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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정체가 뭐니』/ 이서영 동시집/ 브로콜리숲/ 2023
이서영 시인의 신간 『너, 정체가 뭐니』가 브로콜리숲에서 출간되었다. 갑자기 확 추워진 날씨에 따스한 난로 같은 동시집이다. 이서영 시인의 눈길과 마음이 닿아 한 권의 동시집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전 괴산 산막이옛길을 같이 걷고 버스 옆자리에 앉아 잠시 얘기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본 이서영 시인의 모습과 동시집에 실린 시가 참 닮아있다. 작가 소개에 “약하고 작고 여린 존재를 생각하며 글을 씁니다”라는 문장만 봐도 이 동시집의 성격이 나온다. 시인은 2013년 천강문학상 아동문학부문 우수상을 받았고 동시집 『소문 잠재우기』를 냈다.
궁금한 독자를 위해 몇 편 소개해 본다.
아빠가 코 곤다. 아빠가 잠꼬대한다.
자다가 깬 엄마 “아휴,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네!”
강아지가 아빠처럼 코 곤다. 강아지가 아빠처럼 잠꼬대한다.
자다가 깬 엄마 털을 쓰다듬으며 “고놈 참, 잘 자네.”
- 「이랬다가 저랬다가」 전문 (19쪽)
안 그런 집도 있겠지만 엄마들은 자식과 남편을 대하는 온도 차가 크다. 이 시에서는 자식이 아니라 강아지지만 읽는 독자들은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웃픈 시지만 그래도 이 땅의 많은 아빠들은 힘을 내시길~ 나이 들면 옆에 있는 사람이 제일이라는 말도 있으니.
이발소 쉬는 날은 주인 잃은 강아지 이발하는 날
몰티즈 푸들 시츄 줄지어 섰다.
소문 듣고 온 강아지 손님들 이발소 아저씨 손이 바쁘다.
- 「우리 동네 이발소」 전문 (24쪽)
사람들 머리뿐만 아니라 강아지 미용도 배우신 분인가 보다. 저런 이발소 아저씨가 계시니 세상이 환하다. 마음까지도 환해진다. 저런 이발소를 발견한 시인의 눈도 참 밝다.
봄 산은 할머니의 친정
올해도 할머니께 취나물, 머위, 두릅, 원추리 한 아름 안겨주었다.
- 「봄 산」 전문 (66쪽)
딸은 친정에 가면 이것저것 챙겨오기 바쁜데 할머니의 친정은 산이라 집하고는 비교가 안 되겠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걸 눈치 안 보고 가져올 수 있으니 친정이라 부르는 봄 산의 품이 참 넓다. 봄에는 조금만 바지런하면 산나물 이것저것 뜯어올 수 있는 곳이 산이고 있는 대로 내어주는 곳이 산이다. 모든 이들에게 친정이고 본가고 그렇지 않을까.
할머니 지팡이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지팡이는 할머니
젊었을 때보다 더 자주 잡는 손
서로에게 꼭 필요한 따뜻한 지팡이
- 「지팡이 손」 전문 (74쪽)
제일 처음에 소개한 「이랬다가 저랬다가」와 상반되는 시지만 나이 들어서 다정하게 손잡고 다니는 분들을 보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다. 모르는 분들이지만 한참 동안 그분들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나란히 서로 의지해 가는 모습이 젊은 날 힘겨루기 하느라 날을 세우던 그런 시절을 지나 기대도 아프지 않는 사이로 늙어가며 서로에게 지팡이가 되어 준다. 시인의 말처럼 작고 소소하고 약한 것들이 세상이 밝히는 모습을 이 동시집에서 읽을 수 있다. 그 때문에 더 예쁜 동시집이다. 『너, 정체가 뭐니』에서의 정체는 직접 읽어보시라고 밝히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