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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 오래 전에 너무 야한 소설로 구속 되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의 책을 읽어본 것은 처음이다. 야한 소설을 썼다고 구속이라니, 좀 심한 것 같다. 범죄라고 단정 하는 것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할 수 밖에 없겠지만, 어느 시대라도 인간의 기본적 인권을 넘어서는 제약과 처벌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사상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한 소설로 구속이 된다는 것은 시대의 코미디가 아니었다 한다. 각설하고, 마광수 교수의 '아라베스크'어떤 내용일까, 책을 읽기도 전에 궁금증이 폭발하기도 하고, 책속에서 마음껏 야함과 관능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보통 야한 것은 혼자 숨어서 봐야 하기 때문에 책을 읽는 모습은 그런 유희를 들키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부터 상상이상 그 자체 였다. 내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의 언어들로 성적 판타지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주로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에서 봤는데, 아무리 표시가 안난다 해도, 언어들이 너무나 야해서 혹여라도 주위에서 책의 내용을 보고 나를 이상하게 쳐다 볼까봐 책을 최대한 좁게 열고 봤다. 사람은 누구나 야한 상상을 할 것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성욕이 있는 한은..성에 대해서 만큼 할말이 많은게 또 있을까. 야한 상상은 즐겁다.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혼자만 즐길 수 있는 아주 즐거운 상상이다. 마광수 교수는 야한 상상의 대가인 것 같다. 일반적으로는 성적인 상상을 해도 단순한 상황이나, 단편적인 스토리일 텐데 그런 일차원적인 상상을 넘어서 말그대로 시공간을 초월한 상상을 그려내고 있다. 왕궁에서, 외국에서, 바다속에서, 하늘에서 수많은 미녀들과 그가 하고 싶은 모든 성적 행위들을 하고, 황진이와, 양귀비와,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즐기는 유희의 세계가 펼쳐졌다. 재미있는 점은 이 책에서 작가의 성적 취향을 엿 볼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대체로 손톱과 발톱이 긴 여자, 머리가 긴 여자, 키가 크고 글래머인 여자, 하이힐을 신은 여자 몸에 반지, 각종 링을 많이 단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출연하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이런 모습이었다. 모든 여자들은 거의 옷을 입지 않았거나, 입더라도 속이 훤히 비치는 그런 얇은 옷들을 입고 있었다. 작가는 남자의 성욕에 대하여 자궁회귀 본능이라는 말을 쓰는데,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적이 있다. 즉, 사람은 어머니의 자궁속에 있을 때가 가장 아늑하고 편안한 시기 였고, 누구나 자궁속으로 들어 가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은 나를 그런 편안한 상태로 끌어 안아 줄 수 있을 것 같기에 여성의 품을, 남자들은 그렇게도 찾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무튼 성욕이야 번식의 욕구가 1차적인 근원일 것이다. 성욕이 없었다면 인류는 이렇게 번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번식의 욕구라면 귀찮아서라도 안하려 했을 것인데 무한의 쾌락을 부여해 줌으로써, 인간들이 끊임없이 갈망하도록 만들고,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이성을 부여해 준 것이 아닐까 한다. 인간은 억제할 수록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욕구를 표출하는 성향이 있다. 성적인 문제도 억제가 능사는 아닐 것이다. 적어도 솔직한 표현에 대해서 만큼이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비정상적인 욕구 표출로 인한 각종 범죄나 사회문제들도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광수 교수와 같이 성적인 솔직한 욕구를 표현하는 문학작품이나, 영화, 그림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거나 이슈가 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고 누구나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강남 한복판,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말끔한 차림에 빈틈 없는 행동과 말투로 포장한다.
여자들은 도도한 표정을 짓고, 남자들은 광택이 나고 잘 다려진 옷에 넥타이 모두 인간의 본능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 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어젯밤 잠자리는, 잠자리속에서 상상한 것들은 마광수 교수의 상상의 세계보다 더 야하고 판타스틱 했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저 경직된 사람들이 좀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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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베스크. 처음 아라베스크라는 말뜻이 뭔지 몰라 찾아보니 아라비아풍이라는 뜻이라고…. 마광수 교수의 새 소설 <아라베스크>는 1992년 스포츠 조선에서 연재되었던 글을 다듬어 책으로 출간한 것으로 <즐거운 사라>로 구속된 후 <아라베스크>의 연재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책은 '에덴동산에 가다'라는 프롤로그로 시작되며 아담과 이브를 꽤 자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시작부터 적잖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 짧은 프롤로그만으로도 마광수 교수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여성(性) 스타일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긴가민가했지만 다른 에피소드가 진행되면서 한결같은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어서 확신하게 되었다. 등장하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모두 손톱이 길고, 피어싱 등을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나와 취향이 전혀 다르다는 건 함정이다.
