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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신앙서적을 읽을까 생각해 볼 때에 그 책을 집어 들게 되는 요소를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크게 두 가지를 먼저 기준으로 삼지 않을까 싶다. 먼저는 '주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요즘 고민하고 있는 주제를 말하는 책을 우선순위로 삼고 책을 집어들 것이다. 본인에게는 '복음, 교회, 예수 그리스도' 등이 그런 주제다. 특히나 주제를 중심으로 책을 고른다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도 해당이 될 것인데, 그 주제에 대해 다양하고도, 깊은 내용을 제공하기에 아마도 각자의 관심사에 대한 선택의 기준이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 책을 고르는 기준을 생각해보자면 '특정 키워드'일 것이다. 위에서 말한 '주제'와도 겹치는 영역이 있기는 하지만, '주제'는 책 제목에서 그것을 드러내고 있지 않아도, 책의 내용이 '관련 주제'를 담고 있다면 집어들겠지만, '특정 키워드'는 별다른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지만, 갑자기 눈에 들어오거나 궁금증을 자아내는 어떤 키워드로 인해 책을 집어들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어디까지나 본인 피셜이다 ㅎㅎ) 그렇다고 한다면, 앞서 말한 기준들이나 그 외의 선택의 기준이 되는 요소들을 생각해 보아도, 선뜻 잘 고르지 않는 신앙서적의 장르가 있다면 아마도 '강해서'일 것이다. 강해서는 주제가 아닌, 특정 키워드가 아닌, 어디까지나 성경 본문이 중심이 되어 그 의미를 깊이 해석하고 그 내용을 청중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려는 방식으로 집필된 신앙서적이다. 그렇기에 성경 본문의 앞뒤 문맥, 역사적 배경, 문법적 구조 등이 잘 고려되어야 하고, 주로 성경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연속성을 가지고 쓰여진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성경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자 하는 성도들이나 목회자가 아닌 이상, 강해서를 신앙서적으로 선택하고, 완독을 한다는 것은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책의 두께도 얇지는 않기에 강해서는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하지만 강해서는 그 특징 그대로 성경 본문이 중심이 되어 깊이 있는 해석이 있기에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하는 크리스천에게 본질적인 성경 연구가 되기엔 훌륭하다. 그리고 요즘 나오는 강해서는 딱딱하고 진부한 신학서적 같은 류의 구성이 아니라 평범한 성도들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성이고, 주로 설교집으로 나오기 때문에 잘 선택한다면 그 어떤 성경공부보다도 유익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추천을 해보자면, 세움북스에서 출간된 <모두를 위한 설교 시리즈>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강해 시리즈가 아니라 설교 시리즈라는 것이 특징이다. 분명 독자가 접하는 것은 책이고, 강해서라는 장르겠지만 각 시리즈의 내용들이 설교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학문적 전개나 표현보다는 듣는 성도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설교문이기에 접근성에서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성경 한 권 전체에 대한 분석과 배경적 연구가 수반되어 있기에 성경을 좀 더 깊게 공부하고, 그 의미의 맥락도 알아가기에는 탁월하다는 것이다. 그 시리즈 중에 고한율 목사님의 빌립보서 강해집인 <감옥에서 보낸 기쁨의 편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본다면, 앞에서 이야기 한 강해서의 특징과 장점을 비롯하여 '읽기 어렵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진행 구성이 이 책의 특징이었다. 물론, 처음 마주했을 때 책의 두께가 주는 위압감은 여전했으나 ㅎㅎ 강해서라는 장르의 책이 이렇게 쓰여진다면 결코 다가가기 어려운 영역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빌립보서는 '기쁨의 편지'라는 별명이 있는 성경이다. 그런데 솔직히 빌립보서를 읽으면서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빌립보교회와 사도바울 간의 관계에 녹아져 있는 기쁨이 무엇인지 성경을 읽는 크리스천들이 제대로 그 경험이 되어질지에 대해선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단 4장의 내용만으로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져야 하고,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보낸 사도바울의 심경이나 간절함이 보여야 할 것이며, 빌립보교회의 현실을 그대로 마주하고 있는 교인들의 치열함이 느껴져야 가능할 것인데, 그 정도는 되어야 '왜 기쁨의 편지인가?'를 겨우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과연 가능할 것인가? 거기에서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그 2천년 전의 메시지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자들에게도 메시지가 되어야 하고, 그 의미가 오늘날에 실천적 권면과 적용점이 되어 실제로 살아가야 하는 영역까지 영향을 미치려면.. 강해서가 지닌 숙제의 부담이 너무 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적으로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당연히 강해서를 처음 읽어보는 것도 아니고, 강해서가 지닌 장점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솔직히 목회자에게도 강해서를 읽으면서도 강해서가 풀어내야 할 숙제를 똑같이 지녀야 할만큼 만만치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뭐랄까.. 2천 년전 빌립보교회에게 쓰여진 편지가 오늘날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전달되었다고나 할까?
