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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론다에 갔을 때, 만난 은혜의 성모교회(Church of Our Lady of Mercy)가 성 테레사 수녀가 세운 봉쇄수도원이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봉쇄수도원에 대하여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15세기 신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 사회가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면서 종교인들 역시 사치하는 풍조가 생겼다는데, 성 테레사 수녀는 교회의 변모된 모습에 크게 실망하고 세상과 담을 쌓고 수도에 정진하고자 세운 봉쇄수도원이라고 합니다.
다큐멘터리영화 <위대한 침묵>이 프랑스의 알프스 산자락에 있는 카르투지오회 대수도원(The Grande Chartreuse)의 수도사들의 일상을 그려내면서 봉쇄수도원의 일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봉쇄수도원에 들어가면서 정결, 청빈 순명서원과 함께 침묵을 서원한 수도사들은 엄격한 금욕은 물론 침묵을 지키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럽의 봉쇄수도원에 관하여 조사를 하다가 우리나라에서도 이창재감독이 2012년에 만든 영화 <길 위에서>가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작은 절 백흥암에서 수도정진하는 비구니들의 모습을 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영화의 뒷이야기가 <길 위에서>에 담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의 앞부분에서 백흥암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이곳은 참선 정진하는 수행도량이오니 외부인 출입을 금합니다’라고 쓰여 있는 품이 ‘봉쇄수도원 같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위대한 침묵>이 힌트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자연의 소리와 찬송하는 음악 이외에는 묵음수행하는 유럽의 봉쇄수도원보다는 웃어야 할 때는 웃음꽃이 피는 백흥암이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처음 시작되어 현재는 중국과 티베트 그리고 우리나라 정도에만 남아 있다는 무문관수행은 묵음수행보다도 더 처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문관수행은 감옥처럼 창문에조차 철창을 덧댄 세 평 남짓한 방에 스스로를 가둔 채 하루 한끼만 먹으며 처절하게 정진하는 곳으로, 석 달이든 3년이든 정해진 수행기간을 모두 마치거나 깨달음을 얻어 스스로 문을 박차고 나와야만 벗어날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저자, 아니 감독께서는 <길위에서>를 제작하는 동안 객관적 시각에서 수행하시는 분들을 관찰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분들을 인터뷰하기도 하였는데, 아마도 구도의 길에 나선 이유를 비롯하여 궁금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수도하시는 분들을 인터뷰하면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분들의 치열한 생의 자세와 내면 깊이 흐르는 보살심은 누구의 마음이라도 녹여낼 만큼 뜨거운 마그마 같은 것이었기 때문(274쪽)”이라고 했습니다.
이창재 감독은 “무심한 듯하지만 부족함이 없는 곳, 모자란 듯하지만 소박한 멋이 있는 곳, 백흥암은 바로 그런 절이다(35쪽)”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백흥암의 영운 스님은 “백흥암은 작은 사찰이지만 참 예뻐요. 불 없는 달밤에, 보름달빛이 기와지붕에 스르르 내려앉을 때 보면 정말 아름답지요. 지붕의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지면서 아주 아름다운 밤이 됩니다.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도를 찾아서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거지요(36쪽)”라고 설명합니다. 한 폭의 그림 같지 않습니까? 아직 절집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어 실감할 수 없습니다만, 기회가 되면 백흥암을 한 번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일년에 두 번, 초파일과 백중날에는 외부인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백흥암 극락전에 있다는 가릉빈가를 볼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백흥암의 다양한 모습과 이곳에서 정진수도하시는 분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많이 곁들이고 있어 백흥암의 모습은 이미 마음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독께서 <길 위에서>를 제작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모양입니다. 백흥암에서 수도하는 분들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제작 뒷이야기까지도 가감없이 담고 있어, 읽어가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그런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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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사실 한번씩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슬럼프 같기도 하고 책에 집중하기가 어려울때가 오는데 이럴때 가볍게 읽으면서 리듬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내가 요즘 그랬다.책을 읽으면서 어떤 감동도 느끼지 못했고 교훈을 발견하지도 못해서
이책은 사실 다큐멘터리 영화로 이미 만들어진것을 활자로 "길위에서"는 우리처럼 어쩌면 평범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출가를 하게 되었고 어떤 치열한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다양한 이력을 보여주는데 흔히 우리들이 이야기하듯 수덕사의 여승 여하튼 어떤 출가의 뒷이야기를 가졌든 이들은 국내의 사찰중 가장 행자생활이 어렵다는 백흥암에서 자우스님의 "살면서 가장 중요한게 내가 어떻게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알아차리라는거에요. 또 백흥암의 경우 해우소(화장실)청소와 군불을 때는 소임을 고참스님들이 맡고 있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것은 사실 성불이라는 그들의 목표뿐아니라 세속적인 성공을
마지막으로 어려움에 처할때 힘이될수있는 스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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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어느 길 위에 서 있는가.
