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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은 이야기를 글로 만날때의 기쁨. 오랫만에 이책을 통해 그 기쁨을 만끽하며 나의 마음과 저자의 마음을 함께 보듬어 본다. 그러기에 한장 한장 넘기는 손길이 조심스러워지는건 기분탓만은 아닐것이다. 이책의 저자 노재희작가는 200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되었고 소설집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를 썼으며 10년만에 그동안 정처없으나 자유로운 그녀의 삶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이 산문집을 세상밖으로 내보냈고 그렇게해서 나는 저자와 만나게 되었다. “누군가 쓴 것을 내가 읽는다. 내가 쓴 것을 당신이 읽는다. 심심해서 외로워서 궁금해서 슬퍼서 읽을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만난다. ” 어린시절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녀의 일상이었던 기다림, 그리고 성장하면서 아무것도 기다릴것이 없음에도 끊임없이 뭔가를 지향하는 오로지 미래에 사로잡혀 있는 그녀의 사유는 왠지 철학과 맞닿아있는듯하다. “드디어 원하던 것이 오면 행복해지고 그 행복은 아주 짧은 순간만 지속된 후 금방 사라져버린다. 무엇이 오든 그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꿈과 목표, 그 골인지점만을 바라보며 부단히도 애를 쓰고 온갖 노력과 시간을 들여 이루어 내는 순간 그 골인지점은 어느새 출발선이 되어 또다시 멀리있는 골인지점을 향해 달리는 나를 발견하곤한다. 지금이 나는 과거에 내가 간절히 바라던 모습이었을것이나 지금의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더 나은 나를 좇기만 하는 나의 모습이 저자의 글을 통해 투영되어 보인다. “나는 자주 과거을 생각하고 자주 미래를 생각한다. 아니, 자주 생각한다는 것은 거짓말. 사실은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혀 있다. 과거는 후회의 형태로 나는 붙들고 미래의 불안의 형태로 나를 물들인다. 중략... 현재는 진짜 내 인생이 펼쳐질 미래로 건너가기 위한 징검돌 같은 것이었다. 현재의 나는 어쩌면 현재를 가장 모르는 사람.” 나는 어린시절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생활기록부에 기록되어 있던 수많은 직업은 진정 내가 되고 싶은것보다는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켜줄수 있을것같았던 그런 일중 하나였을것이라 여겨진다. 나또한 현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기보다는 내가 바라는 그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 합리화시키며 지금의 나를 부정할수 없도록 나자신으로부터 철벽방어중이다. 지금 현재의 이것이 내삶이다 인정한다는게 쉬울것같지만 어려운 아니 그러고 싶지 않는 나는 참 뭘 진정으로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이루고싶어하는 바보인것만같다. 책속에서 저자가 언급한 책인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또한 인상적이다. 게으르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듣고 자란 나이기에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란 제목은 망설임없이 책을 펼치게 만들었으나 게으름에 대한 부분은 15편의 에세이중 달랑 한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또한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아니었기에 실망했는데 저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게 너무 재미있었다. 나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것만으로도 밀려오는 위안과 마음의 평화.. (그책을 읽고 실망이 커서 리뷰도 과감히 생략해버렸다는 비하인드스토리....) 앞으로 어디에 살게 될까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인생이지만 ‘나중’은 오지 않을 것 같으니까 지금은 그냥 ‘나중’삼아서 필요한 것은 이고 지고 다니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이사를 다니게 된 저자는 이삿짐이 무거워질까 덩치가 크고 무게나가는 침대나 피아노같은 필요하지만 나중으로 미루며 살아오던 그녀의 마음도 공감할수 있었다. 나도 사정상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다니게 되면서 필요한데 굳이 정착하게될 언젠가는 오게될 기약없는 ‘나중’을 기다리며 참고 참으며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마음은 누굴위한 거였나.. 어차피 내가 옮기지도 않는데... 이삿짐센터 직원분들을 위한일이었나?? 되돌아보면 항상 그랬던것같다. 지금 현재를 살지않고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의 나는 늘 참고 인내하며... 더이상은 그러지 말아야지. 저자 덕분에 내 모습을 객관화함으로써 개선할 점들이 눈에 확확 들어온다.