단순히 책의 내용이 어렵다, 쉽다, 유익하다, 지루하다 등등의 느낌이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편지가 보내졌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구성(?)이라는 말이다. 정말 목회자로 많이 생각해 본 것이, 목회자의 역할은 성경을 많이 알거나 그것을 잘 설교하는 것 자체에 역할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성경의 영역과 현실이라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의 영역의 벌어져 있는 간격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는 것이 목회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다고 한다면, 2천 년전의 '기쁨의 편지'가 오늘 날에도 '기쁨의 편지'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회자의 역할이자 강해서가 풀어내야 할 숙제인 것인데, 이 책은 그것을 잘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강해서의 특징인 본문 주해를 통한 올바른 해석으로 성경이 말하려는 바를, 그저 이론적이고 텍스트에 국한된 표현으로 명제화 시키고 있지 않음이 내용에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네의 현실속에서 비판적 시각으로 보아야 하는 신앙의 요소들을 분명하게 건드림으로 복음에 합당하게 산다는 것이 텍스트를 암송하고 인정의 고백으로 그치지 않고, 2천 년전의 이야기가 오늘의 이야기가 되어야 함을 명확하게 나타내는 것이 강해서가 지닌 숙제를 잘 풀어내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부분인 것이다. 사실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야 이미 편찬된 책 한권을 읽을지 모르지만, 이 책 한권이 이렇게 쓰여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성찰이 있었을지 감히 짐작도 가지 않는다. 정밀한 분석과 연구도 필요하지만, 벌어진 시대적 접점을 좁혀야만 하는 목회자의 고뇌와 동시에 건드리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예리한 비판적 사고를 서슴없이 꺼내는 용기는 분명 이 시대에 필요한 선교적 사명의 감당을 위한 치열한 다툼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기에 너무나도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감옥에서 보낸 기쁨의 편지>는 2천 년전에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를 오늘날 우리에게, 이 책을 접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진 편지가 되었다 말하게 되는 것 같다. 부디 이 책을 통해 빌립보서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에 합당한 삶, 기쁨의 삶'이 본질을 잃어버리고 사는 이 시대에 던져진 소망과 기쁨의 메시지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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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는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서 누구나 마음만 먹는다면(!) 앉은 자리에서도 빌립보서 묵상을 끝낼 수 있을 정도로 분량이 적지만, 분량이 적다고 해서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기가 쉽다고 할 수는 없다. 시중에 나온 빌립보서 강해집이 그리 많지 않은 와중에 모두를 위한 설교 시리즈에서 빌립보서 강해가, 무려 400장이 넘는 분량으로 출간된 것은 빌립보서를 좀 더 깊게 공부하기를 원하는 성도들에게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수가 없다. 이 책의 첫번째 장점은, 적절한 예화로 설교의 문을 열어서 이해를 돕는 것이다. 부적절한 예화는 성경 본문이 기억에 남기 보다는 엉뚱한 이야기만이 기억에 남아서 묵상을 방해하곤 하지만, 고한율 목사님의 빌립보서 강해는 본문을 이해하기에 매우 적절한 예화로 설교가 시작된다. 특히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제목의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사용하신 ‘엄마 게와 아기 게’ 이야기는 마치 앞서 걸어가시면서 모든 선한 것을 표본으로 보여주신 예수님의 발걸음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가능할 정도로 적절한 예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엄마 게는 아기 게에게 앞으로 걸으라고 시키기는 했지만 설교에 빠져들기에 충분한 예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로를 섬기라고 가르치시면서 말로만 하지 않으시고 삶으로, 행동으로 친히 보여주셨다.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겨 주시기도 하시면서, 스스로 낮아지시기까지 하면서 말과 행동과 삶이 일치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삶을 따르기를 저절로 소망하게 되었다. 또 다른 장점은 이 시대의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제시해주고, 그것을 통해서 교회가 어떻게 세상의 빛이 되고, 교회의 직분자들은 어떠해야 하는지도 제시한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고, 최고의 가치라 여기는 것도 달라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교회와 세상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 책은 그런 교회에게 묵직하게 메세지를 던지는 듯하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님이시고, 교회의 성도들은 서로 협력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참된 복이자 세상과 구별되는 첫걸음임을 이야기한다. 