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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일수록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마치 어린 시절 봄소풍 자리에서 보물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유난히 보물찾기에는 재주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이 서너 개씩 찾는 동안 나는 단 하나도 찾지 못한 채 그저 부러운 시선으로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책 한 쪽도 읽지 못하고 잠자리에 드는 날이면 그때 내 손에 쥐어지던 쓸쓸한 바람결이 문득 되살아나곤 한다. 이따금 찾아오는 그 서늘한 느낌은 나로 하여금 바쁜 와중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하였다. 이 악착같음은 어데서 오는 것일까? 그때의 쓸쓸함일까, 아니면 나이를 더할수록 집요해지는 삶의 허기짐일까? 나는 그 둘을 마음속으로 응시하며 성큼 다가온 가을을 살고 있다.
도시의 가을은 전염병처럼 번지는 도시인의 조울증세와 함께 시작된다. 설움이랄까 아픔 같은 것이 왈칵 몰려오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도시인의 이 느닷없는 감정이 말갛게 변하여 초겨울 눈으로 내리는지도 모른다. 가을은 그렇게 한 계절을 계절로 느낄 겨를도 없이 감정의 롤러코스트를 타다가 후다닥 자취를 감추곤 한다. 어찌할 수 없는 가을이 지쳐올 때마다 나는 정희재 작가의 책을 읽곤 한다. 아주 오래된 버릇처럼.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나는 정희재 작가를 문학의 거장으로 꼽는다. 내게 있어 문학 분야의 거장으로 인정되는 단 하나의 조건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사랑하고, 폭을 넓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지구의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이 작가의 삶에 녹아들 때, 비록 그가 쓴 글이 어쭙잖아 보여도 나는 그의 글을 사랑하게 된다. 인간에 대한, 생명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의 글은 거짓이요, 위선일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믿는 것이다.
"도시, 서로의 곁을 내주지 않는 익명성을 편리로 인정해 주는 공간. 도시인, 익명의 공간에서 시치미를 떼며 살지만, 누군가 가끔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사무치게 바라는 외로운 사람들. 그 안에 내가 있고, 당신이 있다. 끝내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예감에 새벽잠을 설친 순간을 기어이 이겨내며 우린 참 치열하게 달려왔고, 달려가고 있다. 목적지를 아는 사람도 있고, 하루하루 마음 다치지 않고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이도 있으리라. 나는 이제 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에 지쳐, 당신에게 눈물 차오르는 밤이 있음을." ('작가의 말' 중에서)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는 정희재 작가의 일기와 같은 글이다. 작가의 글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을 것만 같다. 그 눈물 한 방울로 인해 마음의 짐은 한결 덜어지곤 했다. 작가의 글은 스산한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막막함에 가슴을 치고 있을 누군가를 향해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듯하다. 세계 각국의 도시와 히말라야 오지 마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을 여행하며 마음공부를 해왔던 저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도시의 변방으로 밀려나는 사람들과 턱없이 치솟는 배추값을 걱정하는 도시의 소시민들에게 "당신, 참 애썼다. 사느라, 살아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부디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직 오지 않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며 위로하고 있다. 곧 있으면 추석. 명절에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러니까 뉴스에서 헬기까지 띄워 가며 보여주는 영상은 이 시대가 표준으로 장려하고픈 덕목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이 행렬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뭔가 중요한 것이 빠졌다고 느낀다. 이 결핍감과 박탈감이야말로 시스템이 바라는 심리적인 충격 요법이다. 표준에 속하라. 반도의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하는 차량들의 행렬은 끊어지지 않는 한민족의 전통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다. 저처럼 혼잡과 불편을 딛고 가야할 곳, 끝끝내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떤 이유로든 이 도시에서 조금씩 일그러지고 빈틈을 지닌 사람들은 말이 없다. 그저 조용히 시스템의 전언을 보고 듣다가 밀린 잠을 채울 뿐." (p.90 ~ p.91)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처음으로 도시에 가 보았다는 작가는 중학교 때 부산으로 이사한 뒤로 지금까지 도시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더 나은 삶을 꿈꾸고,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 도시의 삶을 선택했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고독하고 피로했다고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도시인으로서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통하여 깨달은 것들을 세심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법한 혼자 밥 먹기, 택배 받기, 출근하기, 명절 보내기, 편의점 가기, 전화하기, 장보기 등 바쁜 도시인의 일상을 46개의 소제목으로 쓰고 있다.
