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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의 일 년,이라는 책 제목을 보자마자 의문이 들었다. 1년 간 해외로 여행을 갔단 말인가, 유학을 떠났다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온 건가. 이 애매모호한 제목에는 그저 남의 나라에서 일 년을 지냈다는 정보만 나와 있었다. 주인공이 보낸 일 년이 어땠을지 궁금해 선뜻 책을 집어 들었다. * 소설의 주인공은 틸러. 미국에 거주중인 20대 초반 남성으로, 아시안의 피가 아주 조금 섞인 ‘거의’ 백인이다. 아시안은 그를 코쟁이라 불렀지만, 백인은 젓가락질하는 방법을 짓궂게 묻곤 했다. 그에게 아시아쪽 피를 물려준 엄마는 틸러가 어릴 적,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그를 책임감 있게 길렀으나, 다정하지는 못했다. 틸러에게는 성인 자폐 환자인 고모가 있었는데, 그녀를 돌볼 유일한 가족이 제 아버지였으므로, 아버지의 온전한 관심을 받는 건 사치였다. 틸러가 살았던 ‘던바’는 빈부격차가 심한 동네였다. 16살 생일파티를 미슐랭 스시 레스토랑에서 벌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접시닦이 알바를 하면서 손님이 남긴 음식을 줏어먹는 친구도 공존했다. 틸러는 딱 그 중간 지점의 중산층이었다. 그는 부유한 친구들의 파티에선 늘 ‘대기자’로서 결국 초대받지 못했고, 접시닦이 알바는 해외 연수를 떠날 용돈을 보태기 위해 방학에만 참여할 정도였다.
“아무 데도 속하지 않느니 어둠에라도 속하고 싶은 것이다.”_463p
틸러는 항상 여기도 저기도 아닌 곳에서 부유했다. 그런 그에게 일상은 무료하고, 삶은 지겹기까지 했다. 틸러에게 삶이란, 시간이라는 바다 위에 몸을 뉘인 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었다. 배의 방향키 손잡이를 뜻하는 틸러(tiller)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그는 제 삶의 키를 느슨하게 놓아버린 채 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의 방향키를 낚아챈 남자가 등장하며, 틸러의 삶은 낯선 파도 속으로 고꾸라지고 만다. 그것도 무려 일 년이나.
유혹하기 쉬운 소년, 그게 나였다._394p * 틸러는 알바를 하던 도중 우연히 중국계 미국인 사업가 퐁을 만나게 된다. 터무니없이 큰 저택, 그가 가진 광범위한 사업체, 경찰들과도 친근해 보이는 퐁은 의심할 여지없이 크게 성공한 이민자였다. 그런 퐁은 틸러에게 ‘사업가적 잠재력’이 있다며, 함께 1년간 사업 여행을 떠날 것을 제안한다.
“내 생각에, 넌 진짜로 드럼 카파고다를 만나야 할 거 같아.” 퐁은 거대한 원형 진입로에 서 있는 공유 자동차로 나를 데려다주며 말했다. “그렇게 해 보자.” “좋죠.” 나는 양손 엄지를 치켜올리며 말했다._97p
언제나 그렇듯, 틸러는 제 삶의 방향키를 놓은 상태였으므로 흔쾌히 그를 따라나선다. 화려한 전세기, 퐁과 함께하는 어마어마한 아시안 갑부들. 퐁의 화려한 재력은 곧 절대적 믿음이 된다. 틸러는 이들과 함께 ‘자무’라는 음료에 투자해줄 사람들을 찾아 전 세계를 떠돈다. 자무는 일종의 인도식 민간요법 음료로, 길거리에서 자무 파는 노인에게 증상을 이야기하면, 노인이 온갖 약재를 마음대로 섞어 만들어주는 음료수다. 퐁과 일행은 시한부 부자 노인에게는 자무를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로, MZ세대에게는 천연 레드불로 소개하며 성공적인 투자금 유치를 해낸다. 그러던 중, 그들의 가장 큰 투자자인 ‘드럼 카파고다’를 만나며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게 되는데…….
질문 : 너무 멀리까지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_462p * 소설은 크게 세 가지 서사가 중첩되며 앞으로 나아간다. ①틸러의 어린 시절과 퐁의 어린 시절, ②틸러가 퐁을 따라 나선 1년간의 사업 여행, ③여행 이후, 열댓살 연상의 싱글맘 밸과 그의 아들 비즈와의 동거 생활.
