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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막 돌아온 듯한 혹은 막 떠날 듯한 느낌의 쓸쓸함이 묻어난다. <이책은> 서평단 모집 당첨 도서. <저자는>
<책내용 맛보기>
<책읽은 소감> '기다림'이라는 제목이 끌렸고 저자가 하진임을 알았던 게 몇 년 전이었다. 그렇게 하진을 알게 되었고 중국소설을 한 두 권씩 접하며 우리네 정서와 많이도 닮았고 비슷하구나...기다림을 통해 내가 접한 저자는 글이 순했다. 서정적이면서 수필 같은 느낌을 담아내는데 거칠지도 않고 격정적이지도 않은 조금은 밍밍한 느낌이라 여겨질 수도 있었다. 자유로운 삶을 대하며 맞어 이런 느낌이었어. 일상적인 이야기를 소소하게 풀어내면서 그게 우리네 삶에서도 능히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 다른게 있다면 이민자의 입장에서의 불안한 미래와 당장의 생계와 관련된 삶이 좀더 다급하게 다가왔다는 것.
제목이 시사하는 바대로 난 우는 평생을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일찌기 자신이 짝사랑했던 여인 베이나를 잊었다 생각하지만 무의식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 꿈에서 자주 나타나 아내 핑핑이 알게 되고 매우 미안하다. 아내 핑핑은 소중한 아들 타오타오를 낳아준 더 소중한 사람이다. 한 눈에 반하거나 첫 눈에 반하는 사랑이 베이나였다면 살면서 사는 동안에 두고두고 감사하고 이 사람과 살길 잘했다 싶은 사람이 핑핑이다. 베이나에게 보란 듯이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서 차인 난.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을 경제적으로나 시간을 들여 사랑했지만 실연을 당한 핑핑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결혼을 한다.
난에게 핑핑이 베이나처럼 마음에 들어오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핑핑은 난을 무척 사랑했다. 매우 존경했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상처를 받게 마련이라고 난이 베이나에게 상처를 받았던 것과는 다르지만 핑핑은 난을 오롯이 가질 수 없다는데 슬픔을 느낀다. 그렇다해도 자신이 더 사랑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헌신하지만 잠자리에서만큼은 왠지 자신이 창부같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치욕스럽기만 하다. 난이 베이나를 생각하면서 자신을 안는다는 생각때문이다.
텐안먼 사태를 지켜보며 난은 핑핑과 타오타오를 둘다 데려오려했으나 중국이 태클을 걸었다. 어린 타오타오를 떼어놓고 지내는 시간은 둘다에게 힘든 시간들. 우여곡절끝에 둘은 타오타오를 미국에서 만나는데 부자지간이지만 서먹하기만 하다. 모자는 그럴 수 없이 친한데 난이 미국에 먼저 있었기에 친할 시간이 짧아서다. 난으로 말할 것 같으면 유년시절에 아버지에게서 칭찬은 고사하고 주눅 들어 살았다. 그래선지 신사적이고 사려 깊으며 매우 점잖은 사람으로 남들이 보건만 막상 자신은 형편없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핑핑은 그런 난을 현명하게 내조한다. 상당한 미모의 핑핑은 학식도 있어서 타오타오를 직접 가르치기도 한다.
이민자로서의 미국내 시민으로 살기 위한 그들의 출발은 그래도 순조로웠다. 부자인 미망인의 집에 세 가족이 함께 더부살이처럼 집안일을 봐주며 관리도 해주고 알뜰하게 저축도 했다. 머물기만 할 수는 삶에서 그들은 먼 곳으로 이사를 가고 그 곳에 정착해 식당을 오픈한다. 난이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던 중 자신이 잘할 수 있는게 요리임을 알았고 그걸 알아본 주방장이 많은 요리를 알게 해줬다. 지식인층이었던 난이 소시민이면서 가장의 충실한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핑핑도 요리사의 아내로서도 손색이 없는데 그 와중에 그네는 조건검색에 맞는 집까지 장만하게 된다. 비록 빚을 안고서지만 무려 5년만에 내집을 갖게 된 난과 핑핑. 그들은 자신들의 앞날을 늘 불안해했는데 그건 의료보험이 없다는 사실.
이민자면서 빚을 진 상태로 조건부계약이지만 5년 만에 집을 장만했다는 사실은 대단한 쾌거이면서 부러움 그 자체다. 더구나 연못이 있고 멋진 자연이 함께 하면서 생업인 식당과도 가까운 곳. 사랑하는 아들 타오타오의 교육에도 도움이 되는 곳. 이런 소망이 이루어지자 난은 허탈감에 빠진다. 늘 자신이 갈망하는 시를 쓰고 싶다는 소망이 물밀듯 밀려오나 그건 마음 안에서만 늘 용솟음칠뿐. 시상을 길어올릴 일상도 아니고. 그건 쓰지 못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그를 내리누르기만 한다. 몇몇인 친구들과의 모임에 가끔은 참석하지만 실망만을 안고 오기가 일쑤요 자신은 시를 쓴다는 말을 섣불리 꺼내지 못하는데 그게 또 한심스럽다.
중국은 어머니이고, 미국은 그가 사랑하는 여자라고 생각해보았다. 이런 상투적인 비유는 이전에도 분명 누군가 사용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의 감정을 헤아리는 데 도움을 줬다. 성인으로서 그는 어머니와 영원히 살 수는 없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한테 가야 했다. 어머니와 사랑하는 여자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다 해도, 그가 어머니를 욕하거나 때리지 않을 건 분명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 살더라도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2권241페이지
난에게 조국 중국이 어머니라면 현재의 삶을 영위하는 미국은 시민권자로서 사랑하는 여자라 위무해야만 하는 마음 상태를 엿볼 수 있다. 중국이 자신에게 복장 터지게 한 것들, 그럼에도 조국이기에 무시하고 싶지만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모습 등등. 미국 시민권자로 살아나가며 자신 부부와 아이를 위한 미래 설계 등등이 섬세한 감정을 가진 난은 딜레마였다. 뜨거운 감자로 영위하는 삶은 비교적 안정된 행복을 줬고, 그렇게 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첫사랑을 몰래 대면해가면서까지 시상을 떠올리고 시심을 길어올리려했던 난. 산산조각이 나는 경험을 통해 핑핑이 얼마나 소중한 여자이자 아내인지를 뼛속깊이 깨달은 난은 드뎌 '시'를 쓰기에 이른다.
