> 단편은 지난 시절에 발표했던 단편에서 구사했던 서사와 묘사가 비춰질 정도로 그녀가 이탈리아어로 쓴 단편 중에 가장 우수하다.

이 작품을 읽은 이탈리아의 한 독자는 아마존 서평에 중학생 1학년의 어휘와 문장을 구사했다는 실망감을 표출했다.

줌파의 글을 여전히 사랑하며 그녀의 신작을 기다리는 수 많은 독자들은 그녀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고 있고 미국의 주요 서평지에도 혹평을 달지는 않는다.

 

 

[그들은 중년의 나이에 스스로 자신의 뿌리를 뽑아 새로운 기준점을 취하기로 한 결정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내 지평 너머의 세계, 내가 회피했던 대담한 발걸음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줌파 라히리의 'p의 파티' 중에서

 

새로운 단편 <로마 이야기>를 발표한 줌파 라히리를 취재한 영국 가디언 기자는 줌파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작가님은 현재 세상에 대한 관심이 없으신거죠.'

'네, 저에 관한 이야기, 제 주변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데 머물러 있습니다.'

'앞으로 사회가 이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가고 있는지 걱정은 하고 계시겠죠?'

 

글을 쓰는 작가가 반드시 시대의 목소리를 대변해서 변화를 울부짖지 않아도 된다.

작가들은 작가들만의 고유한 창작 세계가 있고 그 창작 세계에서 크게 벗어난 모험을 하기 쉽지 않다.

 

단테는 <연옥편> 제 24곡에서 시인 보나준타에게 이런 말을 한다.

 

아!형제여! 이제 알겠소. 공증인과 구이토네 같은 시인들을 가둔 매듭이 이제 내가 듣는 당신의 이 감미롭고 새로운 문체의 시에서 풀리는군요.

이제 당신네들이 날개가 그 불러주는 이의 뒤를 바짝 쫓아

어떻게 날아가는지 분명히 알겠소.

그것은 우리로서는 전혀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스스로 깊이 따지면 누구라도

이 문체와 저 문체의 차이를 보지 못할 거요.

 

시인 보나준타는 단테에게 이렇게 대답 한다.

 

'나는 이제야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었음을 깨달았지만 단테 당신은 당신의 글로 이미 그 장애물을 넘었다오.'

 

태어날 때부터 배운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언어를 배워나가는 과정은 마치 흙에 씨를 뿌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과정만큼 지루할 만큼 길고 결실을 맺기 힘들 정도로 고달프다.

[호수 건너편에 도착했다. 난 문제없이 해냈다. 지금껏 멀리서만 봤던 오두막이 몇 걸음 앞에 보인다. 저 멀리 남편과 내 아이들의 모습이 까마득하다.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호수를 건너자 내가 알던 호숫가는 건너편이 되었다. 이쪽이 저쪽이 된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빠져들려면 기슭을 떠나야 한다. 구명대 없이, 뭍에서 몇 번 젓는지 세지만 말고 말이다.]

-줌파 라히리

 

 

새로운 땅에서 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과 경쟁 하기 위해 나는 매일 새벽 동트기 전에 책상에 앉아 익히고 수집하고 모아 쌓아 놓은 새로운 언어와 씨름했다.

정해진 길이 아닌 길로 걸어가는 자에게 커다란 포부와 결심이 필요하다.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여기가 아닌 저곳에 있다.

그것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든 새로운 환경에서 삶의 터전을 시작하는 것이든 결국엔 변화가 지금 보다 한 단계 더 높이 올라가는 삶의 발판이 된다.

세상에 그대로 멈춰 있거나 정지된 것은 없다.

삼라만상이 변하고 끊임 없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 스스로가 변하지 않는다면 현실에서 부딪치게 되는 장벽을 넘지 못한다.

나는 나를 자극 시키는 것, 가라 앉고 침체되어 있는 상태를 일깨워서 감각의 촉수를 일깨워주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매달린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짧지 않지만,

우리는 삶을 (짧게) 만들며,

우리에게 삶이 부족하지 않지만,

우리는 삶을 허비한다.

