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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통한 세계문학 여행이라는 시티픽션 시리즈로 파리 편에 이은 두 번째 읽기이다. 이 런던 편은 네 편의 영국 작가의 단편으로 엮인 작은 소설선집이다. 헨리 제임스는 사망 즈음에 영국으로 귀화한 미국인이니 조금 애매한 분류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의 작품 활동기 대부분이 런던에서의 삶이었으니 그리 부적당하다고만은 할 수 도 없을 게다. 선집은 버지니아 울프의 「큐 가든」으로 시작된다. 런던 근교 왕립식물원인 큐가든을 지나는 군상들의 행동과 대화를 세밀한 시선에 담아내고 있는 단편이다. 이 선집의 마지막 수록작인 헨리 제임스의 「진품」을 읽으면서 어떤 공통된 시선을 느끼게 되는데, 아마 감정 또는 심리의 섬세한 관찰 시선의 강렬함 같은 것이었다. 물론 관찰이 소설의 한 특성이기는 하지만 그 시선 자체가 작품 표면에 보란 듯 드러나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고 할까?
■ 헨리 제임스 (Henry James)
나는 헨리 제임스의 소설이 이렇게 기지 넘치는 재미를 품고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보르헤스가 편집한 ‘바벨의 도서관’시리즈로 간행된 『친구 중의 친구』나, 1890년대인 그의 중기(中期) 작품으로 분류되는 『나사의 회전』과 같은 유령소설로 제한된 내 독서가 선입견을 가지게 했던 듯하다. 수록작인 「진품(The real thing)」은 초상화를 지향하지만 벌이를 위해 소설 삽화 그리는 일을 병행하는 화가의 관점으로 이루어져 있는 작품이다. 어느 날 그를 찾아온 두 남녀를 맞이하면서 그들의 인물을 품평하는데, “콧수염이나 외투를 직업적 관점에서 눈여겨본 내게 그는 유명인사로 여겨졌을 법도 하다. [...] 유명인사가 그렇게 두드러지게 멋진 경우가 있다면 말이다.” 라며, 역설적 모습을 한 인물을 나름의 경험으로 축적된 실감의 구절처럼, 화가인 작중 화자는 타인의 작은 표정과 몸동작, 어조에 이르기까지 면밀한 관찰을 통해 자기감정과 마음을 교류하며 반응한다.
화자는 이러한 세밀한 관찰을 통해 두 사람이 초상화를 의뢰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아니라 삽화의 모델을 통해 돈벌이를 하려온 이들임을 바로 간파한다. “회화적 관점에서 나는 즉각 그들을 간파해버렸다.”는 그의 진술처럼 그들이 어떤 유형인지 파악하고, 이미 어떻게 다룰지 결정해버린다. 화가는 두 사람이 퇴역한 모나크 소령과 그의 아내임을 설명받지만, 삽화의 모델로 전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그들의 겸허한 소개와, 적극적이지만 완곡하게 자신들의 장점을 말할 때, 화가는 변화하는 관찰 결과를 통해 자기 작업과의 연결성을 검토한다. 귀족적 분위기를 갖춘 맵씨있는 사람들이지만 그에게는 이미 미스 첨이라는 타고난 위트와 변덕스러운 감수성과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다채로운 인상의 모델로 변신할 줄 아는 고용인이 있다.
모나크 부인은 미스 첨의 낮은 신분이 귀부인역의 모델이라는 것에 당혹해하며, 자신은 귀부인에 더 적합한 모델임을 강조한다. “진품 말입니다. 진짜 숙녀나 신사 말이죠.”, 그들은 생계를 위한 벌이가 필요한 궁핍의 한계에 몰린 이들이었다. 화가는 그들의 절실함에 그 귀족적 형체의 소용을 고려하여 삽화 모델로 당분간 함께하기로 결정한다. 그럼에도 화가는 이러한 분위기가 작업의 실용적 국면과 어울리지 않는 “예술”적 효과가 발생할까 걱정한다.
모나크 부부와 화가, 그리고 조연격인 신분이 낮은 남녀 모델이 등장하면서, 모나크 부부는 삽화모델로 부적절한, 나아가 화가의 회화능력을 훼손시키는 양상으로 이어진다. 화가는 모나크 부부가 아닌 모델들에게 더욱 적합한 삽화모델로서의 능력에 매혹되고, 모나크 부부를 멀리하려 하지만 생계를 위한 직업을 찾을 수 없는 이들은 화가의 작업장을 맴돌며 떠나지 못한다. 그들, 자신들을 진품이라 생각하는 그들은 점차 가짜인 비천한 이들과 모델로서의 신분의 역전을 체감한다.
