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8)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88%
  • 리뷰 총점8 12%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10.0
  • 40대 9.0
  • 50대 10.0

포토/동영상 (3)

리뷰 총점 종이책
내려오는 모습
"내려오는 모습" 내용보기
시는 읽는 재미가 있다. 단편소설도 읽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그 재미는 완전히 다르다. 시는 감상하고 느끼는 재미가 있고, 좀 더 많은 능동적인 참여를 나에게 요구한다. 어떻게 보면 의무처럼 보여지는 권리다. 이 권리를 사랑하게 될 때 시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권리같은 의무로 이 시를 봤다. 이 책에는 작은 책이 덧붙여 왔는데, 읽지 않았다. 시를 읽는 것은
"내려오는 모습" 내용보기

시는 읽는 재미가 있다. 단편소설도 읽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그 재미는 완전히 다르다. 시는 감상하고 느끼는 재미가 있고, 좀 더 많은 능동적인 참여를 나에게 요구한다. 어떻게 보면 의무처럼 보여지는 권리다. 이 권리를 사랑하게 될 때 시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권리같은 의무로 이 시를 봤다. 이 책에는 작은 책이 덧붙여 왔는데, 읽지 않았다. 시를 읽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거기에 어떤 편견을 줄 사전 지식은 뱀의 팔 같은 것이다. 그리고 번역은 새로운 창작이다. 번역자에 따라 시는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여자가 쓴 시를 남자가 번역하고, 남자가 쓴 시를 여자가 번역하면, 아무래도 그 시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남자와 여자는 같은 인간이지만, 다른 종족이다. 남자의 삶과 여자의 삶 속에 사용하는 언어는 다르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대화하지만, 서로 그 뜻이 뭔지 모르고 방언처럼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방언으로 대화할 수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시에서는 작가의 사랑, 가족, 연민, 그리고 적나라한 성적 묘사가 드러난다. 이혼을 한 것 같고, 언니가 일찍 죽었고, 아이가 일찍 죽은 것 같다. 남편과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는 아픔 등도 느껴진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른다. 시 앙네서, 시 안에서 보여지는 시의 주인공에게서 느껴지는 일관된 느낌이 그렇다. 얼핏 이 책에 대해 설명하는 글 중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본 적이 있는데, 사실 죽음에 대한, 관련된 시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몇 번 읽다 보면 작가의 시풍이 그려진다. 때로 보이는 멋진 표현들은 한번 적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후반부로 가면 적나라한 성적 묘사들이 나온다. 꽤 성적인 시들이다.

 

시라는 추상적인 언어로 쓰여진 문학이 어떻게 노벨문학상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시에 대한 평가는 소설과 다르고, 그 평가의 폭은 사람수만큼 다르다. 그런데 어떻게 문학상에? 그것도 자국이 아닌 수많은 문화들이 부딪치는 세계적인 문학상에? 시는 문학상의 범위를 넘어선다. 시 속에서 세상을 구원할 힘을 발견하고자 했던 철학자들의 시도가 무식하고 어이없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것처럼, 시는 인간의 영역에서 평가될 문제가 아니다. 각자 하나 하나의 개인이 평가해야 할 문제다

h****m 2023.11.1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서평] 내려오는 모습 (시집)
"[서평] 내려오는 모습 (시집)" 내용보기
[서평] 내려오는 모습 (시집) 서평 ▷ 전창수   1968년 포틀랜드에서 ▷ 당신은 서 있다 바위들이 서 있듯이 / 투명한 그리움의 파도로 / 바다가 도달하는 바위들; / 바위들은, 끝내, 훼손된다 ; - p.41   시집이다. 루이즈 글릭의 시다. 유명한 사라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다. 시들이 바위 같다. 바위 뒤에 감춘 이끼들도 보인다. 끝내 훼손된 바위들이 슬픔의 저
"[서평] 내려오는 모습 (시집)" 내용보기

 

 

[서평] 내려오는 모습 (시집)

서평 전창수

 

1968년 포틀랜드에서 당신은 서 있다 바위들이 서 있듯이 / 투명한 그리움의 파도로 / 바다가 도달하는 바위들; / 바위들은, 끝내, 훼손된다 ; - p.41

 

시집이다. 루이즈 글릭의 시다. 유명한 사라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다. 시들이 바위 같다. 바위 뒤에 감춘 이끼들도 보인다. 끝내 훼손된 바위들이 슬픔의 저 너머로 밀려든다. 삶은 그렇다.

