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으로 나온 애트우드의 『고양이 눈』 은 화가인 일레인 리슬리의 성장을 그려 낸 ‘예술가 소설’ 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성장, 예술가란 키워드를 기억해두고, 책의 제목인 '고양이 눈' 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서 책을 읽어가며 고양이 눈이 등장하는 장면을 기다렸다. ![]()
책 소개를 통해 이미 주인공이 화가임을 알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 초반에서 회고전을 준비하는 장면이 나온다. 1권은 7부에 36장의 이야기가 나뉘어 전개되고 있는데, 4부의 16장 즈음에 나오는 주인공의 인터뷰 장면에서 유년시절은 1940년대였으며, 그녀가 페미니스트 화가라고 불린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1930년대 말 문화의 불모지였던 캐나다에서 출생한 여성이 예술가로서 입지를 다져 가는 과정이 오롯이 녹아있는 소설이다. 작가인 마거릿 애트우드 Margaret Atwood 또한 1939년 11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태어나 온타리오와 퀘벡에서 자랐다. 애트우드의 가족은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매년 봄이면 북쪽 황야로 갔다가 가을에는 다시 도시로 돌아오곤 했다고 한다. 주인공 일레인의 아버지 또한 곤충학자이고, 작가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게 하는 풍경들이 1권에서 묘사되고 있다. 『고양이 눈』 은 '변형된 작가의 자아인 일레인의 삶을 그린 자전적 소설' 이라고도 말해지는 이유다. 이야기는 노년의 일레인의 현재와 유년시절의 모습이 교차되며 흘러가며,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숲을 돌아다니는 유목민 같은 삶을 살던 일레인은 아버지가 토론토에 정착한 이후에야 '소녀들, 살아있는 진짜 여자아이들(p90)' 사이에 있게 된다. 오빠와 자유롭게 자연 속에서 뛰놀았던터라 여자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고, 그들 사이에 통용되는 관습을 잘 알지 못한다. '남자아이들 사이의 암묵적인 관습은 잘 알고 있지만 여자아이들과의 관계에서는 금방이라도 뜻하지 않게 처참한 실수를 저지를 것만 같은 느낌(p91)'이라고 토로한다. 그런 일레인에게 캐럴, 그레이스 그리고 코딜리어라는 친구가 생긴다. 일레인의 친구들은 당대 사회의 관습과 규범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가정에서 자란 이들이다. 즉 가부장적인 가정환경, 독실한 신자로서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가고, 옷이나 가구들이 암묵적으로 비슷하게 유지되는 그런 가정. 그들에게 처음에 일레인의 가정의 모습은 신기하게 보였을테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레인에 대한 교묘한 무시가 시작된다. 따돌림보다는 은근한 학대에 가깝다. 요즘으로 치면 학교 폭력이라고 부를 일들이 벌어진다. 이 때의 일레인은 여덟 살에서 곧 아홉 살이 되었던 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너는 아버지에게 대답조차 하지 않았어. 이게 뭘 의미하는 지 알고 있겠지? 아무래도 너는 벌을 받아야 할 것 같아. 무슨 변명할 말이라도 있니?(p212)" 이것이 친구라는 코딜리어가 일레인에게 하는 말이다. 코딜리어의 행동은 가스라이팅에 가깝다. '코딜리어는 내 친구다. 그녀는 나를 좋아하고 나를 돕고 싶어하며,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내 친구들, 여자 친구들이며, 내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나는 여자 친구가 있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잃게 될까 무척 두렵다. 그들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고 싶다.'(p218) 라는 일레인의 속마음이 내 가슴을 저민다. 이 때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던 어린 일레인을 지켜주는 부적 같은 존재가 '고양이 눈' 이다.