이 소설은 이야기의 줄거리를 이끌고 있는 주도면밀한 관찰에 따른 화가의 심리적 움직임을 따라가며 읽는 재미가 아주 그만 끝내주는 소설이다. 진짜와 가짜, 결코 절대적 가치기준이 아닌 이 개념어가 파편이 되어 흩어진다. 이 작품은 그가 사회적 소설을 쓰며 작가로서의 명성이 주춤하자 전환을 위해 희곡작품에 매진할 때에 사이사이 남긴 몇몇 소설 작품의 하나이다. 때문에 연극적 요소가 반영되어 그 실감성이 여타 작품에 비해 두드러지는 것이 특색인 듯하다. 신분의 격이 삶의 수단을 저해하는 그 모순으로 혼란의 격변을 겪는 시대의 한 초상일 것이다. 제법 기억에 남는 작품 일 것 같다.
■ 버지니아 울프 (Virginia Woolf)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 「유품(The Legacy)」 또한 소설의 진행에 따라, 고위 정치관료인 길버트 클랜던이 차도에 내리다 사망한 아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의혹과 의심에서, 배신, 그 파국의 감정으로 치닫는 가히 통속적 재미를 성취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죽은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며 아내가 주기를 바랐던 물품들을 모두 전달하고 마지막 유품인 브로치를 아내의 비서였던 시시밀러에게 전달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길버트는 아내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가득안고 추억에 잠겨 일기를 읽는다. 남편인 자신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배려의 마음들이 가득 쓰여져 있는 일기를 읽으며,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의 위로를 느낀다.
그러다 자신은 알지 못하는 이니셜로만 지칭된 인물이 등장하다 그 빈도가 급작스레 늘어난 것을 느끼며, 알지 못하는 인물에 대한 시기와 의혹이 증폭된다. 이윽고 이니셜은 사라지고 ‘그’라는 호칭으로 바뀐 인물이 동일 인물임으로 굳어지고, 그와 아내의 만남과 남자의 격렬한 동행의 요구가 있었음과 마침내 이를 거절하는 아내의 분열적 마음을 읽는다. 남자가 자살했음을 발견하고, 아내의 죽음은 바로 이 죽음의 동반 행위였음을 알게 된다. 감정의 급진적 전환을 일으키는 일기의 내용과 병행하여 이야기의 진행 속도 또한 급격히 빨라지는 데, 이러한 속도에 휘말려드는 독자의 감성또한 아찔할 정도이다.
울프의 또 하나의 단편인 「큐 가든(Kew Gardens)」은 작가를 모르고 읽어도 버지니아 울프가 절로 떠오를 듯한 작품이다. 큐 가든을 스치듯 지나가는 군상들의 발걸음과 꽃나무에 기어오르는 달팽이의 이동이 대비되며, 그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전경이 우울한 인상에 젖어들어 들려온다. 허무와 부질없음이 팽배한 그 어떤 의식들만이.
■ 캐서린 맨스필드 (Katherine Mansfield)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 파티(The Garden Party)」는 어떤 세계문학 단편선집에든 감초처럼 수록되어있는 작품이다. 부유한 중산층 가족의 가든파티 준비와 파티의 즐거움과 대비되어 이들의 저택과 멀지 않는 골목길 입구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빈곤층 거주 구역에서의 한 젊은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반응들이 내용을 채우고 있다. 셰리든 집안의 딸 중 한 명인 로라는 가든파티를 위한 천막 일꾼들의 설치를 지시하기 위해 정원에 나선다. “그녀는 일꾼들은 저다지도 멋질까.”라 생각하며, 매번 춤 상대가 되는 바보 같은 남자애들이 아니라 이들 일꾼들과 친구가 되면 왜 안 되는 것인지, “말도 안 되는 계급적 구분”의 터무니없음을, 자신만큼은 어떤 차이도 느낀 바 없음을 자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꼭 일꾼 처녀가 된 기분”으로 우쭐한 기분으로 즐겁다.
그런데 그날 동네 어귀의 청년이 마차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나 집 안의 어느 누구도 그 죽음에 대해 어떤 연민도 지니지 않는 듯하다. 로라는 “대문 밖에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파티를 열어요.”라며 파티가 이웃의 죽음에 대한 무례함으로 느껴져 당일의 파티 행사 취소를 요구하지만, 어머니를 비롯한 언니들은 작고 초라한 저 빈곤의 거처들이 이곳에 들어 설 권리가 없었다는 듯, “감상적으로 굴어봐야 막노동꾼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잖니.”라며, 파티의 취소를 용납하지 않는다. 파티는 예정대로 열리고 가족들과 초대자들은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아마 로라에게 선물된 우아한 ‘검정색 모자’는 중산층의 이러한 이기적 즐거움과 빈곤층의 불행을 대비하는 수치와 과시의 경계에 놓여, 그녀의 곤혹스러운 감정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파티에서 남은 음식을 바구니에 담아 문상아닌 문상을 가게 되었을 때, 그녀가 처한 상황을 대신 표현한다. 계급의식에 대한 비난과 인생이란 것의 그 설명할 수 없는 비애가 낮게 흐르며 작품의 커튼은 내려진다. 발랄하고 경쾌한 분위기를 시종 잃지 않으면서, 산다는 것에 대한 그 어처구니없음의 실체, 가진 자의 생각없는 무례한 동정 등이 당대 영국인들의 인식을 넌지시 고발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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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도(島) '떠나'지(地) 못한 사람들에 관한 앎(知)을 그리다(圖) <시티 픽션 : 더블린>을 읽고
‘시티 픽션 시리즈’ 출간 소식을 접하자마자 출판사에서 선정한 도시 목록을 훑어 내려갔다. 파리, 뉴욕, 런던, 도쿄 등 어느 도시 하나 빠질 수 없지, 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마지막 도시를 보는 순간에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더.블.린. 지명 너머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마흔 살이 지나서야 뒤늦게 하나씩 재발견하고 있어서였다. 아일랜드의 수도로서 아픈 역사의 현장이자 『율리시스』라는 문학사적으로든 분량으로든 거대한 벽돌책을 남긴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고향으로 알고 있다.
