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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그러나 절망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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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왜 고통을 받는가? 이 모든 것이 그저 하나의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농담일 뿐인가? 우리가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질문에 답해야만 하네 말러가 쓴 편지 중에서   출생과 동시에 한 인간의 고통과 절망은 희망과 사랑과 같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 이미 열어버린 절망의 보석함에 남아있는 작은 희망을 보며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그래도 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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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왜 고통을 받는가? 이 모든 것이 그저 하나의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농담일 뿐인가? 우리가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질문에 답해야만 하네

말러가 쓴 편지 중에서

 

출생과 동시에 한 인간의 고통과 절망은 희망과 사랑과 같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 이미 열어버린 절망의 보석함에 남아있는 작은 희망을 보며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그래도 밀려오는 고통과 후회, 두려움 속에서 인간은 눈물 짓는다. 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의미없는 쾌락을 쫓아 망각의 세계로 빠져들기도 한다.

그것도 잠시 ‘죽음’은 어디에 숨어있는 인간이라도 찾아내어 그의 앞에 무릎꿇게 만든다.

‘끝나지 않는 패배’ 인간은 죽음이 버티고 있는 한 끝나지 않는 패배를 맛보는 게임을 계속한다.

 

 

 

같은 운명을 타고난 다른 인간의 존재도 위로가 되지만 그들에게서 절대적인 위로를 찾기는 힘들다.

우리가 사랑 또는 우정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불확실하고 우연한지 상상하게 된다. 그럴 때 세계는 암흑 속에 빠지고, 우리는 인간의 다정함 덕분에 잠시 피했던 맹추위 속으로 되돌아간다.

카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삶에서 위안받고자 한다. 희망을 가지고 시간을 살아내며 위로를 찾아헤맨다.

인간의 지혜는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과학, 계몽, 문명, 지혜 등 우리의 삶 주변에는 모두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것들로 가득하다. 몇몇 단어는 그 의미나 색깔이 퇴색해져버렸지만 희미하게나마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 중 전통이 가장 빛바랜 것이 위로 아닐까?

 

 

우리는 위로의 전통을 물려받은 동시에 그 전통에 반발한 세기의 상속자이다.

오늘날 언어는 한때 종교적 전통에 의지했던 의미들을 잃었다. 성공을 좇는 문화는 실패나 패배 혹은 죽음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위로는 패배자를 위한 것이 되었다. …

불행에 빠져서 도움이 필요하면 우리는 혼자 애쓰거나, 불행에 빠진 다른 이를 찾거나, 전문 의료인의 도움을 구한다. 의사들은 우리의 고통을 회복이 필요한 질병으로 본다.

p.19-20

 

 

오늘날 위로는 ‘패배자의 언어’이자 ‘병자들을 위한 치료약’으로 소모된다. 위대한 언어, 신의 존재, 음악과 미술 그리고 위로의 철학은 더이상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어떤 경험은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상실과 상처 그리고 흉터의 존재를 노래하는 위로가 사라지면서 더 큰 비극이 인간을 내리누르고 있다. 넘치는 정보와 쾌락은 일시적인 멈춤 버튼일 뿐 위로가 되지 못한다. 이 책은 전통적인 ‘위로’를 통해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세상의 질서와 화해하는 삶을 알려준다. 그리고 마주칠 수밖에 없는 스스로의 한계와 실패, 패배의 순간에 환상으로 도주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1. ‘체념’이라는 거짓 위로를 거부해야 한다. - 욥기

 

욥기는 욥의 신앙심을 이유없이 시험하는 신의 이야기이다. 욥에게 갖은 고통으로 주어 신의 존재에 의문을 갖길 원하는 악마는 욥의 건강, 가족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욥에게는 그 어떤 위로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욥은 신의 존재를 믿는다. 그러나 그는 그의 고통에 ‘의문’을 갖는다.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그의 문제를 직면한다는 것이고, 문제를 직면함으로써 ‘거짓 위로’를 거부할 수 있다.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 일은 당연히 일어났어야 하며, 이 고통은 나의 것’이라는 체념과는 다르다. 이유없는 죄책감과 의미없는 운명을 인간은 부여받지 않았다.

