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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혼자 살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가끔한다. 앞일은 모른다. 물론, 내일 날씨나 벚꽃이 언제 피고 언제쯤 눈이 올지는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한 회사에서 얼마나 일하게 될지, 어떤 사람과 얼마나 인연을 이어갈지, 결혼은 언제 할지, 언제 죽을지 같은 건 예상하기 어렵다. 태어나서 40년을 넘게 살다 보니, 더 고요해지고 덜 활동적이게 된다(조금은 귀찮기도 하고 조금은 게을러 졌을 수도). 더 채우고 싶은 마음보다 이제 덜어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다. 이제 딱히 놀랄만한 것이 이 세상에 별로 없어 보인다. 있긴 있겠지만 굳이 놀라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다. 혼자만의 시간이 좋다. 물론, 여럿이 어울리는 것도 즐겁다. 혼자만의 시간도 좋고 타인과 함께 하는 시간도 좋지만 이 둘은 차이가 있다. 비유하자면, 혼자만의 시간은 집밥이고 타인과의 시간은 외식이다. 제목에 끌렸다. '독신', 그리고 표지의 어두운 분위기(약간 비밀스럽고 매혹적인)도 보탰다. 책장을 넘겨보니 독신에 대한 여섯 편의 단편들이었다. 다 읽어보니 작가들이 모두 여성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 책은 여성의 입장에서 본 독신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불안해 보인다. 혼자 사는 것은 (특히 여성에게는) 안정적이지 않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독신은 혼자 사는 것이니까.. '웨딩 웨딩 드레스'에서, 방송국 작가를 하다가 경제적으로 힘들어져 결혼으로 진로를 변경한 현영이 등장한다. 때마침 청혼한 남자와 결혼했고 이 모든 걸 운명이 써 놓은 소설로 받아들인다. 성인이 된 후, 오로지 나의 경제력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 세 가지가 있었다. 나만의 공간,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을 참지 않아도 좋을 문화적 여유, 기동력을 발휘할 자가용 승용차, 그것이 남자를 갖는 것보다 우선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경제적 능력을 잃었으므로 그 세 가지는 고사하고 목구멍에 풀칠할 걱정부터 해야 했다. 능력 있는 누군가를 만나야만 했다. 그런 내게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안에서 살림해야 한다는, 가장 경제적인 생산 방식인 분업이 당연시되는 사회에 산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다면 그런 사회가 내게 주는 여자로서의 덕목에 충실해야 했다. 그것은 운명이었다. 아무리 반항해도 운명이 써놓은 소설의 끝을 바꿀 순 없는 것이다. (14~15쪽) 그러나 그녀는 결국 그 운명에 반항하고 만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결혼은 해결책 또는 대안일까? 전에 소개팅 자리에서 '자격증 공부를 할 동안 뒷바라지 해줄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는 황당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결혼은 현재의 불안과 어려움에 대한 해결책(또는 도피처)일 수 있다. '피스타치오를 먹는 여자'에서, 피스타치오를 좋아하는(부러워하기까지 하는) 김연두가 화자의 옆집으로 이사온다. 화자는 아들 하나 있는 아줌마다. 이 아줌마는 옆집에 이사온 연두씨에게 관심을 가지고 종종 놀러 간다. 읽다 보면 이 아줌마는 피스타치오녀를 인터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동차 없음. 일간지 두 가지나 보고 있음. 우유 싫어함. 교회 다닐 생각 없음. 학습지 배울 어린애 없음. 기타 구매하고 싶은 것 없음.> (42쪽) 연두씨 집의 현관문에 붙어 있는 쪽지 내용이다. 연두씨는 타인의 불필요한 간섭을 매우 싫어한다(누군가는 그게 인정이고 관심일 수 있지만). 그래서 숨구멍만 내놓고 갖혀 사는 피스타치오를 동경하는 듯 하다. 생긴 것도 맘이 쏙 들어요. 무슨 파충류의 알 같지 않아요? 알 속에 들어 있는 고 녀석을 보면 왜 색깔도 그렇고 쭈글쭈글하고. 게다가 이름은 좀 멋져요. 무슨 파충류라고 했지만 그 이름을 알고 나니 세상에 피스타치오라는 생물이 존재하는 것만 같아요." 나는 남미 쪽이나 이태리계의 사람 이름을 생각했는데, 그녀는 동물이란다. 그것도 파충류의...... 찬피동물. 김연두. "아,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이 껍질이 맘에 들어서예요." "껍질이요?" "예, 몸에 꼭 맞잖아요. 몸에 꼭 맞으면서도 은행알처럼 답답하게 막혀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녀석이 부러워요. 이렇게 몸에 꼭 맞는 집에서 숨구멍만 터놓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 집은 너무 커요." (48~49쪽) 타인의 간섭과 참견을 싫어하는 그녀는 그럴만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연두씨는 종가집의 넷째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와 그녀의 삶이 순탄하지 않았을 것임은 충분히 예상된다. 그녀는 애써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거나 눈치를 보지 않는다. 화자가 놀러와서 얘기하는 중간에 바쁘다고 집에 가라고 말하기도 하고 맥주집에 가서 피스타치오 가져오라고 말한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맺고 끊는 게 확실하다. 피스타치오를 부러워하는 연두씨는 개인주의자인 듯 하다. '어둠보다 익숙한'의 첫 부분은 아래이다. "유일한 규칙 하나, 서로 참견하지 않기." "정말, 혼자 하는 대로 내버려두기야." "좋아, 나도 대찬성." 여와 유 그리고 '미'로 불리는 나는 간단한 합의에 이르렀다. (67쪽) 이 셋은 계곡(자연휴양림)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는 미의 언니이고 유는 미의 남편이 될 수도 있는 남자다. 그런데 여는 파혼당하고(애를 못낳는 게 주요 이유) 미에 얹혀살고 있다. 유와 미의 사이도 썩 좋지 않다. 남녀가 썸을 오래 타다 보니 시큰둥해졌다고 할까. 한 두 번쯤은 끓었어야 했는데 너무 오랫동안 미지근했다. 미는 가족을 챙기다 보니 나이만 먹고 이제 자신을 좀 챙기고 주변을 정리하려는 의미에서(유와의 관계 포함) 이번 여행을 온 것이다. 그래서 미는 '혼자 만의 시간'을 갖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이유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서라도 이번의 휴가만큼은 혼자 떠나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인간계를 떠나 은자처럼 지내보고 싶었다. 그러기에는 사람들이 떼지어 몰려가는 물가보다는 깊은 산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내 나머지 생에, 아직도 찬란할 일이 많을 것 같은 아직 젊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다. 아주 현실적인 문제였다. 커리어 우먼으로 살아갈 것이냐, 현모양처가 될 것이냐. 회사에서의 여직원은 딱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영계와 노계. 노계 중에서 대외 홍보용으로 키울 만한 몇몇의 발군의 인재만이 대리도 되고 과장도 된다. 나머지는 결혼과 동시에, 자동 포장되어 상자에 담기는 공산품처럼 줄 맞춰서 퇴사하는 것이다. 나는 인재보다는 평범한 노계에 가깝다. 남자들 다 하는 거 나라고 못할 게 무어냐고 선택한 무역학과라는 내 전공 탓이다. 그런 기고만장한 생각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지나치게 선구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때, 전문직이 아닌 단순 사무관리직, 마케팅부와 영업관리부, 구매과 등을 전전하며 나는 이미 서른하고도 셋이 되어 버렸다. 전문직이었으면 훨씬 사정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대리도 아니다. 생각 같아서는 남성 중심의 회사 조직이라는 것이 겨우 군사 문화의 연장 아니냐고, 자기들끼리 오입 접대나 하면서 야합하는 술자리가 회의냐고 신랄하게 공격함으로써 장렬하고 속 시원한 직장생활의 종언을 맞이하고 싶다. 그리고 멋진 남자와 짠 결혼하는 것이다. 나를 무시했던 부장이나 이사 따위의 월급쟁이들을 단번에 누르고 그들의 머리 위로 썩 비상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남편의 직업이 변호사나 의사쯤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유의 신분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는 순수 예술이라고 생각해도 남들은 상업 예술, 혹은 글을 설명하는 삽화쯤으로 생각하는 사진을 찍는 사람을 뿐이다. 더구나 유는 나에게 말하곤 한다. 난 너처럼 돈 잘 벌고 섹시한 여자가 좋아. 유는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힘을 기르는 동안 나의 처마나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 아니, 결혼이라는 것이 우선 안전한 고지이기는 한가. 그것은 아직 들어가보지 않은 시커먼 동굴이었다. (74~75쪽) 유는 아침에 사진 촬영을 나가고 미와 여가 남는다. 이 자매는 어릴 적부터 미묘한 갈등관계가 있었다. 그래도 서로를 배려해주는 마음은 있다. 미에게 여는 세상 물정 잘 모르고 경제력이 없어 보살펴줘야 하는 애물단지 언니였다. 후반부로 갈수록 분위기가 바뀐다. 조용하던 옆 동에 남자들과 여자들이 와서 시끌시끌해지고 비가 많이 내려 계곡물이 많이 불었다. 밤이 늦도록 유는 돌아오지 않고 비는 그칠 줄 모른다. 핸드폰도 안되고 공중전화는 먼 곳에 있고 산길은 캄캄하다. 옆동에 온 남자들과 시시덕거리고 놀고 있는 언니가 못마땅한 미는 언니를 부른다. "언닌, 남자 없인 못 살아?" 여는 한참 대답이 없었다. 