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딜리어와 그레이스는 한 학년을 월반한 후 졸업해서 다른 학교로 진학하고, 시간이 흘러 일레인도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그런데 사립 여학교로 갔던 코딜리어가 퇴학을 당하면서 코딜리어의 학교로 전학오며 2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코딜리어는 열세 살이고, 일레인은 열두 살 무렵에서 시작한다.![]() 2권에서 둘의 역학관계가 미묘하게 변한다. 11학년이 된 일레인은 학교에서 입이 거칠기로 유명해졌다. '누군가 자극하기 전에는 험한 말을 하지 않지만, 일단 입을 열면 짧고 압도적인 말이 쏟아져 나온다. 우리 학교 여학생들은 내 험한 입을 조심하고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잠재적인 언어적 위협이라는 영기를 휘감고 복도를 걸어다니고, 아이들은 나를 조심스럽게 대한다. 그것은 만족감을 준다. 이상하게도 이 야비한 행동 때문에 친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아졌다. (p76)' 라는 일레인이 그 험한 입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대상이 코딜리어가 된 것이다. 일레인은 코딜리어에 대해 '코딜리어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무엇인가를,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어떤 역할이나 영상을 모방하고 있다. (p94)' 라고 표현하고, 그녀의 집에서의 식사장면 즉 '코딜리어 집의 저녁 식사는 두 종류가 있다. 그녀의 아버지가 있을 때의 식사와 없을 때의 식사. (p103)' 을 통해 코딜리어가 왜 그런 성격이 되어야 했는지를 암시한다. 코딜리어는 다시 전학을 가게 되고, 일레인은 미술을 배우기 시작하며, 남자를 만나고 결혼에 이르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고통스러운 관계에 대한 기억을 망각으로 덮어버렸지만, 그 경험은 일레인의 자아 형성과 사회적 관계, 나아가 이후 창작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일레인은 자신이 다른 여성들과 분리된 존재라고 생각하고, 관계를 보다 쉽게 맺을 수 있는 남성들과 어울리지만, 그들이 여성에 대해 가진 생각 때문에 또 다른 상처를 받는다. 작품활동에 있어서도 대중들에게는 페미니스트 작가로 알려졌지만, 정작 그녀는 '동시에 나는 그들의 확신, 낙관주의, 경솔함, 남성에 대한 대담무쌍함, 동지애를 부러워한다. 나는 군대가 용감한 노래를 부르며 소녀들같이 전장으로 향할 때, 옆에서 바라보며 겁쟁이처럼 손수건을 흔드는 사람과 같다. (p324)' 라고 고백한다. 이에 대해 번역자는 '주저하는 일레인의 모습을 통해 애트우드는 성별에 기반을 둔 단순한 권력 관계 규정에 의문을 표시한다.' 라고 소개하면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19세기의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한 애트우드의 말을 전한다. 이 작품에 대해서 여성들 사이의 갈등과 반목을 부각시킨다는 것을 이유로 반여성주의적 작품이라고 비판하는 비평가들도 있는데, 애트우드는 "여성을 그려 내고 그들의 문제에 관심을 둔다는 면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지만 여성들의 도덕적 우월성이나 그들만의 연대를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거부한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과 독서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주제다. 코딜리어가 황폐한 상태가 되었을 때 일레인은 도움을 주지 않고 외면하며 관계는 단절된다. 화자인 일레인은 과거의 이야기에도 종종 현재형을 쓰고 있다. 아마도 과거의 경험, 혹은 상처, 트라우마 등이 해결된 것이 아니라 일레인에게 있어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나타내주는 장치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어릴 적 일레인을 괴롭혔던 소녀들의 잔인성에 스며들어 있던 것은, 당시 토론토 백인 중산층 사회의 관습, 교육, 종교, 성차별이었으며, 그것들이 내내 일레인을 괴롭혀 왔는지도 모른다. 일레인은 자신의 회고전을 준비하며 문득, 복수는 의미 없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회고전에 걸린 자신의 작품들 사이를 걸으며 쏟아내는 생각들에서 그녀의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일레인에게 있어 코딜리어는 상처를 주는 가해자였다가, 괴롭힘을 받는 피해자가 되고, 예술 속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일레인이 자신에 대해 갖는 모든 이미지, 자기 의심, 두려움, 사랑받고 싶은 소망에 소환되며, 내면의 어떤 잔인함, 무자비함, 약간의 광기와 히스테리 등이 닮아있는 분신이 된다. 그래서일까. 후반부의 장면에서 일레인이 상상 속 코딜리어에게 전하는 말은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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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속 작가의 자전적 스토리를 풀어놓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1권에서의 고통스러운 어린시절을 지나 2권에서 그 어린시절의 가해자와 다시 친구로 마주하는 청소년기로 시작된다. 다시 시작되는 그녀와의 만남에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으나 그 모든 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현실감과 기시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락독서챌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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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눈 2』 코딜리어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은근한 폭력에 시달리던 일레인이 이제 서로 멀어지는 것 같은 분위기로 끝났던 1권에 이어 2권은 역시나 쉽게 끝나지 않은 두 사람의 새로운 시작으로 이야기의 막이 오릅니다.