우리가 찾아야 할 답은 운명과 맞닥뜨리며 끝없이 고통받는 인간의 상황, 그 회오리바람 속에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맞는 답을 찾기 위해서는 누더기를 걸치고 하늘을 향해서 감히 주먹을 들어 올리던 자와 같이 용기를 내야 한다.

 

 

 

2. 스스로에게 진실한 말을 건네야 한다. -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로 태어난 사람이었다. 온갖 권모술수를 보면서 성장한 그는 사람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매순간 ‘황제’의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연기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는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무질서한 그의 생각을 솔직히 기록했다. 그의 솔직한 고백은 황제라는 존재조차 고통과 고난에 시들렸음을,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음을 그리고 모든 존재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위안을 후세에게 남긴다.

 

 

그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완전히 내면화한 배우라고 상상한다. 무대 위의 배우는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는 무심한 말을 전해듣는다. “그러나 나는 5막 가운데 3막밖에 공연하지 않았소.” 그는 자신이 간청하는 소리를 듣는다. “거기까지일세.” 목소리가 말한다. “자네 삶은 3막이 끝이라네.”

p.108

 

 

3. 다른 이들을 위한 시간은 흐른다. -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시간’은 모든 것의 답이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과 상실의 허무감도 시간이 흐르면 퇴색되기 마련이다. 모든 아픔의 유일한 치료제는 시간이다. 그러나 시간은 미래를 향해 흐르는가? 종교에서 ‘시간’은 미래를 향해 흐르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어우러져 세계를 함께 구성한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기독교 신앙의 시간관념을 잘 묘사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표현한 것이다. 로마 제국 시대부터 당대에 이르는 대표 인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그림의 ‘현재’ 속에 공존한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멈추거나 늦추거나 되돌릴 수 없다는 것, 우리의 상실은 좋은 일이 될 수 없다는 것, 미래는 알 수 없고 과거는 되돌릴 수 없으며 우리의 시간은 죽음으로 끝나지만 우리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순간에도 다른 이들을 위한 시간은 흐른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p.141

 

이런 시간의 공존은 우리에게 어떤 위로를 줄까? 미래만이 희망이 아님을 지금이야말로 이 고통과 상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개인의 시선으로 시간을 인식하지 말고 다른 이들의 시간 역시 의식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외에도 음악이 주는 위로의 효과(유동성 지향성)이나 죽음의 참된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슬리 손더스의 일화를 읽을 수 있었다.

 

 

심리학이나 정신의학,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고통은 실험실에서 구현되고 치료제가 ‘발명’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 역시 심리학책이나 뇌과학책을 읽으며 인간의 고통과 상실이 과학적으로 치료될 수 있는 질병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을 찾아들으면서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규명되기에는 너무나 거룩하고 긴 역사의 시간 속에서 인류의 몸 속에 차곡차곡 쌓여온 ‘위로’였다. 그것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인간의 무모한 용기이기도 했다.

 

 

성과주의, 자본만능주의 시대가 무르익어가면서 ‘진정한 위로’가 패배와 같은 이름으로 발붙일 곳 없을 때 이런 책을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도 이 책을 읽으며 진정한 위로를 얻기를 바래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f*****j 2023.04.10. 신고 공감 17 댓글 11
리뷰 총점 종이책
그러나 절망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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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절망에 빠지면 나만 이런 일을 겪고 있다는 고독을 느끼게 됩니다. 세상 어디를 둘러 보아도 내 상황이 제일 힘들어 보이고, 나에게만 특별한 불행이 닥친 것처럼 느껴집니다.   옥스포드 대학과 토론토 대학,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현재 중부유럽대학의 총장으로 있는 마이클 이그나티에프 교수는 상당히 흥미로운 기획의 책을 집필했습니다. 제목부터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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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절망에 빠지면 나만 이런 일을 겪고 있다는 고독을 느끼게 됩니다. 세상 어디를 둘러 보아도 내 상황이 제일 힘들어 보이고, 나에게만 특별한 불행이 닥친 것처럼 느껴집니다.
 
