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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이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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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세월호의 침몰과 유가족에 대한 국가폭력을 똑똑히 보았다. 아직도 보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왜 국가가 국가의 역할을 못했을 때와 그 현장에있었다는 이유로 국가폭력을 당하고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진실을 알아야 하는데 방해를 받아야 하는가. 이태원 참사는 우리가 지금 현재 보고 있는 국가폭력의 상징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왜곡하여 외치는 소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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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세월호의 침몰과 유가족에 대한 국가폭력을 똑똑히 보았다. 아직도 보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왜 국가가 국가의 역할을 못했을 때와 그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국가폭력을 당하고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진실을 알아야 하는데 방해를 받아야 하는가.
이태원 참사는 우리가 지금 현재 보고 있는 국가폭력의 상징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왜곡하여 외치는 소리에 우리가 언제까지 짓밟혀야 하는가. 우리는 진실을 밝히고 말할 필요가 이유가 있다.
YES마니아 : 골드 b*******t 2023.10.25. 신고 공감 2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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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10.29 1주기를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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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알고리즘을 통해 알게 된 후 바로 펀딩을 통해 책을 구매하고 무작정 읽어 보았습니다. 1주기가 다가오면서 서울 사람은 아닌 지라 서울을 가게 된다면 이태원 사고 장소를 가서 사고희생자들의 넋을 위로 하고 싶다고 생각 했었습니다. 세월호 사고 때도 그렇고 분명 참사로 이어지기 전에 사고를 막을 시간과 방법을 알고 있었음에도 사고를 막지 못한 점이 참으로 안타까웠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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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알고리즘을 통해 알게 된 후 바로 펀딩을 통해 책을 구매하고 무작정 읽어 보았습니다. 1주기가 다가오면서 서울 사람은 아닌 지라 서울을 가게 된다면 이태원 사고 장소를 가서 사고희생자들의 넋을 위로 하고 싶다고 생각 했었습니다.

세월호 사고 때도 그렇고 분명 참사로 이어지기 전에 사고를 막을 시간과 방법을 알고 있었음에도 사고를 막지 못한 점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더욱 이 세상이 혼란한 이 때에 사회가 좀 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해 보이고, 이웃에 대한 배려와 관심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아닌가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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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1주기, 꼭 읽어야 할 책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이태원 참사 1주기, 꼭 읽어야 할 책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내용보기
10월 29일. 소중한 청춘과 생명 159명이 하늘의 별이 되어야 했던 이태원 참사 1주기이다.   희생자 159명 부상자 196명. 이 대형참사 앞에 허무하게 생명을 떠나보내야 해던 이태원 참사 1주기에 맞춰 유가족들의 증언을 기록한 책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이다. 책 제목에 지금이 빨간색으로 강조되어 있는 부분을 유심히 보며 생각한다. 아... 희생자와 생존자, 그리고 유가
"이태원 참사 1주기, 꼭 읽어야 할 책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내용보기


 

10월 29일. 소중한 청춘과 생명 159명이 하늘의 별이 되어야 했던 이태원 참사 1주기이다.

 

희생자 159명 부상자 196명. 이 대형참사 앞에 허무하게 생명을 떠나보내야 해던 이태원 참사 1주기에 맞춰 유가족들의 증언을 기록한 책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이다.

책 제목에 지금이 빨간색으로 강조되어 있는 부분을 유심히 보며 생각한다.

아... 희생자와 생존자, 그리고 유가족들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이태원에 머물러 있구나...

이 책을 읽으며 무엇이 그들을 이태원에 떠나지 못하게 하는가에 주목하며 책을 읽게 된다.

 

 

예전같이 행동하려고 해요.

그런데 지금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런 것들을 의식적으로 찾아봐야 해요.

일상적인 대화 소재를 끄집어내려고

찾아서 공부해야 하는 상황,

그게 굉장히 힘들고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이태원 참사 유가족 이진우씨 이야기

 

이태원에서 동생을 잃은 유가족 이진우씨는 이제 일상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순간에 동생을 잃고 난 상황에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주변의 조언은 오히려 상처가 될 뿐이다.

예식장까지 잡아놓으며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던 동생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살아질 수 있겠는가. 30년 넘게 살아온 일상이 깊은 슬픔 앞에 압도되어 몽땅 사라져버렸다. 그냥 찾아지던 일상이 이제는 애써 찾아야만 하는 노력이 되었다.

 

 

'평범한 삶'이 어려운 숙제가 된 건 이진우씨 뿐만이 아니다. 동생 송영주씨를 잃은 송지은씨도 무기력증을 호소한다. 열심히 살고 싶어도 제대로 되지 않음을 호소한다. 생존자 김솔 씨의 꿈은 이태원 참사 이후 꿈이 단 한 가지로 바뀌었다. 그저 나이가 들어서도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이태원 참사는 그렇게 한 순간에 일상을 빼앗고 유가족들의 소망을 '평범한 삶'으로 바꾸어버린다.