도시라는 거대한 실체와 마주해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는 작업을 통해 행복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길 바랐다는 작가는 이 책이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 의미를 묻고 답하는 길에서 주운 작은 열매라고도 했다. 도시의 변방으로 한걸음 물러날 때마다 한 켜씩 쌓이는 죄의식은, 속절없이 달았던 '게으름'이라는 죄목의 꼬리표는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거부할 수 없는 가을이다. 이 가을, 도시의 어느 곳에서는 한 해의 수확을 기뻐하는 노랫소리가 빗소리처럼 세상을 적실지 모르겠지만 그 귀퉁이 한옆에서는 먼짓내 풀풀 나는 마른 땅에서 꺼이꺼이 울음을 삼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디에 살든, 어떤 모습으로 살든 행복을 찾는 줄기찬 노력만은 멈추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다. 같은 도시인으로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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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사자마자 카페에서 첫부분을 읽는 순간부터 끝까지 찌릿하고, 저릿해지다가...마음이 촉촉해졌다.특히 첫부분의 '밥' 얘기에서부터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렇게 얘기하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등등의 단어에서 혹시라도 이제는 너무 흔해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교훈적인 글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는데 만약 그랬다면, 그 감동은 많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명상이니, 위로니, 치유니 하는 얘기들이 결코 나쁘지 않은 '좋은 얘기'들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식상해지는 것은, 아마도 그런 류의 글들이 너무도 많아졌거나 안 봐도 결론이 뻔한 도식적인 얘기들이 많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책은 분명히 그런 류의 책들과 다르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책의 내용이'자신에 대한 진솔한 얘기'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남을 위로한다는 목적성을 넘어서 자신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체험들에 대한 묘사와 그것으로부터 자신이 어떻게 치유되어 왔는가에 대한 성찰적인 과정이 진솔하게 담겨져 있기에. 나는 '한 사람'의 얘기에 깊이 빨려 들어가면서 어느샌가 감동하고, 순화되며,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또 길고 짧은 얘기들이 편집이 잘 되어 있고 주제가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우리 도시 생활하는 사람들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들이 녹여져 있어서 식상하지 않고, 감동스럽고 ,재미있다. 또 가끔 웃음이 나게도 만든다.
또 잠실 롯데 월드 얘기에서 나는 깜짝 놀랐다. 나와 비슷한 감정들을 정희재님은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롯데 월드가 자본주의적, 말초적인 감상을 만족시켜준다는 그런 비판이 아니라
아...나도 저속에 파묻혀, 저 환상 속에 살고 싶어 하는 도피 심리가 나에게는 있었다. 어쩌면 도피라기 보다는 낙원같은 그곳을 보며, 천국이나 극락을 연상했기에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속은 그것을 그렸지만, 현실의 롯데 월드는 벗어나면 차가운 현실이었다. 그 앞에서 느끼는 묘한 상실감, 쓸쓸함...
정희재님도 한때 롯데 월드가 '청춘의 랜드 마크'였다고 하는데 '롯데 월드'를 오체투지로 가보면 어떨까...라는 대목에서 가슴이 또 찡해진다.
그녀 역시 어린 아이들의 놀이기구 타는 재미에 그곳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시골에서 올라와, 도시를 두려워 하며 지독한 상실감과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산 한 젊은 여인에게 롯데 월드는 그리운, 그러나 다가갈 수 없는 슬픈 랜드마크였을 것이다. 하물며 거기에 연인과의 아픈 추억이 있다면...
그외에도 수많은 주제들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얘기들이다.
그리고 바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아픔과 상처와 상실감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영성 회복으로까지 가는 것은 자신의 반성, 그녀의 지인들과의 우정과 함께 그녀의 스승의 가르침인데
이 책에는 실로 수많은 다양한 얘기들과 사건들이 담겨져 있어서 읽는 동안 지루한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경박한 재미로 가득찬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핑핑 돌아가는 객관문화의 홍수 속에서 이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 영혼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사진 많지 않은 335페이지의 책은 양도 질도 튼실하다. 거기다, 글도 참 좋다.
글쎄, 사람마다 보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나는 큰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도시에서 살며, 지치고, 자신을 돌아보며 안식을 취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천천히 읽어가는 동안 자신을 돌아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오아시스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
그랬다. 외로움이 사무치는 낯선 땅에선 '엄마'가 고향이고, 그리움이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살아갈 때........ 철 없던 젊은 날, 그토록 듣기 싫었던 엄마의 잔소리가 희안하게도 자장가처럼 스며들 때가 있다. '가시나, 빨리 안 일어날래..... 참, 방 구석 꼴 조오타.......'
엄마도 이제 늙으셨는지 그 호탕했던 기세는 어디로 가고, 훌쩍 커 한 아이의 엄마인 나에게 아주 작게 말한다........ '힘들제. 조금만 참고 기다려봐라. 그 시간도 다 지나간다.....'
