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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자리.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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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일명 '3만 원 교수' 사건을 취재한 내용을 봤다. 개학을 앞둔 모 대학교에서 교양과목을 수강 신청한 학생들에게 담당 교수가 문자를 보낸 것이다. 문자의 내용은, 현재 자신은 미국(중국)에 있는데 급한 일로 돈이 필요하니 3만 원을 송금해 달라는 것. 해당 교수에게 문자를 받은 학생들은 교수가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지만, 그것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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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일명 '3만 원 교수' 사건을 취재한 내용을 봤다. 개학을 앞둔 모 대학교에서 교양과목을 수강 신청한 학생들에게 담당 교수가 문자를 보낸 것이다. 문자의 내용은, 현재 자신은 미국(중국)에 있는데 급한 일로 돈이 필요하니 3만 원을 송금해 달라는 것. 해당 교수에게 문자를 받은 학생들은 교수가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지만, 그것보다는 앞으로의 학교생활에 혹시나 불이익을 당할까 염려되어 돈 3만 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담당 교수는 시간이 지나도 돈을 빌린 학생들에게 돈을 갚지 않았다. 어떤 학생은 어학연수를 가기 위해 어렵게 마련한 몇 백만 원을 몇 차례에 걸쳐 빌려줬다고 했다. 학생들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고도 했다. 급기야 학교 신문에 이 내용이 실렸고, 그 후에야 교수에게 돈을 돌려받은 학생이 생기기 시작했다. 3만 원, 학생에게는 큰돈이다. 거의 열흘 동안의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돈이다. 무엇보다 상대가 그런 돈을 선뜻(?) 빌려줘야만 하는 대상이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잠깐 궁금증이 일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잠깐이었다. 학생들이 담당 교수가 송금해달라는 문자 한 통에 거금 3만 원을 보내는 입장을 알만했기 때문이다.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가 같은 학문을 연구한다는 공통점으로 연결된 것이 아닌, 갑(교수)과 을(학생)의 또 다른 형태로 보인다. 선학과 후학이 학문으로 하나 된 것이 아닌 그저 지시하고 따르는 관계일 뿐이란 말인가.

 

대학원 사회에서 자신의 논문을 지도하는 교수의 눈 밖에 나면 그건 치명적이라 할 수 있었다. 졸업논문의 통과 여부도 그렇지만 졸업 후의 강사 자리 역시 지도교수의 도움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104페이지)

 

소설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에서 가장 먼저 언급한 문제도 이 기사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 학문을 연구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앞에 두고 저자가 언급한 ‘사제 카르텔’을 보는 것만 같다. 대학원생 이인서가 문학 비평계의 태두 김윤식 교수의 가리타니 고진의 저서를 표절한 부분을 언급한 것은 그저 사실을 확인한 것뿐인데, 그건 ‘감히’ 해서는 안 될 일로 여기게 한다. 선학의 잘못된 점을 후학이 드러내는 것이, 해서는 안 될 일로 정해져 있던 것이다. 왜? 그건 위에서 말한 ‘감히’와 연결된다. 금기다. 감히, 후학이 선학의 학문적 공로에 흠집을 내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는 학문을 대하는 그들 세계에 있어서 가장 먼저 사라져야 할 인식이라고 본다. 틀린 부분을 바로 잡아 제대로 된 이어짐을 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한 가지에 초점이 맞춰있다. ‘밟지 마시오. 건드리면 터짐.’ 금기의 영역에 관심조차 두지 말라는 의미다. 오류를 지적하고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으면서 제대로 된 학문 연구에 몰두해야 한다는 공동의식이 아니라, 그 오류조차 아는 척하지 말라는 일방적인 경고이다. 그 사이에 벌어진 일들, 이인서의 논문을 엮어 출간한 책으로 또 한 번 시끄러워졌고, 오직 이인서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어떤 일들이 계속 이어진 게 아닐까 싶다. 결국, 이인서는 대학원을 그만두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스스로 자퇴서를 냈다. 꿇지 않겠다는 강한 어필로 그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조금 오해해 보자면, 어찌 보면 그건 그 자신이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그 세계에서 금기를 건드린 죄(?)로 숙청된 거나 다름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결론은,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눈 감고 귀 막은 채로 어떤 처세술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끝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마트의 1+1행사처럼 일부 교수와 평론가, 작가는 한 몸인 듯 뜻을 같이한다. 읽지도 않은 글에 혹평한다. 자신의 지위를 등에 업고 한껏 헐뜯고 비난한다. 마치 글도 아닌 것이 글 흉내를 낸다는 것처럼.

 

“그 책은 그래도 지적할 거리도 많지만 유치한 가운데서도 꽤 재미있는 부분도 있어 보이던데, 여성의 심리를 그렇듯 섬세히 그려 보이기도 쉽지 않구요. 아닌가요? 그런 점은 어떠셨는지요?”

그때 평론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글쎄, 사실 나도 읽지를 못해서…… 그런 부분부분에 대해서는 말하기 힘들지만…… 이 작가 생각은 어때?”

소설가의 대답도 다르지 않았다.