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나의 오점을 스스로 발견하기란 참으로 어려운일인것같다. “제대로 가고 있을 때조차 내가 길을 잃은 기분이었던 것은 내가 길을 잃지 않으려고만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길을 잘못 잡아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될까 봐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헤매게 될까 봐 불안해 하는 대신,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수 있으면 좋았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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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걸린 뇌수막염에 생사를 오가고, 일시적인 마비와 언어 장애가 오게 된다. 인지능력마저 떨어지고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어진 작가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며 현재의 소중함과 평화로움을 아끼게 된다. 유년기부터의 흔적들, 나이가 들어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 종교를 보며 느끼게 된 무신론, 내 곁의 배우자 등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잦은 이사를 하는 것이 특이했는데, 블루베리 나무를 키우고 농장을 운영하면 더 이상 이사를 다니지 않을 줄 알았으나 그건 아니었다. 뿌리내린 나무가 있어도, 마음먹으면 나무를 땅에서 꺼내 정처 없이, 자유롭게 떠돌 수 있다. 철학적인 내용도 쉽게 쓰여있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가득했으며, 여유있고 단단한 작가의 마음가짐이 느껴져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언급된 부분에서는 눈물 살짝 고였다.. 나도 할머니 계실 때 더 잘해드리고 목소리도 녹음해둬야지.. 내 인생에는 어떤 변곡점이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해 보게 됐고, 나도 언젠가 이런 회고록같은 책을 써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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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예진 지수 : 3.9/5점 한줄평 : 문체 엄청 독특하다. 제목을 읽어도, 책의 뒷면을 살펴봐도 정말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낯선 이름이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도 모르는 책을 덜컥 집어 들었던 건 정말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이렇게 정체를 모를까. 책을 읽다보면, 그에 대한 의문이 풀림과 동시에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태가 공존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그 삶의 모습들은 모두 정체를 알 수 없다. 불안하고 위태롭다. 처음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뇌수막염’을 진단 받은 이후 투병하던 일들이다. 기억을 잃었던 시간들은 가족들의 기억을 통해 다시 전달되어 그려지고, 그 과정에서 저자가 느꼈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기에 나는,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라는 질문이 묵직하게 가라앉는다. 그렇게 시작되는 저자의 이야기들은 ‘이 문장 정말 기깔나지?’ 하는 힘들인 부분도, ‘내가 인생에 대해 한 수 가르쳐줄게’하는 얄미운 부분도 없이 평이하게 진행된다. 예상하지 못한 채 등단에 ‘당첨’된 이후, 광고 회사에 입사했다가 3일째에 퇴사를 결심한 일들,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닌 일 등등의 지나온 시간들을 보여주는데 어쩐지 라디오 사연을 듣는 기분이 든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소설을 읽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감 있는 산문은 처음이었다. 내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에 몰입하여 그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주는 듯한 분위기다. 이는 몰입도 있으면서도 한 발 뒤에서 누군가의 인생을 바라봄으로써 독자가 ‘나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거리감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뜻밖의 일들 행운, 계획에는 없던 괴상한 일 등등 삶을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겪어온 여러 일들에 대해 떠올리게 한다. 작가의 이야기를 오롯하게 펼쳐냄으로써 미래를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 그게 이 책의 정체성이자 주제이지 않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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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쓴 것을 내가 읽는다. 내가 쓴 것을 당신이 읽는다. 심심해서 외로워서 슬퍼서 읽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만난다. (p.234)
각 글의 시작 부분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에세이인데 소설 같은 느낌도 있다. 묘한 글의 시작을 따라가면 그렇게 글을 시작한 이유를 어렴풋이 더듬어 갈 수 있다.
