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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실재와 실제하는 세계의 상호투명성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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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을 크게 구분하자면, 분석철학, 현상학, 사회비판이론, 해석학, 구조주의, 실존주의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분석철학에는 논리 실증주의와 논리 경험주의로 불리는 일련의 논리적이고 언어분석적인 철학 조류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루돌프 카르납이다. 사실, 나는 철학을 전공하면서도 카르납의 책은 많이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카르납이 언급하는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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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을 크게 구분하자면, 분석철학, 현상학, 사회비판이론, 해석학, 구조주의, 실존주의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분석철학에는 논리 실증주의와 논리 경험주의로 불리는 일련의 논리적이고 언어분석적인 철학 조류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루돌프 카르납이다. 사실, 나는 철학을 전공하면서도 카르납의 책은 많이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카르납이 언급하는 과학철학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상당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카르납은 이 책에서 과학 내부의 문제를 직접 다루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그가 언급하는 과학철학은 가스통 바슐라르나 한스 라이헨바하의 과학철학 저서와 같은 형식을 띤다. 즉, 철학의 성격이 그렇듯이 과학의 성과에 대한 과학적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과학에 대해 외재적인 관점에서 과학의 전제와 경계를 다시 한번 반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과학보다 더욱 '과학적'이다. 진정 과학이 엄격한 법칙성과 무모순성을 추구하는 학문이라면 과학철학이야말로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실재 과학의 성과는 귀납적 추리에 의한 법칙과 가설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이런 성격을 부각시킨다면 과학철학은 실증 과학과 다르다) 이 책에서 카르납은 많은 과학의 전제들을 쉽고 간명하게 드러내준다. 그것은 과학의 성질인 법칙, 설명, 그리고 확률의 개념에서부터, 과학적 실험의 토대가 되는 측정과 정량성으로의 환원을 잘 설명하고 있음을 통해 보여진다. 더 나아가 그는 물리학과 같은 과학이 토대로 하고 있는 경험론적 인식론의 공간과 시간에 대해 개괄하고 있으며, 과학의 법칙화에 필연적으로 논구되어야 할 문제인 인과관계와 결정론에 대해서 되묻는다. 그 관계를 탐구해야만 법칙의 필연성을 논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론의 '이론'에 대한 분석은 상당히 어렵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두뇌를 뛰어넘는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적인 세계가 실재한다고 하는 것보다, 우리의 사고가 과학적인 틀로 세계를 합리적으로 지금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과학을 탐구한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과학적 실재로서 세계가 아닌, 그러나 그것 또한 실제하는 세계인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인간의 두뇌가 접근할 수 있기 위해서는 마땅히 과학철학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카르납의 이 책은 멋진 책이다.
e****l 2001.08.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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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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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학문의 땅은 춘추전국시대라야 마땅할 것 같다. 헌데 역사를 두루 살펴봐도 사정은 그런 적이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말 그대로 정치적인 의미에서 민주적이어야 할 여러 학문들은 사실상 배타적인 경쟁이었으며 중세시대 때 수천 년간 종교가 차지했었던 패권을 근대에 들어와서 과학이 바톤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일종의 계층, 계급 같은 상식에 속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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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학문의 땅은 춘추전국시대라야 마땅할 것 같다. 헌데 역사를 두루 살펴봐도 사정은 그런 적이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말 그대로 정치적인 의미에서 민주적이어야 할 여러 학문들은 사실상 배타적인 경쟁이었으며 중세시대 때 수천 년간 종교가 차지했었던 패권을 근대에 들어와서 과학이 바톤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일종의 계층, 계급 같은 상식에 속하는 사실이다. 어쩌면 자본주의 시대에 비로소 배타적인 학문의 질서는 그 정당성을 보기 좋게 과시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한 것인지 모르는 마당에 과학에 대하여 이러저러한 비판들은 미국에 대하여 중소국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것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 여하튼 과학 혹은 과학적인 것은 어느덧 우리 삶의 미덕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주위에서 아무리 과학이 비윤리적이며 생태파괴주의라 강한 비판을 가해도 혜택을 준 것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약소하다는 식의 무책임한 여론이 과학의 방패가 되어 주고 있다. 때문에 찬반양론 속에서도 과학은 기하급수적으로, 우주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과학철학은 분명 이 논쟁의 자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과학에 대한 찬반양론은 시급하고 열성적이지만 합의점이 없이는 다만 소모적인 단계에 그치는 것이다. 