어린 시절, 틸러가 겪은 상처는 그의 결핍이 되고, 이는 손쉽게 퐁을 따라나서는 열쇠가 된다. 결핍은 쉽게 채워지질 않아 밸을 금방 사랑해버리는 단서가 되지만, 퐁과 떠났던 여행에서의 경험은 밸을 향한 책임감의 밑바탕이 된다. 이 소설이 재밌는 지점은 스펙타클하던 퐁과의 여행이 틸러를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타국에서의 일 년은 틸러가 고생 끝에 미국으로 돌아온 순간, 그 힘을 잃는다. 틸러는 다시 연상의 아시안에게 쉽게 호감을 갖고 제 삶을 내맡겨버리는 몹시 틸러다운 인간으로 돌아온다.
“나는 사라지고 싶었다. 삶으로부터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삶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_451p
그러나 틸러는 타국에서 보냈던 일 년을 잊지 않았다. 그곳에서 신랄하게 자기 자신을 빼앗겼던 시간과 도로 나 스스로를 되찾은 경험은 고스란히 그의 몸 한 구석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는 결정적인 순간, 누군가의 의지가 아닌 오로지 자신의 결단력으로 가족을 만들고, 뿌리를 내린다. 그는 줄곧 삶의 주도권을 버린 채 수면 위를 둥둥 떠다녔지만, 사실 그에겐 절박함이 있었다. 세상 모든 인간이 제게 선을 긋더라도,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해 경계선 위에 덩그러니 방치되어있더라도, 어떻게든 세상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었다. 온전한 자신이 남아있지 않을 만큼 누군가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길 원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스스로 선을 넘어 밸과 비즈의 삶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드는 틸러는 더 이상 마냥 어리숙한 소년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틸러의 변화(성장)를 보고 있으면, 내 안에도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와 인생의 이정표를 꽂아줄 힘이 숨어있는 건 아닐까 기대하게 된다.
“네 안에는 어떤 절박함이 있어. 일종의 허기가 있지. 넌 그게 뭐라고 생각해?”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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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이창래 작가는 장편 작가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그의 무거운 벽돌책들은 늘상 선뜻 집기 어려웠다. 쉴 때 읽는 것이 책인데, 500페이지가 넘는 책들은 쉬는 게 아니라 읽어야 하는 압박감이 늘 뒤따랐기 때문이다. 이번 신작은 표지가 전작들과 다르게 내 취향이기도 했고, 믿고 보는 김연수 작가님의 추천사가 눈에 띄어 읽기를 결심했다.
<타국에서의 일 년>이라는 제목만 보았을 때, 일 년의 여정이 주인공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으리라는 예상을 해보았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너무 멀리까지 떠나 버린 사람의 이야기’라는 문구를 보고서 어딘가로 도피하고 싶은 이가 멀리 떠나 희망을 찾아 돌아오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유치한 추측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을 완독한 후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 과연 틸러의 일 년을 단번에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모든 이가 다 다르게 그의 일 년을 평가할 것이다. 틸러의 삶이 나는 더욱 궁금하다. 앞으로의 그의 인생이라는 여행이 더 알고 싶다. 이 두꺼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그의 삶을 더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줄이야.
마치 한 편의 길고 긴 성장소설을 보는 듯했다.아마 이 두꺼운 책을 나는 다시 읽을 것이다. 틸러의 삶이 더욱 궁금해졌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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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라는 말은 나에게 낯설지 않다.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라면 알 수밖에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역사와 사람은 디아스포라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한인 이주, 이민의 역사는 그 어떤 나라, 민족의 이동보다 처참하다. 그런 역사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기에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었다>가 인기를 끌지 않았을까?
이창래 작가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소설의 제목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다. <타국에서의 일 년>은 작가로서의 이창래가 아닌 사람 이창래로서의 궁금증을 일으킨다. 글과 말에는 그 사람의 역사가 담겨 있다.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사람 자체의 궁금증을 일으키는 소설이다.
<타국에서의 일 년>을 읽는 시간 동안 느낀 여러 감정이 있지만 그 감정의 끝은 ‘허기’, 허탈함‘ 이었다. 손에 쥔 모래가 사르르 흩어진 뒤 손바닥을 펴보면 작은 모래 알갱이가 남아있다. 분명 한 움큼 쥐었던 순간 있었는데 막상 펴보면 존재하지 않는, 그저 껍데기만 남아있는 듯한 그런 느낌을 들게 했다.
