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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인간 <실종자>를 읽고
프란츠 카프카의 세계관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빗대어 본다면, 독자는 작가 자신의 변종이라 할 만한 여러 명의 'K'를 만나게 될 것이다. 당연하게도 작품들 속 시공간은 다소 닮아 있지만 완벽하게 일치하진 않는다. 카프카의 '고독 삼부작'에 해당하는 소설 모두가 미완성작인 덕분에(?) K들의 결말이 열려 있는 셈이다. 『실종』, 『성』에 이어 마지막으로 읽은 <실종자>는 세 작품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쓰여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주인공 카를 로스만(이하 'K')의 나이도 가장 어리고 다른 K들에 비해 열정이 느껴지며, 그가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설정으로 공간적 배경도 모호하지 않다. 물론 저자는 (10대) K를 자기 의지와 무관한 상황에 내던짐으로써 소설의 문을 연다. 그러니까 집안의 (30대) 하녀(의 꾐에 빠졌다고 K는 주장한다)를 임신시켰다는 이유로 부모에 의해 쫓기듯 고향을 떠난 것이다. 미국 땅에 도착하기 직전, 선실 안의 그는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면서 말 그대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과거를 잊고 새로운 출발을 바랐을 테다. 독자도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번에야말로 주인공의 가슴 벅찬 성장 서사가 펼쳐지지 않을까 잠시 기대해보지만, 이윽고 K를 기다리는 현실이 결코 녹록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커다란 배에서 내리려던 찰나 애지중지하던 여행가방을 잃어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K는 우연(이라 쓰지만 작가는 부조리한 세계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필연이라 여겼으리라)의 연속이라는 무게에 짓눌려간다. 승진은커녕 억울하게 해고될 위기에 처한 화부(火夫)를 돕기 위해 한 목소리를 내는 그의 앞에 갑자기 미국 상원위원으로 살아가는 외삼촌이 나타난다. 그러나 기성세대이자 기득권층으로서 외삼촌이 정해놓은 규율을 어긴 탓에 상류사회로의 사다리를 걷어차버린 꼴이 되어 K의 장밋빛 미래는 한순간에 핏빛으로 물든다.
다시 쫓겨난 신세가 된 그는 또 다른 이민자 친구들과 불편한 동침을 계기로 걸으면 걸을수록 빠져드는 늪, 혹은 걸어도 걸어도 닿지 못하는 목적지를 향하는 방랑자의 길 위에 내몰린다. 밥을 사러 간 어느 호텔에서 밥을 벌 수 있는 엘리베이터 보이가 되지만, K의 계획과는 딴판으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도둑으로 몰려 그 일마저도 그만둘 수밖에 없다. 이민자 친구들과의 악연은 올가미처럼 그를 놓아주지 않고 그들이 사는 집에서 하인 노릇을 하게 될 처지에 빠뜨린다. 가까스로 감옥 같은 그곳에서 탈출한 K는 한 대형극장의 기계공으로 뽑히고,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기차에 몸과 마음을 싣고 일터로 향하면서 (저자는 의도하지 않았을) 열린 결말을 남긴 채 이야기를 끝맺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완성 작품을 완독한다는 게 어불성설 같기도 하나, 현재까지 전해지는 소설의 내용과 더불어 '실종자'라는 소설의 제목을 연결지어 곱씹어본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확립)하는 데에 직업(또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하여 이런 생각이 든다. 먼저 소설 속에서 K가 직간접적으로 겪은 여러 직업의 특성으로 어느 정도 주인공의 운명을 그려볼 수 있다. 선박 기관에 불을 때거나 조절하는 '화부'가 활활 태우고 재만 남긴 석탄과 K의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이 겹쳐진다. 높디높은 호텔의 고층에서 저층으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의 물성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K의 삶을 은유할 뿐 아니라, 엘리베이터 안팎의 손님들처럼 될 수도 있었던 과거를 회상하는 '보이(K)'의 모습이 지나간다. 도련님 대접을 받았던 고향에서 자신의 안일함과 부주의로 인해 하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K가 하마터면 타향에서 누군가의 '하인'이 될 뻔한 순간은 퍽 역설적이다. 대형극장에서 쳇바퀴 돌듯 일하다 영화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기계공'의 본분을 잊고 부속품으로 전락(轉落)하여 주체적인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K의 미래가 떠오른다. 다음으로 지금까지 살펴본 K의 행적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일련의 사건들이 그의 실족(失足), 즉 '발을 헛디딤'으로써 벌어진다. 새로운 사람들과 일로 맺어진 관계 속에서 실족은 ('잘못'이라는 뜻도 있기에) 곧 실직(失職)으로 이어지고, 이런 결과가 누적되면서 점점 그를 '실종자(失踪者)'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저자가 염두에 둔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적어도 미국에서의 생활만큼은 그 나름의 노력과 열정을 가지고 임했음에도 연거푸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든 K를 지켜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자그마하더라도 진득하게 머물 수 있는 일자리 하나를 얻기 위해 안감힘을 쓰지만 그의 곁에 진득하게 달라붙은 불안과 욕망은 쉽사리 떨쳐내기가 어려워 보인다. 당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첨병과 같은 역할을 한 미국이었지만, 소설 속 세계는 그다지 밝아보이지 않는다. 무수한 타인들과 그들이 이룬 사회가 K(와 개개인)에게 연신 '쓸모 있는 인간'이 되라고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다. 저자가 이런 사회를 비판하려는 의도를 담아 글을 썼으리라는 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자유의 상징과도 같은 나라에서 오히려 차별과 억압을 받은 K가 어쩐지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처럼 다가온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도 변했건만 여전히 한 세기 전의 풍경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나 역시 K의 이명(異名)을 쓰고 K의 이종(異種)과 다름 없는 삶을 살고 있어서가 아닐까. "이 시대를 사는 수많은 K들이여, 이제라도 제 이름과 모습을 찾는 삶을 살아야하지 않겠는가!"라고 외치는 카프카의 모습을 상상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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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범우사비평판 실종자를 구입하여 1장 화부에서 중도포기를 하였고 몇 번이나 독서를 시도하다 포기하였는데 돌이켜보면 그 당시는 이 작품을 읽으며 첫장에서부터 울화통이 치밀었든가, 답답한 마음이 지배했었던 같다. 이번 새로운 번역으로 다시 출간되어 나온다니 기대반 염려반의 마음으로 첫장을 읽어 나갔고 무사히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카프카 특유의 몽환적인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는데도 전체적으로 유머 러스하며 밝고 활기찬 느낌을 받았다. 장소만 아메리카일 뿐이지 카프카만의 옥죄는 듯 답답하 고 현실을 비트는 비현실감이 들게 만든다. 이야기의 구조상 종결이 있을 수 없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듯 <성>과 <소송>이 그렇듯 완결짓지 못하고 흐름이 갑자기 끊기고 단락지는 듯한 에피소드가 점점히 흩어지다가 미완이 그 치고 마는데 아쉽지만 그것만으로 훌륭한 작품이니 별 불만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