옥스포드 대학과 토론토 대학,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현재 중부유럽대학의 총장으로 있는 마이클 이그나티에프 교수는 상당히 흥미로운 기획의 책을 집필했습니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그러나 절망으로부터 가 그것입니다. 마이클 이그나티에프 교수는 이 책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이 책에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깊은 절망감에 빠졌던 인물들을 선정해 그들의 상태와 내면을 관찰해갑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욥과 바울, 명상록의 저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부터 링컨 대통령까지 다양한 시대와 환경에 속해 있던 수많은 인물들이 소개됩니다.
 
세상엔 수많은 곤경을 겪은 인물들이 있지만 욥은 그중에서도 압도적인 고난을 겪었습니다. 욥은 한 때 건강한 몸과 토끼같은 자식들, 단란한 가족, 풍족한 재물과 땅을 가지고 있었지만 신의 시험을 통과하며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애초에 가진 것이 없는 것도 서운하겠지만,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가 잃었을 때의 낙차는 감히 상상하기조차 힘듭니다. 코인을 통해 큰 돈을 벌었다가 한 번에 잃고 무너져 버린 이야기나 우리가 볼 땐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음에도 시련을 겪은 뒤 스스로를 포기해버리는 이야기 들을 종종 듣게 됩니다. 욥은 절망 백화점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모두 겪어낸 인물입니다. 그런데 욥은 신을 향해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하고 감히 주먹을 들어 올리기도 하며 답을 향해 나아갑니다.
 
시편의 저자는 뼈 마디가 어그러지고 식욕조차 모두 잃었다고 고백할 정도의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포기하지 않고 신과의 대화를 이어갑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전염병과 전쟁 등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거대한 산 앞에 늘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절망 앞에 주저앉아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명상록을 집필합니다. 이 명상록은 시대를 넘어 인류의 고전으로 불리우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하였습니다.
 
이 책에 기록된 인물들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만한 거대한 절망을 마주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절망에 저항해갑니다. 절망에 파묻히고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갑니다. 모두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위로의 방식도 방향성도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를 해나갔고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기억되는 어떤 열매로써 맺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실패가 얼마나 큰 스승이 되어주었는가를 설파합니다. 절망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선 실패하지 말라는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라, 잘 실패하자는 위로와 도전의 메세지가 제공되어집니다.
 