또 벽이 나타난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그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희미한 윤곽으로만 존재하다가 그것이 또렷해지는 순간이 있다. 벽을 넘어야 한다. (「게으르다는 형용사」 첫 부분 p.127)
타인의 기록에 존재하는 나를 상상하는 기분은 어떨까. 그 당시의 기억이 전혀 없다면? 작가는 생의 한 구간 기억을 잃었고, 기억에 대해 사유한다.
내 안에는 한 권의 공책이 있어서 나는 거기에 매일 쓴다. 사실 내가 쓴다기보다는 내가 데리고 있는 수백억 개의 뉴런들이 쓴다. 공책은 점차 책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공책을 모두 채워 빈 곳이 하나도 남지 않으면 그때가 바로 책이 완성되는 때이다. 책의 제목은 ‘기억’.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챕터가 시작된다. (p.63)
「내 세계의 크기」가 마음에 남았다. 불확실성을 좋아하지 않아서 최악을 상상하지만 막상 문제가 생기면 해결 방법을 찾는 부분에 공감했다. 작가의 세계가 커지는 걸 목도하여 좋았다. 덕분에 이 책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길을 잃어버리면 되돌아갈 수도 있고 새로운 길을 내며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샛길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 당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p.222)
갸웃거리며 읽다가 점점 빠져들었다. 마지막 책일 수도 있다 생각하며 썼다는 에필로그를 읽으니 전반적인 내용이 더 깊이 다가온다. 작가의 소설도 읽고 싶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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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오랜 시간을 한자리에서 굳건히 세월을 이겨내는 나무. 그런 나무와 함께 왜 정처 없다는 건지 알쏭달쏭했던 제목의 산문집입니다. 노재희 작가의 책은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이 처음인데요. 에세이를 좋아하는 1인이라 그런지, 오랜만에 만난 산문집이라 그런지 노재희 작가의 글이 너무 좋았다는 느낌입니다.
70년대에 태어난 사람이라 그런지 그녀의 어린 시절에 공감이 가고, 아파서 기억이 사라지고 병간호하는 가족들의 이야기에 자신의 모습을 조각조각 맞추는 애잔함이, 반려 나무들과 함께 쉽게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던 모습들이 대단하다 여겨졌던 작가의 이야기들이 담긴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입니다.
에세이, 산문집을 읽다 보면 사람 냄새가 나고, 너무도 인간적인 작가를 만날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하며 공감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읽다 보면 내 삶과 비교도 해 보고 나의 어려움이나 상대의 어려움이나 다 비슷해 보이곤 하더라고요. 작가의 이야기에 웃음 요소를 발견하면 더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지만 안타까운 이야기는 독자도 못내 가슴 아픔을 느낍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이야기를 들을 땐 어떤 기분일까 짐작해 보게 되고, 중년이 되면 조금은 외곽으로 나가 텃밭을 가꾸며 살고 싶은 바람이 책에도 살며시 담겨 있어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가진 능력, 내가 가진 속도, 내가 가진 의욕과 에너지.. 중요한 건 '나'라는 사실을 또 한 번 절실히 느낍니다.
