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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역사는 박해 속에서 성장하고 정착해서 안정을 찾게 되면 타락해져서 고난을 자초하는 그러한 일들이 계속해서 벌이지는 것을 우리는 살펴 볼 수 있다. 신앙적인 부분만 투철하면 되는 것 같던 이 역사도 결국 사람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에 사람 마음 속에 있는 죄와 선한 본능들 속에서 갈등하며 움직이는 것을 우리를 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러한 기독교의 흥망성쇠를 속도감있게 다루고 있다. 초대교회의 시작으로부터 기독교가 국가로부터 공인되기까지 그리고 국가의 종교로 된 이후에 교회의 타락과 분열상을 이 책에서는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역사의 이야기에 그 틀을 맞추면서도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면의 진실을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네로황제가 로마에 불을 질렀고 그것을 보며 황제는 수금을 타고 노래했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난 저자는 그것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좀 더 사실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당일의 무더운 날씨, 늦게까지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던 상인들, 그리고 그로 인한 부주의한 행동이 어우러지면서 어느 기름 창고에서 우연히 일어난 사고였다는 게 진실에 가까웠다”(p. 16). 저자는 기독교의 역사를 논하면서 기독교의 입장에서 쓰긴 했지만 비교적 객관적인 눈을 가지고 바라보기를 원했던 것 같다. 사실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기독교와 반대되는 것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나쁘게 기록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신앙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슬람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기독교의 역사를 다루는 관점은 기독교와 대립하는 이슬람에 대해서 편파적으로 기록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다루어서 우리로 하여금 편견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슬람의 눈부신 약진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은 그들의 종교정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중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무슬림이 한 손에는 칼, 또 다른 손에는 꾸란(혹은 코란)을 들고서 이슬람 신앙을 강요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것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있다.... 무슬림이 초창기에 무력을 이용해서 이슬람교를 전파했다는 역사적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무슬림은 피정복 주민들에게 종교적 자유를 허용했다.... 아울러서 동방교회가 고수한 종교적 불관용 정책으로 인한 민심의 이반이 이슬람교의 확산에 일정 부분 이바지했다.”(p. 156) 이와 같이 저자는 우리에게 기독교가 이루어지고 그로 인한 갈등과 반목 그리고 발전의 상황들을 어느 한쪽 입장에서가 아니라 조금 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관점으로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다. 신학적인 접근이 필요한 곳에는 신학적인 내용을 담고 또 그 이면에 감취어진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제공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흥미를 더욱 가질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하지만 서양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역사를 담고 있기에 다른 지역의 기독교 역사를 기대할 수 없는 아쉬움은 남아 있다. 이 한권으로 유럽 2000년 기독교의 모든 역사와 사상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기독교가 지금까지 지녀온 역사를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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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 Paul 우리는 역사를 배우기에 힘써야 한다. 그 이유는 역사를 알 때 미래를 잘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바로 기독교 역사는 성경에 대한 역사요 성경을 대하는 믿음의 선조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위해서 때로는 목숨을 걸었고 순교를 감당했으며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서 치열한 회의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그 오랜 역사에 대한 방대함이 막막하고 또한 그 안에 다양하게 발생했던 사건들의 내용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숲을 통해 나무로 들어가야 할지 또는 나무들을 통해 숲을 이해해야 할지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방법적인 부분에서 이 책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는 바로 숲을 통해서 나무를 볼 수 있도록 가이드 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전체를 보고서 관심이 가고 궁금한 부분은 우리가 더 자세하고 방대하게 안내해주는 책들과 만남을 연결시켜 주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기독교의 역사는 바로 핍박과 고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는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던 적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한 시대 짧은 기간 대중에게 지지를 받고 사랑을 받았지만 기독교는 인간 안에 있는 죄를 지적하고 구원의 절대성을 가르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런 강력한 세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가운데 지금까지 역사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하나님을 도구해서 인간이 저지른 끔찍한 죄악 역시 기독교 역사의 수치스러운 부분으로 기록해주고 있다. 