실패하면 인생은 끝난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여기 잘 실패하자며 실패의 유익을 전해주는 놀라운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well-실패의 새로운 각성을 통해 오늘 여러분의 인생을 새롭게 해석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절망을 통해서 더 깊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어둠과 괴로움과 고독의 시간을 응원합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반전 스토리를 쓰게 될 것입니다. 절망을 기꺼이 수용하고 전진해갑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달의 사락 w********0 2023.04.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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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절망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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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위안을 얻기 위해서 투쟁했던 서구의 위대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키케로, 아우렐리우스, 단테, 몽테뉴, 흄 등 시공간을 초월하여 오늘날까지 이름을 떨친 이 위대한 인물들 역시 삶이 주는 시련을 치열하게 겪어냈음을 알게 된다. 특수한 동시에 보편적 의미가 있는 삶의 시련 속에서 비범한 생각과 의의가 어떻게 탄생하지는 지를 보여준다. 이 위대한 인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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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위안을 얻기 위해서 투쟁했던 서구의 위대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키케로, 아우렐리우스, 단테, 몽테뉴, 흄 등 시공간을 초월하여 오늘날까지 이름을 떨친 이 위대한 인물들 역시 삶이 주는 시련을 치열하게 겪어냈음을 알게 된다. 특수한 동시에 보편적 의미가 있는 삶의 시련 속에서 비범한 생각과 의의가 어떻게 탄생하지는 지를 보여준다. 이 위대한 인물들은 암담한 시기를 견디며 예술, 철학, 종교를 통해 위안을 발견해왔다. 그들의 작품은 시간을 거슬러 오늘날 우리에게 읽히며 위로의 건네준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이 위대한 인물들이 전해준 위로의 전통을 물려받았음과 동시에 그 전통에 반발한 세기의 상속자라고 한다. 과거 수천 년간 서구 세계에서 천국은 희망을 구체화한 형식으로 존재했지만 16세기에 이르자 유럽인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21세기 현재에 이러한 불신은 모두는 아닐지라도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한다. 비서구권에 살고 있는 동양 세계도 이러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한때 종교적 전통에 의지했던 의미들을 잃었다. 성공을 좇는 문화는 실패나 패배 혹은 죽음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위로는 패배자를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인생의 절망에 빠졌을 때 운이 좋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지만 보통 혼자 애쓴다. 좀 더 적극적인 경우에는 불행에 빠진 다른 이들을 찾거나 전문 의료인의 도움을 구한다. 의사들은 고통을 회복이 필요한 질병으로 간주한다. 이 고통은 증상별로 분류되어 각각 서로다른 구체적인 병명이 부여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디서 진정한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저자는 역사적 인물들에게서 위로를 발견하고 독자에게 전달한다. 저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위대한 이들의 생애 속에서 시련의 순간을 모으고 모아 우리에게 들려준다.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민족과 전쟁을 치르면서 밤마다 자신을 위해서 글을 썼다. 우리는 그 글을 <명상록> 이라는 제목으로 알고 있는데 원고에 원래 붙은 제목은 그리스어로 <혼잣말>이라고 한다. 황제는 칠흑 같은 고독 속에서 두려움과 외로움을 물리쳐가며 고백의 형식으로 위안을 구했다. 그는 늙어가는 황제로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럴 상대가 없었다. 가족도 신하도 모두 위로의 대상이 아니었다 . 아내는 이미 세상에 없는 존재였고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아들은 아버지가 쇠약해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자 즉위의 가능성을 계산하고 있었다. 신하들은 금욕적이고 탈세속적인 태도를 가진 황제를 좋아하지 않았다.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존재였지만 그는 자신의 운명은 통제할 수 없었다. 위로를 얻고 싶지만 주변엔 사람이 없었다. 그는 글을 썼다. 황제가 쓴 글은 외부로 유출되어선 안된다. 오로지 본인만 볼 수 있고 보아야 할 은밀한 글을 쓰며 희망은 아니더라도 계속 살아갈 의지를 구했다. 그의 글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그가 발견한 위로는 혼자 있는 시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황제로서 짊어진 역할, 의무, 책임으로부터 나온다는 역설이다. 그가 죽은 뒤 그의 글은 수 세기 동안 잊혔다가 어느 수도원에서 필사되었고 그가 살아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목적을 부여받았다. 황제조차 지배할 수 없는 혼란과 번민에 빠진 삶이 그의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 것이다. 

<명상록>은 스토아 철학의 위대한 모범으로 인정받으며 오래도록 살아남아 우리에게 전해진다. <명상록>이 우리에게 여전히 위로가 되는 이유는 책에 담긴 가르침이 아니라 잠재울 수 없는 삶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외로움과 좌절감, 공포와 상실을 비할 데 없이 솔직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은 위로를 얻는다. 아무런 권력도 재능도 명예도 없이 늙어가는 범속한 나는 오래전 먼저 살다간 황제의 혼잣말을 읽으며 그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존재 자체가 고통인 순간, 위로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계속하여 만난다.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은 점점 많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견뎌야 한다. 이 고통을 그럴듯하게 해석하는 거짓 위로를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죄책감을 거부하고 삶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그 순간은 결코 빨리 오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용기를 내야한다.

실패는 계속된다. 실패 이후에는 자기 연민이 뒤따른다. 더 나쁜 상황도 발생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해야한다. 나의 최선은 언제나 충분하지 않음을 안다. 이 책에서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은 다음의 문장이다. 