역사적 인물인 양귀비와 황진이의 등장은 꽤 성적 판타지를 느낄 수 있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을 色 다르게 비틀어버리는 마광수 교수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10미터가 훨씬 넘는 머리카락과 1미터가 넘는 손톱을 가진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이야기에 식겁을 했다. 전혀 내 성적 취향이 아니다. 1미터의 손톱이 적당히 밍긋한 곡선을 그리며 구부러져 있는 게 어디가 멋있다는 건지…. 뭐 개인 취향 존중을 하는 것이 우리 남성들의 의리긴 하지만…. 이건 좀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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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베스크]이번엔 마광수의 옴니버스 장편소설이다.
이번엔 마광수의 옴니버스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작품인 <2013 즐거운 사라>, <가자, 장미여관으로>, <생각> 등을 읽으면서 주제가 일목요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러 권의 책들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은 작가가 굉장히 자유로운 정신으로 육체의 자유, 성적인 민주화, 성적 상상의 무한도전을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외설스럽고, 위험하기까지 한 남성 위주의 성적 판타지라고 할까. 상당히 관음적이고 퇴폐적인 미가 가득한 점에서 남성들의 솔직한 의중을 꿰뚫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가도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면 굉장히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라베스크. 옴니버스 장편소설의 제목만큼 어울리는 제목이다.
아라베스크는 문자와 식물무늬 등이 아름다운 곡선과 융합된 기하학적인 무늬로 환상적인 이슬람 양식이다. 옴니버스식 구성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몇 개의 독립된 짧은 이야기들이 모여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해가는 구성이다. 전혀 다른 장소, 전혀 연관성 없는 사람들이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며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연극이나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기법이기도 하다. 비슷한 말로 연작 구성이 있다. 연작 구성은 주인공이 같고 몇 개의 단편들이 묶여 있다는 점에서 옴니버스식 구성과 구별된다.
역시나 이 소설에도 작가다운 무한 상상의 성적 세계를 판타지라는 형식, 옴니버스라는 형식으로 담았다.
책 속에서는 사라 공주, 램프의 요정, 황진이, 낙화암의 삼천궁녀, 샹그릴라, 색희와 양귀비,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갈매기의 꿈, 나의 첫사랑, 즐거운 왕국 등이 시공을 초월하며 펼쳐진다.
프롤로그에는 에덴동산의 야한 세계를 담았다.
에덴동산은 문명화되기 이전의 곳이라서 원시적인 모습을 상상했다. <성경>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처음에는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로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덴동산은 생각했던 것보다 '인공미'와 '섹시미'의 극치였다. (책에서)
이 소설은 문학성을 겸비한 야한 소설, 자유롭고 솔직한 에로틱 소설, 거침없이 가벼운 기묘한 소설, 하나의 주제에 정말 충실한 끈적끈적한 소설이다. 가학성과 피학성을 적나라하게 펼치는 불편한 소설이다. 남성의 연약한 본성과 강하고 싶은 욕망을 파헤친 파격적 소설이다. 결론은 이번에도 역시 마광수다운 소설이다.
이 책은 1992년 봄부터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라는 제목으로 <스포츠 조선>에 연재되어 오던 것들, 1997년 월간지 <길>에 연재한 후속편들을 묶은 것이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쓴 의도는 '가벼움의 미학', '솔직한 판타지의 구현'이라고 한다.
작가의 마무리 글에는 검열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고 외치고 있다. 개인적으로 지나친 검열도 문제지만 검열 없는 세상은 법이 없는 세상과 같다는 생각이다. 세상에 법이 없다면 선량한 사람들을 보호해 줄 막은 세상 어디에도 없지 않을까. 선량한 보통의 사람과 약한 이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법과 검열은 적절한 선에서 필요하다. 문제는 적절한 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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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는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표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신적인 성숙과 함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인식의 수준 또한 따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외설'과 '예술'의 차이를 알지 못하고 섣부른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같은 문장을 읽어도 받아들이는 방법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일까 <아라베스크>의 작가 마광수의 작품은 항상 '외설이다, 외설이 아니다'라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작품 스타일이 야하고 거리낌없이 직설적인 성적 표현을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중은 잣대를 가지고 창작품을 제재하지만 작가의 표현방식이 기존 작가와 다르고 사회에 반(反)하는 작가 스타일일 뿐이다.
