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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속에서도 선한 본성의 삶을 추구한 사람" 예브게니 보돌라스킨의 <라우루스> 를 읽고
“삶은 신성한 것이다.” -러시아의 움베르트 에코라 불리는 예브게니 보톨라스킨이 세계문학사에 더한 장엄한 고전 -
구원한 연민의 마음을 가진 인간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은 가능한가? 도스토옙스키 작가의 소설 『백치』를 읽으며 유로지브이와 같이 타락하고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했던 주인공 미쉬킨 공작을 보면서 생각해본다. 결국 미쉬킨이 가진 연민과 구원의 마음은 나스타샤의 죽음으로 끝이 나고 미쉬킨 공작 또한 그 절망감과 고통에 못 이겨 백치가 되어 떠나게 되는 결말 속에서 결국 인간은 신이 될 수 없고 그리스도의 구원은 어려운 것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 『라우루스』는 폐허 속에서도 선한 본성을 추구하며 의사에서 성자로의 길을 걸어간 '라우루스'의 일대기이다. 15세기 중세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 당시에는 페스트가 창궐해서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었다. 아르게니 또한 어렸을 때 역병으로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게 되면서 할아버지인 흐리스토포르에게 약초술과 의술을 배웠다. 하지만, 그의 의술로도 그의 아내와 아이의 죽음은 막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그때부터 그의 속죄의 기나긴 여정은 시작된다.
“자네는 앞으로 힘든 여정을 겪게 될 것이네. 자네 사랑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니 말일세. 아르세니, 이제 모든 것은 자네 사랑의 힘에 달려 있을 거라네. 물론 자네 기도의 힘 역시 중요하다네.” -p. 143 비록 자신의 아내와 아이는 죽이지 못했지만, 그는 제대로 된 약과 치료도 없었던 그 중세 시기에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서 생명을 구해준다. 의사로서 그는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준다. 그는 아르게니 라는 본래 이름을 버리고 '우스틴'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거룩한 바보 성자인 유로지브이가 되어 자기희생과 고행의 길을 간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병든 자들을 치료하듯이, 그는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리고, 거룩하고 성스러운 마음으로 환자들을 치료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거룩한 신앙으로 치유와 이적을 보이게 되고, 그의 명성이 알려짐에 따라 몸이 불편한 자들, 맹인들, 절름발이들 등 아픈 사람뿐만 아니라 단순히 그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러시아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까지 그를 찾아온다.
그렇게 치유와 이적의 역사를 보인 의사 아르게니이자 유로지브이 우스틴은 암브로조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떠나게 된다. 암브로조는 미래를 예언하고 세계의 종말을 기다려왔던 이탈리아 사람이었는데, 아르세니는 치유를 통한 희생과 구원이 아닌 보다 더 거룩하고 숭고한 목적을 위해 기꺼이 예루살렘 성지 순례에 나선 것이다. 이제 단순히 아르세니는 의사나 성자가 아닌 세상의 종말에 대해 준비하고 예언하는 수도자인 것이다. 하지만 성지순례 길은 고행의 길이자, 죽음의 길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에 대한 사랑과 구원에서 시작된 그의 연민과 속죄의 마음이 더욱더 커져 인류애적인 사랑과 구원으로 확대되었음을 그가 의사에서 수도자가 되는 과정을 통해 알게 된다. 자신의 선한 행동과 자기 희생과 봉사를 통해 그는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살아서 구원받지 못한 자신의 아내 우스티나와 아이를 구원하고자 한다. 그런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 복종은 그의 예루살렘 순례 이후 더 커져서 그는 드디어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자 '라우루스'가 된다. 이제는 약초나 의술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으로 그는 치유의 능력을 보여준다.
"저는 이제 제 삶이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저는 아르세니였고, 우스틴이었고, 암브로시우스였으며, 이제는 라우루스가 되었습니다. 서로 닮지도 않았고 서로 다른 이름과 서로 다른 몸을 가진 네 사람의 삶을 살았습니다. (중략) 저는 서로 다른 시대에 저였던 사람들과 저를 더 이상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삶은 모자이크와 유사해서 여러 조각으로 흩어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p. 494
그가 말한 것처럼 그는 아르게니, 우스틴, 암브로시우스, 라우루스라는 각각 다른 이름으로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진 사람으로 삶을 살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삶이 모자이크처럼 흩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의사로서의 아르게니의 삶도 우스틴, 암브로시우스, 수도자 라우루스 또한 모두 그 자신이고 그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가 결국 라우루스라는 이름으로 수도자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르게니의 삶을 살았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구원과 속죄의 서사가 비록 아내와 아이에 대한 속죄에서 시작하였지만, 결국 그는 러시아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고 안아줄 수 있는 성자로 거듭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의사인 아르게니가 성자 라우루스가 되기까지 과정을 통해 절망과 폐허 속에서도 자신의 선한 본성과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신앙으로 구원과 자기희생의 길을 간 한 인간의 삶을 조망할 수 있었다. 감동적인 서사, 인간에 대한 구원, 자기희생, 속죄 등을 통해 삶의 신비와 인간의 선한 본성과 연민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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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세니는 중세 러시아의 시골 마을에서 의술로 사람들을 치료해 주지만 사랑하는 연인과 아이의 죽음은 막지 못했다.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아르세니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우스틴, 암브로시우스, 라우루스 등의 이름으로 여러 나라와 도시를 떠돌며 속죄와 박애의 길을 떠난다.