감옥은 결코 기쁨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다. 감옥과 기쁨은 매우 대조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사방이 꽉 막혀서 모든 것들이 나를 속박하는 공간에서 그저 주님을 부르짖기만 할뿐일텐데 주 안에서 기뻐하라니..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플 때나.. 심지어 바울처럼 옥중일지언정..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우리의 기쁨을 빼앗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라는 문장이 책장을 덮고도 계속 맴돈다. 성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지만 세상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기도 하는 내가 지치고 피곤하더라도 금새 기뻐할 수 있음의 이유를 다시 깨닫는다. 지금의 기쁨 슬픔 아픔 조차도 하나님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그저 감사할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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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의 ‘옥중서신’ 중 한 권으로,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쓴 편지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빌립보서의 별명은 ‘기쁨의 편지’이다. 4장 정도의 짧은 분량에 ‘기쁨’, ‘기뻐하라’라는 단어를 16번이나 사용할 정도로 기쁨이 강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바울은 도무지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감옥에 갇혀 곧 나올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죄 석방 아니면 사형 선고인데, 사실상 사형 선고의 가능성이 더 컸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기뻐할 수 있단 말인가? 또 어떻게 기뻐하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의 기쁨은 단순한 정신승리이거나 자기 기만인 걸까? 그렇지 않다면, 그 기쁨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참된 기쁨의 원천은 무엇이며,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 언제나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도무지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뻐하는 것은 역설이다. 상식적으론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 되지도 않는 것.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그런 역설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서 기뻐할 수 있고, 또 기뻐하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빌립보서를 더 쉽고 풍성하게 묵상할 수 있도록 돕는 책, ≪감옥에서 보낸 기쁨의 편지≫를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특히 감옥에 갇힌 것처럼 자유함을 잃어버리고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가 있다면, 이 설교집을 통해 빌립보서를 찬찬히 묵상해 보길 권하고 싶다. 빌립보서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정한 기쁨을 맛보게 할 것이다. 참된 기쁨으로 당신을 인도할 것이다. 이 빌립보서 설교집은, 저자 고한율 목사가 교회에서 했던 설교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핵심 내용을 여러번 반복함으로써 바울의 의도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돋보였다. 덕분에 각 본문들을 유기적으로 잘 연결해 묵상할 수 있었다.
* 우리가 ‘주 안에’ 있다는 것은 모든 권세를 가지신 전능하신 예수님의 능력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명령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 서로를 불쌍히 여길 힘도, 사랑할 힘도 우리에게는 부족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우리 힘으로 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있다고 말함으로 주님의 힘으로써 그렇게 하라고 말합니다. / 344 * 바울이 감옥에 있으면서도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능력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은 능력이 전달되는 파이프에 우리가 연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지만 주님과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 무한한 능력이 우리에게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 주님의 능력이 우리가 어떤 형편 속에 있든지 만족하게 합니다. 감사하게 합니다. 기뻐하게 합니다. / 403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삶’을 여러 장에 걸쳐 강조하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로마 제국의 복음은 “돈과 힘, 탐욕, 이기심으로 승리와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로 승리와 영광을 얻는 것이다. “희생과 섬김, 자기 부인과 패배”의 삶. 불가능해 보이지만 이 또한 주 안에 있다면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매순간 나에게 은혜 주시기를 기도한다.