그 지점이 어디일지라도 지나 온 길은 기억 속에서 아름답고 다가올 길은 상상 속에서 아름답다. 하지만 바로 현재 두 발을 딛고 있는 그 곳은 고해이기 십상이다. 누구는 질병과 죽음의 공포 때문에 고통스럽고 누구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때문에 처연하다. 그래서 누구나 '산다는 게 뭔지'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되뇌어 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의 테두리 속에 갇혀 답을 구하러 선뜻 걸음을 내딛기가 힘들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 한창 치열하게 고민하던 이십 대에는 여러 갈래의 구도의 길을 모색해 보았다. 철학적 사유로 삶의 근원을 탐색해 들어가는 길, 문학을 통하여 삶의 희노애락에 천착하는 길, 공장이나 저잣거리에서 현실적인 삶에 온 몸을 부딪히는 길, 그리고 종교의 품에 안겨 영성을 닦는 길. 하지만 그 중 어느 길 하나 제대로 걸어보질 못하고 보통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뚜벅뚜벅 걸어왔다.
여기 세속의 인연과 먼지를 다 털어내고 오직 참 나를 찾아서 순수한 구도자의 길을 가는 용기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침묵의 공간, 비구니들의 수행 도량인 백흥암에서 지혜를 구하고자 하는 스님들의 가슴 속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네 번 바뀌던 삼백 일 즉 일 년여 기간 동안 비구니 스님들의 구도기를 영상으로 옮겨담아, 오 만 관객이라는 성적표와 다수의 영화제 진출과 수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 이 영화에서 미처 다 공개하지 못했던 속 깊은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는 흔히 비구니들을 떠올리면 '무슨 사연이 있어서 스님이 되었을까'하고 사연 타령을 하곤 한다. 한 남자의 사랑을 받고 가정을 이루어 알토란 같은 자식들을 낳아야 할 여성이 질긴 속세와의 연을 끊고 산사로 들어간 데는 피치못할 숨겨진 사연이 있으리라는 통속적인 짐작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선입견이 잘못되었음을 깨우쳐 준다. 대부분의 비구니들이 존재의 중심과 인생의 고갱이를 찾아 침묵의 여백이 충만한 구도자의 길을 걸어간다. 오로지 수행에만 뜻을 두고 작지만 예쁜 사찰 백흥암에서 자연과 불법과 벗하며 깨달음의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 사진과 함께 오롯이 담겨있다.
처음 출가하여 삭발하는 과정- 속세에서의 분별심을 내려놓는 수행의 첫 걸음. 공양을 담당하는 후원 식구들의 일과- 밥하는 것도 다 수행이다. 승가 시험장면- 스님도 시험은 긴장된다. 삼보일배와 삼천배- 행자들의 의지를 몸으로 증명하는 마지막 관문.