과학철학이라는 학문은 과학내부에서 발생한 과학에 대한 철학적인 옹호라고 그 학문의 발생적 함의를 파악한다면 꽤나 정확하다 하겠다. 카르납의 <과학철학입문>은 아직 세계적으로 프랑스 학계에서만(우리 나라에도 유명한 과학철학자가 한 명 있다. 기철학을 하는 김용옥이다.) 그 연구가 활발한 과학철학에 대한 훌륭한 입문서의 역할을 한다.(이 말은 본격적인 입문서로는 조금 미흡하다는 뜻이다. 까닭은 앞서 말했듯 과학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나 개진보다는 과학에 대한 편견들을 수정하고자 하는 의도가 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 평소 과학에 가졌던 편견들을 거의 수정해야 하는 경험들을 치러야 한다. 이를테면 과학은 가설을 바탕으로 한 연역적인 학문이다, 과학은 모든 것을 수치로 환산하는 비인간적인 학문이다, 상대성이론의 비유클리드 기학학은 고전 물리학의 유클리드 기하학의 논리를 수정케하였다 등등. 결론부터 말해서 여기에 대한 대답은 전부 부정되고 만다. 과학을 흔히 아주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것으로 이해하지만 루돌프 카르납이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한 것은 수학과 논리학에서 과학을 분별하라는 것이다. 과학은 철저하게 경험적 사실로부터 어떤 법칙들을 추론해내는 귀납적인 과정의 학문이다.(물론 경험적 사실로들과 관계지을 수 없는 경험적 법칙이 아닌 이론적 법칙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맥스웰이라는 과학자가 창안한 "전자기 이론"을 들 수 있는데 원자안에서는 움직이는 전자들을 우리는 어떠한 첨단기기를 이용해서도 관찰할 수 가 없다. 그런데 전자기 이론은 무엇을 근거로 구성된 것일까. 하나의 이론적 법칙은 관찰, 측정할 수 있는 경험적 법칙과 관련지어서 탄생된다. 즉 온도가 높아지면 한 부피 내의 기체의 운동이 활발해지는 것으로 우리는 한 원자내의 전자들이 활발하게 움직인다고 가정이 가능한 것이다.) 한 예로 모든 물체는 위로 움직인다. 사과는 물체다 사과를 놓으면 위로 올라간다의 삼단논법은 논리적으로 참이지만 과학에서는 거짓이다. 과학은 뉴튼의 우화를 들지 않더라도 모든 물체가 아래로 떨어지는 반복과 규칙을 통해서 중력 이론이라는 법칙을 만들어냈고 이 공리 체계에 따라 현상의 참, 거짓을 결정한다. 여기서 자칫 오해하고 넘어가기 쉬운 것이 있다. 그것은 과학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어릴 적에 에디슨의 동화를 읽으면서 왜라는 호기심을 가지면 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잠언적 교육은 수정되어야 한다. 이 말은 앞서 말한 '법칙을 만들어낸다는' 말에 유의하면 된다.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중력이 아니다. 아니 중력의 발견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지만 과학이라는 학문의 목적은 '규칙'의 발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설명과 예측을 위해 '법칙'을 기술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때문에 과학은 형이상학적 질문은 하지 않고 현상에 법칙들을 적용하기 위한 실증적이며 경험적인 학문인 것이다. 이 책에는 과학의 이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사실 그 과정에서 상당히 까다로운 과학이론들, 아니 과학 이론들은 차라리 쉽고 논리학이나 수학 이론 등은 읽기엔 상당히 골머리를 썩게 한다. 그러나 뒤따르는 이에 대한 철학적인 설명 등은 과학이 왜 하나의 법칙을 밝히려 하고 모든 것을 정량적인 언어로 측정하려는지에 대하여 명료하게 이해시켜 준다. 그러한 설명들은 과학에 대한 참신한 이해로 머리를 씻게 해주는 청량감을 선사하는데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의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유클리드 기하학의 비교 설명을 세계를 완전히 새롭게 읽을 수 있는 놀라운 관점을 얻을 수 있다.(물론 이는 상대성 이론이라는 새로운 과학 이론 자체의 새로움에 근거하는 것이지만 이는 일차적으로만 그렇다.) 특히 유클리드 기하학도 옳고 비유클리드 기하학도 옳다!는 문장에 이르면 충격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니까 실제 세계는 하나인데 우리는 과학 이론에 따르면 두 개의 세계를 살 수 있다는 말인 것이다. 어느 하나가 그릇되지 않기 때문이다. 카르납은 유클리드 기하학이든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든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만이 남을 뿐이라는 것이다. 미래의 새로운 이론이 나와도 그렇다. 까닭은 과학은 경험적 세계 속에서 모순되지 않는 법칙 즉 설명과 예측이 가능한 법칙을 만들어내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법칙이 모순되지 않고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다면 참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우리는 과학적으로 물체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고 비유클리드 기하학으로도 물체의 현상을 예측하여 똑같은 답을 얻을 수 있다. 문제는 다만 편리성에 있는 것이다. 상대성 이론이 고전 물리학보다 새로운 세계를 보다 간편하게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편리한 법칙들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것을 선호하는 것일 뿐인 것이다. 비록 이 책이 과학에 대한 철학적인 옹호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담론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입문서로서 자격미달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과학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의 수정을 꼭 필요한 것이고 그에 바탕이 되는 과학 지식도 상세하고 알기 쉽게 소개하였다. 옮김이의 말대로 철학도의 입장에선 과학을, 과학도의 입장에선 철학을 이해하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될 만하다. 덧붙이자면 과학과 철학의 합

[인상깊은구절]
논리학과 수학의 법칙들은 그 본성상 과학적인 설명의 토대로 사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현실 세계와 도 다른 가능 세계를 구별하는 어떤 것도 우리에게 아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실 내지는 현실 세계에서의 어떤 구체적인 관찰을 우리에게 설명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경험적 법칙으로 설명해야 한다. 경험적 법칙은 논리학과 수학의 법칙처럼 확실성을 띠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세계의 구조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해 준다.