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코딜리어와 일레인.. 과연 코딜리어는 조금은 달라진 모습을 보일지 궁금함을 안고 2권을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때는 코딜리어가 열세 살, 일레인이 열두 살일 때입니다. 코딜리어와 그레이스는 월반 후 각자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했습니다. 일레인도 월반해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이유로 지금의 학교를 선택했죠.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이제 마주칠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코딜리어가 진학했던 학교에서 퇴학당해 일레인과 같은 학교로 전학 오며 함께 다니게 되었네요.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코딜리어와 일레인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것이었죠. "나는 입이 거칠기로 유명해졌다. 누군가 자극하기 전에는 험한 말을 하지 않지만, 일단 입을 열변 짧고 압도적인 말이 쏟아져 나온다."라고 할 정도였어요. 코딜리어에게 큰일이 벌어지고 일레인은 외면하면서 둘 사이 관계는 완전히 끊어지지만 일레인의 행동 또한 썩 바람직했다 여겨지지 않네요. 그 후 예술가가 되기 위해 나아가는 일레인의 모습이나 존과 조제프를 만나고, 딸에게 보이는 행동들 등등 과거의 악몽 같은 기억들이 영향을 미쳤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주변에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내 주변을 돌아보게 하네요. 일레인이 어릴 적부터 정착한 삶을 살아 친구와의 관계가 일반적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대로 된 친구를 만나고, 정상적인 사랑을 하고,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 달랐다면 일레인의 삶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궁금하네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된 이야기 속에서 지난날의 회상을 통해 일레인은 용서와 화해, 그리고 위로를 바라지 않았을까 합니다. 악몽 같은 시간을 함께한 인물이지만 가장 친한 친구였고, 예술의 한 부분이었던 코딜리어. 이런 아이러니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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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눈 2』 마거릿 애트우드(저자) 민음사(출판) 고등학교에 진학한 일레인과 일레인이 다니게 된 학교에 오게 된 코달리어가 그려집니다. 어린시절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었었던 일레인을 코달리어가 다시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홉 살 코달리어의 주도하에 친구들의 괴롭힘으로 힘들게 유년 시절을 지냈던 일레인을 걱정하는 그녀의 어머니의 모습도 함께 그려집니다.하지만 어머니의 걱정과는 다르게ㅔ 흔쾌히 그녀를 받아들이는 일레인...아픈만큼 더 성숙해진것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사람일텐데... 고양이는 제3자의 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까요? 읽으면서도 고양이 눈이라는 제목이 자꾸 떠올랐던 이유는 아마도 주인공 일레인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가 애트우드는 페미니스트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가 자매란 자신에게 어려운 개념이라고 고백할 만큼 어쩌면 고양이 눈은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또 다른 자신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린 시절 코딜리아의 주도 아래 같은 반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고 괴롭힘당하며 온갖 수모를 겪었지만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마주하게 된 일레인과 코딜리어는 이제 서로 입장이 바뀌게 되죠. 일레인은 자신이 코딜리아에게 받았던 학대를 되갚음해 주기라도 하듯 코딜리아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하며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됩니다. 하지만 일레인은 자신이 받았던 고통을 다시 돌려주는 것만이 복수는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둘은 과연 화해하고 할 수 있을까요? 또한 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녀에게 토론토는 아무것도 아닌 곳으로 치부되며 그만큼 그곳읏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곳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끊을 수 없는 것이 있듯 토론토는 일레인에게 그런 곳이 되어버렸고 과거로 돌아가 그녀가 잊기를 바랐던 순간들을 잊고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기 위한 그녀의 여정이 그려졌습니다. 