이런 수행과정과 여러 스님들의 속내를 드러낸 인터뷰 내용으로 이루어진, 행자에서 스님이 되기까지의 험난하면서도 고결한 시간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화두만을 움켜쥐고 고행의 길을 가는 비구니들의 모습만 있었다면 이 책이 어찌 우리의 가슴을 이토록 적실 수 있겠는가.
스승에게 혼도 나고 도반과의 우정에 웃기도 하고 기와 지붕에 내려앉는 달빛에 반하고 섬진강 물빛에 눈물이 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 그려져 있기에 이토록 가슴이 따스해지고 위로받고 격려받는 기분이 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비구니들은 구도의 길 위에서 우리는 생활의 길 위에서 누구든 자신의 길을 간다
어느 길이든 마음의 자유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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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불교인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 트랜디한 스님 3총사
법륜, 혜민, 정목 스님의 책은 믿고 구매한다.
책을 읽고나면 마음을 닦아내듯 정화가 되고
내가 주인이 되는 삶과
내 주의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편안해 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불교의 불법인지는 몰라도
세분 스님들의 말씀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짐들을 덜어주었다.
그래서 법륜, 헤민 스님의 법회나 강연도 참석하였고
정목스님의 "SBS 아이러브 인" 공개방송도 직접 방청하여 좋은 말씀도 들었다.
때문에 이번 메일진으로온 책 제목을 보고 바로구매를 했건만...
" 정목스님+이창재 감독 만남 초대 & 『길 위에서』 단독 3천원 할인쿠폰 혜택까지!"
난 이 제목을 보고 정목 스님께서 영화를 찍었고 그 내용을 책으로 만들었구나 어찌되었든 신간이군
거기다 할인까지 해주니 더 생각하지 말고 지르자 하고 결제를하고 책을 받아봤것만...
저자가 아닌 추천인 글에 정목 스님의 글이 있어 이게 뭔가 했었다. --;;;
본인이 쓴 글을 자기가 추천한다고?
거기다 "아름다운 책 이다" 라는 마지막 멘트는...
순간 당황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정목 스님은 이 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
단순히 책을 보고 감동받은 사람중에 한분 이랄까^^;;;
메일진 하단에 사진은 강연회 관련 이미지 였으니^^;;;
스타 스님 마케팅에 낚인 기분이었다. ^^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나지는 않는다.
덕분에 내가 스님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내 눈을 가리고 결정력을 흐리게 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상"이 내 눈을 가리니 눈을 뜨고 본것이 참으로 본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참"도 없고 "거짓"도 없다.
이 모두 남이 아닌 내 마음이 만든다.
"제법개공","일체유심조"
법문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글이 아닌 내 경험으로 터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음에 감사한다.
어찌되었든 정목, 혜민스님이 추천하는 책이라면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음미해보려 한다.
메일진에 낚인 기분 이지만 덕분에 "아름다운 책"을 만날 수 있는 인연에 감사한다.