m*******e 2001.07.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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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에 대한 진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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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할 수 있는" 것과 "관찰할 수 없는" 것은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에 그 두 개념을 딱 부러지게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 차이가 일반적으로 매우 크기 때문에 논쟁이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모든 물리학자들은 기체의 압력, 부피, 온도 등과 관련된 법칙은 경험적 법칙이라는 데 동의한다. 이 때 측정되어야 하는 물리량의 크기가 직접적이고 간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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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할 수 있는" 것과 "관찰할 수 없는" 것은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에 그 두 개념을 딱 부러지게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 차이가 일반적으로 매우 크기 때문에 논쟁이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모든 물리학자들은 기체의 압력, 부피, 온도 등과 관련된 법칙은 경험적 법칙이라는 데 동의한다. 이 때 측정되어야 하는 물리량의 크기가 직접적이고 간단한 측정을 통해서도 법칙으로 일반화될 수 있을 정도로 직접적이고 간단히 측정하기에 충분한 공간(부피)과 시간(기간)보다 더 크게,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기체의 양은 그것들을 직접 간단히 측정해서 법칙으로 일반화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물리학자들은 개별적인 분자들의 운동에 관한 법칙은 이론적인 법칙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런 법칙들은 직접적이고 간단한 측정에 토대를 둘 수 없는 일반화와 관련된 미시 과정에 대해서 다룬다. 물론 이론적 법칙들은 경험적 법칙들보다 더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론적 법칙들은 단순히 경험적 법칙들을 취해서, 그보다 약간 더 일반화시킨다고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리학자는 경험적 법칙을 어떻게 도출해 낼까? 물리학자는 자연에서 어떤 사건들을 관찰한다. 그리고 그는 어떤 규칙을 알아 낸다. 그는 그 규칙을 귀납적 일반화를 통해서 기술한다. 그는 여러 경험적 법칙들을 한데 모아서 몇 가지 패턴을 관찰하고, 좀더 넓은 귀납적 일반화를 통해서 하나의 이론적 법칙을 도출했다고 제안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도출된 법칙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론적 법칙이 아니다. 이 책은 이런 논의에 대해 적절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여기서 주의해야 될 것이 있다.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관찰한 수 있는" 이라는 용어와 "관찰할 수 없는" 이라는 용어를 서로 매우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다. 철학자들에게 있어서 "관찰할 수 있는" 이라는 말을 매우 좁은 의미를 가진다. 그들은 그 말을 "파란", "단단한", "뜨거운"과 같은 속성들을 나타내는 데 사용한다. 그러한 것들은 감각에 의해서 직접 지각될 수 있는 속성들이다. 물리학자들에 있어서 그 말은 좀더 넓은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비교적 간단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측정될 수 있는 양으로 측정할 수 있는 물리량들까지를 포함한다. 어떤 철학자는 80℃의 온도, 또는 42.5Kg의 무게 등을 관찰할 수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러한 물리량들은 감각을 통해서 직접 지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들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물리량들은 매우 간단한 방식으로 측정될 수 있기 때문에 관찰할 수 있는 것이 된다. 무게는 저울에 올려 놓으면 잴 수 있고, 온도는 온도계로 측정하면 된다. 물리학자는 전자나 분자의 질량도 관찰할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것들을 측정하는 절차가 훨씬 복잡하고 간접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z******8 2001.04.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