“글쎄요, 저도 아직 읽질 못해서…….” (87페이지)

 

한 권의 책을 놓고, 열심히 쓴 글을 앞에 두고, 솔직하고 진심 어린 한 마디가 아니라 ‘내 책에 좋은 추천사 하나 써 줘.’ 라고 말하면 예스맨이 되기도 하고, 밀어내고자 하는 반역 같은 글이 있으면 같이 손을 모아 벼랑 끝으로 아주 간단하게 밀어내버리기도 하는 일. 그런 일이 가능한 세계에서 올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 누구인가?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해결될 수도 없고 해결될 희망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스스로 나온 이인서의 태도는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이 남아있음을 보이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다시 고개 숙이고, 담당 교수의 평가 점수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 보이는 것조차 못 본 척 살아가야만 하는 일이 결코 옳은 것이 아님을 그 스스로 보여준 것이다. 그 이후의 그의 행보에 많은 걸림돌이 있었을 거라 예상하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그가 선택한 그 옳음을 향해 간다는데... 거기에, 초지일관 옳다고 믿는 것을 향해 출판의식을 가진 정세진 사장이나 밝힐 것은 밝혀야 한다고 믿고 나가는 김진현 기자 같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으니, 진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글로 어우러진 그 세계가 아주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한편, 이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출판계의 어두운 이면 역시 한 권의 책을 읽는 독자로 깊게 들여다보게 한다. 앞서 읽은 소설 『소설 출판 24시』에서 고발하듯 들려준 내용과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세계에서 직접 부딪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을 이야기한다. 한 권의 책이 계약되어 출간되는 과정이 어떤 편법처럼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풍문으로 떠돌던, 하지만 그저 소문으로만 남겨져야 했던 대필 작가와 출판사와의 거래도 안타까운 일이다. 마치 자신이 직접 써서 내놓은 것처럼 한 권의 책으로 온갖 명예를 쥐려고 하는 이들의 가면에 내 속은 울렁거린다. 뒤로는 사재기하고 앞에서는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춤을 추는 책들에 배신감을 느낀다. 가장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은 과장된 광고로 인해 책을 선택하고, 막상 읽고 난 후의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던 순간을 기억하게 한다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게 되는 시작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책의 홍보 문구나 유명인의 추천사는 그 책을 선택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 광고에 현혹돼서 책을 사보고 최소한 그중의 몇 천 명이 속았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면, 그건 그 광고를 친 당사자만 부메랑을 맞는 게 아니라 출판계 전체가 맞게 될 거야. 그 사람들이 다시 서점으로 나와 책을 사게 만들려면 또 한참의 시간이 소용되지 않겠어?” (155페이지)

 

출판사 사장 정세진이 다른 출판사에서 일하는 친구 지우형에게 하는 저 말은 나와 같은 독자의 마음에 몇 번 들어갔다 온 것처럼 생생하게 들린다. 그래서 그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순수하게 책을 대하고 싶은 마음에 선택했던 일이 나중에는 ‘사기’라는 생각이 들 때는 왠지 모를 배신감까지 느낀다. 그건 책을 만들고 파는 사람과 책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사람 사이에서 있어야 할 기본 신뢰감이 배제된 이유로 생긴다. 책으로 사기당하는 기분을 느끼는 일은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가장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의 글을 가져와 자기 것처럼 담아놓는 글도, 거짓으로 만들어진 소설도, 과대포장으로 겹겹이 싸인 책도, 결국엔 외면받게 된다. 그 뒤에 남는 것은 모두의 상처뿐이다. 문학의 연구에 매진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진실을 끌어내기 위한 접근이 어려워질 것이고, ‘문제 제기’는 사라진 단어가 될 것이다. 학계 권위가 만들어낸 비윤리적인 일들이 앞으로의 문학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눈에 그려진다. 투명하게 드러내야 할 문제는 점점 묻어지는 게 익숙한 일로 둔갑하고, 그로 인해 거짓의 글이 난무하겠지. 누군가의 대필로 태어난 책이나, 진정으로 독자에게 읽히고 싶은 책이 아닌 거래의 수단으로 출간하게 되는 책은 어떨까. 거기에 아주 두꺼운 포장지로 싸인 채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책에 손을 뻗는 독자는 또 얼마나 될까. 모든 것이, 불신으로 그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요즘 독자들, 바보가 아니다. 한 번의 경험이 만들어내는 지식은 대단하다. 책(글)으로 겪은 그 한 번의 경험과 진실의 외면이 가져온 불신이 어떤 결과로 눈앞에 드러날지 그려지지 않는가. 그래서 진실은 필요하다. 그 진실을 사이에 두고 책과 독자가 만나기 때문이다. 

 

책(글)을 대하는 사람이 가장 우선으로 만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하는, 소설이되 소설로 읽히지 않는 소설이다. 많은 진실을 들려주고자 애쓰면서 책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진심이 교류되었을 때 만날 수 있는 공감, 혹은 감동이 아닐까 한다. 그 공감은 진실이 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거짓으로 만들어진 글은 공감은 고사하고 그 어떤 교류조차 시작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자기만의 언어가 가지는 그 고유의 색깔과 진실이 함께했을 때, 작가도, 책도, 독자도, 평론가도, 그 외 문학과 관계하는 많은 사람이 함께 걸어갈 수 있다. 이 소설은 거짓으로 만들어진 감동은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앞에는 책이 있다. 그 책이 진실로 다가오는 순간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혹시라도 거짓으로 싸인 책(글)이 다가왔다면, 그로 인한 감동이 불안하더라도, 이제 조금은 안심해도 되지 않을 런지... 이런 소설이 등장한 것을 보면, 아직은 안전의 녹색불을 다시 환하게 켤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는 것 같다. 책(글)으로 통하는 많은 사람의 진실과 진심, 그것들을 바탕으로 한 관계에 희망을 걸어볼 만한 소설로 또 다른 기대가 시작된다.