특유의 괴상한 화법으로 사람 복장을 지를지로 모른다고 긴장하고 있는데 의외로 여가 평범한 반격을 했다. "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그럼 유랑 헤어져라." 남자들 함부로 사귀지 말라고 하면 언제나 여의 결론은 그랬다. 그러나 웬걸, 갑자기 여의 목소리가 갈가리 찢어져 파들대기 시작한다. "결혼을 하기는 해야 할 거 야냐. 야, 내가 돈 번다고 밖에 나가서 서빙 같은 거 하니까 이놈 저놈 엉덩이 더듬고 정말 더럽더라. 차라리 한 놈한테만 죽어지내면 집 생기고 노후 보장되고 세상 사람들이 깔보지 않고 좋잖아. 그래서 남자 찾는다 왜!" "그럼 정식으로 재혼을 해." 문을 닫으며 내가 목소리를 한껏 눅여 대답했다. "그건 또 쉽니? 솔직히 내가 이제 결혼하면 남의 애 길어주면서 밥 얻어먹으러 가는 월급 없는 식모 노릇인데 너 같으면 그거 선택하기가 그렇게 쉽겠어?" "그래서 사귀는 게 처자 딸린 남자야?" 잔인도 하지, 나는 울먹이는 여에게 비수를 꽂았다. "그래! 일부러 그랬다. 공평해지려고! 형부 여자 생기니까 사람들이 욕했는 줄 아니? 애 얻고 싶은 거야 사람 본능이지, 어쩔 수 없지, 그러면서 다 나한테 참으라고 그랬어. 애를 생각해서 물러나주라고. 지금 만나는 사람은 자식 다 낳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나같이 애 못 낳는 여자랑 자유롭게 살아도 되는 사람이야." 정말 궤변이었다. 동에서 맞은 빰 서에서 치고, 남에서 잃은 거 북에서 뺏는다. 어쨌든 총량에는 변함이 없으니 된 건가? 질량불변의 법칙도 아니고 이런 건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그 사람이 언니랑 결혼한대?" "솔직히 그건 또 쉽니? 그래서 고민이잖아." 배가 고픈데 쌀은 없고, 자장면은 먹기 싫고, 라면 끓이기는 귀찮고, 하는 지경이었다. (103~105쪽) 여가 어리숙한게 아니었다. 오히려 미보다 세상물정을 더 잘 알고 있었다. 미와 마찬가지로 여도 고민이 많은 것이다. 밤은 깊어가는데 유는 연락이 안되고 여와 미의 걱정은 깊어간다. 옆동 남자가 공중전화까지 태워준다고 하여 여는 가버리고 미는 혼자 남는다. 드디어 자신이 소망하던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인간계를 떠나 은자처럼 지내는' 평온한 시간이 아니었다. 유와 여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강해질수록 '혼자 남겨진 불행한 운명의 참화'라는 생각도 강해지는 것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공포스럽다. 여름 장마철에 읽으면 좋을 듯 하다. '영화가 끝나고'에서, 딸과 함께사는 남자와 사귀는 이혼녀가 등장한다. 전개가 꽤 감성적이다. 홍콩 느르와르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혼자 살던 그녀는 친구에게 받은 강아지 토비와 같이 살게 되었다. 그런 어느 날 토비가 불안해하고 흥분함 몸짓을 보였다. 그녀는 토비를 준 친구에게 전화한다. 별일 아니야. 그건 강아지가 컸다는 표시니까. 크면 생식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 그걸 가지고 호들갑을 떨다니 원, 고양이를 키웠으면 졸도를 해도 몇 번 할 걸 그랬구나. 고양이는 발정기가 되면 말도 못 하게 울어댄다고. 견디지 못할 정도로 말야. 거기 비하면 개야 점잖지. 육 개월에 한 번씩 생리가 있고 나면 한 삼주나 사주쯤이 발정기야. 그때 밖으로 내보내지만 않으면 되는 거야. 조금 신경질적이 되기는 하지만 다른 변화는 없다고. 하긴......" (130~131쪽) 전화통화 중에 그 친구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적어도 여섯 달에 한 번씩, 빠르면 넉 달에 한 번씩 한 달 가까이 토비는 욕망에 시달릴 거야. 수술을 받는다면 그런 일은 없어. 토비는 네가 부르는 소리에 기뻐 꼬리를 흔들고 네가 주는 먹이로 만족하며 잠깐의 산책을 빼고는 네 좁은 거실에서 조용히 여태껏처럼 잘 지낼 수 있게 되지. 애당초 자신에게 그런 욕망이 있었다는 걸 다 잊고......" "성희야." "어느 편이 더 잔인하다고 생각해? 실현할 수 없는 욕망이면 아예 잊는 편이 좋지 않아?" 말꼬리가 가파르게 높아지다가 뚝 끊겼다. 그리고 곧 아주 낮게,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아직 모르니? 하긴 나도 이제야 알아차렸어.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걸......" (132~133쪽) 그리고 그녀는 과거를 떠올린다. 당신은 결혼이 무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야. 헤어진 남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결혼했으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결혼한 부부가 아이를 갖자는 일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인가? 내겐 시간이 필요해, 여보. 앞으로 몇 년이면 나도 병원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다구. 그때...... 난 지금 서른넷이야. 당신이 말하는 몇 년 후면 사십이 다 돼가지. 난 당신과 우리 가정을 책임질 자신이 있어. 나 자신은 내가 책임져. 그러려면 왜 결혼했지? 수화기로 눌린 귓바퀴가 점점 뜨거워진다. 결혼이 그런 거라고, 적어도 당신이 생각하는 결혼이 그런 거라고 왜 미리 얘기하지 않았어? 당연한 거니까. 당연? 삼십 년 가까운 내 삶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드는 일이 당연하다는 말이야? 나는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묻는다. 알아? 당신이 내게 요구한 건 나를 포기하는 일이었다는 걸. (133쪽) 토비는 결국 자신의 욕망대로 뛰쳐나갔고 그것이 토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애딸린 남자가 결혼을 제안했고 그녀는 그냥 그 제안대로 흘러가기로 한다. 그 남자의 딸아이와 놀이동산에도 가고 집에 데려와 같이 TV도 보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그 아이(여섯 살)는 그녀가 미국 갔던 엄마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 상황에 그녀는 당황하고 결정적인 장면에서 피한다. "아기를 낳을 때는 어디가 아파요?" "배가 아프지." "많이요?" "그럼, 굉장히 아프단다." 아이가 꼴깍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날 낳을 때도 그렇게 아팠어요?" 아이의 눈길이 내 시선을 묶었다. 아이의 섬세한 눈시울에서 뻗어나온 속눈썹이 파르르 떠는 것을 보면서 나는 아이를 볼 때면 갈피 잡을 수 없이 뒤섞여버리는 내 마음결을 똑똑히 알아차렸다. 막무가내로 기대오는, 방어기제라고는 없는 타자(他者)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 그로 인한 죄책감, 그저 피해버리고 싶지만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데서 오는 혐오감. (144쪽)
어떤 편이 더 잔인한 걸까? 실현할 수 없는 욕망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잊어버리거나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좋은 걸까? '콜링 유'는 정해진 시간에 전화해서 고객을 깨우고 고객이 원하는 정보를 (팩스 등으로) 전달하는 일을 하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새벽 5시에 05에게 전화한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인터넷 굿타임'의 모닝콜 서비습니다. 2000년 1월 xx일 목요일 오전 다섯시 정각입니다. 서울 현재 기온 영화 2도, 습도는 35퍼센트. 감기 지수는 70으로 높은 편이지만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닙니다. ......고객님, 일어나셨습니까? "......아, 네." "그럼 십분 뒤, 다섯시 십분에 다시 확인 전화드리겠습니다." (152쪽) 그리고 그녀는 96에게 전화해서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 그룹 너바나(Nirvana)의 '네버마인드' CD의 5번째 트랙 <리튬 Lithium>을 플레이해서 들려준다. 고객 96의 프로필은 아래이다. '새벽 다섯시 오분 너바나의 네버마인드 앨범 중 5번 <리튬> 전곡을 들려줄 것. 기상 확인 전화는 필요로 하지 않음.' (153쪽) 그리고 그녀는 42에게 새벽 5시 20분쯤 각종 정보(주로 인터넷에서 수집한)를 팩스로 보내고 5분 뒤에 전화하여 깨운다. 그리고 그녀는 잘댄 반알을 먹고 잔다. 고객들을 깨우고 자신은 자는 것이다. 그녀는 혼자 사는 듯 하고 그녀의 고객 3명 모두 혼자 사는 듯 하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다. 재형,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 ? ; 1909-1948)를 닮은 남자. 굳이 정확히 말한다면 어느 책에 실려 있던 '1948년 [인간실격]을 쓸 당시의 다자이 오사무'란 설명이 붙은 흑백 사진 속의 다자이 오사무를 닮았다는 얘기다. (164쪽) 그런데 록 그룹 너바나의 보컬이자 리더인 커트 코베인과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자살과 관련있다. 나는 또 알고 있다. 커트 코베인이란 정신분열자 같은 녀석이 '부처에게' 라는 유서를 쓰고 스물일곱에 권총 자살을 한 것과 다지아 오사무의 통산 네 번의 자살기도 중 그 첫번째 시도가 열여덟의 다자이 오사무가 동경하던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다량의 칼모틴을 삼겨버린 것이었다는 것을. 사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정말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 많은 정보들은 그저 나를 스쳐갈 뿐이다. 나는 내가 알게 된 것들을 곧장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버린다. 그게 내 직업이다. 비록 고객이라 하지만 사람들은 참으로 별의 별 것을 다 알고자 한다. 나는 고객들의 까다로운 요구에 따라 다양하고 이채롭고 구체적인 정보를 모은다. 물론 그것들의 대부분은 내겐 아무 소용에도 닿지 않는 쓸모 없는 것들이다. 