“다정하고 더러운 더블린에 발을 딛는 순간 훨씬 기분이 좋아졌어······(51쪽)”
엉뚱한 상상을 접고 다시 작품 속으로 눈길을 옮기려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바로 「구름 한점」의 주인공 꼬마 챈들러의 친구이자 그보다 출신과 학력이 열등함에도 8년 전 더블린을 떠나 영국 언론계에서 보란 듯이 성공한 갤러허가 한 말이다. 다정한데 더럽다니, 양가적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이 표현이야말로 다른 작품들과 그 결을 같이하며 20세기 초 더블린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한 공간에서 사는 더블린 사람들 가운데 “성공하고 싶으면 떠나야 했다. 더블린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47쪽)”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꼬마 챈들러의 말을 빌리자면 ‘신념과 체념과 소박한 기쁨이 반복됨으로써 정련된 비애(48쪽)’를 품고 살았던 것이다. 여기서 갤러허처럼 더블린을 떠난 자와 꼬마 챈들러처럼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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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은 짧아 읽어 독자여 <시티 픽션 : 도쿄>를 읽고
<시티 픽션 : 도쿄>는 『인간 실격』으로 잘 알려진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소설들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소설 네 편의 화자는 모두 여성이다. 여성의 시선으로 누군가의 하루 혹은 인생의 한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동안 알고 있던 작가 특유의 우울감, 좌절감보다는 유쾌함을 넘어 발랄함까지 느끼게 한다는 점이 퍽 흥미롭다. 『인간 실격』만 읽은 독자에게는 작가의 재발견이라고 할 만큼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지도 모르겠다. 작품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소설 속 분위기의 변화뿐 아니라, 무엇보다 남성 작가가 어떻게 여성의 심리를 이토록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는지 확인해보자. 「여학생」은 어느 10대 여학생이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 하루 동안 일어난 거의 모든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을 읽는 내내 마치 소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하기도 하고, 요즘 유행하는 브이로그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인물과 사물 그리고 자연에 대한 감상을 좇아가다 보면 사춘기 소녀만의 감수성과 더불어 재치있는 관찰력이 돋보인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의외성이 귀엽기도 하고, 자신은 물론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들로 자기 머릿속을 채우는 '나'가 애늙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면서 바라본 ‘눈’은 크기만 하지 매력 없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가도,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상을 차리기 전에 다시 보니 ‘아름다운 저녁 하늘을 오랫동안 쳐다봐서 이렇게 예쁜 눈’이 된 건지 되묻는다. 그의 말처럼 정말 “여자의 좋고 싫음은 너무나도 엉터리인 것 같다(21쪽).” 데카르트의 명언을 몸소 실천에 옮기기라도 하듯 연신 갈팡질팡함에도 어느 순간에는 삶에 대한 통찰마저 느껴지게 하는 ‘나’의 생각들로 미루어 짐작해본다. 사춘기에 접어든 그에게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현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두 해 전 겪은 아빠의 ‘죽음’이 결정적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아빠의 부재로 남겨진 엄마에게 착한 딸이 되고, 주위 사람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행동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아서 괴롭고 외롭고 슬프다고 토로하는 '나'. 이렇게 혼란스러운 자신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성장하는 육체에 대해 당혹스럽게 여기는 그를 보면서 불현듯 다자이 오사무가 왜 이 소설을 썼을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작가는 자전적 소설이기도 한 『인간 실격』의 요조처럼 부끄러운 인생을 살았기에, 비록 몸은 성숙한 어른이 되었지만 삶을 대하는 마음과 정신은 미성숙하여 여전히 그 답을 찾지 못하였기에 '여학생'의 입을 빌려 독자에게 되묻고자 한 것은 아닐까? 혹은 사춘기 시절에 작가 나름의 답은 찾았지만 살아가면서 그것을 놓치거나 잊어버린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어른의 쓴 맛을 보고부터는 애써 그때 깨달은 것들을 외면하고 부정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아무튼, 늦지 않게 다시 「여학생」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한 얘기를 나눠봐야 할 이유는 알게 된 듯하다.