서글펐다. 엄마가 변한게 아니라 내가 그 말의 뜻을 알고 이해할 정도로 커 버렸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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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딱히 가리고 편식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심리학 서적들과 수필 글들이 독서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냥 호기심과 거창하게는 상대방을 보다 잘 이해하려는 수단으로 읽기 시작했던 심리학 책들이, 한 때의 심리학 열풍이 불어대던 시간을 지나고서 부터는 상황이 역전되어 어떤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혹은 유사한 위안을 느끼기 위해서 비슷한 내용의 심리학 서적들에 계속해서 손이 가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위안의 말들이 전혀 위안이 되지 않기 시작했다. 위안의 말들이 오히려 결국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내면에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하면서부터, 전형적인 심리학 책들은 멀리하게 되었다. 그 대신 심리학 서적들이 해주던 역할을 이제는 수필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어떤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의 일상과 생각을 담은, 그래서 덤덤하게 써내려가지만 힘이 있는 그런 글들을 좋아한다.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책은 그런 위로와 덤덤함의 적절한 경계에 있는 책이다. 우연히 길을 가다 깨끗한 중고서적이 있어 구매한 책 치고는 행운에 가까울 정도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도시의 삶'이라는 것에 특유의 관찰을 통해 생각을 이끌어낸다. 도시의 삶이라는게 별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밥먹기, 이사하기, 택배받기, 대화하기 등의 46가지의 일상적인 도시의 삶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덤덤하지만 진심이 담긴 위로를 해줄 수 있는 것 같다. 책에서 다루는 많은 일상 생활들. 그 유사한 상황과 생각들을 나 역시 도시 생활을 통해 겪어왔고, 또 지금도 겪고있다. 9년 전 대학 진학의 문제로 대구에서 서울로 상경한 시기 이후로 나에게 '도시'란 곧 '서울'을 뜻하는 말처럼 되어버렸다. 대구도 작은 도시는 아니지만, 서울과는 다른 느낌이 있으니까. 반지하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해서, 옥탑방도 전전하면서 폭설에 문이 열리지 않는 경험도 해보고 이런저런 가난한 젊은 시절을 겪었다. 이천원으로 일주일을 버텨본 적도 있고, 지나치게 화려한 꺼지지 않는 도시의 불빛이 마음을 갑갑하게 짓눌러 답답함을 호소하며 무작정 강원도로, 그리고 다시 도보로 부산까지 여행을 다닌 시절도 있었다. 여전히 떠나는 것을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조금은 적응이 된 것일까. 다행히 예전처럼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은 조금 덜한 것이 사실이다. 아니, 사실은 적응이 되었다기 보다는 시간들과 경험을 통해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또 새로운 도시의 벽에 부딪치고,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까지의 진통을 겪는 것을 반복하는건 어쩔 수 없으리라. 그 또한 아직 젊기 때문이라 생각하자. 결국 내가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 그 사실은, 책에서 말하는 것과 공교롭게도 맞닿아있다. 냉정한 도시의 삶에 지치고 외로운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쓴 글이지만, 결국은 문제는 '도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임을 책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윌리엄 포트너는 이런 말을 했다. 좋은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 '관찰', 그리고 '상상력'이라고. 우리는 삶에 지칠 때마다 휴식이나 위안을 얻기를 원하고, 때론 그런 삶의 아름다움을 문학과 다른 책들에게서 찾기도 한다. 정말 문학에 위로의 기능이 있다면, 작가에게는 그러한 사람들의 기대에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는 세가지의 능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삶이 꿈꾸는 문학마냥 아름답게 전개시켜나가기 위해서는, 인생의 작가인 본인만의 태도와 관찰력이 필요하다. 각자의 삶을 보다 아름답게 하는 것은 때론 멀리서, 때론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우리의 시각이 아닐까.