책보고 느낌 좋으면 영화도 찾아봐야 겠다.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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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흥암은 1년에 두 번 부처님오신 날, 백중날에만 연다. 이곳은 비구니 스님 (여자 스님)만이 수행하는 공간이다. 이 책은 앞서 다큐멘터리 영화로 개봉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이 책을 보고 나니 여운이 남아 영화도 찾아보기로 했다. 이창재 감독님은 촬영을 위해 찾아갔지만, 거절당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방문하고 설득한 끝에 300일간 머물 수 있었다. 하지만 촬영도 순탄치 않았다. 수행중인 다른 스님들의 반발도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에필로그에는 감독님은 힘든 촬영의 뒷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곳은 비구니 스님만 있는 곳이라 그런지 비구 스님 (남자스님)보다 사연이 더 드라마틱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두 아이를 가진 행복한 가정에서 살다 스님이 되신 분도 계셨고, 미국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교수 임용을 앞에 두고 스님이 되신 분도 있고, 두 딸이 한꺼번에 스님이 된 경우도 있고 다양한 사연들이 있었다. 다양한 사연만큼 그들의 가족의 이야기도 나왔는데 스님이 되길 환영하는 어머니도 계셨고, 딸이 스님이 되지 못하도록 억지로 끌고 가고, 도망치고, 끌려가고를 반복한 경우도 있었고 다양했다. 비구니 스님들은 다양한 사연으로 스님이 되었지만 다들 ‘저긴 내가 있어야 할 곳인데’하며 스님이 되는 걸 운명처럼 여겼다. 어느 날 문득 느끼기도 했고, 절에 갔다 느끼기도 했고. 다른 스님의 말에 따르면 전생에서 못한 인연이 현세에 닿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해서 참 대단했다. 불교에서는 인연과 환생, 윤회 사상이 있는데 그들의 전생이 현생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하니 놀라웠다. 다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가든 한 길로 가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책 제목인 길 위에서도 그런 의미에서 나온 것이었다. 스님들의 생활도 엿볼 수 있어 신기했다. 스님들은 하루일과를 모두 수행이라고 생각했다. 설거지하는 일도, 밥하는 일도, 청소하는 일도 모두 수행이라고 했다. 특히 수습 스님인 행자는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수습 때는 자신의 낮추는 법을 배우고 마음비움을 배우기 위해 더 일을 많이 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한두달 하다가 못 버티고 나가는 스님도 다반사라고 한다. 그래도 진짜 스님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그 기간도 수행으로 생각해 마음을 온전히 다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중간중간 스님들의 말귀 하나, 유명인의 말귀 하나 마음에 와닿는 말이 참 많아 좋았다. 이 책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다. 나를 비우고, 모든 일을 수행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누구인가. 나를 찾아가는 수행이 참으로 신기했다. 책을 읽으면서 힐링 된다는 느낌이 절로 들 정도였다. 부모님이나 성인 분들께 선물로 주면 참 좋은 책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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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재/북라이프//
아주 맑디 맑은 호수물에,,산수화 그림자처럼 드리우고, 맑은 하늘에 고운 구름들이 이러저런 모양을 바꾸고 호수에 그림을 그려 주는 듯 하다. 여스님들의 구도의 삶이라서 다소 처연할 듯 .. 하는 기분으로 책을 대했지만,, 그런 것을 넘어선 잔잔한 이야기들 따라서 내마음에도 무엇인가... 맑은 기운이 스민다..
몇달전인가? 길위에서.. 라는 영화의 홍보 포스터를 본 적이 있다. 여스님들의 삶의 족적을 그려낸 영화라 하여서,,호기심도 있었지만, 오히려 피하고픈 마음이 들었었다.. 마음 시릴 영화를 굳이 엿볼 것은 무엇인가? 하는 마음에서... 그러면서도 이렇게 책을 대하고서는,삶을 대하는 마음에 남녀가 따로 있을까? 새로운 마음을 가진다..
1년에 딱 2번 열린다는 백흥암이라는 절을 취재하면서,, 그것을 영화로 담고,,,못다한 스님들의 생각과 뒤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주었다.. "절집에서는 공양간에서 일을 하든, 수행을 하든. 포교를 하든 오로지 견성(見性)이라는 한길 위에 있습니다. 방황 조차도 한길 위에 있는 셈이지요.." 한 스님의 말씀 속에서 영화 제목을 따오고,, 책으로 엮어 냈다 한다..