「아무도 모른다」는 도쿄생활자로 마흔한 살이 된 야스이 부인이 스물세 살을 맞이한 해의 어느 봄날 밤에 일어난,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비밀스러운 사건에 관해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의 말처럼 아무도 모르는, 현재의 독자에게만 털어놓는 ‘공공연한’ 비밀인 셈이다. 지난 이십 년 동안 크고 작은 변화의 물결을 맞이한 도쿄에서 물고기처럼 살아온 그는 학창시절의 친구인 세라카와의 추억을 건져 올린다. 서로 다른 성격, 가치관, 문학 감수성을 지닌 두 사람의 추억 속 한 편에 세리카와의 오빠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오래 전 그날에 야스이 부인에게 충동적인 행동을 유발시킨 장본인으로서 사건의 그날 밤, 여동생이 가출했다면서 혹시 행방을 아는지 확인하기 위해 집 앞에 온 것이다. 야스이 부인은 짐짓 아는 바가 없다며 그를 떠나보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에 홀린 듯 그를 찾아 밖으로 달려 나간다. 거리를 헤매며 마음 속으로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겠노라 되뇌지만 끝내 그를 다시 만나지 못한다. 야스이 부인은 본인도 왜 그랬는지, 무엇이 자신을 그렇게 충동적으로 만들었는지 세월이 흘러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쩌면 한밤의 꿈이었을지도 모르겠다며 독자에게 다시 한 번 비밀을 지켜달라고 당부한다. 만약에 스물세 살이었던 해의 3월말 밤 10시(는 정확히 기억하면서 그날의 감정은 이해할 수 없다니!)에 그와 재회했다면 두 사람은 지금과 다른 삶을 살았을까? 인간이 이성과 감성 사이를 수없이 오가는 존재임을 모르지 않기에 어느 정도 공감이 들다가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이 독자의 머릿속을 스쳐 지난다. 세라카와의 오빠는 지금도 야스이 부인의 집 근처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주문한 빵을 배달하고 있다.
「눈 오는 밤 이야기」는 두 눈, 즉 ‘눈(雪)’과 ‘눈(目)’을 소재로 하여 도쿄 외곽에 사는 한지붕 세식구가 풍족하진 않지만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일상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무명의 소설가 오빠, 새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슌코가 어느 눈 오는 밤에 집으로 오다가 숙모로부터 받은 오징어를 잃어버리게 된다. 곧 조카를 출산할 새언니의 입이 심심하지 않도록 선물로 주려고 했던 오징어를 찾기 위해 슌코는 가던 길을 되돌아간다.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눈이 내리고 예전에 오빠가 들려준 얘기가 떠오른다. “사람의 눈동자는 풍경을 담을 수 있다고 언젠가 오빠가 가르쳐주었어요. 잠시 동안 전구를 응시한 다음 눈을 감으면 눈꺼풀 속에 전구가 똑똑히 보일 거야. 그게 바로 증거야. (105~106쪽)” 그래서 슌코는 오징어 찾기는 그만두고, 새언니에게 전해줄 아름다운 경치를 두 눈 가득히 담아 집으로 돌아온다. 새언니에게 그 사정을 전하는 가운데 짓궂은 오빠가 끼어들며 슌코보다 오래 살아서 깨끗한 것을 더 많이 보아온 자신의 눈이 더 낫지 않겠냐고 묻는다. 슌코와 새언니의 기발한 응답에 둘은 웃고, 오빠는 시무룩해져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소설가다운 오빠의 상상력 못지않게 다른 두사람의 대거리도 한가족답다는 생각과 함께, 세 사람에게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미를 맡은 건 독자뿐일까?