십자군 전쟁과 교권주의는 선악과를 먹은 죄인이 끝없이 자신의 야망과 권력을 추구하여 자신이 하나님 되려고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역사 가운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측면에서 거리를 두고 읽는 것이 아니라 이 역사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고 이 사건에서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관점으로 거리를 가깝게 두고 읽는다면 기독교 미래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나갈 우리들에게 큰 유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기독교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매우 중요한 준비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서 역사 가운데 유익했던 부분들에 대한 철저한 배움과 역사 가운데 부끄러운 부분은 철저하게 배격하면서 한국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받는 이 때 역사를 배우며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는 이들을 통해 다시 한번 한국교회가 주님께로부터 칭찬을 받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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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의 미래 역시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다. 교회의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 누구도 확신을 하고 예측할 수 없다. 예측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변수들이 지나치게 많을 뿐만 아니라 교회가 처한 현실과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 접근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p.427~428
2천 년의 기독교 역사를 한눈에 들어오게 파노라마로 엮어낸 책이었다. 이 책으로 인해 흩어져 있던 나의 지식들이 파노라마처럼 엮어지게 하는데 매우 큰 도움을 받았다. 어렵게만 느껴지고 관심이 없던 역사라고 인식했던 것이 어느순간부터 역사는 다시 반추해보아야 하고,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만나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너무도 늦게 발견했다. 그래도 참 다행이지 않은가. 늦게라도 발견했으니.
기독교의 역사를 봄에 있어 부분적으로만 접했을때는 역사속에서 세찬 바람을 맞으며 가히 상상하기도 표현하기도 어려울 만큼의 핍박과 박해를 받았던 장면들을 만나곤 했었다. 그러나 긴 세월속에서 마치 혹독하게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또 잔인하게 시집살이를 시키는 시어머니가 된다는 말처럼 역사는 그런 기독교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파도타기를 하는 것처럼.
종교적 극단주의와 종교전쟁을 낳은 것은 교리가 아니라... 인간이다. 만일 모든 신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힘을 쏟으면 하나님에 대한 탐구와 존경을 더는 전쟁과 범죄, 증오의 명분이 되지 못할 것이다. (앙리 탱, 예전자, <죄인 그리고 성인들의 이야기>) p.180
때로 하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기도 했으며, 거꾸로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명분없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역사를 돌아본다는 것은 뭘까? 거울삼음이 아닐까?! 매우 용기가 필요하다. 적절한 상황에. 그것은, 잘못된 일들에 대해서 시인함이 필요하고, 동료의 죽음을 묵인해서는 안되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리스도 때문에 신앙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물러서지 않는 용기도 필요하다.
나는 본회퍼 목사가 수의를 벗기 전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끓은채 기도에 몰입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 그는 형장에서도 여전히 기도를 올렸고, 용감하게 교수대로 향하는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처형은 단 몇 초만에 끝났다. 나는 50년 동안 직업을 수행하면서 그토록 하나님에게 철절히 순종하면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p.402 - 수용소 담당 의사 피셔 휠스트롱
성경을 읽다보니 출애굽한 유대인들이 세대가 지날수록 야훼에 대한 신앙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기록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그곳에 살았던 유대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살아왔고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본래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숱한 역사의 기록들이 오늘, 내일 어떻게 기록될지는 오직 주님만이 아신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두려운 일이 될수도 있겠지만 영원한 본향을 바라본다면 다시 신앙의 옷차림을 정갈하게 하게 해주는 역사의 반추였다. 이 책을 권하는 네 부류가 기록되어있다. 1. 신앙의 뿌리가 약해 쉽게 믿음이 흔들리는 성도분 2.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기독교의 뿌리를 가르치고자 하는 교사분 3. 신학교나 신대원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미래의 목회자분 4. 교인들에게 기독교 역사를 쉽게 가르치고자 하는 목회자분