◆◆ "엄마, 아부지가 이런 거나 주지 뭘 해 주겠냐. 쌀 걱정은 말고 열심히 살거라." 나는 안다. 엄마가 표현하는 '이런거나'의 무게를. 과연 이 도시에서 밀려나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불안한 청춘의 날을 통과하는 동안, 왜 사회생활을 집벌이나 옷벌이라 하지 않고 밥벌이라고 부르는지 알게 된 터였다. 밥벌이의 무게만큼이나 엄마의 상자들은 태산의 무게로 나를 이 지상에 붙들어 주었다. 시골의 아버지는 무엇인가를 묶었던 끈은 칼이나 가위로 싹둑 자르지 말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더라도 손으로 풀라고 이르셨다. 그것은 아버지가 세상과 삶을 대하는 자세에 다름 아니었으며, 매사에 정성을 들이라는 산 가르침이기도 했다. (중략) 결국 인생은 인내심과 정성을 얼마나 쏟느냐의 문제임을 아버지는 말없이 가르쳐 주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 『택배 받기 : 내가 먹어치운 상자들이여』 ◆◆ 그날 처음 만난 두 사람에게 질문을 받았다. "그 동안 어떤 글을 써 왔죠?" 와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어요?" 라는 질문을. 비슷한 단어들의 조합인데도 두 질문이 너무나 다른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쪽이 과거와 성취 중심이라면 다른 한쪽은 미래와 기대가 담겨 있다. (중략) 그날 나는 최 선생님을 통해 인생에 중요한 갈림길이 될 만한 '결정적 순간'이 존재한다는 오해를 풀었다. 인생이란 어느 한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이며, 가장 나다운 나와 만나는 먼 여정임을 이해했다. - 『면접 보기 : 면접관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 ◆◆ 모르는 사람 일에 선뜻 나서기도 어렵거니와 두 번이나 호의를 정중하게 거절하는 걸 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으리라. 남자는 술에 취해서도 예의 바른 젊은이가 아니라 부당한 실존에 항거하는 외로운 병사 같았다. (중략) 저 남자는 참 외롭게 살겠구나, 싶었다. 한 사람의 존재가 마음속에서 폭발력을 발휘하며 각인되는 순간 세상은 한없이 낯설면서 신비로워진다. 그런데 나는 생각할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답하고 말았다. "괜찮아요. 됐어요." (중략) "넌 '됐다'라는 말을 자주 쓰더라. 상대의 호의를 잘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봐. 잘 받는 사람이 잘 줄 수도 있는 거야." - 『호의 받아들이기 : 잘 받고 잘 주는 법을 배우기까지』 ◆◆ "어느 날은 화장실을 밀대 걸레로 닦는데 손에 힘이 팍팍 들어가더라고요. 정말 미친 듯이 닦았어요. 구석구석 빈틈없이, 눈에서 불이 날 정도로. 어찌나 그 일에 열중했는지 나중에는 눈물이 나더군요. 그거 알아요? 정말 뭔가에 정신을 쏟으면 눈물이 나는거? " 나는 B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몰입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중략) 초라한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고 눈물 나도록 힘이 솟게 하는 뭔가를 찾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었을 뿐이다. - 『일하기 : 일에 관한 지극히 소박한 진실』 ◆◆ "널 꼭 한 번 이 집에 데려와서 삼계탕을 먹이고 싶었어." "왜?" "내가 먹어 본 삼계탕 중에 가장 맛있었거든." 그랬다. 그건 한 끼니의 식사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가둬두고 괴롭혔던 것들을 풀어주는 제의같은 것이었다. 나보다 먼저 그 집 삼계탕을 맛보고 언젠가 한 번 나를 데려와 먹여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맞은 편에 앉아 있어서, 내 고단한 여름은 치유 받을 수 있었다. - 『도시에서 사랑하기 : 천국에서 미리 가불한 시간』 ◆◆ 밤하늘에는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이 약 3천5백 개 있대요. 그런데 도시에서는 잘해야 50개 정도밖에 못 봐요. 꼭 은하수나 별을 보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에요. 어둠이 좀 더 어둠다워서 밤에 좀 푹 잤으면 좋겠어서요. 전 유난히 잠에 약해서 푹 자지 못한 날이면 괜히 비관적이 되곤 해요. 인류 평화가 여기서부터 깨지기 시작하는 거에요. - 『도시산책1 : 밤이 더 어두웠으면 좋겠어요』 ◆◆ 오늘은 음력 설날이다. 사람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타향으로 떠났다. 그렇다. 이제는 타향이 돼 버린 고향으로 간 것이다. 일 년에 서너 차례 들를 뿐인 곳을 왜 굳이 고향이라고 할까. 연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을 왜 타향이라고 못 박는가. 고향과 타향의 역전된 이 역설이야말로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려주는 요약문 같다. (중략) "일부러 내 방까지 찾아왔는데, 왜 선뜻 문을 열어 맞아들이지 않았을까. 비약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난 종종 그런게 죄가 아닐까 싶어." 어찌 D뿐이랴. 서로의 불모, 불구를 인식하고도 모른 척 지나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다 서로 어긋나서 생긴 부서질 것 같은 고통만이 상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 일 없이 헤어졌다는 것. 그림자 끝자락도 겹쳐 본 일이 없다는 것, 그 역시 막막함이다. - 『명절 보내기 : 고향과 타향 사이』 ◆◆ 누구나 인생의 한 시절은 싸움닭처럼 격렬하게 세상과 맞서는 시기가 있다. 화살의 방향이 외부로 향하든, 내부로 향하든 상처를 받는다는점은 같다. 상처 받지 않고서야 약을 찾을 일도 없다. (중략) 그때는 불타는 세상의 화염에 화상을 입었다고 생각했지만, 나야말로 그 불꽃을 키우는 기름의 일부였음을 이제는 안다. 당신이 옳았고, 내가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옳았고, 당신이 틀렸다는 말도 아니다. 애초부터 옳고 그름은 없었다. 그저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 하는 감정에 따라 혼자만의 법정에서의 유죄, 무죄를 따졌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나는 편안해졌다,고 감히 말하진 못한다. 다만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부분에 약하고 강한지, 무엇에 가슴 뛰고 좌절하는지 조금 알게 되었을 뿐이다. 이해하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행복합니다. 