 

159번째 희생자. 16살 고등학생 이재현 군의 자살 소식 후 한덕수 국무총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인이 필요에 따른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지원센터에 어려움을 충분히 제기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일상도 버텨가기 힘든 상황에서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더 강할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 자신의 힘듬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물리적, 정신적인 상황이 되는가?

그게 안 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먼저 찾아가는 치료를 해야만했다. 얼마나 힘든지,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그에 응당한 대우를 해주었어야 한다. 허기지고 목이 말라 걸어갈 기운도 없는 사람에게 100미터 앞에 밥상을 차려져 있는데 먹으라고 하면 그걸로 역할이 끝인 것일까?

 

무엇보다 이태원 참사 이후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바로 정치적인 프레임이다.

 

외국의 풍습 '할로윈데이'를 따라하려고 놀려가서 죽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

뭐하러 사람 많은 데 가냐며 어이없어 하는 사람들..

그리고 빨리 애도를 표했으니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며 재빨리 선긋기를 하는 대통령과 정부.

그들을 보며 유가족들은 묻는다.

 


 

 

무엇이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1년이 지나도록 이태원에 머물게 했나.

14명의 인터뷰를 읽으며 내가 깨달은 건 한 가지였다.

 

"그들에게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애도를 충분히 치뤄지지 못하게 너무 빨리 잊혀짐을 강요받았다"는 사실이다.

 

참사 이후 너무 뿔뿔이 흩어진 희생자들. 어떤 사람은 삼성서울병원으로 또 다른 사람은 순천향대학교병원에, 누군가는 동국대병원으로 사방으로 이송된 희생자들의 시신들로 유가족들은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리저리 발버둥치며 호소한 끝에 겨우 찾아 희생을 치루고 이 믿기지 않는 현실에 덩그러니 남겨진 유가족들은 같이 애도하고 슬픔을 나눌 언덕이 필요하다. 같은 사고로 같은 아픔을 겪은 유가족들의 안부가 궁금하고 함께 나누고 싶다. 하지만 정부는 그러한 애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함께 나눠도 힘든 애도의 순간을 홀로 감당하라며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만남을 차단한다. 그 정부의 차단 속에 유가족들은 더없이 외로워지고 힘들어한다. 민주사회를 찾는 변호사 모임 (민변)의 중재로 유가족들이 겨우 모여 그제서야 서로 슬퍼하며 서로를 위로하며 버텨갈 힘을 찾는다.

 

애도의 순간은 각자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빨리 지나가고 또 다른 누구는 평생 애도를 하며 생을 보내기도 한다. 그 순간은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4.16 세월호 참사 때도 사람들은 빨리 잊으라고 했다.

그리고 10.29 이태원 참사는 애도 기간 끝난 후 잊혀진 참사가 되어버렸다.

사회가 함께 슬퍼해지더니 요술방망이가 나타나 뿅 마술을 부리더니 순식간에 잊혀져버렸다.

그 잊혀짐 속에 유가족들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태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에 다다른다.

지금까지 이태원에 있는 유가족의 마음이 이태원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그 답을 희생자 이지현씨의 동생 이아현씨의 이야기에서 찾는다.

 

언니를 잃어버린 동생 이아현씨의 가족 앞에 이지현씨의 친구들은 그저 함께 해 준다.

힘들면 힘든대로 그 순간을 지켜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시간을 정해 만나며 고인이 된 이지현씨의 이야기를 나눈다. 잊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기억해주고 추억해주며 같이 있어줄 뿐이다.

 

10월 29일 멈춘 이태원에서의 159명의 이야기를 함께 기억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이태원을 떠날 수 있게 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YES마니아 : 로얄 i***9 2023.10.29.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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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와 유가족들의 무너진 일상..상상할 수 없는 슬픔..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무너진 일상..상상할 수 없는 슬픔.." 내용보기
10.29 참사이후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의 일상은 무너졌는데..‘놀러가서 죽었다’ ‘자식가지고 시체팔이 한다’는 비난과 조롱에 맞서 싸우고 . ‘진상규명만이 트라우마 극복’이라는 생각에 유가족 협회에서 일하고 있다는 가족들의 글..그리고 아직 사망신고를 못하고 있다는 가족이 있다는 것에 무척 가슴이 아팠다.생존자들은 참사 이후 사람이 많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못하고,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무너진 일상..상상할 수 없는 슬픔.." 내용보기
10.29 참사이후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의 일상은 무너졌는데..‘놀러가서 죽었다’ ‘자식가지고 시체팔이 한다’는 비난과 조롱에 맞서 싸우고 . ‘진상규명만이 트라우마 극복’이라는 생각에 유가족 협회에서 일하고 있다는 가족들의 글..그리고 아직 사망신고를 못하고 있다는 가족이 있다는 것에 무척 가슴이 아팠다.