길위에서,,, 행자들의 조금은 고단한 하루 일과를 엿보고,,,, 그들이 왜 이런 어려움을 견디고 구도의 길을 가고자 하는가? 밀착하여 대화도 나누고,, 동안거와 하안거에 들어선 스님들의 하루 일과를 얘기하고,, 가장 더러운 곳 중 하나인 해우소의 청소와 힘든 일 중 하니인 방에 불을 때는 일을 하는 화대 임무를 큰스님들이 한다는 지혜롭고 비밀(?)스런 이야기.. 1970대 시절에는 큰 절 중 하나인 월정사에도 앞문이 없고,, 옆에도 허리 높이 정도의 칸막이만 있는 해우소가 있었지만,, 백흥암에는 아직도 그런 해우소가 있다는 얘기,, (물론 큰 절중에 하나인,, 수덕사에도 덕숭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해우소는 아직도 그렇다..) 깨달음을 위한 구도의 길.. 그리고 나를 찾는 것을 화두로 삼아서 정진 하는 길.. 동안거 하안거 등 수행을 마친 스님들이 만행을 통해서 새로이 접하는 길과 길위에서의 깨달음.. 일가 친족 보다 더욱 더 같은 생각으로 살아가는 그녀들만의 우정과 보살핌.. 그리고 절대 고독의 시간으로 견성을 얻고자 스스로를 3년씩이나 가두는 무문관 고행..
봄 여름 가을 겨울 있듯이,, 비구니스님들의 구도의 현장에도 방황도 있고,, 깨덜음을 얻음에 스스로 만족함이 절대 부족함을 한탄하기도 한다... 깨달음을 얻는 이 부처이기에,, 누가 어느정도를 깨우쳤는지..? 스스로 어느정도 인지..? 모른체 살아가는 답답함속에 어쩌면 인간 삶의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뭘 쉽게 다 알면 인생사,, 그리고 구도의 길이 재미는 있겠는가??
저자의 잔잔한 글 엮음 따라서,, 아주 맑고 고운날,,, 고운 길을 같이 동행 한 듯하다.. 잃어버린 나를 찾는 길.... 긴시간 나름 노력을 하지만,, 새삼 다시 마음 가다듬게 해주는 길인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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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을 넘어서 본래의 자신을 찾는 물음.. 그것을 화두라 칭한다 했다..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언제부터인가 나를 향한 시선은 사치스럽게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잔잔하게 때론 너무나 거세게 내 가슴의 종을 울렸다. 아직도 내게 화두에 대한 갈증이 남아있었던 걸까.. 몇 년만에 홀로 떠난 길 위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고 나는 나의 길을 다시 바라보았다.. 눈물겹게 아름답고 깊은 길을 걷고 난 뒤,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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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은 내가 생각했던 그런 책이 아니였습니다. 음.. 뭐랄까.. 나에게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대한 깨달음? 아니면 한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집안의 며느리로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참지 못하는 화를 다스리는 팁을 원하던 나에게는 말이죠 적어도 처음 책을 손에 들고서는 마음수련"이라는 이 말한마디에 혹해서 읽어내려갔는데..
처음에는 분명 아니였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읽고 싶어했던 책이 팔공산자락에는 백흥암이라는 절이 있습니다. 스님들이 오로지 선방에서 정진만 하는 곳으로 외부인은 일년에 딱 두번 받아요 사월초파일과 백중 그런 그곳에서 어렵게 촬영허가를 얻어 다큐로 만든 것을 다시 책으로 낸 것입니다. 비구니 사찰인 이곳에서 주지 스님은 잘 해낼 각오가 아니면 시작하지 말라고 두번다시 외부인에게 문이 열리는 일은 이제 없을거라고 말합니다.
작가는... 저에게 무엇을 보여주기 위해 이책을 썼을까요? 처음에는 그저 그런 선방의 이야기, 절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읽어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전.. 읽는 중간 중간 울컥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성경 읽다가도 울컥해서 막 우는 스타일입니다. 아마 그쪽 종교인들이 보았으면 은혜를 받았다거나 뭐 그랬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그냥 그런 타입의 사람입니다.
이 책도 그렇게 중간 중간 울컥하게 만들더라구요 한 줄 글이 와 닿는 경우도 있고, 스님들의 말씀이 와 닿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순간 순간 울컥거림을 참아가면서 읽어내려간 책이였습니다.