기독교인이라면 기독교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필독서가 아닐까 생각하게 해주는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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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왜? 예수만 잘 믿으면 됐지 그 역사를 이해까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그것을 이해하기가 복잡하기 때문이다.브니엘 출판의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는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을 이해하기 쉽고 읽을수록 신앙의 깊이를 더해가는 일석 이조의 효과를 볼 수있게 구성하여 초신자는 물론 기존의 신앙인들의 깊은 영성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모르는게 약이 될수도 있지만 아는 것이 신앙의 힘이 된다면 이 책은 기본적인 신앙의 토대를 튼튼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서양의 역사에서만 듣던 십자군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소심한 수도사 루터는 어떻게 종교개혁을 일으켰는가를 말하고 있다.이 천년이란 세월이 지나는 기독교의 역사를 풀어보는 저자의 재치와 자료가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특히 자라는 청소년들에게도 좋은 책이다. 근대 기독교의 역사는 왜 영국을 떠나 아메리카 대륙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청교도들에 대하여 본회퍼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위해 치른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대각성 부흥운동이 일어난 아메리카나 유럽 대륙의 일들을 이 책에서 기록하고 있다.빌리 그레이엄이나 존 스토트같은 복음주의자들은 기독교 부흥에 어떤 역활을 하였는지 알아보고 앞으로 기독교의 미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기독교 역사의 뿌리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다양한 자료들을 간단하고 알기쉽게 정리하여 보여주고 있다.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신앙의 깊이를 느낄 수 있고 내가 믿는 예수님,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가까이 하게 되는 좋은 자료로 자리 메김하고 있다.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영성의 성장을 또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전도도 할 수 있는 책으로 소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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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고 싶다면, 이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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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는 로마 당국의 박해에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네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제물로 삼아 정치적 난국을 타개할 생각을 가지고 로마에 거주하는 약 3천 명 가량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십 분의 일을 재판정에 세워 박해하기 시작했다. 64년 여름 로마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수천 명이 죽었고, 많은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잃었다. 네로는 화재가 발생할 무렵 로마에서 53km 떨어진 안티움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네로는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서둘러 로마로 돌아왔다. 그는 여전히 맹렬한 기세를 떨치고 있는 불길을 진압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 화재가 어느 정도 수습되자 민심을 회복할 셈으로 수천 명의 이재민들에게 정원을 개방하고 한동안 기거하도록 배려했다. 심지어 화재의 잔해와 시체를 치우는 일까지 직접 지휘했다. 그런데 시민들 사이에는 근거 없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것은 황제가 노예를 풀어서 일부러 로마에 화재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네로가 시내에 불을 지른 뒤 자기 뜻대로 도시 전체를 다시 건설하려 한다는 소문이었다. 또한 로마가 불타는 사이 예술가 기질이 발동한 네로가 팔라티누스 언덕의 궁에서 화재를 배경으로 수금을 타고 노래했다는 소문은 그 당시의 정황을 참작했을 때, 사실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책은 서울신학대학교에 재직 중이며, 기독교의 역사와 성경, 그리고 영성을 다양한 글쓰기와 방송활동을 통해서 누구나 재미있고 알기 쉽게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유재덕 교수가 기독교가 처음 출발할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배경이 되는 역사적 상황과 지금껏 조명을 받지 못한 인물들을 모두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해를 돕기 위해서 200여컷의 그림이나 사진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정보를 담았다. 이 책은 총 12파트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현재의 기독교가 어디서 출발했으며, 왜 박해를 받았는지, 성경의 정경이 결정된 시기는? 이슬람교가 생기게 된 배경은? 