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예고된 하마스 참극, 이스라엘에서는 무슨 일이?〉(p.36~40) / 〈해법 없는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의 뿌리〉(p.50~53)
팔레스타인을 주권 국가로 독립해 이스라엘과 '국가 대 국가'로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이 왜 이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걸까 궁금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 모두 현실적인 방안이라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역시 이상은 현실이란 벽을 뛰어넘을 수 없나보다. 애초에 가자와 서안 지구로 양분되어 지도층도 분열한 상태에다가, 이스라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팔레스타인이 독립할 수 있을까? 국제 사회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착촌을 늘려 영향력을 강화하는 이스라엘이 굳이 팔레스타인을 대등한 주권 국가로 인정해줄 필요가 있을까? 역사적으로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는 복잡다난했지만, 지금 이스라엘 내부 정치도 사법권 개혁 문제 때문에 크게 요동치고 있으니 더 머리가 지끈해진다.
2, 〈우크라이나, 하마스 전쟁과 한국의 위태로운 안보 현실〉(p.110~114) / 〈미·중 대립국면과 일본, 그리고 한반도 상황〉(p.115~121) 한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우크라이나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발발하자 이스라엘을 편들었다. 첨예한 대립 국면 속에서 중립을 지키기 보다는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들고 반대쪽을 매도하는 건 외교적으로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도 모자랄 판국에 왜 굳이 가능성을 좁히는 선택지만 고르는 걸까 한숨이 나왔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지만 자진해서 고래 틈바구니 속에 들어가는 새우가 될 이유는 없는데 말이다.
3. 〈국제 체제를 개편하는 개도국의 존재감〉(p.15~19) 19세기 그레이트 게임에는 영국과 러시아, 19-20세기 식민 경쟁에는 영국과 프랑스, 20세기 냉전에는 미국과 소련, 그리고 21세기 이른바 '신냉전'에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극 체제가 오랫동안 자리잡았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주춤하는 사이 BRICs를 필두로 한 신흥국이 점차 존재감을 드러내고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힘의 균형이 두 강대국에게 집중되는 것보단 힘이 분산되는 게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더 잘 작동할 거란 생각이 든다. 다만 5개 UN 상임이사국이 중심이 된 체제가 지속되는 한 여전히 패권은 일부 국가에게만 돌아갈 것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생각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
4. 〈폭등하는 유럽 전기요금, 파산 위기의 요금체계〉(p.29~32) 원래 생산의 평균값을 근거로 산정했던 국가의 전기요금은 1980년대 말 EU가 전기 공급과 생산을 자유화한 이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르게 됐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항상 똑같이 작용하진 않기에 때에 따라 전기 요금이 폭등할 수 있다. 21년에는 전기료가 급등하면서 이는 현실이 됐다. 공공요금이 줄지어 오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적자를 핑계로 민영화의 탈을 쓴 구조조정과 요금 개편안이 실현되지 않을지 조마조마하다. 얼마 전에 오른 대중교통 요금만 해도 충분히 체감이 되는데…….
5. 〈잃어버린 차이나 드림, 기나긴 겨울잠 속으로〉(p.56~60) '제로 코로나 정책'이 남긴 후유증을 중국 엘리트층을 중심으로 분석해서 눈이 갔다. 공산당이 무작정 강행한 봉쇄 정책이 인민들에게 전방위적인 영향을 미쳤다. 권위주의와 전제주의에 이미 익숙한 중국인들이 보기에도 크나큰 무리수이자 불통이 아닌지.