n******i 2014.06.26. 신고 공감 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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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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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라인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어떤 사람에게 줄을 대느냐에 따라 한국사를 이해하는 것도, 결론을 내리는 것도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한심함과 함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게 비단 역사 관련된 일 뿐이겠는가? 어떤 학문을 하든 지도교수가 있고, 학생들은 그 지도교수에 의해 학문의 깊이와 넓이를 정하게 될 것이다. 때론 힘을 발휘하는 원로 교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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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라인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어떤 사람에게 줄을 대느냐에 따라 한국사를 이해하는 것도, 결론을 내리는 것도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한심함과 함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게 비단 역사 관련된 일 뿐이겠는가? 어떤 학문을 하든 지도교수가 있고, 학생들은 그 지도교수에 의해 학문의 깊이와 넓이를 정하게 될 것이다. 때론 힘을 발휘하는 원로 교수의 라인과 반하는 행동을 해 그 사회에서 매장당할 수 있는 게 좁디좁은 학문의 길 아닐까? 학문이란 게 만약 그런 거라면... 왠지 굉장히 씁쓸할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 이인서는 대학에서 박사 과정중인 학생이다. 그가 논문으로 제출한 내용은 김윤식 교수의 책이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책을 표절했다는 것이다. 이 일로 인해 교수들의 압박이 들어오고 때문에 이인서는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출판사, 교수, 그리고 대학원생들의 라인과 출판문화를 볼 수 있는 이 책은 사실 많이 헷갈렸다. 실제 인물이 있는가 하면 가공의 인물이 있고, 실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허구인 면도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 있었던 일인지를 찾아보게 되었다.

 

(20011130일 프레시안 중에서)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소재는 이른바 '이명원 사태. 서울시립대 국문과 대학원생 이명원씨가 김 교수의 표절 사실을 밝힌 논문 내용이 기사화되면서 학계에 큰 소용돌이를 몰고 왔던 사건이었다. 이씨의 논문은 비평집 타는 혀로 출간되기도 했다. 이씨는 스승을 비판한 뒤 자신에게 가해지는 제도적 폭력에 견디지 못해 자신이 다니던 대학원을 자퇴하며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자퇴 이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저자인 이환(증판인지 개정판인지 2014년 책 작가 이름은 이정서라고 되어 있는데 이건 가명이라고 한다)씨는 소설의 형식을 빌어 "김윤식(소설 속 가명) 교수의 표절이 명백하다는 것은 적어도 교수라면 다 알고 있을 만한 것인데, 수십 년 동안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더욱이 "다른 마이너 매체들은 사설 등으로까지 다룬 사건에 대해 3대 중앙일간지가침묵의 카르텔로 일관한 것도 그곳의 기자들이 모두 김 교수와 같은 학교를 나오고 그의 강의를 들었던 제자들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표절 자체보다도 바로 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무도 그것을 지적하지 못할 정도로 숨 막히는 도제제도 속에 스승과 제자의 동종교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암울한 학문풍토를 꼬집고 있다.

 

이 이야기를 연재하는 동안 홈페이지가 닫히고 출판사 사정으로 중단되었던 것을 다시 완성시킨 거라고 한다. 나는 문학평론이나 문학 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잘 모른다. 하지만 그들 또한 많이 폐쇄적이고 자신들 만의 세상에 빠진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평범한 독자들에게는 흥미 있고 재미있는 글을 그들은 작품성이 없다며 깎아내리기도 한다. 나도 책을 읽으면서 늘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그들이 말하는 예술성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책이 나온다면 독자들은 외면하지 않을 텐데... 그들은 때론 스스로를 어떤 틀 안에 가두고 있는 것 같다. 재미와 문학성을 모두 갖추기는 어려워하는... 이유로. 문학성을 갖춘 책은 어렵고, 딱딱한 문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은 쉬운 이야기를 돌려돌려 말한다.

 

좋은 글은... 대중의 마음을 끌어안고, 그 시대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것 아닐까? 나는 지금도 좋은 글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고 글 쓰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에 겉 멋을 들이며 쓰고 싶지는 않다. 내 글에 문학성이 없다는 걸 알기에 나만 아는 문장으로 쓰고 싶지도 않다. 읽기 편하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 나는 그런 글이 좋다. 어찌 보면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이 환호하는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것이, 어떤 입장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은근 슬쩍 무마하려고 하는 건 역시... 지성인이 할 짓은 아닌 것 같다.

 

ps 이 책은 2001년 이환이라는 작가의 이름으로 나온 책이다. 2001년 책과 2014년 책의 다른 점은 교수의 이름 정도 일까? 2001년 판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2001년 판은 절판 되었고 같은 출판사에서 다시 나온 이 책. 그럼 개정판 일까? 어찌 보면 참 좁은 문학계를, 표절에 대한 사람들의 입장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YES마니아 : 로얄 k*****3 2014.10.02. 신고 공감 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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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거짓에 대한 고발, 책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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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히 말하건대 지금 이 시기에, 이 시대에 반드시 출간되어야 했던 책이라고 생각한다. ​   ​   책 <출판 24시>를 아주 재미있게 읽은터라, 새움이라는 출판사에 늘 관심을 가져왔었다. 그래서 이번에 새움에서 이명원 사태(국문학의 태두인 김윤식 교수의 표절을 밝히고 오히려 학업을 중단하는 사태에 이르렀던 대학원생 이명원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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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말하건대 지금 이 시기에, 이 시대에 반드시 출간되어야 했던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 <출판 24시>를 아주 재미있게 읽은터라, 새움이라는 출판사에 늘 관심을 가져왔었다. 그래서 이번에 새움에서 이명원 사태(국문학의 태두인 김윤식 교수의 표절을 밝히고 오히려 학업을 중단하는 사태에 이르렀던 대학원생 이명원의 이야기)를 다룬 책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을 펴냈다는 말에, 바로 읽어보았다. 이 소설은 이명원 사태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주인공은 이인서라는 허구의 인물이다. 실화를 배경으로 했으나 작가의 말에서 말했듯 분명히 이 글은 '소설'이다. 다만, 이 사건의 표절 논문의 주인공인 '김윤식 교수'는 실명 그대로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그분들의 명예에 관계되는 일이나, 대한민국 문학계를 이끌어온 그분들의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이제는 드러내 보일 때가 되었다는 생각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실명과 허구의 이름이 동시에 쓰인 소설이라는 점에서 글쓴이의 의도가 읽힌다.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든다. 특히 커버 뒷면에 써있는 "나는 아비를 죽였다. 그래서 나는 추방당했다. 이제 나는 이방인이다. 그래서 진정"이라는 문구는 이 소설을 정확히 꿰뚫고 통렬한 한마디다. 선학의 오류를 지적했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는 커녕 대학원 사회(혹은 교수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이방인이 되는 이인서의 이야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래서 진정"이다. 이방인으로 추방당한 후, '그래서' 아비를 죽인 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서 '진정' 어떻게 되었을까ㅡ소설에 그 답이 있다.

