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는 '시(詩)'라고는 질색을 했었다. 시험을 보기 위해 작가의 생애와 사용된 표현 방법과 시어의 의미를 열심히 외우긴 했다. 그러나 왜 김춘수의 "꽃"을 한국인들이 좋아하는지 따위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가끔 살면서 그 때 배운 시들이 떠오른다. 누군가가 내게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올 때는 그가 내게 와서 꽃이 되었구나, 싶고, 또 세상 풍파에 마음이 흔들리고 삶이 나를 짓누르는 것만 같을 때는 내 한 개 바위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엊그제는 한강의 "서시"를 읽으면서 울었다. 운명은 알고 있을 거다.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 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그런데 정작 나는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후회했는지, 헛되이 애쓰고 집착하는지를 도무지 모르겠다. 한강의 시를 몇 번이고 곱씹으면서, 내 인생의 가치를 생각했다. 나는 이은택 시인을 좋아한다. 그의 시는 어렵지도 않으면서 삶과 맞닿아 있다. 그러면서도 은은한 감동이 있다. 어제, 출장을 갔다가 이은택 시인을 만났다. 작년에 받았던 "벚꽃은 왜 빨리 지는가"도 좋았는데 오늘 받은 "너무 즐거워 견딜 수 없다는 듯"도 참 좋았다. 좋았다. 좋았다는 그 말 외에 무슨 말로 더 표현할 수 있을까? 일을 일찍 마치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그의 시집을 펼쳤다. 어렵지도 않고, 길지도 않은 글인데 읽는 속도는 어찌 이리 더딜까. 그의 시 속에서 내 모습을, 나의 삶을,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늙어가는 엄마의 모습이 보여서일 거다. 그의 시를 통해 보는 나의 세계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일 거다. 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시를 만난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 - 신형철 <인생의 역사> 중 김춘수의 '꽃'이 그랬고, 한강의 '서시'가 그랬다. 그리고 이은택 시인의 시들이 그랬다. 내가 잘 모르는, 내가 기다려 온, 그 절실한 문장. 그 문장들이 이은택 작가를 닮은, 가을 단풍 같은 이 붉은 책 속에 있었다. 이은택 시인의 시를 읽은 사람이 말했다고 한다. 시집을 처음으로 끝까지 읽었다고. 그리고 자신도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러나 나는 이은택 시인 같은 시를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글쓰기가 얼마나 고도의 작업인지 모르지 않는 까닭이다. 나는 그저, 이은택 시인의 말처럼, 시를 즐겨 읽는 진정한 독자로 살아가는 걸로 만족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