십자군 전쟁이 일어난 배경은? 소심한 수도사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동기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분열 배경은? 청교도들이 영국을 떠난 이유는? 개신교의 갈등과 종파간 분열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통해 오늘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반성해 보게 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기독교는 만들어진 종교가 아니라 세계사의 중심축이었으며, 세계사와 더불어 변화, 발전한 것을 깨닫게 된다. 특히 자칫 딱딱하기 쉬운 기독교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기술하여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했으며, 책의 제목처럼 거침없이 빠져들게 만든다. 이 책은 목회자들뿐만이 아니라 평신도들이 읽고 초대교회 성도들의 순교신앙을 확립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다. 꼭 읽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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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선교 초기만 해도 사회적으로 혁명적인 윤리의식을 가졌다. 20세기 초 구한말과 일본강점기 시절 지독한 봉건적 윤리가 지배하고 있던 한국 사회에서 남녀가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함께 성경공부를 하고 함께 어떤 행사를 하며 사업을 행했다고 하는 것은 혁명적이고 윤리적인 대변화였다. 뿐만 아니다. 기독교는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앞장서며, 진정으로 한국 사회에 빛과 소금으로 작용했고 개혁과 개방, 청렴, 봉사의 대명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교회는 종교개학이 일어났던 시대보다도 더 강하게 비신자에서부터 신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한국교회의 외양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그럴싸하지만 내부는 썩을 만큼 썩었고 부패할 만큼 부패한 상황이라는 것을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해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실정이다. 이 책은 서울신학대학교에 재직 중인 유재덕 교수가 주로 굵직굵직한 사건을 다루거나 아니면 대표적인 인물들을 나열하는 데 치중하던 기존 교회사 책들과 달리 기독교가 처음 출발할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배경이 되는 역사적 상황과 지금껏 조명을 받지 못한 인물이나 사건은 물론이고 불편한 진실까지 과감하게 소개한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서 200여컷의 그림이나 사진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정보를 담았다. 기독교 역사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설교를 통해서 단편적으로 듣는데 그친다. 나 역시 기독교는 왜 박해를 받았는가? 성경의 정경이 결정된 시기는? 이슬람교가 생기게 된 배경은? 십자군 전쟁이 일어난 배경은? 소심한 수도사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동기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분열 배경은? 청교도들이 영국을 떠난 이유는? 개신교의 갈등과 종파간 분열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이 책은 모두 12파트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의 기독교가 어디서 출발했으며 어떠한 박해 속에서 성장했는지 종교가 힘을 가진 뒤에는 어떻게 타락하고 변질되었는지를 통해 현재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독교가 박해를 받은 까닭”을 “무신론, 인육을 먹는 만찬, 근친상간”이라고 했다. 64년 여름, 대규모의 화재가 로마에서 발생했다. 시민들 사이에는 황제가 노예를 풀어서 로마에 화재를 일으켰다고 했다. 그러자 네로는 인기 없는 신흥 종교 세력인 그리스도인들을 희생양 삼아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할 생각을 하게 됐다. “험악한 민심을 의식한 네로는 궁중 창고를 개방하고 시민들에게 인심을 베풀었다. 시중의 빵 가격도 절반이나 내렸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를 비난하는 소문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네로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데 필요한 희생양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그리스도인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소수였을 뿐 아니라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거의 인기 없는 신흥 종교 집단에 불과해서 간단한 상대처럼 보였다.”(p.18)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기독교 역사’에 대해서 알아야 하지만 그 동안 너무 학문적이고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인식으로 쉽게 접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아주 쉽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므로 목회자들뿐만이 아니라 평신도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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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흥미진진하게 살펴 볼 수 있도록 구성해 놓은 책. 12파트로 나누어 기독교의 처음 출발에서부터 지금까지의 흥망성쇠의 2천년 역사를 꼼꼼하게 정리해 놓은 책이다. 위대한 사상가 아우구스티누스는 15년 집필한 22권으로 된 [하나님의 도시]라는 책에서, 세상에는 처음부터 두 종류의 인간적인 도시가 있었다고 설파했다. 