생존자들은 참사 이후 사람이 많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못하고,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기 힘들다.
또한 장기손상, 근육파열, 골절등으로 일을 할수 없고 일상으로의 회복에 힘들어하고 있다. 이런 부분은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다.

사건이 발생하고 1년이 지났는데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 저녁 6:34분부터 압사의 위험을 알리는 신고가 들어왔음에도 왜 통제인력은 충분히 배치되지 않았는지, 엔데믹 이후 엄청난 인파가 몰릴게 뻔히 예상되었음에도 왜 지하철 무정차통과나 일방통행등 기본적인 것 조차 통제하지 못하고 좁은 골목으로 사람들이 밀려가게 했는지..사고당시 각 기관 최고책임자들의 실망스러운 대처에 대해서 진상규명,책임자처벌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바라고 더이상 이땅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대규모 참사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a***e 2023.11.14.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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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도서]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내용보기
1주기가 다가오고, 이 책이 출판되었지만, 그 당시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고, 참사를 막지 못한 사람들이 책임을 제대로 지었는지 의문이 드네요. 이태원에 간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아직까지도 2차 가해를 저지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거대한 권력을 향해 잘못을 지적하지 못하는 자들은 만만한 개인을 노리는 법이지요.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지킬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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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주기가 다가오고, 이 책이 출판되었지만, 그 당시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고, 참사를 막지 못한 사람들이 책임을 제대로 지었는지 의문이 드네요. 이태원에 간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아직까지도 2차 가해를 저지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거대한 권력을 향해 잘못을 지적하지 못하는 자들은 만만한 개인을 노리는 법이지요.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지킬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막을 수 있었음에도. 부디, 생존자분들이 자신을 탓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k******8 2023.11.05.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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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밤과 다름 없는 밤, 나는 시체를 딛고 일어섰다
"여느 밤과 다름 없는 밤, 나는 시체를 딛고 일어섰다" 내용보기
그래. 나는 그날 이태원에 있었다. 삶은 대체로 평온하다. 가난한 삶이든, 부유한 삶이든 각자의 우여곡절이야 있겠지만 대체로 인간의 삶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비슷하다. 마치 인생이란 물질이 어떤 항상성을 띈 것처럼 지진부진한 날들이 이어진다. 그러니 모든 테러와 재해와 사고가 별다를 것 없는 날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예고장 없이 불현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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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그날 이태원에 있었다.

삶은 대체로 평온하다. 가난한 삶이든, 부유한 삶이든 각자의 우여곡절이야 있겠지만 대체로 인간의 삶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비슷하다. 마치 인생이란 물질이 어떤 항상성을 띈 것처럼 지진부진한 날들이 이어진다. 그러니 모든 테러와 재해와 사고가 별다를 것 없는 날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예고장 없이 불현듯이 찾아오는 시련. 거센 소용돌이 같은 그것은 2022년 10월 29일, 아주 보통의 나에게도 찾아왔다. 내 품에서 한 청년이 죽었고, 내 눈 앞에서만 수십명이 죽었다.

할로윈의 이태원이 처음은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이전에는 종종 이벤트를 좇아 찾던 곳이었다. 좁은 골목을 누비는 인파, 새벽까지 붐비는 술집, 아예 거리 밖으로 난 스피커에서 터질듯 울려대는 노랫소리. 무엇보다 재미있는 건 한 해를 강타한 영화와 각종 TV쇼 속 주인공들을 따라한 사람 구경이었다. 혹자는 나이가 들수록 매해 있는 생일보다 4년에 한 번 뿐인 월드컵과 올림픽이 더 재밌어진댔으나, 서커스단 같은 무리 속에 섞이는 일은 매년 겪어도 낯섦과 설렘이 공존했다.

작년에는 갓 서울에 상경하여 나와 한 집에서 살게 된 C와 함께 이태원을 가기로 했었다. C는 축제라면 가리지 않고 찾을 정도로 활발한 편이어서, 할로윈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기에 ‘할로윈 하면 이태원이지!’ 그런 속설을 들먹이며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나에게는 하염없이 익숙한 곳이, 초행인 친구에게는 낯설고 새로운 곳이 되리란 생각에 신이 났다. 언니만 믿고 따라와. 그런 마음으로.

그렇게 다이소에 들러 메이크업에 필요한 것들을 급하게 사고 무려 2시간동안 화장을 했다. 공들인 시간을 따지면 분장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확하겠다. 우리는 마치 삐에로처럼 눈 위아래로 구슬 모양을 그렸고, 검은 잉크로 물들인 깃털을 붙이기도 했다. 허리 벨트에는 인형들을 주렁주렁 달고는 그것도 모자라 머리띠까지 썼다. 그맘때쯤 집 한켠에 세워둔 행거가 걸린 옷들의 무게를 못 견딘 나머지 쓰러져있었고, 깃털을 염색하느라 화장실 세면대가 지저분해졌지만 아랑곳않았다. 그것들은 아주 부차적인 것으로 신경조차 안 쓰였다. 우리에겐 끝내줄 게 분명한 할로윈의 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간절히 기다린 파티. 사람들과의 만남. 신나는 밤이 될 것이 확실했다.