코딜리어의 악의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들의 잔인성은 점점 더 심해져 일레인을 큰 위험에 처하게 되고, 그제서야 일레인은 깨닫는다. '그들은 내 가장 친한 친구들이 아니며 심지어 친구도 아니다. 나를 그들에게 붙들어 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자유롭다'(p344) 1권의 끝에서야 나오는 문장이다. 그러나 일레인의 영혼에 잔흔이 남아있다는 것은 독자들은 이미 안다. 노년의 일레인의 모습에서 '코딜리어' 란 단어가 계속 언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1권의 끝에서 일레인은 더 이상 얌전한 '여자아이' 보다는 오빠의 만화책에 나오는 인물처럼 고층 건물에 올라가고, 망토를 두르고 날아다니고, 범죄자들을 빨갛고 노란 빛을 뿜는 주먹으로 때려눕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그런 일을 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식으로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 p355 작가는 전작들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소녀들 간의 갈등을 작품 중심에 놓고, 그 모습을 당시의 사회를 들여다보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유년기의 이야기였던 1권이었으니, 2권에서는 일레인의 청소년기 이야기가 펼쳐지려나? '고양이 눈' 은 여전히 그녀의 부적인 것일까. 매우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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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작가인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 <고양이 눈>을 읽기 전에 <시녀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워낙에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지만 영화 '시녀 이야기'를 먼저 보았다. 그래서 더욱 이 <고양이 눈>이라는 작품을 기대했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곤충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년기를 퀘벡주 등지의 시골에서 보냈다고 한다. 유년기를 시골에서 보낸 마거릿은 당시의 소녀들과는 달리 자연에서 자유롭게 자랐을 것이다. 그런 카거릿 애트우드의 유년기부터 여성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소설 <고양이 눈>의 주인공 '일레인'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나' 일레인은 이름 있는 화가로 생활하고 있다. 전남편 존과의 사이에 두 딸이 있고 딸들은 성인이 되었다. 현재 남편 벤과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고 개인전을 위해 토론토로 가자 어렸을 때 만났던 친구 코딜리아를 떠올리게 된다. 아마 일레인은 어릴 적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토론토에서 지내던 때가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코딜리아는 일레인이 토론토에 정착한 후 처음 사귄 친구였다. ![]() 일레인과 오빠 스티븐은 부모님과 함께 떠돌이 생활처럼 지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친구였다. 그리고 토론토에 살게 되면서 일레인은 자신의 가족이 다른 아이들의 부모보다 가난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매년 받는 선물은 소박했고 일레인의 옷은 대부분 스티븐 오빠가 입던 옷을 물려 받았다. 그렇다보니 남자 아이의 옷을 입고 다니기도 했고 여자 아이들은 일레인의 모습이 자신들과 다르며 일레인 역시 자신과 여자 아이들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릴적 친구로 코딜리아뿐만 아니라 캐럴과 그레이스도 있었다. 캐럴의 부모님을 침실을 보며 일레인은 자신의 부모님처럼 큰 침대에서 함께 자지 않고 두 개의 똑같은 침대에서 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가정의 모습을 일레인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자신의 가정과 다른 가정이었다. 어른이 된 일레인은 계속해서 코딜리아를 떠올리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한다. <고양이 눈>은 일레인의 토론토에서 지내던 과거 회상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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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눈1』 마거릿 애트우드(저자) 민음사(출판) 여성주의 작가로도 인식된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 고양이 눈은 유년기 시절 겪었던 상처들을 되새기며 진정한 고양이 눈을 완성시킨 예술가이자 화가인 일레인 리슬링의 성장을 그려낸 소설입니다. 고양이 눈은 어린 시절 주인공 일레인 이 구슬치기를 하면서 구슬에 새겨진 모습을 비유해 내며 그 안에 담긴 또 다른 의미들을 소설을 읽어가며 알게 됩니다. 