6. 〈영국 노동당원이 브렉시트를 지지했던 시절〉(p.61~64)
잔류나 탈퇴냐? 역시 셰익스피어의 후손들이다. 보수당과 노동당 안에서도 의견이 극심히 갈려 당론이 제대로 정해지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다가 결국 브렉시트가 현실화된게 벌써 2016년 국민투표부터다. 잉글랜드 안에서도 의견이 이렇게 갈리는데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까지, 괜히 브레시트가 유럽의 분리 독립 운동을 부추긴 게 아니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코리아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그리고 검찰 대통령 시대까지, 혼란스러운 국내외 정국에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묻게 됩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판단하고자 각종 매체로부터 넘쳐나는 뉴스들을 쳐다보고 있지만, 문제의 원인과 해결의 실마리는커녕 오히려 이슈를 어지럽히고 급기야 눈과 귀를 닫게 만들었습니다. 막연한 문제의식을 정확한 맥락으로 짚어 줄 매체가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끼는 찰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1월호의 주제가 눈에 띄었습니다. “경찰공화국에서 파시스트 공화국으로!”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본 지를 집어들었습니다. 커버스토리에서는 어떻게 공화국과 민주주의에서 그와 반대인 파시즘을 낳을 수 있는 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파시즘은 민주주의의 반의어가 아니라, 위기의 시대에 따른 진화의 형태”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을 대입해보면 어쩐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각계에서는 항상 위기라고 합니다. 그 위기상태의 발생이 외인이든 내인이든 말입니다. 그것은 통치역량, 국정철학, 정치력 등과는 무관하게 어렵고 힘든 상황을 구원해 줄 강력한 리더(혹은 그런 이미지)를 바라는 집단의 심리를 이용해 민주주의를 파시즘으로 진화하게 합니다. 분리된 입법·행정·사법 3권을 장악하여 국가권력을 집중시키고, 언론을 억압하거나 자본으로 매수하여 어용언론으로 활용, 그 권력을 공고히 구축합니다. 그러나 더욱 위기로 느껴지는 지점은 따로 있었습니다. 21세기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미국 중심의 국제 체제를 서서히 개편하고 세계의 균형회복을 하려는 국가들의 움직임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이를테면 중국 주도의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회원국들은 그들의 경제적 및 지정학적 이권을 위해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동맹국임에도 군사나 안보 분야에서 끊임없이 견제하고 이데올로기 진영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한 쪽을 무조건 선택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한치 앞도 예측하기 어렵고 점점 더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고 있는 세계질서 속에서 우리도 대한민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외교적 전략이 필요해보입니다. 특히 지정학적 특수성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번 호는 국제 정치 상황과 그에 따른 논평들을 함께 읽으니, 한 발짝 떨어져서,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우리나라의 현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국민주권의 대리자의 덕목으로 외교력을 일순위로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집니다. 문득 앞서 말한 브레히트의 또 다른 한 문장이 떠오릅니다.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 * 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
|
이민자로 넘쳐나는 구대륙은 동시에 냉소주의가 팽배한 곳이기도 하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했던 난민 문제는 이제 경제적 이유로 이주하고자 하는 이들을 배제하고자 하고, 이들이 끼칠 피해에 대한 목소리가 넘실 거린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는 생존의 문제와 전혀 별개의 것인가? 당장의 생계가 막막한 이들의 경우, 특히나 그 궁극적 원인이 유럽 국가들이 일으킨 문제인 경우, 그 문제가 분쟁 지역 난민의 문제와 무엇이 크게 다른지 모르겠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각종 문제로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다. 수십 년에 걸쳐 이미 이스라엘의 식민지화 돼버린 팔레스타인. 두 집단의 관계가 공생 관계가 되어버렸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전쟁의 뿌리를 안다고 한들 이미 얽히고설켜버린 두 나라를 분리해 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위키피디아는 다수의 민중이 백과사전 편집 권력에 저항하여 만들어낸 사이트였다. 다양한 변용은 '위키' 형식을 현대인들의 삶에 스며들게 했으나, 문제는 이를 정치적 이익에 따라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위키' 의 이름을 달고 반-민주적인 행태를 보이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시민들의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이번 11월 호가 나한텐 꽤 어렵게 느껴졌는데 읽다 보니 결국 또다시 돈의 문제로 수렴되는 것이 읽혀서 심란했다. 물론 권력과 자본 앞에 아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은 중국 엘리트층도, 쿠데타 정권을 옹호하는 제1세계 백인들도 마찬가지지만. 경제적 요인을 배제하고 현실의 정의를 논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구나. 권력과 자본을 독점하기 위해 시민들을 통제하는, 곳곳에 편재된 파놉티콘을 어떻게 인지하고 비판해야 할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
|