 

시를 읽는 건, 마음이 치유되는 일이고, 여유를 느낄 수 있어, 휴식 같은 기분이 들게 된다. 조금은 삶이 여유로워지는 시간이어서, 시를 읽는 시간들이 좋다. 시집의 이름은내려오는 모습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시간들이 있어서 좋다. 그렇게 살아가는 마음들이 있어서 좋다.

 

조금씩 내려오는 나의 모습들이 보인다.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의 짐도 내려놓고, 조금씩 조금씩 내려오는 나의 모습들. 나의 마음들. 조금은 많이 내려놓고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조금은 완전히 내려놓은 모습으로 나를 살아가다 보면, 마음에 힘이 생겨 올라갈 수 있는 용기도 생기겠지. 올라갈 수 있는 희망도 생기겠지.

 

삶이 너무 힘들어서 택한 길인데, 삶이 너무 힘겨워서 걸어왔던 길인데, 그 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그 길에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처럼 절망스러운 길은 없을 테지. 그래서 희망이 없더라도 길이 없더라도 계속 걸어가는 거겠지

 

그렇게 걷다 보면, 분명 절망의 끝이 보일 거고, 희망이 보일 거고, 그 삶에 빛이 비출 거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겠지. 그렇게 오늘을 알아가는 거겠지. 오늘을 그렇게 살아가면, 내일은 꼭 희망이 보일 거란 기대로 오늘도 살아가기로 한다.

 

- 시공사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h******o 2023.11.1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내려오는 모습
"내려오는 모습" 내용보기
좋았던 점 2020년 노벨문학상 루이즈 글릭이 1980년대 출간한 3번째 단단한 시집 ≪내려오는 모습≫ 죽음이 다가오니 삶이 더 뚜렷해지는 것처럼, 정말과 슬픔 그 언덕 뒤에 숨어있는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시집이다. 이유가 있어 태어난 것이 아니라 태어났기 때문에 의미가 생긴 것이고, 죽음은 피할 수 없고 당연히 받아들어야 하는데 이를 어떻게 필
"내려오는 모습" 내용보기


 

좋았던 점

2020년 노벨문학상 루이즈 글릭이 1980년대 출간한 3번째 단단한 시집 ≪내려오는 모습≫

죽음이 다가오니 삶이 더 뚜렷해지는 것처럼,

정말과 슬픔 그 언덕 뒤에 숨어있는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시집이다.

이유가 있어 태어난 것이 아니라 태어났기 때문에 의미가 생긴 것이고,

죽음은 피할 수 없고 당연히 받아들어야 하는데 이를 어떻게 필연적으로 만나고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내려오는 모습이기도 하강하는 모습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함축적이고 메타적인 루이즈 글릭 문장에 소름 돋는다.

 

인상깊은구절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았어, 우리는 말을 할 수도 있었는데. 그때는 이미 겨울이었어. p15

내가 잠을 자야 당신이 살 수 있을 거예요. 그건 그렇게나 간단한 일. 꿈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꿈은 당신이 통제하는 질병이지, 그 이상은 아닙니다. p59

 

총평

루이즈 글릭으로 보는 시선과 관점이 묘하다.

루이즈 글릭 시인을 처음 만났고 그 시인이 되어 시선을 훔쳐본다.

내려온다고 표현하지만 올라간다는 느낌이 들고 이를 반복하는 느낌이 드는 관점을 바라보면서,

가까웠던 언니 죽음이 작가에게 주는 공포를 시적으로 승화시켜 표현하고 있는데 애처롭다.

자연을 벗 삼아 시를 추상적으로 보내는 루이즈 글릭

자신이 느낀 감정과 보이지 않는 이면을 참 솔직하게 표현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죽음)이 있듯이 세월이 갈수록 적나라한 묘사들을 읽으며 내려오는 모습이 결코

즐겁지 않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느끼게 된다.

≪내려오는 모습≫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에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담겨 있다.

죽음, 상실, 그 자리를 누군가 메꿀 수 없다는 사실 등 루이즈 글릭 시인이 말해주는 문장이 생각보다 무겁다

거울삼아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죽음'을 아름답게 디자인할 수는 없을까.

중요한 것은 챙기고 나머지는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루이즈 글릭은 어떻게 층층이 죽음을 받아들었는지 문장 속에서 찾아보는 즐거움을 만끽해 보자.

독특한 문장이 나로 하여금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전달하여 깊이 있는 사색에 시간을 선물한다.

파고드는 집요한 흔적에 취해보자.

자신만의 언어로 죽음 세계를 바라보고 읽어내는 모습처럼,

우리도 나만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끌어 갈지 사색하는 좋은 시간을 가지기를 희망한다.

 

책이 나에게 하는 질문

글릭, "저는 절망하지요. 실패를 계속 생각하다가, 그 생각을 하면서 자러 가지요."