토론토로 이사 오기 전까지 행복했다던 일레인에게 토론토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요? 화가인 그가 개인전을 열기 위해 토론토로 오게 되면서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는 펼쳐집니다. 특히 여자친구였던 코딜리아에 대한 그의 마음이 너무 상상외로 잔인했기에 둘 사이에 무슨 일들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고스란히 성인이 되어서까지 마음속 깊이 새겨져 오히려 그 마음이 독이 되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되는 시간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여자친구들과의 사건들에 대하여 일레인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요? 현재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집단 따돌림과 왕따 괴롭힘 등이 있기에 그걸 생각하니 일레인의 마음이 더 안쓰러웠습니다. 왜 늘 가해자는 훗날까지도 그리 떳떳한 것인지... 그들에게는 일말의 양심도 없는 것인지. 그렇기에 더 벌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따라서 여기저기 떠돌던 어린 시절의 기억, 토론토로 이사 와 정착하게 되지만 또 다른 낯선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일상들은 일레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요? 작가 스스로 고양이 눈은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19세기의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한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아무도 어린 시절 일레인을 보호해 주지 않았지만 고양이 눈만은 그를 보호해 주고 지켜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술가가 되어 유년기의 자신의 모습 미쳐 잊고 있었던 자기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여정을 2권에서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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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거릿 애트우드의 단편 모음집이 최근 출간되었다. 사실 이름은 어딘가 모르게 낯선데 그녀의 작품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작가이다. 그녀의 대표작을 몇 권 살펴보면 『시녀 이야기』를 비롯해 『도둑 신부』, 『눈먼 암살자』, 『증언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언급된 두 작품으로는 무려 두 차례나 부커상을 수상했을 정도니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작가인 셈이다. 이런 마거릿 애트우드를 수식하는 단어는 캐나다 최초의 페미니즘 여성 작가라는 것. 남성 중심의 사회 속에서 여성의 입장을 보여주되 그것을 파괴적이지 않게 그려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데 그런 작가의 작품들 중에서도 대표작이라 불리는 『고양이 눈』이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전 2권)으로 출간되었고 만나볼 수 있었다. 작품 속 주인공은 일레인이라는 여성이다. 그녀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서사라기 보다는 현재의 시간인 노년과 과거의 어릴 적 시간이 교차하면서 어린 시절 곤충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 속에서 살았던 그녀가 토론토에 머물게 되면서 일종의 가족과 자연이 아닌 진정한 사회 속으로 발을 내딛고 그 과정에서 또래의 소녀들과의 관계를 맺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실 쉽진 않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이미 그녀들 사이에 존재하는 암묵적인 룰을 일레인이 과연 알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 속 더욱 주목을 끄는 것은 1930년대 말의 뚜렷한 사회 분위기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묘사가 나오기도 하는데 가정에서조차도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일레인의 가정은 그들이 보기에 다소 별종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결국 그런 시선은 처음은 호기심이였겠지만 우리는 나와 다른 존재에대한 무시를 넘어 폭력에 가까운 따돌림을 알기에 일레인 역시 그런 폭력에 가까운 따돌림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그 과정에서 일레인이 사귀게 된 코딜리어와의 관계 속에서 오는 불안감, 이 모든 것들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마음이 표출되는 것이 고양이 눈이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 고양이 눈이라는 것이 지니는 상징적이고도 복합적인 의미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낯선 환경보다 더 힘들게 한 것은 이미 고착화되어 있는 사회의 분위기 속 이질적 존재라는 것에서 오는 배척과 악의이며 작품은 그 과정에서 일레인이 드디어 깨닫게 되는 배신이라고 치부하기엔 복잡 미묘했을 감정적 변화이다. 과연 변화가 2권에서는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된다. ![]() #고양이눈 #마거릿애트우드 #민음사 #민음사세계전집 #민음사세계문학전집 #세계문학 #성장소설 #사회구조탐색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리투서평단 |