시간이라는 심연을 통한 과거의 잊힘과 잊기를 통해 주인공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어릴 적 화상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게 했던 고양이 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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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존재'에 대한 탐구와 가치는 엄청난 힘을 지닌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삶의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어린 코딜리어는 일레인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느끼게 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찾기 위해 평생을 사유하기도 한다. 일레인은 코딜리어가 자신에게 'nothing'이라고 한 것을 시간이 흘러 자신은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고등학생이 되자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지만 전과는 다른 관계가 된다. 일레인은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말하던 서로의 입장이 바뀌게 된다. 코딜리어의 고등학교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학교 연극에 배우로 나가며 활동을 열심히 하지만 성적은 좋지 못했고 많은 시험에 낙제한다. 코딜리어는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며 외모를 가꾸고 남자를 만나는 데 시간을 더 많이 쓰면서 공부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결국 코딜리어는 다른 학교로 전학가게 된다. 일레인은 코딜리어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코딜리어에게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하며 코딜리어의 행동을 종용하기도 한다. ![]() 이 작품의 제목 <고양이 눈>이라는 것을 보고 '고양이 눈'이 무엇일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어떤 경우는 표지를 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도 있지만 <고양이 눈>의 표지만으로는 '고양이 눈'이 어쩌면 진짜 고양이의 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품을 읽다보면 '고양이 눈'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일레인은 '고양이 눈'을 좋아했고 '고양이 눈'은 일레인이 좋아하는 구슬이었다. 고양이 눈처럼 생긴 것은 아니지만 투명한 유리 안에 빨강, 노랑, 초록, 파랑 꽃잎들이 들어가 있는 구슬은 고양이 눈이라 한다. 어린 일레인에게 구슬치기에서 이겨 구슬을 가진다는 쾌감은 대단했다. 동심을 가졌을 때라 구슬치기에서 이기는 것이 자신의 세상 전부일 수도 있고, 어른들이 이룬 성공과 맞먹을 수도 있는 성공일 것이다. 다른 종류의 구슬도 많지만 일레인은 고양이 눈을 좋아하고 고양이 눈을 땀으로 탐욕과 쾌락이 섞인 감정을 느낀다. 스티븐 오빠는 구슬치기를 잘했고 무시무시하게 많은 구슬을 가진 반면 일레인은 구슬치기를 잘하지 못해 많은 구슬을 가지지 못했다. 구슬을 많이 가진 오빠가 부럽기도 하고 구슬이 당시 일레인과 스티븐에게는 보물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어린 시절의 상처는 트라우마로 남아 때로는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잘 이겨낸다면 참 다행이지만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면 때로는 정상적인 삶이나 관계 맺기도 힘든 경우가 있는데 마거릿 애트우드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고양이 눈』 역시 어린 시절 곤충학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자연 속에서 살아가던 일레인 리슬리라는 인물이 아버지의 정착과 함께 토론토에 살게 되면서 겪은 사회적 부조리, 또래 소녀 집단 속에서의 따돌림과 상처를 담아낸다. 물론 작가가 딱 이 정도에서만 그쳤다면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였을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은 그런 일레인이 부조리한 사회 속, 그리고 자신은 친구라 믿었던 코딜이어와의 관계 속에서 느꼈을 악의 이후 내면으로 숙이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회와 집단에 대해 잘못된 것을 주장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결국 성공한 예술가로서 성장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롭다.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작가인 마거릿 애트우드의 삶을 반영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레인의 삶에 배치된 다양한 장치들이 마거릿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는데 그녀가 캐나다 최초의 페미니즘 작가라 불리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 속을 그녀가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레인이 토론토에 정착하고 난 뒤 본격적으로 학교에 가고 또래 여자아이들의 집단 속으로 들어가지만 그속에서도 쉽게 융화되지 못하는 가운데 또다른 세계처럼 보이는 남자 아이들의 세계, 그 당시 사회의 분위기까지 겹쳐지면서 일레인이 당시 느꼈을 압박감이나 낯섦에서 오는 이질적이고도 이방인 같은 느낌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해지는 코딜리어의 괴롭힘, 주변인들의 방관이 그려지기도 한다. 