「화폐」의 화자는 사람이 아닌 사물, 즉 백엔짜리 지폐 77581호이다. 작가가 단어에 성별을 부여하는 외국어의 특성에 착안하여 일본어인 화폐를 여성명사로 가정하였기에 그 또한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독자의 어린 시절에 지폐에 대한 인상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진다. 구겨진 데 하나없이 빳빳한 것과 닳고 헤져서 아무렇게나 꼬깃꼬깃 접어서 주머니에 넣어 다니던 것. 전자는 명절에 어른들에게 받는 돈이고, 후자는 동네 문방구나 슈퍼마켓에서 거슬러 받은 돈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도쿄의 한 은행에서 새 돈으로 태어난 77851호 역시 헌 돈이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젊은 목수의 손을 잡고 처음 은행 밖으로 나와서 그의 집에서 신주 모셔지듯 애지중지 여겨진다. 하지만 그날밤 목수 부부의 싸움이 발발하고 다음날 목수의 아내에 의해 전당포에 맡겨진다. 그 후 그는 많은 사람들, 대부분 암거래상들의 손을 타며 온몸에 잡힌 주름만큼이나 우여곡절을 겪는다. 전쟁통에 한 군인 아저씨의 호주머니 속에서 지내며 염세주의에 빠져 있던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군인과 술 시중을 드는 여인 그리고 여인의 아기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을 지켜 보면서 그는 인생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자문하게 된다. 문득 만약에 77581호가 독자의 지갑 속 아니, 스마트폰 속 어플에 입력된 디지털 숫자를 본다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이라는 동류가 아닌 지폐라는 사물을 통해 인간 세상을 바라본다는 설정이 '참신'하지만, 누가 들여다보든 세태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어서 참 신맛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티 픽션 : 도쿄>에 실린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은 짧기에 일독해보시길 바란다, 독자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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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런던에서 다시 만나 <시티 픽션 : 런던>을 읽고
‘큐 가든’은 영국 왕립 식물원이라고 한다. 책은 칠월의 어느 날, 그곳에서 잠시 혹은 오래도록 머문 존재들이 들려주는 짧고도 긴 순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면 화자는 누구일까? 독자의 상상에 기대어 ‘빛’이라고 말하고 싶다. 큐 가든을 가득 채운 식물과 곤충 그리고 사람들 모두에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고루 자신을 나눠 비춤으로써 자연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어떠한 자연물이라도 서슴없이 다가가 그들의 고유한 생각과 행동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
『자기만의 방』에서 「큐 가든」으로 나온 버지니아 울프가 사람을 포함한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짧은 분량이지만 큰 여운과 영감을 전하는 소설, 아니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낸 것처럼 느껴진다. 카메라 렌즈를 여름날의 정원 전체로 줌아웃하다가 식물, 곤충, 사람을 번갈아 줌아웃한다. 그러면서 각자의 겉을 순간포착하기도 하고, 저마다의 속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부, 젊은 이와 나이든 이, 또래 친구들이 정원을 산책하며 각기 다른 시선으로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인식하는 모습을 기막히게 묘사해낸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느리지만 꿋꿋하게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달팽이'를 보면서 어쩌면 이 소설에서 '빛'과 함께 무언(無言)의 화자 혹은 묵언(默言) 수행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말 대신 몸으로 이렇게 외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면서.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자 자연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는다면 지금 이순간을 조금이나마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이번에 처음 참여한 「가든 파티」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소설가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소설이다. 버지니아 울프와 동시대 작가로서 단 한 작품만으로 예단할 순 없겠으나 문체와 세계관이 닮아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제목만 보고 몇 페이지를 넘기면서 날씨 좋은 날 정원에 모여 흥겹게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같다는 추측이 들어맞는 것에 기뻐하며 가든 파티를 준비하는 셰리든가 사람들과 일꾼들의 분주한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런데 셰리든가의 막내딸 로라와 독자의 기대를 180도 뒤집어 놓은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저택 근처에 자리한 작은 오두막촌에서 살던 한 남자가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빛으로 가득하던 정원이 한순간 어두워지듯 그늘진 로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셰리든 집안 사람들은 그래도 파티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어찌 이리도 공감력이 떨어질까 싶다가도 당대 계급문화를 감안하면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 또한 오두막촌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셰리든 저택의 굴뚝마다 뿜어나오는 휨 없이 곧장 치솟는 거대한 은빛 구름 줄기와는 너무나 다른, 누더기 같은 작은 연기 조각들(72쪽)'이라고 표현하며 계급간 빈부격차를 여실히 드러낸다. 로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타고난 계급이 높든 낮든, 쌓아놓은 부가 많든 적든 언제부턴가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사회 질서를 당연시하거나 체념하며 저마다의 삶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른들의 눈에는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로 보일지 모르나, 로라가 갖고 있는 타인에 대한 연민과 배려의 마음은 시대를 초월한 삶의 태도 가운데 하나임을 부정할 수 없다. 