![]() 문학, 페미니즘, 인권, 환경, 등 캐나다 거장인 애트우드는 방대하고 풍부한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다작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마거릿 애트우드 작품을 접해본 적이 거의 없다. 민음사 패밀리데이 행사에 구매한 < 홍수의 해>작품을 읽고, 모호한 경계 선상에 놓여 있는 언어들을 보고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거릿 애트우드니까, 그녀의 대표작인 <고양이 눈>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작품은 인생인 중반기를 지나고 있는 화가인 일레인이 개인전을 위해 고향인 토론토로 향하며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한 곳에 곤충학자인 아버지 덕분에 한곳에서 정착한 적이 없던 일레인 가족들은 토론토라는 도시로 이사하게 된다. 공사를 맡았던 업자가 파산함으로써 전쟁이 휩쓸고 간 것처럼 집 내부와 외부는 엉망진창이다. 학교는 집과 상당히 멀어 통학버스를 이용하였고, 같은 학년인 캐럴과 같이 통학하며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캐럴은 학교가 끝난 후 일레인을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캐럴의 집은 일레인 집 형편 보다 나았다. 캐럴 역시 일레인 집을 방문했고, 남들로부터 자신이 우월하게, 경외하게 보이기 위해 도시 밖에서 지내온 일레인 가족들의 처지를 가미하여 전교생에게 말한다. 캐럴에게는 또 다른 친구 그레이스가 있었다. 이들은 토요일마다. 모여 놀이를 즐겼는데, 놀이의 주도권은 언제나 그레이스였다. 시간이 지나 소녀들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 돌아온 일레인은 코딜리어를 만나게 된다. 코딜리어는 가정부까지 고용하고 있는 부잣집에서 살고 있다. 이들 친구는 코딜리어 주도하에 일레인을 이유 없이 괴롭히기 시작한다. 스스로 발의 살갗을 벗겨내며 견뎌내고 있던 일레인은 피가 얼어붙은 강가에 홀로 남게 이후 친구들을 외면하고, 어울리지 않게 되면서 [고양이 눈 1] 작품은 마무리된다. [고양이 눈 1] 작품은 난해하지 않고 큰 줄기가 있어 길을 헤매지 않았고 가독성은 보통이다. (마거릿 애트우드 다른 작품도 읽을 자신감이 생겼다. 뿜뿜!!) 작품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나'와 만나게 된다. "우리는 보다 인내심 있게 집중할 수 있죠. 접시에 담긴 음식을 남기지 않고, 끈을 모아 두죠 우리는 주어진 형편대로 꾸려 가며 살아요."(P162) 어린 시절 집안의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당시 아파트에 살고 있던 친구 집을 방문한 이후부터 집이 부끄럽기 시작했다. 친구들도 초대하지 못했고, 어린 마음에 친구들에게 다른 집을 우리 집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것들이 나의 성장과정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모르지만 요즘따라 집을 꾸미는데 물욕이 많아졌다. 소속감은 연령대를 가리지 않는다. 부모들에 의해서 혹은 비슷한 거주지 또는 같은 학원을 다니는 등 여러 가지의 이유로 무리를 지어 논다. 그 무리 안에는 강자가 있고 약자가 존재하며 무리 밖에 퇴출되지 않도록 미묘한 신경전이 있기 마련인데 남성보다는 여성들 무리에서 더욱더 치열하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페미니즘 작가답게 서로를 보듬고 챙기는 연대하는 여자들을 소설에서 보여주었지만 이번 작품은 결이 다르다. 일레인이 그러하듯 무리 밖으로 밀려나갈 때 많은 이들은 저항보다는 자신으로부터 문제의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는 게 안타깝다. 앞으로 여자친구들과 일레인의 관계는 어떻게 흘러갈지 고양이 눈을 닮은 구슬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일지 생각하며 [고양이 눈 2]를 읽어야겠다. #고양이눈 #마거릿애트우드#민음사#독서카페#리딩투데이#리투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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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인과 리슬리, 그리고 코딜리어, 벗어날 수 없는 가족, 그리고 이상적인 이상향에 가까웠던 ‘여자친구’의 가스라이팅은 자존감 형성에 독약처럼 스며든다.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었던, 잔인한 어린 시절을 만들어주었던 성장 과정의 상처들. 그렇게 성격은 형성된다. 상처받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낼 수는 없을지도.