 

이 소설은 단순히 이명원 사태에만 머물지 않고, 대학원 사회를 중심으로 여러 사회 문제를 고발하고 있다. 대학원 내 지도교수-제자 간의 뒤틀린 관계(류성문 교수와 제자 한혜원 사이 불륜관계, 지도교수라는 이유로 그의 사적인 일까지 맡아야 하는 제자들), 출판사의 사재기 및 리라이팅 문제, 읽지도 않은 베스트셀러를 비난할 줄만 아는 인문학자들의 허위의식.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이 모든 문제들의 핵심은 바로 '거짓'에 있다. 책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는 우리 시대 곳곳에 팽배한 거짓을 묵인하는 우리 모두에게 거울을 들이민다. 작가가 말했듯 이 소설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소설의 구성단계를 모범적으로 따른 흥미로운" 픽션이다. 그러나 극화된 줄거리, 과장된 인물이라는 표면을 걷어내자마자 드러나는 것은 거울이다. 그 속엔 우리의 현실이 발가벗은 듯 적나라하게 부끄러운 줄 모르고 펼쳐져있고, 그리고 그 속엔 부끄럽게도 나 역시 자리잡고 있다. 

 

책 <출판 24시>가 그랬듯 문장들이 다소 거칠다는 느낌이다. 미학적인 관점에서 엄밀히 평가해야 한다면, 호평을 하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정말 바쁜데도 도저히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을만큼, 정말 재미있고 흡입력있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거짓에 대해 고발했다는 점에서 많이 공감할 수 있었고, 거짓된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나에 대해 많이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다.  감히 말하건대 지금 이 시기에, 이 시대에 반드시 출간되어야 했던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하게 정말 좋은 책이라 잘 소개해주고 싶은데 리뷰가 잘 안써질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이 훌륭한 작품을(그러나 출판사도 우리도 모두 알듯이 결코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못할, 그래서 더더욱 내가 글을 잘써서 더 소개해주고 싶은) 어떻게 보여주는 게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불현듯 이 생각이 났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떠올랐던 박완서 작가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의 다음 구절이, 그 어떤 나의 설명보다도 훨씬 더 이 책을 잘 전달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내 주위에는 많은 학생들이 출렁이고 그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 모자라 XX학원, ○○학관, △△학원 등에서 별의별 지식을 다 배웠을 거다. 그러나 아무도 부끄러움은 안 가르쳤을 것이다. 나는 각종 학원의 아크릴 간판의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훨훨 휘날리고 싶다. 아니, 굳이 깃발이 아니라도 좋다. 조그만 손수건이라도 펄렁펄렁 날려야 할 것 같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고. 아아, 꼭 그래야 할 것 같다. 모처럼 돌아온 내 부끄러움이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 책은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깃발이다. 이 깃발이 훨훨 휘날려 당신에게도 닿기를 바란다.

 

*덧

이 책의 저자가 왜 필명 '이정서'를 들고 나왔을까, 이것은 또 하나의 우리 시대의 거짓에 대한 고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앞으로도 비판적인 작품을 이 필명을 통해 출판하겠다는 의지의 발판(실제로 이 필명으로 새로운 번역의 <이방인>이 출간되었다. 한국의 카뮈 번역에 있어 거의 독보적인 역할을 해 온 김화영 교수의 <이방인> 번역본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정서라는 이름은 <출판 24시>를 읽은 사람이라면 실제 인물에 대한 어느 정도의 추측이 가능한 것인데, 의도된 것인지 궁금하다. 그러나 맘대로 추측하거나 묻거나 따져볼 생각은 없다. 필명을 쓰는 데 있어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러한 결정을 존중하는 바이다.

 

<좋았던 구절>

 

"얼마 전 그렇게 광고 쳐서 베스트셀러 1위 된 책, 그거 나도 봤다. (...) 정말 너네처럼 그런 책들을 새로 나온 냉장고나 승용차 광고하듯이 포장해서 독자들을 현혹하는 것 볼때마다 광화문 한복판에 나가서 피켓시위라도 하고픈 심정이야."

"뭐라고 외칠 건데?"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당신들은 속고 있다 하고 말야."

"니가 거짓말쟁이 양치기냐? 늑대 왔다고 소리치는?"

"양치기는 내가 아니라 너네 같은 출판사라니까."

 

(pp.155)

 

 
"동양적 합리성이란 것도 있잖아."
"권위에 대한 복종이 동양적 합리성입니까? 저는 그런 것 믿지 않습니다."
"자네가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 역시 자네를 제도적으로 매장시킬 수밖에 없어."
 
(pp.220)
  
나는 이 현실이 비단 내가 소속되어 있는 대학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파생된 하위모순이다. 구조와 맞서 고립된 한 개인이 싸울 때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희생양'의 딱지일 확률이 높다. 나 자신의 삶이 그것을 증거한다.
 
(pp.223)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
나는 이 말이 내 마음속에 불러일으킨 날카로운 파문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p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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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 이정서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 이정서" 내용보기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라는 제목에 끌려 선택하게 된 작품이다. 대체 뭔 감동에 어떤 위험함을 경고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출판계를 다룬 작품이라면...그렇다면 답을 맞추는데 어느 정도 힌트가 될까??   작품의 완성도 보다는 출판사의 융단폭격 광고로 인해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이 있다. 그런 열풍(광고)에 현혹되 책을 사 본 독자들 중에 속았다고 생각하는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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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라는 제목에 끌려 선택하게 된 작품이다.

