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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된 사랑과 결여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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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나비들은 아름답지만 슬퍼보이는군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납치하여 감금한다. 남자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사랑을 할 줄 모른다. 오직 그가 아는 사랑의 행위는 '표본 수집' 뿐이다. 아름다운 대상을 박제하여 소유하기. 나비를 채집하듯이 미란다를 납치하여 지하실에 감금하고 날마다 그녀를 양육한다. 그것은 나비의 날개짓을 멈추게 하고 연약한 몸에 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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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나비들은 아름답지만 슬퍼보이는군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납치하여 감금한다. 남자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사랑을 할 줄 모른다. 오직 그가 아는 사랑의 행위는 '표본 수집' 뿐이다. 아름다운 대상을 박제하여 소유하기. 나비를 채집하듯이 미란다를 납치하여 지하실에 감금하고 날마다 그녀를 양육한다. 그것은 나비의 날개짓을 멈추게 하고 연약한 몸에 압정을 찔러넣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그는 모른다. 무지하다는 사실에 무지함은 극도의 경직된 언어와 행동을 낳는다. 그는 여자를 유린하고자 하지 않는다. 다만 지켜보려고 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탈주를 시도한다. 남자의 방심을 유도하려고 극도의 친절을 연기하고, 유혹하고, 욕설을 내뱉는다. 그러면서 여자는 한편으로는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들을 구입해주고 일정한 시간에 찾아오는 그를 기다리기도 한다. 낯선 저택에서 남자와 여자는 치열하게 갈등한다. 1장에 그려진 것은 지켜주고 돌봐주겠다는 남자와 그런 남자로부터 필사적으로 도주하려는 여자 사이의 대립이다.

 

"뭔가를 수집하고 분류해서 이름을 붙이고는 잊어버리는 그런 사람들을 증오해요. 미술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화가에게 인상파나 입체파 등의 이름을 붙이고, 서랍에 넣어버리고는 더 이상 그를 살아있는 존재로 여기지 않아요."

 

 

2.

 

 

1부가 저택에서 벌이지는 부조리한 소극이라면 2부는 감금된 여자의 기록이다. 여자는 자신보다 21살이나 많은 'G.P' 라는 남자를 사랑한다. 그 남자는 이미 두 차례나 결혼했고, 아들은 여자보다 불과 4살이 어리다. 하지만 여자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G.P'가 자신의 친구와 섹스를 해도, 그녀는 변함없이 그 남자를 욕망한다. 여자를 납치한 클레그는 철저한 유물론자다. 반면 'G.P'는 관념론자이자 허무주의자다. 'G.P'는 좌파계열 지식인이면서도 끊임없이 가족, 사랑, 계급, 사회, 미래를 회의한다. 'G.P'의 허무주의와 관념은 매혹적이다. 미란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해체하고 반박하고 회의하게 만드는 'G.P'에게 빠져든다. 납치당해서 지하실에 감금당한 상황에서 미란다가 쓰는 일기는 '탈출'보다는 'G.P'에 관한 회상으로 채워진다. 그녀는 'G.P'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기꺼이 그에게 속박되기를 원한다. 여기서 클레그와 미란다의 사고는 겹쳐진다. 사이코패스이자 납치범인 클레그가 오히려 더 진솔한 자로 읽힐 지경이다. 클레그는 미란다를 유혹할 '지성'과 '속물'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할 뿐이다.

 

사랑하는 대상을 납치한 클레그와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다른 여자와의 섹스를 태연하게 늘어놓는 'G.P'의 거리를 멀지 않다. 클레그에게 결여된 것은 자신의 욕망을 포장할 '언어'다. 'G.P'는 자신의 이기심을 지적인 허무주의로 포장한다.

 

"욕정이란 단순한 것이오. 상대방은 그걸 금방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서로가 원하면 침대로 가는 것이고, 한쪽이 원하지 않으면 가지 않는 것이오. 그러나 사랑은 다른 것이오. 내가 사랑했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나를 이기적인 남자라고 했고. 그것 때문에 나를 사랑했는지도 모르겠소. 그리고 나면 그들은 내게 싫증을 느꼈소. 그들이 생각하는 이기적인라는 것이 뭔지 알아요?"