...non accipimus brevem vitam sed fecimus

, nec inopes eius sed prodigi sumus.

-세네카

 

아침 마다 세네카의 글을 읽는다.

아니 매일 나는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쓰여진 글을 읽고 쓰고 있다.

 

가장 순수한 강물처럼 강하고 맑은 그는

풍요를 펼치리니, 풍부한 언어로 라티움을 부유하게 하리라.

그는 모든 과잉을 살피고 어떤 조악도 손질하리라.

세심한 손길로 힘을 잃은 것은 모두 버리고

놀이하듯이, 실은 괴로워 몸부림할 때에도, 춤을 추듯이.

이제는 사티로스처럼, 이제는 미개한 키클롭스처럼.

vemens et liquidus puroque simillimus amni

fundet opes Latiumque beabit divite lingua;

luxuriantia compescet, nimis aspera sano

levabit culitu, virtue carentia tollet,

ludentis speciem dabit et torquebitur, ut qui

nunc Satyrum, nunc agrestem Cyclopa movetur.

-호라티우스

라틴어를 암송 하고 쓰는 동안 시간은 마법처럼 멈춘다.

 

 

어떤 날은 호라티우스의 삶의 잠언을 흡수하고 집 밖을 나서고 어떤 날은 세네카의 지혜를 읽고 세상의 차별 앞에서 굴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 순간 새롭게 망각하고 새롭게 배우고 터득하며 살아간다.

망각의 공간에 새로운 단어들이 채워질 때 마다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구글 창을 열고 검색하면 무엇이든 찾을 수 있고 어디든 볼 수 있고 원하는 장소 찾는 곳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면 구글 창을 열고 검색하는 것 만으로 습득할 수 없다.

언어를 터득하려면 엄청난 집중력과 기억력이 요구된다.

그 시간을 견디고 인내하며 학습하는 동안에도 수 만가지 일들, 해야 할 것들이 사방에서 날아오고 맹렬하게 달려 든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무엇에, 어디에 열정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일까?'

 

인생의 길은 직선이 아니다.

새로운 목표도 세워 놓는다고 모두 다 성취할 수 없다.

SNS세상에 갇혀 있는 동안 시간은 멈춰진다.

잠깐 구글 창을 클릭해서 해야 할 일을 하는 동안에도 순식간에 집중력이 무너져서 두 세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그리하여 나는 날마다 눈을 뜨면 더 이상 세상에 존재 하지 않는 이들이 남겨 놓은 문장 속으로 들어간다.

곳곳에 낯선 어휘들이 튀어나오고 그것들을 하나씩 익혀 나가는 동안 나는 그들이 새겨 놓은 지식의 양분을 온 몸으로 흡수한다.

그들은 묻는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

행동했는지...

그리고 말했는지...

그곳에 머무는 동안 나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

날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동안 현실의 걱정과 고민은 잠시 접어둔 채 어떤 것에도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단어들이 존재하고 문장들이 나열된 언어들은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나는 단어의 의미를 유추하고 찾아서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간에 내가 흡수한 지식을 쏟아낸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어떻게 유지 되고 있는지 현재 나의 지적 능력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가늠해보며 날마다 새로운 언어를 읽는 순간에 나는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그리고 전차에 올라타서 그들이 남긴 흔적을 찾아 다닌다.

배우고 읽고 쓰고 사는 동안 나라는 인간이 현재 어디로 가고 있는지 깊이 이해하게 된다.

 

 

모든 것이 변한다.

Omnia vertuntur

현재를 즐겨라

Carpe diem

 

 

f*******d 2023.11.06.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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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야기] 다른 삶을 찾을수록 내가 되었다
"[로마 이야기] 다른 삶을 찾을수록 내가 되었다" 내용보기
<로마 이야기>는 인도계 작가 줌파 라히리가 4년 만에 선보인 신작 소설집이다. 줌파 라히리의 거의 모든 소설과 산문을 읽었기에 이번 신작 소설집을 읽기 전 기대가 매우 컸다. 게다가 줌파 라히리는 영어로 쓴 작품(<축복받은 집>)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후 이제는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며 이탈리아어로 쓴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이기에, 사용하는 언어의 변화가 작품에는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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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야기>는 인도계 작가 줌파 라히리가 4년 만에 선보인 신작 소설집이다. 줌파 라히리의 거의 모든 소설과 산문을 읽었기에 이번 신작 소설집을 읽기 전 기대가 매우 컸다. 게다가 줌파 라히리는 영어로 쓴 작품(<축복받은 집>)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후 이제는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며 이탈리아어로 쓴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이기에, 사용하는 언어의 변화가 작품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작가가 경험하고 관찰한 세계가 더 넓게 연결되고 확장된 만큼 작품이 담고 있는 세계도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졌다. 