막연히 예술은 자기 표현의 절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자기 확신에 가득찬 사람만이 예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편견을 깰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자기 감정을 표현하고, 흘러 넘치는 내면의 회복 욕구가 그녀의 그림이 된다. 자신을 드러내는 일과 숨기는 일이 공존하는 그림이 궁금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의 그림을 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나는 일레인의 화가라는 직업이 자꾸 부러웠나보다. 계속 회상하고 있는 일레인의 초연함을 더 숙고했다. 그녀는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든 온전히 자신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그리고, 그리는 일에 대한 단상, 그림은 정말이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을 완벽히 옮기기가 어려워 타협하게 되는 순간은 고통스럽다. 그래서, 그림이 어려웠다. 무작위에 가까운 그림을 완성이라고 부를 수 없었기에. 하지만, 완벽해야 한다는 그 강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나의 불완전한 표현들을 결코 내놓지 못했던 건, 어떤 자기 검열이었을까. + 어른의 역할 어린 시절의 상처는 필연적이라 하더라도, 어른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 최근에도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인데, 누가 무슨 역할을 해야 할까? 가해자쪽 부모가? 피해자쪽 부모가? 어른의 역할이 아이들에게 중요하기나 할까?
1권도 강렬한 경험인데, 2권은 어떤 이야기의 완성을 보여줄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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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편의 집에 머무르며 유년시절의 기억을 하나 하나 떠올리는 일레인 .. 그녀의 유년 시절 추억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제 어린 시절의 모습도 생각납니다. 일레인은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유랑하는 삶을 살다가, 아버지가 대학교수로 일하게 되면서 토론토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동안의 방랑하는 삶에서 정착하는 삶을 살게 되면서 겪게 되는 생소한 생활들. 그 중에서도 가장 생소하면서 어색한 것은 바로 여자친구들과의 생활. 특히, 여자친구 '코딜리어'의 "가스라이팅"에 힘들어하는 일레인. 일레인은 자신이 여자친구들과의 관계를 잘 이겨내지 못하는 것 자체에 좌절을 느낍니다.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스스로 이겨내려고 하는 일레인. 아니 과연 이겨내려고 한 것인지.. 죽거나 기절하는 것으로 이를 회피하려는 일레인. 이야기는 일레인의 성장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워낙 섬세하게 그리고 세세하게 묘사하다보니... 나는 유년 시절 어떠했는가를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됩니다. 작품에서는 아이들의 놀이로 '구슬치기'가 나옵니다. 저는 한 번도 구슬치기를 해 본적은 없지만 영롱한 색깔을 발하는 구슬이 예뻐서 모은 적은 있습니다. 이런 저처럼 일레인도 "고양이 눈"과 같은 구슬을 모으길 좋아합니다. 특히 푸른색 '고양이 눈'은 일레인에게 용기를 주고, 버틸 힘을 안겨주는 부적과도 같습니다. 푸른색 고양이 눈을 주머니에 넣고, '코딜리어'에게 대항하는 힘을 갖고자 하는 일레인. 그리고 작품에서 가장 화가 났던 스미스 부인과 그녀의 언니 '밀드레드' 와의 대화 장면. 작품 중간에 "일레인 리슬리는 페미니즘 작가"라고 규정해놓고, 그 틀을 벗어나는 답변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노를 표하는 기자의 모습처럼 '스미스 부인'도 '일레인 가족'을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는 인물들로 규정하고 그들에게 분노합니다. 그 가운데, 일레인에게 벌어지는 친구들의 일탈 행위를 알면서도 당연히 받는 벌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경악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어른이라는 자가 그럴 수가 있는지 적어도 어른이라면 아이에게는 그래서는 안되는 거 아닌지.. 자신만의 믿음, 확고한 신념 체계를 가진 자들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척할 때 얼마나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자신의 딸인 그레이스가 친구인 코딜리어, 캐롤과 함께 일레인을 괴롭힌다는 것을 알았다면 스미스 부인은 그래서는 안되는 거 아니었을까요? 아이들은.. 그래.. 아이니까. .. 아직 모르니까 ... 그렇다고 이해한다고 쳐도.. 어떻게 어른이 그럴 수가 있는지.. <고양이눈 1권>에서 가장 화가 나는 장면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코딜리어의 행동. 코딜리어의 집안에 대해서는 잘 나오지 않아서 확실하진 않지만 코딜리어의 그러한 행동들은 집안의 누군가로부터 배운 것은 아닌지.. 