당신도 행복하세요." - 『타인 이해하기 : 사람 때문에 마음이 다칠 때』 ◆◆ 도시에 처음 입성하던 날, 봄기운을 머금은 비가 내렸다. 비슷한 지방 출신인데다 비슷하게 가난한 친구와 보증금과 월세를 합쳐 방을 얻기로 한다. 두 젊은이는 창조적인 삶에 부록처럼 따라 붙는 세 가지, 즉 젊음과 가난, 고독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중략) 도시에서는 가난한 이들이 가는 동네가 정해져 있다. 두 사람은 봉천동을 택한다.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가장 서러움을 느끼는 순간이 바로 제 한 몸 누울 자리 마련하러 돌아다닐 때다. 이사를 할 때마다 집값은 물가를 웃돌아 올라 있다. 게다가 부동산에서는 늘 이편에서 말한 조건보다 한 단계 높은 곳을 보여준다. 조금이라도 나은 조건의 집을 보고나면 자신의 예산에 맞는 집은 단번에 추레한 오막살이로 추락하고 만다. '저렇게 집이 많은데 내가 들어갈 집이 없다니...' 자발적 빈곤은 한없이 아름다운 말이지만 해가 갈수록 '자발적'이 맞는지 자신할 수 없다. 도시가 추구하는 욕망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자발적' 이라는 청렴한 수식어는 곧바로 무능으로 대치된다. 젊은이의 눈에는 시대의 우울이 담긴다. 다른사람들의 속도에 허겁지겁 따라가며 살다가는 인생은 이미 소모되고, 그 대가로 집 한 채가 겨우 남아있을 뿐이다. 데이빗 소로우는 한 인간이 평생을 걸쳐 자세하기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은 20킬로미터 이내라고 했다. 인간에게 집이란 무엇이었던가. 인간이 집을 부드러운 기운으로 소유하고 가꿨던 시대에는 집 한 채 장만하는 일이 이처럼 살벌한 전쟁이 되진 않았다. 집의 노예로 사는 시대란 얼마나 비극적인가. 그런데도 집이 없는 사람에게 적대적인 이 도시를 왜 떠나지 못할까.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대도 생존의 두려움과 탐욕, 문화생활과 활기라는 이름으로 치장된 욕망의 그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젊은이의 원죄요, 정직한 초상이다. - 『내 집 마련하기 : 집의 노예로 사는 시대』 ◆◆ 여행이 못 견디게 그리울 때는 언제일까. 내 경험으론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다. 누가 그랬던가. 여행과 생활은 연애와 결혼의 차이 같다고. 여행이었기에 우리는 언뜻 새로운 세상을 보았거나 봤다고 생각한다. - 『공항 가기 : 여행이 못 견디게 그리울 때』 ◆◆ 엄마가 말했다. "해가 지면 그 날 하루는 무사히 보낸거다. 엄마, 아버지도 사는 게 무섭던 때가 있었단다. 그래도 서산으로 해만 꼴딱 넘어가면 안심을 했느니라. 아, 오늘도 무사히 넘겼구나 하고. 그러니 해 넘어갈 때까지만 잘 버텨라. 그러면 다 괜찮다." 그 밤에 엄마가 속으로만 삭인 뒷말이 있었다. '그러다 새벽이 오면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게 몸서리쳐지게 무서웠단다.' (중략) "엄마! 이 넓은 콩밭을 언제 다 맨대요?" 그때 엄마가 던진 한마디. "야야, 눈이 게으른 거란다." 해가지면 안도하고 새벽이오면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겁났던 시간. 그런 세월을 살면서 알아차린 것이다. 게으른 눈에 속으면 안 된다는 것을. 사람의 눈은 어리석기 짝이 없어서 해야 할 일 전부를, 인생 전체를 돌아보며 겁먹기 쉽다는 것을. 엄마는 말했다. 오직 지금 내딛는 한걸음, 손에 잡히는 잡초 하나부터 시작하면 어느새 넓은 콩밭은 말끔해진다고. 반드시 끝이 있다고. - 『인생 배우기 : 엄마가 말했다』 ◆◆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귀는 아무리 낮은 소리라도 다 알아듣는다 - 셰익스피어 도시에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지금 상대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됐는가. 잘 듣고 있는가. 과거에 얽매인 기억을 벗어 두고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오롯이 상대에게 집중하고 있는가. 내가 만나는 이 사람은 얼마나 오래된 지혜요, 고전일까를. - 『대화 나누기 : 오늘 처음 만난 것처럼 듣는다면』 ◆◆ 살아보니 행복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이었다. 행복에 관한 한, 우리는 일용직 신세였다. 비정규직이었다. 내일 몫까지 미리 쌓아두기 힘든 것, 그게 행복이었다. - 『행복해지기 : 하루 벌어 하루 살기』 ◆◆ 사람이 살면서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갖고 싶은 게 아무리 가까이 있다고 해도. 사랑도 이와 같다. 애당초 손바닥은 깨물기 좋게 생기지 않았다. 내 손바닥도 깨물지 못하거늘 상대의 손바닥이야 말해 뭣하랴. 전쟁 같은 사랑이 지난 뒤에야 손바닥과 손바닥은 서로 마주 잡기 좋게 생겼다는 걸 깨닫는다. - 『서로 매혹되기 : 사랑의 호황기와 불황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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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마지막 날 서점에서 가지고 온 책
서른을 맞이 하면서 서울에 혼자 와있는 내가 미치도록?? 외로움을 느껴지는 순간에
다른 사람들은 이 도시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제대로 살고 있는지, 나처럼 외로울때는 어떻게 해쳐나가는지 위로 받고 싶었다고나 해야될까??
바쁜 일상이지만 소중한 46가지를 에세이 엮고 있는데, 그안에 옆집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이 도시에서 따뜻한 마음을 녹일수 있는 많은 글들이 있었다.
특히나 시골에서 나를 걱정해주시는 부모님에 대한 글에서는 어쩜 우리엄마와 아빠랑 똑같을까 너무나 공감이 갔고, 이곳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도와가며 살아가는 글들은 이곳에서도 외로워하기만, 슬퍼하기만 하기에는 안되겠다고 마음의 용기를 주었다.
하나하나 글귀들이 너무 좋아서 다 적어놓고 싶다.