글릭, 시를 쓰지 않을 때 인터뷰 문장을 보면 시인의 내적 성찰이 돋보인다.

우리가 생각하는 답은 항상 내 안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외적인 것에 얽매이지 말고, 내적인 것에 집중해서 삶을 성찰해야 한다. 자신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삶에 있어 제일 소중한 것들은 모두 내 손이 닿는 범위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루이즈 글릭, 가까운 사람들 죽음과 이별 속에서 절망만 느낀 것이 아니다.

갈수록 성적인 묘사가 나타나긴 하지만 자신이 마음이 곧 자연이며 우주라는 철학적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물질적, 정신적 모두를 담고 있는 '몸'이라는 그릇이 건강해야 마음가짐도 나태해지지 않을 수 있다.

≪내려오는 모습≫ 무겁고 어둡게 소개하고 있어 가끔 가슴이 답답해지긴 하지만 놓치지 말자 그 안에 숨 쉬고 있는 '마음먹기 나름이다'라는 씨앗이 숨 쉬고 있음을.

'시공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평소 관심 있는 분야의 도서만 신청하여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a******0 2023.11.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내려오는 모습 - 노벨문학상 작가 루이즈 글릭의 세 번째 시집
"내려오는 모습 - 노벨문학상 작가 루이즈 글릭의 세 번째 시집" 내용보기
시집 <내려오는 모습>은 미국의 시인이자 수필가인 '루이즈 글릭'의 세 번째 시집입니다. 1968년 첫 시집 <맏이>를 시작으로 무려 14권의 시집을 발표했죠. 그녀의 꾸준한 글쓰기로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볼링겐상, 2020년 노벨문학상, 등 을 수상하였습니다.  이렇게 멋진 시인 '루이즈 글릭'의 시집을 번역하여 출간하고 있는 출판사는 '시공사'입니다. 번역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내려오는 모습 - 노벨문학상 작가 루이즈 글릭의 세 번째 시집" 내용보기

시집 <내려오는 모습>은 미국의 시인이자 수필가인 '루이즈 글릭'의 세 번째 시집입니다. 1968년 첫 시집 <맏이>를 시작으로 무려 14권의 시집을 발표했죠. 그녀의 꾸준한 글쓰기로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볼링겐상, 2020년 노벨문학상, 등 을 수상하였습니다. 

이렇게 멋진 시인 '루이즈 글릭'의 시집을 번역하여 출간하고 있는 출판사는 '시공사'입니다. 번역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인 정은귀씨가 고생해 주셨습니다.

시집은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과 맘을 울리는 시들이 바뀌는데요. 2023년의 끝을 달려가고 있는 지금의 제가 읽은 < 내려오는 모습> 시집은 조금 씁쓸하고 슬픈 느낌이었어요. 

저는 시집을 읽으며 맘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꼭 표시를 해둡니다. 그리고 나중에 읽을 때 내가 왜 표시를 했더라? 생각도 해보고  느낌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혹은 그대로 인지 생각도 해보고하죠. 


위문장은 시인의 뜨거움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그녀는 어떤 심장을 그렸을지 궁금하네요 


시집은 보통 읽기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요. <내려오는 모습> 시집은 추상적인 문장들이 많기는 하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문장들이 머릿속에 이미지를 상상하며 읽을 수 있게 해주었어요. 그래서 조금은 읽는데 수월했던 거 같아요. 

시를 읽으며 허무함이 느껴지기도 했죠. 

조금 무섭기도 했고요. 그래서 시집을 다 읽고 난 느낌은 시인 '루이즈 글릭'이 이 시들을 쓸 때 많이 힘든 일이 있었나 ? 그랬다면 굉장히 자신의 모습, 느낌을 솔직하게 시로 옮겼네. 였어요. 

시공사에서 출간한 시집 <내려오는 모습>은 옮긴이의 해설이 따로 떨어져 있어 특이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떨어져 있으니 들고 다니며 읽기 불편하긴 했어요.


그러나 정은귀씨의 해설은 정말 좋았습니다. 시인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해설이었어요. '루이즈 글릭'의 전반적인 설명과 세 번째 시집인 <내려오는 모습>의 의미까지 정성이 느껴져 좋았습니다.

그리고 제목<내려오는 모습> 을 번역하는 데 있어서도 많은 고민이 느껴졌죠. 외국으로 번역하는 일중에 시집은 특히 더 어렵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데요. 바로 시 자체도 모호하고 중의적 표현으로 어려운데 그걸 외국어로 번역을 하며 의미나 느낌을 그대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제목 하나에도 엄청난 고민을 하신 정은귀씨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루이즈 글릭'의 시집으로는 세 번째이지만 한글 번역으로는 여덟 번째라고 합니다. 마지막 장에 보니 시인의 다른 시집들이 보이네요. ^^ 데뷔작부터 여러상을 수상한 시집들까지 있습니다. 