나는 내 직업에 그럭저럭 만족해왔다. 그 많은 쓸모 없는 알음에 개의치 않았다. 내가 알아낸 것을 남들에게 주어버릴 때, 동시에 그것들을 잊어버렸으므로. 그러나 남에게 주어버리고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머릿속에 남게 되는 것들이 있다. 실은 의외로 많다. 어떤 종류의 정보들이 어떤 이유로 내 머릿 속에 남게 되는지 종잡을 수 없다. 그것이 아주 흔한 불면즈의 원이이라면 원인일 수도 있을까. 아주 가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정보를 이유 없이 찾아내는 경우도 있다. 커트 코베인이나 다자이 오사무 같은. 물론 나의 골칫거리가 다른 여타 직업의 평균치 애로사항에 미치지 못할 정도란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어쨌든 머릿속에 컴퓨터 화면에서처럼 휴지통 아이콘이 떠서 버린 파일들을 완전히 삭제해주었으면 좋겠다. I'm not gonna crack. (170~171쪽) 그녀는 상당히 많이 아는 듯 하다. 하지만 그녀는 미치고 싶지 않은 듯 하다(I'm not gonna crack). 그녀는 아는 만큼 모른다고 했다. 그녀의 직업 때문인지 몰라도 재형과 사귀는 이유는 재형의 표정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인 듯 하다. 그녀는 재형이 무슨 생각하는지 앞으로 어떤 말과 행동을 할지 예상할 수 없어서 당황스럽지만 그것 때문에 재형에게 매력을 느끼는 듯 하다. 결국 그녀는 전혀 예상못한 상황에 도달한다. 이제 그녀는 잘댄을 먹지 않아도 잠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섹스에 관해 너무 지껄인 다음날'은 빠르게 읽힌다. 재밌고 흡입력 있다.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란 손녀는 마르지 않을 것 같은 그 사랑이 끝났을 때 얼마나 허무했을까. 할머니가 시들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정수에 가까웠던 자기 인생의 묘미들이 함께 탈색돼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할머니의 종말이 왔다. 그녀는 주인 잃은 앞치마처럼 빨랫줄에 걸린 채 초라하게 너불거리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때까지 악착같이 유지해온 젊음 - 그녀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할머니의 손녀임으로 하여 자발적으로 유지되어온 젊음 - 이 그 부재와 더불어 어언 까부라져가고 있었다. 모든 건, 마치 잠깐 피었다 지는 봄꽃 같은 과정이었다. 서른다섯번째 생일, 그녀는 대부분의 그 나이 사람들처럼 자신도 삽시간에 서른다섯이 되어버린 데 비애를 느꼈다. 사실이었다. 무조건적인 사랑의 젖줄이 끊어지자, 단 두 해 사이에 서른 다섯 해분의 노쇠가 그녀를 향해 한꺼번에 들이닥친 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개성과 매력을 아는 혹자들에게만은, 빈은 여전히 불가사의한 응석으로 가득한 값있는 인간이었다. (183~184쪽) 그래도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딸바보?)은 지속되었으니 아버지의 모닝콜이 그 증거였다. 그날 아침도 빈을 깨운 건 아버지의 전화였다. 아버지에게 그녀란 하릴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딸로서, 어린 시절의 지극한 총명을 비둔한 허벅지와 맞바꿔먹은 미련퉁이의 극치이자, 아침마다 장거리 전화를 요하는, 유지비만 많이 드는 애물단지였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빈을 제힘으로 일어날 능력조차 없는 인간으로 보고 있었다. 마음 한구석, 자신이 깨워주지 않으면 딸이 한평생이라도 침상 위에서 꼼짝 못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짓눌리며서. 하지만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다간 단숨에 반발에 부딪치리라. 아마도 그녀는 불쾌하게 격앙되어, 그건 무엇도 아닌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일 뿐이라고 우겨댈 것이다. 더구나 그날 아침처럼 아버지의 전화가 "굿모닝, 따님?" 이라는 유례 없는 아첨으로 시작된 날이라면. (184쪽) '유례 없는 아첨으로 시작'된 이유가 있었다. 양가 부모는 얘기가 된 상태였고(정략결혼?) 이제 딸과 미래 사위만 잘 되면 되기 때문이다. 뭐 그건 그렇고 이 미련퉁이+애물단지 빈의 현 상황을 들여다 보자. 빈은 프리렌서로 다양한 원고들을 썼다. 대학을 갓 졸업했을 때 오히려 많이 벌었고(80년대 후반이었는데 한 달에 백만원이상 벌었다) 그후 점점 답보 상태이다가 현저히 그만 못해졌고, 현재는 연중 띄엄띄엄 약간의 벌이가 있을 뿐 빚만 불어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일거리가 딱 끊어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였다. 그런즉 빈이 무엇을 하든 아버지에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아침마다 흔들어 깨우지 않으면 안 될 만년 어리보기였다.(186쪽) 아버지에게는 미련퉁이+애물단지+어리보기인 빈이지만 특정한 사람들에게 빈은 인기가 많았다. 어떤 사람이든 객관적으로 놀고 있는 시기의 빈을 불러내기란 정말로 쉽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에겐 이미 수많은 새로운 만남, 이미 아는 자들과의 온갖 명목의 약속, 누구보다도 그녀가 꼭 오기를 바라는 집들이들, 공짜로 보는 시사회, 전람회, 콘서트들, 심지어 가출했거나 그녀처럼 혼자 사는 여인들의 올나이트 모임들이 빡빡하게 내정돼 있는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 그 모든 모임들의 노른자위였다! 빈이 이 세상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그 같은 모임에서 마주친 인생들의 이야기를 세심히 듣고 적절한 코멘트를 해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공공연히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라고 외치는 책읽기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한 권의 책을 읽듯이, 인생들의 경험을 읽는다. (187~188쪽) 즉, 상담사로 빈은 자신의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상담의 대부분은 결혼과 연애에 대한 고민을 들어주는 것이다. 가끔은 헤어지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곤 했다. 사람들이 결혼과 연애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 빈은 혼자의 삶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주위의 동경어린 시선이 있었다. 그들은 대개, 개인적이지 않고서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자유가 빠진 객관성이란 공허한 개념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서로 관찰자 겸 비평가로서 신의를 지캬야만 온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이 개인적 거만 대신에 지속적인 안정을 찾아 궤도를 이탈해버리는 바람에, 결국은 빈만이 명예의 전당을 지키는 고독한 파수꾼으로 남게 되었다. 친구들은 이제 거의 누군가의 아내 아니면 남편이었고, 동시에 부모, 혹은 누군가의 애인들이었다. 그들은 그런 역할들의 중첩성에 허덕허덕였다. 또한 동시에 역할의 중첩성이 유한한 인생에 끼치는 무리(無理)와 기만을 번개처럼 알아채고는, 안이한 마음으로 궤도를 이탈했던 과오에 대해 금세 쓰라린 후회의 감정에 사로잡혔다. 왜냐하면 축복의 소란으로 인한 초기의 무분별한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소위 자신들이 택했다는 생의 안전한 내부는 파고들수록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진리가 날이 갈수록 뼈저리게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 증명이 뼈저리게 체득될수록, 그들은 아직도 빈이 도도하게 두 발을 대고 있는 개인적 거만의 영토를 새삼스럽게 동경했다. 마치 유일하게 온전한 마지막 보루처럼,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들은 모든 영험한 귀신들의 자존심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빈을 통해 푸닥거리를 하려 했다. 또한 그럴 때마다 빈의 괄목상대할 안목의 성장에 탄복을 금치 못하면서, 미구에 다른 문제를 들고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 이름을 부르게 되고야 말았다. (188~189쪽) 그러던 어느날 빈은 어떤 여성(지지)의 상담요청을 받았다. 10살 연하의 남자와 사귀는 중인데 그가 마조히스트라고 한다. 이 영역은 빈조차 알지 못한다. 그래서 섹스에 관해 조예가 깊은 선배 여성에게 전화를 건다. 열시쯤 시작한 통화는 새벽 네 시를 넘어갈 즈음 빈은 한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일주일에 몇 번 섹스하는 것이 정상이냐 가지고 그 선배와 얘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바로 그 순간, 빈은 지난 팔 년간 숱하게 들어왔던 남의 이야기들이 실은 전혀 솔직하지 않았을 가능성에 눈을 떴던 것이다. 그 개안(開眼)은 그간의 자신이 어릿광대로 살아온 듯한 쓴웃음을 유발시켜서, 잠을 설쳐가며 공허한 이야기를 떠들어댄 자신에 대해 몹시 화가 났다. 어쩌면 지지조차 이미 문제의 마조히스트와 그녀는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섹스를 해치웠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언짢은 느낌은 극에 달했다. (195쪽) 나도 가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혼한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힘들다, 어렵다'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래서 '결혼하면 힘들다' 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거 엄살이 아닐까? 