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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장자를 읽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이책 저책 읽어보았으나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장자는 쉽게 우화로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너무 복잡한 시대를 살다 보니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것은 성경도 비슷한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농부나 어부를 상대로 쉽게 비유로 설명하였는데 우리가 잘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러 권의 장자관련 책을 읽다가 정호경 신부의 장자 읽기를 본 후 좀 쉬워졌다. 저자는 '장자' 책은 내편 7장, 외편 15장, 잡편 11장으로 모두 33장이 전해오는데, 장자의 이야기이자, 그의 직제자가 기록했다고 짐작되는 내편 7장을 읽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저자가 카톨릭농민회 전국지도신부를 했다고 해서 너무 기독교적인 해석을 할까봐 우려를 했으나, 그렇게 한 쪽으로 기울지는 않은 것 같다. 가끔 성경 이야기는 나오지만. 하긴 4대 성인의 뜻이야 따지고 보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진리의 끝은 서로 같은 것이 아닌가.
이 시대에 장자를 읽는다. 왜 이 시대에 장자를 읽는가. 요즘 사람들의 최대 관심은 남보다 많은 것을 갖고, 남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가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속성이야말로 물질 주의에 오염된 현대인들의 겉모습이다. 새로운 21세기를 여는 이 시점에 장자의 철학이 필요한 것은 물질 주의에 오염된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훨훨 날아서 춤추며 가자는 소요유에서는 붕새가 남녘바다로 날아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구만리 장천을 나는 붕새 이야기, 허황되기는 해도 인간의 위대성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한다. 본래부터 위대한 인간인데, 제발 좀스럽게 살지 말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함께 훨훨 날아 제 길을 가자는 초대장이 아니냐고 한다.
천지만물과 하나가 되자는 제물론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조삼모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장자는 어느 하나에 집중하여 애를 쓰는 사람은 만물이 하나라는 진리를 모른다고 한다. 하나만 보고 전체를 못 보는 것도, 굴레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물론의 마지막에는 장자가 나비가 되는 꿈이 나온다. '장자가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장자가 된 것인가?' 장자는 천지만물과 하나된 경지에서 보면, 그렇게 따질 건더기도 없고, 그 어떤 구별이나 차별이나 시비도 없는, '하나된 세계'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참 삶의 지혜를 깨닫자는 양생주에서는 요리사 정씨의 소잡는 이야기가 나온다. 누구한테나 배우려는 장자의 구도 자세가 고맙고, 특히 일하는 사람한테서 '참 삶의 지혜'를 보는 장자의 마음이 고마울 뿐이라고 한다. 지인은 산 속의 토굴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를 잡는 '일터'에서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인간세에서는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를 등장시켜 마음의 재계를 말하고 있다. 채울수록, 복잡해지고, 걱정도 늘어나며, 더러워지고, 눈도 귀도 마음도 멀게 되며, 가득 찼으니 부모도 하느님도 들어갈 자리가 없고, 불행을 줄줄이 자초한다고 말한다. 비우는 것이 마음의 재계라는 것이다. 행복도 텅빈 마음에 머문다고 한다.
여기, 지인(성인)이 있다는 덕충부에서는 외발이 왕태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왜 장자는 불구자 성인을 이야기 하는가? 그 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속을 외면하고 외모 따위의 껍질의 노예가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산을 산으로 보지 못하며, 땅을 땅으로 보지 못하고, 이용가치나 정복의 대상이나 돈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 모습은 외면하고, 쓸모나 능력 따위를 섬기는 우상 숭배자들이라고 한다. 장자는 이 가치관을 뒤엎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불구자 성인들을 소개하고 있다고 하면서 장자다운 일이라고 한다.
여기, 참스승이 있다는 대종사에서는 제 삶을 죽이는 자는 살고, 제 삶을 살리는 자는 죽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 지인다운 임금이 있다는 응제왕에서는 혼돈 임금의 이야기가 마지막으로 나온다. 그 누구도 그렇지만 특히 지도자라는 자는, 좋은(!) 일이라는 일방적 명분으로, 자연을 거스려 갑자기 서두르다가, 결국 온갖 생명을 죽이는 역사의 죄인이 된다고 하면서 역시, 하늘과 자연의 순리가 중심(중앙의 임금 혼돈)이라고 한다.
아직 장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읽는 자가 완악해서 그런지, 너무 쉬운 것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해서인지 잘 모르겠다. 앞으로도 살아 가면서 좀 더 읽어 보아야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 대한 앎이 한이 있으랴. 그저 노력할 뿐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말한 내가 무지하다는 사실을 점점 알게 되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는 기분으로 늘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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