2011년 나의 첫책. 그리고 주말마다 한권씩 읽기로 결심하고 글을 올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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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하면 이제는 절레절레 고개부터 젓게 된다. 언제부터 였을까. 조금씩 진정한 도시생활에 적응했다 싶으면 또 저만치 다른 생활이 그립고. 늘 적응과 도피의 연속이었던 것만 같다. 실제, 그렇게 도피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났다. 도시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이 책을 펼쳐 들었다.
334페이지에 이르는 책이지만 그 두께감은 이 책을 집어드는 순간, 조금 더...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 저자의 삶 구석구석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다. 같은 공간 다른 생각을 통해서, 이 저자. 글솜씨가 제법이나 마음에 들었다.
[면접보기] 의 글 속에는 두가지 질문이 등장한다. "그동안 어떤 글들을 써왔죠?"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어요?"
어떤가, 두 질문 모두 '어떤 글'이냐는 말이 들어가 있지만 그 질문에 응대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다른 기분과 느낌을 선사한다.
그동안.. 이라는 말은 나의 경험, 나의 스펙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말일테고, 앞으로.. 라는 말은 나의 잠재. 무한 가능성으로 평가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어떤 글이 쓰고 싶냐고 묻는 이가 나에게도 있다면. 정희재 작가 처럼! 하고 스스럼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에 흠뻑 빠진 독자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이 책에 흠뻑 매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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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글만큼이나 저자의 글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그림.. 사진들...
일을 하고 돌아오면, 새벽녘까지 책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늘 스탠드를 켜고 지낸다. 그러다 가끔 불을 켜고 잠들기도 한다.
나는 그 하루를, 내 몸이 쉬는 시간을, 제공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밤이 더 어두웠으면 좋겠다.는 말처럼
햇빛은 더욱 뜨겁게 타올라야하고, 달빛은 더욱 차갑게 식어줘야 온전한 하루가 아닐까?
늘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하는 일상 속에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 조차 잊고 사는 지금.
우리도 '투산'이라는 도시처럼 밤하늘 보호 법령을 만들어, 진정한 밤을 진정한 휴식을 진정한 자연을 느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 "행복합니다. 당신도 행복하세요" 행복이란, 나와는 관계가 없다. 늘 바쁘게 사는 일상만 있을 뿐이다. 도시에는 '아.. 나 행복해.' 라고 말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늘 일에 치여,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보듬어 주는 법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만 같다. 지금 나 자신, 그리고 주변을 돌아볼 때이다.
나, 정말 행복해도 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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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보고, 문득 아버지와 가위 바위 보를 하고 싶어졌다. 순수했던 그 때.
나의 소중한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때, 나의 소중한 사람이 많이 아플 때, 삶에 힘겨워 할 때,
사람들은 다시 그 사람에 대한 추억을 더듬고, 좋지 않은 기억도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앞 다투어 살기 보다 나의 사람들을 보듬어야 할 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행복한 시간을 함께, 많이~만들어 놓았으면 좋겠다.
"쓰이는 기쁨이 없는 사람은 활기가 없어요. 그리고 기쁨보다는 슬픔에 더 공감하게 돼요. 내 능력을 넘어서는 조금 힘든 일을 해 볼 때 진짜 공부가 됩니다."
내 머리를 쿵! 내리 찢게 만든 문장이다. 나도 여지껏 변명만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늘 열심히 살고 있고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다시 돌아보면 쉬운 삶. 안정된 삶에 안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늘, 얼굴에는 무표정. 상처는 주지도 받지도 않겠다며 정을 내지도 않았고, 그저 사람들과의 선을 그어 여기까지만. 했었다. 적정선. 이 정도만 해주면 된다는 선을 언제부터 긋고 살았던 것일까, 하고 다시금 돌이켜본다.
* 이 책은 작은 글귀 하나하나, 사진 하나하나가 사람냄새가 났다. 읽는 동안 외롭지 않았고, 마음이 아프지도 않았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늘 자신의 방을 만들어 놓고 생활한다. 그래서 늘 외롭고, 세상은 혼자 사는 것 아니냐며 치부해버리곤 한다. 같은 도시에 살고 있지만 이 글과 나는 확연히 달랐다. 나는 찌든 삶을 살고 있었고 저자는 이 도시를 아름답게 볼 줄 알았다. 무작정 떠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은 아니라고 말해주었고, 내가 지금 이 상황을 왜 아름답게 보지 않으면 안되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이 사랑이 담긴 글들을 읽는 동안, 마음을 치유받았고 이제는 더 이상 아프거나 나약하지 않다.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마음먹기, 다시보기에 따라 달라보일 수 있음을. 작은 것 하나하나 다시 볼 수 있음을 새삼 알게 되었고, 사물에 대한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 저자는 마음을 치유하는 마법을 가진 것만 같았다. 제일 중요한 것. 여태껏 해왔던 나의 좋지 않은 습관을 조금씩 버리는 것. 집착을 버리는 것. 그것이 지금 나의 삶의 또다른 과제로 주어졌다. 나는 저자가 삶에 견디어 온 그것보다 더 아름답게 혹은 그것과 비슷하게 도시를 바라보려고 한다. 도망치지 않을 것이고, 주저 앉지 않을 것이다. 나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쓰이는 나를 받아들이며 현재와 판이하게 다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똑같지도 않은 사람냄새나는 나로 거듭나고 싶다.