P 367

그러나 이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하벨이 그러했던 것처럼 한때 나였던 사람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노력에 약간의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몫의 실패에만 책임을 저야 한다는 것을 결국 깨닫는다. 이 느리고 간접적이고 거의 무의식적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위로를 얻는다. 그리고 어쩌면 실패로 인해서 나 자신을 더욱 잘 알게 되었음에 감사하게 될지도 모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m****i 2023.04.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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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절망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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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평생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슬픔과 고통을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전쟁이나 재해 같은 사회적 아픔이 급작스럽게 찾아오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거나 큰 실패를 겪는 등 개인적인 고통에 잠식당하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우리는 그 절망으로부터 서둘러 빠져나와 평온한 일상을 되찾으려고 한다.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각각의 사람들의 위안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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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평생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슬픔과 고통을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전쟁이나 재해 같은 사회적 아픔이 급작스럽게 찾아오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거나 큰 실패를 겪는 등 개인적인 고통에 잠식당하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우리는 그 절망으로부터 서둘러 빠져나와 평온한 일상을 되찾으려고 한다.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각각의 사람들의 위안의 기록들을 이책속에 담았다. 크나큰 절망이나 고통에 온전히 마주하고 그들의 위안을 서로 주고받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도록 다양한 위로의 모습과 위로의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우리들은 이 속에서 절망과 고통속에서 어떻게 하루빨리 빠져나와 진정한 위안을 얻을 수 있는지,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위안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되는것 같다.

개개인마다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담고 살아간다. 불행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를 17편으로 담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철학적으로 종교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모습부터 미래에 대한 이상향, 그리고 깊은 절망과 슬픔 속에서 한줄기 빛이 되어준 음악이나 편지등을 다루며 인류가 지금껏 구해온 위로가 무엇인지 다각도로 바라본다. 시대의 배경과 중요한 인물들도 나온다.

개인의 위안부터 사회의 위안까지 폭넓게 담았고 다뤘다. 가장 보편적인 슬픔부터 시대상황에 대한 슬픔까지 그리고 이런 것들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전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수천년이 흘러도 위로의 전통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힘을 가져다줄수 있는지 보여준다.

우리들은 수천년전 위로의 배경속에 있던 이들과 연결되어 있고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해준다.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할지 우리에게 필요한 공동의 배경은 무엇인지 깨닫을 것이다.

이 책은 개인의 슬픔을 어루만지며 치료하는 책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개인적인 이야기에 속한다. 이 책이 취한 형식-위안을 얻기 위해서 투쟁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은 특수한 동시에 보편적 의미가 있는 삶의 시련 속에서 비범한 생각과 의의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특별히 강조한다.

p.11

한때 위로는 철학의 주제였다.철학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죽어야 하는지 일러주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고대 세계의 스토아 철학에서 위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 분야 였다.

p.19

키케로가 건네는 위안은 세속적이었고, 여기에서 신은 겨우 흔적만 남은 정도의 역할을 수행했다. 남자는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이 관례였고, 지위가 높은 여자는 순결한 처녀의 신전을 지키는 사람으로 선발되었다. 남녀 모두의 운명은 신의 손에 달려 있지만, 신은 높은 곳에서 냄당하고 무심하게 인간의비극을 지켜볼 뿐이라고 여겨졌다.

p.75

*예스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그러나절망으로부터 #마이클이그나티에프 #책스타그램 #yes24 #서평 #까치출판사 #위안 #위로 #위로의책

j********7 2023.04.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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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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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담하건대 지극히 쉽게 얻을 수 있는 위로의 형식이 있네. 우리는 이것들을 입술에, 가슴속에 늘 간직하고 있어야 하네. 우리는 인간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법칙 안에서 삶은 운명이라는 화살과 돌팔매의 과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네. 그와 같은 조건 속에 살기를 거부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고, 어떤 예언으로도 피할 수 없는 불운에 참을성 없이 분개하는 것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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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담하건대 지극히 쉽게 얻을 수 있는 위로의 형식이 있네. 우리는 이것들을 입술에, 가슴속에 늘 간직하고 있어야 하네. 우리는 인간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법칙 안에서 삶은 운명이라는 화살과 돌팔매의 과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네. 그와 같은 조건 속에 살기를 거부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고, 어떤 예언으로도 피할 수 없는 불운에 참을성 없이 분개하는 것도 가당찮은 일이네. 다만 우리는 다른 이에게 닥친 불행을 떠올림으로써,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또한 전혀 새로운 것이 없음을 반추 해볼 수 있다네.'