대체 뭔 감동에 어떤 위험함을 경고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출판계를 다룬 작품이라면...그렇다면 답을 맞추는데 어느 정도 힌트가 될까??

 

작품의 완성도 보다는 출판사의 융단폭격 광고로 인해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이 있다.

그런 열풍(광고)에 현혹되 책을 사 본 독자들 중에 속았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렇다면 그 광고로 인해 출판사와 작가를 넘어 출판계 전체가 욕을 먹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과대 광고를 보면 이렇게 외치고 싶다.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당신들은 속고 있다!!!"

 

위에 글은 제목이 나오는 부분을 발췌&요약하여 이해쉽게 옯겨 적은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우리가 모르는 출판계의 어두운 단면을 다룬 내용의 작품일까??

아니다...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말하고 싶다.

맞는 이유는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벌이는 출판사의 입김이나 사재기...

또는 지연이나 학연으로 얽힌 작가&출판사&언론사(기자)의 담합(?)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고.

틀린 이유는 그런 내용보다 문학인들의 지연&학연으로 얼룩진 비리(표절)가 실화를 바탕으로

상당부분을 차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원 비평가는 사건 후 현재까지 꾸준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2000년에 실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로 쓰여진 논픽션 소설이다.

2000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나도 몰랐던...^ ^;

2000년 신출내기 비평가 이명원씨가 <타는 혀>에서 국문학계의 거목이자 대가라 할 수 있는

김윤식 교수의 표절 문제를 제기 하면서 커다란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당시 김윤식 교사가 표절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김윤식 교수와 관계된 제자나 지인(언론, 출판)

들에게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고 한다...그들에게 중요했던 건 오직 김윤식 교수의 명예 실추와

서른도 안된 새~파란 젊은 놈이 김윤식 교수와 맞먹고 나댄다는 것 뿐...

그 후 이야기는 어떻게 됐을까?? 

책 속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함 읽어보시고~~ (^_____________^.)

 

이 작품은 이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실명까지 거론하며 논픽션으로 풀어낸 소설이기 때문에

어느 부분이 좋네 안좋네~라고 감사형(딴지)를 쓸 상황이 안된다.

이 작품은 같은 출한사인 <새움>에서 2001년도에 이환이라는 이름으로 출간이 된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환->이정서 라는 것...13년 만에 재출간이던지 개정판이던지 다시 출간됐다는 것~~

 

 

 

 

p******s 2014.04.0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고유한 목소리를 지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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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목소리를 갖는 일은 중요하다. 목소리 자체는 곧 그 자신의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목소리는, 글, 몸짓, 행동, 학력, 지식 등 나를 이루고 드러내는 모든 것이다. 때문에 고유한 목소리를 갖고자 하는 바람과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를 닮고자 한다. 문학과 예술에 속한 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목소리를 원한다. 누군가는 재능이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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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만의 목소리를 갖는 일은 중요하다. 목소리 자체는 곧 그 자신의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목소리는, 글, 몸짓, 행동, 학력, 지식 등 나를 이루고 드러내는 모든 것이다. 때문에 고유한 목소리를 갖고자 하는 바람과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를 닮고자 한다. 문학과 예술에 속한 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목소리를 원한다. 누군가는 재능이란 이름으로 부여받은 목소리를 누군가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취득한다.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인지도 모른다. 한데 나의 목소리를 허락을 구하지 않은 누군가가 자신의 것인 양 사용한다면 어떨까? 이정서의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를 읽으면서 나는 그 목소리를 생각한다.

 

 ‘문제는 자기만의 언어가 있느냐는 점이다. 진정한 작가는 타인의 어법과 뉘앙스를 빌린 ‘앵무새의 언어’가 아닌 자신만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148쪽)

 

 소설은 단순하게 보자면 평론가 김윤식 교수의 표절을 밝힌 대학원생 이인서(이명원)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표절을 밝히는 과정을 중심으로 책엔 한국문학과 출판계에서 그들만의 법칙으로 불리는 몇 사례를 소개한다. 책과 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이야기로 주례사 평론, 광고로 베스트셀러 만들기, 문학상 수상작 선정을 둘러싼 거래, 표절 시비가 등장한다. 그러니까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소설로 풀어낸 것이다. 물론 나는 알지 못했다. 책을 읽고 나서야 ‘이명원 사태’를 검색했다. 그러므로 일련의 사태를 알고 있는 이와 몰랐던 이가 이 소설에 갖는 시각적 차이는 인정해야 한다.

 

 소설엔 대학원생이며 조교인 이인서, 원고가 책이 될 수 있도록 생명을 불어 넣는 출판사 사장과 편집장, 신문기자, 평론을 쓰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 등 저마다 문학과 책이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서로가 유기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자신 있게 그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이는 몇 명이나 될까. 결론적으로 이인서는 김윤식 교수의 표절을 밝히는 그 과정에서 그 관계에서 제외된다.

 

 책이 흥미로운 건 사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기에, 내용에 대한 신빙성이 높다는 점이다. 어쩌면 독자는 전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세상을 만났는지도 모른다. 하여 어떤 독자는 깊은 실의에 빠지기도 할 것이며, 어떤 독자는 기존과는 다른 방법으로 책을 선택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소개된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거기다 유명 작가나 평론가의 추천사 한 줄의 영향력은 크다. 그 추천사가 반드시 책을 읽은 후 쓴 소감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순진한 걸까?