책의 초입부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우리가 나쁜 벗이라고 하는 사람도 그 사람의 어머니가 봐서는 절대 나쁜 자식이 아닐 거라고, 그런 것처럼 우리도 누구는 좋다고 받아들이고 누구느 나쁘다고 내치면 안 된다는 거지요" 라는 말이 나와요 전 아마 여기서부터 울컥했나봅니다. 이 말은 책의 작가가 수행하는 스님을 받는 기준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물어본 말에 대한 대답으로 돌아온 말입니다.
화엄의 바다 그곳에서는 좋은 물도 나쁜 물도 다 섞이는 곳이라고 가려서 받지 않는 다는 말을 저렇게 모두 다 수용한다는 말을 저렇게 하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요
저 글귀가 저의 뒤통수를 내려쳤어요..ㅠ.ㅠ 저는 친구를 가려 사귀라고 말하는 편이 아닙니다. 나중에 내 아이가 커서 학교 일진이랑 친구를 한다면 그 애를 데려오라고 말할거라고 그래서 따뜻한 밥 해먹이고, 이야기 들어주는 친구 엄마가 될거라고 늘 신랑한테도, 지인들한테도 말했었습니다.
그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이해못하겠다고 합니다. 키워봐라 커보면 안다고 말했거든요. 하지만 저 말에 저는 또 용기를 얻었어요. 보는 관점의 차이겠죠. 좋은 점을 보려고 하면 달라지겠죠^^
저 한구절이 나를 이 책속에 빠뜨렸습니다. 내가 지금 잘 못 생각하고 이 책을 들고 있는것은 아닌가하구요
민재행자라는 분은 나를 찾기 위해 절에 들어왔어요. 그 분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부끄러워 지더라구요 상대방이 나를 알아주기를, 내 마음을 이해해 주기를.. 하지만 저는 저 조차도 저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나는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이해하고 있는가...!
누구에게나 종교의 길을 걸어간다는것은 남은 가족에게는 어쩌면 엄청난 충격일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김수환 추기경의 어머니가 대단한 것은 김수환 추기경외에도 한분의 아들을 더 사제의 길로 이끄셨으니깐요.
상욱행자는 엄친딸이였지만 스스로가 답을 찾기 위해 절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그의 부모는 특히 어머니는 해외유학을 다녀오고 이제 교수만 되면 되는 딸이 갑자기 이러니 딸을 찾아 온 절을 찾아 헤맨지 1년 반만에 만나기도 해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였어요. 내가 지금 내가 지금 만난 인연들을 나는 그동안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살았는가.. 내 가족과의 이런 인연이 있기 까지 지난 억겁년의 세월속에서 얼마나 많은 인연이 닿았을까..
다 떠나서요 정말 내가 나로 제대로 서서 살아간다면 나도 가족도 행복할거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없이 가족을 위해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한다는것 그것만큼 어리석고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나를 내려 놓는 것과 나는 없는 채 상대방에게 오로지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책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도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있듯이요.
아무나 사제의 길을 그리고 스님의 길을 걸어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엄마이다 보니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나는 내 아이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원하고 바라면서 내 삶을 아이의 삶 속에 묶으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또 하게 되더라구요
아이를 아이인채로 나는 나인채로 독립적인 삶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한번 더 돌아보게 된 책이였습니다.