이번에 좋은 기회에 새로 번역되어 출간되는 시집을 읽어볼 수 있었는데요. 앞서 번역된 시집들도 읽어보고 싶네요

'루이즈 글릭'의 네 번째 시집 <아킬레우스의 승리>의 후기도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  )


★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려오는모습 #루이즈글릭 #번역 #정은귀 #시공사 #노벨문학상 #작가 #시인 #시집  #도서 #서평 #책과콩나무 #북리뷰 #도서지원 
 

j*******7 2023.11.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내려오는 모습 Descending Figure_루이즈 글릭
"내려오는 모습 Descending Figure_루이즈 글릭" 내용보기
루이즈 글릭의 세 번째 시집 <내려오는 모습 Descending Figure>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출판사는 완역본 시집 1권과 별책부록 옮긴이의 말 1권을 묶어 판매하고 있다. 외국어 시는 언어와 문화적 한계 때문에 역자의 해석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는데 정은귀 교수의 별책부록이 큰 도움이 되었다.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 Louise Gluck (1943. 4. 22
"내려오는 모습 Descending Figure_루이즈 글릭" 내용보기
루이즈 글릭의 세 번째 시집 <내려오는 모습 Descending Figure>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출판사는 완역본 시집 1권과 별책부록 옮긴이의 말 1권을 묶어 판매하고 있다. 외국어 시는 언어와 문화적 한계 때문에 역자의 해석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는데 정은귀 교수의 별책부록이 큰 도움이 되었다.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 Louise Gluck (1943. 4. 22. ~2023. 10. 13.)이었다. 노벨문학상에는 후보가 없기 때문에 여러 매체들이 노벨문학상 후보를 선정하고 수상자를 예측해본다.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루이즈 글릭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예상 밖의 수상자였던 것 같다.

10월 첫째 주 목요일 오후 8시(스웨덴 현지 시간으로는 오후 1시)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면 각 서점과 출판사에서 수상자의 책에 <노벨문학상> 띠지를 두르고 전시홍보한다. 그런데 2020년에는 다소 조용했다. 루이즈 글릭의 시가 한두편 정도 번역 소개되었을 뿐, 국내에 완역 출간된 루이즈 글릭의 시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루이즈 글릭은 1943년에 미국에서 태어났다. 루이즈 글릭이 태어나기 전 언니가 죽었다. 이로인해 가끔 루이즈 글릭은 언니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모습을 시에 선보인다고 한다. 내려오는 모습 Descending Figure에도 죽은 언니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10대 때 루이즈 글락은 섭식장애 등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7년 간 치료를 받는다. 대학에도 입학하나 병으로 학위를 따지 못한다.

어릴 적 점쟁이가 루이즈 글락이 5편의 시집을 낼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그녀는 25살 때 첫 시집을 발표하고 2023년 10월 사망할 때까지 13권의 시집을 발표한다. 점쟁이의 예언을 기억하는 루이즈 글락의 일화가 재미있다. 또, 점쟁이 예언을 설명하며 후천적인 노력과 재능이 점쟁이의 예언을 훨씬 훗도는 성과를 냈다고 설명하는 거 같아 조금은 제자를 대하는 교수님(예일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모습이 보인다.

<내려오는 모습 Descending Figure>은 루이즈 글락의 세 번째 시집이다. 죽음이라는 소재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첫 시부터 익사한 아이들이 나온다. 내려오는 모습이라는 시에서는 더이상 이름이 불리지 않는 죽은 언니를 그린다. 봄이 되면 죽을 아이라는 걸 알지만, 그 아이를 안고 있는 것이 과연 잘못일까. 삶은 죽음에서 태어나고 죽음을 통해 삶이 안식을 찾을 때도 있다. 생태순환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그 사이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시는 함축적이고 그림과 같이 독자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읽은 시가 한달 후에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오늘은 읽은 시들은, 슬픈 얼굴을 안보이려고 얼굴을 벽에 대고 뒤에 서 있는 독자에게 조용히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라는 사실만 알고 시를 읽었다. 첫 시부터 아이들의 죽음을 다루고 있어 분위기가 기괴하면서 무겁다. 옮긴이의 말처럼 <익사한 아이들>은 다큐멘터리 나레이션처럼 묵묵하게 표현되고 있다. 깊은 슬픔 보다는 가벼운 한숨과 애처로움이 앞선다.