이민 세대의 실상을 다룬 책은 이창래의 생존자로 만나본 경험이 있다. 낯설고 물설은 타향에서 겪어내고 감내해야는 삶은 얼마나 서러운지. 고통인지. 고매한 학자가 될 거라 여긴 핑핑의 예상치를 빗나간 난이었지만 마음에선 늘 분출이 용솟음쳤음이라. 자신을 토해낼 그 무엇이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일자리를 전전하다가, 자신과도 잘 맞는 요리를 배우게 되고...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맛을 아는 사람이고, 맛을 안다는 건 그만큼 섬세한 감정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요리를 해도 난은 새로운 요리처럼 접목을 시키는 능력이 있었다는. 친절함에다 원재료를 정직하게 사용하고...그러자니 자연 식당이 잘될 밖에...죽을만치 노력한 시간들 속에서 이룬 시민권자가 되는 길. 그건 자신을 분출시키는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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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이민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떠나서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말이 통하지 않아 힘들 것이고, 내 나라가 아닌 타국에서 느끼는 그 외로움을 어떻게 견딜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단절된 삶을 살아야 한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어떤가. 의료보험에 대한 것도 그렇고, 여러 면에서 힘든 생활일 수 밖에 없다. 외국에 유학 가 있는 한국 청년들이 그곳의 직장에서 자리잡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는 이들이 많다고 하는데, 이것만 봐도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다.
중국 출신 작가 하진은 이민 1세대인 난 우의 삶을 소설로 펴냈다. 자비 출판한 시집 한 권을 받고, 작은 식당 주인이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단조롭고 고된 일을 하면서도 시를 써왔다는 사실에 감동하여 이 소설을 썼다 했다. 이민생활의 물질적인 측면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차원을 다루고 싶었다는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이민자로서 느껴야 하는 자신의 경험들도 담았을 것이다.
난 우는 미국 대학원에서 공부하던중 중국 정부가 민간인들을 몰살하는 텐안먼 사태를 목격하고, 미국에 남기로 했다. 그는 미국에서 아내 핑핑과 아들 타오타오를 데려오기 위해 돈을 저축했고, 드디어 아들의 여권과 비자까지 발급 되었다. 이 년 만에 만난 가족은 미국의 한 가정의 다락방에서 집안 일을 해주며 열심히 저축했다.
아들과 재회했지만 난은 아직도 첫사랑 베이나를 잊지 못해 먹먹해 하고 있었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아내 핑핑 또한 그가 자신들을 두고 떠날까봐 늘 불안했다. 결혼생활이나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지만, 아들이 미국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만큼은 부모와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랬다. 난은 아이를 위해서 희생할 준비가 되었다.
고향에서 그들의 세대를 대표하는 존재였던 대학 졸업생들이 그랬다. 이곳에 온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들은 그처럼 격렬한 변화에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이 전에 누렸던 특권적인 삶이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리는 데 필요한 활력과 정력을 박탈해버렸다. (1권, 225페이지)
난, 당신은 더 대담해져야 해요. 다른 언어로 시를 쓸 수 없다는 '벙크'는 그만둬요.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더 열심히 노력하면 되죠. 그러면 당신은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거예요. 독창적이 되는 거죠. (1권, 413페이지)
가족을 위해 힘든 일을 하는 와중에도 난은 시를 놓지 않았다. 잠자기 전에 시선집을 읽었고, 시를 쓰고 싶은 목마름이 있었다. 그에게 시의 세계는 상대적으로 순수해야 했다. 진정한 시인들은 정열적이지만 초연한 자유로운 정신을 갖고 있어야 했다. (1권, 479페이지) 난의 시에 대한 생각을 엿볼수 있는 글이다. 아내 핑핑과 타오타오를 위해 식당을 구입하고, 빚을 지고 집을 사 하루종일 음식을 만드는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난은 딕 해리슨을 친구로 둬 시에 대한 그의 관심이 더욱 강렬해졌고, 딕의 초대로 유명한 시인의 낭독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는 영적교감을 나눌수 있는 뮤즈가 있게 마련이다. 시에 대한 목마름으로 시를 쓰고 싶었지만, 난의 마음처럼 시가 잘 써지지 않자, 음악을 만드는 사람에게 뮤즈가 필요하듯, 자신에게도 첫사랑 베이나를 만나고 오면 시가 잘 써질 것 같았다. 연애시절에 아무리 예뻤던 사람이더라도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신이 좇고 있는건 환상이었음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난에게 첫사랑 베이나도 그랬다. 욕심많고 난을 미국으로 오는 도구처럼 이용했었다는 걸 알게 된 난은 씁쓸했다. 오래도록 첫사랑에 대한 먹먹함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첫사랑의 맨얼굴을 바라보고 나서는 자신의 가족인 핑핑과 타오타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먹고 살아야 하는 고된 삶 속에서도 시를 쓰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은 난 우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모습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삶이 힘들다고 꿈을 미리부터 포기하지 않았는지. 먹고 사는게 너무 힘들다고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을 저만치 밀어놓지는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사람에겐 꿈을 잃지 않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 책을 읽고 다시 깨달았다. 우리가 꾸고 있는 꿈, 그 꿈을 향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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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열기도 전에 설레었다. 책의 표지엔 꾸려진 여행 가방이 열려진 문 앞에 놓여있다. 이 책은 나를 어떤 곳으로 데려갈까. ‘자유’, 가슴이 두근거린다. ‘자유’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 그럼, 자유롭다는 것은? 문득 수영장이 떠올랐다. 물속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수영을 해야 한다.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물을 자신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두렵지 않다. 두려움이 없어야 자유롭게 뜰 수 있고, 깊이 잠수할 수도 있고, 물을 들여다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물 속의 자유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에 기대어 사는 환경에 태어나 물에서 보내는 것이 일상이 아닌 다음에야 인간은 물에 대한 적응 연습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에겐 상당한 노력 후에나 얻어지는 자유, 특히 나같이 물이 무서운 사람에겐 결코 만만하지 않은 자유다. 하진의 <자유로운 삶>은 자유의 상징, 미국에 온 중국인의 생활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난우’는 미국에서 대학교 석사과정을 마친 유학생이다. 그는 미국에서 학위를 따고 중국으로 돌아가 대학 강단에 서는 꿈을 가진 중국인이다. 그러나 중국의 톈안먼 사태를 목격한 이후 가족과 함께 미국에 남기로 결심한다. 자유의 땅 미국! 하지만 ‘난’은 그곳에서 자신이 얼마나 이방인 인가를 깨닫게 되고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한 길고 긴 여정의 길을 걷게 된다. ‘난’이 부딪히고 힘들게 겪는 것들은, 그 곳 원주민에겐 아주 사소한 것들.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영어를 완벽하게 익히기 위해 영어사전을 포켓에 넣어 다니지만 종종 알아먹지 못할 언어로 곤란을 겪고, 법률적인 것은 도움을 받아야 했다. 중국인인 ‘난’이 중국인으로서 써왔던 언어, 지식, 경험은 새롭게 주어진 미국 땅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다시피 한다. 그래서 좌절도 했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고 가족과 함께 미국에 정착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해 나간다. 1,2권에 걸친 <자유로운 삶>은 ‘난’의 12년간의 미국 정착기다. 그리고 작가 ‘하진’의 힘은 세밀함에 있다. 1000장이 넘는 소설에는 주인공 ‘난’ 외에 여러 명의 중국인과 미국인이 등장한다. 그 등장 인물들의 성공담과 실패담도 자세하게 그려진다. 물론 그들의 성공과 실패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라 아니라, 주인공 ‘난’이 조국이 아닌 미국에서 자유롭게 되기까지의 사고방식,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철학, 사랑에 대한 정의를 그들의 사고방식과 비교하기 위해서였다고 보여진다. ‘난’의 철학이 곧 작가 ‘하진’의 철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난’은 책임을 다한다. 소설의 큰 흐름 중 하나는 아내 ‘핑핑’과의 관계이다. ‘난’이 첫사랑 실패 후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 상대가 ‘핑핑’이다. ‘난’은 첫사랑 ‘베이나 수’를 늘 마음에 그리면서 결혼 생활을 한다. ‘난’의 마음에 들어있는 첫사랑 때문에 ‘핑핑’은 늘 불안하다. 그런 가운데, ‘난’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꿈을 뒤로 미루고 온갖 일을 거친 후 비로소 식당을 개업하고 요리사로 정착한다. ‘난’은 자신이 처한 위치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줄 안다. 글 속에서, 일부의 다른 중국 이민자들은 자신이 살겠다고 선택한 미국에 맞추어 적응하려하지 않고 미국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만 가지려하거나, 차별에 대한 반발로 감정에만 치우친 ‘애국’을 떠들며 중국식으로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난’은 냉철한 양립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난’은 시인이 되고 싶어 하지만 시를 쓰는 것은 순수한 창작활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예술을 통해 부를 이루는 것에 타협하지 않는다. ‘난’은 살아가면서 부딪혀 오는 고난에 대응하고 적응하고 개선할 줄 아는, 어른다운 어른이다. 그는 결국 자신의 곁에서 단단히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아내 ‘핑핑’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인물인가를 깨닫는다.