 

 그저 문학이 좋아서, 더 깊은 공부를 원했던 이인서가 김윤식 교수의 논문이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 논문의 표절이었다는 걸 밝힌 건 정말 비판받아야 할 것인가? 그것이 열심히 공부한 결과물인 논문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였을까? 이인서가 연 새로운 시대를 격려해줄 수는 없었을까? 나만 이런 의문을 갖는 건 아닐 것이다. 선뜻 나설 수 없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위장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던 이도 있었을 터. 책에서는 김윤식 교수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인서는 학교에서 추방당했고, 학계에서는 제도적으로 매장시킬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위장한 협박과 스승을 배신한 제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학계의 권력층에게 미움을 받은 이는 제도권에서 존재할 수 없다면 이인서는 어디에 서야 할까? 어느 분야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경계밖에 있는 일개의 독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에 나오는 모든 책을 일일이 읽을 수도 없고,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건 출판사의 소개, 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신뢰, 익숙한 이름의 평론가의 추천뿐이니 말이다. 번역으로 만나야 하는 외국문학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출판계 스스로 제도를 정비하는 자정(自淨)의 노력이 필요하다.

 

 독자에게는 분명 산뜻한 책이다. 출판계의 흐름과 고질적 문제를 고발하고 상세하게 들려주기란 쉽지 않다. 저자 역시 번역을 하는 사람으로, 논물 표절이라는 소재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려고 이 소설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험한 감동이 아니라 진실되고 신선한 그것과 마주하기 위해 책 속에 담긴 다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내가 찾은 감동은 자신만의 목소리는 독자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건 창작의 고통뿐 아니라, 그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독자에게도 해당된다. 분명한 건 예전과는 다른 독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거다.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그 책의 진가를 알아보는 역할의 중심에 독자가 있어야 한다. 광고와 기사의 힘이 아니라, 책을 읽은 독자의 진실된 목소리 말이다.

r*********s 2014.04.2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균열을 기다리는 무모함 - 선과 악의 혼재(混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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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친구 익현이는 조교 생활을 했었다. 군대 휴가 차 학교에 들러 익현이를 만났다. 학부때 전공에 관심이 없어 늘 다른 분야 책들만 들고 다니던 녀석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학부 전공을 그대로 살려 조교 생활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조교 생활이 너무 바쁘다며 투덜대는 녀석과 점심을 같이 먹었는데, 2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호출이 왔다. 지도교수라고 했다. 절반도 비우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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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친구 익현이는 조교 생활을 했었다. 군대 휴가 차 학교에 들러 익현이를 만났다. 학부때 전공에 관심이 없어 늘 다른 분야 책들만 들고 다니던 녀석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학부 전공을 그대로 살려 조교 생활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조교 생활이 너무 바쁘다며 투덜대는 녀석과 점심을 같이 먹었는데, 2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호출이 왔다. 지도교수라고 했다. 절반도 비우지 못한 밥을 우걱우걱 집어넣으며 지도교수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지도교수는 세미나에 가 있다고 했는데, 뭔가 중요한 서류를 빠뜨렸나 싶었다. 헐레벌떡 뛰어 나가며 익현이가 말했다.

“개 밥 주러 가야돼.”

1년 만에 만난 친구와의 점심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지도교수라는 사람의 전화 한통에 부리나케 뛰어나간 용건은 ‘개 밥’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익현이의 조교 생활은 가관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는 지도교수의 아파트 도우미였다. 밥을 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개밥을 주고, 아무튼 시키는 것은 모조리 순종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씩씩거리는 내게 익현이가 말했다.

“원래 그래.”

익현이는 대학원 졸업 후 군에 갔다. 전역 후 바로 취직했다. 취직 직후 다시 익현이를 만났다. 그가 취업한 곳은 지역에서는 유망한 중소기업이었다. 당시가 최악의 취업난이었는데 불구하고 어떻게 그렇게 좋은 회사에, 곧바로 들어갈 수 있었냐는 물음에 익현이가 말했다.

“교수님이 소개시켜 줬어.”

전역 후 찾아 간 지도교수는 이력서를 만들어 오라고 했단다. 그리고 조만간 OO회사 인사팀에서 전화가 올 테니, 가보라고 했단다. 전화를 받고 찾아간 그 회사의 이사실에는 지도교수가 있었단다. 그 회사의 이사와 지도교수, 익현이가 점심 한 끼를 같이했단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익현이는 그 회사에 출근했다.

“개고생을 한 보답이 있다.”

라며 쓴웃음과 함께 쓴 소주를 들이키던 그 무렵의 어느 날 밤 술자리가 아련하게 기억 된다.

지금 익현이는 그 회사의 과장이 되었고, 돈 잘 벌고 잘 살고 있다.

 


“류성문은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저분이 어떤 분인가? 평생을 한국 문학을 위해 몸 바쳐 왔고 언제나 후학들에게 학문하는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몸소 실천해 보여온 분이었다. 어려운 제자들에겐 사비를 털어 학비와 책값을 보태주기까지 하던 분이었다.” (p.144)

 