 

<로마 이야기>는 총 아홉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의 모든 소설에 저자처럼 다른 나라에 살다가 로마에 온 사람, 이탈리아의 원주민인 백인들과 피부색이 다른 사람이 등장한다. <경계>의 소녀는 로마 외곽에 살면서 부모님을 도와 작은 펜션에서 일한다. 소녀는 원래 로마 도심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외국인을 혐오하는 청년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부상을 입는 바람에 쫓겨나듯 로마 외곽으로 왔다. <재회>의 교수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로마에 왔다가 식당 주인의 딸로 짐작되는 어린 소녀에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모욕을 당한다. <P의 파티>의 남자는 파티에서 만난 외국인 부인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를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밝은 집>의 남자는 난민 신세에서 벗어나 자수성가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 끝에 임대 아파트를 얻지만, 이웃들의 배척과 혐오를 견디다 못해 아내와 아이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낸다. <계단>과 <택배 수취>, <쪽지> 등도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국제도시 로마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외국인, 유색인종에 대한 교묘하고 때로는 노골적인 배제와 차별, 혐오와 폭력을 묘사한다. <단테 알리기에리>는 그런 로마에서 살기를 스스로 택한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여성들에게는 외국인으로 사는 어려움이 (전통적인 가치관을 따르는) 여성으로 사는 어려움보다 견디기 낫다는 걸 보여준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이십여 년 전 읽었던 일본 여성 작가들의 책들이 떠올랐다.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 시오노 나나미의 <이탈리아에서 보내온 편지> 등은 모두 이탈리아에 사는 일본(아시아계) 여성의 삶을 그린다. 하지만 이탈리아에 사는 아시아계 여성 작가인 줌파 라히리가 쓴 이 책과는 다르게 외국인, 유색인종에 대한 배제나 차별의 정서는 느끼지 못했다. 그들이 무감했던 걸까, 줌파 라히리가 그들에 비해 훨씬 더 예민하고 솔직한 걸까. 아니면 그동안 세상이 더 안 좋게 변한 걸까. 생존은 더 어려워지고 혐오는 더 쉬워지는 방향으로. 이런 생각들로 연결해 주고 확장시켜주는 소설과의 만남이 고맙고 기쁘다.

이달의 사락 j****y 2023.11.0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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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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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의 책을 추천받고 읽은 뒤로 주욱 작품들을 사서 읽고 모으고 있습니다. 데뷔 초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시선에 반해 버렸거든요. 이후 저자의 사생활에 변화가 생기고 사는 지역도 이탈리아로 바뀌면서 작품도 많이 바뀌었어요. 이젠 아예 이탈리아어로 작품을 낸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는데, 초반 작품은 조금 거친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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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의 책을 추천받고 읽은 뒤로 주욱 작품들을 사서 읽고 모으고 있습니다.
데뷔 초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시선에 반해 버렸거든요.
이후 저자의 사생활에 변화가 생기고 사는 지역도 이탈리아로 바뀌면서 작품도 많이 바뀌었어요.
이젠 아예 이탈리아어로 작품을 낸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는데, 초반 작품은 조금 거친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로도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잘 드러낼 수 있게 됐구나 느낀 작품이에요.