그래서 뒤에서 '일레인'이 코딜리어의 모습을 "연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누군가를 따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고양이 눈 1>편을 읽었는데.. 정말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습니다. 어찌보면 여자 아이들간의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은 듯 보이는 가스라이팅이라고도 볼 수 있는 내용을 일레인의 심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현재의 '일레인'이 회고하는 모습을 오고가는 표현으로 인해.. 더 집중하게 만듭니다. 역시 "마거릿 애트우드"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듭니다. 다행히 1권에서 더 이상 '코딜리어' 패거리의 가스라이팅을 당하지 않으면서 이야기가 끝납니다. 2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게 될까요? 읽으면서 내내 나의 유년시절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 유년시절 친구들과의 좋은 기억뿐만 아니라 서로 간에 싸우고 토라졌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그떄 왜 그랬을까, 그리고 참 유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보면 소소하기 그지 없는 이 추억을 이렇게 작품으로 승화시킨 작가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얼른 2권을 읽으러 가봐야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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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고양이 눈 1』 ‘시녀들’로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고양이 눈>을 민음사 세계문학으로 만났습니다. 표지와 제목만 보고는 어떤 내용의 책일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요. 책을 읽다 보면 일레인이 고양이 눈 모양의 유리구슬을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요. 애트우드의 가족은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매년 봄이면 북쪽 황야로 갔다가 가을에는 다시 도시로 돌아오곤 했다고 하네요. 이런 생활로 인해 어울릴 친구가 별로 없었던 애트우드는 독서가 유일한 놀이였다고… 소설 속 일레인의 아버지는 작가의 아버지를, 정착하지 못한 생활을 했던 것도, 페미니즘 작가로 평가받는 자신을 페미니즘 화가인 일레인에 투영한 것도.. 자전적 소설이라 말하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페미니즘 화가 일레인 라일리는 회고전을 앞두고 토론토로 돌아옵니다. 전 남편 집에서 머무르는 일레인은 과거 유년 시절을 떠올리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녀가 떠올리는 유년 시절 친구 코딜리어는 유쾌한 추억 속 친구가 아니었어요. 이야기 시작부터 과거를 회상하며 ‘코딜리어’의 이름이 언급되는데요. 잃어버린 절친을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의 예상은 철저히 빗나가고 말았네요.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여기저기 떠도는 생활을 했던 일레인 가족. 아버지가 대학교수로 일하게 되면서 토론토에 정착해 살게 되는데요. 그때 처음으로 오빠가 아닌 여자친구들을 사귀게 됩니다. 여자친구들과 놀아본 적 없는 일레인이기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는데요. 다행히 캐럴, 그레이스 그리고 코딜리어라는 친구가 생깁니다. 친구들과 지내는 모습, 친구들 가족들의 모습 등을 통해 그 시대의 사회적 관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게 학대를 한다거나 증거를 댈 수 있는 괴롭힘이었다면 누군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캐럴, 그레이스, 코딜리어는 은근히 일레인을 괴롭히는데요. 가스라이팅을 비롯해 대놓고 반성하고 잘못을 스스로 찾아내라는 등 따돌리는 모습에 한숨이 나오기만 했어요. 특히나 이 아이들이 이제 아홉 살, 열 살 밖에 안 된 정말 어린아이들이란 사실이었고, 그들이 저지른 행동이 너무 악의적이라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어른들이 묵인하고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나쁜 행동을 저지르는 모습에도 일레인은 그들을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고 그들을 잃게 될까 두려워했지요. 도대체 왜 그 어린아이들은 일레인에게 그렇게 악의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엔 그들과의 관계가 끊기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1권에서 코딜리어와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인지 2권에서도 일레인에게 영향을 미칠지 2권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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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일레인을 1인칭 화자로 하는 소설은 화가로 성공한 일레인의 현재와 유년 시절의 과거를 오가며 서술한다.