르몽드 11월호는 파시즘이 고개를 드는 세계 정치와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및 세계정세를 살펴볼 수 있었다. 많은 국가들이 국가 권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언론은 이에 반응하지 않는다. 지식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동조의 목소리만 큰 것은 그들이 기득권이기 때문일까, 대상을 바라보는 다양성이 사라졌음일까, 권력에 굴복했음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관심일까. 극우는 권력을 이용해 어느새 자신들이 정상이라고 말하며 정상인들을 극좌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일련의 현상들이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씁쓸하다. 훼손된 다양성과 미국 권력의 약화와 신흥국의 약진 그리고 한국의 위태로움에 대해 설명하는 르몽드 11월호는 르몽드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르몽드는 세계를 주시하긴 하지만 많은 프랑스에 관련한 지면이 많다. 프랑스 잡지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글 속에서 뽑아낼 수 있는 키워드와 문장은 우리나라 기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세계는 지금 급격하게 보수화 되어가고 있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힘은 어느새 국가 단위로 번져버린 것 같다. 언론과 정치인이 언급하는 이방인은 '난민' 정도다. 이민에 대해서는 이보다 차별적일 수 없다. 집단 지성이라는 상징을 가진 단어 'Wiki'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순수한 의도와 목적으로 운영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키피디아'나 '나무위키' 그리고 권력 저항의 '위키리크스'가 그렇다. 하지만 얼마 전 등장한 김행 장관 후보자의 위키트리는 한국에서의 Wiki를 기이하고, 저속하고, 선정적이고, 인신공격하는 것으로 비틀어 버렸다. 전혀 Wiki적이지 않은 것으로 지극히 상업적으로 운영하여 큰돈을 벌었다. Wiki라는 이름이 혐오 장사에 쓰인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파시즘 하면 히틀러가 바로 생각난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꽤나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파시즘은 언제나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고 영웅주의와 같은 형태로 미화되고 있다. 파시즘은 민주주의의 반대가 아니라 시대에 따라 나타나는 하나의 정치적 형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어떻게 보면 질서를 미끼로 강력하게 압박하는 경찰 권력도 상대를 지정해 놓고 마구잡이로 상대를 털어대는 검찰도 모두 파시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는 어느새 '폭력에 대한 변명'을 자연스레 이해하고 그 사실을 망각하게 되면 파시즘은 어느새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망각이라는 것 자체도 권력이다. 모순되지만 겪지 않은 사람만이 휘두르는 권력이다. 잊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만이 잊을 수 있는 것이다. 잊지 말아 달라는 호소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의 문제다. 노란 리본은 벌써 몇 년째 사람들 기억에 남아 있고 얼마 전 일주기를 맞은 이태원의 영혼들도 잊히지 않길 기원해 본다. 망각이 권력이라면 기억은 권리다. 이번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은 하마스가 미사일 테러로 민간인을 사상자가 나왔다는 점에 분명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제 정세는 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사법 개혁을 강행하려다가 국내에서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매주 극렬한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 6월에는 정부에 맞서는 군인을 러시아 민간군사조직 바그너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테러가 일어났다. 그 많은 재래식 무기를 첩보의 고수인 이스라엘과 미국이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으려고 함에 위기를 느낀 하마스가 테러를 감행했고 네타냐후는 국내 정세를 진정시켰고 하마스는 이슬람 국가의 단결을 이뤄냈다. 고통받은 건 민간인뿐이다. 슬픈 일이다. 세계 정세의 가장 큰 변화는 중국의 부상도 신흥국의 약진도 아니다. 바로 미국의 쇠퇴다. 이제는 냉전시대처럼 이념으로 나뉘어 끈끈하게 모이는 시대가 아니다. 미국이 가하는 제재는 중국과 러시아라는 나라와 더불어 유럽의 느슨한 반응으로 더 이상 큰 힘을 쓰지 못한다. 이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시대다. 기니에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다. 기니에는 많은 자원이 있고 미국이 제재해도 러시아와 중국이 이득을 챙겨갈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경제 제재도 러시아의 엄청난 천연자연으로 득을 볼 수 없다. 그리고 세계가 엮인 지금의 시대에 무역제재는 양날의 검이다. 미중 갈등이 있지만 두 나라는 역대 최고의 무역량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권만이 이념에 사로잡혀 행동대장 노릇을 하고 있다.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또한 이제 더 이상 러시아 침략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러시아로부터 자원을 싸게 구입해야 하는 나라들에게는 그들의 전쟁은 양쪽 다 이유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어설픈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을 노리는 것이겠지만 그것에 대한 확실함은 없다. 되려 러시아의 무기가 북한으로 전달되는 명분만 줬다. 국제 사회는 굉장히 복잡한 이해관계에 엮여 있다. 외교는 어쩌면 외줄 타기처럼 섬세해야 한다. 전략도 기술도 없어 보이는 지금의 정권이 나라를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지 않을까 매일이 조마조마할 뿐이다. 이럴 때일수록 세상을 더 부지런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
|
[리딩]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11월호를 보다 쓴, 적은 메모 - 우리우리한 으리으리함 (힘의 개입에 의리는 없음) 0. 힘센 놈이 더할까 힘이 세면 그 힘을 지키고 싶어 한다. 동네 골목대장이나 국가 권력이나 매한가지다. 현상 유지에 그치지 않고 더 큰 힘을 갖고자 하고 그러기 위해선 뭐든 마다치 않아진다. 주변 약자는 피곤하게 시달릴 수밖에 없고, 이는 외교적으로도 반복되어 온 역사인데 보통 어떤 체제 안에서도 좌와 우가 갈리는 것 역시, 그와 비슷한 이유에서가 아닐까?