다 귀찮고,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때 마음껏 해보자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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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은 예전 모습 그대로지만 이 세계는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예전과 똑같지 않은 나. 불안하고 위태로운 현대인의 초상을 그리며 고독 속으로 침잠할 것을 제안했던 작가 노재희가 자유롭고 충만한 삶으로 돌아왔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해야 할까,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죽음 앞에서 살아났을 때, 부산에서 서울로 야반도주했을 때, 어쩌다 보니 이 책의 저자와 아주 비슷한 결로 인생의 변곡점을 맞은 거 같다. 약간의 위험과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내가 예상하지 못한 세계로 건너갈 수 있다. 물론 그것이 늘 좋은 방향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지금의 이 세계가 답답하고 불안정하다면 다른 세계로 건너가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결핵성 뇌수막염으로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베드에 결박된 채 괴성을 질렀던 저자는 당시의 상황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가족의 이야기를 짜집기해 그게 그의 기억이 되어버렸고, 회복된 후에도 예전 자신의 모습을 일기로 접하고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 같은 나일까? 그리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아프기 전과 후의 그의 글은 다른 듯 낯설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그도 지금의 그도 그인 거. 새로운 기억이 심어지고 자라나고 빛나고 있는 작가의 글들이 좋았다. 조금씩 나를 인지하고 주변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탐색하는 과정과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거. 거울 속에 비치는 내 모습이 진짜 나인지 확인하고 싶어 거울을 슬쩍 만져보듯 내가 기억하는 내가 진짜 나인지 나 또한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왜 자꾸 심야괴담회가 생각나는지 ㅋㅋ 난 무표정한데 거울 속 웃고 있는 내가 자꾸 상상돼) 완벽해야 했던 욕심은 이젠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로, 과했던 의욕은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에너지만큼만 하자는 생각으로 바뀐 저자는 뿌리를 내리고 싹이 돋아나고 점차 자라 커다란 나무가 되는 오랜 시간을 평온하게 기다린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볼까 했지만, 여전히 난 욕심 많고 의욕이 과한 사람인지 영 놓지 못할 거 같다. 내 인생의 변곡점은 나에게 과한 의욕을 심어주는 걸 보면 말이다 ㅎㅎ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 내가 잘할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고 오직 내가 해나가기 시작해서 끝까지 도달한 후에야 그 결과를 알 수 있는 일을 나는 하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세계가 커지는 것일까? 이렇게 내 인생의 지도가 그려지는 것일까? 내 세계의 크기는 아직 나도 모른다. _p. 223 내 세계의 크기는 이왕이면 많이 많이 컸으면 좋겠다는 이놈의 욕심. ㅋㅋ 물려받을 땅도 없는데 마음으로나만 이 세계 좀 키워보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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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늦가을 바람과 함께 차분하게 독서하며 나 자신과의 대화를 하고 싶은 분 3인칭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서 깨닫는 스스로의 모습이 있어요. 현실에서는 나와 비슷한 사람을 봐도 소위 내로남불의 자세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난 안 그래!’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글을 읽을 때면 스스로에게 더 솔직해지나봐요, ‘나도 그런데..’ 하고 인정하는 내 모습들이 있습니다. 이 산문에서도 여러군데서 깨달음이 있었지만 제일 크게 와닿았던 부분을 공유해요! 태어나면서부터 뭔가를 기다리기만 하던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더는 아무것도 기다릴 것이 없는데도 그 마음은 기다림의 관성으로 달리고 정신은 도래할 뭔가를 지향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아채지 못 한다. 커피 맛을 모르고 바람을 놓치고 계절을 잊는다. 그에게서는 지금이 지워진다. 그는 오로지 미래에 사로잡혀 있다. -p.20 저는 분명히 순간의 희노애락을 크게 느끼지만 ‘지금’을 즐겨서라기 보다는 표현이 큰 것 뿐이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어요. 기다림이 가져다 주는 설렘과 기대를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였는데 사실은 정작 모든 것을 놓치고 있던 것이죠. 늘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은 평생 기차역에 앉아 있는 사람이다. 세상에 없는 기차를 기다리는 그는 그 어떤 기차도 타지 못 한다. -p.22 여러분들은 현재와 함께 하고 계신가요?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한 걱정, 혹은 기대되는 무언가에 대한 기다림으로 타야할 기차를 타지 못 하고 계시진 않나요? 현재에 집중을 잘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 비결도 궁금해요. . .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그 외에도 산문의 여러 파트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보실 수도 있을거에요. 