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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라고 할 만한 것은 운명을 달리한 신임 선생님이 동문이라는 것뿐인데, 사고 100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슬픔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 오로지 같은 정부를 따르며 비슷한 학제를 밟아 크게 다르지 않은 21세기 한국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같은 언어로 사랑을 표현하고 즐거움을, 때로는 미움과 분노를 표현했다는 것만이 진도의 차가운 바다에서 울었을 이들과의 공통점이다. 내 슬픔이, 내 무기력함이, 내 분노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있었다. SNS를 가득 메우는 유명 뉴스 페이지들은 실시간으로 언론 보도와 '진실'을 표방하는 반대 의견을 내보내고 있는 한편, 지인들의 상당수는 사고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여행, 자신의 식사 등을 소재로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슬픈 건 나를 포함한 오지랖 넓은 몇 명 뿐인 것일까, 왜 저들은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답답했다.
그런데 전국민이 우울증에 빠져버렸다는 기사 제목을 보았다. 기사는 말하고 있었다. 나만 이렇게 슬픔에 젖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만 보아도 눈시울을 붉히고 해야 할 일, 하기로 했던 일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모두가 슬퍼할 필요는 없지만, 애도의 분위기를 맞춰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개인에게 슬픔을 강요하는 것도 동포애를 가장한 전체주의일 것이라는 것도 이해하므로 크게 마음 쓰진 않기로 했다. 내 지인들처럼 자기 생의 즐거움에 도취된 사람도 적지 않지만 함께 슬픔과 분노를 모아 기적을 바라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도 상당하다는 것을, 기사 하나로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루에도 몇 번을 생각한다. 이게 정말 일어난 일이 맞는지. 생각하면 무섭고, 생각하면 슬프고, 생각하면 화가 난다. 이제 무엇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믿을 것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이와중에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천사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표현할 수 없이 숭고한 선택이 짧은 순간 몇 차례나 일어났다. 대부분은 자신의 생을 바친 경우여서 아름다운만큼 안타깝지만 이들은 이 지옥같은 사고를 겪고도 우리가 믿고 살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죽게 하는 것도, 살게 하는 것도 모두 인간이라는 점은 오랜 아이러니다. 우리는 또 답습하게 되는 것 같다.
책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책을 읽기 전부터 책을 읽는 내내, 또 책을 읽은 후까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이런 생각들이었다. 도저히 영화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예매한 것을 취소하고 주말 약속도 거두었다. 그게 어제였고, 오늘은 그래도 힘을 내보아야지 하고 바람을 쐬면 나을까 싶어 공원엘 갔었다. 벤치에 누워 하늘을 보면서 나뭇잎 살랑이는 걸 보고 있었는데 하늘이 너무 맑았다. 그렇게 흐리더니 곱게 갠 하늘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다시 기운이 빠져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와 다시 책을 잡았다.
도정일 선생의 또다른 산문집인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는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보다 더 마음을 울렸다. 책과 이야기, 영화와 문화, 교육과 사회에 대해 더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가 펼쳐오고 있는 독서운동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고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와닿는 것은 오류의 반복이 일어나지 않게 시민이 깨어있어야 한다는 정치사회에 관한 호소문이었다. 96년에 기고한 글에서 도정일 선생이 했던 말이 거진 20년이 흐른 지금에도 가장 필요한 말일 수 있다는 것이 씁쓸하긴 하지만, 우리가 슬픔에 무너지지 않고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괴테의 어머니는 이야기를 통해 별들 사이에 길을 놓았다 한다. 우리는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을 슬픔에서 희망으로 우리만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이어가야 할 의무가 있다. 다시 20년 뒤에도 도정일 선생의 글에 통감하지 않았으면 한다.
괴테의 어머니는 어떤 정해진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려준 것이 아니다. 그녀는 아들의 예민한 반응에 적절히 반응하고 아들과 함께 이야기를 만든다. 반응은 이미 상상력의 참여이고 발휘다. 이야기 들려주기가 결코 일방통행이 아니라 '아들과 자기 사이의 특별한 사건'이라는 것을 괴테의 어머니는 잘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들이 반응하고 그 반응에 어머니가 반응함으로써 화자와 청자는 서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자극받는다. 이 자극은 이야기 지어내기를 즐거운 일이게 한다. 밤하늘의 별과 별 사이를 즐겁게 나는 상상력은 또 별과 인간을 잇고, 지상의 별들인 사람과 사람의 가슴 사이에, 사람과 개구리 사이에 길을 놓는다. 이야기는 단순 오락이 아니다. 그것은 상호 반응이며 길 놓기이고 연결하기다. 이 연결의 능력이 상상력이다. (19쪽) 개개의 시민들이 책을 읽는 목적과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책을 왜 읽는가" 혹은 "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일반론적 응답을 찾는 일은 별 의미가 없다. 책을 즐겨 읽는 사람들은 이미 그들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다. (98쪽) 독서 습관을 몸에 붙여보려는 사람,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로 고민하는 사람은 "나는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라는 질문부터 던져보는 것이 좋다. 독서행위는 그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면 선택해야 할 책들이 눈에 띄고 읽기가 계속되면 읽는 방법도 터득된다. (142쪽) 원칙상 '마지막 청산'이나 '마지막 재판'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것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는 결의와 희망을 가져야 한다. 오류의 반복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만 그 반복을 막을 수 있다는 것, 막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시민사회의 믿음이고 의무이다. 이것이 이번 공판의 세번째 의미이자 교훈이며 명령이다. (26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