사실 돌이켜보면 행운이 크게 다가온 하루였다. 손님 발길이 드문 찰나를 틈타 맛있는 피자를 먹었고, 신논현에서부터 사람을 가득 실어나르는 버스에서는 운 좋게 자리에 앉아 갈 수 있었다. 이태원퀴논길과 세계음식거리를 지나칠 적에는 사람이 많은 게 싫어서 이태원어린이놀이터공원에 들러 우리끼리 한참을 깔깔대며 놀았다. 관광객이나 외지인들은 몰랐겠지만, 그날 이태원은 그렇게 한 골목만 비껴나도 고요했다.

아무래도 주민들이 사는 동네라 한적한 길거리를 유유히 부유하며 한창 유행하던 틱톡 챌린지를 따라 찍고 나니 배가 좀 고팠다. 아마 10시를 넘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단골이던 타코집은 영업시간이 마감되어서, 발걸음을 돌린 우리는 타파스바란 식당을 가기로 했다. 아니나다를까 그 앞 거리는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에도 이태원에 왔던 나는 C에게 그때보다는 사람이 적다고 말했다. 사람간 간격도 널널하고, 걷는데 불편하지 않네. 이런 식으로 친구를 안심시켰다.

막상 타파스바에 도착하고 보니 바로 식사를 할 수는 없었고 웨이팅을 해야 했다. 시간이 시간이다보니 다른 곳을 갈 여력은 없어 가게 앞에서부터 골목이 꺾이는 곳까지 선 줄을 따라 서서 사람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우리 앞에 대기하고 있던 커플은 깜찍한 교복을 짝맞추어 입고 분장 퀄리티도 대단해서 여러명이 지나가며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우리도 열심히 분장했는데 왜 아무도 같이 사진 찍자고 안 물어보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길 안쪽에서 어떤 남자가 당황한 듯 뛰어왔다. 의식이 없는 여자를 업은 채였다.

처음에는 술 취한 사람을 부축해 온 줄 알았다. 시간이 늦었으니 헤롱대는 사람일 것이라고 넘겨짚었다. 실려나오는 사람의 수가 점점 늘어갈 때도, 뛰어오는 사람들의 코스튬이 경찰복과 소방관 유니폼인 경우가 더러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퍼레이드 같은 행사인걸까 싶었다. 걱정되긴 하지만 별 일 아닐거라고. 금방 해결될거라고 믿었다.

시끄러운 음악소리 사이로 웅성거림이 커졌다. 처음에는 화재가 났다고 했다. 저 앞 어떤 지하 클럽에서 불이 났다며 누가 손으로 가리켰다. 아무리 까치발을 들어도 검은 연기는 보이지 않아 의아했다. 실려 나오는 사람들 모두 맨발인 상태여서 여기에 실내 클럽이 있었던가 기억을 되짚으며 더 의문에 빠졌다. 그때 누가 소리쳤다.

“안쪽에 더 많으니까 남자분들 가서 도와주세요!”

망설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말을 듣자마자 뛰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속이 탔다. 나도 뭔가를 하고 싶었다. 남자가 아니어서, 고작 여자란 이유 하나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야한다는 사실이 짜증났다. 무엇보다 답답했던 건 아무도 정확한 정보를 모르는데 소문만 무성해진 상황이었다. 바로 휴대폰을 꺼내 네이버에 들어가 기사를 검색했다. 최신순으로 찾아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트위터를 켜서 이태원을 검색했다. 올라온 소식은 10개가 채 안됐다. 마약이 퍼졌단다. 3명이 죽었다고. 대한민국에 마약 파문이 인 지 얼마나 됐다고 이 즐거워야 하는 날 마약을 퍼트렸을까 안타까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어떤 마약이길래 한 날 한 시에 쓰러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거지?

“대로에 자리가 없으니 여기 눕히고 CPR 해야할 것 같아요.”

그 소리를 기점으로 사람들이 차곡차곡 자리잡혔다. 왼쪽부터 시작해서 오른쪽 끝이 보이지 않는 골목까지 헐벗겨지거나 헝클어진 사람들이 눕혀졌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CPR 할 수 있으신 분들은 나와서 도와달라고 했다. 불과 몇 달 전에 라이프가드 자격증을 땄기 때문에 나를 향해 외치는 말 같았다. 내가 해야 할 것 같았다.

“나 나갈까?”

사정을 알고 있는 C에게 물었다. 나는 대답을 기다렸다고 생각했는데, 추후에 C와 얘기하다 보니 이미 나는 소지품과 머리띠를 모두 친구에게 맡기며 길 한가운데로 뛰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맡은 분은 체구가 작은 여성이었다. 현장이 급박하다보니 흰 블라우스를 잡아 뜯듯이 벗겨내고 몸을 옥죌만한 옷들은 다 풀었다. 허벅지며 몸 곳곳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압사의 자국이란 걸 나중에 뉴스를 보고 알았다. 나와 같이 부푼 마음을 안고 예쁘게 차려입고 왔을텐데 한 명은 바닥에 누워서 숨도 못 쉬고 있고, 한 명은 심폐소생술 하고 있고…… 그 형편이 기묘했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 상황을 해결해야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혔다.