얼마 전에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은 거 같은데, 한달 전인 2023. 10. 13.별세하셨다는 기사를 봤다. 루이즈 글릭은 어릴 적 죽은 언니처럼 자신도 일찍 죽을까봐 걱정했다고 한다. 죽음은 주변인을 슬프고 안타깝게 한다. 그러나 시인이 죽음을 평온이라고 생각했다면, 시인에게 진정 평온이 오길 바란다. 슬픔이 소리없이 새어나올 때 함께 조용히 울어주는 시집 같다.

(시공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h*****3 2023.11.1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내려오는 모습
"내려오는 모습" 내용보기
시가 어렵다는 것은 아마 대부분의 생각일 것이다. 게다가 외국시라면 난해함은 더 크게 다가온다. 이 책을 알기 전까지 루이즈 글릭이란 인물은 전혀 들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미국에서는 현대 문단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이고, 2020년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다. 그녀는 모두 14권의 시집을 발표했고 [내려오는 모습]은 세번째 작품이다. 시집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내려오는 모습" 내용보기

시가 어렵다는 것은 아마 대부분의 생각일 것이다. 게다가 외국시라면 난해함은 더 크게 다가온다.

이 책을 알기 전까지 루이즈 글릭이란 인물은 전혀 들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미국에서는 현대 문단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이고, 2020년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다.

그녀는 모두 14권의 시집을 발표했고 [내려오는 모습]은 세번째 작품이다.

시집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너무나 평이해서 더 어렵게 느껴졌다.
더구나 처음 접하는 작가의 시 세계는 다른 행성을 방문한 것처럼 낯설고 모호했다.
물론 시가 모호함을 무기로 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녀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눈가리고 길을 가는 듯 했다.

막연히 떠오르는 이미지는 뭉크의 그림들이었다.
뭉크의 작품들에서 죽음의 냄새가 나듯 루이즈 글릭 시에도 죽음의 그림자가 서성인다.

" ...아침이면, 텅 빈 들판에서,
육신은 호출되기를 기다린다.
넋은 그 옆, 작은 바위 위에 앉아있고
다시 형태를 갖추려고 오는 것은 없다..."  < 정원 중에서 >

하지만 그녀의 시는 암울함과 공포에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 층 위로 도약한다.

"...무의미한 갈색들과 녹색들에서 마침내 하느님이 일어섰으니, 그 분 커다란 그림자가
그 분 자녀들의 잠든 몸에 컴컴히 드리워지고 그분은 천상으로 뛰어 올랐다.

분명, 너무너무 아름다웠을거야
그 처음에,
하늘에서 바라보는 지구" <애가 중에서>

작가는 카톨릭 신자였지만 시 세계는 신앙에 갇혀 있지 않다. 정신세계는 오히려 자연에 귀의 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내려온다' 라는 말은 다른 차원이나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되고 '올라간다' 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올라갔던 것이 다시 내려온다라고 볼 수도 있다.

작가는 이 두개의 세계를 하나의 연장선에 놓고 삶의 공포와 불안 승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뭉크와 마찬가지로 루이즈 글릭 역시 가족 트라우마가 있다.
고통에는 뜻이 있고, 아픈만큼 성장한다는 이야기처럼 어린시절 참혹한 경험들이 위대한 작품들로 다시 태어나는 역사를 이 시집을 통해 새삼 느낀다.

작가의 무궁한 시 세계를 너무 협소한 틀안에 가두어 놓은 느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좀 더 묵상의 시간을 갖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앞으로 서평해야 할 책 그녀가 1990년에 발표한 시집, [ 아라아트산]이 대기 중에 있어서 그때 좀 더 깊이 연구하려고 한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제공받은 책으로 자의적으로  작성했음을 알립니다.
 

b*****n 2023.11.0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물속에서 길 잃은 아이들 (108)
"물속에서 길 잃은 아이들 (108)" 내용보기
루이즈 글릭(1943-2023.10) 그녀의 수사는 꾸밈없는 꾸밈으로, 수수하면서도 덤덤하게 다가오는 시와 심상의 색채에 비해 화려한듯한 타이틀로 먼저 만났습니다. 미국 현대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면서 24년 만의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자, 그리고 퓰리처상 거기에 국내 시인들의 찬사와 번역으로 실린 일부의 시들은 명성보다도 먼저 만날 수 있어 왔는데 그 이름만을 알고
"물속에서 길 잃은 아이들 (108)" 내용보기


 

루이즈 글릭(1943-2023.10) 그녀의 수사는 꾸밈없는 꾸밈으로,

수수하면서도 덤덤하게 다가오는 시와 심상의 색채에 비해 화려한듯한 타이틀로 먼저 만났습니다.