*** 나는 개인적으로 또 다른 주인공 ‘핑핑’이 좋다.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 가는 가족이라는 우주에 흔들림이 없다. 남편이 흔들리고 있어도 자신의 방식으로 남편을 사랑한다. 남편 ‘난’이 생계를 책임 졌다고 하지만 ‘핑핑’도 그저 삶에 숟가락만 얹고 살아간 것은 아니다. 미국식 교육을 받아야 하는 아들과 생계의 무거운 짐 때문에 다른 것을 돌아볼 수 없는 ‘난’사이에서 아들의 공부를 도우고 식당일을 도왔다. ‘난’이 시에 대한 열망 때문에 식당을 비울 일이 생길 때에도 ‘난’의 열망을 격려하고 기꺼이 그녀의 어깨에 얹히는 짐을 떠안아 결국 ‘난’이 시인이 될 수 있도록 도운다. 긴 책을 끝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도 이민자였다. <자유로운 삶>은 그만큼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작가 ‘하진’은 장황하게, 직접적이고 설명조로 이민의 어려움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주인공 ‘난’과 친구들의 생활을 소재로 그들의 대화 또는 사건을 통해 이민자의 어려움을 그린다. 이야기는 잔잔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타인의 생활을 엿보는 재미로 책을 잡으면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보면서 생각해본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라는 파도가 닥쳐온다면 나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파도를 넘어 갈까. 부모를 통해 부여 받은 조국 대한민국, 언어, 피부 색깔, 자연환경에 대한 적응력... 그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롭게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 이런 나에게 새로운 세계가 주어진다면 나는 과연 어떤 자세로 새로움에 대응을 하게 될까.
<자유로운 삶>은, 아니 작가 하진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원주민들이여! 니가 가진 것은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이지 위대한 것이 아니니, 이민자들에 대한 이해를 넓혀라. 네가 가진 것이 자랑이 아니듯이 이민자들의 부적응 또한 굴욕이 아니다. 너 또한 다른 곳에선 이민자와 같나니, 그 때는 너의 자랑이 곧 굴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민자들이여! 새로운 세계에선 고국에서 가져온 가치를 버려라.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새롭게 하나하나 배워 나가라. 나의 잣대로 새로운 세계를 저울질 하지 말고 새로운 세계의 저울에 나의 가치를 계량하려 하지 말라. 그리고, 조국과 이민국을 있는 그대로 두고 보라. 둘은 내가 살고 있고, 인류가 살고 있어서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는 곳이니. 책의 에필로그에 시인이 된 ‘난’의 시 옮긴다.
‘찬사’ 그래, 칭찬이라-그런 사람을 생각해보자. 고통 속에 있음에도 아직도 행복을 자신의 타고난 권리로 생각하는 사람. 장갑을 어디 뒀는지 헛되어 찾다가 손이 없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 자기 자신을 쳐다보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신들한테 인상을 찌푸리지 않는 사람. 시합에 졌지만, 자기를 방금 이긴 사람에게 인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번잡한 거리에서도, 먼 언덕에 있는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는 사람. 많은 사람들과 섞일 수 있어도 그들의 소란스러움에 당황하지 않는 사람. 나라를 사랑하지만 그것이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사랑을 압도하지 못하는 사람. 재앙과 승리를 똑같이 받아들이고 어느 쪽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 리무진을 운송 수단으로 생각하고 궁전을 거주지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 고관과 같이 커피를 마시면서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문밖으로 나가는 걸 머뭇거리지 않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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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나라에서 자기 나라 말로 글을 쓰는 것만도 행운이다. 태어난 나라를 떠나 익숙하지 않은 말을 하고 글을 써야 한다면 아주 답답하겠지. 그것도 글이 쓰고 싶어야 하는 거겠지만. 무엇인가 쓰고 싶다는 것도 꿈이라 할 수 있겠지. 그것을 놓지 않고 오래 잡고 있기도 어렵겠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라면. 꿈보다 먼저 살아가야 하니까. 살다보면 꿈은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그것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 소설을 쓴 하 진도 그렇다고 한다. 소설에 나온 난 우보다 하 진이 잘됐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하기까지 쉽지 않았겠지만. 하 진 소설은 이번이 두번째다. 꽤 예전에 다른 소설을 보았는데, 그게 어땠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새로 알게 된 것도 하나 있다. 이름이다. 하 진에서 성은 진이라는 거다. 중국식으로 하면 진하(金哈)다. 소설에 나오는 난 우도 우가 성이고 난이 이름이다. 영어로 글을 써서 이렇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하나 의문스러운 게 있다. 미국에서 산다 해도 바로 바뀔 수 있을까 하는. 중국에 사는 사람한테 편지를 쓸 때도 이름을 영어식으로 썼다. 중국사람끼리 만날 때도 그랬다. 어쩌면 정말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지만. 괜한 것으로 트집 잡는구나. 하 진은 중국사람인가 미국사람인가. 이런 생각은 하 진 자신이 더 많이 했을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이민 1세대도. 책을 보면서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것을 생각하고 쓰니 그 느낌에 좀더 가까워지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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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가 어느 식당에서 이민자를 만났는데 그에게서 자작한 시집을 한 권을 선물 받았다. 그것이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물질적으로 어려운 이민 생활을 하면서 고귀한 정신세계를 잃지 않고 펼쳐나간 것이 큰 감동이 되었다 . 그래서 그것을 소재로 소설로 옮겨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민자들의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한 관계로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자료 조사와 경험이 바탕이 되어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한다. 이민자들의 세계를 다루는 글에 물질적인 요소들이 많이 언급되지만, 이처럼 정신적인 분야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드물지 않나 생각해 보면서 내용의 가치를 생각해 본다. 책은 근대 중국의 사회적 현실을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 조금 전개된다. 나라를 떠나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을까봐 제약을 가하는 현실을 보면서, 공산주의가 가진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또 그들의 세뇌 교육이 미치는 영향들도 알게 한다. 북한을 중국과 같은 이념의 나라로 둔 우리들에겐 시사되는 매우 바가 크다. 중국에서 탈출하다시피 한 어린 아이가 부모 있는 머물고 있는 미국으로 와서도 그곳에서 인식된 학습으로 인해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또 중국에서 일어난 자유운동에 대해서도 일반인들과 다르게 중국 정부를 옹호하는 생각을 하다. 폐쇄된 공간에서 이루어진 교육이 얼마나 가치를 전도하고, 무서운 집착을 가지게 만드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나중에 남북의 문이 열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더라도 그들의 교육으로 인한 고착된 사고 때문에 융합되기가 상당히 어려운 현실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해보게 한다. 주인공 난은 중국계로서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핑핑과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고 아이 하나를 둔다. 