그렇게 힘들면 이혼하지 왜 결혼생활을 유지하냐구! 아버지의 모닝콜을 받은 날, 빈은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선을 보러 나간다. 하지만 호텔에서 만난 그 남자는 빈의 스타일이 아니었고 그냥 일어서기에 불쌍한 인상이어서 자리에 앉아서 같이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이 불편한 자리는 지속되고 식사 끝나고 헤어지는 자리에서 빈은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그 남자 역시 빈이 불쌍해 보여서 지금까지 있어준 것이었다. 그리곤 도무지 더는 요령부득이라는 듯, 참으로 딱하고 참으로 측은해하는 마지막 눈길로 빈이라는 존재에 대한 경험 자체를 깔끔히 잘라내곤, 깊이 뚫린 지하철 입구 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220쪽)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어떤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대로가 있는 반면 소수의 사람들이 다니는 오솔길도 있다. 오솔길이 작다고 오솔길이 잘못된 길은 아니다. 사람들이 모두 밥만 먹기는 어렵다. 일부는 국수도 먹고 스파게티도 먹는다. 국수 먹고 스파게티 먹는다고 이상한 사람은 아니다. 자신의 조건과 환경은 각각 다를 것이다. 많은 사람들처럼 살고 싶으면 그렇게 사는 것이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으면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전적으로 본인 책임이고) 포기는 있어야 한다. 결혼한 삶과 결혼을 포기한 삶은 비슷한 무게의 압박을 받을 것이다. 결혼을 포기했다고 해서 그렇게 홀가분하지 않을 것이다. 연애를 포기하거나 출산을 포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삶의 방식도 장단점이 모두 있는 것이고 좀 더 선호하는(또는 유리한) 삶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결혼하면 더 행복한 사람이 있고, 결혼하지 않으면 더 행복한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모든 사람이 결혼해야 행복한 건 아닐 것이다. 결혼하지 않는 게 더 행복한 사람은 결혼하지 않는 게 나을 수 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결혼하는 게 더 행복할 것이다. 피스타치오녀처럼 남의 간섭이 싫고, 결혼으로 인한 포기와 희생보다 자신만의 가치와 목표를 추구하는 게 더 좋다면, (좀 외롭겠지만) 혼자 사는 게 더 좋을 것이다. 반면에, 결혼하여 옥신각신 다투지만 그렇게 사는 게 더 행복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아마 '여').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현실의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결혼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 목표를 이루었을지라도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그래서 여와 미의 고민이 깊다). 현영이 이런 경우인데 그녀는 좀 특별해서(이성애자가 아닌 듯) 어떤 계기가 필요했다. 종잡을 수 없는 상대에 몸이 다는 모닝콜녀의 경우는 좀 독특한 성향이다. 할머니의 사랑이 오히려 빈에게 독이 된 듯 하다. 그녀의 미래가 걱정된다. 이 책을 읽으면 결혼이라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르고 쉽지 않다. 한 번 결정하면 물르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결혼이다. 따라서 결혼은 쪽박일 수도 있고 대박일 수도 있다. 결혼은 미친 짓일 수도 있고 최고의 승부수일 수도 있다. 결혼은 인생의 전환점인 듯 하다. 결혼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의 인생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혼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결혼한 후에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건 확실하다. 결혼은 내 인생에 다른 이를 끌어들인다. 결혼 이후에 내 인생은 달라진다. 그 '다름'을 감수할 만큼 그 상대가 좋다면 결혼하면 된다. - 결혼도 안 해본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다니! 누구도 결혼을 쉽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배워야 한다다. 자전거 타는 거야 친구 도움 받아 좀 넘어지면서 배울 수 있지만 결혼은 그렇지 않다.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체계적인 과정을 만들어 결혼 예정인 사람들을 위해 결혼이 무엇인지 대충이라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 등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관련 강좌를 들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어찌보면 애완동물 키우는 게 결혼에 대한 예방접종 역할을 할 수 있다. 애완동물 키우는 게 마냥 좋은 순간들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결혼이든 육아든 배워서 나쁠 건 없다고 본다. 특히, '동거'라는 게 결혼을 망설이는 커플들에게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거는 결혼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는 스프링이다. - 동거도 안 해본 사람이 별 이상한 말을 합니다. ------------------ 나보다 한 살 아래인 Y는, 내가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부신 눈으로 나를 바라본 유일한 여자였다. "언닌 정말 능력 있어. 누군 하고 싶어 죽겠어도 못한 일을 아주 간단하게 해버렸잖아." "능력 있으면 혼자 살아야지, 우아하게. 내가 뭘 하든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의무와 책임에 짓눌릴 필요도 없으니...... 좋잖아. 혼자면 조금 외로울 수도 있겠지만 뭐 애인을 여럿 두면 해결되지 않겠어? 그런다고 누가 뭐라 그러지도 않을 테니까." (19~20쪽) 언닌 자꾸 능력 없으면 결혼한다고 말하지만 결혼할 수준의 능력이 안 돼서 혼자 살 수도 있다는 건 왜 몰라? 아, 내 나이도 벌써 12월 25일이건만...... "12월 25일? 그게 나이야?"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같은 신세라잖아. 23, 24일에 제일 잘 팔리고 25일에도 그럭저럭 팔리지만 25일이 지나면 거저 줘도 안 가져가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내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팔 수 있는 마지막 나라이란 말이지 단 한 번도 나는 독신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 언니가 말하는 그 능력이라는 게 있어도 혼자 살고 싶지 않아. 능력이 없어서 결혼한다는 말도 솔직히 사치로 들려." (21쪽) Y는 송어야말로 사랑이 뭔지 아는 물고기라고 했다. 그녀는 물고기에 대해서라면 뭐든지 다 알고 있었다. 소나무 마디처럼 붉은 색이 선명해서 송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도 나는 그녀 때문에 알았다. "언니, 송어 신랑이 누군지 알아?" "송어도 신랑이 있어?" "당연하지. 송어도 결혼을 해야 새끼를 낳을 거 아냐." "사람이 사람하고 결혼하듯이 송어도 송어랑 결혼하겠지 뭐." "하여간 언니의 상상력은 아주 썰렁하다니까. 그렇게 빤한 답이 나올 것 같으면 뭐 하러 물어본담. 하긴, 그런 언니를 알면서도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잘못한 줄 알았으면 됐네. 그래, 신랑이 누구니?" Y는 나 때문에 김이 좀 샌 것 같더니만 송어 얘기를 하면서 금세 생기를 되찾았다. "송어는 가을의 신부야. 시월이 되면 송어 옆구리가 분홍빛으로 물이 든대. 사람은 웨딩 드레스를 그저 걸칠뿐이지만 송어는 몸 자체가 예복이 되는 거라고 볼 수 있지. 준비된 송어의 옆에 설 준비된 신랑은 바로 산천어. 재밌는 건, 송어는 바다에 살고 산천어는 하천에 산다는 사실이야. 결혼은 신랑 동네에서 올리고 새끼도 거기서 낳는다고 하는군. 그리고 일 년 쯤 지난 후에 수컷이 된 산천어는 하천에 남고 암컷이 된 송어는 바다로 떠난다는 거야. 어때? 멋있지?" "말도 안 돼. 네 말 들어보니까 하나는 바닷고기고 하나는 민물고긴 것 같은데 둘이 결혼을 한단 말야?" "그러니까 정말 결혼이지. 백인백색인데 어떻게 똑같은 사랑, 똑같은 결혼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그런 건 가짜야. 언닌 결혼을 너무 상투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애. 그러니까 만날 영화에나 나올 법한 독신 타령이지." 그렇다. Y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내가 바다에 산다고 해서 내가 그리워하는 누군가도 꼭 바다에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 진심으로 만나길 원했다면 나의 바다를 버리고 하천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먹고 있는 송어와 나의 살이 섞이는 행복한 착각에 빠질 수 있어서 송어회를 먹는 내내 나는 행복했다. (32~33쪽) "아하, 이거요. 나 원래 모든 음료를 다 스트로로 마셔요. 어릴 적부터의 버릇이죠. 사실 좀 그래요. 말하자면 눈물나는 버릇이죠. 엄마 젖에 굶주려서 그래요. 딸만 계속 태어나니까 다급해진 조부모가 출산을 재촉했대요. 젖을 빨리 떼야 임신할 수 있잖아요, 왜. 그래서 엄마 젖에 무척 굶주렸대요. 큰언니와 작은언니만 빼곤 우리들 모두 한 살 터울이에요." "결국 아들이 태어났나요?" "아뇨. 