도시에 사는 마음 다친 이들이 이 책을 통해서 치유받고, 모두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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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네온사인, 빽빽한 빌딩 숲, 쉴 새 없이 오가는 바쁜 발걸음. 그 속에서 도시를 본다. 도시는 나에게 태어난 곳이자 자란 곳으로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가끔, 낯설다. 도시에게는 익숙함이란 없는 것 같다. 바쁘게 오가는 발걸음과 무표정한 사람들 얼굴, 밤새도록 반짝이는 네온사인은 정 붙일 틈 없이 현란하고 차갑다. 하지만 도시는 우리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생존의 터전이기에 오늘도 도시는 북적인다.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책 제목은 지극히 단순하다. 우리의 ‘먹고, 자고, 일하고’ 쯤으로 대변되는 당연한 삶을 그대로 풀어놓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랑하며 배우며’에서 흠칫 멈춰서지는 않았는지. 나와 같이 지옥행 전철을 타고, 밤새도록 일을 하고, 이리저리 사람에 치여 도착한 단칸방 앞에서 털썩 무너지는 도시의 삶을 사랑하고, 배운다고? 코웃음을 치지는 않았을런지 되묻고싶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도시가 그 자체로 사랑이 된다. 우리가 살면서 흔히 겪을 ‘터미널’ ‘이사’ ‘혼자 밥먹기’ 등 살면서 한 번쯤 경험해봤을 소소한 일상 속에서 겪은 삶을 가슴 따뜻하게 풀어놓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생은 아주 단순하다. 굶주리지 않을 정도의 먹을거리, 햇빛과 추위를 가릴 의복, 몸을 가릴 지붕만 있으면 된다.” 자신이 사는 공간이 어떻든 간에 생은 단순하다. 그렇기에 당신의 삶은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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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도시에서의 삶 혹은 도시생활에 대한 나의 경험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런 입장에서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를 읽기 시작했을 때 이 책이 나에게 적절한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도움이 될까? 와 같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직 제대로 된 사회경험이 부족한 이유였다.
그러나 도시에서 살든 살지 않든, 사회 경험이 많건 적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도시인화 되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인적인 경쟁 체제로 바뀌어 버린 학창시절, 대중매체에서 매일 접하게 되는 물질 중심의 가치체계, 그 아래서 벌어지는 희비극.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우리를 일정 수준 이상 '도시인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때 '도시'라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말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병폐를 신물나도록 지켜봤다. 그리고 실망하고 좌절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철저히 시스템에 적응하여 살던가, 끝내 대열에 합류하지 못해 피폐한 삶을 살던가, 그 중간에서 우왕좌왕하던가 - 로 나뉘었다. 그나마 있던 낭만도 시간이 지날수록 철없는 생각과 행동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결국 도시에서의 삶이란 메마르고 각박하고 욕망에 충실한 삶과 같은 뜻이 되어버렸다.
어찌보면 이 책은 심하게 물질중심이 되어버린 도시의 한가운데서 그 잃어버린 낭만을 다시 일깨우려는 시도 같기도 하였다. 결국 중요한 건 외적인 장소의 문제가 아닌 내적인 문제, 즉 존재의 풍요로움이 절실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도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저자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새로운 가치로 환원하는 (아, 결국 마음문제, 발상의 전환이라는 거잖아, 라고 절레절레 하면서도 어느 순간) 신선했고 재미있었다.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세상은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우주의 중심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귀한 환원의 노력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로 확산되지 않고 머물기만 한다면...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버린다면 재미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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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지치고 힘든 비바람이 찾아온다. 남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큰 일로 주변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게 될 때, 그리고 원치않는 두려운 일들이 엄습해 올 때, 인생 선배 한 분이 이 책을 건네주었다...책에 몰두하면서 차츰차츰 가슴 속 생채기들이 아물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도시, 서로의 곁을 내주지 않는 익명성을 편리로 인정해 주는 공간. 도시인, 익명의 공간에서 시치미를 떼며 살지만, 누군가 가끔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기를 사무치게 바라는 외로운 사람들. 그 안에 내가 있고, 당신이 있다.
당신 이마에 손을 얹는다. 당신, 참 열심히 살았다. 당신, 참 애썼다. 사느라, 살아 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시골과 도시의 삶은 다르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도시인답지 않은 따뜻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과, 삶에 대한 애정이 많다는 것이었다. 시골에서 손수 파김치며 김부각을 해 보내고, 지쳤을 때 따뜻한 아랫목을 내주며 품어주는 선배 어머니,(작가의 어머니는 아홉살에 돌아가셨다!) 지친 삶을 쉬어가기 바라며 자신의 카메라를 헐값인 50만원에 넘겼으나 선배가 어려운가부다며 그 돈을 선뜻 내어준 후배.(후배는 이미 좋은 카메라가 있었다!) 아니면 도둑 든 작가의 집에 와서 방범창을 달아달라고 집주인에게 대신 말해주던 고향오빠. 티벳을 여행하며 만났던 맑은 영혼의 사람들...그들은 그녀에게 각박한 도시생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이 책이 가볍지만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누구나 공감할만한 보편적 문제와 연결짓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감수성과 무거운 도시의 주제를 천의무봉으로 잘 연결해 두었다고 할까...