그 하나는 물질적이고 자신을 자랑하는 ‘인간의 도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창조주를 향하는 ‘영적인 도시’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아우구스티누스적인 관점에서 ‘영적인 도시’의 이야기라고 할만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 역사는 ‘인간의 도시’와 ‘영적인 도시’가 두 줄로 꼬여진 새끼줄처럼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흥하고 망하고를 반복하면서 계속된다. 저자는 동명 제목의 책을 5년 전에 집필하여 8쇄를 거듭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5년 전에 쓰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함은 물론,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인물이나 사건은 물론이고, 불편한 진실까지를 과감하게 소개하고자 한다고 저술 의도를 밝히고 있다. 이 책은 1세기 당시,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역사상 최초로 나타난 그리스도인(그리스어로는 크리스티아노이)들을 유대인들은 변절자 정도로 치부하며 박해를 받은 사건부터 기록하고 있다. 아마 이 사건은 그 후에 계속되는 박해의 서막을 예감하는 전조의 성격을 갖는다. 저자는 이 맨 처음의 사건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잘 못 알고 있었던 사실 하나를 정정해 주고 있다. 64년 여름에 발생한 로마의 대형 화재사고 때, 그 당시 로마의 황재였던 네로가 궁에서 불타는 로마를 바라보면서 수금을 타고 있었다는 소문은 그 당시의 정황을 참작했을 때, 사실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바로 이런 바로 잡음이, 저자가 이 책의 저작 의도에서 밝힌 ‘사건의 제대로 조명하기’인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 당시 로마에서 기독교가 박해를 받는데 일조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치관이 기존의 질서와 달랐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노예를 환영하고, 여성과 고아와 과부를 대우’한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64년 이후 4세기 초반까지 순교를 각오하지 않고는 기독교의 신앙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리스도인의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만 갔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교회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인정했다 한다. 이의 현상을 테르툴리아느스 교부는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고 표현했다.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상식을 제공해 주고 있다. 수도사 디오니시우스는 ‘주님의 해’라는 AD(Anno Domini)를 제안하였고, 이그나티우스 감독은 감독, 장로, 집사라는 교회의 세 가지 직제를 제안했다. 또한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신조의 지지자들과 성부, 성자, 성령은 본질을 공유한 세 위격이라고 정의했다. 또, 367년 경에 영지주의의 폐해를 막기 위하여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66권의 성경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4세기 경에 ‘사도 신경’이 완성되어 신앙을 고백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세의 암흑기를 거친 후, 존 위클립은 교황이나 사제, 성례전이 교회의 토대가 될 수 없음과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 모두가 교회라는 성경적 교회관을 주창하였다. 이 책은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한 신, 구교가 분리됨을 분수령으로 개신교는 유명한 선교사들과 설교자들에 의해 세계로 확장해 가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기독교의 역사를 기둥 줄거리로 삼아 세계사와 사상의 줄기와 흐름을 한 눈으로 조감할 수 있게 잘 정리한 수작(秀作)이라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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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 개정판』은 기독교 2천 년의 장구한 역사를 개괄적으로 조명한 의미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기독교의 역사적 흐름과 대표적인 사건, 인물들을 책 한권으로 조명하여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은 아주 흥미로웠다. 게다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기독교의 일련의 이야기들을 마치 소설을 보듯 재미있게 읽어내려 갈 수 있다는 점이 여타의 기독교 역사 관련 책보다 매력적이다. 저자의 말처럼 기존의 기독교 역사를 다룬 저서들과는 차별성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 또한 책장을 넘기면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 개정판』의 강점이자 큰 장점이다. 역사라 하면 먼저 부담을 느끼고,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어렵지도 부담스럽지도 않게 딱딱하지 않은 문체로 풀어낸 기독교 역사책을, 그리 두껍지 않은 한권의 도서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사건과 기독교 핵심적 인물들의 개별적 특징과 사소한 사건들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맞물려 연결되는 역사적 흐름에 집중하며 책을 접했다. 책을 읽으며 실소와 감탄이 오갔던 부분들은 특별히 그동안 조명 받지 못한 인물에 대한 부분과 세세한 에피소드들을 기술해 놓은 부분들이었다. 