힘의 전복을 꿈꾸며 전과 다르게 나가고자 하는 게 좌파일지도.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 각국의 알력 싸움 속에 있는 판도를, 르몽드를 통해 약간이나마 객관적으로 살피게 되는 것 같다.
반대하는 세력도 있고 그에 관한 활동이 있다는 것을 알게도 된다. 여기뿐일까? 권력을 쥔 쪽은 그대로 휘두르려 하고 그래선 안 되겠다 싶은 쪽은 막으려고 하나 쉽지 않다. 힘 싸움에 있어 잔혹한 건 강자였고, 약자의 소린 보통 들릴리 없기에.
신이 죽은 지도 꽤 오래됐는데 여전히 종교, 민족 따위를 빌어 못살게 구는 전쟁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건 왤까. 결국 더 갖고 싶어 미쳐 돌아가게 된 나머지 약한 쪽을 착취, 강탈하는 수순을 밟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어떻게든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판을 짜고 그럴싸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정치, 군사적 연출을 더 하는 것뿐이다. 더 큰 부를 위해 성전도 불사하는 거라 믿음은 전리품에 달렸지, 신에게 없다. 있다면 미혹의 수단에 불과할 테고.
한강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돈 있는 사람만 허용되는 카이로의 여가 생활이란 글을 보니. 자본주의 설계? 말과 뉘앙스만 번지르르한 무슨 도시 구축 사업 같은 걸로 빈자와 부자의 생활과 환경을 나눠버리는 일은, 자본차별주의(?) 시대에 자유주의 시대를 역행하는 통행권 수탈까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 아닐까? 길과 장소에 대한 시공간적인 제약을 돈이 있고 없고를 통해 제한해 간다는 것에 혀를 내두를 법도 한데, 고분고분 잘 따르니 온갖 통행세를 매겨가는 거고, 우리나라 대중교통 운임 인상도 계속되는 게 아닐지 싶다. 웬만큼 부유하지 않은 이상 질주도 불가한데, 다수가 별수 없이 써야 하는 이동 수단이나 장소가 더 협소해짐과 동시에 웬걸? 고분고분하게 비싸지기만 하니 공공의 시공간이 악랄하게 지배당하는 꼴이 아니고 뭘까 싶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한다는 말이 있는 것과 동시에, 없으면 없어져야 해? 없어도 다녀야 하는 생활이 있기에 이집트의 길이든 대한민국의 길이든, 길은 모든 행인을 위해 최대한 자유롭게 트여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부자 전용 통로나 공간처럼 특권층만 누리는 VIP 존으로 나뉘어 금전 지불 능력에 한해 용인된다면 되겠어? . 부의 집중이 극에 이르면, 바다조차 우리 집 내지는 우리 단지 앞바다로 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진짜 '우리'야? 여럿의 의미보다 여럿이 갇힌 '우리'가 될 확률이 높겠지. 애초에 기반이나 지반 같은 걸 사유화해선 안 됐을 것 같기도 하지만, 사상적 문제 삼아 버리면 그만야? 지구나 달 같은 것 역시 갑부가 사버리면 그만일 때도 오려나, 자본 왕정 시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