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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기업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쟁쟁한 가게들 사이에서 작게 연 가게였지만 왕서복이 자랑하는 특별함이 있었으니 1년 내내 영업을 한다는 것이었다. 왕서복은 새벽닭이 울면 가게 문을 열었고 남들이 하지 않는 밤중까지 영업을 했다. 요즘 식으로 따지면 24시간 365일 영업을 한 셈이다. 첸먼 거리는 번화가였던지라 술집과 유명 음식점이 많았다. 작은 주점이었던 두이추으로서는 다른 가게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성실하고 우직하게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왕서복은 손님이 있든 없든 크게 상관하지 않고 날씨가 궂어도 가게 문을 열었다. 다른 가게들은 명절이 되면 가게 문을 닫았지만 그 집만은 문을 열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성공에 필요한 3가지는 첫째, 나만의 꿈이나 열망 둘째, 배우려는 자세 셋째, 꾸준함 또는 성실함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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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 일본에는 긴 역사를 지닌 기업이 많다고 들었다. 자본주의 역사가 미천함을 감안할 때 가게들이 서양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기란 쉽지 않을 줄로만 믿었다. 하지만 체제가 달라지고 권력을 손에 쥔 자가 바뀌어도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기업들은 분명 존재했다. 또 다른 이웃인 중국의 사정은 어떠할까? 최근에는 중국 없이는 모든 제품의 생산이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Made In China’라는 글씨가 곧잘 눈에 들어온다. 사실 중국산이라고 하면 품질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저렴한 가격을 강점으로 한 제품들이 떠오르고는 한다. 그러한 이미지는 지난날의 각종 식품 파동 등이 중국산 제품과 긴밀한 관계를 보여왔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중국의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시간은 결코 허투루 흐르는 법이 아니다. 한때 중국은 동아시아 대륙의 패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대륙으로부터 비롯된 문명을 우리와 일본 등이 받아들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800년 장사의 비밀’을 통해 중국 기업 중 숨은 강자들에 대해 접했다. 책이 다룬 11개의 기업의 평균 나이를 따지니 280세를 웃돌았다. 송나라 때 비롯된 우량예와 명나라 때 시작된 장아찌 가게인 류비쥐 등도 존재했지만, 이 책이 다룬 많은 기업들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때 시작됐다. 학문적으로는 뛰어났을지 모르나 무언가를 거래하고 돈을 버는 쪽으로는 확실히 한족보다 이민족(?)이 탁월했던 것이다. 아마도 장사를 업신여기는 문화 탓일 것이다. 한족의 역사에 정통성을 부여해온 중국으로서는 다소 배가 아플 수도 있겠지 싶었다. 절대 강자처럼 보이던 왕조도 무너지고 풍월을 읊던 선비들도 사라진 지금까지도 그들이 깔보던 기업들이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이 점은 우리에게도 살짝 부러움의 여지를 남긴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후 많은 이들이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가장 손쉽게 차릴 수 있는 가게라 할 수 있는 치킨가게의 경우 3년 이내에 망하는 확률이 50%를 넘는다. 조금 규모가 크다 싶은 기업들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창업주 시절에는 탄탄하던 기업들도 자녀 세대에 이르러서는 분열하고 결국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중국이라 하여 우리보다 더 사회가 안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피바람 몰아치던 문화대혁명이 있었고, 자본주의를 죄악시하는 분위기도 한동안 팽배했었다. 그 와중에도 기업들은 살아남았다. 그들의 특별한 노하우를 저자는 ‘사람[人]’으로 보았다.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돈 먹는 하마’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돌리고, 비정규직은 해고하는 것을 많은 기업들은 생존의 법칙으로 이용해왔다. 어디 그 뿐인가.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남길 수 있다면 질 나쁜 원재료를 사용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사회로부터 거둬들인 돈을 사회로 환원하는 기업은 별로 없었다. 내수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고, 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중국의 기업이 인간의 가치를 으뜸으로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오래된 기업들은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아는 듯했다. 각기 다른 이유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 장아찌와 술 등을 만드는 기업인 류비쥐는 철저히 친인척을 배제한 경영을 했다. 낮은 자리에서부터 찬찬히 일을 배우고 올라온 직원들에게 기업을 물려줌으로써 부정부패의 개입을 원천봉쇄했으며, 직원들에게 열심히 일하면 오너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했다. 또 다른 기업은 반대로 가족 경영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역사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어떠한 선택을 했건 그들은 사람을 잊지 않았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자신의 양심에 기초해 최고의 원재료를 사용했다. “약을 만들 때 아무도 보지 않지만, 하늘이 알고 있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말은 가슴을 때린다. 그런가하면 손님보다 파리가 더 많은 날에도 가게 문을 닫지 않았다. 그 결과 베이징에서 가장 오래된 만둣집은 황제로부터 ‘두이추’라는 편액을 하사받는 행운을 거머쥐기도 했다. 사회 환원 측면에서도 중국의 기업들은 오랜 실천을 선보였다. 우황청심환을 처음 만든 회사인 퉁런탕은 시험을 치르러 온 수험생들에게 평안을 가져오는 약, 즉 평안약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주기도 했다. 법인세를 인하해주고 불법증여를 눈감아주면서까지 우리는 한 기업의 번영을 알게 모르게 돕고 있다. 해당기업이 국가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오래된 기업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무형문화재로서 국가가 지정해 관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곳곳에 자본주의가 만연했다고는 하나 오래된 기업을 자부심을 갖고 대하는 모습에만큼은 자본주의가 침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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