김윤식은 그야 말로 산과 같은 분이다. 적어도 류성문과 같은 그의 후학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한국 문학의 값이 밑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그때에도 홀연히 찬비와 바람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 낸 어른이다. 후학과 제자들에게는 한 없이 따뜻한 아버지였다. 그로 인해 류성문은 문학비평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문단에서, 교단에서, 출판계에서 이름을 알리며 살 수 있게 되었다. 류성문이 조교 한혜원과의 정사(情事)를 이어갈 수 있는 것 또한 어찌 보면 김윤식 덕이다. 그를 이 자리까지 오르게 해 준 사람이 김윤식이다. 그를 부정한다는 것은 그의 자리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익현이는 셈이 빠른 녀석이 아니다. 홀어머니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뒷바라지 하셨다. 익현이 위로 누나만 셋이라 익현이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학부 졸업 직전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을 모두 미뤄두고 한 동안 농사일을 하고 여러 마리의 소를 키웠다. 그렇게 가업을 이어갈 줄로만 알았다. 오히려 익현이에게는 그게 더 잘 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시 학교로 와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2년의 대학원 생활은 지도교수 도우미 생활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이 미련하다고 당장 때려치우라고 항의하라고 들볶았지만 익현이는 참아 냈다. 그리고 보상을 받았다. 제대로 된 면접조차 생략한 채 지도교수의 얼굴만으로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된 것이다. 지금도 익현이가 지도교수와 연락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또한 익현이의 인생에서 그 지도교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 만큼인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렇게 주위에서 보기에 처절하고 불쌍해 보이던 조교 생활 덕택에 지금은 돈 잘 벌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익현이를 제외하고도 그 교수를 거쳐 간 조교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모든 조교들이 익현이가 받은 만큼의 교수의 성심과 성의를 받은 것은 아니겠지만 교수가 시키는 일만 잘 했다면 분명 적절한 보상은 주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나쁜 일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사회정의 차원에서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익현이는, 다른 조교들은? 어쨌든 그렇게 최악, 최악이라 노래를 부르던 시기에 그 교수 덕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기이한 것은 일본 문학의 필독서라고 할 수 있는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았을 일문학자들이나 한국의 국문학자들은 왜 단 한 번도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는 점입니다.” (p.128)

 

이인서는 김윤식이라는 이름 앞에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제 카르텔” (p.80)에 대항하려 한 것일까?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의 논문이 책으로 출간되고 <말>지에 인터뷰가 실리면서 학계에서 난리가 났다. 언론계나 대중들은 관심이 없었는데, 학계는 뒤집어 졌다.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적어도 그 분야 학계에서는 김윤식이 임금이었다.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될 용안이었다. 젊은 학자의 순수한 비평적 태도였는지, 치기어린 용기였는지 이후에 전개된 이인서의 태도에서 대략 유추해 볼 수는 있지만 미처 소설적 맥락에서 담지 못한 정황을 놓칠까 싶어 실제 ‘이명원 사태’ 즈음한 기사와 자료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기대와는 달리 딱히 책의 픽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르게 생각하면 이 책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는 소설의 형식을 취한 다큐멘터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추적하지 않지만 주인공의 이름 중 유일하게 김윤식 교수만 실명으로 그리고 있는 점을 미루어 보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반증이다. 여전히 김윤식 교수는 학계의 거두다.

일본 문학의 필독서라고 할 수 있는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을 읽고도 김윤식 교수의 표절을 지적하지 않은 “사제 카르텔”은 그 형성과정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반복적인 탓에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익현이가 부당한 처우나 지시를 받는 것에 대해 그저 속 좋은 친구라서, 원래부터 착하고 심성이 고운 녀석이라서 찍 소리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원래 그렇게 다들 한다.”라는 쳐다볼 수조차 없이 솟구친 강력한 카르텔의 벽앞에 찍 소리조차 할 수 없도록 압도된 것이다. 그런 카르텔에 균열을 가한(카르텔을 깨부수기라도 한 것도 아닌) 이명원은 매장된다. 이명원을 제외한 다른 학계 인사들은 모종의 합의를 하고 다시 카르텔의 균열을 메운다.

 


“그렇더라도 박사가 학원까지 나가야 한단 말야?”

“한 해에 박사가 8천 명 이상씩 배출돼요. 이제 10만 명이 넘는데요. 쉽지 않아요.” (p.62)

 

한 해에 박사가 8천 명 이상씩 배출되는(지금은 더 많을 것이다) 학계에서 일정한 자리를 잡는 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잘 찾아보면 주위에 그런 박사 하나쯤은 있을지도 모른다.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적채된 박사가 10만 명에 이른다면 그것은 비정상적이다. 그래서 박사가 학원에까지 나가 강의를 해야 할 실정이다. 취업난은 교수사회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익현이는 분명 대학원 지도교수와 연락을 하고 지낼 것으로 확신이 든다. 명절이나 생일에는 전화 정도, 선물 정도는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미 자리를 잡은 교수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카르텔”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교수를 거쳐 간 후학과 제자들은 시멘트를 덧대어 바르고 발라 카르텔을 지탱한다.

 


“그 책은 그래도 지적할 거리도 많지만 유치한 가운데서도 꽤 재미있는 부분도 있어 보이던데, 여성의 심리를 그렇듯 섬세히 그려 보이기도 쉽지 않구요. 아닌가요? 그런 점은 어떠셨는지요?”

“글쎄, 사실 나도 읽지를 못해서……. 그런 부분부분에 대해서는 말하기 힘들지만……. 이 작가 생각은 어때?”

“글쎄요, 저도 아직 읽질 못해서…….” (p.87)

 

한혜원도 이인서와 내 친구 익현과 다르지 않다. 류성문과의 잠자리가 어떤 감정의 발로인지, 순수한 사랑인지도 알 수 없다. 책에서는 그런 구차한 감정을 묘사하지 않는다. 한혜원 또한 지도교수 부친상에 와서 음식을 나르고 일을 해야 한다. 류성문과의 섹스 뒤, 류성문에게 남겨진 섹스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시나리오를 디밀어야 한다. 그것이 생존하는 방법이다. 한혜원은 가장 천박한 수를 써서라도 본인의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녀의 눈에 평론가, 소설가, 교수랍시고 앉아서 문학이 어떻네 저떻네 떠드는 비평은 천박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그 작품을 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달고 있는 명찰에 쓰여진 직책으로 가치가 평가 된다. 이것은 비단 문학계, 타 학계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일반적인 회사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디를 가나 라인이 있다. 어느 라인이 동아줄인지, 썩은 줄인지 판단해야 한다. 무리지어 공격하고 수비한다. 입체적으로 인물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들어 온 자원으로 판단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술자리 안주거리 삼아 뜯고 씻고 맛보고 삼킨다. 그러다 한혜원과 같은 진짜 속물을 만나면!! 깨갱~ 어흠~... 그게 말이야…….