지금 내 아이가 자라서 사제가 되겠다고 스님이 되겠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도 해보면서요
오늘부터 저의 삶에서 아이의 삶을 분리해내는 작업을 더 견고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가 자랄수록 엄마인 욕심이 더 늘어날테니깐요. 그럴때 잘 분리되어 있다면 아마도 아이에게 제 욕심을 투영하려는 것을 조금 더 능숙하게 자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오랫만에 울컥하면서 읽었어요. 지금 내 아이에게 원하는것이 산더미 같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려요 자식 부모 뜻대로 안되니깐요
책 장을 덮고 나서 저는 이 책이 제가 원하고 읽고 싶어했던 책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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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소란스러운 우리 삶속에서 침묵을 찾기란 여간 힘든일이 아니다. 침묵은 그 자체가 인내고, 고통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길 위에서'라는 다큐영화가 개봉되었을때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이유가 무엇일까? 화려함 뒤에 숨어있는 우리의 본성이 우리의 가슴을 녹인 것은 아닐까? 스크린에서의 이야기를 그대로 책으로 만날수 있어 너무 좋았다. 더군다나 그 감동또한 그대로 지면에 옮겨놓은것이 신기하면서도 고맙기까지 했다. 팔공산에서도 더 깊은 곳에 숨어있는 백흥암은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곳이다. 이곳은 1년에 단 두 번, 부처님 오신 날(음력 4월 8일)과 백중날(음력 7월 15일)에만 외부인들에게 문을 연다. 백흥암의 주지이신 육문 스님이 30대 중반에 오직 수행에만 뜻을 두고 선원에서 선원으로 오가다가 1980년대 초 백흥암에 들르게 되었다. 하룻밤을 묵었는데 절이 어찌나 가난한지 고양이가 해우소에서 똥을 주어먹고 있었다. 캄캄한 해우소에서 피골이 장접한 고양이와 마주친 스님은혼비백산하여 다음날 새벽에 걸망을 지고 도망치듯 떠났다. 부처님께 제대로 인사도 못 올리고 떠나온 게 못내 마음에 걸려 다음날 다시 백흥암을 찾았는데 불상의 금칠이 떨어진 모습이 부처님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아 그길로 백흥암에 눌러앉았다고 한다. 백흥암이 경제적으로 그렇게 힘들어도 신도를 늘리지 않는 이유도 육문 스님이 원래 수행에만 뜻이 있었던 분이라 자신과 같이 수행에만 뜻이 있는 다른 스님들을 위한 마음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스님들 사이에서도 백흥암은 수행하기 좋은 절이라는 입소문(?)이 난 것 같다. 이 책은 백흥암의 몇몇 스님들에 대한 이야기와, 생활을 덧붙임없이 조용히 그려내고 있다. 세속사람들은 비구니 하면 사연 하나쯤은 있는 팔자센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스님들은 어느날 자신의 마음속에 화두하나 던져지고, 그 화두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끌리듯 절로 오게된 경우가 많다. 기약도 없고, 답도 없고, 그렇다고 보상도 없는 저 공부를 왜 저렇게 가족들 다 버리고 가서 해야 하나? 하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일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냥 운명? 아님 진짜 미친짓?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 책을 읽고 뭔지 모르지만 그냥 조금은 스님들의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의 기준에서 우리의 눈으로 보았을때의 판단일 뿐이다. 그들의 삶은 오히려 우리들보다 더 풍요롭고, 따뜻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을 읽고 무엇을 말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분명 뭔가가 울컥 올라오는데, 그것을 표현할려고 보면 말을 못하겠다. 그냥 마음이 차분해지는 연잎차 한잔 마신 기분이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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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굉장히 큰 절이 있었는데 넓고 크고 화려하게 꾸며진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을 뵙고는 순간적으로 이런 법당의 작은 먼지 하나 닦아내며 살아도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 한푼에 화내고 슬퍼하고 웃고 울고, 안 풀리는 일에 골머리를 싸매고,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돌아서면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마음 다치며 사는 것보다, 하루종일 부처님 계신 법당에서 향내 맡으며 이리 닦고 저리 닦으며 내 마음도 닦으며 살아도 좋겠다. 이 넓은 법당을 모두 내가 닦고 싶다.' 순간 일어난 마음이었지만, 내가 그런 마음을 일으켰다는 것이 한편으론 신기했고, 한편으론 놀라웠다. 하지만 금새 '나에게는 생활이 있고, 가정이 있고, 직장이 있다.'라며 현실로 돌아와버렸다. 나는 이렇게 현실에 수긍해버렸지만 이 책 <길 위에서>에는 속세의 굴레에서 벗어나 부처님 법 안에서,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꾸준히 수행하고 정진하는 비구니 스님들이 있었다. 원래 다큐멘터리 영화로 먼저 제작되었고, 영상으로 못다한 이야기까지 더해서 책으로 펴낸 것이라고 하는데 사전정보없이 접한 이 책은 다 읽고 나면 꼭 목탁소리가 실제 들리는 영화를 찾아보고 싶게 한다.