추천합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y 2023.11.0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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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지만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 : 로마 이야기 - 줌파 라히리
"같지만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 : 로마 이야기 - 줌파 라히리 " 내용보기
줌파 라히리는 영국의 인도계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해 현재는 미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작가가 이민자, 이방인의 정서를 지녔기 때문인지 소설에도 그러한 정서가 진하게 담겨 있다. 2023년에 발표한 소설집 <로마 이야기>가 그렇다. 이 책에는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고 대부분이 전에 살던 곳에서 어쩔 수 없이 떠난 사람, 떠난 끝에 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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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는 영국의 인도계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해 현재는 미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작가가 이민자, 이방인의 정서를 지녔기 때문인지 소설에도 그러한 정서가 진하게 담겨 있다. 2023년에 발표한 소설집 <로마 이야기>가 그렇다. 이 책에는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고 대부분이 전에 살던 곳에서 어쩔 수 없이 떠난 사람, 떠난 끝에 겨우 도착한 곳에 좀처럼 속하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다시 떠날 생각을 하거나 더는 떠날 곳이 없어 괴로워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군가에게는 편안하고 행복한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불행한 공간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가령 <경계>에서 휴가철을 맞아 해변가의 별장으로 놀러 간 백인 가족에게 그 집은 아름다운 추억의 배경이 된 공간이지만, 그 집을 돌보는 이민자 부부의 아들에게는 가족의 생계 수단이자 노동의 장소다. <재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 중 백인인 여성에게 로마는 한없이 다정하고 쾌적한 도시이지만, 피부색이 다른 이민자인 여성에게 로마는 어린아이조차 자신을 모욕하고 그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는 불합리하고 불친절한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 


<P의 파티>의 남자처럼 우연한 계기로 백인 남성이 경험하는 사회와 비백인 여성이 경험하는 사회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흔하지는 않다. <밝은 집>처럼 정당한 이유로 난민 승인을 받고 이주를 허락받은 이민자인데도 주위 이웃들의 크고 작은 차별을 견디다 못해 또다시 망명길에 오르는 경우가 훨씬 더 흔하다. 하나의 계단을 공유하며 살고 있는 이웃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린 <계단>처럼, 인생이 원래 그렇다고 받아들이면 편하겠지만 그럴 수 없다. 현실의 약자, 소수자들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길에서 소년들에게 폭행을 당하거나(<택배 수취>)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협박 쪽지를 받는 식의 일을 겪는다(<쪽지>). 


이 책이 백인과 비백인, 원주민과 이주민 문제를 담고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한쪽이 무조건 나쁘고 한쪽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마지막에 실린 <단테 알레기에리>의 주인공 '나'는 비백인 이민자 가정 출신 여성으로 사회적으로 약자, 소수자에 속하지만 자신이 "갈망"했던 것들을 하나둘 이루어 가면서 결국 사회적 지위 상승에 성공한다. '나'는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마다 단테가 있었다고 말하고 내 눈에도 그건 사실로 보이지만, 단테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던 것들이 학력, 결혼, 직업 같은 (흔히 말하는) 신분 상승 수단이 아니었다고 해도 '나'가 그걸 택했을까. 그렇다 한들 그런 '나'를 비난할 수 있을까. 감동적이면서도 씁쓸한 소설이다.

이달의 사락 j****y 2026.05.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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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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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 4년만의 신작이라하여 설렘으로 읽어내려갔습니다.기존 작품보다 감동은 적었지만 반가운 느낌의 작품이었습니다.서로 다른 국적의 삶을 살아 본 적이 없지만 그 삶을 이해할 수 있을것같았습니다. 단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택배 수취가 가장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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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 4년만의 신작이라하여 설렘으로 읽어내려갔습니다.
기존 작품보다 감동은 적었지만 반가운 느낌의 작품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국적의 삶을 살아 본 적이 없지만 그 삶을 이해할 수 있을것같았습니다. 
단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택배 수취가 가장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l*****1 2024.11.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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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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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야기 너무 재밌어서 하루 만에 다 읽었어요예스이십사에서 구매하면 일단 빠르게 와서 너무 좋은 것 같아요무엇보다 포장도 친환경으로 너무 깔끔하게 오고그리고 배송일자를 정할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아요사고 싶은 책을 집에서 편하게 주문 할 수 있어서 예스이십사에서 자주 구매하게 되네요행복합니다책을 구매하는 이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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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야기 너무 재밌어서 하루 만에 다 읽었어요
예스이십사에서 구매하면 일단 빠르게 와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 포장도 친환경으로 너무 깔끔하게 오고
그리고 배송일자를 정할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사고 싶은 책을 집에서 편하게 주문 할 수 있어서 예스이십사에서 자주 구매하게 되네요
행복합니다
책을 구매하는 이 순간이
j*********2 2024.10.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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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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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야기』는 로마를 배경으로 그곳의 이방인의 삶을 그리는 아홉 건의 단편소설을 묶은 단편집이다. 각각의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그곳의 지역사회에 속하지 못하고 그저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줌파 라히리는 인도계 이민자 2세대로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이탈리아로 이주해 이탈리아어로 작품을 쓴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방인의 삶을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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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이야기』는 로마를 배경으로 그곳의 이방인의 삶을 그리는 아홉 건의 단편소설을 묶은 단편집이다. 각각의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그곳의 지역사회에 속하지 못하고 그저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줌파 라히리는 인도계 이민자 2세대로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이탈리아로 이주해 이탈리아어로 작품을 쓴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방인의 삶을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그릴 수 있는 것 같다.