아내 핑핑이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아이는 중국에 남는다. 그녀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방지하는 의미에서 정부당국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글의 처음에는 그 아이를 미국으로 빼돌리려고 노력하는 과정, 그리고 혼자 비행기를 타고 부모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오는 일이 그려진다. 그 상황 속에서 어린 아이가 혼자 비행기를 타는데 대한 부모들의 걱정이 가득하게 나타나고, 아이를 만날 때까지 불안감이 잘 그려진다. 아마 모든 부모의 마음이리라. 또 6살짜리 차오차오가 미국으로 건너왔을 때, 그에게 미국에 대해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심어 나간다. 중국에 대한 실상을 일깨워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단지 향수 때문에 부모를 애태우는 상황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 후 부모로서 그가 미국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나가는데 온힘을 다한다. 하이디란 사람의 집에서 살게 되고, 적응해 나가는 단계를 거쳐 가면서 영육 간에 어려운 삶의 모습을 그린다. 주인집과의 갈등도 물질적 궁핍도, 중국에 대한 심리적 이탈도, 정신적 성취에 대한 괴리감도 그려진다. 타국에서 가족을 데리고 살아가는 총체적인 문제가 노출되며 갈등이 표현된다. 경제적인 것을 위해서는 온갖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가족 모두가 함께 나서 생활 전선에 나서게 된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주인공 난은 정신적인 공허를 느낀다. 그래서 시 쓰기를 지극히 원한다.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언어로 옮기기도 하고, 그것을 갈무리하면서 삶의 목적처럼 생각한다. 이런 와중에 그는 중국 정부에서는 국외에 있는 지식인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혀, 그와 가까이하면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주변의 친구들이 외면하는 상황까지 간다. 가까운 지인도 모두 잃어버리고 고립되어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힘이 드는 삶 속에서 아이라도 자유로운 세상에 살기를 원하는 마음이 강하게 나타나게 되고, 그것이 살아가는 삶의 이유가 된다. 이민자의 삶이 무척이나 힘이 든다는 느낌을 준다.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의치처가 없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특히 주인공 같이 귀국할 수 없이 이민자가 된 사람들은 더하다. 그는 국가에 저해가 되는 ‘납치 계획’에 연루가 되어 여권도 취소당하고 결국 나라가 없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하여 이국땅에서 영육 간에 거처를 잃은 사람이 되고, 이민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의 미국에서의 삶은 초창기 매우 궁핍하게 전개된다. 그 처음의 기억들이 너무 힘이 들었기에 국가에 대한, 자유에 대한 그의 생각은 바로 그의 정신을 관통하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제목처럼 아이가 자유롭게 살기를 갈구하게 되고 그것을 위해 그들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난은 어려운 삶을 타개하기 위해 가족들을 보스턴에 두고 혼자 뉴욕으로 간다. 그곳에서 새로 만들어진 중국계 문예지인 ‘신시행’이란 잡지의 발행인이 된다. 그러나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취직자리를 구하게 되고 주방에 취직을 한다. 그 일이 앞으로의 그들 가정에 중요한 기회가 된다. 음식 기술을 배우게 되고, 시와 관련된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그는 음식점에서 직급이 올라가면서 보스턴에 있는 가족과 연락을 하는 생활을 하게 되고, 주인집 때문에 결국 그 집을 나와야 하게 되어 다시 보스턴에 오게 된다. 그리고 기회에 식당을 하나 경영해 볼까 생각을 하게 된다. 도시에서는 가격이 비싸 어렵게 생각하고 광고를 보다가 조지아에 있는 중국집이 싸게 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구입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그들의 삶은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 그는 보스턴에서 ‘신시행’의 같은 편집자인 바오와 , 시인이었던 류선생 등에게 긍정적,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들은 조지아에 있는 금궈 식당에 내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삶이 이루어져 간다.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그려지고, 차츰 경제적으로 기반을 잡아 나간다. 또 옆에 살고 있는 장신구 가게의 재닛이란 사람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한다. 재닛은 그들 삶의 이웃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곳에 어느 날 그 지역에서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국인 남녀가 찾아온다. 그리고 중국에서 난 홍수에 기부금을 내어달라고 한다. 그는 중국이 자신에게 해준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지금도 일고의 가치가 없는 곳이다란 생각을 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미국 속에 있으면서도 중국인들과 같이 생활해 나가고 중국이 그를 항상 따라다닌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리고 어쩔 수가 없이 중국인으로 태어났음을 인식하고 살아야함을 깨닫는다. 아틀랜타의 봄은 이 가족들에겐 고통이었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계절이 지나면서 조금씩 적응해 나간다. 아이는 더욱 잘 적응해 나가고 어른들보다는 그 사회에 빨리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간들의 적응력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집의 형제 중 캐나다로 이민 간 동생이 있다. 초등 저학년, 고학년 아이 둘을 데리고 이민을 갔는데, 지금은 그들도 성인이 되었다. 그런데 저학년은 그곳에서 너무 잘 적응해 생각도 미국식 사고로 변해 있다. 고학년은 한국에서 생활한 기억들이 많기에 적응해 나가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그런 모양이다. 문화도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다른 문화를 심어나가는 것은 쉽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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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 작가의 작품은 <기다림>으로 처음 만났었다. 당시에 김연수 소설가의 번역이라서 읽게 되었는데, 간결하고 단순한 문장 속의 절제미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멋진 추락>도 읽었는데, 무엇보다 하진의 매력은 '정확한 문장'에 있는 것 같다. 작가가 먼저 중국어로 생각한 다음에 정확한 영어 단어로 문장을 써서 애매한 구석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정확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속에 인생이 있고, 세상이 있고, 삶이 펼쳐지는 진짜 사람냄새 나는 작품이었다. 실제로 스무 차례 이상 교정을 하며 가장 적확한 표현을 찾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하진은 영어가 외국어임에도 불구하고 되레 단순하면서 시적이고 아름다운, 그야말로 정련된 문장으로 유명하다. 모국어로 썼으면 훨씬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영어로 글을 쓰는 모험을 강행했던 작가의 이력처럼 그런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도전이 이민 1세대 작가들의 문학적 특징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작품 속에 자연스레 삶의 무게가 담기는 게 아닐까 싶고 말이다. 그렇게 단순하고 서술적인 문장, 평범하고 간결한 문장들로 오로지 서사에 충실한 것이 그의 작품에서 가장 특징인데, 이번 신작 <자유로운 삶>은 그 정점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총 두 권의 분량이 천 페이지가 넘는데, 그 대부분이 하루를 견뎌내는 난우의 일상이 전부이니 말이다. 어떤 과장이나 스릴, 반전 따위는 전혀 없다. 그저 외로운 한 남자의 고군분투하는 삶이 펼쳐질 뿐이다.