미국 현대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면서 24년 만의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자, 그리고 퓰리처상

거기에 국내 시인들의 찬사와 번역으로 실린 일부의 시들은 명성보다도 먼저 만날 수 있어 왔는데

그 이름만을 알고 있던 여류 시인 루이스 글룩을 이 겨울에 드디어 봅니다.

아직, 야생 붓꽃<1993년 시집 The Wild Lris>도 접하지 못해서 최대한 많이 그녀의 시를 알고자 <내려오는 길>, <아라라트 산> 2 권의 시집을 한 번에 읽었네요.

먼저 읽은 <내려오는 길>은 첫 시의 강한 여운으로 몇 날 며칠을 펼치고 또 펼쳐 생각하고 또다시 읽게 되는 힘이 있습니다,

그녀의 시는 맑고 청량한 낮에도 깊은 밤에도 시간 상관없이 읽기 좋겠지만

제목으로만은 짐작할 수 없었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었는지 오래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요,

시들을 읽고 나면 왜 그 '모습'에 주목하는지,

'현상'이나 '형상'의 묘사가 여러 장면을 오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을 슬로우 화면으로 찬찬히 그려

마치 명화를 보며 생각에 잠기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고

우리가 다 같이 바라보는 사건, 그러니까 일상과 삶에서 오는 인간 성찰의 결이 속속 깃들어 있습니다.

그녀의 문체는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데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묘사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라 느껴지는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는가 합니다.

첫 장부터 오해 없이 편견 없이 시를 마주하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는데

오명이 생기는 사회도, 그 조차 감안했을 시인의 마음도, 책을 덮을 때에 이르러서는 어쩐지 두 쪽의 마음이 다 이해가 되더군요.

필자는 평소 수없이 많은 아름답고 유명한 시 등이 있음에도

이조차 식상해져 고전을 다시 찾아 읽고 있었는데 동시대 시인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감상들이, 새삼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집 <내려오는 모습>에서 타이틀 시도 좋았지만

필자는 가장 앞 장의 '익사한 아이들'이 오래 마음에 남아 마음에 걸리었네요.

가 없는 물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

물의 품 속에서 꿈으로 떠났을 아이들.

문득 천안함 생각이 났고,

한국인들이라면 그들을, 그 아이들을, 그리고 아이들을 보낸 부모들의 찢어지는 가슴의 떨림을 다 함께 흐느껴왔기 때문에.

많은 장면들이 겹쳐지면서 불쑥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익사한 아이들

The Drowned Children

보세요. 그 애들은 판단력이 없어요.

그러니 물에 빠져 죽는 거, 당연한 일인지도,

우선 얼음이 아이들을 끌어들이고,

그다음, 겨울 내내, 아이들 털목도리가

가라앉는 아이들 뒤에 떠다니고,

그러다 아이들이 조용해지네요.

그리고 연못은 겹겹의 어두운 팔로 아이들을 들어 올리네요.

죽음은 아이들에게 다르게 와야 하는데,

시작만큼이나 말이지요.

아이들은 늘 눈이 멀어 있었고

둥둥 떠다녔던 것 같아요. 그러니

나머지는 다 꿈으로 온 것 같아요, 그 램프도,

테이블과 아이들 몸을 덮었던

그 근사한 하얀 천도.

그래도 아이들은 자기 이름을 듣네요,

연못 위로 미끄러지는 유혹처럼;

뭘 기다리고 있는 거니,

집으로 와, 집으로 와, 시퍼런

가없는 물속에서 길을 잃었네.

<내려오는 모습> 루이즈 글록

시로 묘사할 수 있는 것이 딱, 정해진 것은 아니겠지만 쉬이 다루지는 못하는 '죽음'이라는 주제는

인간 모두의 삶에 있음에도 동시에 직접 겪은 후에는 쓸 수 없는 영역, 글쓴이는 이 갈래에 담담하게 서서 안과 밖을 넘나들며

아이도, 어른도, 그 공기도 풍경도 되었다가 궁극적인 성찰의 순간을 보여주며 제가 가진 편견마저 깨워 주네요.

하나 덤덤한 마음.

솟구쳐 글로 울음 짓지 않아도

상실에 깊이 동감하고

죽음이라는 것을

그저 불행으로만 여기지 않으려는 성찰의 마음과 꽤 단호한 듯한 글쓴이의 호흡마저 느낄 수 있습니다.

