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쓰기는 ‘자기 가슴의 피를 먹여 탄생시킨 생명체’라 한다. 그 가슴의 피를 엿보는 기회가 흔치 않을 터,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게으르길 잘했다>의 첫 장을 열었다. 이곳에는 작가의 유년과 청년 시절 초기 모습 일부 그리고 세월을 건너뛰어 현재 시점으로 서술한 인생이 담겨있다. 중간에 증발한 부분은 때가 되면 또 다른 글로 나타나리라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가슴 속 깊이 묵혔던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덤덤하게 가끔은 맛깔난 단어를 섞어가며 가감 없이 써 내려간 마흔 한편의 얘기인데 그의 삶의 방식이 듬뿍 담겨있고 자신을 게으르다 자조하지만 내 판단으로는 매우 부지런히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264쪽 여정이 심히 고단한 작업이었을 테고 첫 작품이라 더욱 힘들었을 작가의 고뇌에 경의를 표한다. 글 중간에 언뜻언뜻 뵈는 충청도 사투리도 정겹다. 몸으로 체화된 자연사랑, 시골 생활의 정겨움이 뚜렷이 드러난다. 유년의 기억을 이만큼 잘 새겨놓은 작가가 또 있을까 싶다. 술술 실타래를 풀 듯이 이어지는 담백함을 즐기다 보면 바로 '내 이야기'이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로 올라온 촌 놈 이야기들, 거기서 썼던 정겨운 말의 잔치. 차부, 전보산대, 엔간히, 그려 등이 촘촘이 늘어선 옛날을 한올 한올 뽑아낸다. 진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피붙이에서 비롯된다. 아버지와의 교감이 그 중심이다. 책을 통해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다. 전체적으로 자연에 대한 애착이 주류를 이룬다. 세월이 지나 그는 더 한적한 시골로 옮겨가 엉터리 농사를 지으며 가끔씩 글을 쓰는 생활을 영위할 것 같다. 농사일에 대한 표현이 정갈하여 예사롭지 않다. 요즘엔 맨발 걷기가 돌풍인데 굳이 그럴 필요 있나. 맨손과 맨발로 농사지으면 그게 바로 어싱(Earthing)이지. 언제부턴가 나는 긴 글 읽기에 부담을 느꼈다. 태백산맥 이후엔 장편을 읽은 기억이 없다. 두말할 것 없이 좋은 작품이지만 여러 장면에서 뜬금없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세밀한 묘사는 소설의 작품성을 도리어 반감시킨다는 느낌이다. 양서의 기준은 주제가 간결하고 알기 쉽게 드러나야 한다. 본질을 정확하게 짚고 핵심을 찌르는 책 또는 영감을 툭툭 건드리는 책. 어떤 부분이 밋밋하게 쓰였다고 느껴지는 문장에 영감을 불어넣는 듯한 책. 투키디데스 같은... 이후승의 글은 굵고 짧고 명징하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내가 읽어도 무난한데 수필이어서 오히려 아쉽다. 이야기를 좀 더 숨을 길게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편으로는 속편과 그 이후의 작품을 기대하게 된다. 세대를 이어서 인간과 자연의 생성과 소멸의 섭리를 불쑥 건드리는 글을 다음 편에서 기대한다. 나는 주로 과학서적과 빅 히스토리를 비롯한 역사책을 즐겨 보았다.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E.H.카는 대답한다. “역사란 역사가와 그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현재와 과거의 대화! 무척 멋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표현은 누구도 하지 않은 말이라서 명언의 반열에 올랐다. 인간은 기억을 갖고 산다. 기억은 자기 정체성의 핵심이며 존재 이유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인간이 살아온 길을 기억하고, 앞으로 살아갈 길을 예측하는 것, 곧 ‘역사’이다. 이런 의미에서 태양만 녹슬지 않는다면 인류는 영생도 가능하지 않을까? 세상을 기억해 주고 예측하는 것이야말로 영원히 사는 것일 터이니... 이후승의 글 역시 그의 역사이다. 작가가 별다방에서 꺼내 보던 오래된 기억. 이를 복원해 내려 애쓴 흔적. 망각의 강을 절대 건너지 않겠다고 기를 쓰는 몸부림. 영화 박하사탕의 “나 돌아갈래~”처럼 기억의 저편으로, 아름다웠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거기서 사이렌과 더불어 3년을 수행했다지. 앞으로 치악산에서 3년 오대산에서 4년, 그렇게 10년 정도 성찰을 몸소 체험하여 오래도록 독자들의 기억에 탄탄한 작가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