 


“나는 이 현실이 비단 내가 소속되어 있는 대학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파생된 하위모순이다. 구조와 맞서 고립된 한 개인이 싸울 때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희생양’의 딱지일 확률이 높다. 나 자신의 삶이 그것을 증거한다.” (p.223)

 

가수 이승환이 고(故) 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헌가를 발표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수가 자신의 취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무슨 잘못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승환은 이미 친노종북 가수로 찍혀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관계된 행사와 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낙인이 찍혔다. 김제동, 윤도현 등 수많은 연예인, 문화·예술 인사들에게 피의 보복이 가해 졌다. 이것은 구조적 모순에 대한 개인의 싸움과는 다르지만 보복의 방식은 유사하다. 이인서가 김윤식 교수의 표절의혹을 제기하고 거듭된 교수 카르텔의 경고와 협박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책을 출간하기에 이른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자살행위에 기꺼이 몸을 던진 것이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인서와 이명원은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어느 미친 대학원 조교가 단지 자신의 치기를 들이밀고 싶어 그런 무모한 짓을 하나? 말만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하면 어느 정도의 자리는 보장받을 수도 있는 데 말이다.

 


“어차피 한 번의 기사에 큰 반향을 기대했던 것은 아냐. 다른 언론에서 전혀 받아쓰질 않는 게 아쉽지만, 김윤식 교수 쪽에선 모종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게 감지되고 있어.” (p.179)

 

월간 <말>지의 김진현 기자는 특종으로 이것을 보도했지만 반응은 미미했다. 일견 예상된 일이었지만 참담할 정도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김윤식 교수가 표절을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물 제비처럼 퍼져나가기 전에 차단되었다. 김윤식 이라는 봉우리를 떠받치는 산자락과 계곡과 산등성이 이미 공고하게 자리 잡은 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국정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 뉴스도 법정에서 무죄가 선고되기 전까지는 대중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언론과 권력의 카르텔>은 이전 정권부터 이 구조를 고착화 해 왔다. 밀어붙여 통과시킨 후 만들어 낸 구조의 뿌리가 이제 완전히 자리 잡아 참담한 결과물들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받아쓰지 않는 특종을 터트린 김진현 같은 기자는 업계에서 왕따가 될 것이다.



“그래서?”

“그분 표절건 혹시 들어본 적 없어?”

“글쎄? 그런 이야기가 있어? 김윤식 교수면 한국 문학계에서 대통령 같은 사람 아냐? 그 사람이 이룬 학문적 성과는 가히 추종을 불허하잖아. 오늘 신문에도 문화면 톱이더만. 저서가 백 권에 이르렀다며. 감히 범접하기 힘든 봉우리라고.” (p.45)

 

그래도 여전히 김진현 기자와 정세진 사장과 같은 사람들이 이 사회의 한쪽을 지탱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이인서의 논문을 책으로 출간하면 반드시 예상할 수 없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출판사 사장 정세진은 책을 출간한다. 김진현 기자는 특종으로 보도한다. 오늘자 신문 문화면 톱을 장식했지만 쉽게 잊혀진다. 대중이 가진 한계라 봐야 하나?

 

이인서는 책이 출간되고 특종이 보도된 후 갑자기 조교를 그만둔다. 그 학교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학문을 연구할 수 없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으나, 이면의 근본 이유는 주지하는 바다.

책을 읽고 이인서의 실제 주인공 이명원씨의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는지, 그 일 이후 그가 부딪혔던 <카르텔>은 더 굳건해 졌는지 등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다.

결국 양의 문제다. 이인서와 이명원 같은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는 발전한다. 보이지 않지만 사회의 각 분야에 뿌리를 내리고 암약하는 <카르텔>을 부숴버릴 수 있는 힘은 반복해서 균열을 만드는 것뿐이다.

내 친구 익현이와 같은 대학원생 조교는 앞으로도 계속 생길 것이다. 자리가 없는 것이 문제이지 조교를 지원할 학생은 넘쳐 난다. 수요 공급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낳는 한국 사회가 더 악랄한 괴물로 변하지 않도록 균열을 가하고 가해야 한다. 더불어 대중은 알아야 한다. 찾아서라도 알아야 한다. 우연히 포털 뉴스를 뒤지다가, SNS를 왔다 갔다 하다가 마주친 작은 사건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 혹여 청소노동자의 모습 속에서, 철탑에 올라간 노동자의 모습 속에서, 3교대로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 속에서, 수백 군데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봐도 도무지 합격 통보 전화가 오지 않는 청춘들의 모습 속에서, 대학과 성적의 서열로 인생 전체를 결정짓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대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아주 작은 균열을 발견해야 한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결국 김진현도 정세진도 책의 출간과 특종 보도를 통해 사회적 목표 달성은 물론 사적 욕망도 채우려 한 것이다. 그 욕망이 욕심이 되어도 상관없다. 자세나 체면은 고루한 껍데기다.

소설 속에 만난 인물들도, 익현이를 비롯한 내가 실제 만나는 인물들도 선악이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더 어렵다. 명확한 악이 구분되면 하다못해 욕이라도 실컷 퍼부을 수 있을 텐데 어려운 일이다.

선과악의 명징한 구분이 불가능하다면 에둘러 착한 척, 정의로운 척 할 것도 없다. 무의미한 일이니까.

이런 무의미해 보이는 현실에서 무시무시한 카르텔에 균열을 만들 수 있을까?

어쩔 수 없다. 기대해보는 수밖에. 어려워 보인다고, 무의미해 보인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욱 처참한 일이다.



l****h 2014.04.1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