아마도 캐서린 맨스필드 역시 이 점을 잘 알기에 소설을 통해 시대적 모순을 지적하고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더불어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아직 너무 어려서 뭐라고 콕 찝어 설명할 수 없지만, '삶'에는 단맛 말고도 쓴맛과 같이 다른 맛도 있음을 '죽음'에게서 배운 로라, 그가 죽은 이의 오두막집에 남겨진 가족들에게 가든 파티에서 남은 음식을 전달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긴 한 마디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인생이란 게,(90쪽)" 버지니아 울프가 쓴 「유품」은 「큐 가든」과는 전혀 다른 형식으로 쓰여진 단편소설이다. 일종의 추리소설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와 사건의 전개가 탁월하다. 비밀스러운 사정을 품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앤절라는 주위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유품을 남긴다. 그의 남편이자 정치가인 길버트의 손에는 아내가 쓴 여러 권의 일기장이 놓여 있다. 왜 자신에게는 일기를 남겼는지 궁금한 마음을 안고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기록을 하나하나 읽으며 호우시절을 회상하는 일은 길버트로 하여금 묘한 쾌감을 선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아내를 잃은 슬픔은 희미해져가고 아내와 BM이라는 이니셜로 쓰여진 남성에 대한 의심과 질투심만 커진다. 점점 타들어 가는 길버트의 속마음은 모른척 해두고, 도대체 두 사람은 어떤 비밀을 공유하고 숨겨둔 것인지 독자의 호기심도 덩달아 고조된다. 사건의 배경과 설정을 더듬어 보면 당시 영국의 사회상을 덤으로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요소들이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의 특성상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더이상의 언급은 자제하겠다. 버지니아 울프가 현재의 독자들에게 남긴 「유품」의 문학적 흥미와 의미를 더듬어보는 일, 이제 나와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 「진품」이라는 제목을 마주하면서 「유품」과 같은 추리소설이 아닐까 예상했으나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헨리 제임스의 작품들은 제목만 알고 있던 독자는 기꺼운 마음으로 소설 속 주인공의 화실을 찾았다. "어떤 신사와 숙녀께서 오셨는데요, 선생님.(93쪽)" (저도 왔어요.) 위대한 초상화가가 꿈이지만 밥벌이를 위해 삽화를 그리는 삶을 살던 그에게 전직 군인 출신인 모나크 부부가 찾아온다. 빼어난 용모로 점잖게 삽화의 모델로 써달라고 청하는 두사람을 뿌리치지 못하고 받아들인 화가 역시 시종일관 천박하게 굴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려 노력하는 그들에게서 모델로서의 쓸모를 찾으려 애쓴다. "진품 말입니다. 진짜 신사나 숙녀 말이죠.(115쪽)" 모나크 부부의 조용한 외침은 화가가 고용한 다른 모델인 미스 첨, 오론테는 모조품이며 서로의 품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선언과도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의 눈에는 런던 빈민가 출신에 주근깨투성이지만 다양한 역할을 자유자재로 소화해낼 수 있는 미스 첨, 모델과 하인의 자질을 동시에 갖추고 포즈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이탈리아 청년 오론테가 더 진짜스럽게 보인다. 유명 소설가의 전집에 삽화를 그리는 장기 계약을 따내야하는 상황 속에서 화가와 모나크 부부는 동상이몽의 관계를 한동안 이어나간다. 희망고문과도 같은 시간의 무게가 점점 ‘진품이 가짜보다 훨씬 덜 중요해질 수 있는 괴팍하고도 잔인한 법칙 앞에서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굶주리기를 원치는 않았(159쪽)’던 모나크 부부의 어깨를 짓누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독자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완벽한 외형을 가진 것과 내실이 꽉 찬 것 중 어느 게 진짜일까? 이보다 앞서 과연 진품이란 무엇이며, 물건이 아닌 사람에게 진짜란 잣대를 적용할 수 있는가? 제목부터 내용까지 읽는 내내 의문부호가 떠나지 않게 만드는 '진짜' 작품을 다른 독자들이 어떻게 감별할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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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사람들 <시티 픽션 세트>를 읽고
독자들은 최소한 한 번은 시도한다. 세계문학사에 고유한 발자취를 남긴 소설가들의 이야기, 이른바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을 일독하는 일을. 이번에 나온 ‘시티 픽션 시리즈’는 각국의 여러 도시를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들을 한데 모아 엮은 것으로, 그동안 고전 읽기를 망설인 독자라면 소설 속 도시를 여행하는 마음으로 한결 가볍게 고전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출판사에서 선정한 도시는 파리, 뉴욕, 런던, 도쿄, 더블린인데, 아시아의 다른 도시가 추가되거나 아프리카에 속한 도시도 포함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독자로서의 아쉬움과 기대를 잠시나마 가져본다.
파리, 기 드 모파상, 「밤 : 악몽」
독자도 잘 모르겠다. 이 짧은 소설을 읽고 난 후의 감상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일독(一讀)은, 한밤에 두 눈으로 밤과 악몽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글자들을 좇았다. 읽다가 여러 차례 멈칫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재독(再讀)은, 목을 가다듬은 뒤 연극에서 배우가 독백하는 마음을 떠올리며 소리 내어 읽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이 소설의 숨겨진 매력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밤을 온몸으로 감각하면서 낮보다 밤에 열광하는 주인공, 그를 따라 밤길인지 꿈길인지 모를 공간을 계속 걸었다. 개선문, 바스티유 광장, 샤토도 광장, 몽마르트흐 언덕, 크레디 리오네 은행, 증권거래소, 중앙시장 등 지금껏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19세기 파리의 거리를 상상하면서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토록 열렬하게 밤을 예찬한 그가 점점 어둠을 마주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한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의 감정 변화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묘사된다. 