                                                                                                             -키케로

 

기원전 48년 내전에서 폼페이우스 편에 섰던 키케로는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승리의 깃발을 들어 올린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극적으로 화해 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되는 권력의 무게에만 정신을 쏟으며 키케로에게 원로원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뼛속 까지 공화주의자 였던 키케로는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마저 포기 하고 로마 제국의 견고함을 유지 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아 부었지만 카이사르가 완전한 권력을 손에 쥐는 순간 자신의 운명이 공화정이 죽음의 문턱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가 그토록 바랬던 로마 제국이 흔들리고 있던 순간, 그의 삶의 터전인 가정도 붕괴 되고 있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큰 딸 툴리아는 아버지의 바램 대로 결혼을 했지만 세 번의 결혼 모두 불행으로 끝나버렸다.

로마의 법정과 원로원을 쉼 없이 오고 갔던 키케로는 삼십년 동안 유지 했던 결혼 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60세 나이에 대부 관계를 맺은 18세 푸블리아와 결혼식을 올렸지만 그는 여전히 모든 일을 큰 딸 툴리아와 상의 하며 인생의 최고의 순간 부터 최악의 순간 까지 딸과 함께 한다.

서른 두 살의 나이에 첫 아이를 임신한 툴리아는 출산 도중에 사망하고 딸의 죽음에 큰 충경을 받은 키케로는 딸의 시신과 갓 태어난 손주를 가사 노예들에게 맡겨 버리고 로마 남쪽에 있는 자신의 사유지 별장에 은신한다.

 

언어의 연금 술사 키케로는 그토록 사랑했던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삶을 지탱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독재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토록 강건한 키케로가 로마 시민들에게 자신의 슬픔을 보여 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은신하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키케로의 가장 가까운 친구 술피키우스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내라고 지시한다.

'왜 그런 개인적인 슬픔 때문에 괴로워하는가? 지금까지 운명이 우리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생각해보게, 인간에게 자식만큼 소중한 국가, 명예, 지위 같은 온갖 정치적 영예를 우리가 빼앗겼다는 사실을 떠올려보게. 하필 지금 그 상실이 자네의 감정을 특별히 더 상하게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지금까지도 자네 마음이 모든 지각을 잃고, 다른 모든 것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서야 되겠는가? 자네의 슬픔이 정녕 딸 때문인가?'

                                                                                                             -술피키우스

 

카이사르의 지시를 받고 이 편지를 쓴 술피키우스는 재빨리 회신하는 답장으로 위장해서 진심을 담은 편지를 키케로에게 보낸다.

 

카이사르가 공화정을 장악하고 원로원들을 하나 둘 씩 내쫓는 순간에 술피키우스는 주요 도시들을 둘러보다 큰 충격을 받는다.

한 때는 번성했던 도시들이 도적질과 범죄 집단 그리고 이민자 무리들에 의해 시민들이 착취와 억압을 당하며 노예처럼 살고 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다시 로마로 돌아온 술피키우스

그는 친구의 슬픔을 위로 하면서도 정적들이 나약해진 키케로에게 언제 어느 순간에 칼을 들이 댈지 모르니 하루라도 빨리 정신을 차리라며'아버지의 영광과 명예에 올라타서 온갖 것을 누릴 만큼 누렸던 딸의 인생은 딱 여기 까지라며 키케로의 유일한 혈육인 갓난쟁이 손주의 미래를 위해서 다시 일어서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는 회신하는 답장에 적어 보냈다.