이 소설은 페스트가 창궐했던 중세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사람의 일대기를 보여준다.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를 치유하고 순례자로서 그리고 수도자로서 삶의 신성함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삶의 신비와 순수한 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종교적 색채가 짙게 느껴지며 한 한 번의 완독으로는 소설의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상 깊었던 건 한 사람이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삶의 다양한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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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폐허에서 찾은 삶의 신비와 순수한 선에 관한 책!
라우루스 (예브게니 보돌라스킨 장편소설, 승주연 옮김)
책의 목차
지각의 책 부인의 책 여정의 책 평안의 책
책을 읽으며 요즘에는 보기 힘든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인 라우루스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주인공은 아르세니, 우스턴, 암브로시우스, 라우루스라는 4개의 이름으로 살아갔다. 15세기 중세 러시아에 살았던 라우루스라는 성자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다루었으며 라우루스가 걸어온 길 동안 여러 사람을 접하고 여러 이야기를 보며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다.
“약초의 효능을 믿는다기 보다는 특정 질병의 치료하는데에 있어 신이 약초를 통해 일하신다고 믿었다. 신은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도 약초도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다.” p23 아르세니의 할아버지인 흐리스토포르가 말한 문장이다. 살다보면 내 의지로 뭔가 열심히 하려고 했던게 안 되는 일이 많고 사는게 계획한 대로 내 뜻대로 안돼서 슬픈 경우가 많은데 그런데 이런 사람도 ‘약초처럼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다.’ 라는 문장을 보면서 정해진 흐름, 시간의 흐름과 같이 어쨌든 그 길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임을 생각하며 큰 위안에 되는 문장이었다.
원로가 아르세니에게 “반복되는 사건들은 우리가 시간을 극복하고 구원받기 위함임을 명심하세요.” p463 라는 말과 아르세니와 예루살렘으로 떠난 이탈리아인 암브로조는 15세기에 살았지만 1970년대 러시아 프스코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는 장면이 중간중간 삽입이 된다. 단순하게 암브로조가 예언의 능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15세기에 살았던 아르세니, 암브로조, 프스코프 사람들의 이야기는 당시만의 이야기만 아니라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거랑 겉모습만 조금 다를 뿐이지 안에 담고 있는 내용, 본질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성자전의 형식으로 종교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있지만 종교적인 부분을 떠나서 사람 이야기라고 생각을 하게됐다. 삶에 대해 지친 사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꼭 추천하고 싶고 나 역시 책을 읽으며 나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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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 제 삶이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라우루스 , 이름 안에 담긴 긴 생애에 대한 신비롭고 때론 슬프고 ,힘겨운 이야기들에 대한 증거이다. 전염병으로 인해 사랑하는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와 같이 살게 된 아르세니. 그는 약초와 사람에게 손만 닿으면 그사람의 병과 죽음을 알아차리고 치유하는 능력을 통해 세상 부러울것 없는 칭송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독이 되어 자신을 가두게 되는 경험도 하게 된다. 기억을 잃어버린채 마을에서 거지와 바보인채로 살기도 하고 , 때론 도둑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 다시 치유능력을 통해 칭송받기도 하다가 , 거짓된 고백과 소문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기도 한다. 아르세니가 라우루스가 되기까지 긴 여정의 시작은 연인 우스티나를 만나 평안을 얻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자신의 아둔함으로 여인을 잃은 그가 남은 생을 바쳐 갖고 싶었던 평안, 사람들을 치유하고 멸시당하고 또다시 칭송받고 과정을 통해 그는 진정한 평안을 얻게 될까 ? 라우루스의 생애와 여행를 통해 그에게 우리는 수많은 질문과 답을 찾아내는 시간을 만나게 된다. 21세기에 만나는 15세기의 시대와 고대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관한 에피소드를 읽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적요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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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자이자, 수도자이며, 성자였던 한 성인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로 시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섬세한 문장들을 통해 신앙과 사랑, 삶의 신비에 대한 심오하고 깊은 울림을 남긴 작품이다.