애타게 밤을 기다리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더이상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밤을 어서 빨리 깨워줄 아침이 밝기만을 바란다. "여보게 몇신가?(16쪽)"라는 그의 물음에 시계가 없는 넝마주이는 그저 투덜거릴 뿐이고, 길가의 가스등 또한 꺼져 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곧 그의 시계마저 작동을 멈춰 버리자 독자도 잠시 책을 덮고 휴대전화를 켜 몇 시인지 확인한다. 책 밖은 자정이 넘었고, 책 속의 화자는 한새벽을 향하고 있었으리라. 자신을 괴롭히는 질병의 이름을 알고 나면 환자가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듯 그가 정확한 시간만이라도 알았다면 조금은 덜 불안하지 않았을까. 마침내 그가 원래부터 목적지로 정한 곳이었을지도 모를 센강에 다다른다. 잠든 파리와 더불어 모든 게 멈춰버린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그가 강물에 발을 담그는 장면에서 독자는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열린 결말이라 쓰고 저마다의 해석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밤: 악몽」은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이 쓴 작품이다. 뭇사람들에 따르면 그가 말년에 신경 쇠약을 심하게 앓아서 몹시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주인공과 밤마다 꾸는 악몽에서 깨어나기 위해 혹은 고통의 연속인 삶을 스스로 마무리하기 위해 몸부림쳤을 작가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하다. 밤산책을 나서며 그가 남긴 “누구나 격렬하게 사랑하는 대상에 의해 결국 죽임을 당하는 법(11쪽)”이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필경사 바틀비」는 독자에게 무척 흥미로운 소설이다. 2019년 가을 결성된 사내 책모임(북소리둥둥)의 일원인 P군의 소개로 처음 만난 후, 모임 안에서 그를 ‘박틀비’라 부르고, 모임 일정이나 식사 메뉴 등을 선택하는 순간이 오면 "I would prefer not to.(하지 않는 쪽을 선호합니다.)"라는 농담을 유행시켰기 때문이다. 아울러 글씨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뜻하는 '필경사(筆耕士)'라는 낯선 단어와 조우하고, 허먼 멜빌의 대표작이 『모비딕』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까지 일깨워주었다. 책은 미국 월 가에 위치한 법률 사무소에서 필경사로 고용된 바틀비와 고용주이자 화자인 '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런던, 버지니아 울프, 「큐 가든」
‘큐 가든’은 영국 왕립 식물원이라고 한다. 책은 칠월의 어느 날, 그곳에서 잠시 혹은 오래도록 머문 존재들이 들려주는 짧고도 긴 순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면 화자는 누구일까? 독자의 상상에 기대어 ‘빛’이라고 말하고 싶다. 큐 가든을 가득 채운 식물과 곤충 그리고 사람들 모두에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고루 자신을 나눠 비춤으로써 자연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어떠한 자연물이라도 서슴없이 다가가 그들의 고유한 생각과 행동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
『자기만의 방』에서 「큐 가든」으로 나온 버지니아 울프가 사람을 포함한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짧은 분량이지만 큰 여운과 영감을 전하는 소설, 아니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낸 것처럼 느껴진다. 카메라 렌즈를 여름날의 정원 전체로 줌아웃하다가 식물, 곤충, 사람을 번갈아 줌아웃한다. 그러면서 각자의 겉을 순간포착하기도 하고, 저마다의 속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부, 젊은 이와 나이든 이, 또래 친구들이 정원을 산책하며 각기 다른 시선으로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인식하는 모습을 기막히게 묘사해낸 것이다.
도쿄, 다자이 오사무, 「여학생」
「여학생」은 어느 10대 여학생이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 하루 동안 일어난 거의 모든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을 읽는 내내 마치 소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하기도 하고, 요즘 유행하는 브이로그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인물과 사물 그리고 자연에 대한 감상을 좇아가다 보면 사춘기 소녀만의 감수성과 더불어 재치있는 관찰력이 돋보인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의외성이 귀엽기도 하고, 자신은 물론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들로 자기 머릿속을 채우는 '나'가 애늙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떠나'도(島) '떠나'지(地) 못한 사람들에 관한 앎(知)을 그리다(圖)] 中
감자의 쓸모, 다시 말해 간식이 아닌 주식으로서 다양한 영양소와 포만감을 제공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점에 착안해본다. 감자를 대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구상하고 써 내려갔을 제임스 조이스(는 물론 이러한 접근법 혹은 해석을 못마땅하게 여기겠지만)가 상상된다. 작가 자신만의 문체와 기법으로 인물과 배경을 묘사하고 그들의 말과 생각 그리고 행동을 통해 20세기 초 더블린과 더블린 사람들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엉뚱한 상상을 접고 다시 작품 속으로 눈길을 옮기려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바로 「구름 한점」의 주인공 꼬마 챈들러의 친구이자 그보다 출신과 학력이 열등함에도 8년 전 더블린을 떠나 영국 언론계에서 보란 듯이 성공한 갤러허가 한 말이다. 다정한데 더럽다니, 양가적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이 표현이야말로 다른 작품들과 그 결을 같이하며 20세기 초 더블린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한 공간에서 사는 더블린 사람들 가운데 “성공하고 싶으면 떠나야 했다. 더블린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47쪽)”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꼬마 챈들러의 말을 빌리자면 ‘신념과 체념과 소박한 기쁨이 반복됨으로써 정련된 비애(48쪽)’를 품고 살았던 것이다. 여기서 갤러허처럼 더블린을 떠난 자와 꼬마 챈들러처럼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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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축제인 파리의 이면을 엿보다 <시티 픽션 : 파리>를 읽고