내 밑으로 여동생 하나를 더 두고 어머닌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지셔서 아이를 더 낳지 못하셨어요. 결국 작은집에서 데려온 남동생이 우리들과 같이 자랐죠. 어머닌 그 약해진 못으로 그 아일 정성으로 돌보았구요. 끔찍한 집안이에요." (51쪽) 그녀는 아마도 꽤 피곤한 손님일 것이다. 내가 종업원이라면 그 당돌한 여자가 무척 미울 것 같다. 이상한 땅콩을 찾는 노처녀라니, 그러니까 술집에 혼자 들어오지...... 게다가 술집에서 스트로는 왜 찾어, 골때리네 진짜...... 김연두는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조금도 헤아리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많이 보아왔지만 모두들 그녀만큼은 아니었다. 김연두는 행위예술가가 되거나 스포츠맨이 되었어야 했다. 유도나 축구 같은 여성 기피 종목의. (54쪽) "그냥 피스타치오는 아니에요. 피스타치오를 먹다 보면 껍질에 틈이 벌어져 있긴 한데 잘 열리지 않는 게 있거든요. 그것만 따로 모아둔 거예요." "대견하잖아요. 숨은 쉬어야 하니까 틈을 주긴 주되 결코 내 세계를 보이지 않겠다는 뚝심. 나는 밖을 다 헤아리고 있지만 밖은 나를 헤아리지 못하는 구조. 블라인드나 구식 변소 아랫창처럼요. 이 피스타치오들이야말로 그 이름에 걸맞는 피스타치오죠." "예? 그게 무슨 뜻이에요?" "피스타치오 앞머리에 붙은 피스 말예요. 안 열리는 피스타치오야말로 온전한 평화죠." 김연두는 피스타치오교 신도다. 평화의 열매, 피스타치오. (62쪽) "밤에 고속도로 다니다 보면 거적때기 덮어놓은 게 많다더라. 농부나 짐승들이 많이 다친다며? 길 건널 때 조심해야지. 길이란 참, 편리하기도 하면서 무섭기도 한 거야." "일종의 독재죠." 유가 가슴을 쭉 펴며 굵은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어머 그래요, 진짜. 이리로만 다녀라. 남들과 같은 방향으로만 가라." (68쪽) 그러나 밥을 많이 먹는다고 엄마의 사랑이 돌아오지도 아빠가 자상해지지도 언니가 나한테 잘해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과식으로 배탈이 나고서야 알았다. 배탈이 나서 누워 있는 나는 굶어야 한다면서 나머지 세 식구가 내게 등을 돌리고 둥근 상에 모여앉아 밥을 먹었다. 후룩, 하고 아빠가 뜨거운 국물을 떠먹는 소리, 여가 뜨거운 밥에 생선살을 얹어 입에 넣고는 뜨거워서 호아호아 소리를 내다 짭짭거리는 소리, 엄마의 입 속에서 알타리 무가 아작, 하고 씹히는 소리, 사기 그릇에 수저가 부딪히는 낮고 맑은 소리, 나는 그때 몰래 울었다. 아마도 내가 정신적으로 가족으로부터 독립했다면 그 순간이 아닌가 생각하곤 한다. 영혼의 구원을 대신 받아줄 수 없는 것처럼 내 밥도 누가 결코 대신 먹어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나와 더불어 굶기를 선택할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83쪽) "너, 진짜 같이 안 갈래? 이 일로 나중에 운명이 어떤 식으로 달라지더라도 너 후회하지 마라." 유가 샌들을 신으며 말했다. 물론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의 취재 동행은 앞으로 기회가 다시 올 수 있지만 절실히 혼자 있고 싶은 이 순간은 지금 흘러가버리고 나면 후에 다시 만난대로 아무 가치가 없을지 몰랐다. (83쪽) 옆동에 숙객이 든 모양이었다. 우리 동과 옆동 사이의 통로에 작은 돔형 텐트가 쳐져 있고 그 안에 남자들 셋이 앉아 있었다. 그냥 있어도 조금 서늘할 지경인데, 남자들은 더운지 한 사람은 웃통을 벗어 젖힌 채고 나머지 둘도 속옷인지 겉옷인지 알 수 없는 민소매 윗도리를 둥둥 걷어 올려 검게 탄 뱃가죽이 드러난 채였다. 벽에도 한 남자가 기대앉아 있었다. 남자들 사이를 지나치려면 텐트 아래의 남자들 팔이든지 주저앉은 남자의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털 난 다리든지와 부딪힐 것 같았다. 뱀껍질처럼 불쾌하게 부드럽고 차가운 낳선 촉감, 상상만으로도 살갗에 닿은 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 그들 사이를 조심스레 지나는데 나의 움직임에 따라 남자들의 시선이 마치 쭈욱 잡아당겨지는 것처럼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내 살껍질이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열려진 문 안에서 아이 업은 여자가 나왔다. 비로소 정상인을 만난 것 같은 안도가 느껴졌다. (93쪽) 여는 돈이 없어서 쌀은 못 사지만 술은 내가 사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사고, 돈이 없어서 양파 한 자루 못 사지만 영양파마 값은 내가 대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자기 돈을 쓴다는 경제 논리를 갖고 있었다. (94쪽) 여에게는 언제나 위험스러운 유혹이 뻗칠 수 있었다. 갖고 놀기에 저만한 상대가 없다. 돈이 없기 때문에 결코 재혼 상대감은 못 되니 부담도 없지, 게다가 성기는 있고 자궁 기능은 없는 여자니까. (101~102쪽) 그후 우리 사이가 조금 각별해졌을 때도 나는 유의 첫사랑에 대해 신경 쓴 적이 없었다. 내가 닭이 아닌 꿩일는 자신이 있기도 한데다 무엇보다 그 동안 흐른 시간이 황톳물처럼 모든 것을 쓸어버렸을 거라는 상식에서였다. 첫사랑이란 이승에서 경험하는 환상이다. (106~107쪽) 여의 노심초사가 부풀린 나쁜 암시를 낙관과 이성의 힘으로 불어 날렸다. 그러지나 드디어 내가 바라던 혼자만의 시간이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불안을 지불하고야 화평은 온다. 화평을 유지하는 게 그래서 해탈의 경지라는 것이다. 내가 내 안에 가득 차 오르고 우주의 질서정연함이 몸의 모든 세포로 충만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113쪽) 모두 먹통 휴대폰을 핑계 대고 비밀스런 자유를 누릴 것이었다. 이 깊은 숲, 깊은 방 드디어 나는 진정으로 혼자가 된 것이었다. 마침내 나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인가, 아니면 혼자 남겨진 불행한 운명의 참화가 일어난 것인가. (116쪽) 무엇이든 당신과 함께 먹겠어. 지난밤 살갑게 속삭이던 그를 기어이 보낸 이유가 어렴풋이나마 의식되었다. 나는 혼자서 눈을 뜨고 싶었던 것이다. 잠이 깨는 동시에 곁에서 들려오는 숨소리를 듣는 일, 내 것이 아닌 팔이나 다릴르 몸으로 느끼는 일,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먼저 바라보아야 하는 일. 그런 것들이 그의 말대로 두려웠던 것일까. (129쪽) 전기는 '다자이 오사무같이 시든 남자를 만나러 오는 그대여'* 라는 시구로 시작되고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같이 시든 남자. 시든 남자. 흑백 사진 속에 시든 남자의 옆얼굴이 있었다. 무심을 가장한 가득한 수심(愁心). 재형을 처음 만났던 스카이 라운지의 카페 - 저물녁 창가의 테이블에 팔꿈치를 받치고 어두운 창 밖, 아무것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게 분명한 재형의 옆모습을 나는 결코 잊지 않고 있다. 눈빛. 혹시 누굴 닮았다는 소리 들어보셨어요. 아뇨, 글쎄. 이 남자가 나를 애태우리라는 예감, 아니 기꺼이 이 남자를 위해 애를 태우리라 마음먹었던 것은 그가 누굴 닮았는데요라고 되묻지 않았기 때문일까. (165~166쪽) 어떤 종류의 인간들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어지러운 자기장의 폭품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생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며 타오르는 격렬한 홍염의 불길 앞에 어떠한 거부도 의미가 없다. 그 시듦의 정체는 어떤 운명적인 것, 퇴폐적이고 치명적인 것이므로. 그렇게 서둘러 시듦으로 인해 맻혀 떨구어진 씨앗이 어떤 종류의 꽃을 피우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불면의 밤이었다. (166쪽) 영화의 감독의 소도구의 상징성에 꼼꼼한 편이다. 불륜의 정사를 벌이는 정부의 오피스텔엔 모딜리아니의 잔 에뷔테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죽을 것이다. 정부와 여자가 끊임없이 찍어대는 폴라로이드 사진은 [카메라 루시다]에서 롤랑 바르트의 이론을 충실히 따른 설정이다. 죽을 것이다. 남편은 더없이 순진하고 착하고 무던한 남자다. 그러므로 죽일 것이다. 정말 죽인다. 철저하게 집요하게 완벽하게. 또 그러므로 나는 순진하고 착하고 무던한 사람을 결코 신뢰하지 않는 평소의 내 판단을 새삼 확신한다. (167쪽) 나는 왜 알 수 없는 것, 종잡을 수 없는 것에만 몸이 다는가. 불안하긴 하지만 쾌감으로 숨이 차오르는 것은 아주 가끔일 뿐이다. (168쪽) 재형이 다자이 오사무를 닮은 것은 단지 그의 옆모습뿐인가. 나는 결코 그들을 읽을 수 없다. 종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숨찬 쾌감만큼 나는 이내 불안해진다. 일주일 전쯤 난 재형에게 섹스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웃으며 싫다고 말했다. (169쪽) 이 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빈은 전에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끔찍한 상실감에 휘말렸다. 인간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러하듯이 빈도 할머니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 상상키 싫었다. 막 그녀의 서른네번째 생일을 지나치던 시점이었는데, 일주일 내내 극심하게 고통스러웠던 나머지 결국 장지에도 따라가지 못했다. (이 사건은 친척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씹히는 꼬투리가 되었다.) 그녀는 전형적인 할머니 아기였다. 열다섯이 될 때까지 부모가 살고 있는 지방도시 근교의 할머니 슬하에서 양육되었다. 한국적인 전원주택에서 푸른 하늘을 지붕삼아 그야말로 풍요로운 성장기를 보낸 것이다. 할머니가 갓 태어난 소년에게 왜 첫눈에 반해버렸는지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시기에 대해 그녀가 확신하는 유일한 진실은, 할머니의 사랑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자신을 적셔주었다는 것뿐이었다. (181~182쪽) 그렇지만 그 모든 기억 가운데서도 빈에게 가장 아름답게 남아 있는 것은 여름철 딸기에 대한 기억이었다. 