여권을 갱신하는 사소한 일로조차 엄청난 장애에 부닥쳐야 하는 중국인으로 태어났다는 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당신이 중국인이라면, 하찮은 관리마저 당신을 괴롭히고 삶을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어디를 가든, 권력자는 복종을 요구했다. 그는 자신이 미국인이라면 싶었다.
작가가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22년 전 미국 시인 친구와 작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는 홍콩에서 온 이민자인 작은 식당 주인이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단조롭고 고된 일을 하면서도 시를 써왔다는 사실에 감동해,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탄생한 이 작품은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희생하고 모험을 감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찬사라고 한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지불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 말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마땅히 대가를 치뤄야 한다. 주인공 난우는 너무도 쉽게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난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알 수 없는, 이민은 커녕 한 번도 타지에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절대 추측해볼 수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미국에 유학 온 중국인인 난우는 텐안먼 사태를 목격한 이후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아내 핑핑과 아들 타오타오까지 미국으로 건너오게 한다. 조국과는 전혀 다른 환경의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고 싶었던 그에게, 미국에서의 삶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결국 그는 대학원 과정을 그만두고, 야간 경비원부터 버스 보이, 요리사 등으로 밤낮없이 일해 가족을 부양해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그의 오랜 꿈도 현실에서는 그저 환상, 사치에 불과하다.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고 고되어 뭔가를 쓰는 것은 고사하고, 뭘 생각할 힘도 없었으니까. 이렇듯 이민 1세대의 삶은 매 순간이 전쟁 같을 수밖에 없다. 조국에 다시 돌아갈 수는 없고, 타국의 언어를 써야 하고, 자유롭지만 외국인에게 그다지 공평하지 않은 여러 상황들을 견뎌야 하고 말이다. 그가 꿈도 사랑도 포기하고 매일 십 수 시간의 단조롭고 고된 노동을 이어가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식만큼은 부모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 꿈과 희망은 모두 포기하고 매일을 전쟁처럼 살아야 하는 그들의 버팀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는 건 왜일까. 가끔은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펜을 잡을 때마다 정신이 멍해졌다. 침울함이 아직도 몸에 배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머지않아 이 혼수상태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는 걸 알았다. 어떤 운명이 그를 기다리든, 맞서 싸워야 했다. 시를 다시 써야 했다. 이제 그가 영어로만 써야 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그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우유부단한 상태로 있었다. 그는 급격한 변화에 위축당해 있었다. 사실을 깨닫자, 그는 더욱 자신이 혐오스러워졌다. 그러나 아직은 온 마음을 바쳐 다시 시작할 정도로 동기 부여가 안 된 상태였다. 요즘, 그는 글을 쓰는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사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지리멸렬한 일상은, 어떤 날은 그저 견뎌내거나 또 어떤 날은 그저 흘려보내기도 하거나 별 의미 없는 하루들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하루들이 모여서 몇 년이라는 시간이 되면 어느 순간 내 인생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극중 난우가 그의 염원인 시인으로 결국 성공했는지, 혹은 실패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삶의 무게를 감당키 어려워 꿈을 접어놓고, 포기하고, 던져버리곤 한다. 꿈을 향해 전력을 다하고 싶어도 인생이란 좀처럼 여유를 내주지 않으니 말이다. 굳은 결심을 하더라도 고통과 좌절 속에 기어이 그 꿈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놓지 않으려는 이들에 대한 희망이 바로 이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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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안먼 사건’이라는 정치적 소용돌이가 중국 개인들에게 미친 영향이『자유로운 삶』의 배경이다. ‘텐안먼 사건’이 아니었더라면 난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가 학자로서 살던가, 미국에서 사는 쪽을 선택했더라도 교수나 학자의 삶을 살면서 경제적으로 크게 부요하지는 않더라도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영위하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면서 삶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른다. 그리고 그는 생존을 위해 기존의 삶을 포기하고 밑바닥부터 새롭게 시작한다. 교수인 하진은 보통의 평범한 이민자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들이 동일하게 ‘중국계 미국인’이라는 범주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서로에 대해 충분히 잘 알지 못한다. 하진은『자유로운 삶』을 생각한 시점으로부터 무려 22년이 흐른 뒤에야 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는데, 그건 ‘한국어판 서문’에서 하진이 고백한 것처럼 그 자신이 이민생활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소설에 필요한 자료들을 모으고 나서야 비로서 작품에 착수할 수 있었다. 1991년에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2004년에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하진이 ‘이민자’로 창조해낸 인물이 ‘난 우’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난은 하진처럼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하던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따라서 난은 보통의 중국 이민자들을 대표한다거나, 전형적인 중국 이민자라고는 할 수 없다. 평범한 중국계 미국인들이 이 작품을 읽으며 하진이 묘사하는 이민자들의 삶에 얼마나 공감했는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하진이 이 작품을 통해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 이민생활의 물질적인 측면이 아닌 형이상학적 측면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난 우’라는 인물은 하진이 본래의 의도를 고수하기 위해 창조해낸 최상의 캐릭터이면서 하진의 페르소나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측면에서『자유로운 삶』은 이민판『허삼관 매혈기』를 보는 것 같다. 중국 본토의 노동자들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어떻게 지난하고 비참하게 사는지를 여실히 보여준『허삼관 매혈기』가 ‘반체제 인사’인 위화의 비판 정신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처럼, 『자유로운 삶』은 이민 생활의 고단함이나 역학관계 등을 잘 보여준다. 물론 ‘난 우’는 본토에서는 노동자가 아니었지만, 타국에서 생존을 위해 자발적으로 ‘노동자’가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야 했다. 추방자나 망명객이 아니라 이민자로 살아야 했다. 그는 아직 젊었다. 싸워야 했다. 그는 자신의 전쟁터가 어디인지 알 수 있으면 싶었다. (p.204) 난이 평범한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공감의 폭이 줄어들 수 있지만, 난이 끊임없이 사유하고 고민하며 사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의 고군분투는 개인의 행복이나 불행을 넘어 사회적인 것으로 확장된다. 가령, 그가 유학생이었다는 전력 때문에 알게 된 사람들은 대체로 정치적인 이유로 중국에서 추방되거나 망명자가 된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중국인들이 왜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됐는지, 이민자들이 살면서 가장 힘들어하는 게 무엇이고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관찰자’적 시각에서 묘사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난의 지위가 가진 특별한 속성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아직 부자는 아니지만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해가는 중이잖아요. 