그토록 열렬하게 밤을 예찬한 그가 점점 어둠을 마주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한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의 감정 변화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묘사된다. 애타게 밤을 기다리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더이상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밤을 어서 빨리 깨워줄 아침이 밝기만을 바란다. "여보게 몇신가?(16쪽)"라는 그의 물음에 시계가 없는 넝마주이는 그저 투덜거릴 뿐이고, 길가의 가스등 또한 꺼져 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곧 그의 시계마저 작동을 멈춰 버리자 독자도 잠시 책을 덮고 휴대전화를 켜 몇 시인지 확인한다. 책 밖은 자정이 넘었고, 책 속의 화자는 한새벽을 향하고 있었으리라. 자신을 괴롭히는 질병의 이름을 알고 나면 환자가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듯 그가 정확한 시간만이라도 알았다면 조금은 덜 불안하지 않았을까. 마침내 그가 원래부터 목적지로 정한 곳이었을지도 모를 센강에 다다른다. 잠든 파리와 더불어 모든 게 멈춰버린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그가 강물에 발을 담그는 장면에서 독자는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열린 결말이라 쓰고 저마다의 해석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밤: 악몽」은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이 쓴 작품이다. 뭇사람들에 따르면 그가 말년에 신경 쇠약을 심하게 앓아서 몹시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주인공과 밤마다 꾸는 악몽에서 깨어나기 위해 혹은 고통의 연속인 삶을 스스로 마무리하기 위해 몸부림쳤을 작가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하다. 밤산책을 나서며 그가 남긴 “누구나 격렬하게 사랑하는 대상에 의해 결국 죽임을 당하는 법(11쪽)”이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는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드니 디드로(1713~1784)가 쓴 소설이 아니, 소설이라고 하자. 독자가 구태여 부제를 붙이자면 ‘프랑스남녀상열지사(法國男女相悅之詞)’라고 말하고 싶다. 결코 조선의 학자들이 고려가요를 낮춰 부른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님을 밝혀둔다. 소설은 두 남성의 만담(漫談) 형식을 빌려 두 쌍의 남녀가 겪은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타니에'와 '레메르', '가르데유'와 '라 쇼'는 각각 착하고 정숙하며 선량하고 성실하거나 그 반대의 성향을 가진 인물들이다. 그들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을 통해 당시 프랑스 사람들의 연애관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격식과 타인의 시선을 중요하게 여겼던 시대를 반영하는 묘사가 주를 이룬다. 특히 마케팅 용어로 잘 알려진 ‘디드로 효과(Diderot Effect)’를 소설 속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퍽 흥미롭다. ‘어떤 물건을 구입한 후 그것과 어울리는 다른 것들을 계속 구매하는 현상’을 뜻하는 말로, 지인에게서 실내복을 선물로 받은 디드로가 책상, 의자 등 다른 물건들을 사게 된 일화를 바탕으로 한다. 만일 사람에 대한 매력지수를 매길 수 있다면 지성, 외모, 경제력, 대인관계 등 다양한 요소가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물론 현실을 사는 독자 역시 애정과 애증의 경계를 넘어, 삶을 통틀어 갖게 되는 온갖 욕망과 욕구들이 디드로 효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소설의 말미에 화자는 독자를 대신하여 스스로 묻는다. “단 하나의 행동만으로 한 사람의 성격에 관해 결정적인 판단을 내려도 괜찮은가? 당신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여자(남자)를 배반한 적도 속인 적도 버린 적도 없는가?(75쪽)” 인생을 살면서 종종 마주하는 이러한 질문들 앞에서 독자는 단호하게 대답하지 못한채 책을 덮는다. 문득 소설 제목을 다시 보니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어쩌면 '인생'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비록 인생이 소설은 아니지만 우리는 저마다의 삶을 날마다 써나가는 소설가의 기질을 가진 존재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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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뉴요커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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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형이 무척 마음에 들어요. 무게도 가볍고 얇아서 카페에 잠깐 들러서 기분전환하기 딱좋거든요, 요런 단편모음으로 계속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헨리 제임스의 진품이 재밌었어요. 옛날 인플루언서의 무대 뒷모습을 보는 것 같달까요..? |
| 시티 픽션 : 파리 리뷰입니다. 기 드 모파상의 밤과 드니 디드로의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모파상의 밤은 파리의 거리를 배회하는 내용이고, 디드로의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는 화자 '나'가 이야기하는 형식입니다. 분위기가 독특하고 환상적인 단편들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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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출판사에서 나온 시티 픽션 : 런던 리뷰입니다. 3편의 런던을 배경으로 한 단편 소설집입니다. <큐가든>은 공원 묘사가 인상 깊었습니다. <유품>은 치정 사건이 연관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영국 역사를 조금 더 알았다면 더더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진품>은 대놓고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들어간 작품인데, 오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 같아서 씁쓸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