덤덤함을 떠올리니 오래전 마음에 묻은 아버님의 일이 떠올랐는데요,

빈소에서 나를 에워싼 주위의 사람들은 ' 정도 없다', '독하다'라며 욕 아닌 욕을 했지마는

너무 시린 가슴은 저밈에서 빠져나올 틈이 없어

오히려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인 시에서 느껴지는 이 덤덤함은 먹먹함에서 태어난 그녀만의 시적 아이는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분명,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아름다운 생의 소멸의 순간에

그 볼을 타고 내려가는 눈물에 담긴 의미가

꼭 슬픔만은 아니도록,

다시금 상기하고 기리고 그려보며,

비통하게 남겨진 사람들의 등을 쓰다듬어 줄 마음 꼭 다시 움켜쥐기를.

그녀는 바라고 바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말해오던

'가슴속에 묻는다'라는 다소 진부한 이 표현이

저마다의 이유로 떠나는 모습, 지켜보는 마음으로

그보다 나은 표현이 또 없음은 아니었을지.

책<내려오는 모습>에는 '아이'도 자주 등장하고, '어린' 아이라는 수식도 꽤 있는데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어떤 마음마저 느껴지는 대목이 아닌가 합니다.

아이들을 통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의 아이 시절을 투영하는 어떤 것이라고 말이죠.

그중 '귀환'의 일부를 보면,

... 중략

그 아이 눈이 내 눈과 비슷했어,

비통하고 맑았지; 내가

그 아일 불렀지; 내가 그 애한테 말했어

우리의 언어로,

....

<내려오는 모습>

비통하고 맑은 눈은 나의 눈이지만, 아이의 눈이기도 한 것이죠.

그녀의 시 속 활자들처럼 땅속에서 솟아오른 숲과도 같은 그녀의 시들.

오랜 성찰이 녹아 있는 시들 사이에서

우리 모두 내가 품고 있는 나만의 아이의 눈으로

깊은 밤에는 침통할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이른 아침, 빛나는 낮에 오히려 좋을 시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차가운 밤도 어두운 그늘도 빛과 낮이 있어 있기에

삶의 반대편, 누구나 뽐내려고만 하는 식상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우리들.

낯선 죽음, 그러나 그러기엔 또 너무 익숙한 그리움을 느끼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또 하나의 꿈으로 떠난 그녀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b*******r 2023.11.1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내려오는 모습
"내려오는 모습" 내용보기
내려오는 모습   오랜만에 글로 남긴다. 두어 달을 더 넘겼다. 계절은 빠르게 변해가는 중이다. 여름 막바지 어디쯤. 그 무더운 더위가 아직 겨드랑이 깊은 축축했던 고랑에 매달려 있을 것만 같은데, 이제는 코앞으로 다가온 차가운 계절의 이름을 서둘러 불러보는가 싶다. 내일은 아마 아침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을까 싶다.   공백은 길었을까. 아니면 짧았을까. 공백이 만들
"내려오는 모습" 내용보기

내려오는 모습

 

오랜만에 글로 남긴다. 두어 달을 더 넘겼다. 계절은 빠르게 변해가는 중이다. 여름 막바지 어디쯤. 그 무더운 더위가 아직 겨드랑이 깊은 축축했던 고랑에 매달려 있을 것만 같은데, 이제는 코앞으로 다가온 차가운 계절의 이름을 서둘러 불러보는가 싶다. 내일은 아마 아침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을까 싶다.

 

공백은 길었을까. 아니면 짧았을까. 공백이 만들어낸 무지의 터널은 크고 넓었을까 아니면 비좁고 음침했던가. 가벼이 흩날리는 생각조차 없이 시계의 초침은 쉼없이 돌아가고, 해와 달이 자리를 바꾸는 일이 반복되더라. 그런데 결국에는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나라는 사람은 참 어리석기 짝이 없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지만 밖으로 방황하다 돌아왔어도 책은 언제나처럼 곁에 있었다. 말없이 어긋나기로 작정을 한 이런 나까지 내치지 않고 기다려준 오랜 지기가 있어 살아가는데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내려오는 모습’ 루이즈 글릭의 시집을 읽었다. 그리고 내친김에 한권 더 읽어보려는 찰나이다. 차가워지는 계절에 시집이 읽고 싶었던가보다. 그녀를 알지 못해서 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여러 편의 시집이 나왔다하던데, 이다지도 어색할 줄이야. 이다지도 생경스러울 줄이야.

이런 어색함이란 졸아들어가는 삶의 어느 궁색함을 덮어버리는 치졸한 변명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각설하고 처음 만난 그녀의 작품관이나 표현들은 적잖이 나라는 존재를 벼랑으로 내몰아가곤 했음을 고백한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은 과연 얼마나 다른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문제일까.