성공한 예술가가 되어 고향인 토론토에서 개인전을 열기까지, 노년의 예술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청소년기를 오가며 회고하는 모습 속에서 코딜리어는 왜 그토록 일레인에게 악의를 보였고 요즘으로 치면 학교 폭력이라고 할 수 있는 언어 폭력을 가했을까 싶은 의문을 일레인은 오랜 시간이 지난 고향으로 돌아가 과거 자신이 위험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깨닫게 된다. 과거 남성중심의 사회 속 일레인 가족들이 호기심이 대상으로 이후 차별와 따돌림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듯, 당연하게 여겨지던 그 암묵적 룰에 끼지 못했던 존재는 비단 일레인과 그녀의 가족들만이 아니라 코딜리어를 비롯한 그 시대 많은 여자아이들 역시 그러했을지 모르겠다는 사실 말이다. 증오와 복수심을 안고 살아가는 것보다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기란 몇 배로 어려울 것이다. 작가는 이 모든 이야기를 통해서 일레인이 과거의 그 모든 것들을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어떻게 보면 스스로가 진정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고양이눈 #마거릿애트우드 #민음사 #민음사세계전집 #민음사세계문학전집 #세계문학 #성장소설 #사회구조탐색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리투서평단 |
![]() 여자 친구들의 잔인한 희생자가 된 일레인의 유쾌한 복수극을 기대하고 책을 펼쳐들었으나 <고양이 눈 2> 작품에서는 화자인 일레인이 자신이 그린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전체 돌아본 후 과거의 자신에게, 과거의 친구들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비치며 작품은 마무리된다.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코딜리어는 일레인이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 온다. 그사이 일레인은 입이 거칠기로 유명해진다. 일레인은 코딜리어가 좋아하는 가수들을 비웃으며 언어적 폭력을 가한다.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코딜리어를 보며 발길질을 퍼붓고 싶어진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이토록 야비하게 굴 수 있는지를 스스로 의야 해한다. 코딜리어 삶은 계속 나락으로 떨어졌다. 주기적으로 일레인에게 연락을 취하지만 일레인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곤경에 처한 코딜리어는 일레인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일레인이 외면함으로써 이들의 관계는 끝이 난다. 대부분의 관계는 수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가족과 관계에서도 갑을 관계가 명확하게 존재한다. 관계망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행동 양식이 달라지는 건 무의식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본능이다. 개개인의 인내의 한계의 스펙트럼의 영역은 다르지만 정신건강이 약한 친구들을 보며 하등하게 생각하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일레인은 두 명의 남자와 동시에 교제를 한다. 여자친구가 있는 조제프는 여자친구 "수지"를 문제아인 동시에 비이상적인 요구를 하는 여성으로 표현하고, 일레인을 자신의 스타일로 꾸며놓는다. 또 다른 남성 존은 여자들이란 똑똑하거나 바보라 칭하며 일레인에게 다른 여자들보다 똑똑하다 일침을 가하며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일레인은 여자아이들과의 관계에서는 자신을 방어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남학생들과의 관계 맺음은 비교적 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못된 여성관을 가진 남성들을 만남으로써 원근법에 갇혀버린다. 일레인은 자녀 출산 이후 남자의 유죄를 증명하는 여성 모임에 나가게 되는데. 남편과 아이를 가진 여자들을 경멸조로 '핵족'으로 일컬으며 작품을 집필하던 당시에도 성차별 문제가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일레인은 이 모임을 통해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사고 싶은 마음과 어색하고 막연한 느낌으로 인해 불안한 마음이 공존한다. 자매가 없던 그녀는 자매애는 어렵고 형제애는 어렵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며 동성친구보다 이성친구가 더 많은 나와 겹쳐 보였다. 눈에는 눈 식의 복수로 인해 일레인의 오빠 스티븐은 같은 남성으로부터 살인을 당하게 되는데 사건 이후 일레인의 어머니는 지난날 일레인이 친구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던 시절을 외면한 자신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한다. 코딜리어를 외면한 일레인의 죄책감은 점점 커져가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마는데 이들은 다시 화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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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을 읽을 때에도 읽는 것 자체가 강렬한 경험이었지만, 2권은 더욱 진하고 힘들었다. 아마 유년 시절은 거의 잊어서, 중·고등학교와 성인기를 다룬 2권에 감정이입을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기억과 정체성을 탐구하는 <고양이 눈>은 나를 의식의 깊은 곳으로 자꾸 끌어당겼다.