이 소설 <아라베스크>는 이미 1990년대 작가의 또다른 소설 '즐거운 사라'가 소설로 나오기 얼마전부터 신문에 연재된 소설이라고 한다. '즐거운 사라'로 구속이 되자 <아라베스크>는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20여 년이 지나 다시 만난 <아라베스크>는 지금도 그 표현이 파격적이고 직설적이다. 외설과 예술의 모호한 경계를 잘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오해하기 쉽게 그려져 있다.
<아라베스크>라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헤라자드', '하렘' 등에 대해 남성들이 가지는 환상을 엿볼 수 있다. 연애에 대한 환상, 성에 대한 환상, 여자에 대한 환상이 모두 남자의 입장에서, 남자의 눈으로 보여진다. 물론 세헤라자드, 하렘 등은 남자들을 위한 배설욕구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 남자가 많은 여자들과 자유연애를 하며 현실적인 고민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꿈일까, 환상일까?
소설속 '나'는 작가인지 소설속 인물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는다. 작가의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소설속의 '나'가 만나는 여자들과 관계속에서 '나'는 남녀평등과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특권 의식도 없애야 한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 초반의 과한 성적표현과 단어들이 다소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아마 내용이나 전달하려는 메시지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거부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작가가 직접적으로 사용한 성적 '단어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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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안 왔는데 언제부터 내렸는지 암튼 밖에 비 엄청 내리고 있다. 문득 독서삼여(讀書三餘)라는 성어가 생각난다. 독서하기에 좋은 세 가지... 겨울, 밤, 비올 때를 일컬음이다. 비록 지금은 겨울이 아니고 벚꽃이 만개한 봄이지만, 역시 늦은 밤이고, 비가 내리니 독서하기에 그만인 것 같다. 실은 시간이 늦어 잠자리에 들려다가 잠이 안와서 억지로 잠들기 보다는 책을 보며 자연스럽게 잠드는 게 좋을 것 같아 책이 있는 방에 왔다.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마광수 교수의 신작 <아라베스크>였다. 읽어야지 하면서 지난 주부터 가방에 넣고 다니던 책이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책을 펼칠 짬이 나지 않아서 계속 들고만 다니다가 지난 주말에 제법 읽었던 것 같다. 그때도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읽으면서 스스르 잠들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참신하면서 재미난 책이다. 책의 표지에 보면, 이 책이 이러이러한 책이라는 암시를 해 주는 메세지가 있다. “상상력의 한계에 도전하라!” 처음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이 말의 의미를 전연 알 수 없었는데, 읽다보니, 정말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력이 놀랍기만 하였다. “나는 셰에라자드에게 황진이를 만나러 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셰에라자드는 처음엔 약간 질투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자기가 램프의 노예라는 사실을 시인하고 내 청을 들어주었다.……타임머신을 타고 개성에 도착한 순간 우선은 금세 실망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너무 작고 답답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나는 순간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느꼈다. 진이의 얼굴은 미녀 그 자체였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붉은 입술과 희디흰 피부가 사무치게 어울리고……
황진이 왈(曰): 어디서 온 뉘신지요? 마광수 왈(曰): 서울……아니 한양에서 온 마광수입네다. 황진이 왈(曰): 마씨는 양반이 아닌데요 마광수 왈(曰): 돈을 벌어서 벼슬을 샀시다.