나와의 대화 기회를 만들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 . [ 출처 #작가정신 #나무와함께정처없음 #노재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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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공화국의 시민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노재희 작가님의 두 번째 작품이자 첫 산문집이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이다. 작품 속에서 작가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정말 솔직하게 풀어내고 계신다. 산문집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수필집 같기도 한 이 책은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지극히 일신상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고 작가스러움이 묻어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책 속에서 작가님의 자신의 투병 이야기도 담아내는데 젊은 나이인 서른세 살에 결핵성 뇌수막염에 걸린 것이다. 심각한 병이였고 어떤 면에서는 죽음을 생각했을 것이고 설령 생존한다고 해도 예후가 그다지 좋지 않은 증상들이 남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때의 이야기들도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병환 중에 그 휴유증인지 기억을 휘발되기도 하는데 이와 관련한 이야기도 책에서 서술되어 있는데 특이한 점은 그 기억이 통째로 사라지는게 아니라 드문드문 기억이 남아있기도 해서 그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아픔의 시간, 그 시간을 좌절의 순간이 아닌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으로 삼는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동안의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써 남기는 걸 보면 이또한 작가이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리보다는 문자에 더 반응한다는 작가님은 앞서 이야기한대로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누군가가 쓴 글을 작가님이 읽듯이 우리 또한 작가님이 쓴 글을 읽게 되고 그렇게 우리는 만난다는 이야기를 문자로 표현해두고 있다.
굉장히 철학적인듯 하면서도 사색의 시간을 시간을 갖게 하는, 서로를 이어지는 책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서로를 위로하고 힘이 되어줄 수 있고 성장가능케하는 것 또한 바로 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보는 작가님이지만 첫 소설집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작가님이였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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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의 노재희 작가의 첫 번째 산문집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으로 저자를 처음 만났다.
그런데 그녀의 산문집을 읽은 지금, 나는 저자와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다. 어린 시절부터 주인공의 삶보다는 관찰자의 입장에, 엄마와 오빠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아이는 외로움을 덜어내기 위해 읽고 쓰는 삶을 살기 시작했더란다. 덜컥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광고 회사를 다니지 않은 이유, 여자들의 흡연에 대한 그녀의 시각, 게으르다는 형용사에 대한 담론,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를 비롯한 토마스 만 등 다양한 책 이야기들이 그녀의 세계관을 조금은 상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아픈 시어머니를 무작정 모시고 와서 점점 기력이 쇠하여가는 시어머니를 보며 자책하기도 한다. 불과 두 달의 시간이었지만,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이야말로 견딜 방법이 없는 종류의 고통이었다고 고백하는 저자. 이처럼 인생은 우리의 뜻대로,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담담히 전한다.
특히 저자는 서른 초반의 나이로 갑작스레 입원하고 남편 여름 씨를 제외한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을 겪기까지 한다. 나무 키우기를 좋아하는 남편과 정처 없이 시골로 내려가 블루베리 나무를 키우는 소소한 일상을 써낸 표제작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려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가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이 세계에 대해서. 누군가의 보호 없이 우리는 과연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실수나 실패를 통하지 않고 삶을 꾸려나가고 싶었던 저자가 잠깐이었지만 죽음이라는 아찔한 시간을 보내고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듯 보인다. 지금껏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에세이에 처음 도전한 결과물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을 우리가 읽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말이다. 어쩌면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일에 도전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방식이 아닐까. 성장통을 겪으며 서서히 나의 세계의 크기를 키워가는.
그녀는 여전히 읽고 쓴다. 그리고 말한다. '누군가 쓴 것을 내가 읽는다. 내가 쓴 것을 당신이 읽는다. 심심해서 외로워서 궁금해서 슬퍼서 읽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만난다.' 읽고 쓰는 과정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있음을.
낙엽이 떨어지는 깊어가는 가을밤 읽기 좋은 산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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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잘 어울렸던 산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