할머니는 여름이면 매일같이, 조그만 어린아이가 혼자 먹기엔 지나치게 많은 양의 딸기를 대소쿠리 그득, 손녀의 앙상한 가랑이 사이에 걸쳐 얹어 주었다. 때문에 그녀는 아직껏 어린 시절의 찬란한 전리품인 양,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고 딸기에 대해서라면 오만을 부렸다. 이제 이 세상에 딸기다운 딸기란 소멸되었다. 그때 어린 그녀가 맛본 것만이 딸기의 '형상' 이었고, 참다운 인생의 기쁨은 그런 완벽한 딸기를 줄 수 있는 누군가의 손녀로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182~183쪽) 열시쯤 되자 빈은, 천 밀리 포도주스 팩에서 세 컵을 따라 마시며 딸기잼과 땅콩잼을 듬뿍 바른 토스트 여덟 조각을 먹었다. 컵과 접시들은 싱크대로 옮기다 말고 다시 냉정고에서 수박만큼 자란 신고 배 두 개를 꺼내 깎아 먹은 다음, 나무 쟁반에 오징어포를 수북이 쌓아놓고 질겅질겅 씹으면서 전화기를 들었다. 너무 배가 불러 헉헉거릴 지경인데도 속에서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요구했고, 물만 마신 느낌인데도 소화불량에 걸린 것 같았다. 몸이 확, 확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특별히 아픈 곳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프고, 움직이기 위해 뭔가 먹긴 먹는데 먹고 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정도로 식곤증이 일었다. 그녀는 엎드렸다. 그러자 등뼈가 앞가슴과 배를 짓누르는 듯했기 때문에, 도저히 그 자세를 오래 유지할 수는 없었다. 도로 반듯이 일어나 앉자 어지럼증이 핑 돌면서, 까닭 모르게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바로 그때, 양쪽 전화가 교통되었다. 순간적으로 울화를 억제한 결과, 빈은 꾸르륵, 하는 트림 소리로 인사를 대신하고 말았다. (193쪽) 빈에게 임신 중절이란 완벽히 공상적인 개념이었다. 하지만 그러함으로 인해, 그녀는 더더욱 원초적이며 주술적이기까지한 두려움, 아니 거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돼지를 잡거나 닭의 멱을 따는 것과 다름없이 느껴지는 동물적 잔혹이었다. 곧이어 그들은 임신을 공격했고, 출산이란 '근본적으로 무책임한 출산'일 수밖에 없음을 서로 설득시키면서 혼연일치가 되어갔다. (194쪽) 여섯시 이십분쯤, 검정 수트에 흰 셔츠를 받쳐입고, 바닥이 앏은 회색 모직 양말을 신었다. 머리에 빗질을 하고 올리브색 반코트를 걸치자, 나이를 짐작키 어려운 외양이 구성되었다. 전혀 세월을 타지 않은 사십대 초 여성처럼 보이기도 하고, 형편없는 섭생으로 젊음이라곤 느낄 수 없는 이십대 중방의 대학원생처럼 보이기도 해, 누구에게든 질문을 일으킬 법한 자신의 모호한 모습에 빈은 기묘한 쾌감을 느꼈다. (202쪽) 빈의 마음에 일어난 이상 현상. 그것은 남자를 내친 순간, 불현듯 빈의 누선을 자극해버린 쓰라린 죄의식의 발로였다. 살다 보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까닭 없이 측은지심을 자아내는 슬픈 인상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말하자만 웃고 있어도 안돼 보이고 농담을 해도 서글프고, 거드름을 피우면 비루해 보이는 독특한 개성의 인간들인데, 마침 그날의 H가 빈에겐 딱 그런 인물이었다. 빈은 보자마자 H를 밀어낸 슬픔에 가득 차, 손가락 끝에 눈물까지 찍어내며서, 메뉴판을 펼쳐 종잇장이 패이도록 후벼보았다. 미묘하게 회로리 치는 내면의 비밀을 H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얼마 동안 고개 숙이고 있을 핑계 거리라도 꽉 잡고 있어야 했다. 따라서 누가 보기에도 지나치리만큼 집요하게 요리 품목 하나하나를 길게 눈여겨보았다. H는 저 여자가 왜 날 보고 대뜸 울기부터 하나, 그들 사이를 중개해줄 웨이터가 올때까지 말문조차 열지 못했다. 이러는 내가 저 남자는 얼마나 황당할까. (207쪽) <단어> 1) 가납사니: "나 이거 참. 요즘 시청자들은 다 마니아 수준이라니까. 큐브릭이 어쨌네 린치가 저쨌네 하며 가납사니같이 떠들어댈 땐 언제고...... 겨우 시청자 수준을 못 맞춰요? 앞서진 못해도 최소한 같은 수준은 돼얄 것 아닙니까? 모르면 아는 척이나 말던가." (13쪽) <궁금, 의문> 1) 유는 요리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밤에는 별식을 곧잘 만들어내곤 했다. (86쪽) -> '유'가 아니라 '여'가 되어야 앞 뒤 문장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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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즐겨 읽는 나는 문학동네라는 출판사에 대해 평균 이상의 믿음을 갖고 있는 편이다. 이 테마 소설집 역시 출판사에 대한 신뢰감으로 읽기 시작하였으나 좋은 작가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그 기쁨이 컸다. (나는 무식하게도 집필자 중에서 마요네즈를 쓴 작가 전혜성만을 유일하게 알고 있었다) 또한 책을 읽는내내 내가 여성이기에 그런지는 몰라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여성들의 사는 모습에 대해 마치 친한 친구들의 방에 들어가 보는듯한 친근감이 들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첫 느낌은, 여섯 명의 여성 작가들이 그려내는 독신의 모습들이 마치 한 어머니에게서 나온 쌍둥이들인양 그 내면이 닮아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으로 시작됐다. 물론 주인공들은 하는 일과 성격, 자라난 배경이 모두 달랐다. 방송작가, 맥주회사의 라벨 디자이너, 무역회사 평직원, 의사, 모닝콜 서비스업체 직원, 무직에 가까운 프리랜서 사보작가 등등......심지어는 결혼을 한 상태 이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재혼을 고려 중 이거나, 이제 막 이혼을 했거나 등등 여섯 편의 소설 주인공들 모두 제 각각 살고 생각하는 방식이 죄다 달랐다. 하지만 여기가 한국 땅이어서 그런가? 싶을 만큼 이 땅에서 여자가 독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황폐한 내면은 씁쓸한 맛 그 자체로 한결같기만 했다. 왜 그럴까?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이 땅에서 결혼을 선택하기에는 너무도 똑똑해져버린 사람들이다. 이들은 안다. 결혼이 이제껏 가꿔왔던 제 삶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서로의 모난 부분을 서로가 연마해가는 과정이라는 결혼이 사실은 여자의 것만을 갈고 닦아 남자에게 맞춰가는 시스템의 다름 아님을, 그들은 겪어보지 않고도 잘 알고 있다. 뜨거운 커피속으로 각설탕이 녹아들 듯이 그 달콤함에 눈 멀어도 한참 눈 멀어해야 할(?) 연애 때 조차도 그들은 사귀고 있는 상대방 이성의 본질을 바로 간파해 버린다.「어둠보다 익숙한」에서 주인공 '미'는 말한다. "연애란, 남자가 자기도 추우면서 외투를 여자에게 벗어주고, 여자는 배가 고파도 자기 밥을 남자에게 덜어주는 것이다. 춥고 배고프다는 기초적인 욕구를 왜곡시키는 것도 그러나 한정이 있다. 우리가 알아온 지 칠 년, 나는 숱하게 빼앗긴 내 밥 때문에 그를 만나면 늘 배가 고팠다. 순전한 생존의 기본 욕구인 식욕에 그다지 염치없는 걸 보면 그는 이기적인 욕심쟁이일지 모른다. 결혼하면 제멋대로 굴고 받으려고만 할 것도 같다.
나는 얼마 전부터 그와 만났을 때는 절대로 밥을 남겨주지 않았다. 이 국밥도 그러니까 다 먹어야 하는거다. 밥알이 불어 양이 많아지기 전에 빨리 먹어치워야 했다."라고. 물론 눈 딱 감고 결혼을 한 「영화가 끝나고」의 이혼녀인 '나' 경우에도 첫 결혼에서, 남자가 생각하는 결혼(여자는 가능하면 빨리빨리 애낳고 가정에 붙박혀 충실해야 한다)과 자신이 생각하는 결혼이 터무니 없이 차이짐을 느끼는 순간, 처절히 묻는다. "당연? 삼십 년 가까운 내 삶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드는 일이 당연하다는 말이야? 알아? 당신이 내게 요구한 건 나를 포기하는 일이었다는 걸?"
그렇다면 아직은 혼자 살고 싶은 주인공들이 왜 이 땅에선 삶의 한 방식일 뿐인 싱글로 안전하게 우아하게 살겠다는 의지를 자꾸 꺾일까? 「웨딩 웨딩 드레스」의 현영은 이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가 얼마나 불안지경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경제부총리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우리는 갑자기 모든 걸 경제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무조건 가장이기 때문에 무조건 가장이 아닌 여자들이 먼저 일을 그만두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어떻게든 시대와 불화하지 않으려고 친구들은 결혼을 택했다. 우디앨런의 말처럼 인생은 공포 아니면 불행이었다."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여성은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구원받지 못하며, 이 사회는 아직도 여자란 자고로 남자에게 속해 있을 때에야만 비로소 사람으로 완전해지는 존재 취급에 의문이 없다. 따라서 여자들은 스스로를 자조하며 비하하며 옛날 고리짝과 겉모습만 바뀌었다 뿐이지 속내는 변함없는 남존여비의 굴레로 어쩔 수 없이 몸을 날려버리는 것이다.「웨딩웨딩 드레스」의 Y에게 독신은 급기야 삶의 한 방법
이 아닌 계급으로, 그러니까 신종 프롤레타리아로까지 자신을 낮추어가며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자신을 견준다.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같은 신세라잖아. 23, 24일에 제일 잘 팔리고 25일에도 그럭저럭 팔리지만 25일이 지나면 거저줘도 안 가져 가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내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팔 수 있는 마지막 날이란 말이지."