감정적 학대와 트라우마, 죽을 뻔한 일은 어린 시절에 국한된, 단절된 경험으로 끝나지 않는다. 죽을 고비를 넘긴 일레인은 갑자기 많은 것을 극복한 듯하고, 혜안을 얻은 것도 같지만 여전히 미성숙하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 성숙해지는 걸까, 그녀는 어떻게 제대로 살아가는 걸까, 어떻게 입지를 다지는 걸까, 결코 단번에 이뤄내지 못하는 중에 어느새 어른이 된다. 책을 읽고 있지만, 나는 문해력이 한참 떨어진 듯한 기분으로 상념 속에서 페이지를 넘겼다. 일레인에게도 이런 일이, 이런 감정이, 이런 기억이, 그 모든 것을 이런 서술로- 많은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어린 시절을 많이 기억할수록, 자신을 더 많이 알게 되고 - 그래야 나라는 존재를 침해받지 않게 되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너무 많은 상처를 잊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은 채, 어딘지 모르는 곳을 둥둥 떠다니고 있다.
일레인의 오빠 스티븐은 기억하지 못하는 쪽이다.
하지만, 기억하지 못해도 옛날과 동일하다는 것은, 왠지 섬뜩하다.
공감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레인이 여성이고, 애트우드가 여성이기 때문인데, 꼭 그런지는 사실 모르겠다. 애트우드는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페미니즘의 대열에 흔쾌히 합류하는 작가는 아니다. 여성의 연대에 대해서도 미온적이다. 나는 일종의 '마음의 연대'를 믿는 쪽이지만, 민음사 <고양이 눈>의 짧은 해설에도 나와 있다시피, 애트우드는 페미니즘은 너무나 광범위한 단어라서 사실 아무런 의미를 담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그 부분에는 정말이지 공감한다. 여성만이 이해할 수 있을 감성에 강렬한 공감을 느끼지만, 남성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지 여부는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코델리아와의 '우정'은 신선했는데, 모든 여성이 그런 우정의 경험을 나누는 것은 분명 아니다. 결론을 낼 수가 없다. 왜냐하면 너무 감상적으로 읽었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치유와 성장, 용기가 필요할 때 읽으면 좋을 소설이었고, 애트우드의 다른 소설과는 달리 쉽게 읽혀서 또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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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의 시작은 기막힌 반전으로 시작한다. 입장은 바뀌었지만 일레인은 과거 코딜리어와 그들 무리에게서 당한 학교 폭력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 자신이 한때 학폭 피해자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사춘기 딸의 행동에서 코딜리어를 떠올리며, 성인이 되기 전까지 여자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방어기제를 작동한다. 일레인이 특정 사건 이후 코딜리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새 코딜리어와 비슷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상처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일레인이 폭언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대상은 코딜리어이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여기는 사람도 코딜리어다. 특히 일레인이 타인의 슬픔과 절망에 공감하지 못하고, 슬픔을 나약함이라고 치부하는 모습은 깊이 생각해볼만한 부분이다.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더 강한 척 포장하며 거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보호막을 둘렀던 일레인이 진정으로 가벼워진 순간은 언제일까. 코딜리어와의 재회를 기대하는 일레인이 자신의 고통을 진정으로 극복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리딩투데이를 통한 도서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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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화가 일레인 리슬리의 예술가로서의 성장을 그려낸 예술가 소설입니다. 권위적인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재치 있는 환상 소설을 펴내며 캐나다 최초의 페미니즘 여성 작가로 평가받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대표작 『고양이 눈』이 세계문학전집 424, 425번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오래전에 민음사 모던 클래식 작품으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애트우드의 대표작인 『고양이 눈』은 화가 일레인 리슬리의 성장을 그려 낸 예술 소설입니다. 변형된 작가의 자아인 일레인의 삶을 그린 자전적 소설에서 애트우드는 1930년대 말 문화의 불모지였던 캐나다에서 출생한 여성이 예술가로서 입지를 다져 가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유년기 유희의 대상이자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 어린 일레인을 지켜주는 부적 같은 존재 『고양이 눈』 기대가 되는 작품입니다.