세움북스의 모두를 위한 설교시리즈는 목회자뿐 아니라 성도 누구든지 읽고 이해할 수 있게 쓰여 있다. 목사의 사견을 배제하고 본문에 충실한 게 특징이며, ‘읽는 설교’로써 성경을 더 깊게 묵상하도록 돕는다.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살리는 시리즈로 오래도록 쓰임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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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보낸 기쁨의 편지 (고한율)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지만 단순한 기쁨을 추구하는 서신은 아니다. 저자는 책의 제목처럼 복음에 합당하게 살라는 부분을 강조하며 두 번에 나누어 심도 있게 설교한다.
우리의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에게 복음의 기초하여 합당한 삶으로의 기쁨을 말한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하나님 나라의 법이며 하나님 나라의 법에 순종함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위대함을 경험할 수 있다는 논증을 일관되게 주장한다.
어떻게 이런 위대함을 누리며 살아갈까? 저자는 희생, 겸손, 자기 부인, 패배라는 십자가의 영광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세상의 복음과 전혀 다른 역설의 복음이다. 하지만 그것이 빌립보서가 이야기하는 복음이며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복음이다.
저자는 이런 맥락에서 로마제국의 복음과 같은 현실의 벽을 보여주면서도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함을 말한다. 그러면서 교회가 우리의 주 무대가 아닌 가정과 일터, 이 세상의 주 무대에서 시종일관 거룩한 왕따답게 복음으로 살아내기를 권면한다.
그러면서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자 생각의 서신임을 말한다. 책의 말미의 생각하라는 설교는 그리스도인의 세계관의 중요성을 말한다. 복음으로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삶은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살 수가 없다.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순종할 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음을 권면한다.
기쁨과 생각! 어쩌면 어울릴 것 같지 않으나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맹목적인 믿음이 주는 폐단으로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감정적인 맹신으로 인해 그릇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시대는 복음에 합당한 사고와 복음에 합당한 순종이 하나가 될 때 사람들은 복음의 위대함을 보게 될 것이다.
세상의 가치관이 주는 기쁨은 마취제일 수 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각을 통한 합당한 순종은 하나님의 기쁨을 경험하게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바른 신앙생활의 모습으로 초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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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말씀과 삶을 잘 이어주는 설교를 듣거나 읽거나 접하는 모든 순간들은 큰 복이다. 바울서신들을 읽으면서 바울의 신앙에 대해서 묵상할때에 가장 부러웠던 점(?), 가장 본 받고 싶었던 점은 그의 상황에 얽매이지 않는 신앙이었다. 감옥이라는 상황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바울의 기쁨이라는 그의 전체적인 삶의 모습, 이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제를 향해서 던지는 도전과 같았다. 결국 다시 복음이다. 마주한 상황들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는 그리스도인들 혼자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책을 통해서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세상에서의 삶에 지친, 더이상 몸부림 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 앞에 놓인 당신에게 모든 이 책을 접하게 되는 분들이 상황에 얽매이지 않는 신앙으로 그리스도안에서 기뻐함을 회복하기를 소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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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문장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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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보낸기쁨의편지 #고한율지음 #세움북스 #복음에합당한삶 #빌립보서강해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의 옥중서신중에 하나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빌립보서에는 바울이 기도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빌립보교회 성도를 위해서 항상 기도를 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나도 감사로 사는 삶을 살고자 애쓰는데 일상생활속에서의 감사로 충만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일을 전심을 다해 바쳤는데 바울에게 돌아오는 것은 감옥생활이었다. 