 

미란다는 이미 'G.P'에게 감금된 상태다. 납치당해서 욕망하는 대상과 멀어진 채 지하실에서 적은 미란다의 일기는 그녀가 이중의 감금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만약 도끼로 클레그를 찍어버리고 탈출했더라도, 그녀는 'G.P'에게 예속된 상태를 이어갔을 것이다.

 

 

3.

 

 

이 소설은 사랑의 은폐된 속성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떤 대상을 소유하고 장악하고 싶어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명명된) 욕망의 가장 극렬한 속성이다. 클레그는 행동으로, 'G.P'는 관념으로 그것을 실행한다.

 

사랑은, 권력의 위계질서를 닮았다. 여기에는 물리적인 힘을 비롯하여 지성, 언어, 나이, 재력이 포함된다. 무엇보다도 사랑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마음을 들킨 사람이 패배하는, '마음의 게임'과도 같다. 이 게임에서 지지 않으려고 연인들은 숱한 거짓말을 구사한다.

 

모든 관계는 폭력적이다. 또한 폭력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이 소설의 인물들이 구사하는 언어들은 온통 어긋남과 결여로 가득하다. 이것은 필연적이다. 우리 역시 그렇다.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필연적인 '다름'과 '차이'를 줄이려는 일방적인 행위는 폭력적이다. 그것을 부드럽게 포장하고, 합리화시키는 지식의 유무에 따라서 어떤 폭력은 용인되고 다른 폭력은 부정된다. 'G.P'가 '새로운 계급'이라고 부른 것은 그 폭력을 미화시킬 줄 아는 지적인 속물들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지독한 패러독스를 목격하게 된다. 미란다의 회상에 묘사되는 'G.P'의 속물근성을 목격할수록 납치범 클레그의 무지에서 비롯된 폭력이 가공되지 않은 순정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미란다가 처한 '이중 감금'의 상태는 관계에 개입된 양극단의 폭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연인들은 이 극단 사이의 어딘가에서 양극단의 폭력을 외면하고, 필사적으로 환상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나는 나란히 지열된 나비 표본 중의 하나이다. 내가 날개를 퍼덕이는 것을 그는 싫어한다. 나는 죽어서 핀으로 고정되어 항상 같은 모습으로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다." (259쪽)

 

 

4.

 

 

우리는 모두 클레그와 'G.P', 그리고 미란다와 어느 정도 닮아 있지 않은가. 우리는 미란다처럼 이미 감금된 상태에 놓여 있으면서도 다른 형태의 감금에는 격렬하게 저항한다. 법이나 의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클레그의 행위는 범법이자 비정상이지만, 우리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상대를 좀더 섬세하게 장악하려고 안달하곤 한다. 또한 'G.P'처럼 자신의 모순을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내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미란다는 이렇게 기록한다.

 

"나는 정직함과 자유와 베푸는 것을 사랑한다. 뭔가 만드는 것을 사랑하고, 뭔가 하는 것을 사랑하고, 충만해지는 것을 사랑한다. 그저 앉아서 보고 흉내를 내고 열정이 식어 있는 상태가 아닌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그렇지만 미란다는 자신의 사랑을 관념적인 토론으로 패주시키는 'G.P'에게 포박당하고, 클레그에게 납치되었다. 미란다는 폐렴으로 갑작스럽게 죽는다. 물론 이 죽음의 책임자는 클레그의 무지와 범죄지만, 미란다의 죽음은 '나비 표본'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의 주제 -"감옥에 갇혀 성장을 할 수 없다"-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당신은, 미란다와 클레그와 'G.P' 중 누구를 더 닮았는가.

 

 

부기: 이 책은 절판되고 20년이 넘도록 재출간되지 않고 있다. 1990년대에 대학로의 '야한 연극'의 원작으로 왜곡되었던 탓일까. 이 책을 야한 연극으로만 활용한 자들이 작품을  제대로 읽지 않은 탓이다.

2*****h 2021.01.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