 

시집은 루이즈 글릭의 시집과 함께 역자 정은귀의 ‘옮긴이의 말’이 함께 수록되어 있었다. 처음 시인의 시집을 읽고나서, 옮긴이의 말을 읽으며 대조하면서 읽고, 다시한번 시집을 읽었다. 이쯤되면 생각이 정리가 될 듯해서. 그런데 나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누군가 말했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고통’ 내지는 ‘고통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이미 고통이라 할 수 없다고 말이다. 슬픔을 슬픔으로 표현하지 않고, 다른 표현으로 깊이감 있게 전달해낼 수 있을까. 한 시절. 우리는 그런 말같이 않은 생각들로 고민을 만들어 사서 고생을 하곤 했었다. 과연 깊이를 알 수 없는 인간의 내면을 잠식하고 있는 고통과 슬픔. 또다른 감정선인 기쁨과 환희의 무게를 읽어내고 잴 수는 있을까. 한명 한명의 인간은 과연 그 모든 것을 다 감내할 수 있게 만들어졌을까.

 

시집에는 역자도 언급했듯이 신이 등장하고, 가족이 등장하고, 때론 알지 못하는 정령?들을 포함해 죽은 이의 맑은 영들도 등장하는 듯했다. 어떤 죽음은 객관적 죽음을 그리고 있으며 또 다른 어떤 죽음은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되, 고민하고 번뇌하는 화자의 시선이 그려지고 있는 듯했다. 이번 시집 ‘내려는 모습’을 관통하고 있는 것을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죽음과 영혼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지만 어쩌면 말이다. 그것이 다는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 단지 죽음은 암울하면서도 무겁게 슬프다는 개념을 뛰어넘는 그 어떤 것.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시인은 말하는 듯했다.

 

죽음은 현실과의 동떨어짐이 아닌 현실에서 이어지는 삶의 연속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모든 것을 삶 속에서 피고 지는 꽃과 같다. 루이즈 글릭, 그녀가 언급하고 있는 정원의 푸르름과, 꽃들과, 환한 빛들과, 그늘과, 어둠 역시 모두 인간의 삶이 그려내는 그림들 속에 안착하기 때문이다. 편안한 안착만이 편안한 안식을 불러오는 것일까. 남녀의 사랑과 새로운 생명의 탄생. 그리고 주어진 삶을 영위하는데서 생겨나는 희노애락의 흔적들과 그 결정체인 죽음의 의미가 인간을 한 단계 위로, 아니 어쩌면 신이 바라는 어느 단계로? 성장시키는 발원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딴은 이 얼마나 말 같지 않는 논리인가. 죽음마저 인간성숙에 있어 일정부분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다, 라고 말하는 나라는 사람은 또 얼마나 감정과 이성에서 흔들리고 있는 걸까. 질척이는 어리석음의 늪에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모양새이다.

 

 

--------------------------------------------

5. 매장의 두려움 The Fear of burial

아침이면 텅 빈 들판에서,

육신은 호출되기를 기다린다.

넋은 그 옆, 작은 바위 위에 앉아 있고~

다시 형태를 갖추려고 오는 것은 없다.

 

육신의 외로움을 생각해 보라.

그림자로 주변을 단단히 묶고

한밤에 추수 끝난 들판을 질주할 때

그토록 긴 여정.

멀리 있는, 마을의 떨리는 불빛들은 벌써,

행렬을 살피면서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얼마나 멀리 있는 것 같은가,

식탁 위에 묵직하게 놓인

빵과 우유들, 나무 문들.

(내려오는 모습.p17 작품 ‘정원’의 일부 인용 )

 

지극한 사담이지만, 문득 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한 장면이 연상되기도 했던 대목이다. 육체에서 홀연히 벗어난 소년의 영혼이 비로소 자유롭게 움직였던 그 장면. 자신의 육체가 썩어들어가다가 급기야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작고 작은 영혼.

‘넋은 그 옆. 작은 바위 위에 앉아 있고. 다시 형태를 갖추려고 오는 것은 없다.’ 라는 글이 더 처연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빛은 꺼지지 않고, 식탁 위에는 남은 이들의 삶의 연속성을 보여주듯, 묵직하게 놓인 빵과 우유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시인의 눈은 또 얼마나 따뜻한가. 진솔한 위로의 시선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시집을 읽을 때, 이제 글로 남길 때 영감을 주었던 음악을 기록으로 남긴다. ‘아베 베룸 코르푸스’(Ave Verum Corpus). 때론 누군가에게는 경건한 순간의 기록으로 자리하기를 바란다.

 

p********n 2023.11.10. 신고 공감 0 댓글 0