CPR은 세명이서 교대로 돌아가며 했다. 뭇 남성들이라면 군대에서 CPR을 의무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구조 활동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성이었다. 여자들은 피해자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혈액 순환을 도왔다.

물론 당시에는 이상한 사람들도 많았다. 심폐소생술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거나, 자세가 엉망이라던가, 의사 행세를 하며 도움 안되는 말을 거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도무지 상황이 나아지질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처럼은 아니더라도 나는 다들 살 줄 알았다. 초반에는 사람들이 기절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들 금방 기침을 토해내고 숨을 쉴 줄 알았다.

여기서 밝혀두자면 그곳에는 참사를 막을 방파제나 댐이 없었다. 어떤 절차나 프로세스가 없었고, 눈에 닥치는 대로 조치를 취하기에 급급했다. 근데 그 얄팍한 조치조차 공권력을 가진 어느 기관이나 정치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예컨대 내가 아는 CPR의 단계는 거기 검은색 모자 쓰신 분 119 불러주세요. 파란색 옷 입으신 분 제세동기 가져다주세요. 구령을 붙이며 CPR과 인공호흡을 하기. 딱 그거였는데, 아무것도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 119에는 누가 신고했겠거니 싶어 생략했고, 이미 신고가 들어갔을테니 제세동기는 응급구조사가 가져다줄 거라고 믿었다. 아니면 이미 누가 쓰고 있어서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거라고. 그리고 인공호흡은……. 못했다. CPR을 몇 분 하자 희생자분의 입 밖으로 피가 역류했기 때문이었다. 온 몸이 찬데 흐르는 피만이 유일하게 뜨거웠다. 인근 식당 등지에서 전달 받은 냅킨으로 닦긴 했지만, 닦아도 닦아도 피가 나왔다.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면 입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피를 게워내야 했는데 무서워서 못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자원해서 나오긴 했지만, 내 손에 피를 묻히는 게 겁이 났다. 그런 위인은 못 됐다. 내 그릇이 그랬다.

때마침 응급구조사처럼 보이는 중년의 남성분이 오셨다.

“저기요, 이 분 상태가 심각해요. 좀 봐주세요. 제세동기는 언제 오나요?”

다급하게 붙잡고 물었더니 한참을 내려다보다 일단 CPR을 계속 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또 어디론가로 가버렸다. 우린 그 말만 듣고 다시 CPR을 번갈아가며 계속 했다. 얼마 동안 했는지도 모르겠다.

“저희 한 30분은 했죠?”

“네……”

완전히 지쳤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서로 침묵 속에서 CPR만, 하란대로 그 빌어먹을 CPR만 했다. 다들 알았을 것이다. 이미 돌아오지 않는 호흡과 뛰지 않는 맥박을 미루어보아 이 사람이 진짜 죽었다는 사실을. 늦었단 걸 아는데, 이건 다 소용없는 짓이란 걸 알면서도 다들 모른 척 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만두면 이 사람이 진짜 잘못될까봐, 아직 살릴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온 몸에 힘이 빠졌다. 더이상 CPR을 할 수 힘이 남아있지 않아 미안하지만 다른분께 계속 해달라고 부탁드리고는 일어섰다. 그제야 상황을 살필 수 있었다. 현장은 정말 아비규환, 아수라장, 혼돈, 그 자체였다. 구조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통제 속에서 식당이나 가게 등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시체들과 구조자들만으로 거리를 꽉 채운 광경은 경악스러웠고, 몸을 돌렸을 때 경찰 한 분이 머리에 손을 짚고 있는 걸 보았다. 아마 그 분도 처음 보는 상황이었을 것이었다. 어찌하면 좋을 지 몰라 우두커니 서서 황망하게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아,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느꼈다.

그 길로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 전까진 울어야 하는 상황인지도 몰랐는데, 곳곳에서 훌쩍이는 사람들을 보고 절망이 물밀듯 밀려왔다. 체제의 마비와 공권력에 대한 원망보다도 인간의 무력함과 한순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내가 왜 울지? 싶으면서도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모르는게 너무 많았다. 내가 더 뭘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저 식어버린 손을 주무르며 어떻게 여기서 죽어, 너는 여기서 죽으면 안 되는데, 따위의 말들을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제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아직 못해본 게 많을텐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불러도 없는 대답에 성호를 긋고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올리려다 그러면 이 사람이 정말로 죽은 게 될까봐 그러지도 못했다. 대신 나중에 신원이라도 확인할 수 있게 나뒹굴던 소지품을 곁에 꼭 붙여주었다.