친구가 보낸 두 가지 종류의 편지의 뜻을 알아차린 키케로가 친구 술피키우스에게 보낼 답장을 쓰는 동안 로마 전역은 딸을 잃은 슬픔에 빠진 키케로가 술독에 빠져 살고 있다는 소문이 급속하게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곧바로 이 소문의 진위 파악에 나선 브루투스는 키케로가 카토의 준엄한 자기 통제를 잃어 버렸다며 원로원 회의장에서 맹 비난을 퍼붓는다.

키케로의 둘도 없는 친구들은 서둘러 괴소문의 진화에 나섰고 원로원의 글을 대필 하는 작가들은 서둘러 로마 시내 전역에 퍼져 있는 키케로의 명문이 담긴 연설문을 수거 하는데 전력 질주를 가한다.

 

키케로는 지난 날 자신이 쓴 모든 편지 속에 누군가에게 건네는 '위로'와 '위안'의 말들로 가득 채웠고   내전이 발발했던 순간에도 적의 심리를 뒤 흔들기 위해 거짓 위로와 위안으로 위장하며 공화정의 운명을 쥐락 펴락 했다.

그는 추방 당하는 순간에도 적들에게 포위되어 사유지를 박탈 당하는 순간에도 그리고 보복 살인 현장에서도 모든 운명 앞에 초연한 자세로 적의 심장을 뒤흔들 수 있는 강력한 언어로 말했고 글을 썼다.

그는 공화정이 존속 되는 동안  권력이 요동 쳐도 어떤 싸움도 붙어 볼 만 했고 어떤 적들도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딸의 죽음 앞에서 키케로는 자신의 가장 큰 무기 였던 현란한 언어를 잃어버린 키케로는 자신의 슬픔을 위로할 그 무엇을 찾지 못한다.

 

'나에게는 늘 도망칠 안식처, 피난처가 있었네. 다정한 대화로 나의 온갖 불안과 슬픔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네. 집에도, 법정에도 내가 있을 곳은 없네. 더 이상 국가로 인한 슬픔을 가정 생활을 통해서 위로 할 수 없고, 가정에서 생긴 슬픔을 국가를 통해서 위로 할 수도 없네.'

                                                                                                              -키케로

 

자신이 그동안 쌓아 올렸던 모든 노력들이 무너져 버렸다고 생각한 키케로는 책장을 샅샅이 뒤져서 고대 그리스 시대에 해방 노예 출신의 서기 티로가 쓴 글을 찾아 낸다.

그는 3개월 동안 스스로를 가학적일 정도로 몰아 붙이며 마침내 <위안>이라는 제목의 책을 완성한다.

 

'위안에 이르는 길은 많지만, 가장 곧은 길은 이것이다. 이성으로 시간의 힘을 믿고 그 결과를 따르는 것.'

 

로마로 돌아가는 길에 키케로는 자신 앞에 남아 있는 생을 걸고 독재에 저항하는 길만이 딸을 잃은 슬픔을 극복 할 수 있다 믿었다.

그는 이제 가족의 슬픔을 딛고 일어서서 전제적인 독재 정권 통치 아래서 권력에 아부 하지 않고 공화정 수호를 위해 고귀한 대의를 위한 삶, 죽음 조차 두렵지 않았다.

로마로 돌아 오자 마자 키케로는 카이사르 통치에 반대 하는 투쟁을 벌이는 로마 시민들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3월 15일 드디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의 자리를 차지 하기 위해 원로원을 행해 칼 끝을 겨누는 순간, 키케로는 날카로운 언어로 공격을 퍼부었다.

 

그는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다.

 

키케로는 정치 권력 앞에서 극도로 계산적인 기회주의자였지만 딸을 잃고 난 후  담대 하게 독재 권력에 맞서며 피로 물들인 원로원 회의장에서도 폭력을 규탄했다.

그는 공화정의 운명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와 연합해서 군사력을 합치는 순간 그의 이름은 살생 명부에 올라간다.

키케로는 가사 노예들이 급히 마련한 가마에 올라타자마자 딸의 죽음을 슬퍼했던 남부 지역 사유지로 도망칠지 아니면 저 멀리 그리스로 도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바로 코 앞에 암살자들이 와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가마에서 내려 그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암살자들은 도착하자 키케로의 목과 두 손을 잘라 즉각 로마로 보냈고 그의 머리는 안토니우스 집으로 보냈다.