행복을 주기는 커녕 언제 나올지 모르는 힘들고 막막한 고난의 시간에 바울은 어떻게 했는가 눈여겨보게 되었다. 빌립보교회의 성도처럼 같은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전에는 힘든일이 나에게 생기면 푸념과 원망이 뒤섞여서 죈종일 멘붕상태로 복귀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왜 나에게 이런일이 생길까. 푸념과 대상없는 원망과 머릿속에 저기 깊고 깊은 우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쪼그리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었다. 비록 고난의 상황에 놓여있을지라도 나의 삶 가운데서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긴 어둠에서 밝은 빛으로 이끌어주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나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보았는가? 그리고 그 속에 여러일들이 있지만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 긍휼과 교제가 너무 귀하다. 하나님안에서 하나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나.-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 2장3절- 겸손의 의미를 알아야하는데 "성경적 겸손"을 탑재해야 한다. 스스로 낮추되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최근 다툼이 있어서 힘이 빠져있는 상태였는데 나에게는 어느누구보다 나를 지켜주시고 나의 길이 가시밭길이던 꽃길이던 항상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었다. 나를 더 귀하게 여기시니 이럴수록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만큼 나도 나를 귀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며 평안함을 얻었다. 바울이 성도하나하나가 이단에 현혹되지 않으려 힘써야 한다. 성도의 탈을 쓰고 교묘하게 침투하여 모략을 펼치기도 한다. 정체를 숨긴 채 적극적인 포교로 혼돈을 주기도 한다. 교묘히 침투하여 한 사람의 인생을 흔들어놓다가 한 가정을 철저히 무너트리며 그 주변까지 어지럽혀 놓는 과정을 보면서 이단에 대해 더욱 알려힘쓰고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해 기본 교리나 신앙의 기본기를 탄탄히 다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단이나 사이비는 갑자기 불현 듯 불시에 마음이 약해져 있을때에 다가온다. 믿음의 울타리를 단단히 다져야 한다. 저자의 물음에 한치의 망설임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가 생각했던 것과 같을 때에 사랑이 많으신 분이구나 그꼈다.< 교회 다니는 우리는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느끼는가? > 프로그램이 세분화되어 있고 사람의 입맛에 맞게 맞춰진 교회? 전혀 아니다. 서로를 품어주고 서로 세워주며 사랑으로 품는 교회가 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저것 따지기보다는 서로의 형편에 맞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서로 채워가려고 하고 그 안에서 이루고자하는 것을 힘쓰며 주안에서 사랑하는 것이다. P.339 "어떻게 목사가, 어떻게 장로가, 어떻게 권사가 저럴 수 있어"라고 공격하기 시작하면 서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서로 불쌍히 여길 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언제고 항상 강할 수만은 없음을 알아야 한다. 긍휼의 마음으로 사소한 것에 너무 날을 세우지 말고 싸움을 부채질하는 사람이 아닌 불을 끄는 소방관이 되어야 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궁금해도 그 호기심과 궁금증을 누르려고 하는 이유는 부채질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절제와 참음, 그리고 기다림을 하려고 한다. "어떻게 저래?"라고 하기전에 왜 그랬는지 한번 더 사랑으로 들여다봐주길. 바울이 말하는 관용은 자신이 움켜진 것에 염려하지 않는다. 내것이라고 움겨쥐고 욕심을 부리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닌 바울이 말하는 관용의 자세를 알며 모든것에 영원이 없음을 생각하며 관용을 베푸는 자가 되자. P.364 바울은 두가지, 즉 염려하지 않는 것과 기도, 특히 감사함으로 드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감사함을, 그리고 염려를 내려놓고 기도로 구하는 사람이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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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책이기에 그 어떤 부분도 소홀히 대할 수 없는 책이다. 모든 글들이 사람을 변화시키에 충분한 능력이 있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66권의 성경중에서 빌립보서를 가장 좋아한다(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다). 그 이유는 간략히 이야기 하면 책 제목과 같이 "기쁨의 편지"이기 때문이다. 전혀 기뻐할 수 없는 상황과 환경속에서 그리스도인이 기뻐할 수 있는 이유, 기뻐해야만 하는 이유를 너무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럴까? 세움북스의 이번 시리즈는 출간 전 부터 너무 기대가 되었다.