기운 빠지고 만사가 심드렁해지고 누군가가 몹시 미워지는 날이 있다. 마음이 싸늘하게 식고, 모든 걸 끝장내고 싶을 만큼 화가 나는 날이. 이런 날은 내 삶에 두 가지가 부족하다는 신호다. 느림과 텅 빔.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동은 이 두 에너지가 방전됐을 때 생긴다.
도심이라면 세 정거장쯤 미리 내린다. 오른발, 왼발의 움직임을 느끼며 천천히 걷는다. 느림을 충전하는 거다. 속도를 내어 달린다고 한들 마음이 쉬지 않는 한 어디에도 이를 수 없다 ... 느림과 텅빔. 이 두가지로도 마음이 쉬어지지 않을 때 마지막으로 시도해 보는 방법 하나. 정성스럽게 요리한 음식을 먹고, 푹 자기.
내가 고민하던 지점에 해답을 준 부분들이 몇 개 있었다. 역시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무겁고 어려운 법인데 그것은
"쓰이는 기쁨이 없는 사람은 활기가 없어요.그리고 기쁨보다는 슬픔에 공감하게 돼요.내 능력을 넘어서는 조금 힘든 일을 해 볼 때 진짜 공부가 됩니다." 는 한 스승의 말로 해결점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온기를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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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서 태어나고 끝까지 그 곳에서 살아가고 살아온 사람들은 얼마되지 않을거다. 저마다 누구나의 삶은 한 곳에서의 정착을 허락하지 않는다. 세상의 흐름과 각자의 형편에 따라 떠나가고 돌아오고 할 뿐이다. 나고 자란 '고향'이란 의미가 변했다. 떠나서 정착한 곳이 이젠 고향이다. 힘겨운 밥벌이가 시작되는 곳. 사람들과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곳. 눈만 뜨면 아침 출근과 저녁 퇴근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일상이 된 곳, 바로 이 곳이 도시다. 어릴때부터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여러 도시를 거쳐 지금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 사는 도시인의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이다.
도시, 서로의 곁을 내주지 않는 익명성을 편리로 인정해주는 공간. 도시인, 익명의 공간에서 시치미를 떼며 살지만, 누군가 가끔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사무치게 바라는 외로운 사람들,. 그 안에 내가 있고, 당신이 있다. 사람 사는 곳이니 어디에 정착하든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 든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얼마나 세심하든지... 특히 수시로 파고드는 그 '외로움'이란 단어는 여전히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감정이다. 책에선 그 외로움과 사투를 벌이며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삶의 목적이나 의미, 형편들은 다르지만 우린 모두 '디아스포라'로서 저마다의 색채로 그 도시에서 정착민으로 살아간다. 눈물 날 정도로 참말로 대견스럽고 대단하다. 낯선 곳이지만 사람을 알아가고 정을 주고, 위로를 보탠다. 그 속에서 행복과 자아찾기가 시작된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바로 내 고향이다. '태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문제는 도시가 아니었다. 결국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였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세상 그 어느 곳을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을 향한 시선이 참 따뜻했다. 마음이 이끄는대로 떠날 수 있는 그 용기가 부러웠고, 피폐하고 황폐한 사막과 같은 도시를 그저 바라보고 오롯이 끌어안는 마음들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많은 시간 동안 도시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도시에서 살아갈 날들이 많은데, 새삼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나는 얼만큼 알까? 그저 그랬듯이 익숙한 듯 이 도시의 삶에 묻혀 살아가고 있겠지. 궁금해서 미칠 정도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마을 구석구석에까지 돌아댕겨봐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발길 닿지 않은 곳, 그 곳에 내 마음을 뭉클하게 안아 줄 보물이 있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밑줄을 긋고 긋어도 또 긋을 곳이 나온다. 소중한 것은 마음에 오로새겨지는데 자꾸만 선명하게 눈에 담고 싶은 책이었다. 아마 다음번에 또 다시 펼쳐봐도 줄 긋을 곳이 나올 것 같다. 바쁜 일상, 방황하는 삶이지만 한 템포 쉬어가기를 권하는 책이다. 각박한 도시에서 노예로서의 삶이 아닌 주인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힘을 싣어주는 책이다. 어디에 있든지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은 존재한다.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너무 한쪽으로만 삶에 얽매이지 않아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해지지 않도록..... 그래서 삶이 무뎌지지 않도록....... 이 책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시시때때로 무임승차해야 될 것 같다. 오늘 하루 '감사합니다'는 날마다 염불처럼 외워야 되는 인사가 아닐까싶다. 사느라, 살아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참 애썼다........^^
'평범함 속에서 건네는 한 마디가 나를 숨 쉬게 하고, 살아가게 한다...' (2015.8.12) 책에 적어두었던 메모....... 나 뿐 아니라 날마다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들이 많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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