이러한 특징들 역시 이 책의 가장 신선한 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위대한 종교개혁가 루터가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재미난 사실도 이 책을 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종교개혁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루터와 함께 떠올려지는 인물 칼뱅도 그의 개혁 입장은 루터와 달랐다는 세세한 배경과 이야기들 또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칼뱅하면 ‘예정설’ 같은 단어만 떠올리게 되던 내게는 기독교의 깊은 베이스를 이해하게 되는 유익한 시간이기도 했다. 사실 그동안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어설프게 알고 있었던 얄팍한 지식들이 철저히 깨지기도 했다. 너무나 단면만을 알고 있었기에 오해했던 부분들이 많았다. 사실과 진실은 명백히 다르다는 말을 절감하는 부분들을 읽으며,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역사에 너무도 무지했다는 것에 새삼 스스로 반성과 성찰을 하게 되기도 했다. 기독교 역사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리게 되는 순간도 많았다. 현대의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경향과 시선들이 역사 속에서도 언제나 존재해 왔다. 가장 먼저 의구심이 들었던 질문들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며 살았던 이들의 신념과 행동, 그들이 만들어 낸 사건들 속에 과연 하나님은 존재했나 하는 의문이었다. ‘기독교인’이 추구하고 행하는 모든 것의 목적성은 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 역사의 과정들을 살펴보면서 그 안에 ‘하나님의 부재’를 느낀다. 신앙이란 것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하며 인도함을 받는 것이라 믿는다. 인간이 자신의 방식과 신념에 하나님이란 이름을 손쉽게 가져다 쓰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도라 할 수 없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심판대에 섰을 때, 평생 기독교인이라 믿고 살았던 이들에게 ‘내가 너를 알지 못한다.’ 라는 신의 대답이 얼마나 많이 들리게 될까. 또한 과연 나 자신은 그 대답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 두려운 마음으로 돌아보게 된다. 역사를 아는 것은 현재의 방향을 설정해 준다는 말이 떠오른다. 현재의 기독교는 기독교의 역사를 돌아보며, 진정한 기독교의 방향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것은 인간의 죄악과 수많은 실수 가운데에서도 역사를 통치하시고 이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점이다. 또한 기독교가 부패하고, 신앙인이라 불리는 이들이 타락과 배도의 길을 갈 때에도, 끊임없는 핍박을 받았던 때에도, 언제나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서 올바른 신앙을 지켜낸 이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기독교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들 앞에 큰 희망이 되며, 자성해야 할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 개정판』은 기독교인들과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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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유대교로부터 이어진 기독교의 역사를 총망라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기쉽게, 그리고 흥미롭게 기술해 놓아서 책의 이름 그대로, 거침없이 빠져들게 하는 책이다. 유대교, 천주교, 기독교, 동방 정교회, 이슬람교 기타 여러 종파들에 대한 인물, 사건 들을
전부 다루는 책은 있을 거 같지도 않고, 누군가 고생해서 정리를 해놔도 누가 그것을 읽고, 누가 그것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겠는가.
여하튼, 이 책은 굉장히 중립적인 관점에서 집필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라 할 수 있고,
이 종교의 역사에 대해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인물과 사건들을 두루 다뤘다는 점에서,
종교의 신념을 떠나 누구에게라도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유대교와 천주교, 기독교와 동방 정교회 들의 지금 상태와, 두루뭉실한 개념을 조금이나마
개념정립하고 싶은 분들께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본인은 이 책을 읽고, 현재 종교들간의 대립이 2천년전과 비교해봐도 그 대립의 성격이나 내용이
크게 차이가 없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왜 종교는 발전하지도 못하고, 진리에 다가가지가 않고, 우리가 어찌할 바를 모르게 혼란이 심화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위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 답은 내 머리안에서 도출되진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종교란 것은 어떤 다른 개념과 비교할 수 없는 개념이다.
우리가 머리로 하는 생각과 나의 마음이 따로 놀고, 항상 부딪히며 내적 갈등을 불러 일으키듯
종교는 항상 그 외의 것들과 완전히 융합되지는 않는다.
종교의 원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 한다. 그에 대해 어떤 말을 하고 설명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만의 말로는 부족하다.
종교는 인간과 그 외의 어떤 것(신 또는 어떤 추상화된 신념) 과 관련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아무리 생각을 고도로 해도 우리 마음에 쏙 들게 종교를 정리(이론화?)를 못할 것이다.
너무 나의 생각이 멀리 날아간 것 같다.
어찌되었 건 간에 기독교나 천주교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들로 방황하는 분들은 이 책이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눈에 띄면 꼭 읽어보시라. 책을 읽느라 밤에 잠이 안올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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