“흔히 사람들은 순간을 살라고 조언한다. 끊임없이 미래나 과거를 보려 들지 말고, 그 모든 걸 더해 보지도 말고, 현재라는 풍성하게 무르익은 과일을 맛보라고들 한다.”-p29
이 문장이 마음에 박혔다. 말 그대로 순간은 순간일 뿐이다. 현재라고 칭할 만한 것은 그저 찰나일 뿐이다. 모든 건 과거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단 한 번도 현재를 살아본 적이 없다. 미래를 향해 걷고 있을 뿐이다.
이창래 작가는 틸러 바드먼을 통해 방황하는 20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아프고 괴로웠던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언젠간 과거가 될 테고, 마음의 구멍을 메꿔줄 만한 또 다른 순간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픈 순간은 네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한 걸음이 될 것이다. 마음 아프고, 힘든 날들이 계속되는 모든 사람에게 이창래 작가가 전하는 위로와 성장의 메시지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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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흔드는 사건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 사건은 책으로도 만날 수 있다.
인물 간의 관계, 사회의 부조리는 관찰이 뛰어난 '이창래'가 그렸기에 우리가 압축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시간이 귀한 시대, 책 한 권으로 인생을 흔드는 사건을 만나는 건 행운에 가깝다. 기꺼이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다수의 인생책이라고 불리는 알에이치코리아의 <스토너>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마침 <타국에서의 일 년>이 오늘의 책에 선정되어 바로 구매했다. 연말, 진득하니 읽을 책을 한 권 추천하라면, 자신있게 이 책을 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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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이창래 작가님의 책을 추천받았는데 몰입해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깊이가 있는 소설이었고 기억에 남을 만한 글이었습니다. 성장소설을 좋아하는데 그런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시간이 있을 때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종이책으로 사서 다행이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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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험은 우리의 삶을 영원히 바꾸기도 한다” 한국의 첫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재미 한인작가 이창래의 '타국에서의 일 년'. 만만치않은 분량이었지만 박진감 넘치는 필체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자신이 속해 있는 현실과 이 세상에 어떠한 소속감도 느끼지 못하다 우연히 만난 타인에게 이끌려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등지고 ‘낯선 세계’로 떠나 버린 이의 여정을 다룬 '타국에서의 일 년', 지금 여기 머물러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무엇인지 강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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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의 일 년지은을 통해 구매를 하게 되었다. 지인이 추천을 통해서 읽어보니 나한테 많은 도움이 되는것같다.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하면 인간은 그 순간에 머물게 된다. 중독자처럼 자신을 속이고 포기해 버린다. 그 모든 달콤함이 썩는 것 외에는 아무 변화도 일으킬 수 없게 될 때까지. 이런 내용이 있는데 우리는 정말로 하루 하루 소중하게 생각을 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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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서점에서 보고 유학 시절이 생각나서 선택하고 구매하게 되었어요.... 저는 어릴 때 유학 생활을 오래 해서인가 더 많이 와 닿았습니다.... 만약 유학을 준비 하시는 분들이 주변에 계시다면 예습서로 추천 해 주셔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외국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더욱 더 현실감 있고 재미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드네요 ㅎㅎ 마침 지인 자녀가 1년 코스 유학 중인데 추천 해 주려고 한 권 더 구입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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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서점에서 보고 유학 시절이 생각나서 선택하고 구매하게 되었어요.... 저는 어릴 때 유학 생활을 오래 해서인가 더 많이 와 닿았습니다.... 만약 유학을 준비 하시는 분들이 주변에 계시다면 예습서로 추천 해 주셔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외국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더욱 더 현실감 있고 재미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드네요 ㅎㅎ 마침 지인 자녀가 1년 코스 유학 중인데 추천 해 주려고 한 권 더 구입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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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 가지 이야기를 넘나들며 한 청년의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중한 존재의 부재가 한 사람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의지할 곳 없는 뿌리 내리지 못한 청년 틸러에게 밸과 비즈, 퐁은 어떤 존재였을지 그가 묘사한 가정 환경을 통해 짐작해볼 뿐이다.
그가 타국에서 보낸 일년은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절망스러운 순간을 견디며 틸러의 삶은 계속된다.
덤덤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에 나는 파도에 휩쓸려가듯 몰입할 수밖에 없었고 작가가 그린 틸러의 성장 서사를 통해 나 또한 성장을 경험했다.
이 책이 퐁이 틸러에게 건넨 칼 한 자루처럼 누군가에게 어떤 삶을 경험할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이창래는 역시 이창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