안 그래요?” “나는 그저 독립하고 싶을 뿐이에요.” (p.409) 난이 유일하게 추구하는 것은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개인으로 사는 삶이다. 그가 중국으로 가는 것을 포기한 것도, 계속 공부하는 것을 포기한 것도 그 때문이다. 관료들의 부정 부패가 만연한 중국에서는 그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었고 마찬가지로 공부를 계속 하기 위해서는 여권 연장이 필요한데, 중국 대사관 직원들이 흔쾌히 그 일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난은 자족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위해 외로움과 고독을 자발적으로 선택한다. 그러나 그가 미국에서 살기로 결정하고 선택한 삶은 ‘미국적’지도 않다. 미국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획득하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이다. 다른 사람들의 돈을 이용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 그러나 난은 이 둘을 포기하고 스스로의 노동력으로 정직하게 일을 하는 쪽을 택한다. 개인이 오롯이 개인으로서 산다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리를 짓거나 패거리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사실 난의 꿈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그는 ‘자유를 얻기 위해 중력을 잃는’ 쪽을 택한다. 이것이 보통의 이민자들과는 다른 난의 특징이다. 미국 내에서 나 같은 사람의 포지션은 조금 애매하다. 미국 시민은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처럼 ‘이민자’의 정체성을 가진 것도 아니다. 물론 미국에 거주한 시간으로만 따지자면 ‘이민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자신의 나라를 등지고 미국을 선택해 온 대개의 ‘이민자’과는 출발점부터 다르고, 지향하는 바나 가치관도 다르다. 대개의 이민자들과는 달리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에 왔고 졸업을 하고 미국에 자리를 잡은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이민자’와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 사이의 어느 지점이 내가 있는 곳이다. 아시안계 이민자들 중에서도 한국인들은 소수라고 할 수 있을텐데, 나는 그 소수 중에서도 소수인 셈이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경계인으로 살면서 관찰자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진이나, 내가 하진만큼 좋아하는 시인 마종기 선생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그들의 작품에 공감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소설이나 시를 통해 보여주는 정서나 생각, 은연 중에 드러내는 감정 들은 내가 미국에서 살면서 느끼거나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거나 닮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작품 안에서 비로소 안도하고 안심한다. 내가 그 사람들을 이해하는 만큼, 적어도 그 사람들에게는 나도 이해받을 수 있을 테니깐. 동부에 살다가 한국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서부에 왔을 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여기 사는 한국 남자들의 3대 직업이 뭔지 알아요? 목사, 한의사, 리얼터realtor. 그런데 이 사람들은 거의 모두 사기꾼이예요. 조심해야 합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자기 직업이 이 셋 중 하나가 아니라는 점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실제로 목사나 한의사, 리얼터가 많기는 많았다. 이 세 가지 직업은 육체 노동을 하찮게 여기고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적 정서를 가진 한국 사람들이 이민자로 살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절충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부류들은 처음 만나자마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당신이 만나게 될 한국 사람들의 대부분이 서울대, 연고대 출신이다. 마트에서 생선 만진다고 무시하지 마라. 대부분은 명문대 출신이고 한 때는 한국에서 잘 나가던 사람들이었다.” 명문대 출신이기 때문에 무시하지 말라는 논리는 동의하기 어려웠지만, 적어도 그 사람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난이 만나는 중국계 이민자들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한국계 미국인들의 스펙트럼도 상당히 넓다. 거기에 이민 1세다가 다르고 1.5세대, 2세대가 또 다르다. 이 모두를 뭉뚱그려 ‘이민자’로 규정하여 그들의 전형성을 말하거나 평균적인 이민자들의 삶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하진이 그린 난과 핑핑의 삶은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민자’로 산다는 건 땅의 중력을 잃어버린 삶이라는 점에서 곤비하지만, 그 대신 하늘의 자유를 얻었다는 점에서 자족적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삶이 모두에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도 부지기수이고, 이로인해 무너지는 개인과 가정도 많다. 난과 핑핑의 삶이 애틋한 건 외국 생활이 이와 같이 지뢰밭 같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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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 관광업계에 이민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물론 내 나이 또래 즈음한 사람들, 특히 가장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누구나 이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 지난 대선 직후 멘붕에 빠진 채로 허탈해 하며 ‘우이쒸~ 이민이나 가야겠다.’ 뇌까린 것이었는데 요즘은 나누는 이야기가 꽤 구체적이다. 멀리 외국에 친척이라도 사는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그를 부러워한다. 당장 내일이라도 이민을 갈 수 있는 것처럼 부러워한다. 참사를 겪은 후 도대체 뭘 믿고 살아야 하는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지다 보니 ‘내 아이 만큼은 다른 곳에서 키워야한다.’라는 생각이 젊은 가장들 사이에 가득하다. 이민 생활이라는 것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들다 할지라도 적어도 내 아이만큼은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그런 국가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들로 가득한 것이다. 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없는 이상 이민 1세대가 겪었던 그런 신화와 같은 이민 스토리는 더 이상 만들어 낼 수 없다. 하다못해 용접이나 미장 기술, 전기배선 기술 같은 것들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짧지 않은 시간과 쉽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자격을 취득하기 전까지 가족은 먹고 살아야 하고 자격을 취득했다고 해서 이민 대상국에서 비자를 내어줄 지도 확실치 않다. 만나서 이민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 중 몇 명이나 실제로 이민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대부분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현실의 암담함을 잠시나마 잊어보려는 심산일 것이다. 참 슬픈 일이다. 국가의 중추가 되는 30,40대 젊은 가장들이 모이면 꼭 이민 이야기를 나눈 다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현실이다. 일자리는 없고 일자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고용이 불안정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책임져 주지 않는다. 사회 전체가 불안하고 불안정하다.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대다수는 정치적인 이유로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본토에 남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이유로든 경제적인 이유로든 이민을 간다는 것은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현재의 생활이 불안정하다는 뜻이다. 현재 내 생활이 풍요롭고 행복한데 왜 사서 고생을 하게 될 이민을 꿈꾸겠나. 갈수록 사회와 국가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고 없어지고 있다.