사실 책을 손에 쥐었을 때는 상상만으로도 즐겁기 짝이 없을 화려한 독신의 방을 꿈꾸었었다. 나 역시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집 못 간 노처녀 소리를 듣는 사람으로서 픽션의 세상에서 만큼은 멋지게 폼나게 사는 독신녀들을 보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소설들도 현실에 뿌리를 둔 탓인지는 몰라도 이런 나의 허황된 기대를 여지없이 깨어 버렸다. 독신인 그들은 외롭고, 불안하고, 괴팍하고, 두려운 속내를 지녔다. 슬프게도...... 결혼 안 하고 사는 이들을 미성년자 취급하는 이 사회에서 그들은 아직 핍박받는 소수민족인 까닭이다. [인상깊은구절] 성인이 된 후, 오로지 나의 경제력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 세 가지가 있었다. 나만의 공간,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을 참지 않아도 좋을 문화적 여유, 기동력을 발휘할 자가용 승용차. 그것이 남자를 갖는 것보다 우선이었다. --- p. 14 회사에서의 여직원은 딱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영계와 노계. 노계 중에서 대외홍보용으로 키울만한 몇몇의 발군의 인재만이 대리도 되고 과장도 된다. 나머지는 결혼과 동시에, 자동 포장되어 상자에 담기는 공산품처럼 줄 맞춰서 퇴사하는 것이다. --- p. 74 친구들은 이제 거의 누군가의 아내 아니면 남편이었고, 동시에 부모, 혹은 누군가의 애인들이었다. 그들은 그런 역할들의 중첩성에 허덕허덕했다. 또한 동시에 역할의 중첩성이 유한한 인생에 끼치는 무리와 기만을 번개처럼 알아채고는, 안이한 마음으로 궤도를 이탈했던 과오에 대해 금세 쓰라린 후회의 감정에 사로잡혔다. 왜냐하면 축복의 소란으로 인한 초기의 무분별한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소위 자신들이 택했다는 생의 안전한 내부는 파고들수록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진리가 날이 갈수록 뼈저리게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 p.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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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붉은 장미꽃이 마치 여성성기를 연상시키는 듯한 선정적인 표지. 게다가 '독신'이라는 제목의 젊은 여성작가 6인의 연작소설. 이쯤 되면 '책 꽤나 팔아볼려고 애썼군' 이란 빈정거림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책을 서가에서 뽑아들고 돈까지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 2시간만에 다 읽어버렸을까? 그건... 아마도 내 삶의 비루함과 궁상맞음을 설명할 언어가 필요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6편 소설의 내용들은 생각보다 제법 묵직하다. 아직도 이 나라에선 젊은 선남선녀의 결혼이란 건드려져는 안 되는 신성한 것이고 국민적인 프로젝트이며 내수산업을 떠받치는 기둥이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일상의 관계들은 텔레비전 안의 드라마처럼 깔끔하게 해피엔딩을 맞이하긴커녕 비틀리고 흐릿해져 누군가의 의도를 따져 잘잘못을 가리기도 힘들다. 모두 여성 화자들로 풀어가는 '관계의 이야기'들은 교과서적으로 여성들의 독신을 옹호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흔하디흔한 신문사설들처럼 배부른 년들의 헛소리라고 일축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신 그녀들은 나즈막하게, 서글프게 때로는 시니컬하게 그림자 뿐인 남편, 신종 프롤레타리아로서의 독신 여성, 마음을 꽁꽁 닫아 생긴 상처 등을 풀어 놓는다.
독신, 이라는 말은 참 희한한 말이다. 우리는 '독신'이란 말에서 흔히 커리어 우먼이며 능력은 있으나 신경질적이고 성적 매력이 없는 여성의 이미지를 연상한다. 또한 그녀는 처녀이면서 뒤로는 호박씨를 깐다고 상정된다. 앞서도 내 삶의 비루함을 말했지만 그래, 난 독신 여성이다. 아직 결혼전이라는 뜻의 '미혼'이 아니라 독신이란 말이다. 그러나 나는 흔한 독신 여성의 이미지와 걸맞는 사람이 아니다.
세상은 변해 가는데 세상을 말할 언어는 왜 변하지 않는 것일까? 나를 존중하며 그 존중만큼 타인도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이 결혼에 관심없다는 이유로 왜 그렇게 배반당해야 하는 것일까? 그 배반에 상처입지 않으려면 그 마음은 지켜가되 관계들을 돌아보며 성찰적인 관계들을 맺어야 할 듯 싶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언어가 계발되어야 할 듯 싶다. 다음엔 그런 책을 만났으면 싶다. [인상깊은구절] 자신 명의로 된 집을 소유하고 있어야 하고 월수입도 몇백이상이어야만 가입할 수 있는 독신자 클럽 얘기를 해주면 Y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독신에의 꿈은 풍선처럼 공허하게 내 머릿속에서 부풀어 있었다. 혹독한 현실의 독신을 견뎌야 하는 Y의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롭게 나를 찔렀다. 그녀에게 독신은 삶의 한 방법이릭보단 계급에 가까웠던 것이다. |
| 축하합니다. 아들 입니다. 아들은 이미 비선택의 대상이 되어 지고 여자는 태어날때 부터 두 가지 선택의 대상이 된다.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피어나지 못한채 분해되는지... ' 독신' 이라는 이 물음이 왜 문제가 되어야 하나?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 그러기에 환경에 지배 당하고 그 사회 속에서 많은 선택의 갈등에 휘말린다. 주체성,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이 뿌리 박힌다면, 여성으로서 어떤 길을 선택 하든지 후회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남자 보다 여자가 여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남자에 선택 되어 지기 보다는 그 남자를 키우고 있는 여자에게 여자가 선택 되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흔히 결혼은 해도 후회 결혼하지 않아도 후회 라고 한다. 결혼, 독신 정말 멋있는 말 들이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지지 않도록, 결혼과 독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중요하다. 최선의 선택이라. 결혼은 일종의 얽매임과, 희생이 필요하다. 특히나 능력 있는 여성이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여성들이여, 우리 흔들리지 말자.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남자와 여자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성의 차이를 이해하자. 남자 여자, 모두 걸림돌 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발전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믿자. 이 책을 통해 나는 결혼한 사람만이 선택 되어 진 사람이 아니라, 독신이기를 고집하는 그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 선택되어진 사람이라 생각 한다. 그들의 가치관, 능력, 자유 분방함에 나 자신이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그들이 가지고 있으니.... 여성들이여, 우리의 위치를 깨닫자.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의 온갖 노력을 다해, 후세대 여성들이 이 땅에서 짓밟히지 않도록 노력하자. |
| 젊은 작가들의 테마 소설집이라더니, 과연 젊다. 73년생이 둘이요, 74년생 작가도 포함돼 있다. 제일 '노땅'이라는 사람이 60년생이다. 언제부터 생긴 버릇인지 모르지만 나보다 어린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면 괜한 트집잡기에 나서게 됐다. 그리고 또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보다 어린 사람이 쓴 글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과연 젊다. 작가의 나이가 어릴 뿐 아니라 문체가 젊다. 감각이 젊다. 하지만 가볍다. 이 책을 읽은지 이제 3주 정도가 지나고 있다. 6편의 소설이 들어있는 이 소설집에서, 그러나 지금은 단 한편의 줄거리도 기억나지 않는다. 읽을 때는 꽤나 재미있게, 그리고 감탄하며 읽었던 듯 한데... 글이란, 쓰는 사람이 던져주는게 아니라 읽는이가 챙겨 먹는거라고 한다면, 나는 적어도 이 책에 대해서는 별로 챙겨 먹을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읽은지 불과 몇시간만에 나는 이책에서 먹을게 없어졌었고, 이제 다시 뭔가 찾아 먹을게 없나 하며 뒤적거리고 있다. 지난 3주일... 퍽이나 갑작스러운, 퍽이나 짜릿한, 그러나 갖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나았을 기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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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자신이 꿈꿔왔던 세상을 현실에서 찾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비슷하게나마 목표를 이룬 사람일지라도 그것을 유지하려면 몇 배의 노력과 고통을 감내해야 할것이며 때로는 회의도 느낄것이다. 현란한 문체로 독신을 미화하더라도, 자꾸만 침잔하는 어두운 색깔로 독신을 감싸더라도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피스타치오 껍질같은' 나만의 세계를 깨지도 지키지도 못하고 세상밖으로 내몰릴때, 우리는 그 어디에서 위안을 얻고 잠시라도 숨을 수 있을까?
'포기해야만'(영화가 끝나고)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연결고리를 하나쯤은 놓아두어(콜링유)도 되지 않을까싶구... 비록 그것이 현실에서는 이루어 질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말이다. 아마도 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더불어 사는 것보다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꼭 그렇지 않겠다. 혼자 살아온 사람들은 습관때문에 그게 제일 좋다고 할 지 모르겠다. 분명 결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까. [인상깊은구절] 이제 괜찮니? 토비의 체온이 따스하면서도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래 , 우리 힘들더라도 참으면서 함께 살자. 모두 다 가질 수는 없는 거야,개든 사람이든 그렇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킬 것인지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인 거야.목덜미에 얼굴을 묻는데 갑자기 토비가 버르적거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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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내가 읽어왔던 다른 책들에 비해서 이 '독신'이라는 책은 책의 소재가 그러하듯이 파격적인 느낌을 주었다. 동성을 의식한 탓인지 나는 여류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렇게 여섯명의 개성있는 글을 한꺼번에 읽고 느끼게 되어 얼마나 영광인지 모른다. 나름대로 자신의 깊이 뿌리박힌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소설속의 주인공을 불러 나타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마음에 와닿았던 글은 김현영의 "웨딩 웨딩 드레스"와 류소영의 "피스타치오를 먹는 여자"라는 글이었다.