절에 가서 간단히 삼배하며 기도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어딘가 여행을 가게 되면 꼭 그 지역에 유명한 절을 찾아간다. 고요하고 청정한 절의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사실 절도 알고 보면 스님들이 살아가는 생활공간이다. 누군가는 밥을 해야 스님들은 물론 절을 찾은 이들이 공양을 할 수 있고,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 하고, 누군가는 빨래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속사정은 잘 몰랐고, 알 필요도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런 일을 하는 스님들이 따로 있고, 공부만 하는 스님들이 따로 있단는 것을. 팔공산 자락에 있는 백흥암.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는 절이다. 대략 공부하기 위해 백흥암을 찾은 수행스님이 40여명이다. 공양을 맡은 소임스님 몇 분은 40인분의 공양을 준비한다. 같은 스님인데 누구는 참선하고 기도하며 공부하는데 누구는 하루종일 밥만 하고 있어야 하면 누가 소임을 맡고 싶을까.. 라는 나의 얕은 생각은, 밥하는 것도 수행이라는 스님의 말씀에 무너지고 말았다. "밥하는 것도 다 수행입니다. 뭘 해야 할 때 딴 생각을 하지 않고 집중하는 거지요.밥 할 때는 밥만 생각하면 돼요. 다른 생각을 하다 보면 밥을 태우거나 뜸을 잘못 들이게 돼요. 내가 하고 있는 행동, 거기에만 온전히 마음을 쏟으면 됩니다.... 쌀을 씻을 때, 쌀을 불릴 때, 물 양을 맞출 때, 불 조절을 할 때 한번에 하나씩 집중합니다." (101쪽)
또 한가지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문관 이야기였다. 무문관은 문이 없는 관문이라는 뜻으로, 감옥같은 세평 남짓한 방안에서 하루 한끼만 먹으며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자신이 정한 기간동안 밖에 나오지 않고 혼자서 절대고독의 시간을 공부로 견뎌내는 곳이다. 하루 한끼도 방문 아래쪽에 급식구에서 받아 먹는다. 그런 좁은 공간에 스스로를 가둔다니.. 일반 상식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공부할 뭔가가 있을까? 우리가 책을 펼쳐서 연필로 써서 공부하는 것 말고, 마음 공부라는 것이 결과물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누가 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걸 이렇게나 처절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출가한 사람들은 삶의 의미와 나의 존재가치에 대해 의문점이 들어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고자 출가했다고들 한다. 그런 사람들과 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왔고,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왜 더 깊은 궁금증을 가지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 그냥 사니까 살고 있을까? 자기 비하는 아니어도 왠지 초라해지고 부끄러워진다. 좀더 고차원적으로 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스님들처럼 마음공부를 하기 위해 머리를 깍고 절에 들어가 정진하고 수행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백일을 갓 넘긴 이쁜 아기가 내 품에 있는데, 하루종일 아기를 보다 보면 순간순간 울고 보채는 아기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집에 처박혀서 아기만 보고 하루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내 자신이 한심해져 우울해지기도 하는데, 이 아이가 부처님이다~ 라고 생각하며 마음수행을 해보자! 라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열심히 수행하는 스님들의 올곧은 정신을 본받아 주변에 모든 사람이 부처님이라 생각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고 내 업에 따라 이런 일이 생겼고 저런 일이 생겼다고 받아들이며 순간순간 깨어 있으면, 그 순간이 모여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줄거라고 믿으면서 오늘 하루도 보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