※ 리딩투데이를 통한 도서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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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눈1 _민음사 세계문학전집-424
이 작품은 화가 일레인 리슬리의 예술가로서의 성장을 그려낸 예술가 소설입니다. 권위적인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재치 있는 환상 소설을 펴내며 캐나다 최초의 페미니즘 여성 작가로 평가받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대표작 『고양이 눈』이 세계문학전집 424, 425번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오래전에 민음사 모던 클래식 작품으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애트우드의 대표작인 『고양이 눈』은 화가 일레인 리슬리의 성장을 그려 낸 예술 소설입니다. 변형된 작가의 자아인 일레인의 삶을 그린 자전적 소설에서 애트우드는 1930년대 말 문화의 불모지였던 캐나다에서 출생한 여성이 예술가로서 입지를 다져 가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유년기 유희의 대상이자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 어린 일레인을 지켜주는 부적 같은 존재 『고양이 눈』 기대가 되는 작품입니다.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숲을 돌아다니는 유목민 같은 삶을 살던 일레인은 개인전을 위해 고향인 토론토에 정착한 이후에야 책 속에서 보던 진짜 여자 친구를 사귀에 됩니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코딜리어가 주도하는 잔인한 조정과 교정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는 일레인 가족의 생활 방식이 1940-1950년대의 편협하고 가부장적인 토론토 중산층의 행동 양식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소녀들은 이턴 카탈로그를 오려 붙이고 종이 인형을 갖고 노는 자신들의 사소한 놀이조차 당대 사회의 관습과 규범의 산물이라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합니다. 일레인의 외모, 행동거지에 대한 지적들이 이를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일레인은 자신이 여자 애들 흉내를 내는 것이라고 느낍니다. 이런 사회에서 아버지들과 종교의 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큰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열렬한 기독교 신자인 그레이스 어머니는 일레인과 그녀의 가족이 이교도적이라는 이유로 여자아이들의 잔인한 행동을 묵인하고 코딜리어는 가부장적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좌절감을 일레인에게 쏟아붓습니다.
코딜리어가 내게 그렇게 위세를 부리던 그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시기, 나는 발의 살같을 벗겨 내곤 했다. 주로 자야할 밤에...
연작의 제목을 ‘압력솥’이라고 붙인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제작된 시기과 그 당시 유행하던 경향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대지의 여신에 대한 것으로 생각 했으나 돌아가신 어머니가 얼마나 집안일을 싫어했는지 생각해 보면 우수꽝스러운 발상이라고 했고 이것이 여성의 노예화에 대한 것이라 생각 했으니 어머니와 사별 직후 이 작품을 그렸습니다.
“나를 내버려 두지 말아요. 맙소사, 제발 나를 혼자 남겨 두지 말아요.” 그녀의 눈은 감겨 있고 목소리는 순전한 곤궁함, 순전한 비통함으로 가득차 있다. 그것은 나의 가장 약한 부분, 가장 슬픔에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다. 그러나 나는 결핍이 무엇인지, 상실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대리인에 불과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P.274 1권
고양이 눈은 유년기 유희의 대상이자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 어린 일레인을 지켜 주는 부적같은 존재로 잃어버린 과거를 망각에서 되살려 주어 삶 전체를 보게 만드는 제삼의 눈, 잃은 것, 부서진 것들을 되살리고 결합해 주는 상징입니다. 작가 애트우드는 이전 문학 작품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소녀들 간의 갈등을 작품 중심에 놓아 그것을 당대 사회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사용했습니다.여자 아이들은 문화에 새롭게 편입된 일레인의 낯선 시선을 통해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일레인을 희생자로 만드는 소녀들의 잔인성도 엿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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