내가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울고 있자 타파스바의 유리창 너머로 상황을 지켜보던 C가 황급히 나와 너 안되겠다고, 집에 가야겠다고 강경하게 팔을 붙잡았다. 조금 뿌리쳤던 것 같기도 하다. 안쪽에 사람이 더 있다는데, 남아서 할 수 있는 걸 더 해야 하는데. 이미 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나는 C가 이끄는대로 골목을 빠져나와 대로로 향했다.

대로에는 폴리스라인이 쳐져있었다. 내가 황당했던 점은 앞에 분명 자리가 없어서 골목에 사람들을 눕혔다고 했는데, 큰 길에는 사람이 몇명 없었던 점이다. 해봤자 10명쯤 되는 사람들만이 눕혀진 채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거나 구급대원들에게 전문적인 CPR을 받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폴리스라인을 넘어 소방대원에게 뚜벅뚜벅 걸었다.

“저기 안쪽에 사람들이 더 있어요. 안에 진짜 심각한 사람이 있어요.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 안에도 사람이 있어요?”

소방관들은 자기들끼리 웅성거리더니 안쪽에도 사람이 있다며 그제야 현실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 곁에 남아 좀 더 도울지 고민하다 C도 있고 하여 집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다시 폴리스라인 밖으로 나갔다.

온 골목이 통제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태원을 빠져나가는 데에도 애를 먹었다. 아마 삼각지까지 걸어갔던 것 같은데, 간간히 응급차들이 웽 하는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갔다. 이미 사람들은 다 죽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일까 싶어 또 울었다. 상황을 따지지 않고 팔 걷고 돕는 시민들의 합심이나 미담이 이 세상을 밝게 만들기엔 이 얼마나 허망하고 어이없는 죽음인가. 정말 말도 안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아무도 답하지 못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참사가 발생한 지점을 좀 벗어나니 그제야 이태원에 도착한 사람들이 웃고 노래 부르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엉망이 된 얼굴로 비척비척 걸어가는 나를 보고 흠칫하거나, 상황 파악을 못하고 추파를 던졌다. 평소라면 눈치도 없다며 미웠을 그 사람들은 모두 다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랐다. 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다들 무사했으면 좋았을걸.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를 부르며 버스킹하는 사람도 있었다. 딱히 구슬프지도 잘 불렀던 것 같지도 않은데 아직 상황이 전파되지 않은 딴 세상에서 흐르는 그 노래가 심장에 퍽퍽 박혔다. 만일 그대 내 곁을 떠난다면 끝까지 따르리, 저 끝까지 따르리, 내사랑 그대 내품에 안겨 눈을 감아요.. 이 가사가 꼭 세상을 떠난 희생자분을 배웅하는 노래 같았다. 나는 그게 감당할 수 없을만큼 슬펐다.

잠실까지 가는 대로가 통제되어 있다는 C의 말을 듣고, 우린 안암에 있는 C의 동생네 집까지 가는 택시를 탔다. 사실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버스도 탔던 것 같은데, 그 안에서 뒤늦게 도착한 재난 문자와 사망자 수가 몇십명으로 집계된 기사를 보았다. 그렇구나. 다들 죽었구나. 다들 거기서 그렇게 생을 마감했는데 나는 도망쳐나왔구나. 죄책감에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윤석열이 방금 어떤 반응을 했단 기사도 보았다. 모든 게 다 의미가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수습한다고, 그런 가시 박힌 생각들이 자꾸 샘솟았다.

안암에 도착하니 그날 아마 연고전이 있었던 모양인지, 승리의 기쁨과 취기에 왁자지껄 떠드는 학생 무리들을 몇 번 맞닦뜨렸다. 나는 걔네라도 살아서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한창 즐거워할 나이의 너네가 살아있어서 정말 감사하다고. 너네는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C의 동생은 따뜻한 차를 대접했다. 그것도 미안해서 울었다. 나 스스로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을 자격도, 잠을 청할 자격도 없다고 여겼다. 겨우 얼굴과 손발만 닦고 자리에 누워 휴대폰을 확인했다. 사망자 수는 100명을 훌쩍 넘어 있었고, 이태원에 간 걸 아는 사람들로부터 카톡이 와 있었다. 괜찮아? 너 어디야? 응 나 괜찮아. 잘 돌아왔어. 동이 트기 전에 C의 어머니로부터도 전화가 왔다. C와 C의 동생이랑 연락이 안 된다고. 온 가족이 (뒤에서 할머님까지 웅얼거리는 소리가 넘어왔다) 걱정하고 있다고. 자고 있어서 전화를 못 받았어요. 그렇게 모두를 안심시키고 몇 분쯤 눈을 붙였다. 아침에 전화가 온 엄마에게도 나 괜찮다고 말했다.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에서 저자 김초롱이 말했듯, 나 또한 “뉴스에서 다루는 참사 사상자와 내가 전혀 상관이 없는 듯 의식적으로 덮으려 했다(77면)”. 이더러 몇몇의 친구들은 너네라도 살아 돌아와 정말 다행이고 행운이라고 했다. 나를 위해주고 가장 생각해주는 이들의 안도란 걸 마음속으로는 알았지만, 그게 몹시도 싫고 경멸스러웠다. 그럼 거기서 죽은 사람들은 단지 운이 없어서 죽은거냐고 따져묻고 싶었다. 마음속에 가시가 점점 돋아났다.