"그는 여러 시대를 살면서 서로 다른 네 개의 이름으로 불렸다." 이 작품의 첫 문장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아르세니로 태어나 우스틴, 암브로시우스, 그리고 사시사철 푸르며 영생을 상징하는 '라우루스'라는 이름까지 각기 다른 4명의 삶을 살며 자신의 치유의 은사를 병든 사람을 치유하는 선한일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특히 출산 중 사망한 아내 우스티나와 아들을 위한 그의 끝없는 사랑과 죄책감.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그의 헌신은 종교를 떠나 사랑,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작품은 펼쳤다 덮을 때 거대한 나무의 사계절을 본 듯, 그리고 웅장한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한 듯 강렬하고 깊은 울림을 느꼈다. 가슴이 먹먹 했지만, 한편으론 행복했다.
아, 삶은 이토록 신성한 것이구나.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에서 신성함을 발견할 수 있구나. 너무 늦지 않게 이 책을 만나 다행이다. 인생의 방향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 어디에 힘을 주고 어디서 힘을 빼야 할지 고민하는 밤이 될 것 같다.
(책 속의 문장수집)
"우리 모두는 아담이 간 길을 가고 순결을 잃으면 비로소 우리가 언제가는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단다. (...) 죽음은 아픈 이별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거라 . 죽음으로써 해방되는 기쁨도 누리게 될테니 말이다."(p49)
저는 이제 삶이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삶은 모자이크와 유사해서 여러 조각으로 흩어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p494)
수백만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삶의 모습이 그러하듯 그의 삶은 어지러이 움직였지만 동시에 이안에는 어떤 통일된 방향성이 존재했다. 라우루스는 삶이 시작 지점을 향해 이동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p502)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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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약제사이자 치료사에서 시작해 순례자였다가 성자가 된 아르세니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다. 인생에 있어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평생을 속죄하며 구원을 갈구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환상적이면서도 때로는 처절하게, 때로는 아름답게 서술하면서 언어, 역사, 신앙과 종교, 시간의 영원성, 존재의 가치, 우주의 질서 등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고찰한다
※ 출판사 지원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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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나야 폴라냐 문학상, 빅 북 어워드, 리드 러시아 어워드 수상작, 뉴 스테이츠먼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작품을 만나본다.
***** 출판사 도서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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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도서 . 1400년대 흑사병이 유행하던 중세 러시아의 루키나 마을에서 태어난 아르세니는 할아버지로부터 약초의 효능을 배워 사람들을 치료하며 살아간다. 그의 마법 같은 의술은 사람들의 신망을 얻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임신한 몸으로 나타난 우스티나라는 여인을 돌보며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가 아이를 낳을 때 제대로 처치하지 못해 그녀는 아이를 낳다 아이와 함께 죽고 만다. 정작 자신이 사랑한 여인을 죽게 만든 죄책감에 빠진 아르세니는 집을 나와 유럽을 떠돌아다니면서 회개와 연인 우스티나와 그의 아들의 구원을 위한 수도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 그는 여러 시대를 살면서 서로 다른 네 개의 이름으로 불렸다. ? 오만한 마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부인하며 마치, 네 명의 인생을 살듯 아르세니는 유로디비 우스틴, 친구 암브로조의 이름을 딴 암브로시우스, 그리고 수도자 라우루스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인생을 살아간다. 의술을 펼치며 명성을 얻지만 부유와 편리한 삶을 탐하지 않는다. 다양한 인연과 죽음을 마주하며 그의 삶에 대한 성찰은 깊어간다. 그의 인생은 선한 희생을 통한 삶과 죽음, 믿음과 구원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여정이었다. 삶 속의 시간은 선형적이 아닌 와선을 그리며 순환하는 원을 그린다. 우스티나와 그의 아들은 마지막 아나스타시야와 그의 아들과 대칭을 이루고, 늙은 라우루스가 자신의 모습에서 할아버지 흐리스토포르를 본 것도 대칭을 이룬다. ? 라우루스는 삶이 시작 지점을 향해 이동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삶은 모자이크 같다. 처음과 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수없이 만들어낸 조각들(만남, 사건, 등)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모자이크를 만들어 나간다.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삶은 신비 자체다. #커다란초록천막 을 번역한 승주연 역자의 번역도 매끄럽고 좋았다. 번역이 좋았던 것도 이 책을 온전히 즐기는데 한몫했다. ?? ??416p 150킬로미터->150미터가 아닐지.. ??'마치 내가 방금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니라 어른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는데 지금껏 내 삶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살고 싶은 걸까? 