  "저는 한때 심지가 단단한 사람이었어요. 전 제 인생의 모든 것을 관리할 줄 알았죠. 그런데 요즘 이 나라에서는 제 뜻대로 관리할 수 있는 게 없어요."라고 말하는 <P의 파티> 속 등장인물 L이 말할 때 내 속에 곪아터진 부분을 정확히 콕 짚어내는 것 같았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나는 사람이 아닌 장소와 결혼했다는 이상한 느낌이 든다."는 글귀도. 

  마지막 소설 <단테 알리기에리>의 가장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난다.

"참 엿같은 도시야." 우리 중 한 명이 침묵을 꺠고 말한다.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워. (This city is shit," one of us says, breaking the silence. "But so damn beautiful."

꼭 이 마지막을 향해서 달려온 것만 같다.
 

j******3 2024.01.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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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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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로마를 배경으로 한 아홉 편의 단편 소설이다. 이민 2세, 인종차별, 외국인 노동자,아이를 잃은 부모,이민자의 노년, 결혼이민자 등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가진 로마에서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그리고 어디에도 그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모두에게 이방인이다.  정체성의 시작인 이름을 빼고 저자는 무엇을 보여주려 한걸까.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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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로마를 배경으로 한 아홉 편의 단편 소설이다.

이민 2세, 인종차별, 외국인 노동자,아이를 잃은 부모,이민자의 노년, 결혼이민자 등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가진 로마에서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그리고 어디에도 그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모두에게 이방인이다. 

정체성의 시작인 이름을 빼고 저자는 무엇을 보여주려 한걸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읽게 된 것 같다. 

 

미국 이민자로 살던 작가가 로마에서 거주하면서 이탈리아어로 쓴 산문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가 무척 인상 깊었는데 이 소설도 이탈리아어로 쓰였다고 한다. 그럼 영문판 번역도 작가가 직접 하려나? 영어와 이탈리아어가 능숙한 사람이라면 두 버전을 읽는 느낌이 어떻게 다를지 무척 궁금하다. 

 

나는 한국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고, 한국어 외에 능통한 언어가 없어서 이방인으로 느끼는 감정에는 무지한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지방에서 처음 대학입학을 위해 서울에 올라온 첫날이 떠올랐다.스마트 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을지로입구역에서 택시를 타고 명동성당에 가달라고 했을 때 택시 아저씨는 코너를 돌아 내려주며 요금을 받아 나를 부끄럽고 화나게 했다.나의 사투리 때문에 그랬을거라 생각한 나는 그 후로 사투리를 안 쓰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사건이었지만 내겐 그 일이 서울의 첫인상이 되었고 그 후로 오래 서울시민이란 소속감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반면 서울말이 익숙해진 후로 고향에 내려가 사투리를 쓰지 않았을 때는 그런 배척을 느낀적이 없었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타인을 배척할 수 있는지 얼마나 다양한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할 수 있는지 소설 한 편 한 편 아껴 읽으며 다시 생각해 본다.

이달의 사락 i******z 2023.11.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