더 이상 서울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다음날엔 선약이 있던 친구와 간신히 얼굴을 보고는, 곧바로 대구로 내려갔다. 눈만 뜨고 있으면 눈물이 나니, 회사에 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매진인 기차표를 겨우 구해서 짐도 챙기지 않고 기차를 탔다. 내려가는 내내 마스크를 타고 눈물이 흘렀다.

동대구역에 내리자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요일 저녁인데 갑자기 내려온 나를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간신히 참던 눈물이 또다시 터졌다. 엉엉거리며 안겼다. 엄마 사실 나 이태원에 있었어. 내 눈 앞에서 사람이 죽었어. 내가 어떻게든 하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숨을 안 쉬어. 피가 났는데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했어.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대구에 있는 일주일 동안은 눈만 뜨고 있으면 울었고, 그래서 회피성으로 잠을 17시간정도 잤다. 두근거림, 두통, 호흡곤란, 불안감, 죄책감, 우울감, 이 밖에 기타 등등의 증상을 몇 달간 앓았다. 회사에 복귀하긴 했지만 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했다. 손이 너무 떨려서 글씨조차 쓰지 못했고, 집중도가 떨어지니 똑같은 이메일을 수십번 읽어야했다. 휴직을 하기 위해 진단서를 타러 병원에 여러번 내원할 때에 상사는 ‘네가 이태원 때문에 힘든 것도 있겠지만, 일을 하기 싫어서 도망가는 것’이라며 가스라이팅했다. 심리적으로 약해진 나는 진짜 그런가? 사실 퇴사하고 싶은데 이태원 일을 계기로 이러고 있나? 스스로 검열했다. 위에서 언급한 책에서 김초롱이 말했듯, 나는 몸도 다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고 멀쩡히 숨 쉬고 살아 있으며 다만 그냥 거기에 있었을 뿐(43면)이었으니까. “가족과 사별했거나 친구를 잃은 것처럼 ‘가까운 누군가를 잃은 경험’이라면 충분히 이해할만 하나, 알지도 못하고 나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을 잃고 힘들어(70면)”하는 상실감은 남들이 볼 때 납득할만한 이유는 못 된다고 여겼다.

상담을 받으며 여러 차례 테라피를 시도했지만 오히려 같이 이태원에 갔고, 같이 사는 C와 상태를 비교하며 상태가 악화되었다. 새로 배우던 운동도 제대로 못해내자 자존감이 수없이 깎였다. 아무것도 잘 하는 게 없었다. PTSD가 세게 오자 자살충동이 심해졌다. 사실 나도 거기서 죽었어야 했다고,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죄를 씻기 위한 결론은 죽음이었다.

상태가 심각해지자 결국 휴직계를 내고 대구에서 요양을 했다. 첫 3달은 집에만 있었고, 그다음 3달은 운동을 했다. 그 다음 3달은 새로운 악기를 배우며 시 쓰는 법을 배웠다. 몇 차례 회사로 복귀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의사 선생님이 말렸다. 아직 섣부른 것 같다고. 약물 치료를 하고 좋아하던 여행도 가보며 그 사이 많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진심을 꾹꾹 눌러담아 쓴 편지를 몇 차례 펼쳐볼때마다 감동에 찬 눈물을 훔쳤다. 조심스러워하느라 마주보고 말을 건네지는 못해도, 마음이 느껴지는 문장들에 가슴이 아려왔다. 이들을 두고 어떻게 가겠는가. 과분한 사랑에 살아야겠다고,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다시 10월이 돌아오자 나도 뭔가를 해야할 것 같다는 느낌에 휩싸였다. 이제 숨지 않고 나서야겠다고. 당시에 못했던 일들을 지금이라도 해야겠다고. 그래서 용기를 냈다.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북토크에 가 유가족분들과 얘기를 나누었고, 인권 센터 선생님과 만나 기록과 운동에 힘을 보탰다. 1주기 추모집회도 가서 자리를 지키며 포스트잇에 이렇게 썼다.

정말 미안합니다. 제대로 사과를 하고 싶었는데, 이때까지 모르는 척 해왔어요. 제 몸 하나 가누느라 바쁘단 핑계를 댔습니다. 이기적으로 보이겠지만, 저도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합니다. 일상을 보내고, 웃어도 보고 이제 그럴려구요. 이제 마주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늘나라에서 편안할 수 있도록, 가족분들과 같이 싸우겠습니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러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욕심이라면 이마저도 미안합니다. 그러니 저를 잘 살펴봐주세요.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을 돕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지 감시해주세요. 저 정말 잘 살아가겠습니다.