이 책은 모두를 위한 설교시리즈의 아홉번째 시리즈이다. 필자는 모든 시리즈를 구입하여 서재에 꼽아 놓았을 정도로, 이 시리즈를 너무 좋아한다. 설교집이지만 설교집 아닌것 같은 편집, 모두가 읽어도 이해할 만큼의 알기쉬운 문체, 그리고 설교자의 깊은 묵상과 연구가 바탕이 된 탄탄한 복음의 내용들... 이런 부분들이 이번 시리즈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출간된 설교 시리즈 중에서 가장 두꺼운 책이다. 무려 434페이지다. 읽기에 약간 부담스러울 수 있는 페이지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읽는 자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발견하게 되리라!
이 책은 고한율 목사님께서 쓰셨다. 목사님은 성결교단에서 신앙을 배우고 C.C.C 에서 복음을 깨닫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개혁주의 신학을 수학하신 귀한 목사님이시다. 보통 저자소개는 책의 맨 앞에 위치해 있는데, 고목사님의 소개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위치해 있는 것을 보면서, 이 또한 목사님의 겸손함을 나타내주는 정보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현재는 은곡교회(합신)의 담임목사님으로 시무하고 계신다.
빌립보서 강해설교집이지만, 설교집이라는 딱딱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 먼저 설교자로서의 고뇌를 볼 수 있었다. 성도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쉽게 복음의 내용을 잘 전달 할 수 있을까의 고민의 흔적이 이 책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 다만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셔서 이 설교집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몇몇이라도 하나님 말씀을 비추는 생명의 빛을 발견하기를 소망할 뿐입니다(P.12 서문 중에서) -----------------------------------------------
사실 책을 통하여 내가 모르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던가, 신학적으로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는 독특함을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설교를 통해서 한번 이상은 다 들어보았던, 일반적으로 다 아는 내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 아는 이야기가 어떤 경우에는 무서울 때가 있다. 내가 잊고 있었던 복음 다시 상기시켜 준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아예 모르는 것을 처음 들을 때에는 새롭게 습득한 지식으로 은혜를 받지만, 아는 것을 잊어버렸으나 그것을 다시 상기해야 할 때는 마음이 불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글이 그렇다. 아는 내용이다. 빌립보서를 좋아하고 청년들에게 전체를 다 강해했으니,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겠는가? 그럼에도 언제나 듣고 보고 묵상해도 빌립보서는 그냥 은혜이다. 사도바울의 교회에 대한 입장, 복음에 대한 태도, 그로 인하여 교회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 빌립보교회가 어떤 교회로 세워졌으면 좋겠는지, 우리가 배운 모든 교회론이 이 한권의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빌립보서를 읽으면 교회를 알 수 있다. 진정한 교회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많은 부분 중에서 가장 은혜가 되었던 부분은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향해 선을 긋고 좁은 길을 걸어나가는 "거룩한 왕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부분이다.
----------------------------------------------- 예수님은 많은 사람이 찾는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왕따가 되라는 말씀입니다(P.221 거룩한 왕따 중에서) -----------------------------------------------
저자의 빌립보서 설교집에서 일관되게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같을 수 없다!" 이것이 기뻐할 수 없는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되고, 고난과 문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를 자녀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역시 다 아는 내용이 무섭다. 저자는 사족을 붙이지 않는다. 아주 간결하고 정확하고 단호하게 복음을 외친다. 마치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을 앞서 미리 준비하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다!"고 외친 세례요한처럼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금도 포기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었을때 우리를 먼저 찾아와 주셨고 우리를 사랑해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빌립보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주님의 사랑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리스도를 머리삼아 교회를 이 땅에 세우셔서 구원받은 백성들이 맘껏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도록 공동체를 이루어 주신 것!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책은 복음의 회복을 필요료 하는 분들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또한 교회공동체의 어떠함을 고민하고 있는 분이라면, 교회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알고 싶은 분이라면 반드시 읽어보시라고 권면드리고 싶다. 이 책의 키워드는(필자가 읽어본 결과! 개인적인 견해로...) "사랑"이다. 빌립보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자녀를 그냥 두시 않으시는 사랑, 교회공동체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 교회 속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신앙생활 하는 우리 안에도 '사랑'의 실천이...
복음은 투박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이다. 복음은 어떤 이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결국 복음이 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