안토니우스는 키케로의 잘려 나간 머리를 보자 마자 혀를 잘라 내서 바늘로 수 십 번을 찔러 버릴 정도로 그동안 자신을 공격했던 키케로의 날 선 언어, 그가 내뱉은 말에 저주를 퍼부었다.

 

'나의 용기는 이제 모든 희망을 잃은 덕분에 놀라우리 만치 단단 해졌다네.'

 

한 때 키케로는 는 자신의 높은 지위 덕분에 개인의 소소한 슬픔이나 아픔 정도는 가볍게 지나갔다는 말을 했지만 사랑하는 딸을 잃고 난 후 남아 있는 자신의 생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광란의 권력의 광풍을 막기 위해 용감하게 죽음에 맞섰다.

키케로는 국가적 운명의 순간에 겪은 개인의 슬픔과 고통을 스토아 철학으로 완성했고 역사는 그를 위대한 공화정 수호자라 기억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절대로 슬픔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모두 용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절대로 슬픔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키케로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f*******d 2023.04.0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러나 절망으로부터
"그러나 절망으로부터" 내용보기
이 책은 인생이 절망적이라고 느낄 때 그것을 버틴 옛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신에 대한 마음으로 그 시간을 버티기도 하고,  음악으로, 그림으로, 때로는 글로.  신념으로 버티기도 했다.   저 마다 인생의 모서리에서 몸부림칠때 이 책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견뎌내며 삶을 유지했다.  견딜 수 없는 슬픔도, 피할 수 없는 고통도 고스란히 각자의 몫이었다
"그러나 절망으로부터" 내용보기

이 책은 인생이 절망적이라고 느낄 때 그것을 버틴 옛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신에 대한 마음으로 그 시간을 버티기도 하고, 

음악으로, 그림으로, 때로는 글로. 

신념으로 버티기도 했다.

 

저 마다 인생의 모서리에서 몸부림칠때

이 책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견뎌내며 삶을 유지했다. 

견딜 수 없는 슬픔도, 피할 수 없는 고통도 고스란히 각자의 몫이었다. 

 

그 중에 나는 '까뮈'의 이야기가 와 닿았다. 

 

세상을 밝히고 견딜 만하게 해주는 것은 우리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더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어떤 날에는 … 그들 대다수가 우리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가 사랑 또는 우정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불학실하고 우연한지 상상하게 된다. 그럴 때 세계는 암흑 속에 빠지고, 우리는 인간의 다정함 덕분에 잠시 피했던 맹추위 속으로 되돌아간다.  (306쪽)

 

까뮈는 폐결핵 때문에 프랑스 한 지역에 요양을 갔다.

폐결핵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프랑스에서 병세에 차도가 있었고

덕분에 함께 왔던 아내는 알제리(까뮈는 알제리 태생이다.)로 돌아갔다.

아내가 돌아간 뒤 전쟁이 터졌고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는 바람에

까뮈는 알제리로 가지 못하고 가족과 헤어진 채 홀로 병마와 싸워야했다. 

그 곳에서 까뮈는 '페스트'를 썼다.

 

 

우리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힘든 일이 닥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을 때 지독하게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타인의 위로가 들리는 것도 아니다. 

 

그런 어머니에게서 카뮈는 가장 강력한 위로는 말없는 위로일 수 있음을 배웠다. … 그저 침대맡에 앉아 누군가의 손을 잠아주는 것, 그들에게 물을 가져다주고 옷을 갈아입히고 배설물을 치워주고 고통이 줄오들도록 돕는 것 그것이 유일하게 중요한 위로였다. (321쪽)

 

힘들 때 누군가가 사 준 따뜻한 밥 한 끼는 잊혀지지 않는다. 

절망 앞에 다양한 모습을 갖출 수 있지만 

까뮈처럼 그렇게 함께 서 있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m********8 2023.04.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