마광수 교수, 대한민국에서 문학, 소설 서너 권쯤 읽었다는 사람치고 아마도 이 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한 때 <즐거운 사라>라는 작품으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분이 맞다. ‘별 헤는 밤’의 시인 윤동주, k팝의 멘토 박진영과 함께 연세대학교의 3대 명물로 손꼽히는 분이기도 하다. 남들이 말하기 참 꺼려하고 어려워하는 성에 대해서 거침이 없다. 그리고 문학과 성을 접목하는 그 능력이 기발하고 독특한데,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훌륭하고 뛰어나다. 글을 읽고 있으면서 참으로 솔깃하다. 마광수 교수의 이야기는 야하면서도 오히려 야하지 않은 듯 하고, 야하면서도 음란하지가 않다. 성에 대한 욕구는 사실 부끄러운 것이 아닌데, 동양의 유교적인 분위기 때문에 특히 동양의 문화권에서는 지금까지도 야한 것은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마광수 선생님은 옥고를 치르고 나서도 성 문학에 대한 집념을 거두지 않고 성도 하나의 문학으로 인식하고 부단히 성문학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그 정신은 참으로 존경스럽다. 그리고 숨김이 없는 솔직함 때문에 그의 작품이 대단히 좋게 느껴졌다. 오래 전 안타까운 사건의 여파로 인해 절판되었다가 다시 환골탈태하여 새롭게 출간된 <아라베스트> 이 책은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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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베스크 아라베스크는 몇 개의 단편이 결합하여 전체로서 정리된 분위기를 내는 옴니버스 구성의 장편 소설이다. 하지만 단순한 옴니버스식 구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등장하며 판타지 구성을 띈다. 작가 마광수는 일찍이 남다른 솔직함을 담은 작품을 쓰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의 충격은 가히 말로 다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작품 속에서 저속한 단어를 끊임없이 사용했지만 예술성을 잃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같다. 그는 chapter2의 '알라딘과 요술램프'에서 '열린 생각'을 가지고 본성에 충실한 '야한 마음'이야 말로 어른의 이분법적 사고가 적용되지 않는 '아이의 마음'과 같다고 말한다. '야한 마음'이야 말로 정신적 행복 따위가 아니라 진정한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 말한다. 이런 정신에 힘입어 그는 작품 속에서 자신의 성적 환상을 표현한다. 그는 부마가 되어 후궁들의 대접을 받기도 하고, 가슴이 크고 섹시한 여성들과 성관계를 갖기도 한다. 그 속에서 그는 자신의 패티시를 드러내는데, 10cm 길이의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긴 손톱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머리를 기를 수 있고, 네일아트를 할 수 있고, 몸을 아름답게 단장할 수 있는 여성을 부러워 한다. 그러면서 남성의 여성화 경향에 대해 이야기 하며, 여성해방론자들은 지금까지 여성들이 억압받아온 것만 주장하고, 남성이 받은 불이익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아라베스크의 특이한 점은 황홀한 판타지 세계를 보여주다가 갑자기 작가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 하거나 세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이런 구성은 소설 전체에서 풍기는 야한 느낌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작가의 생각을 바로 들을 수 있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작가와 대화하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들 중에는 우리의 삶을 동화 속 세상처럼 아름답게 포장하여 거부감 없이 작품을 받아들이게 하는 사람이 있고, 우리가 사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가가 있다. 마광수 작가는 후자에 속하는데, 이럴 경우 세상과의 마찰을 겪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검열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본인의 생각엔 마광수 작가의 작품을 담기엔 세상이 너무 좁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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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연세대를 다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다 안다는 마광수 작가(마선생님) 님이 책을 집필 하였다. 대략 그에 대해 설명하자면 상상의 끝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마광수선생님의 작품은 모두다 야하다. 그래서 인지 매니아 층도 많고 그의 상상력에 모두 웃음을 짓고 있다. 이번작품 역시 프롤로그 부터 끝까지 그의 담력과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 을 보여준다.
예전에 그가 이런 글을 썼을 때 감옥에 들어간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 교수님의 글을 다 찾아보았지만 그의 책이 불온서적이라고 하는데 왜 그러는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아무튼 이번책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장편의 소설이다. 책의 가격은 일반 타 소설가격과 대동소이 하며
그가 써내려간 글의 비해 터없이 적은 가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워낙 내용의 범위가 크고 넓기 때문에 스토리를 말하기엔 무리가 없지 않아 있지만 그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사라와도 만나고 아담과 이브도 만난다.
정말 그가 이런 삶을 살아 왔듯이 얘기하는것이 글을 읽을 때마다 나의 뇌를 자극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아무튼 이번 작품의 평이 매우 높기 떄문에 더 많은 매니아층과 독서애호가들을 현혹시킬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하늘과 땅이 질투할만한 그의 지적능력과 예술적 능력은 이 책을 통해서도 한참 부족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언제한번 만나서 차나 한잔하면서 그의 소설과 그의 인생관에 대해서 궁금한점들을 물어보고 얘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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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옴니버스 장편소설
있다는 점에서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형식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고, 보통은 신경쓰지 않고 넘어가는 책에 대한 소개나 특징을 좀 더 자세히 확인해 보았습니다. 새로운 형식에 당황하지 않기 위한 나름대로의 작은 노력이었는데요. 어찌보면 이 소설의 형식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이 저자분의 기존 작품의 연장선상에서 이 작품에 대해 접근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하시는 내용이나 글들을 보면, 보통의 혹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이 책이 이런 작가분의 특징을 잘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반감의 연장선상에서 이 책은 그다지 다를 것 없는, 저자분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중의 하나갈 될 것입니다. 이 저자분에 대한 팬심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이 책에 대한 작가분의 소개처럼 오랜 역사를 지녔고, 작가 스스로가 좀 더 나은 모습을 위해 정리하고 노력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새롭게 이 책을 통해 저자분의 작품의 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표현이 바로 <아라비안 나이트>와 같은 방식이라는 점일 것입니다.