“머리카락 한 올을 봉투에 넣습니다. 봉투 안에 머리카락이 없으면, 누군가가 편지를 뜯어봤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알려주세요.” (1권, p.81)
이 책 「자유로운 삶」의 주인공 난은 시인이자 학자였다. 천안문 사태이후 당국의 처벌과 감시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책은 난과 핑핑의 아들 타오타오가 중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의 지식인들의 미국을 향한 러시가 이어졌고 난과 핑핑도 모든 것을 버려둔 채 미국으로 떠났다. 하나밖에 없는 타오타오를 미국 땅에서 만났지만 난은 혼란스러웠다. 아들을 무사히 미국 땅에서 만났지만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결국 아들이 미국인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중국 정부의 박해와 감시를 피해 미국으로 떠나 왔지만 그들은 난을 가만두지 않았다. 비자를 연장하거나 하는 등의 업무를 고의적으로 막거나 방해했다. 난은 미국까지 떠나왔으니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을 받아본 후 확신하게 되었다. 편지에는 머리카락을 동봉한다고 적었으나 실제로는 머리카락을 넣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중국으로부터 온 아버지의 답장에는 올 굵은 머리카락 한 올이 동봉되어 있었다. 당국에서 편지 내용을 읽고 집어넣은 것이었다. 난은 비록 몸은 이역만리 떨어져 있었지만 결코 중국에서 떠나있지 못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죠? 내 사업이 잘못되면 중국이 나를 도와줄까요? 내가 어디에서 단 1달러라도 받을 수 있나요? 중국이라면 넌더리가 나요. 더 이상 관대해지고 싶지 않다고요.” (1권, p.370)
“그런 말 하면 안 돼.” “무슨 말?” “우리가 중국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 “알아. 화가 나서 그랬을 뿐이야. 우리 피에서 중국을 쥐어짜낼 수 있다면 좋겠어.” (1권, p.372)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모두 겪은 난과 핑핑은 멀리 조지아에 정착하게 된다. 레스토랑에서 배운 요리기술을 이용해 자신들만의 식당을 열게 된 것이다.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남아있는 주택에 대한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핑핑은 옷 한 벌 사지 않고 일했다. 우리가 흔히 들었던 자수성가한 이민 1세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말이 자수성가지 하루 10시간이 넘는 중노동을 통해 겨우 살 집과 운영할 식당을 열게 된 것이었다. 그런 난과 핑핑에게 메이 홍에 찾아온다.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모금을 하기 위해 지역에서 꽤 알려진 중국 식당을 운영하는 난을 찾아온 것이다. 난은 넌더리가 난다며 모금을 거부한다. 메이 홍은 어쩔 수 없는 중국인 아니냐며 다그친다. 쫓겨나다시피 떠나 온 중국인데 중국, 국가, 애국을 들먹이는 메이 홍을 보며 난은 분노한다. 하지만 난과 핑핑은 중국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신문을 보면 중국이 메달을 몇 개 땄는지부터 확인했다. 그는 감정적으로 그러한 사람들과 철저히 자신을 분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2권, p.223)
1992년 애틀랜타 올림픽이 열렸다. 다시 메이 홍이 찾아왔다. 올림픽에 참가한 중국 선수들이 현지 음식이 맞지 않아 난의 식당에서 음식을 도맡아 해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난과 핑핑은 흔쾌히는 아니지만 결국 그 요구를 들어준다. 그리고 신문을 보며 중국의 메달 숫자를 확인하는 난은 스스로 깨닫는다. 결국 자신은 중국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맙소사. 아직도 20년 전과 똑같네요.” “그래요. 근본적으로 같죠.” (2권, p.312) “이제 그는 더욱더 미국에서 살다가 죽고 싶었다. 조지아의 집이 그리웠다.” (2권, p.356)
우연히 당첨된 복권은 베이징 행 왕복 항공권이었다. 다시 찾아간 중국은 여전했다. 스모그와 뇌물과 부정과 부패... 그리고 끈적끈적 들러붙는 요구와 기대들. 어려서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의 욕심만 드러내고 어머니 또한 난이 겪은 어려움과 아픔과 눈물은 생각하지 않고 20달러짜리 지폐에만 탐닉한다. 남동생 또한 호주로의 이민을 꿈꾸고 있었다. 난은 그가 겪은 고통을 동생에게 들려주며 신중할 것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동생도 이민을 떠날 터였다. 그리고 그렇게도 잊지 못했던 첫사랑 베이나의 소재도 알아낸다. 고향 하얼빈을 떠나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후 난은 베이나를 찾아 나선다. 멀리까지 찾아간 베이나는 여전히 요염하고 표독스러웠지만 이제껏 꿈꾸고 간직했던 추억의 그녀가 아니었다. 난은 그렇게 아프고 슬프게 현실에 직면한 후에야 자신의 아내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당신의 친구야. 믿어도 돼.” “그래도 나는 당신을 사랑해." (1권, p.100
난은 아내 핑핑을 아프게만 했다. 핑핑은 헌신적인 아내이자 현명한 여자다. 남편 하나만 믿고 미국으로 건너온 후에도 늘 그의 곁을 지키고 뒷바라지 한다. 여전히 시인의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상만을 좇는 남편을 현실로 끌어오기도 하고 갈등을 겪는 난과 아들 타오타오 사이를 적절하게 중재하기도 한다. 주변의 이웃들과도 먼저 친해지는 것은 늘 핑핑이었다. 실제로 난과 핑핑은 현지인 이웃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게 되는데 만약 핑핑 없이 난 홀로 이민 생활을 했다면 그는 단시간에 폐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은 베이나를 잊지 못한다. 슬픈 것은 핑핑이 이 사실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잠자리에서조차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편을 대하는 아내의 심정이 어떨까. 나는 여자가 아니라서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데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이 밀려왔을 것 같다. 난은 속으로는 아내 핑핑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 고마운 마음도 가지고 있지만 그의 눈은 늘 밖으로 향했다. 이삿짐을 옮기기 위해 부른 현지 여성의 탄탄한 몸을 보고 감탄하며 “여자는 독립적이어야 한다.”라는 헛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책의 말미에서야 난은 핑핑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그것도 베이나에 대한 실망을 겪고 난 후다. 결국 난은 핑핑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가정과 아이를 지키기 위한 핑핑의 눈물 나는 악전고투가 없었다면 난이 이루어 낸 아메리칸 드림은 그냥 드림으로 그쳤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결혼 후 아이를 출산한 아내를 볼때마다 “신은 분명 여성을 더 위대하게 만들었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이민 온 중국 남성들은 고약하다. 자신보다 20살이나 많은 백인 여자와 살고 있는 바우는 그저 얹혀 살다가 쫓겨난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헹은 자신의 아내가 식당의 단골손님이던 흑인에게 가버리자 더 여리고 약한 중국 유학생 파오를 강간한다. 난은 헌신적인 아내를 두고도 베이나를 잊지 못한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정치적 망명중인 유력인사의 미국내 강의나 강연에서도 남성들은 여전한 꼰대 기질을 벗지 못한다. 자신들조차 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이상을 향해 뜬구름만 잡고 있다. 오히려 젊은 여성 메이 홍은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비록 중국 당국을 믿을 수 없고 신뢰할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도움을 찾고 이민 온 이민자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살 길을 도모하자고 피력한다. 그런 메이 홍의 현실적인 대안에 함께 강연 자리에 모여있던 남성들은 야유를 보낸다.