2권은 반복적인 일상으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기분으로 주변의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건포도 그리고 땅콩버터와 꿀을 두껍게 바른 크래커를 먹고 내 또래 아이들이 없어 뚱한 표정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부모님의 지치지 않는 활기도 안도가 되지 못한 채 한통의 전화를 받고 기사를 읽습니다. “개벽의 예술가는 여전히 소요를 일으키는 힘을 지녔다. ” 화가가 아니라 예술가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 늙음으로 가는 길을 표시하는 전조인 ‘여전히’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코딜리어도 이 기사를 분명 보았을 것이다. 김 턱선과 약간 일그러진 입술, 그녀는 파스텔 녹색 벽의 전시실에 홀로 남겨진 모습으로 반항적인, 전투적으로까지 보이는 눈초리 코딜리어가 두렵게 느껴집니다.
이 그림 속에서 코딜리어는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나는 코딜리어가 두렵다. 코딜리어를 만나는 것은 두렵지 않다. 코딜리어가 되는 것이 두렵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서로 입장이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언제였는지 잊어버렸다. ---P.63_ 2권
비록 고통스러운 관계에 대한 기억을 망각으로 덮어버리려고 하지만 여자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경험은 일레인의 자아 형성과 사회적 관계 나아가 이후 미술 창작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독자는 생각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다른 여성들과 분리된 존재라고 생각하고 관계를 보다 쉽게 맺을 수 있는 남성들을 찾게 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조제프와 존과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그들의 잘못된 여성에 대한 개념 때문에 상처를 받게 됩니다. 이후 대중에게는 페미니스트 작가로 알려지지만 정작 그녀는 자매애란 자신에게 어려운 개념이라고 고백하고 주저하는 일레인의 모습을 통해 작가 애트우드는 성별에 기반을 둔 단순한 권력 관계 규정에 의문을 표시합니다.
고등학생이 돼서 다시 만난 일레인과 코딜리어의 관계는 그전보다 복잡단단하고 미효한 사이가 됩니다. 일레인과 코딜리어는 반목하고 배반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서로를 반영해 주면서 각자를 완선시켜 주는 반쪽이 됩니다, 일레인은 코딜리어의 초상화 <반쪽 얼굴>에 코딜리어가 자신의 반쪽 이었다는 깨달음을 예술적 작품으로 승화 합니다. 나머지 반쪽은 후면의 거울에 비추인 젊었을 때의 머리 뒤쪽과 유년 시절 친구로 채워집니다. 실제로 반쪽만 그린 자화상에서 나머지 반쪽을 채워주는 것은 여자 친구들이 될 것입니다. 이둘의 관계가 서로 채워주는 역할이었다면 일레인과 스티븐은 평행선을 그으면서 같지만 다른 궤적을 그리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누구나 과거를 추억하고 가끔 과거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작품 고양이 눈을 통해 그 시대 여성들의 삶과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등을 이해해 봅니다. 불확실한 삶 속에 우울한 과도기를 겪는 사람들에게 예술가로서 커나가는 과정을 편안한 집으로 작품 고양이 눈으로 이끌어 가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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