특히 류소영님의 글은 피스타치오라는 새로운 소재를 주인공 김연두와 일치시키면서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글이었다. 지나친 강함이, 더 안쓰러워 보이던 책 속의 주인공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매듭이라는 여자와 긴 목을 가진 여자의 사랑, 그리고 매듭의 죽음...... 그리고 종갓집의 넷째딸로 태어난 김연두와 피스타치오..... 어딘지 모르게 한곳이 비어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도 세상을 좀더 살아가면서 완전한 자신들을 만들어 갈수 있으리라 믿는다. [인상깊은구절] 초봄에 태어났거든요. 어머니가 여리고 고운 분이에요. 넷째 달이라 애써 열성을 가지고 내 이름을 짓겠다는 사람이 없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우겨서 지었죠. 연두색같이 살라구요. 종갓집 넷째 딸이거든요. 건성으로라도 산모나 아기의 건강이나마 물어오지 않았다더군요. 어쨌거나 집안에 아기가 새로 태어났는데 서운함을 넘어서서 노기 띤 분위기였대요. 연두색.....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이 뒷방에서 나를 안고 망연히 뒤뜰을 내다보는데 집안 분위기랑은 상관없이 계절은 빛났었겠죠. 그래서 연두야, 연두야 했대요. 어머니가 나를 쳐다보며 자주 부르니 그게 내 이름이 된 거구요. 그 집구석의 모든 것들, 지금도 나이 팔십이 넘어서까지 전국의 유림들이 성균관에 모여 무슨 시답잖은 모임 같은 걸 하면 열 일 젖히고 달려가는 조부나 지금껏 나와 나눈 대화가 채 스무 다미도 안 될 조모, 하다 못해 그 집에서 나는 오래된 한옥 냄새나 순종적이기만 누렁이까지 그 집의 모든 공기, 모든 살아 숨쉬는 것들이 다 싫은데 난 내 어머니와 내 이름만은 미워하지 못하죠. 하긴, 이름같이 못 살고 있긴 하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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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처음부터 배척 당할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책 제목이 상징하는 바와 붉디 붉은 겉표지, 여성 작가 6명이 모였다는 점에서 독자는 그들이 작당(?)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무난한 생각이다. 그러나 왜, 독신이라는 낱말은 자주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여자를 떠올리게 하는가. 이 책에 대한 서평에 아직 남자 독자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님,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다면 그냥 이 책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려봄이 어떨까?
때때로, 사회의 편견이라는 파도에 자신을 맡기고 싶을 정도로, 현실이 힘든 여성들의 이야기 모음집이라고. 편안하게 생각하고 보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른다. '파스타치오를 먹는 여자'는 독신의 외로움을 자상하게 보듬어주는 결혼한 여자가 바라본 독신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웨딩 웨딩 드레스'는 새로운 소비자 계층으로까지 떠오르는 직장 여성에 관한 이야기, '어둠보다 익숙한'은 아직까지는 독신인, 또다른 여성의 이야기이다.
거기에 경제력이 없는 현실적으로 무능한 독신 언니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자기 편한 대로 행동하는,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는 남자와의 이야기이다. '섹스에 관해 너무 지껄인 다음 날'의 주인공은 독신의 허기를 물질로 채우는 사람으로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영화 '301, 302'와 '코르셋'에 등장한 주인공들의 한 단면을 떠올리게 한다. 다양하지만 현실적인 이 글들을 통해 독신자들이 과연 얼마만큼 공감하고 혹은 반대할지 모르나 누구 말대로 '살면서 계속 사는 법을 배워라'라는 말은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배워야 할 점이 무엇인지는 본인만이 알 것이다.
오늘도 남녀의 법적인 조화(?)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힘들게 그러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독신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이성복 시인의 싯구절을 들려 주고 싶다.
'늘 멀리 있어 자주 뵙지 못하는 아쉬움 남습니다. 간혹 지금 헤매는 길이 잘못 든 길이 아닐까 생각도 해보고요. 그러나 모든 것이 아득하게 있어 급한 마음엔 한 가닥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이젠 되도록 편지 안 드리겠습니다. 눈 없는 겨울 어린 나무 곁에서 가쁜 숨소리를 받으며'
-「편지5」- [인상깊은구절] 대견하잖아요. 숨은 쉬어야 하니까 틈을 주긴 주되 결코 내 세계를 보이지 않겠다는 뚝심. 나는 밖을 다 헤아리고 있지만 밖은 나를 헤아리지 못하는 구조. 블라인드나 구식 변소 아랫창처럼요. p.62 아마도 내가 정신적으로 독립했다면 그 순간이 아닌가 생각하곤 한다. 영혼의 구원을 대신 받아 줄 수 없는 것처럼 내 밥도 누가 결코 대신 먹어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나와 더불어 굶기를 선택할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하루하고도 반을 굶고 자리에서 일어난 후 나는 다시는 과식이나 밥 굶기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p.83 이제 영화는 끝났다. 준비도 없이 훌쩍 떠나려 했던 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혼자서 내 부서진 조각들부터 주워 맞출 일이다. 어둠은 더 깊은 어둠으로 밝혀지지 않는 것이다. p.148 |
| 요즘 계속 번역서들만 읽었다. 다시 말해 외국 소설들만 읽었다. 윤대녕이나 은희경 등의 일군의 작가군단의 신작들이 예전만큼 다가오지 않는 탓에. 그러다보니 불현듯 우리 소설이 읽고 싶고 둘러보니 딱히 마음 끌리는 것은 없고 해서 다이제스트 같은 느낌의 '독신'을 소재로 한 젊은 여성 작가들의 단편 모음집 한 권을 사 들었다. '독신'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하나의 소재를 화두로 몇 명의 작가를 묶어서 책으로 내는 게 유행이 된 듯하다. 각설... 짧고 간단하고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무수히 보아오고 읽어 왔던 이야기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므로. 글쎄, 요즘엔 왠지 한없이 침잠만 하면서 생각이 생각을 낳는 주인공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정말 삶이 저런 침잠의 연속일까? 왜 주인공들은 애써서 침잠하려고만 하고 침잠하는 자만이 고뇌하는 인간 존재의 멋있는 대변인인냥 되어 버리는 걸까? 며칠 전 '허준'과 '꼭지'가 동시간에 재방송 하는 바람에 한참을 고민하시던 아버지께서 허준을 보면서 꼭지를 녹화하셨다. 그리고는 여지껏 녹화한 꼭지를 안 보고 계신다. 그런 거다. 우리 일상은 허준을 보느냐, 꼭지를 보느냐(그것도 재방송을)의 결정이 더 어렵고 신중하다. 그리고는 그 결정에 대해 책임도 못진다 그런데 '독신'의 주인공들은 어떤가. 다 여자다. 대부분 잘 나간다. 거의 다 대학 이상의 학력 소지자인 분위기다. 게다가 침잠을 장기로 하고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침잠을 하거나 또는 침잠을 어리광처럼 가장할 때도 있다. 그러나 침잠을 24시간 연속, 한 달 연속, 일 년 연속으로 하지는 않는다. 압축된 이야기들이라 고도로 농축된 침잠이 나오는 건 이해하지만 단편들 모두가 다 그런 형상이고 보니 읽다가 다 비슷비슷한 아류에 지나지 않는구나. 삶은. 또는 독신이라는 허울은, 이라는 생각이 들고 만다. 작품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미인들만 모아 놓으면 결국 다 비슷하고, 천사들만 모여 있으면 천사들로 가득한 지옥이 되고 말 듯이 침잠의 이야기들만 읽으니 맥이 빠진다. 핵심을 치고 들어가는 유쾌함 같은 건 어디서도 찾을 수없다. 서운하다. 책 내용이야 그런 대로 괜찮지만 너무 자주 본 베스트 극장 같다. |
| 이 책을 나는 나의 결혼얘기가 오갈때 읽었다. 도대체 결혼이란 걸 해야하나 말하야 하나 라고 갈등하고 있을때 이 책이 나왔다. 평소에 문학동네의 책을 즐겨읽는 나로서 서슴없이 책을 집어들었다. 독신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서 고른 책... 조경란의 자줏빛소파와 독신(문학동네) 중 어느걸 살까 망설이다가 표지때문에 독신을 포기했었다. 흑장미, 그것도 아주 커다란 흑장미와 검은 색 배경의 표지... 정말 마음에 안들었다. 무슨 통속소설의 표지같아서, 내가 한때 심취(?)했었던.... 그런데도 자줏빛소파를 다 읽고 나서 어쩔 수 없는 끌림(?)에 독신을 작은 서점에서 사고야 말았다. 특이(?)할만한 점은 내가 졸업한 대학 문창과를 나온 김신조,김자경(?)이 쓴 단편이 포함돼 있다는 거였다. 사실 한명의 글은 정말 끔찍했다. 미숙함이 풀풀 느껴졌다. 거의 체험수기 수준에다가 후반부에는 어설픈 페미니즘...동성애까지... 다른 작가들의 글들 중에는 좀 생각을 곱씹게 하는 부분이 있기도 했다. 내 현재 입장과 접목을 시켜서... 그 책을 읽던 때가 마침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오빠네 어머니가 오라고 하셔서 갔을 때였다. 다녀온 느낌은 별로 안좋았고... 독신 중 어느 단편의 느낌과 닮아 있었다. 정말 나 이렇게 결혼해야 해? 하는 의문이 들기까지 했다. 어차피 하게 될 거라고 해도 말이다. 결혼을 앞둔, 혹은 적령기의, 혹은 결혼적령기라는 시기를 넘은 여자들에게 한번 쯤은 읽어봐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