혹은 기억이라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으니 지금까지 겪은 것 중에서 좋은 것만 기억하고 싶은 것일까? 내 기억은 이따금 나를 버리며, 머지않아 나를 영원히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잊히는 것만으로 용서와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은 사실과 다르며 내 질문도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다. 내 삶에서 가장 큰 행복이자 고통인 우스티나 없이는 내 구원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느님,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제게서 우스티나를 구원할 희망이 존재하는 기억을 앗아 가지 말아주십시오. 만약 제 영혼을 거두시어 당신께로 인도하신다면 부디 제게 자비를 베푸시어 그녀가 이 땅에서 한 일로 인해 심판하지 마시고, 그녀를 구원하고 싶어 한 제 간절한 바람으로 심판하여주십시오. 그리고 제가한 일 중 얼마 안 되는 착한 일은 그녀가 한 것으로 기록해주십시오. (213p) ??알고 보니 사건들이 늘 시간 안에서 흘러가는 것은 아니더군. 이따금 사건들은 독자적으로 흘러가곤 하오. (256p) ??"내가 좀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해볼까 합니다. 나 역시 시간이 없는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알 수는 없을 테니까요. 내 생각에 시간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며, 우리가 혼돈에 빠지지 않기 위함인데, 인간의 의식은 모든 사건을 동시에 기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나약함으로 인해 시간 안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345p) ??"담수가 염분이 있는 바닷물로 유입되는 것은 이 세계의 달콤함이 결국은 짜고 쓴 것으로 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395p) ??"바로 그겁니다. 기하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시간의 움직임은 와선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복이긴 하지만 무언가 새롭고 조금 더 높은 수준에서의 반복인 것입니다. 혹은 새로운 사건을 겪긴 하지만 완전히 새롭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겪은 일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462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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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페스트가 창궐하던 15세기 중세 러시아를 배경으로, 의사에서 성자로 거듭난 인물의 이야기를 거대한 담론으로 시작한다. 중세 성자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러시아 문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 누구라도, 작가의 깊은 이해도와 독보적인 서사 형식으로 그의 세계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아르세니는 역병이라는 고질병으로 부모를 잃고, 마을의 약제사에게 약초술과 의술을 배운다. 그의 신들린 듯한 의술로 마을 사람들과 주변인들을 치료해 주면서 명성이 점점 높아진다. 마치 우리나라 ‘허준’이 유익태 선생께 의술을 배워 청출어람의 경지를 넘어선, 타인에게 ‘의’를 베푸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정작 그에게 중요한 인물인 사랑하는 연인과 아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으니, 그에게 아무리 훌륭한 의술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자책과 죄의식이 그를 사로잡았을 것이다.
어떻게 그는 자기 죄를 벌했을까. 본질적인 자신이기를 포기한다. 자신의 아이덴티티인 원래 이름을 포기하고, 낯선 이름으로 새 인생을 펼치려 타지를 떠돌며 과거를 돌아보고, 죄를 사하고자 한다. 그 길이 너무나 고단하고 애처로우며 힘들지만, 자신을 찾는 역설적인 상황으로 되려 그를 구하고자 한 것.
때로는 순례자와 희생자의 모습으로 마치 구원의 상징인 성자로 비치는데, 바로 이 점이 하등의 인간인 우리가 삶을 회고하게 한다. 우리는 자신의 죄를 씻고, 진정한 구원을 받기 위해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는가? 진정 그 행동은 자신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타인을 위한 것인가?
그가 아무리 성자로서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핍과 감정을 가진 어쩔 수 없는 인간임을 확인하는 순간,그를 더 이상 신(神)적 인물이 아닌 '결핍 투성의 나의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그래, 아무리 고결하려 해도 당신 또한 어쩔 수 없는 인간이므로.
결국 우리네 인간은 죄를 짓고 사는 공동의 운명을 갖고 태어났으며, 그 오점을 만회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조금 더 성숙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역사적으로 되풀이하지 않는가, 싶은 것이다.
94. 그는 몇 시간이고 같은 자세로 우스티나를 예술 작품 보듯 감상하곤 했다. (…) 다시 머리를 풀어 헤치고 머리카락을 천천히 빗으로 빗어줬다. 머리카락이 호수이고 빗이 작은 돛단배라고 상상하면서 말이다. 황금빛 호수를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그는 그 빗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는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자신이 구조되는 것이었다.
494. "저는 아르세니였고, 우스틴이었고, 암브로시우스였으며, 이제는 라우루스가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 기억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저는 서로 다른 시대의 저였던 사람들과 저를 더 이상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삶은 모자이크와 유사해서 여러 조각으로 흩어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구원받고, 타인과 함께 희망을 찾는 삶을 이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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