기세를 타 같이 독서모임 하는 친구들에게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를 선물하며 같이 얘기 나누는 자리도 마련했다. 파라마운트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Crush>를 수급하여 당시의 영상도 함께 보는데, 더이상 죽고싶을만큼 괴롭지 않았다. 이제 그 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많이 괜찮아졌다. 그 날 함께 구조 활동을 했던 사람들, 목격자들, 생존자들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1년동안 많이 힘들었을 테지만 꿋꿋이 살아냈길 진심으로 바랄 수 있게 되었다.

2022년 10월 29일의 이태원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 거리에 각자의 사연을 남겨두었다.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한 이야기들은 몇 개나 있을까. 내가 전하는 이야기 말고도 다각적인 조각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에서는 “국가 부재 상황에서 서로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애쓴 이들이 적지 않건만 그날을 증언하는 이들은 너무 적다(6면)”고 일컫는다. “혹여 자신들의 말이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까 말을 고르다 채 토해내지 못하고 일어선다(9면)”는 것이다.

기타노 타케시는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라고 했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합친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을 힘이 된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으면, 우리가 똑바로 다시 이태원을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이태원 참사에 관한 소식은 하기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1029act.net/

p****z 2023.11.3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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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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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사고2주기를맞아매불쇼를보다급하게주문한다?단편적으로만알고다알았다고확신했던게게너무미안하고죄송했다?그사고때도어떤이들은왜외국축제에가서죽냐고하는인간들도많았다?내가세상을잘못산건지?내주위에그런분들종종있다??이런사고는또생기겠지만앞으로의사고엔국가가먼저손내밀고행적적처리같은문제도순리에맞게해나가는성숙한국가와수준있는국민들이한사람이라도많아지길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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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사고2주기를맞아매불쇼를보다급하게주문한다?단편적으로만알고다알았다고확신했던게게너무미안하고죄송했다?그사고때도어떤이들은왜외국축제에가서죽냐고하는인간들도많았다?내가세상을잘못산건지?내주위에그런분들종종있다??이런사고는또생기겠지만앞으로의사고엔국가가먼저손내밀고행적적처리같은문제도순리에맞게해나가는성숙한국가와수준있는국민들이한사람이라도많아지길바래본다?너~~~무큰기대가아니길
YES마니아 : 플래티넘 i********2 2024.1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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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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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좋지못해.. 사놓고도 한참을 들여다보지 못하다가 보게 되었습니다. 사고로 인해 희생 당하신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이렇게 대신 이야기를 전해주셔서 또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유가족께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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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좋지못해.. 사놓고도 한참을 들여다보지 못하다가 보게 되었습니다. 사고로 인해 희생 당하신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이렇게 대신 이야기를 전해주셔서 또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유가족께 조의를 표합니다.......
i*********8 2024.08.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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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이 지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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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로부터 일 년이 지난 지금..우리는 어떠한 것들을 밝혀냈는가..하루아침에 길에서 159명의 소중한 목숨들이 하늘로 멀리 갔는데...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대통령이라는 작자는 위패없는 분향소를 차리고.. 유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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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로부터 일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떠한 것들을 밝혀냈는가..
하루아침에 길에서 159명의 소중한 목숨들이 하늘로 멀리 갔는데...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대통령이라는 작자는 위패없는 분향소를 차리고.. 
유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a*****7 2024.07.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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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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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아직도 길위에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눈길 위를 오체투지를 하면서 특별법 통과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도 아무 것도 할수 없다는 것에 자괴감이 듭니다.   10.29... 수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왜 위험하게 놀라갔냐고 하지 마십시오. 젊은 청춘들은 그렇게 노는 겁니다.   이전에도 놀았고 지금도 놀고 있고 앞으로도 놀아야 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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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아직도 길위에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눈길 위를 오체투지를 하면서 특별법 통과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도 아무 것도 할수 없다는 것에 자괴감이 듭니다.

 

10.29... 수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왜 위험하게 놀라갔냐고 하지 마십시오.

젊은 청춘들은 그렇게 노는 겁니다.

 

이전에도 놀았고 지금도 놀고 있고 앞으로도 놀아야 합니다.

놀고 일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그렇게 청춘들은 하나씩 세상을 배워갑니다.

하지만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지 않은 청춘들이 있습니다.

그 소식을 놀라서 들었고 지금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있어서는 안되는 재난이 있었습니다.

몇번을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었는데 여러가지 다른 이유로

그 원인이 밝혀지고 처벌이 이뤄지고 대책이 적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가진 바닥을 드러낸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 책은 산지 오래되었지만 차마 책장을 넘겨 읽어보기가 두려웠고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생존자들과 유가족이 전하는 그때의 참상과 뒷이야기는 너무도 슬픈 내용이었습니다.

 

부디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에게 한이 남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에게는 너무도 부끄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9***d 2024.02.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