작가의 전작을 보고 자신의 취향과는 맞지 않다고 느꼈던 분들이라면, 굳이 찾아서 볼 필요는 없을 정도 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을 보면 저자 분이 남성인 만큼 남성들의 환타지를 자극하고 있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여성분들의 시각에서 많이 불편해할 만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이 작가의 작품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검열이 필요할 만큼 외설적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이 아니라 수많은 이미지나 영상물을 통해 이미 외설이라는 수위를 넘어선 오늘날 인터넷이나 대중문화를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작가의 수준은 그냥 평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외설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읽는 시간이 그리 아깝지많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외설성이 아닌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을 이미 20년도 전에 해서 작품으로 남겨놓았다는 점에서 보면 이 책의 저자분이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닌듯 합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분의 특징을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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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야(野)한 소설가 마광수 님의 작품을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소설 [즐거운 사라]에 대한 이야기는 풍문으로 들었지만 제가 직접 읽은 게 아니기에 아무런 편견과 선입관 없이 마광수 님의 이 책을 제일 처음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어떤 글들을 쓰시고,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시는지 작가 님의 문학세계와 문체를 알아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성(性)적 아이콘으로 진면목을 보여주기 위해 옴니버스식 장편 소설로 출간 되었다고 하기에 어떤 식으로 성(性)적 이야기를 풀어가실지, 또 옴니버스식이라 하니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엮어서 보여주실지 읽기도 전에 호기심이 왕성해 집니다. 게다가 상상력의 한계가 없는 사람은 아닌지라 어떠한 표현들로 제 상상력의 한계를 넓혀주실지도 기대됩니다.
나름 다양한 작품들을 접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마광식 작가님의 작품은 저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좁은 우물 안에서 나름 책 좀 읽어봤다고, 다양한 스타일의 글과 작가들의 세계관을 접해보았다고 우쭐했었는지 가감없이 드러나게 해 준 작품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야함이란 무엇일까? 와 사전적인 의미에서 야하다가 천하게 아리땁다난 깊숙하지 못하고 되바라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되새기게 해 주었습니다. 거침없는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저자 님의 문체에 깜짝 깜짝 놀라면서도 괜히 혼자 낯 붉히면서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깜냥이 크지 않구나를 깨달으면 많이 반성했습니다. '외설'과 '예술'의 차이에 대한 제 판단이나 주관이 바로 서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작품을 '외설'이다 '예술'이다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직설적이다 못해 파격적이기까지 한 저자 님의 성적 표현에 저처럼 낯 붉히고 이렇게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대중들 앞에 선보여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도 분명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또한 저자 님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스타일로 글을 쓰시는 분들도 있구나 받아들인다면 제 부족한 깜냥이나 우물이 조금이나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제목 그대로 <아라베스크>, 아라비아풍의 묘사가 많아 한 편의 이슬람 영화를 본 기분이었습니다. 하늘하늘한 베일을 쓴 아리따운 이슬람 아가씨들의 묘사에 저마저도 홀린 듯 종이 위의 여인을 제 앞에 상상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사랑이나 연애에 대한 로망, 여자에 대한 로망 등 남자가 가지고 있는 성적 로망을 유감없이 보았습니다. 가끔은 정말 이런 여자를 꿈 꾼다 말이야? 하면서 취향의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진지하게 고민도 하고 이런 여자가 현실에 있다면 어느 남자가 마다할까 하며 이야기 속 남자로 빙의해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소설 속의 작가인 '나'는 저자 님인지 아니면 모든 로망의 남자들인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마무리 글에서 검열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저자 님의 말에서 이 정도에 깜짝 놀라면 안 되는구나, 저자의 안에는 더 크고 무한한 상상의 세계에 아직도 많이 존재하는 구나.하는 생각과 자신이 펼치고 싶은 생각과 표현은 마음껏 표현하지 못해 답답함이 느껴져 안타까웠습니다. 가끔은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보수적으로 답답하게 구는 이 나라가 저자님에게는 얼마나 큰 감옥처럼 느껴질지 범인인 저로서는 상상도 안 가네요. 저자 님이 꿈꾸는 세상을 살짝 엿 본 저로서는 그런 세상이 현실이 오면 어떻게 될까 막연히 상상해 봅니다.
천일야화, 아라비안나이트 식의 옴니버스를 좋아하는 저에게 한국판 마광식 아라비안나이트를 접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