“더 문제였던 건 중국 본토에서 온 일부 남자들의 성격이 고약해졌다는 것이었다. 전에 갖고 있던 우월감을 잃어버린 탓이었다.” (1권, p.225)
남성적 우월감을 갖는 다는 것이 뭐가 중요할까? 당장 살 길을 찾고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상은 필요없다. 살기 위해서 3천권이 넘는 책을 처분해야 하고 빚을 갚기 위해 옷 한 벌 사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남성이라 불리우는 존재들은 여성에 대한 태생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남성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것도 이민 1세대의 이야기다. 지금은 이민 2,3세대가 이미 가장이 되었다. 이민을 갔지만 여전히 중국과 한국의 가부장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와 그의 2세대들은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핑핑과 난은 타오타오가 배우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한자를 베껴 쓰게 했다.” (1권, p.517)
어려서부터 미국 학교에서 미국인 아이들과 함께 지낸 이민 2세대는 그들의 아버지와는 완전히 다른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민 1세대 들이야 자식들에게도 모국어를 가르치고 집에서 만큼은 모국어를 사용하고 싶겠지만 그들의 자식들에게 모국어는 큰 가치가 없는 것임이 분명하다. 영어를 제외하고 스페인어나 불어를 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구태여 모국어를 배우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넘쳐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상위에 랭크되는 아이들 중 많은 수가 이민 2.5, 3세대쯤 되는 아이들이다. 그런 미국인 아이들을 상위에 랭크시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 굳이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노래할 것을 주문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이미 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모국, 모국어, 조국 등을 거론하는 것은 거추장스럽다. 이런 이민 1세대 이후 세대들은 그들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민 2,3세대를 그리는 책을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큰 갈등이 되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전에는 분명치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분명해졌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개념이 10년 동안이나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러한 꿈이 실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축할 수만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2권, p.436)
이렇듯 이민은 현실이다. 한국에서 이민을 간 이민 1세대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다. 슈퍼마켓을 하며, 세탁소를 하며, 식당을 하며 어렵게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이 책에서처럼 실제적인 이야기는 잘 들을 수 없다. 멋진 옷과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들의 아이들을 보며 이민에 대한 환상을 가질 뿐이다. 현실은 이 책에 더 가까울 것이다. 살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고 고통받는 현실 말이다. 남들보다 빠른 시간에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난은 주변의 말처럼 그가 드림을 이뤄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한다. 여전히 그는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고 베이나의 표독스러운 말처럼, 또다시 그녀를 찾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품은 명확한 결말이나 사건없이 끝난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난과 핑핑은 여전히 살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미국의 무시무시한 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의료보험이 되는 직장을 또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타오타오와의 갈등은 더 심각해 질 것이고 식당일을 하며 망가진 핑핑의 몸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실존 인물이라면 현재 난과 핑핑은 노년에 접어들었을 것이고 타오타오는 결혼을 해 어린 아이, 즉 이민 3세대를 낳았을 것이다. 행복한 일이지만 여전히 이들 가족들에게는 현실적 문제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은 여전히 중국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삶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 “1991년 초여름의 어느 날...난은 제이드 카페에서 시간당 10달러를 벌었다.” (p.264)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중국인을 고용한 카페에서 난에게 시간당 10달러를 줬다고 한다. 23년 전 제이드 카페보다 못한 한국의 고용현실이 개탄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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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국인 유학생이 자신의 고국을 떠올리면, 썩은 관료들에게 연줄을 대고 뇌물을 바쳐야 일이 처리되고, 원하는 바와는 상괌없이 당이 정해준 학교로 가서 당이 정해준 전공을 공부하고 당이 정해준 직업을 가져야 하는 황폐한 땅이었다. 개인의 취향과 자연스러운 욕구를 억제당하는 곳이었고, 회피와 부정으로 얼룩진 삶에 길들여지는 곳이었다. 그 유학생의 텐안문 사건에 대한 부주의한 발언이 당국에 반체제 인물로 낙인찍히는 계기가 되어, 감시와 통제 하에 놓여지게 된 것은 그 머나먼 땅 고국을 영원히 떠나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갈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음을 의미했다.
주인공 난 우에게 첫사랑 베이나는 갖지 못할 이상이었다. 먹고 살고,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현실적인 장벽이 시를 쓰는 것을 가로막는 것처럼, 빨간색 일본 승용차를 사줄 수 없는 자신의 무기력한 경제적 환경은 베이나에게로 향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벽이었다. 그에 비해 자신을 바라보는 아내 핑핑은 현실이었다. 사랑하고 싶어 괴로워하면서도 사랑하게 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미국이자 안주해야 할 곳, 운명이 정해진 잔인한 곳이기도 했으며, 악착같이 벌어서 집을 사고 빚을 갚고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그에게는 시를 쓰고 싶은 욕망만 있을 뿐, 시를 쓸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은 소망만 있을 뿐, 노동의 굴레에서 한 발작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자유는 그를 버리고 떠난 첫사랑 베이나이자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시쓰기이기도 했다. 아이를 위해 선택한 삶이었기에, 아내와 가족은 자신의 이상이 아닌, 굴레였다. 자유가 아닌 구속이었다. 이혼할 수도 없는 것. 돌아갈 곳 없는 것. 돌아갈 수 없어서 결국 요리사가 되는 것. 한권 한권 사서 모은 책들을 눈쌓인 쓰레기 더미 옆에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부부가 선택한 삶은 중국인 이민자가 아무 기술 없이 그저 고된 노동을 정직하게 보상받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소박한 것이었다. 노동한 것만큼의 댓가로 먹고 사는 일을 보장받는 것이었다. 시인 지망인이 현실을 직시하자 우 부부는 동시에 한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다. 난 우가 이상을 멀리하고 밀착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첫사랑의 환상 베이나를 잊고, 시를 쓰고자 하는 욕망을 잊는 것이었다. 핑핑의 소박한 소망인 매일매일 똑같을 수 있는 날들이 가까와 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함께 같은 곳을 보고 걷는 길에서 둘은 조금씩 서로를 배려한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을, 사랑하지 않던 사람에게는 뜨겁지 않아도 의무와 책임이 아닌 조금 다른 종류의 사랑이 싹터감을 배우게 했다. 그 속에는 왕부부처럼 30년을 살아도 여전히 어울리지 못하고 허수아비처럼 주변을 배회하는 이방인 신세가 될까 걱정히는 것. 교회에 나가지 않는 한 고립된 삶을 살다가 고독과 외로움이 노후를 덮칠 것을 알고 있는 것. 그렇지만 어떻게든 정착히고 싶은 곳. 달리 갈 곳이 없는 것. 부모의 어눌한 영어가 종종 아이를 당황스럽고 짜증나게 만드는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아득한 외로움과 서로에 대한 의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깨닫게 된다. 이민자의 삶은 중국인 사회와 완전히 단절하고 방해받지 않고 살고 싶어도 중국이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 본토의 홍수 피해를 모른 척 할 수 없도록 중국인 사회에서 그들을 알고 기부금을 걷으러 와서 애국심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는 걸 참아야 하는 것. 불안정하게 사는 걸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자신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감을 느끼는 것이기도 했다.
1권 2권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이 많이 두 권으로 나누었겠지만, 내용적으로도 1권과 2권이 분리가 된다. 2권에서는 이민자로서 긴 시간동안 이루어내야 할 생활의 안정을 달성한 후 난의 자아에 대한 탐색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1편에서 이민자로서 생활고와 씨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2편에서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시쓰기라는 자아의 실현을 위해 겪는 일상을 다룬다. (클릭-2편에서 계속)*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